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마른 똥막대기(乾尿厥)

수선님 2021. 1. 31. 13:26

마른 똥막대기(乾尿厥)

 

 

 

한 수행승이 운문 선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른 똥막대기이니라."

                                           [無門關]


마른 똥막대기가 부처다....이것은 부처님에 대한 이만저만한 모욕이 아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운문 선사에게는 '매일매일이좋은 날(日日是好日)' '담 밑의 꽃(花藥欄)과 같은 유명한 화두가 있다. '마른 똥막대기' 역시 임제 선사의 '무위진인(無位眞人)이라니, 이 무슨 똥막대기인고'의 화두와 더불어 유명한 공안(公案)이다. (무위진인은 진짜 해탈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무위진인참조)


그 수행승이 물은 '부처'란 모습이나 형태가 있는 부처님이 아니다. 부처란 일체 만유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면서 변화하는 모습 즉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것이든 부처의 마음이 깃들지 않은 것은 없다. 이를 '어느 것에나 불성은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말한다.


'부처'는 존귀하고 청정한 것으로 광명을 발하는 금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는 인간과 동떨어진 청정한 것만이 아니라 길바닥이나 초목.돌 등의 깨끗하지 못한 것에도 깃들어 있다. 따라서 무엇이든 가치 있고 존귀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운문 선사가 대답한 '마른 똥막대기'는 '똥을 없앤 마른 막대기' 또는 '마른 똥이 붙은 막대기'라고도 하며, 또 '똥이 말라 막대기처럼 된 것'이라고도 한다.


옛날 산간벽지의 농가에서는 종이를 사용치 않고 대나무나 나무막대기 또는 짚으로 밑을 닦았다. 그러나 마른 똥이 붙어 있는 막대기로 밑을 닦는다면 누구라도 망설일 것이다. 종이가 부족하던 옛날, 운문이 살던 지방에서는 막대기로 밑을 닦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문에 '마른 똥막대기'라는 말이 나왔지 않았나 생각한다.


운문이 하필 모든 사람이 꺼리는 '마른 똥막대기' 같은 더러운 것으로 '부처란 무엇인가'에 답한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풀이나 나무.기왓장에 이르기까지 어느것에나 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무엇을 취해, 어떻게 표현하든 상관없는 일이다. 단지 운문이 더러운 것을 취해 답한 것에 불과하다.

 

철저하게 대오(大悟)하면 일체 만물 그대로가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무심의 경지에 이르면 젖은 똥막대기든 마른 똥막대기든 모두가 그대로 부처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운문의 '마른 똥막대기' 화두를 타파하면 깨끗함과 더러움의 대립관념을 벗어나, 마른 똥막대기 그대로가 부처님의 광명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을 운문이 그 수좌에게 가르쳤다고 생각한다. '마른 똥막대기' 화두에 투철할 때 비로소 운문 선사의 깨달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출처] 마른 똥막대기(乾尿厥)|작성자 한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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