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얼굴을 지나 부처의 얼굴을 보라
1. 자연의 재앙은 인간 마음의 반영
1960년 남미의 칠레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전 도시가 황폐되었다.
그때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뉴욕타임즈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하였다.
“오늘날의 과학자들 대부분은 나의 견해에 찬성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우리들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 불같이 타오르는 파괴적인 분노와 원한의 감정은 지진과 같은 파괴적 재난을 초래한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의 마음을 정화하라고 가르친 것은 자신과 이웃의 불행은 물론 전 지구적인 무서운 전쟁과 질병, 재난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무절제한 소비생활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는 이제 모든 인간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환경오염과 자연재앙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대응책은 아직까지도 근본적인 법칙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초기경전(증지부 Ⅰ. 160)에는 지나친 탐욕과 소비, 변태성욕, 그릇된 가치관이 사회에 만연하면 흉년을 초래한다고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소유물을 추구하므로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보살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자족(自足)의 원리를 따릅니다. 그 길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들은 단순한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완벽한 지혜에 대한 깨달음을 그들의 유일한 직무로 택합니다.”
《팔대인각경(八大人覺經)》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아집과 탐욕에 사로잡혀 원한과 증오를 키워가고 있는데도 우리들의 지구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소수의 구도자 집단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평생을 수도생활에만 전념하는 구도자들,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참회하며 노동과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수도자들의 삶의 양식은 현실사회와 아무 상관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정신의 세계에서 보면 사랑과 평화의 진동을 일으켜 탐욕과 원한의 진동을 중화시켜주는 소수의 성자들의 존재를 통해서 지구는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좌선과 염불의 수행속에 삼매를 이루면 이 순간에도 사랑과 평화의 바이브레이션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2. 자비심이 해탈이다.
“과학적인 지식과는 별도로 식물 생장의 비밀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 루터 버벵코의 지적이다.
그는 가시가 없는 선인장을 만들기 위한 실험으로 선인장에게 깊은 사랑의 마음을 베풀었다. 밖에 나갔다 오면 지낸 일을 자상하게 일러 주기도 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 주기도 하였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선인장에게 그는 말하였다.
“이제까지는 아무도 너를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너 자신을 보호할 가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잖니. 이젠 방어를 위한 가시는 필요없을 거야.”
식물학자의 보살핌과 사랑에 길들여진 선인장은 가시가 없는 변종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다시 말한다.
“나는 이제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식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완전한 성장을 위하여는 사랑과 함께 외부로부터의 자연스러운 축복 그리고 지적인 교배와 선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스스로의 인생을 지내오면서 나는 식물의 진화에서 볼 수 있는 진보가 너무도 기적적이었기 때문에 이 세상도 어린이들이 소박하고도 합리적인 삶의 원리들을 배우기만 한다면 그 즉시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갖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자연으로, 자연의 신께로 반드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타인으로부터 격리되고 모든 개성을 질식시키고 있는 우리세대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깊은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인간들과 조직들은 하나의 선인장이 되어가고 있다. 저마다 자기 방어의 가시를 세우고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받고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몸을 받아 태어났다는 것은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사라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중생제도의 서원을 가진 불보살을 제외하고는…….
다행이 금생에 불법의 인연을 만난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하여 삶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 나가야 한다. 인간은 한평생을 통하여 많은 상처와 응어리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면 몇 개의 층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맨 위에는 욕망의 층이 있다.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욕망들이 좌절됐을 때의 찌꺼기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음의 퇴적층이다.
두번째는 슬픔의 층이다. 부모와 친구,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무시당한 상처들이 누적되어 폐쇄적인 마음을 만들고 있다.
세번째는 분노의 층이다. 질투와 원한등이 쌓여 파괴적인 마음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 네번째는 공포의 층이다. 인간의 마음 깊숙이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끝없는 윤회의 삶속에서 고통속에 죽어 갔던 과거의 기억들이 누적되어 불안과 공포의 마음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도살되는 수많은 소와 돼지. 그리고 닭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들어보라. 살고자 하는 자기의지를 박탈당한 채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전쟁 포로들.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까닭 모를 두려움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수한 과거 전생에서 공포속에 죽어갔던 아스라한 기억이다.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꾸는 꿈이 있다. 그것은 쫓기는 꿈이거나 벼랑에서 떨어지는 꿈이다. 크게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은 어린이들이 그런 꿈을 꾼다는 것은 바로 과거 기억의 창고에서 풀려나오는 실타래이다.
3. 십일면 관세음보살
사람의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마음의 움직임은 눈빛을 통해 나타난다. 눈동자의 동공을 정밀 촬영하여 사방 1.5cm쯤으로 확대해 놓으면 그곳에 마음의 상처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아이의 눈동자가 호수처럼 맑고 투명한 것은 아직 아무런 마음의 상처도 없기 때문이다. 도인의 눈빛이 빛나는 것은 마음의 응어리가 완전히 정화되어 동공의 상처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 뒷편에는 십일면(十一面) 관세음보살이 계신다.
부처님의 얼굴을 중심으로 한 10개의 각기 다른 얼굴들은 마음의 퇴적층을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다. 욕망의 얼굴, 슬픔의 얼굴, 분노의 얼굴, 공포의 얼굴이 있는가 하면 미소의 얼굴, 기쁨의 얼굴, 자비의 얼굴이 있다.
십일면 관세음보살은 인간 마음의 갖가지 얼굴을 분명히 보여주고 본래 청정한 부처의 얼굴을 깨닫게 하고자 하는 관세음보살의 크신 자비방편이다.
현대인의 얼굴 표정은 한결같이 굳어 있다. 이것은 좌절과 억압된 마음의 반영이다. 욕망의 층을 정화하고자 하면 웃어야 한다. 부처님의 미소처럼 밝게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슬픔의 층은 불법을 배우고 진리를 실천하는 기쁨속에 정화된다. 우리가 너무 기쁘고 감격할 때 눈물이 나오는 것은 슬픔의 층이 정화되는 모습이다.
분노의 층은 자비의 마음으로 정화된다.
“자비의 마음이 깊어지면 성내고 원망함이 없으며 자비의 마음이 궁극에 이르면 남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저는 지금 자비심을 일으켰습니다. 세상을 보호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할 뿐입니다. 일체의 욕망에서 벗어나 청정함을 얻고자 하는 분은 나와 함께 부처님을 뵙도록 합시다.”
유마거사의 딸 월상녀(月上女)가 자신에게 청혼을 해온 많은 청년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다. 그 아버지에게 그 딸인가. 많은 청년들은 되돌아가고 몇 사람은 부처님께 나아가 불제자가 된다.
마지막 공포의 층은 부처님의 지혜광명에 의지해서 불생불멸의 진리를 깨닫고 미망의 생사(生死)에서 벗어나게 된다.
일체의 존재에서 부처의 모습을 보고 지금 눈앞에 찬란한 부처님의 광명을 생각한다.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염불하는 생활이 깊어지면 고체화된 마음이 기체화되어 온 우주에 퍼져나가 허공과 같은 부처님 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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