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알기

일념삼천(一念三千)

수선님 2021. 3. 28. 13:02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천태대사(天台大師)께서 내세운 교리인데
한 생각(一念) 가운데 삼천제법(三千諸法)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한 순간적인 마음에 우주만유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일념삼천설인데,
범부의 순간적인 한 생각이 삼천제법을 갖추고 있다는 교리입니다.

이 법계는 십법계(十法界)로 나누고 있습니다.
범부계 육도(六道)와 성인사계(聖人四界)가 있으니,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天)은 범부 육계이며
성문, 연각, 보살, 불(佛)은 성인 사계입니다.  
범부 육계는 미계(迷界)이니 미혹의 세계이며,
성인 사계는 깨달음이 있는 오계(悟界)입니다.

온갖 존재하는 것은 십법계(十法界)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이 십법계 하나 하나가 제각기 십법계를 갖추고 있으니, 백법계가 되니,
이를 십계호구(十界互具)라 이르고 있습니다.

방편품에서 설하신 십여시(十如是)를 백법계가 각각 갖추고 있으니 천여시(千如是)가 됩니다.
천여시는 삼세간(중생세간 국토세간 오음세간)에 갖추고 있어 삼천(三千)이 되니,
이를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합니다.

십여시란 제법실상(諸法實相)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씀이니,
모든 있다는 존재의 구경(究竟)의 진실한 모습, 곧 절대적 진리에 이르는 말씀입니다.
이는 감히 말로써 언설할 수 없으나, 중생을 깨닫게 하는 방편으로
그것을 언어로 나타냄이 곧 십여시(十如是)입니다.

십여시를 살펴보면
여시상 (如是相)  겉으로 나타난 형상
여시성 (如是性)  상(相)이 있게한 내재적인 본성(本性)
여시체 (如是體)  주체, 본체 내외(內外)의 본체
여시력 (如是力)  능력, 잠재하여 있는 가능성
여시작 (如是作)  력(力)이 밖으로 나타난 작용
여시인 (如是因)  어떤 것의 주된 원인
여시연 (如是然)  간접적인 원인(조건)
여시과 (如是果)  인(因)에서 생긴 결과
여시보 (如是報)  연(然)에서 온 결과 보(報)
여시본말구경등 (如是本末究竟等)  본(本)은 처음의 상(相)이며 말(末)은 보(報)를 가리키는 것이니,
결국 처음과 끝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인 것이며 제법실상을 문자로서 나타냄이 됩니다.

제법(諸法)이라 함은 십법계(十法界)를 써서 해석함이요, 법이 비록 무량하다 해도 십법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하나하나 세계 중에서 비록 많은 갈래가 있다 해도 십여시(十如是)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옥계는 지옥계대로 상성(相性)과 본말(本末)을 갖추고 있고.
축생계는 축생계대도 상성과 본말을 갖추고 있어서 결여됨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하나 세계의 법계마다 십법계와 십여시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십법계가 각각 십법계를 갖추고 있으니, 백법계가 되며
백법계가 각각 십여시를 갖추고 있으니, 천여시가 되며
어떤 세계이든 중생세간(心) 국토세간(환경) 오음세간(정신과 물질)의 삼세간(三世間)이 됨으로
삼천이 되는 것입니다.  삼천으로 표현되는 온갖 모든 세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일념에 포함된다해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합니다.
즉 우리들의 평소의 한 생각 속에는 언제나 삼천으로 표현된 온갖 존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차별적인 삼천제법(三千諸法)이 한 생각 속에 원융무애하게 구족되어 있으므로
일념삼천을 깨달으면 구경의 진리를 개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래는 두루 이해하심이 종횡으로 모두 미치지 않음이 없으시니 마치 손바닥의 과일을 보는 것과 같고
범부는 두 눈이 소경과 같고  이승(二乘)은 애꾸눈과 같고
보살은 밤에 사물을 보는 것과 같아 분명치 않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설할 수 없으시니,
"그만두어라" 하시고 절언탄(絶言歎)을 쓰셨다고 법화문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국가의 흥망성쇠(興亡成衰)와 인류세계의 정예고락(淨穢苦樂)과
사성육범(四聖六凡) 등 우주만상(宇宙萬象)은 한 생각(一念)의 그림자요 작용인 것이니,
이 도리를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합니다.

따라서 한 생각은 우주만유의 핵(核)이며 본체이며 비록 형상은 없으나,
지수화풍공식(地水火風空識)의 육대(六大)가 다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다는 모든 것이 한 생각의 작용이란 뜻입니다.

일념삼천의 경전의 가장 바른 문증(文證)은 두 가지가 있으니,
방편품에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뜻을 밝히신 십여시(十如是)와
욕령중생(欲令衆生) 개불지견(開佛知見)의 사불지견(四佛知見)이며,
이는 범부의 이구일념삼천(理具一念三天)의 도리입니다.

여래수량품에서
연 아실 (然 我實) 성불이래(成佛已來) 무량무변(無量無邊) 백천만억(百千萬億) 나유타겁(那由他劫)
이는 석가세존께서 구원실성(久遠實成) 당초 증득하신 사증일념삼천(事證一念三千)입니다.

중생의 이구일념삼천이란 이치상으로는 범부 중생들의 일념 가운데 불계(佛界)를 함장하고 있다해도 아직 증득하여 드러내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범부가 일념삼천의 도리를 내포하고 있으나 아직 깨달아 알지 못함을 말합니다.  사증일념삼천이란 부처님 세존께서 구원겁(久遠劫) 전에 이미 깨달아 증득하심이 사실적이란 말씀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묘법연화경에서 밝히신 것입니다.
중생의 본래부터 구족하고 있는 이구일념삼천(理具一念三千)의 한 생각과 제불(諸佛)의 사증일념삼천(事證一念三千)이 합하여 하나가 된 불종자(佛種子)를 가리켜 본구무작삼신불(本具無作三身佛)이라 하니, 짓지 아니해도 본래부터 삼신불(法, 報, 化)을 구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구박(具縛) 범부가 홀연히 교주(敎主)이신 석가세존의 모든 공덕을 물려받은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나무묘법연화경 제목은 부처님의 모든 공덕이 하나도 빠짐없이 함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사증일념삼천의 도리가 제목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만유의 현상은 천차만별하지만 실상(實相)은 일여평등(一如平等)한 것이며 일여평등의 진여(眞如)는 한 생각을 여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그대로 십법계(十法界)요 또한 백법계(百法界)인 것입니다.
삼천제법은 법 자체가 본래 그렇게 존재하여 서로 갖추고 서로 원융(圓融)하여 일(一)과 다(多)가 걸림이 없는 것이니, 이를 본구무작삼신불(本具無作三身佛)이라 합니다.
일승묘법(一乘妙法)이 다 나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니, 한 생각(一念) 속에 삼천제법을 구족한 까닭이요 또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을 묘법연화경이 다 포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상심 속에 삼라만상(森羅萬象) 온갖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속에 삼천제법(三千諸法)을 갖추고 있으니, 이를 곧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라 합니다.

 

- 혜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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