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스님이 그토록 많은 저술, 더욱이 매우 이론적인 내용의 저술을 통해서 고구정녕(苦口丁寧)으로 말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수행하라는 가르침이다. 성철스님도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많은 글과 말을 남겼고 그 가운데에는 학술적으로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대목이 많지만, 수행자들에 대한 가르침으로서는 결국 그침 없이 열심히 수행하라는 얘기로 귀결된다.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표적으로 삼아 직격탄으로 가하는 이들은 그동안 불교에, 특히 선종에 구축되어온 제도의 틀 덕분에 선지식 대접을 받고 선지식 노릇을 하는 이들이다. 성철스님이 말하는 돈오돈수론의 요점은 자칭이건 타칭이건 선지식노릇을 하려면 깨달음을 이루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돈오돈수론을 지침으로 해서 이루는 깨달음과 돈오점수론을 지침으로 해서 이루는 깨달음이 과연 다른지 같은지 필자는 모르겠다. 그런 것은 세속학자가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수행자들이 직접 체험으로 알아볼 일이다. 어느 쪽을 지침으로 삼느냐에 따라 실제 수행하는 방법이나 양상이 필연적으로 다르게 되는지 어떤지도 모르겠다. 하기는 그것도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어떤 수행방편이건 제게 알맞은 것을 제 분수대로 치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할 터이다. 다만 성불 미만의 목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두 가지 가르침의 공통점이다. 성불 미만의 그 어떤 경지에도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들고 수행한다면, 잠깐잠깐 예불하거나 참선하거나 선행을 하고는 뭔가 해냈다는 뿌듯한 기분을 도무지 가질 수 없을 터이다. 내가 본래 부처라는데 도대체 왜 나는 지금 부처로 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자성(自省)이 늘 고개를 우뚝 들고 있는 한 도저히 수행을 쉴 수가 없을 터이다. 돈오점수론이건 돈오돈수론이건 수행에 임하는 이들에게 바로 그런 치열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윤원철/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깨달아 부처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까 공덕이나 쌓고 아미타불에 의지해서 내생을 기약하겠다는 이들에게는, 성불이라는 것이 어디 저 밖에 멀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이미 부처이며 오직 제 마음의 문제일 뿐이니 지금 당장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된다고 어른다.
한편,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듯이 ‘우리가 본래 부처님인데 무엇 하러 수고롭게 억지로 수행하냐?’고 하면서 무애자재행(無碍自在行)을 빙자하며 지내는 이들에 대해서도, 얼음이 본래 물인 줄 알더라도 햇볕을 받아 녹아야만 비로소 물이 된다는 비유를 들며 치열한 수행을 권한다. 이치로서는 우리가 본래 부처님인 게 맞다. 하지만 물이 얼어 있는 상태에서는 물노릇을 하지 못하듯이 그 본래 부처님이 부처님으로서 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본래의 정체인 부처님노릇을 할 수 있으려면 중생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온 습관을 치열한 수행으로써 닦아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비유이다.
더욱이 그 깨달음은 구경묘각(究竟妙覺), 성불의 깨달음이다. 본각의 이치를 지금 이 자리의 살림살이에서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어야 선지식노릇을 할 수 있다. 그러니 함부로 젠 체하지 말고 하염없이 겸손하고 치열하게 수행하라는 얘기이다. 성철스님이 생전에 누차 ‘가짜 선지식은 간판을 내리라’고 했다거나, 한 소식 한 체험을 가지고 점검 받으러 온 이들을 그거 다 아니라며 계속 더 열심히 수행하라고 물리쳤다는 일화들도 그런 취지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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