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인데 왜 윤회가 가능할까?
장영섭 기자 / 불교신문
- ‘무아’는 개체…‘윤회’는 전체·통시적 관점
“불교는 어렵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그래서 포교하기가 힘들고 신앙으로 삼기가 저어된단다. 반면 불교가 세계의 실상과 이치를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종교라는 건, 20세기 이후 서구의 학자들에 의해 검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어쩌면 불교의 깊이에 대한 푸념은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자들의 핑계거리일 수 있다.
불교공부를 하다 보면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무아는 ‘모든 존재는 인연(조건)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질 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근본교설 가운데 하나다. 한편 윤회는 ‘중생이 죽으면 살아서 지은 업에 따라 또 다른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상이다. 인도인들의 전통적 사유방식인데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불교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아이므로) 내가 없다”면서도 “(윤회하는) 내가 있다”는 건 명백한 모순으로 들린다.
간단한 해결법이 있기는 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방편설’에 불과한 윤회를 부정하면 깔끔하게 처리될 일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또 다른 낭패에 부딪히고 만다. 불자들의 윤리적 행동을 유지하고 권장할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죽으면 끝’이니, 선행을 베풀 필요도 열심히 수행을 할 필요도 조상을 위해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더구나 현실적으로도 윤회설은 불교 신앙에서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무아無我’와 ‘윤회輪廻’의 문제는 불교의 오랜 논란거리였다. <밀린다팡하彌蘭陀王問經>는 기원전 150년경 서북 인도를 정복한 그리스의 왕 메난드로스와 당대 최고의 학승 나가세나의 문답을 모은 책이다. 불교의 교리적 난해성을 명쾌하게 해명한 경전으로 이름이 높다. <밀린다팡하>에서 서양의 지성을 상징하는 메난드로스는 나가세나 스님에게 무아와 윤회의 양립 불가능성에 대해 따졌다.
이에 스님은 촛불의 비유를 들어 그를 설복시켰다. 예컨대 촛불은 금방이라도 꺼뜨릴 수 있지만, 한 촛불이 다른 촛불로 옮겨 붙을 수도 있다. 촛불이라는 ‘존재’는 실체가 없으나, 촛불이란 ‘현상’은 영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국 개체적 일시적 관점에서 보면 무아이지만, 전체적 통시적 관점에서 보면 윤회인 셈이다.
물론 불교의 윤회설은 포교를 위한 방법일 뿐 본질은 아니다. 부처님 역시 아트만(Atman)이라는 ‘자아’의 윤회는 철저하게 부정했다. 모든 존재엔 독립적인 자성自性이 없으며 오직 상호 간의 관계에 의해 의미와 가치가 드러난다는 연기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금강경>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또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을 강조함으로써, 베풂의 공덕을 받을 내가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라고 깨우친다. 자아라는 관념이 탐욕과 갈등의 씨앗인 탓이다.
‘내가 현생에서 복을 지으면 내생에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윤회에 대한 강조는 자칫 기복신앙을 부추길 수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의 저열한 신행이 비단 남들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다만 윤회에 대한 인식이 자기계발과 수양의 수단을 쓰일 때만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게 여러 불교학자의 생각이다.
정승석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는 <윤회의 무아와 자아>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자기’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며 “어떠한 존재로서의 자기를 지향해야 바람직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이 윤회설의 취지”라고 밝혔다.
“도덕적 의무는 이 시대에서만 끝나지 않으며 자기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언젠가는 져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우기 위한 장치로서 유효하다”는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의 입장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출처: 불교신문
[출처] ‘무아’인데 왜 윤회가 가능할까?|작성자 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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