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냄'의 자가 치료법
한 부인이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과 아주 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이 정말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몹시 화가 나서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은데, 문득 밖에서 초인종이 연거푸 울렸습니다. 화가 잔뜩 난 채 문을 열어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가 다리에 피를 몹시 흘리며 옆집 형의 등에 업혀서 축 늘어져 있는데, 놀다가 아주 심하게 다친 모양입니다.
그것을 보자 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당장 지갑을 챙겨서 병원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나서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니, 심하게 다치기는 했으나 너무 염려할 정도는 아니고 한 일주일정도만 치료하면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의사의 그 말을 듣고 크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지나면 완치될 수 있다는 말에 도리어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 전까지 남편에 대해서 그토록 걷잡을 수 없었던 증오심이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자, 여러분 함께 생각해 봅시다.
이 주부가 아이의 사고를 발견하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안심할 때까지, 그녀의 마음은 온통 자기아이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조금 전까지 삭일 수 없었던 남편에 대한 증오가 그 사이 약 30-40분 동안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증오심은 그 동안 어디에 가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없어진 게 아니라 잠시동안 숨어버린 것에 불과하다구요? 그렇다면 그 증오심은 언제 또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날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아까 남편과 싸운 생각을 다시 떠올릴 때 그녀 앞에 또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녀의 '증오심'은 그녀가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존재하고, 만약 그녀가 그 일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면 결국 나타나지 않겠군요?
그렇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누군가 증오심이 났다고 하더라도 그와 관련된 생각을 떠올리지 않거나 깊이 잠을 자는 것처럼 아예 생각이 끊어져 버리면 그에게 증오심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증오심은 스스로 <존재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우리의 <생각>에 의지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증오심은 스스로 그 성품[본질]이 공(空)하다' 고 표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증오심이 날 때 그것을 없애려고 애쓸 게 아니라, 단지 일체 모든 생각을 멈추거나, 혹은 그것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될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일체 모든 생각을 멈추는 것' 을 무념(無念) 이라고 하고,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는 것' 을 주착(住着)이라고 하며 그 마음을 주착심 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무념 혹은 주착을 쉬는 공부는 위에서 보듯이 증오심을 즉각 해결하는데 지름길이 되며, 또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즉, 증오심이 일어났을 때 '무념' 이거나 '주착을 쉬는' 방법이 가장 좋은 줄은 알겠는데, 누군가 실제로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면 마음이 좀처럼 쉽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로는 아무리 좋다한들 실제 행하기가 어렵다고 하면 그야말로 공허한 이론에 불과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그런 분들을 위하여 방편을 한 가지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증오가 끓어올라서 아무리 해도 '무념' 혹은 주착이 쉬어지지 않으면 얼른 창가로 가서 온 정신을 집중해서 푸른 하늘 이나, 바깥에 있는 꽃 혹은 나무 잎사귀 등을 유심히 바라보십시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온 정신을 집중해서 바라본다' 는 점입니다. (대개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이 효과적인데, 왜냐하면 넓고 푸른 하늘은 시선을 얼른 빼앗아가기 때문이지요.)
둘째, 그렇게 단 10초간만이라도 하고 나서, 이제는 다시 정신을 안으로 돌이켜서 자신의 '마음속'을 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따져보세요.
'내가 저 하늘(꽃, 나무)을 보고 있을 때, 조금 전까지 내 안에 있었던 증오심은 그 동안 잠시 어디에 가 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셋째, 그와 동시에 아까 마음속에서 최초로 증오가 일어났던 자리, 즉 그것의 출생지를 찾아보세요.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도무지 내 안에서 그게 처음 생긴 자리를 찾아낼 수가 없다면, 그 증오는 어디에 존재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이란 놈에 의지해서 나타난 마치 '허망한 도깨비불'과 같은 것이었음을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스스로 이러한 과정을 몇 차례 해보고 나면 다음부터는 멀리 하늘이나 다른 사물을 보지 않더라도 화가 날 때는 금방 자신의 텅 빈 본래 마음자리를 보게 되어 순식간에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해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를 한 가지 더 들겠습니다.
지금 여기에 불이 났다면 즉각 이 불을 끌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물을 끼얹는 것이라구요? 아닙니다. 만약 기름에 불이 붙었다면 물도 아무 소용이 없지요.
불을 끄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산소 의 공급을 즉각 차단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은 더 이상 탈 수 없게 됩니다.
'성냄'은 마음의 불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끄기 위해서는 그것을 활활 타게 하는 생각(주착)이라는 산소를 끊어버려야 불이 완전히 꺼지게 됩니다.
그런데 위의 공부법은 사실 '성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모든 욕심과 치심(염치없는 마음), 지나친 슬픔과 괴로움 등, 일체의 끌리는 마음경계 에서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간단하고 근본적인 치료방법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일상의 괴롭고 힘든 경계에서 다 위와 같은 공부로써 마음의 해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간단히 즉시무념(卽時無念)공부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것은 선가(禪家)에서의 자성반조 (自性返照)라고 하는 공부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선(禪)을 공부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수행방법입니다. <옮김>
[출처] 성냄의 자기 치료법|작성자 한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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