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벽암록碧巖錄, 간화선看話禪

수선님 2021. 1. 31. 13:09

벽암록碧巖錄, 간화선看話禪

 

 

 

선종禪宗의 제1서라고 일컬어지는 <벽암록碧巖錄>(저어著語, 착어着語라고도 함. 본래의 명칭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圓悟禪師碧巖錄 또는 원오노인벽암록)과 당나라 중기 이후에 처음으로 교계의 표면으로 나타난 <능엄경>은 송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고, 거사居士로서 주석서를 남긴 이들도 있습니다.

벽암碧巖은 송나라의 승려 원오선사圓悟禪師 극근克勤(1065~1135)에게 칙명勅命으로 수여된 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 선종의 5가 중 운문종雲門宗의 제4조인 설두雪竇 중현重顯(980~1052)이 정리하고 저술한 것에 임제종臨濟宗의 제11조인 원오선사가 부연하여 저술한 것을 원오의 제자들이 편집, 간행한 것입니다.

중현重顯은 이름이고, 설두雪竇는 거주지인 산 이름을 딴 것입니다. 부모를 여의고 어렸을 때 출가하여, 처음에는 성도成都 보안원普安院의 인선仁銑과,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 사사했습니다. 지문광조의 법을 이어받아 쑤저우蘇州 취봉사翠峰寺와 항저우杭州 영은사靈隱寺에서 살았으나, 만년의 31년간은 밍저우明州 설두산 자성사資聖寺에서 활약했습니다. 시문詩文이 뛰어나 <설두칠부집雪竇七部集>이라는 저술이 알려져 있습니다. 설두는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실린 1,700칙則의 공안 중에서 학인學人의 선禪 공부에 참고할 만한 것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100칙則을 선별하고, 그 하나하나에 대해 종지를 들추어내어 알리는 운문의 송고頌古를 달았습니다. <설두송고雪竇頌古>는 내용뿐 아니라 시적 격조가 매우 빼어나 널리 애송되었습니다. 나중에 원오가 이 송고에 대하여 각 칙마다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을 달았습니다. <설두송고>는 선종禪宗 내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는 <벽암록>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수시垂示란 취급하는 그 칙의 종지나 착안점을 간단히 제시하는 서문적序文的인 것이고, 착어著語란 그 칙則이나 송고頌古에서 구사되는 낱낱의 어구에 대한 부분적인 단평이며, 평창評唱이란 그 칙과 송고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입니다. 따라서 <설두송고>는 설두의 문학적 표현과 원오의 철학적 견해가 혼연일체가 되어 종교서인 동시에 뛰어난 문학서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원오선사圓悟禪師 극근克勤이 죽은 뒤 그 문하의 사람들이 부질없이 궤변을 붙이므로 제자인 대혜大慧 종고宗杲는 선공부의 교과서와 같은 <벽암록>이 거꾸로 선을 형식화하고 안이하게 함을 우려한 나머지 간본을 회수하여 불태웠습니다. 그럼에도 잔존한 것이 있어 후대에 다시 간행되었는데, 임제종에서는 최고의 지침서로 간주되었습니다. 특히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의 발전은 이 책에 의지하는 바가 크며, 이 책을 모방하여 <종용록從容錄>이나 <무문관無門關>이 저작되었습니다.

간화선은 우리나라 불교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선수행법입니다. 간看이란 본다는 뜻이며, 화話는 화두를 말합니다.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이래 중국의 선종은 인도의 선정禪定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양식의 수행법을 주장했는데, 그것은 곧바로 자기의 마음으로 향하여 그 본성을 보아 불타를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는 것입니다. 보리달마 이후 오조五祖 홍인弘忍에 이르기까지는 단일한 계보로 이어왔으나, 이후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신수神秀의 북종선과 돈오를 주장하는 혜능慧能의 남종선으로 분파되었습니다. 고요히 앉아서 좌선하는 묵조선과는 달리 화두를 들고 철저대오徹底大悟하는 간화선은 당대 조주종심趙州從諗 선사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였으며,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저술하여 이를 널리 폈습니다. 이후 제자인 진각국사 혜심惠諶 등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면서 간화선은 우리나라 선수행의 정통적인 방법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벽암록碧巖錄, 간화선看話禪|작성자 문화메신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