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는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티베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보살이다.
타라는 산스크리트 명이고 티벳어로는 돌마라고 하는데 돌마는 티베트에서 가장 흔한 여자 이름이기도 하다. 때문에 타라는 우리가 티베트 불교를 만나자 마자 가장 많이 듣고 접하게 되는 보살이다.
그런데 이 타라 보살들은 젖가슴을 온통 드러내고 눈꼬리가 날카로운 이국 여성의 모습이고 더구나 녹색타라는 살색까지 시퍼래서 우리 불교미술에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매우 낯설은 모습이다. 그래서 성적으로 교합한 상태로 표현되는 부모(父母)상들이나 무서운 모습의 불보살상들과 더불어 티베트 불교가 정식 불교가 아닌 뭔가 사이비적인 불교라는 의심을 갖게 해준다. 그러나 타라가 어떤 보살인지를 알게 된다면 한국의 불자들도 많이 좋아하게 될 것이다.
타라 보살이 된 혜월 공주의 서원
수억 겁 전 아다 부처님鼓音如來〕 시절에 이셰다와慧月〕라는 공주는 수없는 생을 통해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한량없는 공양을 올렸다.
공주는 10세부터 고행과 명상을 끊이지 않고 계속하여 79세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다. 혜월 공주가 깨달음을 얻자 부처님의 제자인 비구들이 찾아와 예를 올리고
“공주시여, 깨끗한 복을 짓고 한량없는 공덕을 쌓아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으니 속히 남자의 몸을 받아 부디 중생을 위해 법을 베푸소서.”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이를 거절하며
“남자 모습의 부처와 보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여자 모습의 불보살은 거의 볼 수 없으니 나는 이 삼사라가 텅비도록 여자의 모습으로 모든 중생을 도우리.”
하고 서원하였다. 다시 여러 번을 더 안거에 들고 삼매를 이루어 공주는 고통의 강을 건네주는 어머니라는 ‘타라’로 불리게 되었다.
타라는 실제로 어머니가 되기로 하고 부처님이 주신 환약을 먹고 축복을 받아 99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유라고 하는 훌륭한 용모의 보살을 아들로 낳았다. 타라는 아들을 몹시 사랑하여 늘 가슴에 안아 젖을 먹이고 연꽃 위에 눕혀서 열매의 즙을 먹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직도 젖을 먹는 어린 아들이 그만 사라져 버렸다.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감추어 버린 것이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 타라는 수행으로 쌓은 모든 마음의 힘이 사라지며 가슴이 미어져서 젖이 마르고 달빛 같던 얼굴이 시커멓게 어두워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으며 하늘과 땅이 흔들리도록 통곡하니 눈물로 호수가 생기고 마른 나무에서 새잎이 나왔다.
부처님이 친히 내려오셔서 타라의 두 손을 잡아 일으키며 법을 설하시기를,
“육도의 어머니 타라시여,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지기 마련인데 어찌 이리도 고통스러워하시는가?”
그러나 부처님의 설법조차도 아들을 잃은 어미의 고통을 달랠 수 없었다. 아들을 찾아서 천상에서 지옥까지 육도를 샅샅이 뒤지고 헤매이면서 타라는 육도 중생들의 고통을 낱낱이 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1천불 나라의 부처와 보살들이 황금탑 안에 감추어 놓은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상봉한 모자가 끌어안고 서럽게 울며 함께 흘린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 그 눈물은 약이 되어 그 눈물을 마신 모든 중생들이 장애와 병을 벗어났다.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타라는
“내가 이 아들을 찾아 육도를 헤매이면서 고통스러운 중생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아들을 찾던 그 애절한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중생들을 건지리이다.”
하고 서원하니 부처와 보살들이 몹시 기뻐하며 타라 모자를 좌대 위에 앉히고 세 바퀴를 돌고 절을 한 다음
“타라 어머니시여, 우리가 아들을 숨긴 것은 중생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을 어머니가 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였다.
수없이 많은 중생들을 구원한 타라는 부처님이 바뀐 지금도 포탈라라는 궁전에 거하며 외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중생들을 돕고 있다.
티벳 라사의 달라이라마가 거하는 궁전의 이름을 포탈라라고 한 것은 어머니 타라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달라이라마들의 의지인 것이다
출처 : 월간 불광 1999년 5월호 중에서...
[출처] [공유] 타라(多羅, Tara) 보살|작성자 hanian
'티벳 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드마삼바바 (0) | 2021.02.12 |
---|---|
통렌수행 (0) | 2021.01.31 |
사랑의 눈매여! 연민의 눈빛이여! (0) | 2021.01.03 |
나로빠 스님(티벳 밀교) (0) | 2020.12.20 |
삶은 끝없이 포기하는 일입니다. (0) | 2020.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