달라이라마 · 보리심 수행

죽음에 대한 준비와 이상적인 죽음

수선님 2021. 1. 3. 11:23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 문제와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그 문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제거되지 않았지만 단순히 문제를 피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문제를 직면하고 분석하여 당신이 그 문제에 익숙해지도록 하여 그것이 우리 인생의 한 부분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저는 신체와 질병의 주제에 관해 이미 언급했습니다. 질병은 발생합니다. 그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이며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입니다. 질병은 신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질병과 고통을 피할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리 피하려 애를 써도 질병이 발생하면 그것들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빨리 치료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추가적인 정신적 부담은 없을 것입니다. 위대한 인도의 불교학자 샨티데바가 말한 것처럼 ‘고통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고통을 극복할 방법이 없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이성적인 태도는 꽤 도움이 됩니다.

 

이제 죽음에 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을 피하는 것보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뉴스에서 우리는 종종 살인과 죽음을 보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자신과 무관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 같은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똑같은 신체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며 모두 죽게 됩니다. 물론 자연적인 죽음과 사고에 의한 죽음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죽음은 결국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처음부터 죽음을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유지하면 죽음을 맞이하기가 쉬워집니다.

 

죽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단순히 피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더욱 효과적인 방법으로, 정면으로 죽음을 직면하고 의식하는 것입니다. 문제 또는 고통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특정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고통과 불안의 힘을 실제보다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나 사고방식을 가져도 불안과 고통의 정도를 낮출 수 없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것을 준비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두 가지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정신적 불안, 근심, 두려움, 의심, 좌절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울증, 최악의 상황에는 자살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결과입니다. 다른 가능성은 비극적인 경험 때문에 더욱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비극적 경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통해 당신은 더 강해지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독립심이 강화됩니다. 불행한 사건이 그 사람을 내강(內剛)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인생과 미래의 성공은 개인의 동기와 결단력 또는 자신감에 달렸습니다. 어려운 경험을 통해 인생은 때로 더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만일 인생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면 작은 일에도 쉽게 희망을 잃고 짜증을 내게 됩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영국인들은 그들이 경험한 어려움의 결과 아주 강한 정신 태도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문제가 발생하면 고통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강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각도에서 보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인생에 좋은 교훈이 됩니다.


이 같은 태도가 단지 자신을 속이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나라를 잃었고 심지어 티벳 안에서는 많은 파괴, 고통, 불행이 발생해 왔습니다. 저는 인생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망명 생활의 시기가 제 인생 최고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 각도에서 보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불행한 것들 때문에 저는 다른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전통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을 만날 기회가 그것입니다. 이 같은 경험들을 통해 나의 인생은 풍부해졌으며 많은 소중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의 불행한 경험에도 어떤 소중한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신적 부담 또는 좌절감이 덜어집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건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고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 사건이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경우는 아주 희귀하거나 거의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도움됩니다. 긍정적이고 유익한 측면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다른 사건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 보는 것도 도움됩니다. 그러면 당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제 불교 승려로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설명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삶의 네 가지 고귀한 진실인 사성제(四聖諦)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진실이 고통의 진실입니다. 고통의 진실은 존재의 세 가지 특성에서 가르쳐집니다. 그 첫 번째가 무상(無常)입니다. 무상의 본질에 관하여 말할 때 두 가지 단계가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한 단계는 일차적 단계로서 생명이나 사건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삶의 네 가지 진실과 관련하여 가르쳐지는 무상은 좀 더 미묘한 무상으로서 존재의 일시성을 말합니다.

 

존재의 무상에 대한 좀 더 미묘한 측면의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 존재의 불만족스러운 본질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무상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원인과 조건의 결과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원인과 조건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존재를 발생시킨 그 원인과 조건이 그 존재의 붕괴와 사멸도 가져옵니다. 따라서 사건의 원인이 되는 씨앗 내부에는 사멸과 붕괴의 씨앗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연관하여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의 통합체의 무상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원인이 우리 자신의 무지한 마음상태를 의미하며, 이 마음상태가 우리 존재의 뿌리이며, 이것은 우리의 육체적 존재가 무지한 마음 상태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차적 단계의 무상에 관해서 먼저 생각해 보아야 미묘한 차원의 무상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자기 존재의 영원성을 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성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지금 이 현재 또는 자신의 일생과 관련된 문제에 매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내부의 집착과 영원성을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황에 있게 됩니다.

 

죽음과 무상에 대한 인식이 불교 수행에서 아주 중요한 이유는 죽음의 시점에 가지는 마음 상태가 내생에서 어떤 형태로 환생 할 것인지 결정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마음 또는 부정적인 마음 상태가 큰 차이를 만듭니다. 따라서 불교 수행은 죽음과 일시성의 인식에 아주 큰 중요성을 두게 됩니다.

 

일시성에 관한 높은 수준의 인식은 자신의 수행을 통해 죽음의 순간에 고결하고 긍정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하여 긍정적인 환생을 보장받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다른 혜택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인식을 유지하게 되는 다른 긍정적인 결과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정신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데 아주 유리한 상황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딴뜨라 불교에서 죽음의 시점에 경험하는 마음 상태는 극도로 미묘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식 상태의 그 같은 미묘함은 그 사람의 정신적 연속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따라서 딴뜨라 불교에서는 죽음과 그 과정과 관련된 명상이 중요시되고 죽음의 시점에서 자신의 정신을 계속 유지할 뿐만 아니라 수행의 실현을 위한 미묘한 의식 상태를 활용할 수 있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는 많은 딴뜨라 불교명상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명상은 ‘신유가명상’이라고 불리며 사멸 과정에 관한 것으로서 죽음의 시점에서 개인이 경험하는 사멸의 요소들을 명상하는 것입니다. 사실 딴뜨라 불교의 관점에서 존재의 전체 과정은 죽음, 중간 상태, 환생의 세 가지 단계로 설명됩니다. 이 존재의 세 단계 모두 의식과 의식을 동반하는 에너지의 상태 또는 형태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중간 단계와 환생은 미묘한 의식과 에너지의 다양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상태의 예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우리는 깊은 수면 상태, 깨어있는 상태, 꿈의 상태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생존을 이 같은 세 가지 단계로 특징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딴뜨라 불교의 경전에서 의식과 마음의 미묘한 단계와 일차적 단계를 구분할 때 ‘정신적 의식’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여섯 번째 의식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육체 상태에서 독립된 스스로 작용하는 의식이 있으며 이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조사하면 우리 정신 상태와 정신적 기능은 직접적으로 육체와 서로 상호 관련이 있습니다. 감각적 의식뿐만 아니라 우리가 정신적 의식이라고 부르는 대부분은 생리학적 기초가 있으며 신체 상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두뇌와 신경 체계가 우리는 의식하는 경험 대부분의 생리학적 기초가 된다고 말하는 과학자들의 주장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육체 상태가 중단하게 되면 정신적 기능도 중단하게 됩니다.

 

여기서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은 과연 어떻게 육체적 성분 또는 생리학적 상태가 정신적인 사건 또는 의식의 상태를 발생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불교 특히 딴뜨라 불교에서는 생리학적 기초에서 독립된 것으로 보이는 ‘마음이 밝히는 빛’의 상태로 설명합니다. 가장 미묘한 의식 수준인 ‘마음이 밝히는 빛’의 마음 상태가 생리학적 기초와 상호 작용할 때 우리의 모든 의식적이고 인지적인 사건을 발생시킵니다.

 

마음이 밝히는 빛의 마음 상태라고 우리가 부르는 존재의 징후가 몇 가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수행자들에게 발생 가능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망명 티벳 공동체에는 임상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두뇌 기능이 중단되고 두뇌가 이미 죽었지만 신체의 부패는 시작되지 않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상태가 며칠 동안 계속됩니다. 예를 들어 나의 스승 ‘키압제 링 린포체’는 열사흘 동안 그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는 임상적으로 사망했고 두뇌도 죽었지만 그의 신체는 열사흘 동안 전혀 부패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불교적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 사람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불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마음과 신체의 관계는 일차적 단계에서는 사멸했지만 미묘한 단계에서는 사멸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구햐사마자 딴뜨라로 알려진 딴뜨라 불교의 문헌에는 사람이 사망의 단계를 통과할 때 특정한 사멸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사멸에서 마음이 밝히는 빛의 상태까지 역전되는 주기가 있고 그 주기가 특정 단계에 도달하면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며 이것이 환생이라고 불립니다. 그 환생은 존재하게 되고 나중에 다시 사멸의 단계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죽음은 중간적인 단계로 구성요소가 마음이 밝히는 빛으로 분해되고 그 빛의 상태에서 다시 다른 형태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은 단지 그 사람의 다양한 생리학적 요소가 마음이 밝히는 빛의 상태로 분해되는 중간적인 단계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요소들의 실제적인 분해 과정에 관하여 불교 문헌은 분해의 다양한 단계와 그 수반되는 징후를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일차적 단계의 요소들이 분해되는 경우 그 분해를 나타내는 내부적 외부적인 징후들이 있습니다. 미묘한 요소들은 환영과 같은 내부적인 징후들만 있습니다. 죽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이 같은 분해 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내부 및 외부 징후에 관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불자로서 제 생각에는 과학적인 연구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과학적 방법론의 증명을 초월하는 현상과 기존 과학 방법이나 연구가 인정하지 않는 현상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특정 현상이 과학적 조사와 과학적 방법을 통해 과학이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면 불자들은 그 결과를 존중해야 합니다.

 

죽음이 당신에게 익숙해질수록 당신은 그 과정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고, 내부와 외부 징후를 알아보게 되면 당신은 그 준비가 된 것입니다. 죽음의 시점에서 제가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정말 실행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 죽음에 관해서 생각하면 저는 마음이 설렙니다. 두려움 대신 저는 호기심이 생기고 이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쉬워집니다. 내가 수행해온 것들을 어느 정도 실행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제가 오늘 죽는다면 나의 유일한 괴로움은 ‘티벳이 어떻게 될 것인가? 티벳 문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6백만 티벳인들의 권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입니다. 이것들이 제가 주로 우려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아마 이것은 맹목적인 자신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저는 매일의 기도 수행에서 여덟 가지의 신유가와 여덟 가지 다른 죽음에 관한 명상을 합니다. 아마 죽음이 오면 나의 모든 준비가 제 희망과는 반대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달라이 라마, 자비의 힘 (Power of Compassion)

 

 

 

 

 

 

 

 

 

가르침 및 메시지 - 죽음에 대한 준비와 이상적인 죽음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 문제와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그 문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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