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입문
불기 2540년 8월 31일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장 이 성 타
불교란 무엇인가
1. 종교란 무엇인가
2. 깨달음의 진리
3. 모르고 사는 인생
4. 자신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
5. 불교-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
6. 지혜의 길
7. 참 나를 찾아서
8.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삶
9. 불교적인 삶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
1. 부처님의 생애
2. 부처님의 깨달음(연기, 삼법인, 사제팔정도, 업과 인과)
3. 불교의 역사
불교의 수행법
1. 참선이란
2. 간경
3. 염불
불교와 인생
1. 인연으로 받는 새로운 생
2. 불자의 신행 생활
3. 불교의 명절의례
4. 가정의례
5. 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자세
6.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장례, 천도재, 수륙재, 영산재, 예수재)
함께 사는 세상
1. 공동체 생활
2. 사람과 사람
3. 청정한 세상을 위하여
4. 통일을 준비하는 불교
절을 찾아서
1. 불자의 자세와 행동
2. 사찰의 구조
3. 불상의 종류
4. 불교 회화
5. 법구
6. 사리장엄과 복장물
7. 기타 불교 조형물
8. 불교 성보문화재의 이해
불교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오늘날 지구상에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민족과 문화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종교가 발생하였습니다. 종교(宗敎)의 정의는 최고의 가르침 즉, 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교주, 교리 그리고 교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 중에서 올바른 종교를 찾아 믿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면 종교나 어떤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산, 해, 달, 하늘 심지어는 태풍에도 신이 있다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 역사에 신이라는 개념이 생겨났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신이 인류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이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가르침이 유신론(有神論)적 종교입니다. 유신론적 종교에서 인간은 신의 종이기에 절대적인 복종을 통해서만 인간의 가치를 구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와 동시에 신을 절대적으로 믿는 종교를 부정하고 ‘인간이 무엇이며 죽은 뒤 어디로 가는가’하는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인 해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 결과 인류에게 크게 두 가지 흐름의 종교가 정립되었습니다. 하나는 신의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를 믿고 행하는 종교입니다.
신을 믿는 종교는 세계가 신의 창조물이고 인간 또한 그러하다고 합니다. 신의 종교는 대체로 서양의 종교관 입니다. 서양의 종교는 절대적인 신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나, 서양은 교통과 통신 즉, 과학문명의 발달로 다른 세계와 접하면서 자기 중심적인 틀에서 벗어나 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은 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진리의 세계 그 자체에도 있음을 알게 되어, 생각의 편협성을 인정하고 마침내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은 이러한 서양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리를 믿고 행하는 종교는 인류 역사에 불교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가치는 인류의 역사에서 더욱 빛이 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고 사는 세상은 고달프지만 진리를 알고 행하는 삶은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불교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불교의 교리와 사상이 설사 어렵더라도 불교의 진리야 말로 나를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임을 알고 열심히 정진해 나가면 마침내 참된 삶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의 진리}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교주를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불(佛)’이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소리내어 읽은 음사로 ‘깨달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이란 것은 바로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성불(成佛) 즉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고 이 깨달의 경지는 신조차 초월하는 경지인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많은 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사천왕으로 사천왕은 늘 하늘에서 산다고 합니다. 이 사천왕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부처님께 귀의하여 영원토록 정법(正法)을 수호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도량(사찰)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교의 진리는 하늘의 신마저도 감동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경지마저도 뛰어 넘는 가장 수승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불교의 진리는 우리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지혜를 준다고 합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성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정진하는 사람은 깨달음의 진리에 언젠가는 도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진리를 알고 행하며 사는 것은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불교는 바로 부처님이 깨달으셨던 이 깨달음의 진리의 길을 제시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고 사는 인생}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인생을 궁금해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칩니다. 한 평생을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게 하지만 태어난다는 일만을 생각해도 고생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겪는 작은 상처에도 사느니, 못사느니 합니다. 그리고 큰 병고에 시달리든가 평생을 함께 의지하던 이의 이별과 죽음에 부딪쳤을 때 오는 고통과 마음의 아픔은 눈물로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즐거움 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입니다. 환희의 시간은 기억에 없고 오늘도 정해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이 길을 왜 가야하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인생을 그저 안개 낀 다리를 건너는 사람과 같이 어림 짐작으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웃고 즐기며 삽니다. 이렇게 인생을 모르면서도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인생 역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즉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행동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나와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에게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용한 광야를 걷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왔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어 급한 나머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우물에는 마침 칡넝쿨이 있어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 내려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밑에는 다시 무서운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위를 쳐다보니 코끼리가 아직도 우물 밖에서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칡넝쿨에만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위에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온 몸에 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칡넝쿨을 잡고 위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나타나 칡넝쿨에 집을 지었다. 그러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데 그는 꿀 맛에 취해 왜 꿀을 더 많이 떨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성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칡넝쿨은 생명,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합니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하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오욕락(五慾樂)을 말합니다. 오욕이란 재물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애욕, 먹을 것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욕망, 편안함의 추구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욕망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보다 욕망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욕심은 지혜를 흐리게 합니다. 이러한 장애를 없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이 변하면 세계가 변한다}
우리는 때때로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서 “왜 사람이 이렇게 많냐”고 짜증을 내는사람을 보기도 하고 스스로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그곳에 있어 더 복잡해졌음을 간과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산다. 먹을 것이 있어도 자기만 먹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지옥의 숟가락은 너무 길어 자기 것으로 제 입에 넣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상대를 원망하면서 굶주리고 산다. 눈 앞에 먹을 것을 두고도 말이다. 그러나 극락에 있는 사람은 이웃을 먼저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먹을 때는 서로서로 옆 사람에게 먹여 주면서 산다고 한다. 이곳 사람은 지옥에 있는 사람과 다르게 서로 먹여 주며 언제나 화합하고 배부르게 산다.
이것은 지옥과 극락에 대한 비유이지만 오늘날 우리들 삶을 돌아 볼 때 귀중한 교훈이 됩니다. 자신만을 위해 탐욕스럽게 사는 사람과 이웃과 더불어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가 대조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우리가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이웃과 함께 하는 삶으로 전환할 때 괴로움의 세계가 자유와 평안의 세계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대립과 갈등, 고통으로 얼룩진 세계를 바꿔나가는 원동력은 세계의 구성원인 인간 자신입니다. 즉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계의 구성원인 인간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세계의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불교}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함께 가지고 있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과 믿음을 함께 가진 종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불교는 수행체계를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삶을 전환시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깨닫고 그것을 바꾸게 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탐욕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주 작고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면서도 “왜 그럴까”에 대해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단지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바른 이해를 통해 나쁜 습성을 고쳐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고행과는 다릅니다. 고행은 혹독한 시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키지만 수행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탐욕과 어리석음에 물든 자신의 잘못된 습성을 좋은 습성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는 소승, 대승으로 발전하였고, 그것이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다양한 종파와 선사상을 형성하면서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교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수행체계를 형성하면서 수 많은 민간신앙을 불교 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불교의 모습은 믿음과 수행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의 길}
바른 생각에서 바른 지혜가 나온다고 합니다. 자기 중심의 생각에서 자신과 세계를 통찰할 때 지혜가 생기며, 자기 중심의 생각에서 전체를 보는 안목으로 생각이 넓어 질 때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말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지혜의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명(無明)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비록 원수 사이이더라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거나 욕심을 버리면 함께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자신의 욕망 때문입니다. 화가 났을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화가 난 원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지만 자신에게도 얼마쯤의 원인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이 자신이 바라는 것만큼 해주지 않았거나 자신에게 불이익을 주었을 경우 화가 나는데 이러한 화가 남은 자신의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 부질없는 일이 되었을 때 돌아보면 자신이 낸 화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에 집착하여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무명(無明)입니다. 이 무명에서 벗어나 밝은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무지가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남을 나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라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는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행동에 앞서 경과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은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과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한 행동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불교는 이러한 세계를 열어 주며 그 길을 함께 가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참 나를 찾아서}
어려운 처지에 처해 고민하고 괴로워 할 때 그것에서 구해줄 사람을 만나면 기쁠 것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 피곤한 몸으로 길을 갈 때 함께 갈 길동무를 만나면 고마울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든 이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면서 진리를 가르쳐 자유롭고 편안한 인생이 되게 합니다. 인생에 새로운 가치에 눈 뜰 때 삶이 변합니다. 따라서 인생관과 가치관이 정립되었을 때 인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잠 못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겐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
《법구경》
사람이 전생의 업을 다하고 악도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려우며,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부처님 법을 만나기 어려우며, 부처님 법을 만났을 지라도 수행자를 만나기 어렵고, 수행자를 만났다 하더라도 신심을 내기 어렵다.《십이지장경》
우리의 삶은 올바른 진리의 길에 들어설 줄 모르고 감정과 욕망에 이끌려 마치 뱀의 꼬리가 앞장을 서서 길을 가려는 것과 같이 가시덩쿨에 들어가고 불 속에도 들어가고 결국에는 낭떨어지에 떨어지게 되는 격입니다. 즉, 우리들이 불타는 집과도 같은 이 세상을 윤회하는 것은 끝없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져버리지 못한 탓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날 숲 속에 있는 한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계셨다. 이 때 젊은이들이 숲 속에서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나무 아래 조용히 앉아 있는 부처님을 보고 그들이 다급하게 물었다. ‘한 여자가 도망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사연인 즉 그들은 이 지역에 사는 지체 있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오십 명이 저마다 자기 아내를 데리고 숲에 놀이를 왔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미혼자만은 기생을 데리고 왔었는데, 모두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그 기생은 여러 사람의 옷과 값진 물건을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그 연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듣고 부처님은 그들에게 물으셨다. ‘젊은이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놀이에만 팔려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고 여인을 찾아 헤매던 그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다들 거기 앉아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찾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이리하여 그 젊은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모두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사분율 제32권》
이 젊은이들은 자신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 출가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탐욕의 세계로 달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항상 탐욕을 버리라고 설하시며, 부처님께서도 ‘왕자의 지위를 문틈에 비치는 먼지처럼 보고, 금이나 옥 따위의 보배를 깨어진 기왓장처럼 보며, 비단 옷을 헌 누더기 같이 보고, 삼천대천세계를 한 알의 겨자씨처럼 보아《사십이장경》’ 궁궐을 버리고 출가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세속의 탐욕을 벗어났음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늘 당신은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지혜와 평화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달음과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몸소 가시며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깨달음을 이루고, 못이루고는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고려시대 야운스님은 당신의 수행을 살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처님 법안에서 도를 이루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아직도 고해에서 헤매고 있는가.
그대는 시작 없는 옛적부터 이 생에 이르도록 깨달음을 등지고 속진에 묻혀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항상 악업을 지어 삼악도에 떨어지고 착한 일을 하지 않으니 생사의 바다에 빠진 것이 아닌가.《자경문》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삶}
게으름이란 모든 허물의 바탕이다. 집에 있는 이가 게으르면 의식(衣食)이 부족하고, 사업이 쇠퇴할 것이요, 출가한 이가 게으르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은 정진에 의하여 일어나나니, 집에 있는 이가 정진하면 의식이 풍족해 지고 사업이 번창할 것이요, 출가한 이가 정진하면, 법을 모두 성취하여 마침내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나니, 모두가 정진에 의해 이루어지느니라.≪보살본행경≫
일상적인 삶을 살면서 불교를 알고자 마음을 냈다면, 그 순간부터 자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참다운 불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불교를 믿고자 하는 발심(마음을 냄)도 중요하지만 그 발심한 마음으로 생활 속에서 정진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생활 속 정진을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대승기신론≫에는 믿음을 네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은 근본이니, 진여(眞如)의 법을 즐기어 생각하는 것이며, 둘째는 부처님께 한량없는 공덕이 있음을 믿음이니, 항상 가까이 모시고 섬기기를 생각하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음이니, 항상 모든 바라밀을 닦으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님들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을 바르게 닦는다는 것을 믿음이니, 모든 수행자들을 가까이 섬기면서 올바른 행을 배울 것을 항상 생각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僧)에 귀의하여 올바른 믿음으로 항상 정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마음을 내어 부처님께 귀의한 이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오늘이라 할 때 벌써 늦은 것이니 아침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시간이 지나가 어느새 하루가 흐르고 한 달이 되며, 한 달 두 달 문득 한 해가 되고, 한 해 두 해가 바뀌어 어느덧 죽음에 이르게 된다. 부서진 수레는 구르지 못하고 늙은 사람은 닦을 수 없다. 누워서 게으름만 피우고, 앉으면 생각만 어지러워진다. 몇 생을 닦지 않고 세월만 보냈으며, 그 수많은 생을 헛되이 살았으면서도 한평생을 닦지 않았는가. 이 몸은 끝내 죽고야 말 것인데 다음 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어찌 급하고 급하지 않은가.
바른 믿음의 정진은 생활 속의 수행과도 같습니다. 불교의 수행은 하심(下心, 자신을 낮추는)의 공부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찌들어 있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업, 더러운 때를 닦아 내고 맑은 성품을 발견하여 깨달음을 이루는 데는 첫째도 둘째도 나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는 마음공부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맞출 수 있을 때 남을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의 마음을 부처님의 법으로 가득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으로 바른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루하루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매 순간 욕망이 싹트고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여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불자임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 삶을 돌이켜 보고 반성하는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대승기신론≫에서 “처음 공부하는 보살이 비록 신심은 두터우나 전생부터의 무거운 죄와 나쁜 업장이 많으므로 때로 삿된 마왕에게 홀리기도 하고, 세상 일에 끄달리기도 하고, 가지가지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여 재난이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불자들이 자칫 착한 법을 닦는 일을 멈추게 되나니, 반드시 밤낮으로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으로 참회하며 권청하고 수희(隨喜)하며 보리에 회향하기를 늘 쉬지 아니하면, 나쁜 업장이 차츰 소멸하고 선근이 늘어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참회(懺悔)는 수행의 중요한 길이라고 합니다. ‘참(懺)’이란 지나간 허물을 뉘우침입니다. 전에 지은 악업인 어리석고 교만하고 허황하고 시기, 질투하는 죄를 다 뉘우쳐 다시 그런 악업을 짓지않도록 하는 것이며, ‘회(悔)’란 다음에 지을 죄를 미리 깨닫고 아주 끊어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사람에게 허물이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허물이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하여, 허물을 스스로 고쳐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날로 없어지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도(道)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고자 하는 첫 마음을 간직하고 변함없이 정진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많아져서 정말로 괜찮은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합니다.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소오나비구는 영축산에서 쉬지 않고 선정을 닦다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진하는 성문 중에 나도 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번뇌를 다 끊지 못했다.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서 보시를 행하면서 복을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 부처님은 이런 소오나의 마음을 보시고는 한 비구에게 소오나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오나, 너는 세속에서 거문고를 잘 탔다지?” “네 그랬습니다.” “네가 거문고를 탈 때 만약 그 줄을 너무 조이면 어떻더냐?” “소리가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었을 때는 어떻더냐?” “그 때도 잘 나지 않습니다. 줄을 너무 늦추거나 조이지 않고 알맞게 잘 고루어야만 맑고 미묘한 소리가 납니다.” “그렇다. 너의 공부도 그와 같다. 정진을 할 때 너무 조급히 하면 들뜨게 되고 너무 느리게 하면 게으르게 된다. 그러므로 알맞게 하여 집착하지 말고 방일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소오나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를 타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하여 오래지 않아 아라한(阿羅漢)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소오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정진해 나갈 때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쉼없이 바른 믿음으로 정진하면 비록 힘들고 어렵기는 하겠지만 작고 작은 선업이 쌓여 마침내는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불교적인 삶}
자기 완성만이 아니라 나와 남이 함께 깨달아 이 세상을 불국정토로 만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이는 바른 믿음과 생활 속의 바른 행을 중요시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자로서 지켜야 할 실천덕목으로 오계(五戒)를 말씀하셨습니다.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不殺生)
주지 않는 것을 갖지 말라(不偸盜)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음주를 하지 말라(不飮酒)
오계는 모든 악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다섯 가지 악업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지 말라’는 것은 금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계는 오히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경우 모든 생명은 불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이니 본래 이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자비심이 지극한 왕이 매에게 쫓겨 피해온 비둘기 대신 자신의 살점을 뜯어 주었다는 자비심이야 말로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는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의 사회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악을 범하지 않고 선을 실천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이룩하려는 것이 이 오계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가장 안온한 공덕이 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청정한 계를 가지면 괴로움을 없애는 지혜와 선정의 온갖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계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즉 일상적인 삶 하나하나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여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가운 이, 그리운 이를 만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禮)로써 그 뜻을 표합니다. 불교에서는 스님 또는 법우를 만나게 되면 합장으로 예를 표합니다. 열 손가락을 가지런하게 하고 양 손바닥을 맞대어 흩어진 마음과 생각을 집중합니다.
이렇게 다소곳이 고개 숙여 합장하는 마음이 바로 믿음의 출발입니다. 큰 절이 아니더라도 합장은 나의 마음을 뜻하며, 더 나아가 너와 나의 마음이 하나의 진리 위에 서로 만났음을 뜻하는 동시에 존경과 진실과 자비의 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절을 하고 합장을 하는 의식 속에는 자신을 낮추고 덕 높은 스님,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수행의 방법으로 매일 백 팔배를 하면, 항상 교만심을 버리고 하심(下心)을 하여 남에게 성내지 않고 좋은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공양 전후에 언제나 합장하며 ‘이 음식에 깃들인 모든 이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라고 읊조릴 때 자신을 있게 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므로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불공(佛供)을 할 때도 부처님을 따르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불공을 올림은 일체 중생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시고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시며 열반의 길로 인도하시는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또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다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회향한다는 뜻도 담겨 있기에 모든 중생의 은혜를 갚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씨를 베품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기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이 세상을 더욱 맑고 청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발원을 할 때도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것보다는 모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하여야 합니다. 아울러 모든 번뇌를 여의고 하루 빨리 부처님의 법을 익혀 깨닫도록 발원함이 참다운 불자의 발원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고통과 괴로움에 빠진 중생이 나를 부를 때는 반드시 그곳에 가서 구해내리라.’는 관세음보살의 발원과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모두 구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발원이야말로 참다운 발원인 것입니다. 현실에서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하며, 고통을 덜어 주고자 커다란 원을 세우고 자신을 아끼지 않고 실행해 가는 것이 참다운 불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처럼 불자의 수행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만나는 이에게 머리를 숙이고 합장하는 모습, 공양을 하면서 이웃을 생각하고, 불공이나 발원을 하면서도 자신보다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생각하는, 주위 사람을 부처님이나 스님들을 공경하듯 하는, 이한 자세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더불어 이런 자세를 간직할 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화합의 정신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로 가족끼리 사랑하고 화목을 이루며 넓게는 이웃과 더불어 생각하며 살아갈 때, 마른 풀이 수미산 같이 쌓여 있더라도 겨자씨 만한 불똥 하나로 다 태울 수 있듯이 우리들의 조그마한 신행의 촛불이 온갖 더러움을 태우고 불국정토의 세계를 이 땅에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
{부처님의 생애}
불교(佛敎)는 ‘부처님(佛)의 가르침(敎)’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란 불타(Buddha, 佛陀) 즉, 깨달은 사람(覺者)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소질과 성품이 있는데 이를 불성(佛性)이라고 합니다.
저마다 불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를 알고 부처님의 삶대로 살아가는 것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는 한 인간이 진리를 깨쳐 부처님이 되는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배우는 것은 불교에 입문하고 나서 불교 교조의 삶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로써라기 보다 부처님이 된 그 삶을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부처님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부터 부처님과 같이 되고자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는 부처님이 될 것입니다. 불교를 믿고 행한다는 것은 결국 ‘부처님을 닮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 인도 북지역에 위치한 카필라(kapila)국 사캬(Sakya, 석가釋迦)족의 정반왕과 왕비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성(姓)은 고타마(Gotama, 최상의 소라는 뜻)였고,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싯달타(Siddhartha)였습니다. 고타마 싯달타가 출가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자 사람들은 그를 석가모니(Sakyamuni) 즉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발심과 서원-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다
아주 오래 전 수메다라는 한 수행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수메다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7대조부터 내려오는 막대한 재산을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보시한 후 출가하여 히말라야에 들어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 연등(燃燈)이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수도인 디파바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연등부처님을 공양하고자 온갖 향과 꽃, 훌륭한 음식을 준비하고 연등부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공양물을 구하기 위해 그곳에 들른 수메다는 연등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쁜 마음이 되었습니다. 수메다는 “나는 여기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려야겠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수메다는 부처님께 바칠 공양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디파바티의 모든 공양물은 왕의 지시로 부처님께 바쳐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아름다운 일곱 송이의 꽃을 들고 가는 여인을 수메다는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꽃을 팔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녀는 꽃을 팔지 않을 마음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꽃 한송이는 1백냥이며, 또한 자신과 결혼을 약속한다면 꽃을 팔겠다고 말했습니다.수메다는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꽃을 부처님께 바칠 숭고한 마음으로 그녀의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수메다의 진지한 마음에 감탄하여 나머지 꽃마저 부처님께 공양하라며 주었습니다.
수메다는 그 꽃을 연등부처님에게 바쳤습니다. 연등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가르치고, 젊은 수행자 수메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대중이 바친 꽃을 허공에 떠 있게 하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연등부처님과 제자들이 지나는 길에 진흙웅덩이가 있었습니다. 수메다는 연등부처님께서 발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진흙웅덩이 위에 머리를 풀고 엎드렸습니다. 진흙 바닥에 엎드린 채 수메다는 생각했습니다. “아! 나도 언젠가는 지금의 세존이신 연등부처님 같이 완전한 인격자가 되어지기를…. 세존이신 연등부처님께서 지금하셨듯이, 나도 이 최고 법의 수레를 돌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오직 세상에 대한 연민의 정에서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할 수 있고 또한 무수한 생명들의 이익과 행복이 될 수 있는 연등부처님과 같은 생명이 되게 하소서”라고…
이 광경을 본 연등부처님은 제자와 대중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행을 하고 있는 이 수행자를 보라. 그는 지금으로부터 무량겁이 지난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될 것이니라.”
연등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천인(天人)과 인간들은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수행자 수메다는 분명 부처님이 될 씨앗이요, 부처님이 될 싹이로다.”
모든 이가 지나간 뒤 엎드려 있던 수메다는 몸을 일으켜 앉아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지금껏 쌓아 온 수행을 생각해 보자.’ 그 때 1만 큰 세계가 진동하였고 그 진동에 놀란 사람들에게 연등부처님은 수메다가 부처님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덕목을 사유하고 있는 이유로 대지와 1만 큰 세계가 진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큰 소리로 “당신은 기필코 부처님이 되실 것이옵니다. 흔들림 없이 정진하여 주소서. 멈추시거나 물러나서는 안 되나이다. 저희들도 또한 당신이 기필코 깨닫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수메다는 모든 부처님이 이루신 깨달음의 근본덕목인 모든 것을 베푸는 보시, 계율을 지키는 지계, 번뇌의 속박을 떠나는 출리(出離), 존재의 실상을 깨닫는 지혜(智慧), 끊임없이 노력하는 정진(精進), 욕됨을 참는 인욕(忍辱), 거짓 없는 진실(眞實), 굳게 뜻을 다지는 결정(決定), 살아 있는 것에 대해 사랑을 행하는 자비(慈悲), 공평하여 치우침이 없는 사(捨) 등의 10바라밀의 수행을 남김없이 생각해 후 10만 아승지겁을 지내면서 10바라밀의 수행을 닦아 스물네 분의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이름은 호명보살이었습니다.
탄생 이전의 수행(도솔래의상 兜率來衣相)-도솔천에서 씨앗을 뿌리다
호명보살이 도솔천에 머물고 계실 때 모든 하늘 세계의 천인(天人)들이 보살의 처소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호명보살께 “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당신이 10바라밀을 행(行)하심은 제석천이나 마왕, 범천, 전륜왕의 영광을 위해 이룬 것이 아니옵고, 오직 세상의 중생들을 제도하고자 일체지(一切智)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신 것이나이다. 스승이시여, 바야흐로 부처님이 되기 위한 때가 왔나이다. 존귀하신 스승이시여, 부처님이 될 때이나이다.” 라고 간청했습니다.
호명보살은 천인들의 간청을 받아 들여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날 지방, 가계(家系)와 생모에 대해 살핀 뒤 석가족(기원전 6세기 지금의 인도와 네팔의 국경에 가까운 히말라야 기슭에 석가족이라는 왕족이 통치하는 조그만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 왕국의 이름은 카필라국이었습니다. 이 왕국의 수도는 가비라바스투라였고 그 주변에는 조그만 도시와 촌락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왕국의 남쪽에는 코살라국이 있었고 더 남쪽에는 마가다국이 있었습니다. 이 부근이 지금의 인도에서 ‘비할주라지길’ 부근에 해당합니다.)의 마을에 있는 마야부인의 태중에 드시리라고 결정하셨습니다. 그 후 바로 깊은 선정 속에서 마야부인의 태로 들어가셨습니다. 정반왕과 결혼한 지 2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마야부인은 그 때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태자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생애}
아기 부처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세상에 태어나시다
모든 백성의 기대 속에 왕비의 산달이 다가왔습니다. 마야부인은 해산 일이 다가오자 인도의 관습에 따라 친정인 데바다하로 향하였습니다.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였습니다. 동산에는 아름다운 사리나무 꽃들이 만개해 있었고, 왕비는 상서로운 사리나무 숲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들어 꽃으로 가득한 숲길을 거닐었습니다. 왕비가 손을 뻗어 사리나무 가지를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산기를 느꼈습니다. 일행은 급히 처소를 마련하였으나 마야부인 나뭇가지를 붙잡고 선 채로 아무런 고통 없이 아들를 낳았습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한 손으로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자후를 토하셨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고통에 잠겼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태자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 오색의 감로수로 태자의 몸을 씻어 주었습니다. 땅이 은은히 진동하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천신들이 내려와 차례로 예배 드리며 이 세상에 가장 존귀한 분의 탄생을 축복하였습니다.
태자가 태어난 지 닷새가 되자 히말라야로부터 아시타 선인이 내려와 태자를 뵙자고 하였습니다. 태자의 얼굴을 본 아시타 선인은 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불길하게 생각한 정반왕이 연유를 묻자 아시타 선인이 대답하기를 ‘왕자는 출가하면 부처님이 될 것이요, 왕위를 계승하면 전륜성왕이 될 것인데, 자신이 늙어 부처님의 출현을 뵐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아들 싯달타 태자를 얻은 기쁨도 잠시 마야부인은 태자를 나은 지 7일만에 마야부인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싯달타 태자는 이모를 새어머니로 하여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타 선인의 예언에 따라 아들이 출가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반왕은 태자가 성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호화로운 궁전을 지어 향락 속에 자라나게 했습니다.싯달타 태자는 왕궁의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7세가 되자 태자는 학문과 무예를 익히기 시작하여 곧 모든 학문과 무예에 통달하여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은 없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정반왕은 그를 극진히 생각하여 계절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궁전을 세 곳이나 지어 주는 등 온갖 호사 속에 태자를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성 밖으로의 출입만은 언제나 금지시켰습니다. 그것은 태자가 현실의 고통을 모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세상을 두루 살피다
태자가 12세 되던 해 어느 봄날, 태자는 부왕과 함께 농경제의 파종식에 참가하였습니다.
그 때 태자는 농부들의 마르고 고단한 모습과 쟁기를 끄는 소들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쟁기가 지나간 뒤 뒤집혀진 흙 사이로 기어 나온 벌레들을 잡아 먹기 위해 날아든 새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약육강식의 피비린내 나는 세상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싯달타 태자는 염부나무 밑에서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이 때 태자는 초선(初禪)의 경지에 든 것입니다. 태자가 자비심으로 세상을 고통 속에서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선정에 들었을 때, 이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태자를 세상과 더욱 멀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의 세상에 대한 고뇌는 더욱 깊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생생한 삶의 실상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성년이 된 어느 봄날 정반왕 모르게 성문 밖을 나섰다가 동문, 서문, 남문에서 각각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태자는 생명을 가진 어떤 것도 이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번민하던 싯달타 태자가 북문에서 만난 사람은 출가수행자였습니다. 출가수행자를 본 싯달타 태자는 출가수행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사문유관이라고 합니다.
사문유관이란 네 곳에 성문에 나가 세상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왕궁의 영화와 권세, 향락과 사치 그리고 어떤 학문과 종교에서도 생로병사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했던 싯달타 태자는 출가 수행자에게서 그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출가하시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오분율≫
수행자를 만난 후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로 결심한 태자는 모든 사람들이 잠든 밤에 백마를 타고 왕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왕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수다라와 아들 라훌라 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 날 태자의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습니다.
애마 칸타카를 타고 마부를 따라 성을 나온 싯달타 태자는 보검을 빼들어 스스로의 머리와 수염을 깎은 뒤, 과거의 모든 부처님 앞에 일체의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깨닫겠다고 굳게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단 옷을 거지의 누더기 옷과 바꿔 입었습니다.
수행자가 된 싯달타 태자는 인도 남쪽의 신흥국가인 마가다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곳에는 훌륭한 종교가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높은 명성을 얻고 있었던 알라라 칼마라 문하에서 그가 가르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를 도달해 버렸습니다. 싯달타는 스승에게서 배운 선정을 통해서는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곁을 떠나 독자적인 수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깨달음을 향해 정진하시다
설산수도는 깨달음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싯달타는 여러 스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하여 더 이상 가르침을 받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행자들이 그러하듯이 고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싯달타의 고행은 다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의 찬탄한 ≪불소행찬≫에는 그 고행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실로 고행자 중의 최고의 고행자였다. 남들이 받치는 음식도 받지 않았으며 풀과 떨어진 과일만 주어 먹었다. 나는 무덤사이에서 시체와 해골과 함께 지냈다. 그 때 목동들은 내게로 와서 침을 뱉고 오줌을 누기도 했으며, 귀에 나무 꼬챙이를 쑤셔 넣기도 했다. 내 목에는 여러 해 동안 때가 끼어 저절로 살가죽을 이루었으며 머리는 길어 새가 찾아 들었다.…….나는 하루를 대추 한 알로 보냈으며, 멥쌀 한 알을 먹고도 지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이레에 한 끼를 먹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다. 그래서 내 몸은 무척 수척해졌다. 내 볼기는 마치 낙타의 발 같았고 내 갈비뼈는 마치 오래 묵은 집의 서까래 같았다. 내 뱃가죽은 등뼈에 들러 붙었기 때문에 일어서려고 하면 머리를 쳐 박고 넘어졌다. 살갗은 오이가 말라 비틀어진 것 같았고, 손바닥으로 몸을 만지면 몸의 털이 뽑혀 나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 싯달타 태자는 이미 목숨을 마쳤구나. 이제 목숨을 다 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부처님은 그 누구도 행할 수 없는 고행을 하였습니다. 그런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은 과거와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자신과 같은 고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고행에 몰입하였습니다. 당시 인도의 사람들을 고행을 함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 생활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고, 그런 고행을 한 사람은 신비하고도 초인간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부처님은 고행을 포기하면서 수행자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에 탐닉하여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으로 이 어리석음은 평범한 사람들이 찬탄하는 것이며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과는 다른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하여 고행에 빠지는 것으로 이것은 목적수단이 서로 바뀌어 이것 또한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에 맞지 않으므로 이 두 가지의 극단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중도는 양 극단에서 벗어나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양극단을 적당히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중(中)이란 곧 바름이다라고 하였듯이 중도란 정도(正道)의 다른 말인 것입니다. 쾌락과 고행의 가운데가 아니라 진실로 바른 길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행의 포기는 출가 수행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관습까지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수행자들로부터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던 다섯 사람은 부처님이 타락하였다고 비난하며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무 주저 없이 고행을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가정을 떠났으며, 행복과 안락이 보장 된 가정을 떠났으며, 모두가 믿는 당시의 사상을 포기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모습은 세상 전부가 외면하더라고 참된 것이라면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참된 수행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마왕을 항복시키다
수행자 싯달타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가 바친 부드럽고 향가로운 풀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습니다. “내 여기서 위 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는 말은 ≪ 수행본기경 ≫에 전하고 있는 말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한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석 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이루셨고, 깨달으신 그 자리는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싯달타가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으려고 할 때 중생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마왕 파순은 다급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왕 파순은 사문 고타마 싯달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면 일체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는 것과 그 깨달음이 자신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깨닫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깨달음을 방해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세 딸을 보내 싯달타를 유혹하였으나 싯달타는 수미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모든 악이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부정이 흘러 생로병사가 항상 따른다. 손에는 팔찌, 귀에는 귀걸이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안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 넘었다. 너희들은 모두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가거라.”
라고 고타마 싯달타가 말하자 마왕의 세 딸들은 모두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습니다. 그러자 마왕은 화가 나서 수행자 싯달타를 향해서 태풍, 폭우를 보내고 창칼, 불화살, 돌을 던지며 악귀를 동원하여 수행을 방해하였지만, 그것들은 부처님 앞에서는 꽃으로 변할 뿐이었습니다.
유혹과 폭력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했던 마왕은 직접 싯달타 앞에 나타나 전륜성왕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으니 세간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오감의 쾌락이 주는 미묘한 맛을 마음껏 즐기며, 싯달타가 추구하는 깨달음은 얻을 수 없고 피로만이 더 할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마왕이 말하자 수행자 싯달타는 마왕을 향해
“게으른 자의 무리여, 사악한 자여,
그대가 여기 온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가 말하는 그 좋은 공덕이란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런것은 그런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해 주어라.
……………
나는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떤 욕망에도 끌려가지 않는다.
보라, 내 존재의 이 순수를.
그대의 제1 군대는 욕망이며
제2군대는 혐오이며
제3군대는 기갈이며
제4군대는 집착이다.
그리고 기대의 제5군대는 피로와 수면이며
제6군대는 공포심이요
제7군대는 의혹이며
제8군대는 위선과 고집,
그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이며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전 병력이며 검은 마군이다.
그러므로 용감한 자가 아니면 너를 이겨낼 수 없으리
그러나 용감한 사람은 그대의 공격을 이렇게 잘 막아 내고 있다.
………………
악마여, 사람들도 저 신들마저도
그대의 군대를 격파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지혜의 힘으로
그대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굽지 않은 질 그릇을 돌로 쳐 깨뜨리듯이”
≪숫타니파타≫
또한 부처님은 머나먼 과거세월부터 한량없는 세월 동안 선근공덕을 쌓아 왔기 때문에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마왕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마왕은 누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외쳤습니다. 부처님은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어 차별이 없이 평등한 행을 하도다. 원컨대 지금 진실을 말하라’라고 하자 땅을 지키고 있던 땅의 신이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하고 외치자 대지와 삼천대천세계의 국토는 크게 진동하였고, 마왕은 이 우렁찬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행자 고타마 싯달타는 마왕의 항복을 받았고 아무런 방해 없이 깊은 선정에 들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불상을 보면 왼손은 가부좌한 발 위에 올려 놓고 오른손은 무릎에서 아래로 땅을 향하는 항마촉지인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항복을 받으신 장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에 아무런 장애도 없어지게 되고 깨달음을 가로막던 마왕도 사라진 후 수행자 앞에는 세상의 이치가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습니다. 그 이치는 ‘모든 것이 의지하여 일어나고,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명하기에 저것도 멸하는 것이다’라는 연기(緣起)의 진리였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바로 연기의 진리였던 것입니다.
수행자 고타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세간(세상)에 대한 애착을 보여 주는 것이 깨달음을 방해한 악마의 모습입니다. 가장 먼저 끊을 수 있었던 육체의 욕망(색욕,色慾)이며, 이것은 마왕의 세 딸들의 이름이 은애(恩愛), 상락(常樂), 대락(大樂)이라는 것에서 육체적 욕망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왕의 공격은 제8군대로 표현된 욕망, 혐오, 기갈, 집착 등 온갖 마음 속의 번뇌를 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왕이 말한 전륜성왕의 자리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말하며 이것은 색욕이나 공포보다도 더 질기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권력에 대한 욕망은 한 개인 뿐만 아니라 그의 가정 사회, 국가, 민족, 세계를 파멸로 몰아 가는 제일 무서운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마왕의 항복을 받은 후에 “세상에선 무기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나 나는 중생을 평등하게 여기는 까닭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평등한 행과 인자한 마음으로 악마를 물리쳤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수행본기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세가지 욕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육체적, 제도적, 정진적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며, 마왕의 온갖 유혹과 위협에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불퇴전의 수행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成道)라는 것은 불도를 완성했다는 뜻으로 수행자 고타마 싯달타가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가 부처님의 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고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로 성도절(成道節)이라고 합니다.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진리를 설하시다
초전법륜(初轉法輪)란 것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다는 것으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신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깨달고 난 후 한동안 보리수 나무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있었습니다. 삼매에 든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최고의 신인 범천이 하늘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귀의하고 중생을 위해 설하여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그 당시 부처님의 심정을 전하는 ≪상응부경전≫에는
“고생 끝에 겨우 얻은 이것을 또 남들에게 어떻게 설해야 하는가?오! 탐욕과 노여움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이 법을 알리기란 쉽지 않아라”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부처님은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결정하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이렇게 결심한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다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알고, 전에 설산에서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습니다.
다섯 수행자는 부처님이 고행을 포기하자 타락한 사문이라 비난한 이들이지만, 부처님은 그들을 향해 당신의 깨달음을 전하였습니다. 최초로 설한 것은 중도, 사성제, 팔정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맨 처음으로 교진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나머지 수행자도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이 제자들이 최초의 비구인 것입니다.초전법륜이 있은 후 부처님께서는 야사를 비롯한 60명의 젊은이들에게 법을 설하여 그들의 제자로 삼았습니다. 이런 사건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부처님과 다섯 비구를 아라한(阿羅漢,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 부르게 되었고, 이들은 함께 다니면서 많은 출가 수행자들과 재가신도들을 받아 들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각 지방으로 가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할 것을 권유하면서“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 하늘과 땅 모든 것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를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하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로 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전도 선언 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이타(利他,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의 대승불교가 일어나게 된 근본취지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 전도 선언은 불교의 참뜻이 스스로의 해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이익과 행복에 있음을 알리고 있으며, 이러한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불교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인도에는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그들의 사상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가르침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으로 타인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전도 선언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그들을 떠나 보내기 전에 하신 다음과 같은 당부는 깨달음의 실천적인 자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출가한 사람으로서 법을 펼 때, 남의 존경을 받겠다는 생각을 내서는 안된다. 남을 도울 줄 모르고 법에 의하여 먹고 살려고 하는 자는 ‘법을 먹는 아귀’와 같은 자다. 또 너희가 전하는 법을 듣고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들은 교만해지기 쉽다. 사람들이 법을 듣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공덕처럼 생각하면 그는 벌써 법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갉아 먹고 사는 아귀가 되지 않도록 항상 겸손해야 한다.”부처님이 최초의 설법을 하시고 승단이 만들어졌던 당시에 부처님과 제자들은 아무 곳이나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나무 밑이나 동굴, 계곡 등 바깥에서 기거하였습니다. 안주할 수 있는 집을 갖지 않는 것이 출가 수행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부처님의 교단에 공원 등의 토지와 비와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집 등을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르벨라로 가서 당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 삼형제를 교화하여 가섭 삼형제와 그들의 제자 1,000명을 부처님의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왕사성의 종교가를 모두 교화한 이 사건은 국왕과 백성을 모두 놀라게 하였고, 국왕인 빔비사라 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이 우기(雨期) 동안 머무르시며 가르침을 펴실 수 있는 사원을 기증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입니다.
최초의 우기를 베나레스에서 지낸 후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에서 우기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라자가하의 유복한 상인이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기거할 수 있는 승원을 기증하겠다고 부처님의 동의를 구하였습니다. 상인은 단 하루 동안 ‘죽림공원’에 집을 지었고 그 다음날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정식으로 집을 승단에 기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상인의 누이 동생의 남편인 수닷타가 일 때문에 라자가하에 왔다가 상인의 집에 들렀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실 준비로 매우 분주한 상인의 집에서는 아무도 수닷타를 맞이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수닷타가 이에 불만을 품고 있을 때 상인이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실 준비의 지시를 끝내고 수닷타에게 다가와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수닷타는 호기심이 생겨 그 다음날 아침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죽림정사를 찾아 갔습니다. 부처님은 밖에서 산책 중이셨는데 수닷타를 보신 부처님은 수닷타의 이름을 친히 부르셨습니다. 이에 감격한 수닷타는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 발 밑에 엎드려 가르침을 받고 재가신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닷타는 자신의 마을에서 다음 우기를 보내시라고 청하였습니다.
수닷타는 자신의 마을인 사밧데이로 돌아와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무실 수 있는 장소를 찾았습니다. 그 이상적인 장소를 찾았으나 그 장소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제다왕자였습니다. 제다 왕자는 자신의 공원에 금화로 융단을 깔아 놓은 것처럼 해 놓으면 공원을 수닷타에게 팔겠다고 하였습니다. 수닷타는 자신의 하인들을 시켜 공원을 금화로 깔았으나 문 가까이에 조그만 공간이 남았습니다. 이에 수닷타는 다시 하인을 시켜 작은 공간에 깔 수 있는 금화를 가져 오게 하였고, 제다 왕자는 자신의 계약 조건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나머지 토지를 기증하였습니다.
그 후 왕자는 그 곳에 벗꽃 문을 만들게 하였고 수닷타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건물과 그 이외의 시설물들을 세웠습니다. 이곳을 젯다바나 승원, 즉 기원정사라고 하였고 그 후에 이곳이 부처님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0대 제자의 한 분인 사리불과 목련건이 제자 250인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과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왕사성의 죽림정사는 사위성의 기원정사와 함께 전도의 양대 거점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성도하신지 몇 년 후에 고향인 카필라국에 가서 부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역시 10대 제자의 하나인 아난과 라훌라, 아니룻다, 우바리 등의 제자를 출가시켰습니다.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육신을 버리고 열반에 드시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후부터 입명하실 때까지 45년 동안 중인도 지방을 유랑하면서 사람들에게 법을 설했습니다. 부처님은 수행자와 재가자, 귀족과 평민, 노예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셨습니다. 진리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깨달음에는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귀하거나 천하거나 하는 빈부귀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년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아난존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비밀은 없으며 이제 가죽 끈에 매어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 너희들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이것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전법을 길을 떠나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전 제자들에게 의심 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시니 이 날이 음력 2월 15일 열반절(涅槃節)입니다. 열반이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에서 온 말로 ‘불어 끈다’는 뜻입니다. 욕망과 번뇌의 불을 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 중 지혜 제일이라 불리는 사리불은 열반이란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을 영원히 없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것이며, 열반에 이르는 방법은 바로 팔정도(八正道)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신 그 순간부터 열반에 드신 것이지만 중생을 위해 그 깨달음을 설하고 가신 것입니다. 세상의 인연으로 생긴 것은 반드시 소멸하는 데 부처님은 이 무상(無常)의 진리를 스스로 따르셨습니다. 원래 부처님은 업(業)의 굴레에 매인 몸이 아니었습니다.
깨달으신 부처님은 영원히 태어난다거나 죽은 일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나의 육신은 설사 죽더라도 제자들이 법과 계율을 잘 지키고 행하면 나의 법신(法身)은 영원히 상주하여 멸하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부처님의 생애는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대로 믿고 행(行)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이신 길입니다. 이는 모든 중생이 지닌 불성으로 가능하며 열반은 그 최고의 경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연기법(緣起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연기법은 여래(如來)가 출현하든지 안하든지 항상 존재하는 법칙이다. 여래는 이 법칙을 깨달아 해탈을 성취했고, 중생을 위해 여러 가지 법문으로 분별하여 설하였느니라.
《잡아함경(雜阿含經)》
연기-불교의 세계관
일구월심 사유하던 성자에게
모든 존재가 밝혀진 그 날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연기의 도리를 깨달았으므로 ≪자설경≫
싯달타 수행자는 진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되었습니다. 그 깨달은 진리가 바로 연기(緣起)입니다.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이 있으며 원인으로 생겨나고 원인이 사라지면 소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태어남으로 저것이 태어난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짐으로 저것이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연기는 인과법, 인연법, 인생연멸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부처님은 이 연기의 법칙이 당신이 만든 것도 아니며,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간에 진리로서 변함없는 것으로 당신은 다만 이 진리를 깨달았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연기의 법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함의 경전에는 ‘연기를 보는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 그리고 연기를 보는 자는 부처님을 본다’고 하였는데 부처님은 연기를 법이나 부처님과 동일하게 간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원인에 의해 생겨나고 원인에 의해 사라질 때 소멸하며, 세상 모든 것은 변하여 영원한 것이 없으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이 연기의 이치를 깨쳐야 합니다.
삼법인(三法印)-존재의 실상
우주 만유를 관통하는 법칙이 연기라고 한다면 존재의 실상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입니다.
삼법인(三法印)이란 세 가지 진실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도장 인(印)자를 쓴 것은 도장이 언제 어디서나 같듯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언제 어디서나 같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삼법인은 불교의 인감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법인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변하는 것에는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세 가지를 말하며, 일체개고 대신 모든 괴로움을 없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기도 하는데 이 네 가지를 모두 합해 사법인(四法印)이라고도 합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때 드러나는 존재의 속성은 바로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 권력과 명예, 재산도 언제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위에서 죽음을 경험하거나 권력을 가진 사람과 재산이 많은 사람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설 때 겸허하게 마음을 비우게 됩니다. 그리고 차분히 모든 사물을 살피면 지금까지 자신을 유지해 온 생각이 헛된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생각이 바로 전도몽상(顚倒夢想)입니다. 사물이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것으로만 보는 생각들을 버릴 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바르게 사는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모든 변하는 것에 자아의 실체(實體)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가르침입니다. 모든 것은 항상 변하며 이것은 그 조건에 의한 것입니다. 즉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은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기 때문에 고정불변하는 것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무아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아집이 허망한 것임을 가르칩니다. 자신을 포함한 어떤 존재도 영원한 것이 없기에 생각과 사물 역시 그러합니다. 아집과 소유욕을 없애면 인연으로 형성된 존재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어우러져 더불어 살아가는 삼라만상의 세계를 깨닫게 되면 인류의 화합과 평화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모든 변하는 것이 괴로움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즉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고(苦)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희로애락(喜怒愛樂)이 있어 괴로움만이 있는 것이 아닌데 왜 고통(苦)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기쁨과 즐거움은 일시적인 것임에도 여기에 집착하여 고통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여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습니다. 기쁨과 즐거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인 습성에 길들여져 있어서 기쁨과 즐거움을 지속하려고 별별수단을 다 부리지만, 그런 것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이 이루지 못하는 이러한 욕망을 아시고 일체가 괴로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자가 욕망의 불을 끄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면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마음의 평안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열반적정(涅槃寂靜)입니다. 열반은 진리의 구현입니다.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완전히 구현하여 모든 번뇌와 고통의 불을 끈 상태가 바로 열반인 것입니다. 열반은 모든 번뇌와 욕망, 대립과 고통이 사라진 고요한 평화의 상태입니다.
불자들은 삼법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구현하여 최상의 평화와 자유인 열반을 향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사성제와 팔정도-괴로움의 해방
연기와 삼법인을 통해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 더 나아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리를 구현하는 수행의 길을 가르쳐 주는 길이 바로 사성제입니다. 사성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서 행한 최최의 설법입니다.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연기의 진리를 현실에 맞게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진리가 있다. 무엇을 네 가지라 말하는가? 이른바 괴로움의 진리, 괴로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이다. ≪잡아함경≫
사성제란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과 괴로움의 소멸(滅)과 소멸방법(道)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를 줄여 고·집·멸·도의 사성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서로 원인과 결과를 이루며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대비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현실은 이 네 가지 고통 이외에도 여러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모든 존재의 현실입니다.
고통이 일어나는 원인은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무상한 세계에서 영원한 것을 찾고 자기 것이 본래 없는데도 헛되이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낳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한 것이 집성제입니다.
이 세상에 고통이 있다면 고통 없는 세계도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을 것입니다. 고통이 사라진 해탈, 열반의 세계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멸성제 입니다.
해탈, 열반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 여덟 가지 길이 있으니 바로 도성제인 팔정도(八正道)입니다. 팔정도란 ‘여덟 가지 바른 수행의 길’이란 뜻입니다.
정견(正見)은 바른 견해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 부릅니다. 먼저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으로, 바른 견해를 가짐으로 하여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정어(正語)는 바른 말입니다. 말은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거짓말,남을 이간 시키는 말이나 욕과 비방하는 말은 그 사람의 비뚤어진 생각과 시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항상 바른 생각과 말을 하여 구업(口業, 입으로 짓는 업)을 짓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업(正業)은 바른 행동입니다. 일체의 모든 행동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생각과 바른 말에서 더 나아가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명(正命)은 바른 생활입니다. 옳은 일에 종사하고 몸과 마음과 말, 즉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청정히 하면서 바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바른 직업관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정진(正精進)은 깨달음을 향한 부단한 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옳은 일에는 물러섬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정념(正念)은 바른 생각을 말합니다. 몸과 말과 뜻이 바르면 생각이 바로 서는 것은 바로 그 이치입니다.
정정(正定)은 바른 수행입니다. 번뇌, 망상에서 바른 견해나 행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고 바른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불자라면 항상 이것을 생각하고 잘 익혀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업과 인과-불자의 가치관
부처님 당시에는 많은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섯 명의 외도가 유명합니다. 이들은 대개 운명론을 주장하거나 쾌락과 향락을 쫓아 마음대로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부처님은 이 주장을 비판하시고 이들의 가르침이 초래할 윤리적 폐해를 경계하셨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의 법칙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행위도 반드시 결과를 낳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따르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를 ‘선인선과(善人善果) 악인악과(惡人惡果)’의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합니다.
또한 그 결과를 낳는 근원적인 행동을 업(業)이라고 합니다. 업은 산스크리트어 까르마(karma)에서 나온 말로 ‘의도를 가진 행동’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절대자의 섭리나 정해진 운명을 부정하고,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에 따라 성립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즉 스스로의 의지나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으며, 삶의 모든 결과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출생계급이나 삶의 조건도 사실은 모두 자신의 업에 의한 과보인 것입니다. 만일 악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악업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사람의 지금 모습을 보면 전생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현재 행동을 보면 내세를 알 수 있다고 ≪삼세인과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고통스러운 과보를 초래하는 악업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미혹(迷惑)입니다. 번뇌에 물들어 진리에 어둡고 마음이 흐려져 악업을 짓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혹(惑)-업(業)-고(苦)의 삼도(三道)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진리와 깨달음을 지향하는 마음은 선업을 낳고 그 결과 선한 과보를 받게 됩니다. 진리와 깨달음을 지향하는 마음을 보리심(菩提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업은 어쩔 수 없이 받게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와 행동으로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긍정적인 지향과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수행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생이나 과거에 길들여진 나쁜 습성과 잘못된 행동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진정으로 참회하고 바르게 수행하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업의 과보는 엄청난 것이어서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이것을 인과율(因果律)이라고 합니다. 악업을 많이 지을수록 삶은 구속되고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러나 선업을 쌓을수록 인생은 자유로우며 깨달음으로 나아갈 때 장애가 없어집니다. 즉, 자신을 구속하는 것도, 자신을 자유스럽게 하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입니다.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을 닦으며 또한 수행에 정진함으로써 중생의 마음 자리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역사}
근본 교리라고 하는 것은 원시불교의 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원시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가 20부파로 분열하기 시작할 때까지의 불교를 말합니다. 불교의 초기에 교리가 아직 다양하게 전개, 정리되지 않았던 때의 불교를 말하는 것으로 아쇼카왕 시대까지의 불교를 말하며, 초기불교라고도 합니다.
불교는 근본불교시대를 지나 소승, 대승으로 나뉘어지고 이것이 중국으로 전해졌으며 우리 나라에도 고구려 소수림왕 때 공식적으로 불교가 들어와 우리 민족만의 불교역사를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원시불교(原始佛敎)
맨 처음 시작된 불교라는 뜻에서 원시불교라고도 하고 근본불교 또는 초기불교라고도 합니다.
시기적으로 보면 원시불교는 부처님의 생존시로부터 입멸 후 100년 내지 200년까지의 기간에 해당됩니다. 부처님이 교화활동에 전념한 약 50년을 포함하면 150년 내지 250년 동안 지속되었던 불교를 가리키며, 통상 아쇼카왕시대까지를 가리킵니다. 교단적으로 보면 교단내에 확연한 분열이 없고 부처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를 근본불교와 좁은 의미의 원시불교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 때 근본불교는 부처님 자신과 그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불교를 가리키며, 이후의 불교를 좁은 의미의 원시불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서 통상 원시불교라 할 때는 이 둘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불교교단은 후대와 같은 분파와 분열이 없이 아직 통일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은 불교교설의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삼장 중에서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의 원형이 성립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경전과 율장 그대로가 이 시대의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시대의 경장과 율장은 현존하지 않고, 현존하는 것들은 각 부파에 의해 개별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남방불교의 빨리어 문헌이나 중국에서 한역된 것들을 비교하여 공통된 것들을 추출함으로써 이 당시의 교리나 실천내용을 고찰할 수 있습니다.
이 원시불교의 특징은 불가사의 하거나 초자연적인 신앙을 배제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실천함으로써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실해결주의를 기본입장으로 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적인 측면에서는 합리성과 객관성, 정의적으로는 윤리성과 인간성, 대사회적으로는 세계성과 보편성, 개방성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원시불교의 기본 교리를 통해서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원시불교의 기본교리란 바로 불교의 기본교리이기도 한데 그 내용은 연기와 중도, 삼법인 또는 사법인, 사성제와 팔정도, 십이인연 등이며 또 비구와 비구니에 대해 각각 정한 계율의 규정입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경전들 속에 있는 이러한 교리에 대한 설명이 원시불교의 본래 입장을 그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경전들은 부파불교의 출가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교리를 해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설의 거의 그대로 받들고 교단의 결속도 단단하여 점차 교세를 넓혀 중인도 일대에서 활약하게 되었으나 그 가운데서 보수와 진보의 두 파가 갈려 불교의 다음 시대인 부파불교 시대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소승불교
소승불교를 부파불교 혹은 아비달마 불교라고 합니다. 승(乘)은 싣고 운반한다는 뜻으로 소승이란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으로 대승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소승은 아라한과 벽지불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시고 난 후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미혹함에 빠져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깨달음의 길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어 보이신 많은 내용의 교설들은 부처님 당시에는 문자나 글로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일정한 형태로 만들어 후대에 전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글(문자)로 적어 놓는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통하여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하가섭은 500인의 아라한을 마가다국의 왕사성에 소집하여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을 수집하여 편성하였는데 이것을 제1 결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여 결집된 경과 율은 화합된 교단에 의해 잘 지켜지고 있었으나 약 100년쯤 지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용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비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종래의 엄격한 계율에 의해 생활하는 수행자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불교의 사상 또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불교교단 내에서도 진보파와 보수파의 대립이 심화되었으며, 보수적인 장로(長老, thera)들은 제 2결집을 행하여 진보적인 사상을 배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불교교단은 보수적인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승부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 대중부에서는 다시 8파로 나누어 지고, 상좌부에서도 11파로 나뉘어져 B.C 1세기 경에는 20부파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부파불교(部派佛敎, 불멸 후100여년~B.C 1세기 경)라고 말하고 그 이전을 원시불교 시대라고 합니다.
아비달마 교학은 부파불교 시대에 있어서 각 부파는 불교의 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arma) 교학이라고 하는 것이며, 법(法, dharma)에 대한(abhi-) 연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부처님이 살아 계신 당시에도 부분적으로 행하여 지고 있었지만, 각 부파의 성립으로 이러한 연구는 더욱 특색 있게 되었습니다. 각 부파는 자신들의 연구한 결과를 결집하여 간직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을 아비달마 문헌 또는 논(論)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모든 부파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아비달마 문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경전은 예전부터 있었던 경(經)과 율(律)에 논(論)이 하나 더 보태어져 삼장(三藏)이 성립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런 삼장의 완성은 부파불교 시대에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많았던 부파 불교의 삼장은 거의 사라지고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남방(南方) 상좌부(上座部)의 것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상좌부의 삼장은 팔리어로 기록되어 이것을 파리삼장(巴利三藏)이라고 하고, 설일체유부의 삼장은 현재 범어로 된원래의 경전은 없고 한역(漢譯)으로 된 것만 남아 있습니다.
대승불교(大乘佛敎)-대승/대승불교의 성립/대승불교의 특징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담은 것이 근본교설 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 하는데 있어서 다른 의견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으며, 결집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결집에서는 경과 율이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이 결집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 부처님의 교설이 문자화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함(阿含)의 교설이라고 합니다. 불교교단은 부처님의 열반에 드신 후 100년간은 다 함께 화합하여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00년쯤(B.C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하여 다른 견해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발생한 것이 상좌부와 진보적인 대중부로의 분열입니다. 이것을 근본 이부(根本二部)의 분열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분열이 일어나자 다시 새로운 분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B.C 1세기 경에는 총 20부파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부파불교의 시대라고 부르고, 그 이전의 시대를 원시불교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부파불교 시대의 각 부파는 아함(부처님의 근본 교설)의 교법에 대하여 전문적인 연구를 행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의 근기(根器: 사람들 각자가 가진 성품에 따라 법을 받아 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이해할 때도 개인에 따라 그 차이가 나타남을 말하는 것입니다.)를 살펴 보아 그에게 알맞은 설법을 하였기 때문에 그 근기가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많은 단편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의 법을 체계화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을 말해 주는 것이 아비달마 교학이었습니다.
부파불교의 이러한 아비달마 교학은 부처님의 근본 교설(아함)을 체계화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님의 교설을 아함에 한정시키고 어려운 해석으로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고 무의미한 불교로 만들어 갔습니다,
부파불교에서는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무위열반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이상적인 인간상은 그러한 열반을 얻는 아라한(阿羅漢)으로 인식하였습니다. 이러한 부파불교의 인간상과 수행상은 전문적으로 수행을 하는 출가한 승려들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행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출가한 승려들로부터의 구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재가 신도들은 부처님의 유골을 모신 불탑(佛塔)을 중심으로 모여 부처님에 대한 동경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출가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여 교단을 지켜 온 것과는 반대로, 불탑을 지켜온 재가 신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내용보다도 과거에 생존해 있던 부처님에 대한 동경이 바로 신앙의 원천이 되었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경이나 찬양이 부처님을 점차 초인화 하고 신격화 하면서 새로운 종교 운동이 일어 났는데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입니다.
부파불교가 어려운 수행과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로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을 때 다른 한편에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뜻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 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대승불교운동이라고 하는데, 재가신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진보적인 출가인들이 그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의 길을 ‘소승불교(小乘佛敎)’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신만을 위하여 수행을 하는 것은 자리(自利)이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을 이타(利他)라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만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남도 함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자리이타를 완전하고 원만하게 수행한 사람을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적인 보살(菩薩, bodhisattva)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열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불(成佛)에 있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야 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하신 불교의 진정한 뜻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일어난 대승불교는 일반 재가 신도들을 포함하는 사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전해진 것도 바로 대승불교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이러한 사상을 담은 교설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대승경전으로서 B.C 1세기 경부터 이러한 문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기 대승경전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들은 반야경, 법화경, 십지경, 무량수경, 유마경 등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집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 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는데 대승경전의 결집에 대한 문헌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승(大乘)
대승은 범어 마하야나(mahayana)의 번역으로 마하연나(摩訶衍那), 마하연(摩訶衍)이라고 음역하며, 상연(上衍), 상승(上乘)이라고도 합니다. 승(乘)은 타는 것이란 뜻으로 미혹의 차안(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교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대승이란 ‘큰 수레’라는 뜻으로 수레라는 말은 교리를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승불교의 성립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약 100년(혹은 200년) 후 불교교단은 시대 상황과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계율과 교리의 이해와 실천을 두고 처음으로 분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되어 20여 개 이상의 교단으로 분열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부파불교였습니다.
처음에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계율과 교리의 해석과 그 실천의 견해 차이로 분열된 각 부파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자파(自派)의 당위성과 우월성을 내세우고 확립하기 위해 나름대로 교리에 대한 해석과 철학적 체계를 세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불교 교리의 체계적인 정리와 사상적 논리를 발전시킨 면도 있으나, 반대로 불교를 철학화 시키고 형이상학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결국 불교의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고 대중들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자는 대중의 종교가 아닌 하나의 전문화 된 불교로 만들어 세상과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승려 자신들도 철저한 계율관에 입각하여 지계(持戒)를 통한 개인의 해탈만을 위하여 산야(山野)에 은둔하여 수행함으로써 대중의 구원을 외면하고 종교적인 사회적 실천을 외면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반 재가불자와 일부 진보적인 승려들의 분열된 교단에 대한 불만과 외면은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반 재가불자와 일부 진보적인 승려들이 분열된 교단에 대해 품은 불만은 결과적으로 부파불교의 폐단을 치유하고 부처님이 살아 계신 당시처럼 불교를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대승의 운동은 부처님이 살아 계신 당시로 돌아가서 불교를 대중들에게 쉽게 전하고, 중생구원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는데 이것은 대승불교를 성립시킨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특징
대승불교는 부파불교의 전문화된 학문으로부터 실천적인 신앙으로 돌아 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하나의 운동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교단으로서 독자적인 율장도 없고 그 모습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승불교는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안심입명(安心立命)하기를 염원했던 재가 신도들을 그 모체로 하고, 그들에게 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해 주었던 법사의 일부를 지도자로 하여 일어났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 운동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법사들은 새로운 경전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 초기의 대승경전을 통하여 대승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초기의 대승경전은 불탑의 숭배를 설하고,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고 예배하기를 권하며, 보시 등의 이타행(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설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부파불교는 타인의 구제보다 자기 자신의 구제에 더욱 관심을 가졌던데 반하여 대승불교는 타인을 위한 행동이 바로 자신을 위한 수행의 완성이 된다는 교리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재가와 출가를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파불교가 출가주의의 불교인데 반하여 대승불교는 재가자를 배제하지 않고 재가와 출가자 사이의 구별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승이라고 한 것입니다. 승(乘)이란 ‘실어 나른다’라는 것을 뜻하고, 대승이란 크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승과 비교하여 소승은 출가하여 엄격한 수행을 하지 않으면 해탈을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어 재가를 배제하였으므로 소승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과 재가에 관계없이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상적인 인간상이 보살인 것입니다.
셋째 믿음(信)과 실천(行)을 주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대승불교 입니다. 쉬운 길은 이행도(易行道)를 통하여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모두 구제하려는 폭 넓은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데바닷타의 반역이라고 알려진 사건도 대승불교에서는 데바닷타도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부처님의 구제력을 중시하여 초인으로서의 부처님에 대한 많은 이론이 생겨났습니다. 이를 불신론(佛身論)이라고 합니다.
다섯째 모든 사람이 보살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살은 부처님에 대한 신앙을 기초로 하여 자기가 보살이라는 신념을 갖는 것입니다. 대승의 보살은 부처님과 똑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이는 누구나가 부처님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과 깨달음의 결과를 중생들에게 돌리는 회향(廻向, 자기가 닦은 선근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또는 자기의 불과에 돌리는 것을 말함)과 자비에 바탕을 둔 실천 덕목인 육바라밀을 중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불교(中國佛敎)
불교는 인도에서 탄생하여 동방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어 갔습니다.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아쇼카왕은 전쟁에 염증을 느껴 불교에 귀의하고 포교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전세계로 보내 불교의 세계 종교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와 중국, 일본을 비롯하여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는 물론 이란과 그리스, 러시아까지도 불교를 전하기 위한 사람들이 파견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중국은 인류 문명의 발생지 가운데 하나로 주변 나라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는데 불교 사상과 자신의 전통사상과 문화를 융합, 수용하면서 한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된 것은 불기 611(서기67)년, 후한시대(後漢時代) 대월지국으로부터 가섭마등과 축법란에 의해 전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노자, 장자와 같은 성격의 사상으로 이해하였는데 이를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합니다. 격의(格義)란 다른 사상의 개념을 빌어 풀이하는 것으로 반야 또는 공의 진리를 노장사상을 매개로 이해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격의불교는 언어의 장벽으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흘러 불교경전이 중국어로 번역이 되고 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점차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대개 경전의 번역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이미 초기부터 안세고, 지루가참과 같은 역경승(경전을 번역하는 스님)들이 있었지만 중국불교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었습니다. 그는 수 많은 대승경전과 율장, 논서를 번역하였는데 그의 번역은 정확성과 문장의 미려함, 그리고 번역 자체가 불교를 강술하는 성격을 띠어 중국불교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구마라집에 의해 중국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며, 격의불교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구마라집 이후 경전번역의 가장 큰 성과는 삼장법사 현장(玄奬, 600-664)에 의해 이루어 졌습니다. 그는 17년에 걸친 구법(求法)여행 끝에 인도로부터 범어(梵語)경전 657부를 가지고 돌아와 무려 75부 1,335권의 경전을 번역하였습니다. 그의 번역은 구마라집의 번역과 비교하여 신역(新譯)이라고 합니다.
중국불교의 또 다른 특징은 교상판석(敎相判釋)입니다. 인도에서는 근본불교시대를 거쳐 소승과 대승불교라는 불교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흥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의 구분 없이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인들은 소승을 비판하는 대승경전 가운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체계를 세워야 하는가에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또한 천차만별의 중생을 위해 다양하게 설해진 방대한 경전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리하고 체계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각자 판단의 기준에 따라 부처님의 교설을 통일, 정리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일어났는데 이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하고 줄여서 교판(敎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새로운 종지(宗旨, 한 종교 한 종파의 핵심적인 교의나 종취를 말하는 것임)가 성립되고 이것이 발전하여 각각의 종(宗)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13개 종파가 생겨나 교판에 따른 종파의 형성으로 중국불교사의 특징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종파로는 구마라집의 제자 길장에 의해 확립된 삼론종(三論宗)과 천태 지의에 의한 천태종(天台宗), 현장법사 제자들이 세운 법상종(法相宗), 지엄의 화엄종(華嚴宗) 및 담란의 정토종(淨土宗)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종(禪宗)은 불교의 가장 중국적인 성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리 달마대사를 개조(開祖)로 하여 2조 혜가대사, 3조 승찬대사, 4조 도신대사, 5조 홍인대사로 이어지다가 6조에 와서 남종의 혜능대사와 북종의 신수대사로 나뉘어진 선종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직접 대면하려는 직관직각(直觀直覺)의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선종은 당대의 교학이 문자에 얽매여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참선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바로 나아가는 접근법을 제시하였습니다. 혜능대사는 이를 가르켜 ‘가르침 외에 별도로 전한 교의이며 따로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敎外別傳 不立文字)’고 하였습니다. 문자에 의하지 않고 곧바로 진심(眞心)에 계합하기에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하였고,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선종의 성립은 중국에서 불교가 이루어 낸 또 하나의 발전이었습니다. 복잡한 교학 연구와 현학으로 인해 부처님의 참 뜻인 성불에서 멀어진 풍토를 일거에 혁신하고 성불을 지향하는 불교, 새로운 불교로 자리매김 한 것입니다. 복잡한 교학 공부를 거치지 않고도 참선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자각은 모든 이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종은 역동적인 가르침이었습니다.
한국불교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고구려 소수림왕(불기 915, 서기 372)이 중국의 전진왕으로부터 불상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인도 출신인 가야국의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로부터 불교를 직접 가져왔다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불교가 우리 나라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가 받아 들인 시기의 불교는 중국의 격의불교였습니다. 이후 인도의 중관사상을 계승한 삼론종에 대한 연구가 발달하였고 유식학과 중국의 천태종, 열반종이 유입되어 교학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에는 도교가 성행하고 불교는 정치적 세력 투쟁에 휘말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고구려의 패망을 맞았습니다.
백제는 불기 928년(서기 384) 침류왕 때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었습니다. 백제불교의 특징은 율종 중심의 교학에 있는데 그 밖에도 열반종, 삼론종, 성실종 등의 연구도 활발하여 교학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백제는 일본에 불교와 선진문물을 전해줌으로써 일본 고대사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신라에는 고구려 묵호자에 의해 불기 961년(서기 417)에 불교가 전래되었으나, 불기 1071년(서기527)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승인되었습니다. 신라불교의 고승대덕들은 ≪삼국유사≫ 등의 기록을 통해 그 행적이 전해지는데 원광-안한-자장-보덕-낭지-혜숙-혜공-대안-원효-의상-태현스님 등으로 이어지는 일대 사상가들이 배출되면서 7~8세기에 화려한 황금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원광법사는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에 세속오계를 주어 정신적인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원효, 의상 스님이 이루어낸 눈부신 교학 연구의 성과와 인재 양상은 중국에 까지 큰 영향을 주었고, 한국불교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신라인들은 특히 삼국 통일을 전후하여 ‘신라 땅이 바로 불국토’라는 신념으로 가득차게 되었는데 이를 불국토사상(佛國土思想)이라고 하며 호국불교사상이라고도 합니다. 신라인들의 불교를 매개로 한 정신적인 통일과 힘의 결집이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신라인들의 이런 사상이 투영된 것으로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불렀던 화랑과 불국사, 석굴암, 경주 남산 등의 불교성지가 있습니다. 용화향도(龍華香徒)란 ‘미래불인 미륵부처님이 오시는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여는 무리’라는 뜻으로 신라의 땅에 미래불의 국토인 용화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라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문화적 걸작은 불교에 대한 깊은 믿음에서 우러 나온 것이었으며, 그것은 백제와 고구려의 문화적 발전을 포괄한 삼국의 성취였습니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불교는 각 나라와 지역마다 독특한 특성을 지닌 채 발전하면하면서 우리의 전통 사상과 문화로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불교는 특유의 사상적 포괄성으로 민속 신앙을 흡수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 사상과 문화로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원효, 의상, 원광 같은 고승들의 정신적인 역할은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고, 교학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성과는 불교 뿐만 아니라 한국 사상사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통일신라 말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선종의 흐름을 계승하여 신라 말에 개산한 일곱 산과 고려 초의 두 산을 합쳐 구산선문(九山禪門)이 된 것은 고려 초의 일입니다. 고려시대에 선종의 구산(九山)과 교종의 다섯 가르침을 합하여 오교구산(五敎九山)이 성립된 것입니다. 오교구산이란 5개의 교학과 9개의 선종 종파를 말하는 것으로 선종과 교종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다양한 모습을 띤 것은 신라가 망해가던 시기에 각 지역의 호족세력의 출현과도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호족의 실력자들은 자신의 세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불교의 정신적인 지도자들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 불교는 삼국시대에 이어 국교(國敎)의 지위를 확립하여 국가적인 지원 아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최고의 경전으로 받드는 고려대장경을 조판하였고 세계 최고의 인쇄술을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도선국사의 영향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사찰과 탑이 세워졌습니다. 당시에는 건축술도 뛰어나 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건축물로 꼽히는 봉정사 극락전과 부석사 무량수전도 이 때에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불화(佛畵)가 발전하여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는 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왕들은 대대로 당대의 고승(高僧)을 국사(國師)로 모셔 정신적인 지도를 받았습니다. 왕실의 후원으로 사찰이 방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되고, 스님들이 높은 권세를 누리게 되어 그 폐단도 적지 않았습니다. 뜻 있는 스님들 사이에 권세를 멀리하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 가자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보조스님의 정혜결사, 요세스님의 백련결사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불교는 숭유배불정책으로 인해 억압과 수난을 당했습니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정하고 불교사상의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비하하였습니다. 고려시대 큰 규모로 성장하였던 사찰의 토지를 몰수하고 스님들을 백정과 같은 팔천민의 하나로 신분을 낮추었으며, 서울 도성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았던 사찰을 몇 십 개만 남기고 강제로 폐찰하였으며, 각기 특성을 지니고 성장하던 각 종파(宗派)도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통합하는 등 불교를 탄압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혹독한 배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산중으로 깊이 들어가 명맥을 이어 나갔습니다. 유교가 정치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였지만, 왕족과 양반가의 부녀자들은 대대로 믿어 온 불교를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태조와 세종, 세조, 정조 등은 매우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며 직접 간접적으로 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시하면서 한문으로 된 불교경전을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는 서산, 사명대사가 구국을 위해 승병을 조직하고 전쟁에 나아가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수 많은 스님들이 흘린 피로 인하여 불교에 대한 탄압은 수그러 드는 듯 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혹독한 탄압이 계속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로 접어 들면서 유교질서가 한계를 드러내고 조세제도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어렵게 되자 사찰도 여러 가지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특히 개혁적인 스님들은 유교지배 아래의 조선을 혁신하고자 백성들과 함께 여러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각종 민란에 스님들의 참여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빈발하는 봉건체제에 대한 민중들의 봉기와 밖에서 밀려 오는 서양열강의 침략 속에서 불교사상으로 조선을 개혁하고자 이동인스님, 유대치, 김옥균, 박영호 거사 등이 개화당을 결성하여 서기 1884년 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놓여 있던 20세기 전반은 한국불교에도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국가의 강력한 통제 아래 다양한 종파로 나뉘어 있던 일본불교는 정부의 후원 아래 경쟁적으로 우리 나라에 들어와 포교 활동과 동시에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것은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침략에 앞서 선교사를 파견하여 식민지배의 정보 탐색과 지배 이념 창출에 앞장섰던 것과 유사한 것입니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제정하여 시행한 <사찰령>은 조선불교를 식민 통치 아래 놓이게 한 법이었으며, 일본에 대한 예속을 촉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일제는 사찰령과 여러 조치를 통해 조선불교의 훌륭한 전통을 유린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승려의 결혼을 허가한 것이었습니다. 일본불교는 오래 전부터 승려의 결혼을 허가하고 있었는데 조선불교의 청정비구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일제시대에 우리 나라 스님들이 대부분 결혼을 하여 가족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부처님의 근본정신과도 다른 것이었으며, 조선불교의 전통과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한편 식민지 시대에 불가피하게 일본에 협력하면서도 조선불교의 전통을 지켜 나가기 위해 본사 주지스님들을 중심으로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을 결성하여 총독부의 법인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백용성, 한용운, 박한영 등 적지 않은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끝까지 저항하며 조선불교청년회, 만당 등을 중심으로 민족 독립운동을 벌였고, 일제의 불교정책을 거부하던 청정 비구승들도 선학원을 결성하여 자주적인 활동 거점을 유지하면서 조선불교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한국불교에는 필연적으로 일제불교의 청산과 교단의 정화가 과제로 제기되었습니다. 해방의 혼돈기에 불교개혁과 교단혁신을 위한 여러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하였으나 좌우이념 대립의 와중에 휩싸여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전쟁 직후 일제시대에 합법화되었던 스님의 결혼제도에 반대하면서 교단의 정화를 요청한 청정비구들의 운동이 시작되면서 한바탕 홍역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몇 차례에 걸친 정화지지 유시문을 발표하여 정화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혼돈 끝에 정화운동은 성과를 보여 조계종은 청정비구 중심의 출가승려로 재편되고 여기에 반대한 스님들은 독립하여 창종하였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한국불교는 여러 종단으로 나뉘어졌으나 오늘날 불교계 각 종단의 협력기구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를 구성하고 전불교도의 뜻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1960-70년대 정화운동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분란이 있었으나 1970년대 후반 뜻 있는 불자들의 노력으로 포교, 역경, 도제양성이라는 종단의 3대 과업이 정립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대중불교운동과 민중불교활동이 전개되어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습니다. 『종헌(宗憲)』과 『종법(宗法)』등 제도개혁을 단행하고 총무원과 더불어 도제양성과 포교를 전담하는 기구로 <교육원>과 <포교원>을 독립시켜 종단 활성화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대립하고 있으며,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서양화로 정신적인 혼돈과 물질지향적인 가치관의 팽배, 민족문화 경시 풍조 등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산업문명의 부산물인 환경오염은 매우 심각하여 전세계적 차원에서 새로운 문명에 대한 갈망이 높아 가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한국불교는 민족통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하며,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환경을 살리는 새롭고 건강한 문명 창조의 사상적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물질과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지나치거나 상처 입은 많은 대중들을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상으로 포용하고 모두가 더불어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불국토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제가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하고 믿으며 실행해 나간다면 언젠가 찬란한 불국토가 우리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불교의 수행법
{참선이란}
'불교의 수행법'하면 누구나 참선을 떠올립니다. 참선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어렵게 느껴집니다. 참선이란 참(參)은 생각함을 뜻하고, 선(禪)은 산스크리트어 디야나(dhyana)를 음사하면서 나온 말인데 그 뜻 역시 ‘사유함’입니다. 그래서 옛 문헌에서는 사유수(思惟修)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참선이란 ‘깊이 사유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참선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전해집니다.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등 동남 아시아의 남방 불교권에서는 위빠사나(Vipassana)라는 수행법이 전해지고,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북방 불교권에서는 선종의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의 의미를 추구하는 간화선과 조용히 자신의 본성을 비추어 보는 묵조선(默照禪) 등의 수행법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참선이란}
참선의 자세
참선을 하는 데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하겠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환경이 조용한 곳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절에서는 부처님이 모셔진 법당이나 선방 등 정해진 공간에서 하고, 집이나 직장에서는 특별히 참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일정한 곳을 선택해서 참선을 하면 될 것입니다.
참선의 자세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걸림이 없이 자세를 취해도 되겠지만 전통 수행법인 결가부좌(結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가부좌와 반가부좌를 하는 방법은
*주위를 정돈한 다음 좌복을 깔고 그 자리에 편안하게 앉습니다.
*앉는 자세는 먼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의 허벅지 위에 올려 놓고
*남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허벅지 위에 올려 놓으면 됩니다.
*허리와 양 어깨는 편한 상태로 쭉 펴고 두 손은 먼저 왼손 등을 오른 손 위에 포개어 올려놓고 엄지와 엄지를 살짝 마주 닿게 하면 됩니다.
이 자세는 오랫동안 앉아서 수행하는데 적합합니다.
그러나, 초보자는 다리에 쥐가 나는 등 장애가 있을 수 있으므로 힘이 든다고 느껴질 때는 몸을 움직여 굳은 자세를 유연하게 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약 30~50분 등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단계적으로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참선을 한다고 억지로 오래 앉아 있다 보면 몸에 무리가 생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는 아쉬워 말고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법당이나 방안 또는 도량을 거닐면서 몸의 균형을 맞추어 조절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을 방선(放禪) 또는 경행(輕行)이라고 합니다. 이 때에도 화두를 잊고 잡된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방선이나 경행 역시 참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반가부좌는 결가부좌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으로 결가부좌 자세에서 다리 한 쪽만을 다른 다리의 허벅지에 올려 놓는 자세입니다.
참선을 할 때는 호흡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냥 마음대로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마음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집니다. 참선을 할 때 호흡을 잘하면 정신이 집중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래서 참선을 할 때 호흡은 단전호흡법을 취하되 단전호흡법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거친 숨을 몇 번 몰아 쉰 다음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코로 숨을 들이 마셨다가 내쉽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코로 숨을 쉬되 콧구멍의 미세한 털도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호흡은 아랫배 즉, 단전까지 내려 보냈다가 천천히 내쉬는 방법으로 계속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모두 수행법이 아님이 없다고 하여 기존의 수행법과 선지식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각자 나름대로 독특한 수행법을 개발해서 공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법을 배우는 사람은 전래된 수행법과 선지식의 말씀에 의지해서 수행법을 잘 익혀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참선을 하다보면 여러 생각이 끊임없이 생겼다가 소멸합니다.
어느 때는 찰나지간에 나의 생각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버리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기억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때문에 초보자는 자기 생각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한 생각에 몰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방법이 나왔는데 이를 수식관(數息觀)이라고 합니다. 이 수행은 숨을 들이 쉬면서 들숨을 관찰하고, 숨을 내쉬면서 나간 숨을 관찰하는 수행법입니다. 이 때 호흡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천천히 깊게 숨쉬기를 합니다.
숨을 쉬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이지만 숨에 의식을 집중하고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긴장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쉴 때 마음의 긴장과 불안이 풀어집니다. 이러한 긴장 이완 효과 뿐만 아니라 수식관은 분별심을 없애는 수행법입니다. 경전에서는 수식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조용한 장소를 택한다.
그리고 결가부좌 한다.
마음에서 다른 생각을 없애고 눈을 코 끝에 둔다.
그리고는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즉 긴 숨이 나가면 숨이 길다고 알고, 나가는 숨이 짧으면 숨이 짧다고 알고, 들어 오는 숨이 차면 숨이 차다고 알며, 들어 오는 숨이 따뜻하면 숨이 따뜻하다고 알고, 나가는 숨이 따뜻하면 나가는 숨이 따뜻하다고 안다.
몸을 모두 관찰하여 들숨, 날숨이 모두 이와 같음을 안다.
숨이 있으면 숨이 있다고 알고, 숨이 없으면 숨이 없다고 안다. 만약 숨이 마음으로부터 나가면 또한 마음으로부터 나간다고 알고, 만약 숨이 마음으로부터 들어 오면 또한 마음으로부터 들어 돈다고 안다.
이와 같이 사유하여 욕심으로부터 해탈을 얻고 악함이 없으며 깨닫고 관찰함에 기쁨과 편암함을 얻으면 이를 초선(初禪)의 단계라 한다”
이 수식관은 마음에 더 이상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단계를 최고의 경지로 삼는 수행법입니다..
부정관(不淨觀)
부정관은 말 그대로 우리 몸의 부정한 모습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묘지로 가서 시체(해골)의 부정한 모습을 보고 거처로 돌아와 발을 씻고 편안히 앉아 마음과 몸을 유연하게 가지고 모든 번뇌를 떠나 그 시체와 나의 몸을 비교하며 관한다.
즉 마음을 집중하여 발목, 정강이,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옆가슴뼈, 손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빨, 해골 등에 마음을 집중한다.
그 다음에는 앉은 자리, 한 방안, 한 집안, 한 가람, 한 고을, 한 나라에 가득히 썩어 가는 시체가 있는 것을 관한다.
이것을 부정관이라 한다’
이 부정관음 탐욕과 애욕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이 무상함을 깨우쳐 탐욕과 애욕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지관(止觀)과 삼매(三昧)
지(止)는 마음이 적정하여 온갖 번뇌를 그침을 말합니다.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여러 가지로 흔들려 정신의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마음에 왔다 갔다 하는 망상의 흔들림을 보고 이들이 모두 찰나에 변화하는 것임을 알고 멈추게 하는 작업을 지(止)라고 하는 것입니다.
관(觀)은 산스크리트어 비파사나(vipasssana)의 의역으로 마음이 지의 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마음 속에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면 현상의 세계에서 쉽게 끌려가던 마음 씀씀이를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동안 무엇에 흔들리고 욕심을 부리고 조급해 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앎은 자신을 지혜의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삼매(三昧)는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adhi)의 음사어로 잘못 발음 된 말이 널리 퍼진 것입니다. 삼매는 지관의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는 지혜가 깊어져서 외부의 어떤 소리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고자 마음이 몰입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삼매,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삼매에 들었다고 말하고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흔히 독서에 몰입한 사람을 보고 독서삼매에 빠졌다고 말하는 예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만이 최상의 지혜인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간화선(看話禪)
인도불교가 중국불교로 이어지면서 수행체계에도 하나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인데 이는 하나의 문제를 깊이 참구하여 그것이 본래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간화선으로의 전개인 것입니다. 이 수행법은 공안이나 화두를 통해서 수행자로 하여금 큰 의심을 일으키게 하고 스스로 그 의심을 해결하여 깨닫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인도불교의 선정법은 4성제, 8정도, 12연기 등의 교리의 의미를 수행자가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데 반해, 중국의 선종에서는 언어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근본 내용의 정확한 의미를 곧바로 찾아서 확인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참선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여 경전의 가르침에 메이지 않고 그 밖에 길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달마대사를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로 삼아 6조 혜능대사에 이르기까지 선종은 중국에서 번창하였습니다. 초조 달마스님과 2조 혜가스님과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는 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 찾아 온 혜가스님에게 달마스님은 ‘아픈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치료해 주겠다’고 일갈했습니다. 특히 선종에서는 극단적인 모순으로 보이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조주스님은 어떤 스님이 와서 물러보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있다’ 하였고, 다른 스님이 와서 물으면 ‘없다’하여 앞뒤가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말이 1,700여 개나 정리되어 공안이나 화두로서 후대 수행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간화선은 초심자들에게 매우 어렵게 여겨지지만 앞의 수식관보다 훨씬 확실하고 호방한 수행법이어서 출가수행자들이 주로 몰두하는 방법입니다.
{간경(看經)}
불교에서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교훈이요, 진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전은 부처님 열반 이후 정법을 전하는 보고(寶庫)로 여겨졌고, 따라서 경전을 신행의 지침으로 삼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법화경> 보문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이 경을 설하거나 읽거나 외우거나 쓰거나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마땅히 칠보로써 탑을 쌓되 지극히 높고 넓고 장엄하게 꾸밀 것이요, 또 다시 사리를 봉안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이 가운데는 이미 여래의 진신(眞身)이 있는 까닭이니라’
경전이 부처님 진신사리와 다름 아님을 나타내는 경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경전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로서, 불상이나 불탑과 같이 예배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책이 귀하던 예날에는 경전 한 권이 갖는 의미가 각별했으며 경전을 통하여 모든 교육이 이루어졌으므로 경전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인들이 경전을 통한 수행의 한 방법으로 간경에 지극한 정성을 보인 것도 이러한 까닭입니다.
간경(看經)은 경전을 보고 읽는 것을 말합니다. 경전은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하는 지혜의 창고입니다. 따라서 경전을 읽고 외우며 몸에 지님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이 무한히 크기 때문에 간경의 수행의 한 방법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원래 경전은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널리 펴고자 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경전을 통해 깨달음을 이해하고 그와 같이 실천하기 위해 읽었으나, 뒤에는 일고 외우는 그 자체가 하나의 수행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또한 부처님 앞에서 경전을 일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며 원하는 일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발원하기도 하고 또한 죽은 자를 위해 독경해서 그 공덕으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며 명복을 빌기도 하였습니다.
간경은 뒤에 경전을 읽는 모든 행위를 일컫게 되었습니다. 풍경(諷經), 독경(讀經), 독송(讀頌)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는 경우도 있으나, 지금은 흔히 구별 없이 쓰고 있으며, 독경·예배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여 근행(勤行)이라고도 합니다.
예로부터 경전을 읽기에 앞서 먼저 몸을 깨끗이 하고 단정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몸을 깨끗이 하는 과정을 통해 마음을 추스려 경전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전을 읽을 때에는 마음 속으로 의미를 이해하면서 보아야 하는데 염불처럼 소리를 내어 읽기도 합니다. 이 때는 염불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소리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경전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주위의 스님이나 선지식을 찾아가 그 뜻을 이해하고 넘어 가는 것이 경전 읽기의 바른 방법입니다.
{염불(念佛)}
염불이란 일반적으로 마음 속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주위에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등 부처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께 귀의하고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염불입니다. 염불에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생각하는 법신염불과 부처님의 공덕과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는 관상(觀像)염불, 그리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稱名)염불이 있습니다.
<아함경>에서는 세 가지, 여섯 가지, 열 가지로 염불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연불을 지극한 정성으로 하면 번뇌가 사라져 극락에 태어나거나 열반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대승경전>에서는 삼매에 들어 염불하는 염불삼매를 설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염불은 죄를 없애고 삼매 중에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은 물론,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면 반드시 태어난다(艶佛往生)고 합니다. 그래서 <아미타경>에서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도 임종할 때 일념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서방정토에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염불은 중국에 와서 그 내용과 방법이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을 마음 속에 떠올리는 ‘통(通)염불’과 특정한 부처님만을 마음 속에 떠 올리는 ‘별(別)염불’로 구별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구분보다 어떤 형태로든 부처님 이름을 부르고 신앙하는 일이 일반인들이 실행하기 쉬우므로 나중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것만을 염불이라고 했습니다.
염불은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써 대중의 호응이 높았습니다. 어려운 교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극락왕생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반대중이 선호했습니다. 신라시대 원효스님이 무애박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부르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 이래 염불은 지금까지 불교인의 수행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염불하는 방법은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지극히 부르는 것입니다. 즉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하며 살기를 발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염불을 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해져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외도, 마군, 잡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을 부르는 동작 하나에도 정신을 모아 흐트러짐 없는 상태가 진정한 염불입니다. 지극정성으로 염불해서 부처님을 친견했다는 사람도 있고, 몸에서 빛을 발하는 방광(放光)을 얻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보다 진심으로 부처님을 그리워 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사심이나 탐욕이 사라지는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근(精勤)
정근은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얼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쉬지 않고 수행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염불과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불·보살님의 지혜와 공덕을 찬탄하면서 그 명호를 부르며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산만한 마음을 안정시켜 편안하게 하며 어떤 환경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맑고 밝아지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정근을 할 때에는 다른 생각들을 다 놓아 버리고 오직 평온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을 믿고 일념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불·보살님의명호를 부르면서 그 명호에 집착하거나, 무엇인가 얻으려고 하면 오히려 정근에 장애가 됩니다.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기운을 안정시켜 몸을 흔들거나 경거망동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음성은 너무 크게도 작게도 하지 말고 기운을 적당하게 하여 고르게 해야 합니다. 정근할 때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염주를 돌리거나 절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근의 대상과 일정한 시간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대개 아침과 저녁으로 예불을 모실 때에는 석가모니불 또는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정근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해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할 때는 나무아미타불 또는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정근합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일반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 신이나 그 밖에 신비한 힘에 의지하여 간절하게 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기도는 권청(勸請) 즉, 일체 중생들이 어리석은 마음을 떨쳐버리고 하루 속히 지혜의 눈이 열리도록 부처님께 청하는 의식으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과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여 모든 이웃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회향하겠다는 서원의 뜻이 더 큽니다.
불교의 기도는 불·보살님의 위신력을 찬탄하고 다생에 지은 모든 업장을 참화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일체중생과 함께 하기를 발원하고 회향하는 것입니다.
기도발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하며 이 생명 다하도록 실천하겠다는 성스러운 마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나와 이웃 그리고 모든 중생들에게 불·보살님의공덕이 함께 하기를 서원하고 또한 자신의 편협된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되살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불자들이 가정에서 정기적으로 기도하려면 먼저 일상 생활에서 기도할 수 있는 편한 시간과 공간을 정해 놓은 다음, 절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따라서 기도를 하는데도 몸과 마음의 자세와 호흡이 중요합니다. 즉 기도와 참회를 하고자 할 때는 앉는 자세부터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두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를 취하고 그 밖에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선택해서 앉으면 됩니다.
옷차림도 편안한 복장이 좋습니다.
기도할 때에 앉는 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른 자세에서 바른 호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바른 호흡이 중요한 것은 호흡이 안정되어 있을 때 자연히 정신도 안정되어 쉽게 기도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서 기도하다 보면 호흡은 자연스레 안정이 되기 때문에 너무 호흡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 마음은 첫째 믿음이 중요합니다. 즉 기도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부처님의 가피가 나와 함께 함을 깊이 믿어야 하고, 둘째로는 참화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평소 우리 자신의 잘못된 생활에 대해 반성하고 기도하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참회하고 비우는 것이요, 셋째로는 주변의 모든 이웃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중생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닫고 그들 모두에게 평화와 안락이 깃들기를 바라며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미움을 갖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기도는 참다운 공덕을 쌓게 된다고 합니다.기도할 때 독송하는 경전은 기도의 내용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먼저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경전을 통해서 불·보살님의 서원과 나의 정성이 하나가 되는데 있습니다.
기도의 방법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다섯 가지 덕목이 있는데 그 첫째는 불·보살님께 귀의하여야 하고, 둘째는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보시하여야 하며, 셋째는 3배 또는 108배 등으로 예배하고, 넷째는 업장을 소명하고 복덕을 성취하기 위하여 참회 발원하여야 하며, 다섯째는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며 정근하는 염송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기도의 종류- 관음기도/지장기도/약사기도/칠성기도/참회기도
<관음기도>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 가장 뿌리 깊이 내린 것이 관음신앙입니다. 이 관음신앙과 연관된 경전은 ≪반야심경≫ ≪천수경≫ ≪법화경≫ 등입니다. 이 경전들은 다른 경전에 비해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산스크리트어 아바로키떼스바라(Avarokitesvara)를 뜻으로 옮긴 말입니다. 관자재, 관세음, 관음 등으로 음역 됩니다. 관세음이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관찰한다는 뜻이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괴로움에 허덕일 때 관세음보살님을 불러 구원을 청하면 32응신(應身)으로 몸을 나타내어 구원해 주신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상은 어머니 같이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며 후덕한 모습으로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연꽃은 중생이 본래부터 구비하고 있는 불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중생이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그의 명호를 부르거나 찬탄, 공양하면 이런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떠내려가지 않으며, 바람에도 날리지 않고 칼과 몽둥이에 잘리거나 다치지 않으며, 귀신에게 시달리지 않고 쇠고랑을 차지 않으며 도적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신다. 또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격하면 욕심 많은 사람은 욕심을 여의게 하고…. 아들을 원하면 아들을 낳고, 딸을 원하면 어여쁜 딸을 낳을 것이다.’≪법화경≫보문품
<지장기도>
우리 나라의 지장신앙은 삼국시대부터 매우 성행했는데 신라의 김교각스님이 중국 안휘성에 있는 구화산에 가서 수도 정진하였는데, 그 지방 사람들로부터 지장보살로 추앙된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합니다. 지장보살은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고 있으며 특히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신 분입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이 모두 성불하기 전에는 결코 깨달음을 이루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신 대비원력의 보살입니다. 이 보살님은 항상 지옥에 계시면서 오늘도 육도(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를 윤회하는 중생을 구제하고 계십니다.
≪지장보살보원경≫에 의하면 지장보살을 예배하고 공경하면 이런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풍년이 들며, 집안이 평안하고, 죽은 조상이 천상에 태어나고, 부모가 장수하며, 원하는 것을 얻으며, 수재나 화재가 없고, 헛되이 허비하는 것이 없으며, 나쁜 꿈이 없고, 출입시 신장이 보호하며, 훌륭한 인연을 많이 만날 것이다.
지장신앙은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봉행되고 있습니다. 이 신앙이 널리 신봉되는 것은 ≪지장보살본원경≫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부모가 장수하고’, ‘조상이 천상에 태어난다’는 효사상의 영향입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선망부모와 일가친척, 그리고 제반 천도의식을 봉행할 때 지장기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약사기도>
우리 인간이 한 평생을 살아 가면서 몸이 아프고 병이 들고 늙고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인간은 아픈 몸을 다스리기 위해 여러 가지 처방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만가지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생긴다고 하는 것을 깨달으시고 모든 중생들에게 마음을 먼저 다스릴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병의 근원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애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모습과 인종, 그리고 문화가 각기 다르듯이 욕심을 버리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프고 병든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와 같이 병들어 아픈 사람들이 병을 다스리기 위해 약사여래 부처님께 기도 정진하는 것을 약사기도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약사전이 있는 사찰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으며, 이런 사찰은 아픈 사람이 기도 정진하여 처방의 효과를 보았다는 기록이나 설화가 많이 있습니다.
약사여래는 정확하게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입니다. 약사여래가 계시는 세계가 동방에 잇는 정유리세계이므로 동방정유리계의 교주라고 지칭되기도 합니다.
약사여래신앙의 모체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경≫에는 약사여래의 12가지 서원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에섯번째와 일곱번째 서원이 정신적, 육체적 병고의 해결과 회복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설하고 ’12가지 서원을 성취시켜 주는 신령스런 주문’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사여래의 가피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약사여래 기도이며, 5세기 무렵 수나라 시대부터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칠성기도>
불교가 전래되기 전부터 우리 나라에는 산천과 하늘을 숭배했습니다. 즉 칠성은 하늘, 산신은 대지, 용왕은 물의 상징이자 그 세계의 지배자를 뜻합니다.
불교가 전래되자 산신과 칠성은 자연스럽게 사원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불교와 융합하여 계승되었습니다. 이것이 후대에는 도교나 민속신앙과 합쳐져 칠성이나 산신, 용왕에 대한 예경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에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산신과 칠성에 대한 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습니다. 특히 자손창성, 부귀영화, 수명장수를 기원할 때는 일반적으로 칠성기도를 올렸습니다. 이것은 태양을 숭배하며 하늘의 자손이라 생각했던 조상들의 전통과 관습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처럼 칠성 신앙은 바로 재래의 토착신앙과 불교가 엮어낸 문화인 것입니다.
<참회기도>
참회기도는 진실하지 못한 마음으로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업을 소멸하기 위해 부처님께 그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참회기도에는 이참(理懺)기도와 사참(事懺)기도가 있습니다.
이참기도는 과거와 현재에 지은 모든 죄업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며, 마음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관찰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마음이 본래 공적(空寂)한 줄 알아서 모든 죄의 모습도 공적하다고 보는 것을 말합니다. 사참기도는 몸으로는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모습을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하는 기도입니다.
참회할 때 외우는 것을 참회문이라고 하며, 우리 나라에서는 ≪화엄경≫보현행원품의 ‘지난 날 지은 모든 악업은 무시 이래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으로 지었사오니 제가 이제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등의 예가 있고,
또 ≪천수경≫에는 ‘죄는 자성이 없으니 마음에 따라 생길 뿐, 마음이 멸할 때 죄도 없어지네. 죄와 마음이 함께 없어져 모두 공하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참회라 한다’고 하였으며 신라 시대의 원효스님은 <대승육정참회문>을 지어 참회의 본 면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서산대사도 <선가귀감>에서 참회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데에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그리고 허물을 고쳐 새롭게 되면 그 죄업도 마음 따라 없어질 것이다. 즉 참회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일이다. 부끄러워 한다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드러내는 일이다. 마음이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므로 죄업도붙어 있을 곳이 없다.
불교와 인생
{인연으로 받는 새로운 생}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이 닿아야 이루어집니다.
한 알의 곡식이 여물기 위해서도 뜨거운 태양과 때맞춰 내리는 비, 그리고 결실기에는 마른 바람이 골고루 불어 주어야 하듯이 여러 가지 인연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곡식은 여물지 않을 것입니다. 한 알의 곡식에도 이토록 천지자연의 조화의 인연이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있어야 할 많은 소중한 인연이야 말로 다할 나위가 없습니다.
인간은 끝없는 세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여러 가지 인연이 모여서 지금의 이 생을 받았다고 합니다. 육도 윤회의 여섯 갈래 가운데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의 몸을 받은 것을 보면, 우리가 지은 인연들은 참으로 선근공덕이 아니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자신의 과거세에 지은 과보를 이 생에 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하고, 또 남에게 빚진 것을 갚고, 남에게 해 되는 일을 한 것을 참회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은 공덕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서 잘 살고, 좋은 공덕을 닦지 않아 전생에 잘못이 많은 사람은 이 생에 태어났어도 힘겹고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이 말에 따르면 이 생은 견뎌내야 할 과보일 뿐, 향상도 극복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이와 같이 소극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그 중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하는데, 하물며 그 어려운 단계를 다 지난 우리 불자들에게 설사 지은 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차님의 정법 속에서 사는 지금, 업의 소멸에 짓눌려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정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불자의 신행 생활}
안심입명(安心入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부딪치는 갈등과 불안을 잠재우고 평화와 안락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불자의 삶이란, 삶의 가치와 기준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의지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에서 단 한번 뿐인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소중하고 가치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려고 발심하는 사람들 가운데 불교집안에서 어릴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접해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종교를 믿지 않거나 다른 종교를 믿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바른 사고와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삶이며 불자가 되는데 특별한 절차나 과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동안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삶은 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만 있으면 됩니다. 오래 믿은 사람과 지금 시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신행생활을 하느냐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인생에서 어느 한 순간도 소홀히 여길 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삶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그 시기는 이전의 삶을 종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후의 삶을 규정합니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혼례가 그렇고,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생을 마감하는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 과정을 불자로서 맞이하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인의 삶을 다름 삶과 구별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인이 되면 불교의 고유한 의례와 의식을 만나게 됩니다. 의례와 의식은 신앙의 외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교의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문화와 풍습으로 정립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다소 형식적인 것일 수 있지만, 의식에 깃들인 참된 의미를 알고 행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의식에는 가장 기본적인 정기 법회가 있고, 입문의례로서 수계의식이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의 절실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기도와 발원의식이 있고, 종교적 성취와 발전을 위한 수련의례가 있습니다. 그 밖에 불교 나름의 의미가 부여된 특별한 시기에 치르는 명절의례가 있으며, 일반 삶 속에서 흔히 만나는 혼례, 상·장례 등의 평생의례가 있습니다. 또한 일반 신자들이 행하는 의례가 있는 반면 출가 수행자들만 행하는 전문적인 의례도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불교의식에 의하여 참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신은 물론 가정과 사회도 더욱 맑고 밝아질 것입니다.
거룩한 생명
한 개인의 생명은 타인의 생명과 구별되는 독립된 인격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준 부모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 생명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정성을 기울여 왔습니다. 후손을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 치성을 드리거나 정한수를 떠 놓고 빌기도 하였습니다. 치성을 드릴 때에는 목욕 재계하고 깨끗한 흰 옷을 갈아 입었으며, 오직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모든 정성을 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룻밤 사이에 찬물에 목욕을 열 두번 하였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옷을 열 두번 갈아입어 몸에 서린 부정을 없애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귀하게 생명이 얻어지면 태 속에 있을 적부터 거룩한 생명으로 대접하여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태교에 정성을 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성개방 풍조로 말미암아 미혼모가 급증하고, 또한 남아선호 사상의 영향으로 태아 성감별 등을 통하여 인공중절을 쉽게 행하고 있습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두 배 이상이 인공중절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거룩한 인연으로 만난 생명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일입니다. 이런 세태에 물들지 말고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는 가정과 사찰에서 바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축원해주고, 아이가 성장하여 유치원이나 어린이 법회에 나갈 수 있을 때에는 부처님 전에 기원한 부모의 발원을 알려주며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성장하면 나중에도 불교적 덕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사찰에 자주 가서 절 분위기에 친숙해 지도록 해주고,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어린이가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을 배우고 스님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란다면 커서도 바른 인간, 바른 신행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른 사람, 바른 불교인으로 교육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나와 똑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의 교육관은 인간 각자가 지극히 거룩한 가치와 덕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 자신을 참되게 존중하는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자신이 거룩한 부처님의 성품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깨닫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길러내는데 불교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적.법률적으로 성인으로 인정하지만, 가정에서는 결혼 여부를 성인으로 인정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불교에 있어서는 계를 받아 지키는 것이 성인의 가름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판단력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하는 삼귀의례를 주는 것이 좋으며, 자라서 스스로의 의지력으로 계를 받아 지닐 수 있을 때에 오계를 받도록 하여야 합니다.
불교의 혼례
불교의 혼례 절차는 과거 구원겁 전에 선혜선인과 구리선녀가 혼인을 약속하고 각각 꽃 다섯 송이와 두 송이를 연등 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전생담에서 유래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혼례를 올릴 때 꽃을 바치는 헌화의식과 혼인을 고하는 고불식을 반드시 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두 사람이 혼인하기 전에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고 스님을 청하여 법문을 듣고 미래의 행복한 삶을 서로 약속하는 풍속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혼인하는 두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복한 삶을 살아갈 뿐 아니라 장차 성불하겠노라는 서원이 있을 때 비로서 완벽한 혼례라고 할 것입니다.
혼례장소는 답답한 예식장보다 부처님께서 계시는 법당이나 절 마당 그리고 야외에서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 좋으며, 혼례복도 실용성이 없고 사치스러운 웨딩드레스 보다 우리 고유의 전통 한복 또는 개량 한복으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법회
불자들의 신행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법회 참석입니다. 그러나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태음력 위주의 생활양식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일주일 단위로 노동과 휴식이 반복되는 태양력 위주의 생활양식으로 바뀌어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법회도 현대의 생활주기와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사찰에서는 음력 위주의 법회와 양력 위주의 법회가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불자는 법회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법회란 불교에서 가장 거룩한 만남의 장이며,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배우고 전파하는 자리입니다. 즉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재를 마련하여 널리 베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여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지금 절에는 매달 같은 날이나 같은 요일에 정기법회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보름마다 포살일을 정해 자신의 허물을 대중 앞에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정기법회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달 10재일이 있는데 1일은 정광(定光), 8일은 약사(藥師), 14일은 현겁(賢劫), 15일은 미타(彌陀), 18일은 지장(地藏), 23일은 대세지(大勢至), 24일은 관음(觀音), 28일은 노사나(盧舍那), 29일은 약왕(藥王), 30일은 석가(釋迦) 재일입니다.
이 중 일반 대중이 동참하여 기도하는 법회는 초하루, 보름, 지장재일, 관음재일이며, 사찰에 따라 약사, 미타 등 한 두번의 법회를 더 진행하기도 합니다. 지장, 관음재일이 특히 많이 지켜지는 이유는 지옥의 중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는 관세음보살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지장재일에는 지장예문과 돌아가신 분을 위한 발원과 정근 즉, 돌아가신 영가의 왕생극락을 기원하고, 관음재일에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구하는 예불과 발원을 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3장 6재일이라고 하여 1월,5월,9월의 초하루와 보름에 정기법회를 개최하였으나, 요즘에는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 일요법회, 수용법회 등의 요일법회와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한 수련법회가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보통 신도법회는 평일 오전이나 오후에 주로 봉행되고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법회 등은 주로 토요일이나 일용일을 정기법회 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특별한 법회들이 있습니다. 우선 불상을 새로 모시는 점안법회(點眼法會)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상을 모시는 법회로써 부처님 상을 모시는 것은 거룩한 부처님의 재워 익히며 실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서 불상을 조성해서 봉안하는 것입니다. 탑이나 법당을 건립할 때는 기공식과 낙성식의 법회를 하고, 불상이나 탱화를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점안식을 봉행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불상이라 하더라도 점안식을 하지 않으면 작품으로는 인정 받을 지 모르지만 신앙의 대상을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의식은 일반 신도가 할 수 있는 의식이 아니라 반드시 증명법사님을 모시고 법식에 의하여 진행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제정한 계법을 받는 수계법회(受戒法會)가 있습니다. 재가신도나 출가수행자는 불교교단에 입문하기 위해 오계, 십계, 보살계, 구족계를 받아야 합니다. 계를 받는 의식을 수계식이라고 하고, 수계 후에 주어지는 이름을 법명이라고 합니다.
성지순례 법회가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사대성지를 불자된 사람으로서 순례하며 참배하는 의식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유서 깊은 사찰과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인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순례하는 것도 선지순례 법회입니다. 따라서 이 법회는 성지를 순례하며 신심을 묵돋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찬란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배우고 느끼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방생의 공덕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다른 생명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생명경시 풍토 속에서 방생(放生)이 주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보다 넓은 마음에서 생명계를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만생명과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요, 방생의 공덕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음력 정월 대보름, 3월 3일, 8월 보름에 방생법회를 열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특별한 시기를 정하지 않고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방생은 죽게 된 생명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죽이지 않고 보호하는 의식입니다. 작게는 사람의 손에 걸려 죽게 된 고기나 새 등을 사서 자기 살던 곳으로 다시 놓아 주는 것이지만, 본래의 의미는 불살생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서 만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을 하는 것은 전생의 부모형제를 죽이는 것이고, 미래의 부처님을 죽이는 행위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생의 반대인 방생의 공덕을 짓는 일은 결국 내 부모형제를 살리는 일이며 나 자신의 거룩한 생명을 더욱 살리는 일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생의 공덕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째 자식을 원하는 사람은 방생하라. 남을 살게 해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니 자식의 경사가 있게 된다.
둘째 임신을 하면 방생하라. 방생은 만물을 보호하는 것이니 산모도 반드시 보호받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방생하라. 기도함에 방생의 공덕이 크기 때문이다.
넷째 예수재를 지낼 때에도 방생부터 행하라. 방생으로 불보살님의 감동을 받으면 큰 복을 받기 때문이다.
다섯째 재계를 할 때,
여섯째 출세를 구하려 할 때,
일곱째 염불할 때도 방생을 하라고 하였다.
방생은 선근공덕을 짓고자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행할 때도 있고, 재난을 만났거나 병 때문에 원을 세워 방생을 할 때도 있고,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전후로도 방생을 합니다.
요즘은 방생이 단순히 물고기나 새를 놓아 주는 일 말고도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는 등 어렵고 소외된 이웃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푸는 사회 봉사적인 행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불공
불공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불공은 단순히 물질을 공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귀의, 참회, 공양, 발원, 회향이 여법하게 갖추어지는 의식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불공은 우리의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움과 어려움에 닥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올리기도 하고, 혹은 원하는 일들이 뜻대로 되었을 때 부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의 성패나 행운, 일상적인 일에 관계없이 항상 진리 속에 살면서 삶의 눈을 뜨게 해준 고마움과 부처님의 크신 위신력을 믿고 존경하며 본받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불공을 올려야 합니다.
불공의 핵심은 베품입니다. 공양은 음식이나 의복, 혹은 그 밖의 물을 삼보님과 부모님, 스승과 망자에게 공급하는 것으로서 특히 삼보님께 공양하는 것은 선업을 쌓는 일로 크게 장려하고 있습니다.
공양하는 물건이나 공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간의 재물이나 향, 꽃 혹은 생활용구를 공양할 수도 있고, 보리심을 일으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닦는 공양도 있습니다.
몸(身)으로 하는 예배 공양과 입(口)으로 하는 찬탄과 뜻(意)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존중하는 삼업(三業)공양, 음식, 의복, 탕약, 방사(房舍) 등을 올리는 것을 사사(四事)공양이라고 합니다. 또한 공양은 중생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중생들의 깨달음을 위해 늘 법(法)공양을 베푸십니다. 부처님께서는 공양 중에서도 법공양이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불교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땅에 전래된 지 160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불교는 우리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구별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습니다.
5대 명절-부처님 오신날/출가절/성도절/열반절/우란분절
부처님 오신 날
음력 4월 8일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며 법요식을 봉행합니다. 법요식 가운데는 욕불의식이 있는데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복하며 향탕수로 목욕시키는 의식입니다.
이 의식은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 마리 용이 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솟아나게 하여 신체를 목용시켰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그 순서는 탄생불을 불단에 모시고 룸비니 동산의 화원을 상징하는 꽃바구니를 만들고 향탕수 즉, 감로다를 준비해서 비밀스럽게 목욕시키는 것입니다. 이 의식은 큰스님을 증면법사로 모시고 비밀스럽게 행했던 것인데 요즘은 대중화 되어 스님과 신도가 함께 관욕의식에 참석해서 정수리에 향탕수를 부으며 공덕을 쌓는 풍속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또 연등회는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왕이 불전에 1만등을 켜서 공양한 예가 있고, 가난한 여인이 한 등을 켜서 1만등을 능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등을 켜는 이유도 가정과 사회, 세계를 밝히겠다는 서원의 발로인 것입니다.
이 연등법회는 《삼국유사》에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경주의 남녀가 다투어 탑돌이를 한 기록에서 전통문화 행사로 치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님을 따라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염불을 하고 부처님 공덕을 찬탄하고 자신의 소원을 빌며 등을 밝히고 극락왕생을 기원하였습니다. 이 의식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국태민안과 개인의 평안을 바라는 뜻에서 일반 민속화 되었던 것입니다.
출가절-출가하신 날
음력 2월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입니다. 모든 중생을 생로병상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신 날로서 불자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지는 날입니다.
성도절-깨달음을 이루신 날
음력 12월 8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날입니다. 이 날을 기념해 선방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하며, 일반 사찰에서도 발심 정진하는 철야법회를 갖습니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수행을 본받아 불자들은 부처님처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지게 됩니다.
열반절-깨달음을 이루신 날
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드신 날입니다. 부처님의 열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확실히 끊었다는 점에서 반열반이라고도 합니다. 즉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시던 시기는 아직도 인연의 꺼풀인 육체를 지니신 단계이지만, 그 꺼풀조차 벗었다는 점에서 깨달음의 큰 완성으로 보는 것입니다. 불자들 또한 몸을 바르게 하고 노여움을 참고 악심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집니다.
우란분절-백중
음력 7월 15일은 여름 안거 해제일이며 백중날입니다. 백중(白衆)은 과일과 음식 등 백 가지를 공양한 백종(百種)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선방에서는 하안거 동안 정진하면서 생긴 스스로의 허물을 대중 앞에 사뢰고 참회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며, 불자들은 선망부모를 선도하는 우란분절법회를 가집니다.
우란분절법회는 안거수행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얻은 후 천안으로 어머니를 찾아 보았더니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을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 때에 부처님께서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선망부모를 위하여 하안거 해제일에 음식, 의복, 등촉, 평상 등을 갖추어 시방의 고승대덕들에게 공양하면 그 공덕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그대로 행한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음력 4월 초파일과 백중을 일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고 합니다.
민간에서는 이 날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명절입니다. 세벌김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 및 머슴들의 대동굿으로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었습니다. 불자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과 햇곡식을 들고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산천도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밖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지 1,600여년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불교는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 속에 받아 들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속과 불교행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습니다.
정월은 새해의 풍요와 안정을 희구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쉬면서 다가올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정월에 사찰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행사를 했습니다. 즉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 온 장승이나, 서낭당, 당산 거목, 국사당의 제사에 참여하거나, 절 입구의 서낭이나 장승 앞에서 원앙재(연말), 성황재(연초)를 지내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했습니다.
또는 신년 첫 법회를 사찰의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지내며 일년의 평안의 발원하기도 합니다. 이 법회를 통알(通謁) 혹은 세알(歲謁)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록하여 삼보와 호법신중, 그리고 인연있는 일체 대중에게 세배 드리는 의식입니다.
2월에는 연등놀이가 유명했으나 요즘은 4월 초파일 연등행사로 바뀌었습니다. 등은 각종 동식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 이외에도 일월등, 종등, 북등, 칠성등, 오행등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이 연등행사를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될 정도로 장엄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입춘에는 홍수, 태풍, 화재의 세 가지 재난인 삼재(三災)를 벗어나게 하는 삼재풀이를 하고 일년 내내 풍요로움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삼월 삼짇날 불공, 단오, 칠석 등 각종 민속절기 마다 절에서는 불공과 기도를 올리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으며 기원하기도 합니다.
민족의 세시풍속을 불교가 받아들여 불교명절화한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중들의 소망을 받아들여 고통을 함께 나누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가 민간 신앙을 수용, 전승하며 발전시켰기 때문에 민중과 함께 가꾸어 나가는 민족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정신행}
가정은 우리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인격이 성숙해가는 곳이고, 인류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기초적인 장소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조건없이 베풀고 돕는 기본적인 보살의 생활을 배우는 곳이며, 가족에서 출발하여 일가 친족과 이웃에게 연결되는 출발점으로 최상의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사회생활을 위한 기능과 지식은 학교에서 얻을 지라도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덕성과 지혜 품성은 가정교육에서 길러지게 됩니다.
진리의 가르침에 기초한 훌륭한 가정에서 재능과 인격의 원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자의 가정은 항상 부처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님을 부처님처럼 받들고 부모는 자녀들이 지극히 높은 덕성과 아름답고 밝은 지혜와 큰 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믿으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수행 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삶을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수행이라면 살아 있는 모든 시간은 바로 수행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가신자들이 오로지 수행만을 위해 출가한 스님들처럼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할 지라도 하루 하루를 경건하게 보내고 수행자와 같은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자질과 성품이 다릅니다. 상근기에는 참선, 중근기에는 경전을 읽는 간경, 하근기에는 불보살의 명호를 지성으로 외우는 염불을 각기 적합한 수행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수행법은 자신의 성품에 맞게 선택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것이 좋습니다. 혹은 기도와 절, 참회와 발원도 불자들이 가정에서 행할 수 있는 좋은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중의 수행법으로는 단순하게 일정한 시간을 정해 108배를 한다든지, 염불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수행 자체가 초심자에게는 맹목적, 의무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략 집에서는 입정, 삼귀의, 독경, 기도발원, 사홍서원의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됩니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인 새벽의 수행은 그날 하루를 즐겁고 보람되게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저녁의 수행은 하루를 돌이켜 반성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수행시간만이 아니라 평소의 모든 일, 모든 사람에 대해 언제나 육바라밀행을 실천하도록 자신의 생활을 가다듬는다면 매일매일의 생활은 복된 생활로 바뀔 것입니다.
불자들의 가정신행은 항상 기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중생들은 지은 업장이 두텁고 복덕이 엷어 하는 일이 뜻대로 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온갖 장애와 역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를극복하기 위해 지혜와 복덕이 구족한 불보살님께 의지해 가피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방적인 어떤 것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서원적 발원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찬탄과 참회, 감사와 발원을 구체화시키는 고도의 수행방법인 것입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불자의 자세}
세상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때 중생은 어쩔 수 없이 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게 됩니다.
불보살의 가피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바탕으로 수 많은 생을 두고 자신을 희생해 온 공덕으로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중생이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모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옥중생조차 모두 구원하겠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이 있고, 자신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부르면 모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하겠다는 아미타부처님의 서원도 있습니다. 항상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중생을 위로하는 관세음보살과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을 치유하는 약사여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제불.보살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중생 하나 하나는 스스로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에서 끝난다면 불교인이 세상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불교인은 불.보살님의 본원가피력에 힘입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듯이 스스로 중생구제의 큰 서원을 세워 일체중생에게 그 공덕을 회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자기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한탄합니다. 그러나 불교인은 우리 몸에 나타나는 재난이나 환경이 모두 내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고난을 당하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지은 허물임을 알고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그 허물은 금생의 것일 수도 있고 전생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당해서도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역경은 과거에 지은 잘못의 과보가 현재에 나타남으로서 소멸되는 것이니 잠복 중에 있던 나쁜 원인이 소멸되면 다행스러운 일이며 새로운 희망이 싹틀 전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불자는 고난 앞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극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지은 바 원인이 있어서 고난이 나타나는 것처럼, 희망은 오늘 새롭게 씨를 뿌림으로서 커지는 것이므로 고난을 당해서도 새 희망을 일으키고 용맹정진하여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고난과 역경을 당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 끊임없이 깨달음의 마음을 일으켜 운명 그 자체를 바꿔 나가야 합니다.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인연이 다하여}
사람을 육체로만 판단할 때 사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지수화풍(地水火風: 흙, 물, 불, 바람)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진 이 육체는 미혹한 중생의 마음 상태가 인연이 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인연이 다하여 육체는 없어진다 해도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하는 한 여전히 미혹한 상태는 남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혹한 마음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절대적인 깨달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또한 없는 것입니다. 중생은 미혹 상태에 집착하여 육체를 잃은 후에도 여전히 어리석게 미혹의 세상을 헤매이다 미혹된 몸을 받습니다. 이것이 윤회(輪廻)입니다. 생전이냐 생후냐 하는 것은 오직 육체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윤회하는 영혼(識)을 중유(中有 또는 中陰)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다음 생을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하며,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천도의식은 바로 이 단계에서 행해집니다.
불교의 장례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하는 의식을 시다림(尸陀林)이라고 합니다. 원래 인도의 시타림(sita-vana)에서 유래한 말로 시체를 버리는 추운 숲(寒林)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이 우리 나라에서는 망자를 위해 설법하는 것으로 뜻이 변했습니다. 사다림 법문은 신라시대 이후로 관습화되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성행하였고 오늘날 불교장례법으로 일반화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망자에게 <무상게>를 일러주고 입관하기 전에 목욕의식을 행합니다. 경은 보통 《아미타경》,《금강경》, 《반야심경》등을 독경하고 서방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며 발원을 합니다. 발원의 대상은 동서남북 중앙에 있는 화장세계 노사나불과 동방 만월세계 약사불, 서방 극락세계 아미타불, 남방 환희세계 보승불, 북방 무우세계 부동존불입니다. 목욕을 시키고 수의를 입히는 매 단계마다 영가를 위한 법문이 있게 되는데, 이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천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례절차가 끝나면 발인을 하게 되는데, 임시로 단을 만들고 재물을 정돈한 후 영구를 모시고 나와 제단 앞에 모십니다. 법주가 거불과 청혼을 한 다음 제문을 낭독합니다. 법주의 법문이 끝나면 대중이 다 함께 《반야심경》을 독송한 뒤 추도문을 낭독하고 동참자들이 순서대로 분향합니다. 발인이 끝나면 인로왕번을 든 사람이 앞장서고 명정, 사진, 법주, 상제, 일가친족, 조문객의 순으로 진행합니다.
불교의 전통적인 장례법은 화장입니다. 이를 다비(茶毘)의식이라고도 합니다. 나무와 숯, 가마니 등으로 화장장을 만들고 관을 올려 놓은 후 거화편을 외우고 불을 붙입니다. 불이 붙은 다음에는 미타단을 신설해서 불공을 올리고 영가를 일단 봉송한 뒤에 위패를 만들어 창의(唱衣)합니다. 시신이 어느 정도 타면 뼈를 뒤집으며 기골편(起骨篇)을 하고 완전히 다 타서 불이 꺼지면 재 속에서 뼈를 수습하여 습골편(拾骨篇)을 합니다. 뼈를 부수면서는 쇄골편(碎骨篇)을 하고 마지막 재를 날리면서는 산골편(散骨篇)을 합니다.
유교 풍습의 여파로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화장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사대(육체)는 물질(흙, 물, 불, 바람)의 인연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까지 육체에 집착하여 화장보다 매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진정으로 고인을 위한다면 화장 후 납골을 수습해서 본처(본래 고향)로 흩어 주고 절에 묘셔서 천도재를 잘 지내드리면 좋을 것입니다. 천도재를 올리고 난 다음에는 위패를 납골당에 모시던지 아니면 가까운 성스러운 가족탑을 세워서 모시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병들어 아픈 사람도 다른 사람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 받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살은 중생을 위해 피와 살을 모두 준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죽은 이후에 이 육신에 대해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길 것인가
살아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데 나의 장기가 쓰여진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불자들은 자신과 남이 더불어 사는 윤리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와 남을 위한 공덕-재(齋)
재(齋)는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닦는 의식입니다. 재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인 우포사다(uposadha)에서 유래되었는데 스님들의 공양의식을 뜻한다고 합니다. 대개 스님들에 대한 공양은 집안의 경사나 상사(喪事), 제사 때에 이루어졌으므로 나중에는 제사의식으로까지 전환되었습니다. 《목련경》에는 공양을 받는 스님의 숫자에 따라 오백승재의 명칭이 나오고, 중국에서는 양무제가 사람의 숫자에 제한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로이 동참할 수 있는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반승(飯僧)이라는 명칭으로 행해졌다고 합니다.
원래 이 재는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간단히 불전의식을 집행하고 공양에 임했으나 그것이 점차 큰 법회의식으로 되어 호국법회의 형식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베풀어지는 일체의 행사를 통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스님에 대한 공양부터 기도, 불공, 시식, 제사, 낙성, 기타 법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재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천도재
자손이 조상을 받드는 것은 인간의 근본을 귀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풍습입니다.
천도재는 망자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를 지내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었던 모든 업을 소멸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의식입니다.
그 내용은 영가에게 <무상게>를 일러주어 죽음이라는 현실을 만물 변화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영가로 하여금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따라 원래 청정한 마음을 되찾도록 인도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권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영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에 참석하여 공덕을 짓는 이들에게도 생사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재의 공덕은 망자와 동시에 재를 올린 이에게도 회향되는 것입니다.
재의 진행은 주로 도량장엄을 하고 시련, 대령, 관욕, 불공, 시식 등으로 행해지며 그 종류도 49재, 100일재, 지제(忌祭), 소상, 대상 등의 정기적인 천도재와 수륙재, 필요에따라 시설하는 부정기적인 천도재 등이 있습니다. 정기적인 재의 경우 돌아가신 날부터 시작하여 매 7일 마다 계속하여 49일 되는 날까지의 7번과 100일재, 소상, 대상을 합하여 10번을 하는데, 이는 명부의 시왕(十王)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명부신앙에 근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의식을 행하는 잘차에 따라 상주권공재(常住勸供齋), 각배재(各拜齋), 영산재(靈山齋) 등의 몇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상주권공재이고 여기에 명부신앙의례를 첨가한 것이 각배재이며, 법화신앙을 가미한 것이 영산재입니다. 절차는 시련(侍輦)에서 영가를 맞아 들이고, 대령(對靈)에서는 영가를 간단히 대접하여 예배케 하는 것입니다. 관욕에서는 불보살님을 맞이하기 위해 영가를 목욕시키고 신중작법으로 모든 신중을 맞아 들입니다. 상단권공에서 불단에 공양을 드리고 법식을 베풀어 받게 합니다.
그리고 봉송편에서 불보살님을 모시고 영가를 봉송하고 마치는데 불자는 망자를 위한 기도로서 최소한 49재만이라도 지내야 할 것입니다.
수륙재
수륙재란(水陸齋)란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이나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입니다. 양나라 무제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사생육도(四生六道: 사생-태, 란, 습, 화 육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중생들이 한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찌하여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가? 이들을 제도하는 것이 모든 공덕 중에서 으뜸이 된다’고 하자 지공선사에게 부탁하여 수륙재를 행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22년 수원 갈양사에서 혜거국사가 처음으로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고 견암사, 석왕사, 관음굴 등에서 고려 왕씨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 수륙재는 많은 물자와 인원이 동원되는 행사로서 국행(國行)수륙대재라고 할 정도로 국가적인 지원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영산재
영산재(靈山齋)란 영축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모습을 이 세상에 재현한 의식입니다. 즉 온 세계 모든 성현과 스님을 청하여 봉양하며 법문을 듣고 시방의 외로운 혼령을 천도하고 무주고혼 영가들에게 장엄한 법식을 베풀어 극락왕생 하도록 하는 의식입니다.
먼저 도량을 장엄하는데 영산회상을 상징화하여 법당 밖에 괘불을 시설하고 의식 도중에 범패 등의 불교음악을 공양하여 장엄합니다. 단의 구성은 법당과 같이 상단은 괘불 앞에 설치하고 향, 차, 꽃, 과일, 등불, 쌀 등을 공양하고, 중단은 신중단으로, 하단은 그날의 영혼에게 제사를 드리는 영단으로 구성합니다.
절차는 49재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에서 시작하여 의식단 앞에 이르고 잠시 정좌한 다음 각 단마다 권공예배와 축원을 하고 영단에 이르러 시식을 하고 회향하게 되는데 의식을 맡은 스님을 선두로 참가한 대중이 도량을 돌면서 회향합니다. 이 의식은 자작자수(自作自修)라는 수행과 기원, 회향, 추선공양이라고 하는 교리적 방전과 함께 발전된 의식이며, 우리 나라 전통음악과 무용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또한 민간 신앙까지 수용한 불교의식이자 국가가 지정한 무형문화재이기도 합니다.
예수재
예수재(豫修齋)란 살아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 두는 재의식으로서 속설에는 자신의 49재를 미리 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역수(逆修)라고도 합니다. 49재는 순수하게 죽은 이를 위한 재이나, 예수재는 살아 있는 이가 미리 자신의 사후를 위해 준비함으로써 생자나 망자가 행복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의례입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참회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지계와 보시로써 스스로 내생의 복락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경전을 독송하여 해탈과 열반의 길에 들어서고자 하는 것이며, 불보살님과 명부시왕을 비롯한 많은 성현들에게 공양을 올려 은혜를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불보살님과 호법신중의 가피력 아래 스스로의 참된 수행과 공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닦아 나가는 의례인 예수재는 불교신앙의 전통을 대중과 함께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의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사는 세상
{공동체 생활}
매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 갑니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친족, 학교에서는 스승과 친구, 그리고 직장에서는 동료와 상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자신과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나중에는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너’와 ‘나’라는 입장에서 자기 것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에서 시작됩니다. 함께 살아가면서도 ‘너’와 ‘나’로 나뉜 채 살아 가는 우리는 서로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지에서 벗어나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결국 ‘너’와 ‘내’가 서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하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질 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한층 가깝고 따뜻한 사이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수행이 필요하고, 자신보다 나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배우려는 자세로 나아가야 하며,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자신도 과거에 그랬음을 반성하며 친절하게 일러주는 태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행동은 어디서나 문제의 화근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 대는 사람은 물길을 바로잡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바로잡고
저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현명한 이는 지혜롭게 자신을 다스린다.
《법구경》
수행과 화합의 공동체
거대한 댐이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듯이 사회라는 큰 틀도 개인의 변화에 크게 좌우됩니다. 특히 도시화되고 문명의 이기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있어 개인의 깨달음과 바른 삶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개인의 변화하는 이 시대 개혁의 출발점이자 완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동체에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도덕과 최소한의 규범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원칙으로 다음의 열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열 가지 원칙들은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에 바탕을 둔 것으로 몸과 관련된 것은 세 가지, 입은 네 가지, 생각과 관련된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몸과 관련된 규칙으로는 남의 것을 훔치기 보다는 남에게 베풀 것, 다른 사람과 삿된 관계를 갖지 말고 정숙한 생활을 할 것, 술에 탐닉하지 말 것을 강조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해로울 뿐 아니라 다른 이를 고통에 빠뜨리는 근원이 됩니다.
둘째로 입으로는 먼저 남에게 거짓말 보다는 정직한 말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러나 그것은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 되어 거짓말에 쏟는 정열과 노력을 돌려 정직하게 살아가야 함은 물론 욕설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안온한 상태에서 서로 흉금을 털어 놓고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을 속이는 일은 나를 속이는 일이고 이런 행동이 점점 심해지면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남을 속이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의식은 언제나 잠재하고 있어 나중에는 스스로 항상 누가 나를 속이지 않나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깊어지면 심리적 변화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바른 말을 하여 신뢰의 바탕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이 잘못되는 것을 못 봐주는 의식에서 나온 속담일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믿음보다는 불신이 심화될 것입니다. 불자들은 진실한 말과 행동으로 남들을 이간질 시키거나 불신의 소지를 남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간질이 깊어지면 사회가 혼란스러워 집니다.
셋째는 생각과 관련된 규칙들입니다. 우리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속에 살아갑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 뿐입니다. 사실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면 탐욕이 그 근원입니다. 따라서 탐욕을 버리는 정신수양이 필요합니다. 한편 잘못된 생각 한 번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되는 때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성냄이 그 으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성격을 잘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며 그것은 수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시(布施)
인색한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베풀 줄을 모른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베푸는 걸 좋아하나니
그는 그 선행으로 인하여
보다 높은 세상에서 축복을 누리게 된다
《법구경》
옛날 인도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무엇이든 베풀어 주면 그 공덕으로 자신에게 좋은 과보가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과 수행자 등을 만나면 자신을 복을 짓게 해준다고 믿고 의지하며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 주었습니다. 까닭에 도움을 받는 사람을 복전 또는 복밭이라고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보시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신 후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땅에 머므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연민과 사랑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연민과 사랑의 마음인 자비를 항상 베푸는 것이 보시입니다. 보시에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재시(財施),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無畏施),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법시(法施)가 있습니다.
자기 것을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보시는 자신의 것을 남에게 기쁜 마음으로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보시는 우리의 집착과 그로 인해 생긴 모든 번뇌를 없애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탐욕을 버리는 가장 좋은 길은 첫째, 지혜의 눈을 뜬 것이요. 둘째, 행동으로 나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어떤 마을에 두 부자가 있었다. 갑(甲)은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는 반면 을(乙)은 그렇지 못했다. 많은 보시와 좋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을은 존경을 받지 못하자 항상 그것을 궁금하게 여겨왔다. 그러던 어느날 을이 집 근처의 숲을 거닐고 있을 때 거지가 앉아 있었다. 을은 그에게 돈을 주고 돌아왔다. 다음날 을이 산책을 하고 있을 때 전날 보았던 거지가 또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을은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그에게 돈을 주었다. 그러자 거지는 갑도 자신에게 돈을 주지만 을처럼 자신의 얼굴을 바라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 때서야 을은 자신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처럼 보시를 행할 때에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물질의 소유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지닌 평등한 존재입니다.
부처님은 보시할 때 어떠한 보답도 바라면 안되며 심지어 자신이 남에게 보시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계(持戒)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 전생에 옷을 꿰매다가 이의 등을 찔러 죽인 대가로 열반에 전에 등창이 생겨 고생했다고 하는 내용이 전생담에 실려 있습니다. 이것은 깨달음에 이른 사람조차도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알게 모르게 행하는 우리의 행동은 결국 다시 본인에게 되돌아 온다는 법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행동을 하더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동기나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듯, 악한 행위에 좋은 결과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행동은 내일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항아리를 채우는 것과 같이 우리가 ‘별거 아니겠지’하고 가볍게 생각하면서 저지른 악행이 결국 재앙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합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에 물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행위는 쉽게 몸에 배이지 않지만 나쁜 행위는 그렇지 못합니다. 항상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자신을 다스리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열반경에서 제자들에게 계(戒)를 스승 삼아 열심히 정진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미 저질렀거나 아직 저지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다름 사람의 결점은 일체 보지 말라.
이미 저질렀거나 아직 저지르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그대 자신의 잘못을 반드시 되돌아보라.
《숫타니파타》.
인욕(忍辱)
불교를 흔히 수행의 종교라고 합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아가며 참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참는다는 것은 탐내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을 자재하는 것을 말하며, 탐내는 마음을 잘 참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고, 성내는 마음을 잘 참기 위해서는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물이나 조건 혹은 상대방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로 하여금 분한 마음이 솟아 오르게 하는 상대방이 있을 때에는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거나 혹은 그가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그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도 생기고 저절로 참을성이 생겨나기도 할 것입니다.
마치 초보 운전자가 길과 교통체제를 알지 못해 방황하는 것을 보고 경멸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살며시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와 이해하는 참을성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정진(精進)
과거의 버릇이 얼마나 오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 주는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을 살려고 해도 과거의 탐욕에 길들여진 버릇을 하루 아침에 털어 버리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몸과 말과 마음의 수행이 어느 정도 되는가 싶다가도 금방 그것을 흔들고 허물어 버리는 삼독심이 솟구치곤 합니다.
그러므로 보다 굳건한 마음으로 생활하면서 과거의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투철하게 깨달음을 이루어 다시는 어제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그 길을 용감하게 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잘못을 반복하여 저지르더라도 그 보다 더 끈질기게 다시 떨치고 일어나는 용맹을 가져야 합니다. 깨달음을 이루고 못 이루는 것도 정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측해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결과에 어떤 과보를 받을지 안다면 정진에 많은 장애를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 열심히 깨달음의 길을 향해 정진해야만 어제와 다른 내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선정(禪定)
앞에서 본 것처럼 선정은 개인의 수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싸움도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내가 먼저 인욕하고 깊이 있는 생각으로 모든 행동을 차분하게 처리한다면 상대방도 다투려고 하는 마음보다는 평온한 마음으로 상대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 수행인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선정은 지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머리가 좋은 사람만 가는 것도 아니고 학벌과 학위로 이루어 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함으로써 자신이 그 동안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전체의 모습과 나와 남으로 나눌 수 없이 하나로 연결된 삶의 전 과정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지킬 것과 얻을 것, 버릴 것 등을 바르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지혜(智慧)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꽃피울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향기를 줍니다. 마치 언덕에 곱게 핀 꽃이 그윽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그 향기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듯이, 지혜로운 사람들 곁에 사는 삶은 나와 이웃 그리고 자연의 세계를 정화시키는 감로의 물줄기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깨끗한 사람이 되고, 서로 동정심을 가지고
청정한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하라.
그것에서 서로 사이좋게 총명하게
그리고 고뇌를 없애도록 하라.
《숫타니파타》
{사람과 사람}
부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부처님께서 밝혀 놓으신 길을 통해 우리의 삶을 비추어 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부모와 자식
바다와 같이 넓고 끝없는 사랑을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여 스스로 독립된 인간으로 살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자식을 위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중요한 존재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분신과 같은 존재이며 활기와 희로애락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 사이는 인륜이 아니라 천륜 즉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일과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 자식이 악행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셋째, 적절한 교육과 생계 수단인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 주어야 한다.
넷째, 결혼할 때가 되어 배우자가 정해지면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자식들에게 의지하여 살게 됩니다. 이것은 자식이 어렸을 때 부모에게 의지해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효도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어준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은
첫째, 늙으신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이 항상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둘째, 부모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집안 일을 이어 받아 바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셋째,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며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는 부모와 자식간의 세대차이를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고집하기 보다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어느 세대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자기 것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다정다감한 친구같은 부모가 되고, 부모를 인생의 선배로서 존경할 줄 아는 자식이 되면, 소위 세대간의 벽도 허물 수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
서당에서 댕기를 맨 아이가 종아리를 드러내고 스승 앞에 서 있는 모습의 옛 그림은 보는 이의 마음에 훈훈한 정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익살맞은 표정을 짓는 학동, 엄한 얼굴이지만 친근감이 느껴지는 스승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제지간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모습을 요구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자신에게 있어 모든 지식을 제자에게 가르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제자들을 격려하고 직접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고, 제자는 열심히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스승을 존경하고 살아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부
불교에서는 전생부터 지금까지 5백 생의 인연이 있어야만 부부가 된다고 합니다. 그 만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의 만남은 소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흐르는 물과 공기처럼 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소중함을 잊어 버리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한 쪽을 잃게 되면 그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회를 형성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자식들은 그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될 것입니다.
문제 있는 부모로부터 문제아가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수많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부모에게 문제가 생겨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것은 자식입니다. 순간의 기분에 이끌려 남편으로서 아내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내던져버린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를 섬기는 것,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하지 않은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다.
《숫타니파타》
친구
친구의 제2의 ‘자신’이라고 합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던 사람도 친구를 잘못 만나면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신을 목숨처럼 소중하게 생각해 주는 친구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 하는 양이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있느냐 하는 질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사리불존자와 목건련존자가 있었습니다.
두 분은 한 스승 밑에서 수행을 하던 친구였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연락을 해 주기로 약속하고 살다가 어느날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까이 하면 유익한 친구와 멀리 해야 할 친구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까이 할 친구>
첫째, 친구가 취했을 때 재산을 지켜주고 두려워할 때 보호자가 되어 주며, 필요한 때는 내가 필요로 하는 두 배 이상의 재산이라도 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둘째, 즐거우나 괴로우나 항상 변하지 않는 벗이란 자기의 비밀을 말해주고 또한 나의 비밀을 지켜줍니다. 재산을 잃어 가난해졌을 때도 버리지 않고,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리는 친구입니다.
셋째, 착한 말만 하는 친구는 악한 일을 멀리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합니다. 새로운 정보와 성인의 가르침을 말해주고 인도해 주는 친구입니다.
넷째, 동정있는 벗은 친구가 약해졌을 때 기뻐하지 않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기뻐합니다. 비난하고 험담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찬양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친구입니다.
나의 결점을 일러주는 친구,
나의 결점을 꾸짖어 주는 친구,
이런 사람을 만나거든 그를 따르라.
그는 나에게
보물이 감추어진 곳을 일러주는 사람 같나니
그를 따르면 많은 이익이 있다.
《법구경》
<멀리할 친구>
첫째, 무엇이나 눈에 띄는 것은 가져가고,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으려고 한다. 자발적인 아닌 두려움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합니다.
둘째, 교묘한 말로 우정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필요없는 애교를 부립니다. 해야 할 일이 눈 앞에 닥치면 태도가 달라집니다.
셋째, 감언이설로 상대방의 나쁜 일에만 보조를 맞추고 좋은 일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칭찬하고 돌아서면 비웃고 험담을 합니다.
넷째, 생활이 문란하고 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즐길 때는 좋지만 결국 무기력하고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친구마저 파멸시키므로 멀리해야 합니다.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직장에서
현대인의 스트레스 절반 이상이 직장에서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과중한 업무와 직장 동료와의 갈등으로 인해 받는 심리적 압박감은 대단히 심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면 서서히 해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가 먼저 달라지면 전체 사회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과 격려, 이해를 통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상사는 부하 직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일에 대한 흥미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야 합니다. 또 적당한 여가를 주어 생활의 활기를 찾도록 해주고, 잘못이 있을 경우엔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잘 타일러 줍니다.
반대로 부하 직원은 직장과 인생의 선배인 상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상사가 없는 곳에서 상사의 험담을 해서는 안됩니다.
직장은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삶의 터전입니다. 직장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따른 보수로 생활을 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기 성취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청정한 세상을 위하여}
한때 우리 나라는 금수강산이라고 하여 물 맑고 경치 좋기로 유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경제발전의 대가로 금수강산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몇 차례 물파동을 겪으면서 우리는 수돗물이 마음대로 마실게 못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 좋고 물 좋기로 이름난 우리 나라에서는 이제 마실 물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중에는 생수를 만들어 파는 업체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의 물을 수입해다 팔기도 합니다. 웬만한 가정에서는 깨끗한 약수물을 구하러 산에 오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그나마 약수물도 믿지 못해서 전문 생수업체에서 생수를 사서 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시 근방의 산에라도 올라 보면 탁 트인 풍경이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희뿌연 먼지로 덮인 회색도시만이 나타납니다. 비라도 오면 이 지가 산성비는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래서 함부로 비를 맞을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자동차들이 뿜어 내는 매연 속의 도심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는 누구라도 느껴 보았을 것입니다. 또한 일상 생활 속에서 쉽게 실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오존층이 파괴되는 현상도 지구 전체로 보면 인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물과 공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쓰레기, 중금속, 방사능 등등 이 이외에도 환경과 관련된 수 많은 문제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환경오염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자연 속에서 너무나 미미했으며 그나마 자연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동도 포용할 수 있는 순탄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연의 재생력은 둔화되었고, 이제는 그 능력을 잃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17~18세기 이후부터 서양의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산업화가 이루어진 시기부터였으며 우리 나라로 한정해서 본다면 60~70년대의 경제 개발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대한 훼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자라고 있으며, 이 동식물들은 서로 다양한 먹이 사슬을 유지하며 하나의 균형있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연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를 베고,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 냈으며, 여러 생활 용품들을 만들어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늘어나는 인구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생산 활동, 그리고 물질적 생활은 어느새 자연 생태계의 원활한 흐름을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과학문명과 경제개발만으로 이러한 상태가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과학문명과 결합된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욕심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생태계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자연을 그저 개발하고 이용할 대상으로만 보았으며 자연이 인간과 하나라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을 개발하는 것이 우리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늘어가는 물질적 풍요가 자연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개발의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일찍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하는 서양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인구 증가가 일으키는 문제보다 사람의 욕심이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간디는 ‘자연의 자원은 인류가 생존하기에 충분한 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인류의 탐욕으로 마침내 자연은 돌아 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문제를 두고 우리 불자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연기의 가르침은 이러한 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과 우리는 원래 둘이 아니며 서로 의지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동체대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환경을 바라 보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시켜 주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과 환경이 둘이 아니라면 자신의 몸을 스스로 망치는 일을 하지 않듯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에서 기본적인 요소는 아무래도 의식주 생활일 것이며 현대의 물질 문명 역시 의식주 생화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의식주 생활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모범이 될 것입니다. 만족을 아는 생활, 무소유와 근검 절약이라는 생활원리는 환경을 살리는 길이며 자신을 살리는 길입니다. 예를 들어 발우공양을 하는 경우 음식 쓰레기를 줄이고, 수질오염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됩니다. 나 하나의 실천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소극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바꾸면 세계가 바뀐다는 적극적인 사명감으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찰 주변은 그나마 청정한 지역에 속하며 이를 계속 지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분리수거하고, 합성세제 1회용품 등 환경오염의 소지가 있는 제품의 사용은 자제하며, 절제된 소비로 지나친 자원 낭비를 줄여가야 할 것입니다.
불자들이 생활에서 구현하는 이 실천은 개인적으로 다소 번거로운 점도 있을 것이지만 환경 보호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개개인은 사회 속에서 환경 보호의 파수꾼이 되어 환경을 지켜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가는 자신의 상품생산이 자연을 파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정치가는 정치가 대로,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자신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환경 보호 활동을 펼쳐야 합니다.
환경보존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각종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의식전환 입니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여 자연을 개발 대상으로 보고, 그래서 자연파괴를 부추기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에도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 또한 그 삶을 지속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자연을 살리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불교}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그 기쁨을 누려보기도 전에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으며 그 고통의 시간도 어언 50여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분단으로 인해 이산가족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 아픈 사연들을 속으로만 갈무리 해야 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난 시절 국내외적인 여건이 통일에 대해 마음 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통일을 향한 진전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 이념과 관계없이 불자들은 나름대로 통일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독일 통일에서 보여지듯이 갑자기 통일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변합니다. 탈냉전 시대를 맞으면서 세계는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이 붕괴되었으며 우리와 같은 분단국이었던 동서독은 통일의 감격을 이루게 되는 등 대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우리 나라의 내부상황도 많이 개선되어 남북간의 접촉이 빈번해지고 있는 등 우리 민족은 다시금 통일을 향한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북간에 쌀이 교환되고 기업인과 과학자가 교류하는 등 이전까지 와는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통일을 향한 길은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이산가족 상봉은 고사하고 생사확인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고 보면 우리 불자들 아니 우리 국민 모두에게 통일은 여전히 민족의 커다란 소원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민족 분단의 시간이 길어 질수록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자꾸 어려워져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민족 통일은 정치적으로 한 나라가 되는 것에 앞서 정신적으로 한 나라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독일 통일에서 보듯이 통일 후의 동서독 국민간의 사회적 괴리감과 정신적 갈등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 민족 통일에서는 그런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통일은 정치적 측면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을 고려 함으로써 독일 통일 후에 나타난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연관되어 있으며 동질성 회복은 정부 당국자 몇몇의 정책을 통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온 국민이 담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사회 각 분야에서 통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일으키고 관심을 가진다면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통일 정책과 어울리면서 민족 통일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 경제, 예술, 스포츠,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이 시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불교 역시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과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불교계의 이러한 역할은 이미 삼국통일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일찍이 삼국을 통일한 신라에서 원효스님이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는 민중에게 불교 사상으로 동질감을 회복시켰고, 화쟁 정신으로 갈등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 때 대장경을 조판하면서 꿋꿋이 국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역시 불교의 힘이 적지 않았습니다.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하던 조선시대에서 조차도 임진왜란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민중과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애쓴 사실은 우리 민족사에서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하여 왔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불자들은 우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그러면서도 쉽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민족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풀어야 합니다. 증오와 미움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을 간직한 채로는 다른 한쪽과 손을 맞잡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런 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미움으로 인한 또 다른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미움과 증오를 버리는 것이 민족화해의 첫걸음입니다.
불교계가 민족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선 남북간의 불교교류를 활발히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교류를 통한 남북간의 다양한 접촉이 서로의 이해를 도와주는 계기가 될 것이며 분단의 아픔을 어느 정도나마 해소시킬 수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한 각 사찰에 대한 상호방문 및 서신교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 등 다채로운 교류의 길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의 사찰을 복원하거나 신축하는데 같이 참여하고 불교병원 등 복지 사업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 민족 통일을 위한 노력은 불교도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타 종단과의 통일을 위한 교류를 함께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통일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 불교가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통일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절을 찾아서
{불자의 자세와 행동}
불교에는 불교만의 예절과 의례가 있습니다.
처음 불교를 접하는 불자는 불교 예절을 잘 알아야 편한 마음으로 불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 예절의 근본정신은 늘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되 새기며 행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절을 아는 것은 깨달음의 첫 걸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잘못을 반성하고 삶 속에서 다가오는 삿된 유혹을 물리치며 우환이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거나 스님을 찾아뵙고 상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개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식사를 할 때에 먼저 합장한 뒤에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며, 맛에 탐닉하거나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 일과를 걱정하거나 원망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품은 채 잠들지 말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하루를 참되게 살아가도록 기도하거나 수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삼보에 귀의한 불자로서 평상시 모든 행이 겸허해야 하겠지만, 특히 수행 도량인 절에서는 더욱 정숙하고 경건한 자세가 기본입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몸가짐은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행의 길에 수행자의 자세는 마음이 표현된 모습이므로 항상 경건하고 겸허한 자세가 기본이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불자들이 취해야 할 자세와 행동, 서있는 자세, 앉아있는 자세, 걷는 동작, 앉고서는 동작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또한 손 모양의 기본 자세인 합장과 차수, 그리고 그 밖의 수행과 신행 생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수와 합장
차수(叉手)는 손을 교차한다는 말 그대로 평상시 도량에서 손을 쓰지 않을 때 하는 자세입니다.
손에 힘을 주지 말고 자연스럽게 손가락 부분이 서로 교차되게 하여 왼손의 손가락 부분을 오른손으로 가볍게 잡고 단전 부분에 대고 있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손을 바꾸어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아도 무관한데, 어느 손이 가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마다 편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합장(合掌)은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의 전통적인 인사법으로서 인사 및 예불, 법회 등 불교 생활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쓰이는 예법입니다.
합장은 손바닥을 마주 합하는 자세로 손바닥을 밀착하여 빈틈이 없어야 하며 손가락 사이가 벌어져서도 안됩니다. 두 손을 통해서 마음을 모으고, 나아가서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 위에 합쳐진 한 생명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차수와 합장은 서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앉아 있을 때에도 같은 요령으로 자세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다만 차수인 경우에는 마주잡은 두 손을 단정하게 무릎 위에 놓으면 됩니다. 동작의 측면에서 볼 때는 차수에서 합장, 또는 합장에서 차수로 동작이 연결 되어야 부드러운 자세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앉는 자세-좌선/꿇어앉은 자세
좌선(坐禪)
불자의 자세는 불자가 아닌 사람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앉는 자세에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불자의 앉는 자세는 참선 할 때의 좌선 자세를 기본으로 합니다. 이는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앉아 용맹정진하신 자세인 것입니다. 좌선의 대표적인 결가부좌(結跏趺坐)입니다.
꿇어앉은 자세
독경이나 염불 시에는 꿇어 앉는 자세가 좋습니다. 장시간 동안 지속하기 어려운 자세이나 예경, 축원을 할 때는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반드시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을 때의 눌린 발은 절할 때의 발과 같이 오른발을 밑에 두고 그 위에 왼발을 ‘X’자로 교차시켜서 앉는 것이 보통인데, 자세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본인의 습관대로 오른발과 왼발을 바꾸든지 또는 두발을 일자로 나란히 놓아 힘들지 않고 오래 앉아 있기에 적합한 자를 취해도 좋습니다. 꿇어앉는 경우에도 허리를 곧바로 세우고 몸의 평형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절의 의미와 공덕-반배/오체투지/고두배
불교의식에서 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절은 그 자체가 하나의 휼륭한 수행 방법이기도 하므로, 참회나 기도의 방법으로 108배, 1080배, 3000배등이 활용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절을 많이 하면 아름다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해 주시며, 죽어서는 극락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반배(半拜)
삼보에 예경을 올리는 절은 큰 절이 원칙이지만 사정으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반배를 하는데 반배는 이럴 때 합니다.
절 입구에서 법당을 향하여 절할 때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法友)를 만났을 때
옥외에서 불탑에 절을 할 때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옥내법회라 하더라도 동참 대중이 많아서 큰 절을 올리기 적합치 않을 경우
3배나 108배, 1080배, 3000배 등의 오체투지하기 전과 마친 후
부처님 앞에 헌화를 하거나, 향, 초 그밖의 공양물을 올리기 직전과 올린 후
법당에 들어가거나 나오기 전
기타 필요시
오체투지(五體投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삼보님께 하는 절은 오체투지의 큰 절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때 오체란 몸의 다섯 부분인 왼쪽 팔꿈치, 오른쪽 팔꿈치(양 팔꿈치),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양 무릎), 이마를 말합니다. 이것은 인도(印度)의 예절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하는 절인데 인도에서는 접족례(接足禮)라 하여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하면서 공경하는 사람의 발을 두 손으로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오체투지의 절은 우리나라 재래 예법인 큰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되 반드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오체투지의 예는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동작으로서 가장 경건한 예법입니다.
오체투지의 큰절을 할 때 두 팔꿈치와 두 무릎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동작의절차상 땅에 닿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나 반드시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여야 합니다.
큰절하는 동작을 순서대로 구분하면 먼저 서 있는 자세에서 합장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구분하면 먼저 서 있는 자세에서 합장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합장 반배합니다. 그런 다음 합장한 자세에서 그대로 두 무릎을 굽혀 반듯하게 앉습니다.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대고, 오른손을 뻗어 몸을 굽히면서 이마가 닿을 지점을 짚습니다. 이어 왼손을 오른손과 나란히 놓고 윗몸을 숙여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완전히 엎드립니다. 엎드린 상태에서 두 손을 가볍게 뒤집어서 무언가 받들어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이 때 왼발은 오른발의 발바닥 위에 가볍게 포개어 놓아야 합니다.
일어설 때는 엎드릴 때와 정반대의 순서를 따르는데, 먼저 펼쳤던 손을 뒤집어 왼손을 가슴부근에 갖다 댄 다음 오른손을 거두어 합장하면서 다리를 풀고 본래의 자세로 일어섭니다.
고두배(叩頭排)
불자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몸을 던져 절을 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3배를 올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수한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3번째 절을 하고 일어서기 전 부처님의 한량 없는 공덕을 생각하며 지극한 마음을 더욱 더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예배의 마지막 끝에 머리를 땅에 다시 한번 조아리는 고두(叩頭)를 합니다.
이는 또 유원반배(惟願半拜)라고도 하는데, 무수히 예경하고픈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두배는 3배뿐 아니라 1배, 7배, 108배를 비롯 모든 절의 마지막 절을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합니다.
고두배하는 법은 마지막 절을 마치고 몸이 오체투지의 상태에서 두 손바닥이 부처님을 받들기 위하여 위로 향한 자세에서 팔굽을 펴지 말고 머리와 어깨를 들고 손은 얼굴 아래서 합장을 하였다가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하며 고개를 들고 전방을 주시해서는 안됩니다.
머리와 어깨만을 잠깐 들었다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 단순한 동작으로 할 수도 있고 머리와 어깨를 약간 들고 팔굽을 땅에서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손으로 합장 자세를 취하였다가 즉시 손을 풀고 다시 두 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방법도 있습니다.
절의 의미와 공덕-반배/오체투지/고두배
불교의식에서 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은 삼보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절은 그 자체가 하나의 휼륭한 수행 방법이기도 하므로, 참회나 기도의 방법으로 108배, 1080배, 3000배등이 활용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절을 많이 하면 아름다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해 주시며, 죽어서는 극락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반배(半拜)
삼보에 예경을 올리는 절은 큰 절이 원칙이지만 사정으로 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반배를 하는데 반배는 이럴 때 합니다.
절 입구에서 법당을 향하여 절할 때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法友)를 만났을 때
옥외에서 불탑에 절을 할 때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옥내법회라 하더라도 동참 대중이 많아서 큰 절을 올리기 적합치 않을 경우
3배나 108배, 1080배, 3000배 등의 오체투지하기 전과 마친 후
부처님 앞에 헌화를 하거나, 향, 초 그밖의 공양물을 올리기 직전과 올린 후
법당에 들어가거나 나오기 전
기타 필요시
오체투지(五體投地)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삼보님께 하는 절은 오체투지의 큰 절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때 오체란 몸의 다섯 부분인 왼쪽 팔꿈치, 오른쪽 팔꿈치(양 팔꿈치),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양 무릎), 이마를 말합니다. 이것은 인도(印度)의 예절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하는 절인데 인도에서는 접족례(接足禮)라 하여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하면서 공경하는 사람의 발을 두 손으로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오체투지의 절은 우리나라 재래 예법인 큰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되 반드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오체투지의 예는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동작으로서 가장 경건한 예법입니다.
오체투지의 큰절을 할 때 두 팔꿈치와 두 무릎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동작의절차상 땅에 닿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나 반드시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여야 합니다.
큰절하는 동작을 순서대로 구분하면 먼저 서 있는 자세에서 합장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구분하면 먼저 서 있는 자세에서 합장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여 합장 반배합니다. 그런 다음 합장한 자세에서 그대로 두 무릎을 굽혀 반듯하게 앉습니다.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대고, 오른손을 뻗어 몸을 굽히면서 이마가 닿을 지점을 짚습니다. 이어 왼손을 오른손과 나란히 놓고 윗몸을 숙여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완전히 엎드립니다. 엎드린 상태에서 두 손을 가볍게 뒤집어서 무언가 받들어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이 때 왼발은 오른발의 발바닥 위에 가볍게 포개어 놓아야 합니다.
일어설 때는 엎드릴 때와 정반대의 순서를 따르는데, 먼저 펼쳤던 손을 뒤집어 왼손을 가슴부근에 갖다 댄 다음 오른손을 거두어 합장하면서 다리를 풀고 본래의 자세로 일어섭니다.
고두배(叩頭排)
불자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몸을 던져 절을 하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 3배를 올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수한 절을 한다 해도 부처님에 대한 예경의 뜻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3번째 절을 하고 일어서기 전 부처님의 한량 없는 공덕을 생각하며 지극한 마음을 더욱 더 간절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예배의 마지막 끝에 머리를 땅에 다시 한번 조아리는 고두(叩頭)를 합니다.
이는 또 유원반배(惟願半拜)라고도 하는데, 무수히 예경하고픈 간절한 심정을 여기서 마치게 되는 아쉬움을 표하는 예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두배는 3배뿐 아니라 1배, 7배, 108배를 비롯 모든 절의 마지막 절을 마치고 일어서기 전에 합니다.
고두배하는 법은 마지막 절을 마치고 몸이 오체투지의 상태에서 두 손바닥이 부처님을 받들기 위하여 위로 향한 자세에서 팔굽을 펴지 말고 머리와 어깨를 들고 손은 얼굴 아래서 합장을 하였다가 그대로 땅에 두어야 하며 고개를 들고 전방을 주시해서는 안됩니다.
머리와 어깨만을 잠깐 들었다 다시 이마를 땅에 대는 단순한 동작으로 할 수도 있고 머리와 어깨를 약간 들고 팔굽을 땅에서 떼지 않은 채 그대로 손으로 합장 자세를 취하였다가 즉시 손을 풀고 다시 두 손과 이마를 땅에 대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찰 예절
사찰은 거룩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신성하고도 장엄한 곳입니다. 속세의 때를 씻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곳이며, 스스로의 잘못을 참회하고 올바른 삶을 다짐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스님들이 상주하시면서 공부하는 수행 도량이기도 합니다.
사찰에 가면 일반적으로 일주문(一柱門), 불이문(不二門), 천왕문(天王文), 해탈문(解脫門)을 지나게 되는 것이 통례입니다. 이외에도 사찰의 중심인 큰 법당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정해진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야 합니다.
일주문은 사찰 입구입니다. 세속의 미혹에 젖어 자신의 참모습을 잠시 잊고 살았더라도 여기서부터는 부처님 도량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 곳 일주문에서 합장하고 법당 쪽을 향해 공손하게 반배를 올리면서 사찰 예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집에 돌아갈 때까지 계속 조심스럽게 행동하여야 하는데,
사찰에서의 행동은 이렇게 합니다.
법당문에 들아갈 때에는 가운데 문으로 다니지 말고, 왼쪽 혹은 오른쪽 옆문으로 출입하여야 하며 볼일 없이 법당에 들어간다든지 탑에 올라가서는 아니 된다. 법당 앞이나 탑에 침을 뱉지 못하며, 모자나 지팡이를 법당 벽에 걸거나 기대지 아니하여야 한다. 그리고 불상이나 탑을 돌 때 먼저 합장 반배를 한 다음 합장한 채 시계 방향으로 돌면 된다. 《사미율의》중에서
사찰에서는 항상 가운데(어간)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수행하는 이는 자기를 가장 낮은 위치에 두어야 하며 모든 이를 공경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주문에서 법당을 향해 반배를 올리고 자세를 바로 한 다음에 뒷짐을 지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고 신발이 끌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길 한쪽을 택하여 걷는데 일반적으로 보행자의 방향인 좌측 통행이 무난합니다.
다음으로 천왕문에 들어서면 좌우에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사천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동한 나머지 스스로 불교를 보호하는 신장이 되기로 원을 세운 하늘 신입니다. 따라서 불자들은 사천왕의 원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반배의 예를 올립니다. 아직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의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경의를 표할 대상을 만나는 경우에도 반배를 합니다. 법당에 이르기 전에 역대 조사스님의 부도(浮屠)를 지나게 되면 합장 반배하며 길에서 스님이나 법우(法友)를 만나는 경우에도 합장하고 반배를 하여야 합니다.
법당 앞의 탑은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신성한 곳이며, 실제로 사리가 모셔져 있지 않더라도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반배로 삼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탑을 도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의 오른 쪽에 탑이 오도록 하고 그 주위를 돕니다. 이것은 오른쪽을 중요시하는 인도의 전통예법을 따른 것입니다.
몸이 불편하여 지팡이를 소지하거나 비오는 날에 우산(우비)을 가지고 사찰에 갔을 때에는 우산을 법당 벽에 기대어 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찰에 와서는 화급을 다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먼저 법당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참배하여야 합니다. 대개의 경우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을 지나 곧바로 올라가면 사찰의 대웅전 마당에 이르고 마당에 설치된 탑전에 예배를 드리고 계단을 올라가서 법당에 이르게 됩니다. 법당에 올라가서 계단은 중앙계단과 좌우의 계단이 별개로 있는 경우도 있고 넓은 중앙계단 하나만 있는 경우도 있는데 중앙계단을 피하여 오른쪽 또는 왼쪽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야 하며 계단이 하나만 있는 경우에는 중앙을 피하고 측면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법당문 앞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데 이 때 신발은 잘 정돈하여야 합니다. 정갈한 마음의 표현이 신발 벗는 데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법당 예절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여러 개가 있는데 법당 정면에 중앙문이 있고 양쪽 옆에 각기 하나씩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좌우 측면에 또 문이 하나씩 있는 것이 우리나라 법당의 일반적인 특징입니다.
법당 안을 보면 가운데 상단이 마련되어 불보살님을 모시고 그 좌우에 신중단이 있는데 상단의 주좌(主座)를 기준으로 가운데 통로를 어간(御間)이라 하고 법당의 정면으로 난 가운데 문을 어간문이라고 합니다. 법당에 출입할 때에는 어간문을 이용해서는 안되며 측면으로 난 문이나 좌, 우측의 문을 이용하여야 합니다.
법당은 부처님을 모시고 스님과 불자들이 전진하는 신성한 장소이므로 항상 정숙하여야 합니다. 문을 열 때 요란한 소리를 내게 되면 다른 불자들이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문을 조용히 여는 행동도 수행하는 것입니다.
법당문을 열 때는 왼손으로 오른손의 손목을 받쳐 잡고 오른손으로 문고리를 잡은 약간 들어올려서 문을 열어야 합니다. 법당에 들어서면 상단(上壇)의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반배합니다. 다음에는 법당에 들어간 목적에 맞는 행동을 하는데 공양을 올기기 위하여 불전으로 나아가거나 또는 예배를 하기 위하여 적당한 자리를 찾아갑니다. 이때는 합장한 자세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걸어 가야 합니다. 또 부처님께 절하고 있는 다른 불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또 상단을 중심으로 하여 가운데 통로인 어간은 사용해서는 안되고, 부득이 어간을 지나갈 때에는 합장한 자세로 허리를 굽히고 경건하게 통과하여야 합니다.
부처님께 올리기 위하여 향이나 초를 준비하였더라도 이미 촛불이 켜져 있거나 향이 피워져 있으면 준비한 향과 초를 그대로 부처님 전에 올려 놓는 것으로 공양을 대신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켜 놓은 촛불을 끄고 자기가 준비한 초에 다시 불을 붙여 올린다든지 이미 촛불과 향불이 피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옆에 다시 촛불과 향불을 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향을 올리는 방법은 합장한 자세 그대로 부처님 전으로 조용히 걸어 나갑니다. 부처님 앞에 이르게 되면 그 자리에서 반배를 올립니다. 그리고 향합에 있는 향이나 준비한 향을 오른손으로 집되 향의 중심부를 잡고 촛불에 향불을 붙입니다. 향에 붙은 불을 입김으로 끄지 말고 손을 이용하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경건하게 꺼야 합니다. 불 붙은 쪽이 위로 가도록 두 손으로 받쳐 잡되 오른 손은 향의 가운데를 잡고 왼손은 오른 손목을 받쳐 잡습니다. 다음에는 향든 손을 이마 높이로 올려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표한 다음 향로 중앙에 똑바로 꽂습니다. 그리고 합장한 자세로 반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참배를 드리면 됩니다.
부처님께 향 공양을 올린 다음에는 신중단(神衆壇)에 나아가 순서에 의하여 향을 올리고 참배합니다. 혹 자리가 복잡할 때는 그 자리에서 방향만 틀어 참배해도 됩니다.
법당 밖으로 나올 때에는 먼저 법당 안에 다른 불자님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자기가 마지막으로 법당을 나오게 되는 경우에는 촛불을 끄고 정돈한 후 나옵니다. 법당은 거의가 목조 건물이므로 불조심에 항상 유의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촛불을 끌 때도 불전으로 나아가 반배 후 손으로 불을 끄거나 별도의 기구를 사용하여야 하며, 촛불을 끈 다음 다시 뒤로 물러서서 합장 반배하고 법당을 나옵니다.
나올 때에도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합장한 자세로 법당 옆문으로 와서 상단의 부처님 전에 합장 반배 한 후 뒷걸음으로 법당문을 나옵니다. 법당을 나와서는 먼저 신발을 신고 뒷사람은 앞 사람이 신발을 다 신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또한 자기 신발을 다 신은 후에는 다른 불자들의 신을 좋은 위치에 가져다 주든가 흐트러진 신발이 있으면 가지런하게 놓습니다.
법회와 예불에 동참할 때
법회는 불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가장 거룩한 공간이며, 생활을 점검하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또한 예불은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올리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법회와 예불이 있을 때는 반드시 참석하여 부처님께 정성스런 마음으로 참배하고 법사의 설법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법회장에 들어갈 때에는 법당 예절에 어긋남이 없도록 행동해야 하며, 특히 어간에 앉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법회장에서는 특정한 사람을 위하여 자리를 잡아 놓고 다름 사람이 앉지 못하게 하거나, 좌복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는 행동, 풀썩거리며 던지듯 깔아 놓는 행동, 깔려져 있는 좌복을 밟고 다니는 행동, 자기가 쓰던 좌복을 정리하지 않고 나가거나 또는 타인에게 미루는 행동 등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법회는 일정한 의식에 의해 진행되므로 법문만을 듣기 위해 의식진행을 귀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또 법문만을 듣기 위해서 늦게 입장했다가 법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의식에는 동참치 않고 가는 일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법문시 설법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되며, 아는 것은 다시 한 번 새겨 듣고 모르는 것은 더 공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공부하고 수행한 내용은 주위 사람에게 널리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찰에서 숙박하는 경우 새벽에 도량석의 목탁소리와 종소리가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자리를 정돈한 후에 법당에 나아가 참여해야 합니다.
스님에 대한 예절
스님은 스승을 의미하며 재가불자들이 받들고 존경하며 항상 가르침을 받는 친근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스님을 뵈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합장 반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교에 관하여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재적사찰의 주지스님이나 평소 존경하는 스님을 찾아가 법문을 듣고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밖에서 스님을 만나면 그 자리에 서서 합장 반배하고, 실내에서는 1배를 올려야 합니다.(어떤 경우는 3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좌선하실 때, 공양하실 때, 경전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 등등은 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스님을 모실 때에는 스님과 마주서거나 스님보다 높은 데 서면 안되고 작은 말소리도 잘 들리도록 가까이에서 모시되 스님께서 불편하시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또 스님이 앉으라고 하기 전에는 앉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스님께 절을 하고자 할 때에 스님이 그만두라고 하시면 절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큰스님을 찾아 뵙고 가르침을 받고자 할 때에는 먼저 시자(侍者)를 통하여 허락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님 방에 들어 갈 때에는 법당에 들어갈 때와 똑같이 행동해야 하며, 큰스님께는 부처님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합장하고 삼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스님은 재가불자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정진하고 계시기에 재가불자들은 수행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의복이나 음식, 약 등을 공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잘 모셨을 때 스님은 더욱 정진하여 참다운 스님이 될 것이고 불자는 참다운 불자가 될 것입니다.
불교의 공양법
불교에서는 밥을 먹는 것을 '공양’이라 합니다.
이는 불교에서 공양하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출가한 스님에게 공양하는 것은 단지 굶주림을 면하거나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보와 사중(四重: 국가, 부모, 스승, 시주)의 은혜를 갚고 삼도(三途: 지옥, 아귀, 축생) 중생의 고통을 건지기 위한 수행의 방편입니다. 즉, 안으로는 부처님의 진리를 체득하고 밖으로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먹는 것입니다. 또한 재가불자도 공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알의 쌀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는 무수한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 하나 하나의 노력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며 먹습니다.
불교의 공양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상공양과 발우공양입니다. 상(床)공양은 일반 가정에서의 경우처럼 밥상 혹은 식탁에서 공양하는 것으로 공양의 인원이 소수일 때나 편의상 쓰여지고, 발우(鉢盂)공양은 불교의 전통으로 대중이 동시에 공양하거나 수련 및 수행시에 행해집니다. 대중이 함께 모여 정진하는 도량에서는 공양시에 발우공양을 하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해서 이를 대중(大衆)공양이라고도 합니다.
발우(鉢盂)란 스님들의 밥그릇인데 발(鉢)은 응량기(應量器)라 번역하고 수행자에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란 뜻입니다. 우(盂)는 중국 말로 밥그릇이란 뜻입니다.
발우공양의 의미는 부처님과 음식의 은혜에 감사하며 중생의 고통을 생각하고, 음식과 물을 아끼며 공양을 통해 얻은 힘을 일체 중생에게 회향하겠다는 것입니다.
발우공양의 유래는 부처님께서 당시 인도의 수행풍습대로 매일 사시(巳時: 오전 10~12시)에 한끼 공양을 하셨는데 그릇 하나에 시주받은 음식을 드신 데서 연유하고 있습니다. 발우공양법은 현재의 음식 쓰레기 문제 즉,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므로 가정에서도 생활화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향과 초, 공양미, 감로차 등의 시물(施物)을 부처님께 바쳐 목마르고 배고픈 중생에게 회향하고, 중생의 고통을 여의케 해주는 것도 공양이라고 합니다. 공양(供養)이란 자양분을 기른다는 뜻이며, 삼보님께 올리는 정성스러운 모든 것은 공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음을 다해 바치는 정성스러운 공양은 삼륜(三輪)이 청정할 때, 즉 받는 이, 받는 물건, 주는 이가 청정할 때 크나큰 공덕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재가불자의 예절
재가불자 사이의 호칭을 보살님, 거사님, 법우님 등으로 부르고 법명이 있으면 꼭 법명으로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마을이나 사찰에서 만났을 때는 합장 반배로 정중히 인사하고 법회 중일 때에는 목례로 하면 됩니다.
가까운 불자가 경조사를 당했을 경우는 즉시 찾아 보아야 하며, 불자 사이에 상부상조하여 함께 돕는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재가불자 사이에 시비거리가 있을 때는 화합정신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자를 사칭하여 불교를 비방하거나 삼보를 헐뜯는 사람을 보면 잘 타일러 구업(口業)을 짓지 않고 정법의 세계에 동참하도록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사찰의 구조}
사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승원(僧院)과 당(堂)입니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원의 중심이 되는 불당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금당’ 또는 ‘법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당이라는 것은 불상을 봉안한 불당이나 법당 뿐만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과 강당 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당은 불상을 봉안하고 불교의 각종 행사를 봉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강당은 경과 율을 강설하고 연구하는 장소입니다.
사찰의 의미
우리들은 절이라고 하면 맑은 물이 흐르는 산 속 깊은 곳을 떠올리게 됩니다.
맑은 물소리와 어울려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고요히 잠자던 풍경을 흔들고 그 소리가 은은히 번져가면 도량석을 도시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산사를 깨우고….
이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절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보면 절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발걸음 닿는 가까이에 있는 도심속의 절을 찾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부처님 앞에 합장을 하고 앉으면 마음이 고요해 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절은 어떠한 곳일까. 절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나 불화 등을 모시고, 스님들이 수행을 하는 곳이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아가 수행을 하고 부처님의 법음을 듣는 곳입니다. 절은 범어로 비하라(vihara)라고 하고 비하라(毘訶羅)라고 음역하며, 수행을 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주처(住處), 유행처(遊行處) 등으로 번역합니다.
인도에 있어서 최초의 절은 죽림정사(竹林精舍)라고 합니다. 죽림정사는 중인도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죽림정사에서 기거하며 수행과 설법으로 중생을 교화했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절은 그 이전에서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성불하신 그리고 설법하시고, 열반을 보이신 4대 성지가 모두 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불교 교리에서 보면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으신 분이고 그 진리를 미혹한 중생들을 위하여 보이셨던 분이고, 스스로 진리를 구현하신 분이기 때문에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합니다. 법신불은 온 세상에 불법이 두루 미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들인 불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예경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하여 부처님을 형상화하여 일정한 장소에 봉안하고 그 곳에 찾아가 스님들로부터 부처님의 법을 들으며, 예불을 올리는데 그곳이 바로 절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 이전에 인도에는 우리가 절이라고 부르는 정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인도의 수행자들을 사문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땅에 오시기 전부터 있었던 사문들은 정해진 곳에서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고행을 하는 떠돌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신 후 부처님은 미혹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셨습니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위하여 최초의 설법을 하신 후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을 향하여 떠나셨습니다. 그 당시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은 부인 베데이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한 후, 부처님과 제자들이 거처할 곳을 짓기로 마음 먹고 왕사성 북쪽 교외에 있는 가란타 장자의 소유인 죽림(竹林)을 희사받아 그곳에 집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불교의 역사상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인 것입니다.
이 정사 중에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당시부터 이름난 곳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천축5정사(天竺五精舍)라고 하는데 기수급고독정사, 축령정사, 미후강정사, 죽림정사가 그것입니다.
또한 범어 상가라마(samgharama)라고도 하는데 승가람마(僧伽藍摩), 가람(伽藍)이라 음역하고, 중원(衆園)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정사(精舍)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중원이라는 말은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는 사부대중이(四部大衆)이 사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정사나 상가라마가 상가(僧伽)의 거주처이지만, 정사는 주로 부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계신 곳을 말하고, 상가라마는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그의 제자들만이 거처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절이나 사찰의 이름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인도에 있어서는 절이라고 하는 곳을 정사나 가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원(寺院)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도에서 정사나 가람(상가라마)이라고 불리던 것이 중국에 들어 오면서 사(寺)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자(漢字)의 사(寺)는 공공기관의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寺)라는 말은 중국에서는 절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이전에 관아에 붙여 쓰던 말이었다고 합니다. 사(寺)로 불리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후한명제(後漢明帝) 연평(永平) 10년(67)에 인도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라는 두 스님이 흰말에다 장경(藏經, 경전)을 싣고 후한의 서울인 낙양(洛陽)에 왔다고 합니다. 그 때 후한에서는 두 스님이 외국인이므로 관례에 의해 외국인을 위한 외무부 소속 관아(官衙)인 홍려사(鴻廬寺)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두 스님이 계실 마땅한 곳이 없어 그대로 그곳에 머물도록 하면서 홍려사라는 이름을 두 스님이 타고 오신 흰말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국에 있어서 사찰의 효시라고 합니다.그 뒤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승가(僧伽)들의 거처를 사(寺)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원(院)이라는 말은 원래 주위에 둘러친 담을 말하는데 이것이 변하여 주원(周垣), 회랑(回廊)이 있는 건물을 의미했으며, 관사의 이름에도 쓰였다고 합니다. 당나라 시대에 칙명에 의하여 대자은사(大慈恩寺) 등에 번경원(번經院)을 세웠는데 이것이 불교와 관련된 건물에 원(院)이라는 이름을 붙인 효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 시대에는 날에서 세운 큰 사찰에 원호(院號)가 붙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寺)를 절사(寺)라고 읽는데 절은 오로지 불교의 가람을 뜻하고 있습니다. 절(寺)은 흔히 절에 가면 절(拜禮)을 많이 해야하므로 절(拜)이라고 한다고 하고, 일본이인 지은 책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전진(前秦)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로 하여금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오게 한 것으로, 2년 뒤에는 다시 진(晉)으로부터 아도(阿道)가 들어와 다음해 2월 나라에서는 성문사(省門寺, 또는 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있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 최초의 가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신라에서는 제19대 눌지왕 때에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의 모례의 집에 와 머물면서 몰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모례는 원래 국어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털례’의 집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털례의 집은 가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털례’가 절로 변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사(寺)를 일컫는 데라(寺)도 털례에서 변천된 것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사찰의 구조-전각/문/요사/탑
사찰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승원(僧院)과 당(堂)입니다. 당은 일반적으로 사원의 중심이 되는 불당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금당’ 또는 ‘법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당이라는 것은 불상을 봉안한 불당이나 법당 뿐만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장경각과 강당 등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당은 불상을 봉안하고 불교의 각종 행사를 봉행하는 장소이기도 하며, 강당은 경과 율을 강설하고 연구하는 장소입니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 사찰구조는 탑을 중심으로 건축물이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건축물들의 이름은 그곳에 모셔진 부처님에 따라 다르게 부르고 있습니다.
사찰은 부처님의 존상을 봉안하고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며 모든 불자들의 수행과 전법의 중심이 되는 곳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찰의 규모에 따라 사찰, 절 또는 암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나라 전통의 사찰 구조는 탑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거나 주요 건축물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그 각 전에 모셔진 불상에 따라 그 전(殿)의 이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대웅전(大雄殿)·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전은 선종(禪宗) 계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시는 본당(本堂)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큰 힘이 있어 사마(四魔)를 항복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부처님의 덕호(德號)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한 분만 모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좌우에 협시(脇侍: 좌우에서 모시고 시중드는 보살)보살을 두고 있습니다. 협시보살을 함께 모시는 경우,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로 봉안하는 것이 우리 나라 사찰의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협시 보살은 부처님보다 격이 한층 낮은 분이기는 하지만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입니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왼쪽에 있는 보살로 지혜를 완전히 갖춘 보살로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부처님의 교화를 돕기 위해 이 세상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보살이라고 합니다. 지혜를 나타내는 여의주나 칼, 청연화를 들고 있으며 청사자를 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보현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로 부처님의 행원(行願)을 상징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도우며 특히 중생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연꽃을 들고(연꽃 위에 경책을 얹기도 합니다) 흰 코끼리를 탄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기 때문에 탱화도 석가모니후불탱화를 봉안한다고 합니다. 탱화는 벽 같은 곳에 걸도록 하는 그림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 그림에서 족자라고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가장 보편적으로 애용되던 것이 탱화이며 전국의 사찰에서 이 탱화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후불탱화에는 좌우 협시보살로서 문수, 보현보살 또는 제화갈라, 미륵보살을 모시며 순서에 따라 10대 제자를 모두 배치하기도 합니다. 투타제일의 대가섭, 다문제일의 아난, 지혜제일의 사리불, 해공제일의 수보리, 설법제일의 부루나, 신통제일의 목건련, 천안제일의 아나율, 논의 제일의 가전연, 지계제일의 우바리,밀행제일의 라후라 등 10대 제자를 모두 조성하고 있는데, 가섭은 노인의 모습으로 흰 눈썹을 다서 길게 그리며, 아난과 라후라는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좌우 가장자리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존상을 표현할 때는 불·보살의 몸은 금색이나 황색을 주로 사용하고 대범천왕, 사천왕, 8부금강, 8부중 등 기타 여러 존상들은 그 존상의 특성에 따라 피부색을 다양하게 표현하기도 하며, 손에 드는 지물이 없고 별다른 수인을 취하지 않는 경우에는 합장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웅전(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법당)을 대웅보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대웅보전에는 대웅전과는 다르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의 삼존(三尊) 모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경우에는 그 부처님을 삼존불(三尊佛)이라고 합니다. 협시 보살과는 달리 세 분 부처님은 격의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똑같이 거룩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존불의 좌우에 다시 협시보살을 두어 불단(佛壇)을 장엄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세불(三世佛)을 모시는 대웅전도 있는데, 삼세불이란 현재.과거.미래 세계의 부처님을 말하며 이분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신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세계를 대표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왼쪽에 미래를 대표하는 미륵불(彌勒佛)을 오른쪽에는 과거를 대표하는 정광불(定光佛, 연등불이라고도 하는데 오랜 예날에 출현하여 석존에게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여 중생을 재도하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을 말합니다. )을 모시게 됩니다.
또한 대웅전에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신불이란 법신불(法身佛, 영원 불변의 진리를 몸으로 한 부처님), 보신불(報身佛, 오랜 수행의 과정을 거쳐 얻은 무궁무진한 공덕을 몸으로 한 부처님), 화신불(化身佛,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부처님의 몸)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선종(禪宗)의 삼신설에 따라 법신불로 비로자나불(昆盧庶那佛)을 모시고, 보신불로 노사나불(盧舍那佛)을 화신불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봉안하는 것이 대부분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삼신불을 봉안하고 있는 사찰은 화엄사상을 중요시하는 사찰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찰에 따라 시대에 따라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에 모시는 본존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같으나 좌우에 모시는 보살이나 부처님 등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영산전· 팔상전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하여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또는 500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영산회상도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묘사한 팔상도를 봉안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계로 나누어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으로, 팔상탱화를 봉안하고 존상을 모실 경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함께 좌협시 미륵보살을 모시고, 우현시에 제화갈라보살(본래 정광불, 또는 연등불 여래라고 하며 아득한 과거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에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까지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도솔래의상, 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수마항마상,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전, 대광명전)
비로자나불(毘盧慈那佛)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대광명전’이라고 합니다.
안에는 보통 비로자나불 뿐만 아니라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 것이 보통인데 대웅전과는 달리 가운데 비로자나불을 안치하고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엄전’이나 '비로전’에는 비로자나불 한 분만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현상 세계에 나타난 모든 부처님의 원래의 모습인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것으로 진신(眞身) 또는 법신(法身)을 뜻하는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처님은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법신 즉 법을 몸으로 하는 광명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법신이란 빛깔이나 형상 등으로 나타낼 수 없는 가장 근본적 우주의 본체인 진여실상(眞如實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주와 인생 삼라만상이 생성 소멸하는 것을 관장하고 우주와 인생을 움직이는 원초적인 원리와 법칙을 불교에서는 ‘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법을 몸으로 갖춘 부처님이 바로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자나불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부처님인 동시에 모든 부처님과 삼라만상의 근원인 부처님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신인 비로자나불은 천엽연화[千葉蓮華]의 단상에서 결가부좌하고 앉아 손으로 지권인[智拳印]을 나타내는 특색 있는 불상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은 모든 사람이 언제 어디서고 무엇이든 기도하고 갈구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셔서 모든 중생을 제도해 준다고 하며, 그러므로 비로자나불의 세계는 특별한 부처님의 세계가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라는 하는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은 삼신불(三身佛) 중의 한 분인데 삼신불이란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慈那佛)과 원만 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을 일컫는 것입니다. 법(法)은 영겁토록 변하지 않는 만유의 본체, 진리, 원리를 뜻하는 것이고, 신(身)은 쌓이고 모인 것이라는 뜻으로 법신(法身)이란 만유의 본체가 쌓이고 모인 것이므로 형상도 빛깔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불(理佛, 진리의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불을 인격화하고 의인화하여 형상화 한 것이 바로 비로자나불상입니다.
노사나불을 보신(報身)이라고 하는데 보신이란 과보의 몸이라는 뜻으로 인(因)에 따라 어려운 수행을 견디고 정진한 노력의 결과로 얻은 유형의 불신으로서 아미타불과 같은 부처님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에서 화신이라는 말은 응신(應身)이라고 하는데 이는 보신불을 보지 못하는 이를 제도하기 위해서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삼신불은 본래 다른 것이 아니고 삼신이 일신이고 일신이 삼신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불은 법신과 보신도 함께 겸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마음에서 만 가지 법이 생기므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로자나불의 뒤에는 화엄[華嚴]의 세계를 그린 ‘비로자나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극락보전(極樂寶殿)·아미타전(阿彌陀殿)
극락전의 중앙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시는데 아미타불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세계에서 늘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는 부처님이며 이를 상징하는 뜻으로 극락전을 아미타전[阿彌陀殿]이라고도 하고, 또 극락세계에서는 수명이 무량하므로 무량수전 [無量壽殿]이라고도 합니다.
극락세계는 서쪽으로 한없이 많은 국토를 지나서 한없이 먼 곳에 있는 나라인데 현재도 아미타불이 그곳에서 설법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사람은 몸과 마음에 괴로움이 없고 오직 즐거움만이 넘쳐 흐른다고도 합니다. 극락세계의 집에는 7겹의 난간과 7겹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나무 기둥이 있으며, 그 난간과 기둥은 방울과 금, 은, 유리, 수정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 되어 있고, 네 가지 보석 외에 산호, 노마, 호박을 더한 일곱 가지 보석으로 만든 연못이 있어 그 연못에는 여덟 가지 공덕을 구비한 물과 모래가 깔려 있다고 합니다.
또 하늘에서는 늘 음악이 은은히 들려 오고 땅은 황금색으로 아름다우며 밤과 낮으로 세 번씩 천상에서 향기로운 꽃이 떨어지고, 백조와 앵무새 공작 등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노래이며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게 되고 착한 일을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질병과 미움과 싸움과 배고픔과 춥고 더움이 없는 극락세계에 태어나고자 하는 것은 불교인의 이상향입니다. 극락전은 바로 이러한 극락세계를 묘사한 전각이며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전각입니다. 극락세계가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전은 보통 동향집이며 참배하는 사람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아득히 먼 옛날에 법장(法藏)이라는 이름의 보살이었다고 합니다. 법장보살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뜻을 세우고 살아 있는 모든 자를 구제하고자 마흔 여덟 가지의 원을 세워 한없이 긴 세월동안 고된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 원을 모두 이루어서 극락세계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 협시(脇侍)보살을 모시는데 관세음보살(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보살이며 병들고 고통 받는 중생 앞에 나타나서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 주는 자비의 화신인 보살입니다. 남쪽 바닷가 보타락가산이 처소라고 합니다.)과 대세지보살(지혜의 광명을 놓아 모든 중생을 비추어 삼도를 여의고 위 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로 발을 크게 디디면 3천대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는 큰 힘과 위세를 가지고 있다고 하고, 정수리에 보병을 얹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후불탱화로는 주로 극락정토를 잘 묘사한 극락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약사전(藥師殿)
약사 여래는 약왕[藥王] 약사유리광 여래[藥師琉璃光如來] 또는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부르는데, 동방 유리광세계의 교주라고 합니다.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신 곳이 바로 약사전(藥師殿)입니다. .
<약사경>에 의하면 그는 동방 정유리세계에 있으면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두루 고쳐 주고 중생을 재앙으로부터 구해 주며 불도를 닦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상보리를 얻게 하는 능력을 가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또 그는 과거 세상에서는 약왕[藥王]이란 이름의 보살이었는데, 중생의 아픔과 슬픔을 보고 그것들을 소멸시키기 위해서 12 가지의 큰 원을 세워서 수많은 세월 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모두 이루어서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약사 여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면 옛 사람들이 괴롭히든 외적의 침입에서도 구제 받을 수 있고 극락 왕생도 이룰 수가 있다고 해서 약사 신앙은 넓고 넓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사 여래 신앙은 통일신라시대에 널리 유행되었고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미륵불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신봉불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약사전(藥師殿)은 보통 동향으로 짓고 그 안에 약사여래를 모시며 협시불로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 약사 여래의 덕과 광명이 두루 밝다는 것을 밝히는 일을 하며 약사 래가 하는 일을 모두 돕고, 몸은 육색이며 붉은 연꽃 위에 앉아 있다고 합니다)과 월광보살(月光菩薩, 약사 여래의 교화를 도우며 모든 중생의 고통을 안락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 보살로 몸은 황색이며 왼손 위쪽에 반달형의 청연화를 가지고 있고, 무량 무수한 보살들의 우두머리라고 합니다.)을 모시고 있습니다. 두 분 보살 외에도 방대한 약사여래의 사업을 돕기 위해서 궁비라(宮毘羅), 벌절라(伐折羅), 미기라(迷企羅), 안저라(安底羅), 알편라(알偏羅), 산저라(珊底羅), 인타라(因陀羅), 파이라(波吏羅) 마호라(摩虎羅), 진달라(眞達羅), 초두라(招杜羅), 비갈라(毘갈羅)의 열 두 분의 나한(羅漢)을 거느리고 있다고 합니다.
약사 여래는 이들 나한들의 도움으로 억만 중생의 소원을 모두 들어 주고 그 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으로, 약사전의 탱화를 잘 보면 이들이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약사 여래상은 보통 선정인(禪定人)을 취한 수인(手印)위에 약함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후불탱화로는 약사 여래가 사는 정토를 그린 동방 약사여래유리광 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대웅전과 같이 닫집을 만들고 천장은 우물 정자형이며 주위에는 연꽃과 비천 등으로 아름답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용화전(龍華殿)· 미륵전(彌肋殿)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사찰 당우 중의 하나로 미륵불이 출현하는 곳이 용화세계의 용화수 아래이므로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며 미륵존상을 모신다고 하여 미륵전이라고도 합니다.
용화전 안에는 현재 도솔천에서 설법하며 내세에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미륵보살 을 봉안하거나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게 될 미륵불을 봉안하게 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미륵불은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처럼 항마촉지인을 취하는 경우가 많으나 미륵부처님의 서 있는 모습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불탱화로는 용화회상도를 봉안하고 있는데 이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 뒤 3차에 걸쳐 설법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내용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륵 보살은 인도의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부처님의 교화를 받으며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에서 천인들에게 설법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륵보살이 성불을 하지 않는 네 가지 이유는 국토를 정화하고, 수호하며, 중생을 정화하고, 중생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즉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륵(Maitreya)이라는 말은 원래 ‘친우(mitra)’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마이트리아(Maitreya)’는 자비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미륵 보살을 자씨 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합니다. 관세음 보살을 대비 보살(大悲菩薩)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륵신앙에는 경전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발전해 왔는데 하나는 ≪미륵상생경≫에 의한 상생신앙이고, 또 다른 하나는≪미륵하생경≫에 의한 하생신앙입니다. 상생신앙은 미륵부처님이 계신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신앙이고, 하생신앙은 미륵부처님이 하루 속히 이 땅에 나타나시기를 바라는 신앙입니다. 미륵부처님은 아직은 부처님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미륵보살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륵전에는 미륵부처님과 협시보살로 법화림보살과 대묘길상보살 혹은 묘향보살과 법륜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천불전(千佛殿, 불조전)
천 분의 부처님을 모셔 놓은 전각을 천불전이라고 합니다.
천불에는 과거 천불. 현재 천불. 미래 천불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현재 천불을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탱화로 모실 때는 삼천불을 모두 모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불을 모시게 된 것은 다불사상(多佛思想)의 영향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라도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천불전에는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미륵불을 위시하여 누지불까지 현겁천불을 모시며, 과거장엄겁천불, 현재 현겁천불, 미래 성수겁천불의 삼천불을 모시는 사찰도 있습니다.
원통전(관음전)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사찰 당우 중의 하나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의 명칭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사찰의 중심이 되는 불전일 경우에는 원통전이라고 합니다.
원통전이란 명칭은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 원융통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기 때문에 그 권능과 구제의 측면을 강조하여 원통전이라 한 것입니다. 반면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사찰에 대웅전이 있는 경우에는 관음전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강조하여 대비전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보살을 모신 당우로 관음전이 많이 세워지는데 이는 관음이 모든 환란을 구제하는 보살일 뿐만 아니라 관음보살의 서원이 철두철미 하게 중생의 안락과 이익에 있고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으로 중생을 돕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관음전 내에는 왼손에 연꽃이나 감로병을 들고 연화좌 위에 앉은 관음상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나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 보관위에 11개의 다른 모습을 가진 십일면관음, 그 밖에 해수관음, 백의관음, 용수관음, 천수관음 등을 모시기도 합니다.
후불탱화로는 양류관음도, 백의관음도,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 등 모셔진 관음상의 모습에 따라 후불탱화를 봉안한다고 합니다. 또 관세음보살을 협시하고 있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은 조각상으로 봉안하기 어려우므로 거의 후불탱화로 봉안한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갖가지 고뇌를 가진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관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부르면 그 음성을 관(觀)하여 모두를 해탈케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이나 미래불인 미륵불과는 달리 현실세계에서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불교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등 고난에 처해 있는 어떤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을 마음으로 부르면 고통을 피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명부전(冥府殿)·지장전(地藏殿)
관세음보살과 함께 중생구제의 큰 원력으로 많은 대중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을 지장전 혹은 명부전이라고 부릅니다.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의 구세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에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그 협시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10왕상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육도윤회의 현실세계에서 중생들을 구제하도록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흔히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대원본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고 합니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본래 보살의 모습으로 보관과 영락으로 장엄한 모습이었으나 ≪지장십륜경≫에 의하여 차츰 삭발을 한 사문의 모습으로 모셔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문형의 지장보살은 지옥문을 깨뜨린다는 육환장(석장)과 ‘장상명주’라는 어둠을 밝히는 보주를 들고 있는데, 석장의 여섯 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하고, 육환장의 윗부분에는 화불을 모시기도 하는데 그 부처님은 지장원찬 23불의 첫 번째인‘각화정자재여래’라고 합니다.
도명존자는 ‘환혼기’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설화에 나타난 도명존자는 중국의 양주에 있는 개원사의 스님으로 우연히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다고 하고,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재수보살의 전신이라고 합니다.
지옥시왕 중 진관왕은 도산지옥에 살며 칼산에 떨어지는 형벌을 내리며, 초강왕은 화탕지옥에 살며 끓는 물에 담그는 형벌을 내리고, 송제왕은 한빙지옥에 살며 얼음 속에 묻는 형벌을 주고, 오관왕은 검수지옥에 살며 칼로 몸을 베는 벌을 내리고, 염라대왕은 발설지옥에 살면서 집게로 혀를 빼는 형벌을 내리고, 변성왕은 독사지옥에 살면서 독사로 몸을 감는 벌을 주고, 태산왕은 거해지옥에 살면서 톱으로 몸을 자르는 벌을 주고, 평등왕은 철상지옥에 살고 쇠판에 올리는 벌을 주며, 도시왕은 풍도지옥에 살면서 바람 길에 앉히는 벌을 주고, 전륜대왕은 흑암지옥에 있으면서 암흑 속에 가두는 형벌을 준다고 합니다.
응진전(應眞殿)·나한전(羅漢殿)
나한전은 응진전이라고도 하며 영산회상(靈山會上)의 모습을 재현하여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좌우에는 10대 제자 혹은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우리 나라의 응진전 가운데 500나한을 모신 곳으로는 경주 기림사의 나한전과 연천 은해사의 거조암, 전주 송광사의 나한전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시기 위한 전각이지만, 모두 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주존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시고 협시보살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과거불인 정광여래의 화신인 제화갈라보살과 현재불인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상징하고 그 좌우로 8위씩 16나한을 모시거나 500나한을 모시는 것입니다.
'나한’이란 인도의 예말 아르하트에서 온 말로 아라한 또는 줄여 나한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응공, 무학, 응진’이라고 합니다. 존경 받을 만한 분, 공양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도 처음에는 ‘아라한’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보통은 16나한을 모시지만 18나한을 모시는 경우도 있으며, 빈도라발라사, 가낙가벌차, 가낙발리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호라, 나가서가, 인게타, 벌나바사, 아시다, 주다반탁가를 16나한이라고 부릅니다.
나한은 부처님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였으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독특한 표정으로 자유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한은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수기를 받은 분들이고, 민간신앙에서는 나한에 대한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서민들의 기복신앙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조사전(祖師殿), 국사전(國師殿)
조사전은 조사스님이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각 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입니다. 사찰에 따라서는 조당, 조사당, 국사전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삼성각(三聖閣, 칠성 독성 산신)
삼성각은 칠성과 독성(나반존자), 산신을 모셔 놓은 전각으로 세 분을 한 곳에 모셨을 때는 삼성각이라고 하고 나누어 모셨을 때는 독성각, 산신각, 칠성각이라고 합니다.
독성각은 나반존자를 모시는 전각입니다. 이 나반존자는 남인도의 마리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고 있는 성자이기 때문에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을 독성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반존자는 삼명(三明)과 자리이타의 두 가지 이익(二利)를 갖추고 있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남김없이 알고 있는 분으로 이 삼명의 능력으로 자리와 이타의 진리를 원만하게 이룬다고 합니다. 민간신앙에서는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서 불멸 후 중생을 제도하도록 되어 있어 주세아라한이라고도 합니다.
산신각은 원래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민족 고유의 토속신앙으로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할 때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삼아 불교를 보호하는 역할의 일부를 산신에게 부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사찰이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일종의 외호신중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칠성각(七星閣)은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칠성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북두각이라고도 하는데 칠성은 원래 도교신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중국에서 형성된 다음 우리 나라에 유입된 신이라 하며, 칠성을 주존으로 하는 치성광여래를 모시는데,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모시고 있습니다. 칠성탱화의 구도에는 여러 가지 형식이 있는데 칠원성군만 그리는 경우와 치성광여래와 좌우의 협시보살과 칠원성군을 그리고 나서 칠성여래와 자미대재 태산노군(남극노인)을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삼태 6성, 28숙 등 수 많은 권속들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고, 칠원성군이나 칠성여래를 각각 1위씩 7폭으로 그려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독성각, 삼신각, 칠성각은 우리나라 초기 불교 전래시부터 사찰 속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라 조선시대 중기 무렵부터 사찰 속으로 정착한 재래 신앙이라고 합니다..
문(門)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이란 사찰에 들어가는 산문(山門)중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문입니다.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네 곳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덮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에 세운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의 건축물로 기둥을 일렬로 세운 일주문이 상징하는 뜻은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일심(一心)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불교의 근본 진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산과 바다세계와 인생 정신과 물질, 부처와 중생, 너와 나, 사랑과 미움 등 우주에 존재하는 정신적 물질적인 모든 것이 일심 동체로서 그 근본은 오직 하나이지 둘이 아니라는 뜻이 일주문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일주문에는 보통 사찰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사찰 이름 앞에는 그 사찰이 자리잡은 산 이름도 함께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비로서 사찰 경내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천왕문(天王門)
사천왕문은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문으로 천왕문이라고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곳으로서 여기에 사천왕의 조상이나 그림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는데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과 불법[佛法]을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천왕은 여러 단계의 천상계(天上界)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천왕천(四天王天)에 살며, 그 나라의 왕인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수호신입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들은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이 세상의 선악을 모두 살펴서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부하들이 14일에는 사천왕의 태자들이 15일에는 사천왕 자신들이 제석천[帝釋]에게 직접 보고하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이문(不二門)
사찰로 들어가는 문 가운데 대웅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 바로 불이문(不二門)입니다. 불이(不二)라는 말은 ‘둘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진리 그 자체를 표현한 말입니다.
일체의 모든 평등하고 원만한 진리가 이 문을 통해서 재조명되고,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이고 둘이 아니며 하나를 깨달으면 백 가지에 통달할 수 있다(一通百通)는 것이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며, 부귀와 가난이 둘이 아니고 부처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결과가 다르게 보여도 근원을 찾아가 보면 모두가 하나일 뿐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생과 사가 다른 듯해도 생이 있으므로 사가 있고 생 속에는 이미 죽음이라고 하는 도달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이(不二)의 경지에 도달하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이문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불이문은 금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 만들고 그곳을 지나면 부처님 모신 곳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에 세운다고 합니다..
요사(療舍)
요사는 스님들이 생활하시는 건물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입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 일하는 곳, 공부하며 기거하는 곳을 모두 요사라고 함으로 사무실이나 후원, 객실, 창고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수행하시는 요사의 명칭은 여러 가지를 사용하여 현판을 붙이는데 올바른 수행과 참선을 하는 장소하는 뜻으로 해행당(解行當), 수선당(修禪當)이라는 현판을 붙이기도 하고, 지혜의 칼을 찾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심검당(尋劍當), 부처님을 선출하는 장소라 하여 선불장(選佛場)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탑(塔)
탑은 산스크리트어로 스투파(Stupa), 또는 빨리어로 투파(Thupa)라고 합니다. 원래는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봉안하고 그 위에 흙이나 돌을 높이 쌓아 만들었던 것이 최초의 탑의 기원이며, 이것을 번역하면 무덤, 묘(廟), 영지(靈地)를 의미합니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이 입멸하신 이후 여덟 나라의 국왕이 부처님 사리를 8등분하여 각기 자기 나라에 탑을 세우고 봉안했다고 하며, 이것이 불교에서 탑의 기원입니다. 후세에는 사리가 들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쌓아 올려 탑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전탑, 우리 나라에서는 석탑, 일본에서는 목탑이 발달하였습니다.
탑은 초기불교에서 신앙의 중심이었으나 제한된 사리 수와 유물, 유품의 한계로 탑의 건립이 어려워지자 예배의 대상으로 불상이 조성되었고, 그 불상으로 신앙의 중심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탑은 여전히 부처님의 진신에 귀의하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도량을 장엄하고 있습니다. 탑은 양식상으로 3층, 5층, 9층, 13층 등으로 분류됩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계단의 본래의 목적은 수계의식을 집행하는 장소로써, 수계자를 중앙에 앉히고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 앉아 계법을 전수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묘탑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존하는 계단은 대승계단이라는 신앙표현의 한 조형물로 사부대중의 호계를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예로는 통도사, 개성의 불일사, 대구의 용연사, 금산사 등에 있었으나, 통도사의 금강계단과 금산사의 방등계단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석등(石燈)
석등은 등불을 밝히는 시설물로서 연등의 의미를 상징한 것인데, 후대에 이르러서는 불전 앞이나 탑 등에 설치하는 가람배치상의 기본 건축물로 변천하였습니다.
부도(浮屠)
고승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붓다(Buddha)가 어원입니다. 가람배치 구조와는 별도로 건립되었으며, 조상숭배를 중시하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하였습니다.
부도와 탑을 비교해 보면 양자가 사리를 봉안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그 형태는 매우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또 건립 위치도 탑이 사찰의 중심 위치인 법당 앞에 세워지는데 반해, 부도는 사찰 경내의 변두리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지며 이를 부도전이라 일컫습니다..
법당의 구조-상단/중단/영단
법당은 통상 상단, 중단, 영단의 삼단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상과 보살상을 모신 상단,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 선신들을 모신 중단, 그리고 영가를 모신 영단이 그것입니다.
상단(上壇)
법당의 어간문에서 바라볼 때 정면에 가장 높은 단상을 설치하고 그 중앙에 부처님상을 모시는데 이 단상을 상단이라고 하며, 부처님과 보살상을 모셨기 때문에 불보살단(佛菩薩壇)이라고 합니다. 혹은 줄여 불단(佛壇)이라고 합니다. 이 상단에는 그 절의 본존불상과 후불탱화를 모시는게 상례입니다.
중단(中壇)
호법을 발원한 선신들을 모신 신장단(神將壇)을 중단이라고 합니다. 여러 신장님을 모신 단상이기 때문에 신중단(神中壇)이라고도 합니다. 제석천이나 사천왕, 대범천 등의 천상 신중과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가루마, 마후라 등 팔부신장 등을 모신 곳입니다. 또한 우리 민속신앙에 의해 칠성과 산신이 모셔져 있기도 합니다.
영단(靈壇)
영가(靈駕)의 위패가 모셔진 단상이며, 후불탱화로서 통상 아미타여래영도와 감로탱화가 모셔져 있으며 이곳을 하단(下壇)이라고도 합니다.
{불상의 종류}
불상의 구분
불상은 일반적으로 여래상, 보살상, 신장상, 나한 및 조사상으로 구분합니다. 여래상은 나발형태를 하고 있으며,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지장보살은 예외), 천의(天衣)와 목걸이, 귀걸이 등 장엄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신장상은 주로 무장한 모습을 하고 있고, 조사상은 스님의 모습입니다.
여래상은 부처님의 상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도 북쪽 카필라국의 태자로 태어나 출가하여 35세에 부처님이 된 석가모니불을 말합니다. 불교가 발전함에 따라 특히 대승불교시대가 되면 수 많은 부처님이 등장하게 되고 다양한 불상이 조성됩니다. 이들 무수한 불상은 비록 명칭이 다양하지만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격(佛格)이 그 모습에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불(佛)의 격은 착한 일을 한 공덕이며, 보통 32상(相), 80종호(種好)라는 기본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즉 상이 원만해야 하고 육계와 백호가 있어야 하며, 옷은 법의(法衣)를 입고 장엄구(莊嚴具)가 없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이것을 조각으로 나타내면 대좌(臺座)에 앉거나 서며 등뒤에 광배(光背)를 두게 됩니다. 이것은 불교의 3부 구성이라 할 수 있는데 불상의 기본적인 구성요소 입니다. 불신의 머리에는 머리칼, 라계 또는 소계의 육계가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白毫),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현되며, 옷은 삼의(三衣)를 입고, 손은 여러가지 인상(印相)을 짓고 있습니다.
이 불상은 형식에 따라 단독상, 삼존상, 병좌상으로 자세에 따라 입상, 좌상, 와상, 유행상 등으로 나뉘어지고, 좌상에도 결가부좌, 반가부좌, 의좌 등 다양합니다.
불상은 무수하리만치 많고 매우 다양하게 분류됩니다.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상과 과거, 현재, 미래의 3세불이 있으며 이것이 확대되어 각각 천불이 되어 모두 삼천불이 되기도 합니다. 또는 사방불, 49불, 53불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상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이 조성된 것이 석가여래, 아미타, 미륵, 비로자나, 약사여래 등입니다.
부처님 상-석가모니불/아미타불/비로자나불/미륵불/악샤여래
부처님상은 수인과 가사, 그리고 좌보처, 우보처 협시보살에 의해서 구분하며 각 사찰의 법당 명칭으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은 항마촉지인, 선정인, 전법륜인 등을 하고 있고 또, 가사를 걸친 우견 편단의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보처로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또는 가섭존자, 아난존자로 되어 있습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의 수인은 구품인을 하고 있으며 가사를 걸친 모습은 통견의 모습이고, 좌우보처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비로자나불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표현하는 법신불로서 지권인을 하고 있습니다. 좌우보처로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미륵불 등 삼존불과 함께 다섯 부처님을 협시로 하고 있으며, 또는 문수,보현보살을 보처로 모시기도 합니다.
미륵불
미륵불은 전각 밖에 따로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사무외인 또는 여권인 등의 수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약사여래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치료, 수명연장, 재화소멸, 의복과 음식 등을 구족시키고자 하는 부처님으로 왼손에 약병 또는 약함을 들고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으며, 신장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좌우보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보살상-관세음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
보살상(菩薩像)은 대체로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머리칼을 드리우며 장신구를 갖고 옷은 천의(天衣)를 걸친 온화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경지를 깨달은 분이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아직까지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 중생과 함께 있는 분입니다.
보통 보살상에는 단독상도 있지만 거의 협시상이며, 자세는 입상· 좌상 등이 있고 좌상 가운데도 가부좌상, 의상, 반가부좌상 등이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살은 여래상의 좌우보처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래상을 보고 알 수 있으며, 손에 든 물건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고 관(冠)의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보관의 정수리에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다니며 연꽃, 감로수병 등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십일면 또는 천수천안의 모습도 있습니다
문수보살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주로 왼손에 연꽃을 들고 사자를 탄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현보살
보현보살은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코끼리를 탄 모양이나 연화대에 올라선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대비원력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스님과 같은 모습으로 삭발한 머리에 두건을 둘렀으며, 육환장을 들고 있습니다. 이 육환장 정수리 부분에는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있습니다.
천부신장상
인도 재래의 신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이나 불교를 지켜주는 호법신장(護法神將)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상은 귀족 또는 장군의 모습, 온화한 모습, 진노하는 모습 등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천부신장상 가운데 유명한 것은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 제석천상 등이 있고 각종 명왕상(明王像)도 있습니다.
나한상(羅漢像) 및 조사상(祖師像)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 같이 훌륭한 분들의 상을 표현한 것이 나한상이고, 큰스님 같은 분을 조각한 것을 조사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두 스님상을 하고 있습니다. 나한상은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 십대제자를 중심으로 5백나한, 1천 2백 아라한 등 많은 나한상이 있고, 조사상은 용수,무착, 세친, 현장, 원효, 의상, 자장 등 인도 중국과 우리 나라의 고승상입니다.
수인의 종류-선정인/항마촉지인/전법륜인/여원인/시무외인/광배와 대좌
불상의 손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표현한 것입니다.
인계(印契), 인상(印相), 밀인(密印), 계인(契印)이라고도 하며, 교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므로 불상을 만들 때 함부로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부처님의 수인을 취해서도 안됩니다. 따라서 수인은 여러 종류의 불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수인의 종류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5인부터 아미타 부처님의 구품인(九品印),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권인(智拳印) 등 매우 다양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5인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정인(禪定印)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의 수인입니다. 왼쪽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엄지 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형식입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님이 마귀를 항복시키고 성도한 뒤 당신의 깨달음을 지신(地神)에게 증명해 보라고 말하면서 지은 수인입니다. 선정인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님이 성도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습니다.
여원인(與願印)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덕을 표시한 수인입니다. 손의 모습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입니다.
시무외인(施無畏印)
중생에게 무외를 베풀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입니다.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입니다. 이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부처님마다 두루 취하는 수인으로 통인(通印)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불 입상(入像)의 경우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
광배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신령스럽고 밝은 빛을 상징화한 불상의 한 구성요소로 불신의 뒤 쪽에 표현한 것을 일컫습니다. 그 형태는 시대와 지역, 혹은 불보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빛이 머리에만 비추는 두광(頭光, 圓光)과 몸 전체에 두루 비추는 거신광(擧身光, 全身光)이 있습니다.
대좌는 불보살상 및 조사상이 앉는 자리를 말합니다. 대좌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자좌(獅子座)와 연화좌(蓮花座)가 가장 보편적인 것입니다.
{불교 회화}
모든 그림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불화는 단순한 아름다움이나 선을 추구하는 예술이 아니며, 불교적 이념에 입각한 주제를 그리는 성스러운 예술입니다. 따라서 좋은 불화는 기법이나 양식의 획기적인 업적보다 불교적인 이념이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령 불교가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가장 성공적인 불화는 이 괴로움에서 해탈 할 수 있는 장면을 가장 멋지게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탱화와 경화
탱화는 비단 또는 베 바탕에 불보살님의 모습이나 경전 내용을 그려 벽 같은 곳에 걸도록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흔히 일반 그림에서 족자로 불리는 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려나 조선조 때는 가장 보편적이고 애용되었던 양식입니다.
탱화의 종류는 그려진 주제의 내용에 따라 상단, 중단, 하단 탱화로 구분됩니다. 상단 탱화는 전각의 상단 즉, 불전의 중앙에 모셔진 불보살상의 뒷면에 거는 탱화로서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약사불탱화 등이 있습니다. 중단 탱화는 불단의 좌우측에 있는 영단에 모시는 탱화로서 주로 신중이나 호법신 등을 그립니다. 하단탱화는 명부전의 지장보살, 시왕상 뒤에 모시는 탱화입니다.
경화는 불경에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그 경에 설하고 있는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통 변상도(變相圖)라고도 부릅니다. 이 경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직접 그린 사경화(寫經畵)와 나무나 금속의 판으로 인쇄한 판화(版畵) 등이 있습니다.
심우도(尋牛圖)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로 그 과정을 10단계로 구분하고 있어 십우도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도 합니다.
감로도(甘露圖)
조상숭배 신앙이나 영혼숭배 신앙의 내용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불설우란분경》을 그 근본 경전으로 삼기 때문에 영가단 탱화 혹은 감로탱화, 감로왕도라고도 합니다.
괘불(掛佛)
법당 밖에서 불교의 의식을 행할 때 걸어 놓는 예배용 그림입니다. 법당 바깥에 있는 당간지주 등에 내걸고 법회나 의식을 베푸는 것을 괘불재라고 하며, 괘불을 거는 것을 괘불이운이라고 합니다.
큰 재를 올릴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법회의 성격에 맞는 내용의 괘불을 걸게 됩니다. 따라서 죽은 사람의 극락왕생을 비는 영산재를 올릴 때는 영산회상도를, 그리고 예수재나 수륙재 때에는 지장회상도나 명부시왕도를 내걸게 됩니다.
변상도(變相圖)
부처님의 일대기 또는 불교 설화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변상도는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전생을 묘사한 본생도와 일대기를 나타낸 불전도, 그리고 서방정토의 장엄도가 그 기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변상도의 특징은 복잡한 경전이나 심오한 교리의 내용을 한 폭의 그림에 압축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이해하고 불심을 일으키는 중생교화의 방편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법구法具}
법구는 즉 불구(佛具)라고도 하는데, 불법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도구를 의미하며, 또한 불전을 장엄하는 여러 가지 사물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법구는 법답게 다루어야 하며 필요한 때만 법식에 맞춰 사용해야 합니다.
사물
법구 중에서도 조석예불 때 울리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이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의 사물이라고 합니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입니다. 법고는 보통 쇠가죽으로 만드는데 짐승을 비롯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울린다고 합니다.
운판(雲板)은 청동 또는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 중국의 선종사찰에서 부엌이나 재당에 달아 놓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하나 차츰 불전사물로 바뀌었습니다. 운판이 울리면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하여 울린다고 합니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깎아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배부분을 파내어 두 개의 나무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냅니다. 목어를 치는 이유는 수중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린다고 하고,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살기 때문에 수행자는 늘 깨어 있는 상태에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고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범종(梵鍾)은 일명 대종, 경종이라고 하며 조석예불과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아침에는 28번을, 저녁에는 33번을 울립니다. 범종을 울리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목탁(木鐸)
목어와 같이 주로 깨우침의 뜻이 있습니다. 목탁은 대중을 모으는데 사용하는 신호이기도 하며 모든 의식 집전에 가장 많이 쓰이는 법구 입니다.
처음에는 쇠로 만들어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나무로 만든 것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법구들은 거의 중국의 선종사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죽비
죽비란 중국 선원에서부터 대나무 통이나 뿌리로 만들어 쓴 것인데, 목탁과 같이 선방에 앉고 일어서고 입선과 방선, 그리고 공양 할 때 행동 통일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선방에서는 언제나 정숙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목탁보다 조용하고 간편한 법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발우(鉢盂)
발우는 부처님 당시부터 공양할 때 쓰던 밥그릇인데 오늘날에도 스님들이 소중하게 쓰시는 법구입니다.
즉 불기(佛器)와 같이 소중한 그릇입니다.
요령(搖鈴)
요령은 남방계통에서는 볼 수 없는 법구입니다.
본래 밀교계통에서 사용하던 도구로서 북방계통의 사찰에 전해져 지금은 모든 의식 집전에 없어서는 안될 법구입니다.
염주(念珠)
염주는 부처님께 기도하거나 절을 하면서 참회할 때 그 수를 헤아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법구인데 보통 108개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부처님의 깨달음의 상징으로 신앙되고 있는 보리수 열매로 만들어 사용했으나, 지역에 따라 독특한 나무나 그 밖의 재료(율무열매, 용안주, 금강주, 다양한 보석 등)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법구입니다.
{사리장엄과 복장물
사리장엄(舍利莊嚴)이란 부처님이나 스님들의 법신(法身)을 다비하고 나온 사리를 봉안하는 갖가지 장엄으로, 사리를 담는 사리구와 이 사리구를 탑 속에 봉안하는 사리장치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사리는 진신사리와 법신사리로 구분됩니다. 진신사리는 부처님의 육신에서 나온 것을 말하고, 법신사리는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 대승, 소승불교의 모든 경전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사리장엄으로는 사리를 담는 사리병이 있고 다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에 합(盒)이 있습니다. 사리병은 신라시대에는 유리와 수정으로 만들어졌으나 고려시대에 와서는 금속재가 많이 쓰여졌습니다.
복장물(腹藏物)이란 불상을 조성하면서 불상 속에 사리, 불경 등을 넣는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불상, 보살상, 나한상 등의 여러 존상 내부에 봉안되는 갖가지 불교 상징물 또는 그것을 넣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는 처음에 탑에만 봉안해 오다 불경이나 불화, 불상, 안에도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복장물은 사리함, 진신사리, 다섯 가지 보석, 오곡, 오약, 오색실, 의복 등이 있으며, 조산기나 복장기 등도 장치합니다. 보통은 불상을 처음 조성할 때 복장을 넣지만 후대에 와서는 불상을 수리하는 개비 때나 금칠을 다시 하는 개금 때에도 복장을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복장 유물은 해당 불상 조성 또는 개비(개금) 당시 불교신앙의 경향, 사경미술, 불상조성의 유래, 그것을 만든 장인, 발원자 등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기타 불교 조형물}
당간지주(幢竿支柱)
당(幢)을 거는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여 세우기 위해 당간 좌우에 세우는 기둥입니다. 대개는 사찰입구에 세워집니다. 재질은 금동 등의 금속재료도 있지만 대부분 돌로 만들어 졌습니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이면서 아울러 그곳이 신성한 사찰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업경대(業鏡臺)
비옥의 염라대왕이 갖고 있다는 거울로, 여기에 비추어 보면 죽은 이가 생전에 지었던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보통 업경대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금속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윤장대(輪藏臺)
경전을 넣는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나무로 된 책상입니다. 이것을 돌리기만 하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예천 용문사에 윤장대 2좌가 있으며 고려시대 자엄대사가 세운 것입니다.
{불교 성보문화재의 이해}
1600여년이 넘는 한국불교의 역사와 전통은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양을 주어 마침내 민족문화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어디를 가나 불교 성지가 있고 문화재가 있습니다. 현재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대다수가 불교의 성보(聖寶)입니다.
1995년 유엔 기구인 유네스코가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 그리고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는데 이는 불교의 성보문화재가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편 불교 문화재는 민족 문화유산이면서도 성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여기에 대하여 단지 민족 문화유산의 성격만을 보고 지금도 불자들이 신앙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불교 성보의 본질을 모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부 국민은 산자수려한 사찰을 단순한 관광지로, 성보를 관광 대상으로만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것은 불교 성보는 민족문화 유산이기 전에 신심이 지극했던 조상들이 신심과 지혜와 기술을 융화하여 구현한 신앙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일부 극민의 사찰과 성보문화재에 대한 몰이해를 잘 깨우쳐 주고 이들이 민족 문화재이자 성보를 통해 불교 문화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드높여 나가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성보와 민족 문화 유산에 대한 바른 이해와 보존은 바로 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를, 그리고 사상, 문화창달의 기초입니다. 어느 민족이든 전통 문화와 사상을 잘 보존하지 못한 민족은 패망하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도 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바탕한 세계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 가장 불교적인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의 세계 문화유산 지정에서도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민족의 전통 문화와 정수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 한국불교는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민족문화를 잘 보존하고 계승 발전 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한국불교의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명심하면서 바른 신행과 생활을 통해 불교와 민족의 중흥을 위해 정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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