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눈매여!
연민의 눈빛이여!
1. 자기의 눈빛을 점검하라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고 명상하는 수행자는 먼저 관음의 형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능력을 구비하신 분이여 (具一切功德)
자비로운 눈으로 우리를 굽어보네 (慈眼視衆生)
넉넉하고 깊기가 바다와 같으므로 (福聚海無量)
저희들은 머리 숙여 절하나이다 (是故應頂禮)
《법화경》 <관세음보살 보문품>에 나오는 게송이다. 그 중 마음에 깊이 새겨 두어야 할 한 구절은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이다. 자비의 눈으로 중생을 살피시는 관음의 눈매이다. 자비의 어머니 관세음보살을 기리는 불자들은 관음의 눈빛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관음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비의 어머니 관음의 눈으로 이웃을 따뜻하게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관음을 부르며 관음을 닮고자 하는 불자들은 마땅히 자비의 수행 자비관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인성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사랑은 고갈되어 버린 현시대의 불자들은 자신의 눈매를 돌이켜 보는 일로 화두를 삼아야 한다.
지금 나의 눈빛이 이기적인 욕망으로 불타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을 무시하는 눈빛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사랑과 자비가 넘쳐 흐르지만 사랑과 자비가 가득 깃든 눈매를 보기 어려운 것은 우리들 마음의 상처가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영화 ‘서편제’의 대화 한 구절을 가져와 본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일이 사람이 사는 일이다. 소리를 하려면 한이 맺혀야 하지만 참된 소리는 한마저도 녹아 내려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 오면서 많은 상처와 슬픔의 얼룩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기도와 수행이란 바로 우리 가슴에 맺힌 상처와 슬픔의 응어리를 정화하고 풀어내는 일이다.
자비의 어머니 관세음보살은 능히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마음의 응어리를 녹여준다.
아무리 좋은 밭도 씨뿌리고 일구지 않으면 이내 잡초가 무성해지고 독사와 독충이 서식하며 사람을 놀라게 한다.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이 회복되지 못하면 자신과 이웃을 불행하게 한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살면서 한국불교의 수행과 승가 생활을 익힌 한 외국 스님은 한국 스님들의 수행관을 이렇게 평한다.
“한국 스님들은 개인적으로만 수행하려고 하지 자비심이 부족하고 따뜻한 눈빛이 없어요.”
중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한국불교는 대승불교를 지향하면서도 대승불교의 이념 정립이 되어 있지 못하고 최상승선을 말하면서 최상승선의 생활원리를 심어주지 못했다. 그것은 깨달음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사랑과 자비를 개발하는 기초수행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티베트불교의 명상 지도자 쵸캄 트룽파는 말한다.
“자기는 수행과 깨달음의 길을 닦아 나간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자기기만은 수행자들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다.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이들은 정신적 물질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가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데 비해 티베트불교는 깨달음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수행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생의 바탕은 이기심과 아집인데 그 바탕을 그대로 둔 채 수행하고 교리를 배우면 아만심과 법집(法執)만을 증장시킨다는 것.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하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잡초를 뽑아줘야 하듯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중생병을 치유하는 기초수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티베트불교의 4개 종파에는 각각의 기초수행이 실천되고 있지만 그 근본은 스승과 삼보에 대한 공양과 헌신을 통하여 에고(Ego)와 욕망의 에너지를 사랑과 헌신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일이다.
2. 자비심의 계발, 에너지의 전환
태안사 선원에서 겨울안가를 지낼 때이다.
출가한 지는 10년 이상 됐지만 선원 생활은 처음인 한 스님이 있었다.
안거가 보름쯤 지나서 함께 등반할 기회가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선원에 앉아 있으니까 무슨 망상이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지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망상과 혼침속을 헤매다가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나는 선원에 앉아 수행할 근기는 되지 못하지만 기왕 한 철 살기로 작정했으니 도중하차할 수는 없고 함께 정진하는 도반스님들 장애 없이 수행하게 기도축원이나 해주자’ 하고는 한 방에서 정진하는 12명 스님들을 한 명씩 머리에 떠올리며, ‘○○스님이 아무 장애 없이 수행에 정진하여 성불하게 해 주십시오’ 하며 축원하였습니다.”
이렇게 3일을 하니 이제까지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의 평온과 행복을 느낄 수사 있어서 좌선시간이 아주 행복한 시간이 됐다고 하였다. 또한 12명 스님들을 한 분씩 떠올려서 진실한 마음으로 축원을 했더니 시간도 잘가고 좀 못마땅했던 사람도 굉장히 가까워졌다고 하였다.
여기에 수행의 깊은 묘미가 담겨 있다. 자기 수행을 위해 몸부림칠 때 지루함과 망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는데 자기 공부는 놓아버리고 타인의 공부를 위해 축원하니 자신의 마음에 기쁨과 고요의 빛이 깃들게 됐다는 것이다.
태국과 미얀마에 가면 지금도 밀림의 수행자들이 있다. 그들은 맹수와 독사, 독충들이 우글거리는 밀림에서 3개월의 안거에 들어간다. 밀림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행하는 수행이 바로 자비관이다.
수행자는 먼저 경건한 마음으로 자비의 덕성을 명상하고 《자비경》을 암송한다. 《자비경》은 《숫타니파타》에 실려 있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겁에 떨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그리고 긴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치건 짧고 가는 것이건
또는 조잡하고 거대한 것이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든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
또한 온 세계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를 행하라
위 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와 원한과 적의가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부른다
《숫타니파타》
먼저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축원문을 고요히 암송한다.
나에게서 미움과 질투의 감정이 사라지고 감사와 사랑의 마음이 샘솟기를!
나에게서 허전함과 외로움의 감정이 사라지고 충만한 기쁨이 샘솟기를!
나에게서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 사라지고 호수와 같은 평온함이 깃들기를!
나에게서 삶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열반의 기쁨이 함께하기를!
이 같은 자비의 명상과 염력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면 수행자는 물이 가득한 항아리와 같이 될 것이며 그 자비의 물은 목마른 이웃의 마음을 촉촉히 적실 준비가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비관이 끝나면 다음에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가족, 친구, 그리고 그저그런 사람, 미운 사람의 순서로 상대방의 영상을 분명하게 떠올리며 자비축원문을 암송한다. 이때 눈앞에 떠올린 영상은 분명해야 하며 염력의 방사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에는 네 발 가진 짐승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비의 축원을 한다. 계속해서 물 속의 고기들, 날아다니는 새들, 아주 작은 미물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생명 가진 일체 존재를 향하여 한없는 자비의 광선을 방사시킨다.
이 같은 자비관을 1달 이상씩 수행하고 밀림의 안거에 들어가는데 맹수나 독사, 독충의 피해는 물론 모기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한다.
완전히 깨어 있지 못한 인간의 의식은 상대방의 염력을 깊이 감지하지 못하지만 식물계와 동물계 그리고 영계(靈界)는 진심에서 방사되는 염력을 바로 감지한다고 한다.
불전에도 보면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살해하기 위해 성난 코끼리를 풀어 놓았을 때 부처님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한없이 자비한 마음이 되어 코끼리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자비의 광선을 내보내는 장면이 있다. 강력한 자비의 진동을 감지한 코끼리는 곧 유순해져서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성난 코끼리를 향해 한 손을 들어 자비의 광선을 보내 일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님의 손 모습, 그 수인(手印)을 시무외인(施無畏印)이라고 한다.
자비의 어머니 관세음보살을 시무외자(施無畏者)라고 하는 것은 충만한 자비의 마음으로 일체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안온함을 베풀어주기 때문이다.
자비관의 지속적인 실천은 우리 마음의 얽히고 설킨 고통과 원한의 매듭을 한 가닥씩 풀어서 사랑과 평온이 깃들게 한다. 자비심이 깊어지면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다.
미망과 고통 속의 중생이 마음을 전환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행, 자비관을 통해서 영원한 행복인 자비심을 성취하게 된다. 그때 영원한 행복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웃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이 샘솟게 된다.
자비와 연민, 기쁨과 평온함은 인간의 마음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본질적인 요소이다. 자비의 집을 여의지 않는 불자에게는 삶의 고통이 침입하지 못한다.
세상의 많은 기도법과 수행법이 있지만 자비관의 수행공덕에는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마치 많은 별들이 있지만 보름달의 밝음에는 미치지 못하듯이.
매일매일 자비관을 수행하는 불자들에게는 열 가지의 이익과 공덕이 생겨남을 경전은 말씀하신다.
자비관은 십종공덕
1. 편안히 잠들고 즐겁게 깨어난다
2.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다
3.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4. 사람 아닌 존재들의 보호를 받게 된다
5. 선신들이 수호하고 보호한다
6. 불이나 독, 무기의 해를 입지 않는다
7. 기도정진하면 쉽게 삼매에 이른다
8. 얼굴 표정이 늘 밝고 평온하다
9. 임종시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10. 죽으면 천상에 나게 된다
자비심이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임을 깨달아 모든 이웃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기를…….
자비축원문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기운달이 차서 둥근달이 되듯
이와 같은 수행의 공덕으로
나와 더불어 모든 이웃들이
원한과 고통, 불안에서 벗어나
기쁨과 행복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강물이 흘러서 바다에 이르듯
기운달이 차서 둥근달이 되듯
이와 같은 수행의 공덕으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이
원한과 고통, 불안에서 벗어나
기쁨과 행복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티벳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렌수행 (0) | 2021.01.31 |
---|---|
타라(多羅, Tara) 보살 (0) | 2021.01.31 |
나로빠 스님(티벳 밀교) (0) | 2020.12.20 |
삶은 끝없이 포기하는 일입니다. (0) | 2020.12.06 |
아티샤의 명상 요결 (0) | 202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