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통도사 백련암 원산스님

수선님 2021. 5. 23. 11:54

“마음 편안하면 그것이 바로 극락”

‘염불’ 행자로 살고 있는 원산스님

 

  총림(叢林)은 항상 많은 대중들로 붐빈다. 선원, 율원, 강원, 염불원에서 정진하는 기본 대중도 많고 참배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양산 영축산에 있는 영축총림 통도사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주지 정우스님이 부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면서 통도사는 포교의 새 지평을 열며 하루하루 발전하고 있다. 

 

  원산스님을 만나기 위해 통도사를 찾은 7월 25일도 그랬다. 주말이어서인지 참배객들은 전각마다 절을 올리고 있고, 통도사를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온 기자들도 많았다. 산내에 있는 20여개의 암자 역시 참배객들의 발걸음은 계속됐다. 통도사에 들러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영축산 안으로 향했다. 

 

 원산스님이 기자들과 만나 차담을 나누고 있다.

수명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은행나무와 대나무밭, 울창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조그만 암자 백련암에 염불소리가 잔잔하다. 원산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이 기도하는 중이었다.

 

  일행을 알아 본 시자스님이 “스님이 기도 중이시니 잠깐 기다리시라”는 말을 전해준 뒤에도 염불은 한참동안이나 계속됐다.

 

  스님을 기다리던 일행은 염불하는 스님의 모습이 궁금해 큰법당에 들어갔다. 원산스님은 북과 징을 치면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오전 기도가 끝나고 원산스님이 차(茶)를 내주었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왔냐?”면서도 스님은 먼저 당신의 일상을 자세하게 풀어 준다.

 

북과 징을 치며 염불하고 있는 원산스님의 모습이 이채롭다.

하루 일정 대부분이 ‘염불’

 

  스님은 새벽 4시 30분 예불에 이어 6시까지 염불,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사시예불과 염불 등 오전 일정을 보내고 오후 자율정진을 한 뒤 다시 예불과 염불이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 계속된다. 자율정진 시간도 주로 염불을 하니 하루 대부분을 염불에 진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정만 보면 갓 불교에 입문한 행자 못지않다. “염불에 모든 것을 쏟다 보니 하루가 짧다”며 스님은 웃는다.

 

  원산스님은 왜 갑자기 염불 수행에 빠진 것일까?

알려진 바와 같이 스님은 선(禪)과 교(敎)를 겸비한 스님으로 유명하다. 스승이자 한국 근현대 불교의 거목인 경봉스님으로부터 참선을 배웠고 이후 극락암 호국선원, 송광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20여년간 정진했다.

 

원산스님이 관응스님의 편지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또한 대강백인 관응스님으로부터 강맥(講脈)을 이었다. 7년간 관응스님 문하에서 경학(經學)을 연찬했다. 이후 직지사와 통도사 강주, 조계종 교육원장 소임까지 맡았던 분이 바로 원산스님이다. 

 

“염불이 불교의 근본 종지”

 

  “1998년 2월부터 3년간 백련암 무문관(無門關)에서 하루 한 끼만 먹고 묵언하는 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관응스님으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편지에서 관응스님은 염불이 불교의 종지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염불을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당시 93세의 관응스님은 친필로 일주일동안 한 글자 한 글자씩을 적어 원산스님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원산스님은 관응스님의 편지를 직접 읽어주며 스승의 애정 어린 충고를 전해준다. 스승의 간곡한 당부가 염불수행의 이유 중의 하나이다.

 

원산스님이 3년간 정진했던 백련암 무문관의 모습.

그리고 하나 더. 백련암은 염불도량의 맥을 잇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에 따르면 옛 백련암 누각에는 백련정사 만일승회기(白蓮精舍 萬日勝會期)라는 장문의 글이 새겨져 있다. 스님은 “이 기록에 따르면 1600여년전 ‘동진 때 혜원 법사가 여산 동림사에서 백련결사를 결성해 123명이 깨달음을 얻었고, 신라의 발징 화상은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만일염불회’를 창설해 31인이 허공에 올라가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백련결사란 바로 염불회를 뜻하며, 허공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극락세계로 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원산스님은 최근 백련암을 영축총림 염불원으로 지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스님은 염불로 새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가을에는 ‘만일염불회’도 만들었다. 1만인이 만일동안 함께 염불수행을 하자는 뜻에서다.

스님은 요즘 ‘염불 잘하는’ 스님에게 염불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최근 스님이 직접 부산에 문을 연 백련화사도 염불 중심도량으로 가꿀 예정이다.

 

영축산 중턱에 자리한 백련암의 모습.

“염불, 쉽게 할 수 있는 수행법”

 

  스님은 “참선, 간경, 주력 등 이것 저것 해보니 다 일리가 있다”고 했다. 참선은 화두를 들면서 집중할 수 있고, 경(經)을 볼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지극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은 모든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수행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불을 할 때는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원산스님은 “깨달은 마음과 깨닫지 못한 마음은 어둠이 없는 낮과 어둠뿐인 밤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치를 바로 알면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일 것이고 깨닫지 못하면 어둠의 세계에 빠져 산다고 스님은 말했다.

 

  스님은 “단감에 똘감을 접붙이면 단감이 됩니다. 8만4000가지 번뇌를 안고 사는 중생도 염불을 하면 부처가 됩니다. 염불을 통해 부처님의 맑고 깨끗한 뜻이 접목돼 성불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염불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일컫는 말이다. 스님은 당신이 쓴 문구를 가리키며 말씀을 이어갔다. “‘아미타불재하방 착득심두절막망’(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아미타불이 어디 있는가, 마음을 잡아두고 간절히 잊지 마라, ‘염도염궁무염처 육문상방자금광’(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생각하고 생각해서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육문(六根)에서 항상 금빛 광명이 빛나리라.”

 

  스님은 “아미타불 10번만 부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이 편안하면 바로 그것이 극락”이라고 강조했다. 또 원산스님은 “영축총림 염불원인 이곳에서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행과 공양을 마치고 차담을 나눈 이후 스님은 다시 가사와 장삼을 챙겼다. 법당에 가서 염불을 하기 위해서였다. 큰법당으로 향하는 원산스님 어깨너머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원산스님의 염불소리 장단을 반갑게 환영하는 것처럼…….


                                

  원산스님

 

 

 

 

 

 

 

 

[출처] 9. 통도사 백련암 원산스님|작성자 jajuy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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