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태육성 28수 남극성 북극성 석종사 법당 앞에 모이다.
그 자리에서 되도록 하는 것이 수행. 안 되면 될 때까지 그 자리에서.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아픔을 줬다면 그것이 살생이다. 그런 스승들의 삶이 된 광명을 느끼는 불자가 얼마나 되랴?
처음에는 석종사에 오래된 5층석탑만 있었다던데?
신라 말 또는 고려 초 시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5층석탑. 일체시대 도굴로 방치되었던 5층석탑. 축대와 허물어진 5층석탑 외엔 아무 것도 없던 석종사 절터.
석종사 창건의 원력을 세우게 된 동기는?
활동적이고 기가 셌던 상좌에 3년간의 참선수행을 권유.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교통사고가 난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던 상좌. 네가 마흔 살 이전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를 바르게 일러라. 100일만에 와 해보겠다는 상좌. 그래서 상좌의 어머니를 맡게 된 스님. 다음 날 걸망을 지고 나오신 스님. 부모 없는 아이 5명과 할머니 5명으로 시작.
오랜 시간 기도 수행처였을 석종사 어떻게 폐사지로?
조선중기 억불정책 당시 충주 수령으로 오게 된 조경로. 석종사 전각을 뜯어다 충주 읍성을 건설. 그리고 관아헌이라는 수령 저택을 건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5층석탑을 도굴하며 폐사지의 땅을 개인들에 불하 매각. 그 이후 과수원이었던 경내지. 처음 와 5층석탑을 제일 먼저 복원. 대웅전을 비롯해 선원 수련원 등 18개 동이 중창불사.
이렇게 석종사를 만들며 어려우셨던 점은?
건축하기 전 주위 산과 어울리는지 대자연에 누가 되지 않는지가 가장 어려웠음.
토신제 - 제주도에서 많이 행해지며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사.
이 절이 들어오기 오래 전부터 주인으로 살아온 모든 생명들. 이 집을 지어 수명이 다할 때까지 wㅏ연에 잠깐 빌려 쓰겠다는 허락을 받는 토신제.
최근 참선과 명상 Templestay 관 선림원을 불사하셨는데 소감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지은 것과 의식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 의식개혁에 시간을 투자할 때 인생이 달라지는 것. 수행 때보다 보람이 적었던 중창불사. 연꽃 향기가 나는 의식개혁을 하기에 부족했던 공간. 종교가 없거나 대학생 젊은이가 와 의식개혁을 할 수 있도록 선림원을 불사. 인간을 비롯한 대자연 속 모든 것들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 나입니다.
혜국스님의 출가인연
1등을 못한 억울함에 6촌형님을 찾아갔다 배를 타고 해인사로 가게 된 스님.
큰 절 행자생활이 어려웠다던데 어떠셨는지?
공양하다 돌을 씹게 되면 다 불려간 행자들. 돌 하나로 1,000배 3,000배 참회를 해야 했던 시간.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밤 9시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했던 행자생활. 동상 걸린 곳을 콩 자루에 넣고 환부를 치료하던 민간요법. 동상 걸린 발을 성철스님의 콩단지에 넣으신 스님. 양심에 가책되어 성철스님을 찾아가 사죄. 호랑이 같았지만 수행하는 사람을 아끼고 용서해주시던 성철스님.
비가 오던 날 공부가 되지 않아 마애석불에 올라가 기도한 5 수행자.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화두가 안 되면 그 자리에서 되도록 하고 일어나야 되지 그걸 5리가 넘는 부처님께 가지고 가? 지금도 저한테 그 말이 귓전에 쟁쟁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자리에서 화두로 돌려 일어나야지 안 된다고 다른 방법 찾지 말라.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주러 오셨습니다.
생전 제주도를 좋아하셨던 일타스님
상좌가 되어 봤으면 하는 우상 일타스님. 일상 삶이 되어있던 자비를 다 배우기 전 가셨음에 너무 힘드셨던 스님. 동곡 일타대종사<1929~1999> 3년 결사 끝낸 스님께 문지기를 맡기고 21일간 묵언 참선수행을 하겠다 하신 일타스님. 수행 3일만에 일타스님을 뵈러 지족암에 온 보살들. 결국 멀리서 온 보살들을 소리 지르고 내쫓은 스님. 수행자가 중생의 마음을 그리 아프게 하고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는가? 자네 입으로 나오는 말이 남의 마음이 아픈 일이 있으면 그것은 계를 파하는 일일세. 일타스님의 말씀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보살들에게 전화하신 스님. 신심이 났다는 보살들 말에 기분이 좋아지신 일타스님. 자비가 일상 삶이셨던 일타스님.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변함없는 부처님 마음일세.
화두가 안 된다고 마애불까지 가져 가? 그 자리에서 되도록 하는 것이 수행이야. 화두가 안 되면 gㅘ두가 될 때까지 다리가 썩어 넘어져도 될 때까지 해놓고 일어나는 것이지. 안 되는 것을 다른 데 가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건 좋은 환경 네 마음에 맞는 환경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네 입으로 나온 말이 사람이든 나무 한 그루든 돌아다니는 노루 한 마리든 새 한 마리든 조금이라도 아픔을 줬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생이다. 그런 건 있어서는 안 된다.
일타스님께서 스님을 당신의 은사 고경 큰 스님의 후생이라고 하셨다던데?
법화경을 원없이 보고 싶으셨던 스님. 전생의 은사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 일타스님. 상좌들을 잘 포용해 주시던 일타스님.
일타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많이 그리우셨을 텐데?
평생 수행을 했지만 뛰어넘지 못한 사제의 정. 모르는 게 없으셨던 성철스님과 일타스님. 일타스님께 느꼈던 스승의 향기를 가지지 못해 더욱 그리우신 스님.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나 오직 간택함만을 꺼릴 것이니
다만 미워하거나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37회. 뜰 앞에 잣나무. 혜국스님 1부<석종사 금봉선원장> 중에서
불을 끄고는 이거 내가 들었냐? 안 들었냐?
눈으로 보는 게 아니오 귀로 듣는 게 아니다.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오 내가 누군지를 모르는데 나가.
이 뭣고? 왜 뜰 앞의 잣나무라 했는가?
모르는 건 백지다. 백지가 청정이다. 알고 있던 낙서가 백지가 되어 오직 모를 뿐 모른다는 청정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면 윤회의 모든 발자국이 번뇌망상 전부 화두가 되어 청정이 되어야 한다. 38그루 꺼지지 않는 등불로 수행불교를 일으키다.
1969년 전강스님을 모시고 용화사에서 참선을 시작. 법화경 화엄경을 보고 싶었던 번뇌망상.
글 공부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또 다시 그걸 반복하냐. 억! 몇근이냐? 니 몸뚱이 보는 놈 듣는 놈이 누고? 불을 끄고는 이거 내가 들었냐? 안 들었냐? 고양이는 깜깜한 데도 보는데 너는 그만 못하구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아니다. 하루 5천 배씩 절을 시키신 성철스님.
나를 끌고 다니는 참부처님께 내 감정이 내 인격 부처님께 절하는 게 아닌가? 진정한 절을 위해 5천 배씩 다시 시작. 10만 배를 끝마치고 마음으로의 출가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장경각에서 손가락을 연비.
퇴옹 성철대종사 <1912~1993>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에서 연비를 했다고 하셨는데?
인류의 유산 부처님의 보배 팔만대장경이 있는 장경각에서 연비를 했다고 혼이 나신 스님. 짅정한 수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잠 때문에 고생하는 참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장좌불와를 한 채 고꾸라져 잔 스님. 10년간 장좌불와를 하셨던 성철스님은 어떠하셨는지 궁금했던 스님. 마지막 가실 때까지 자신을 게으르지 못하게 하셨던 성철스님. 야 개새끼야 내가 목석이냐 안 졸게. 장좌불와를 하시며 성철스님의 말씀. 천장에 끈을 묶어 고개가 내려오지 못하게 하란 성철스님의 말씀. 제자의 노력을 좋게 보고 직접 쓰던 철발우를 주신 성철스님. 머리에 수건을 올리고 철발우에 물을 채워 장좌불와를 하라 하신 성철스님. 계속되는 실패에 포기하신 스님. 유서를 쓰고 차에 3배한 후 여러 잔 마시고 다시 참선을 시작.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 하나인 것을 체득. 모든 것이 하나 청정법신이 하나.
경봉스님 구산스님도 친견하셨다는데?
뭘 알았는지 일러봐라. 스님 말씀하는 자리나 내 말이나 둘이 아니요 말 나오는 자리가 이미 일러 마쳤거늘 무얼 또 이르라 하십니까? 억 몇 근이냐? 스님 더 이상 속이려고 하지 마십시오. 驪事未去馬事到來 일러라. 그 이후 백련암에 방을 내주고 3년간 못 나가게 하신 성철스님. 구산스님 밑 송광사에서 5년간 생활.
이런 큰 스님들을 어떤 분으로 기억하시는지?
웅크리고 있는 사자 같았던 성철스님. 자상하지만 호랑이 같았던 경봉스님. 경봉스님의 덕화를 입지 못해 아쉬우신 스님. 상좌에게 냉철하고 냉랭했지만 수행자들에게는 아주 자상하셨던 구산스님. 이른 새벽 참선에 경책하실 때 주장자를 쓰셨던 구산스님. 그날 이후 손수 달인 인삼을 스님께 가져다 주셨던 구산스님. 이 몸을 이끌고 가는 내가 누군지 찾는 것이 주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스스로를 생각하실 때 어떤 스승이셨는지?
정말 풍요로운 간화선 가풍. 큰 스님들의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일 뿐 아직 큰 스승은 아니시라는 스님.
지금 수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조사어록마다 단박에 깨달아 버리는 경우가 많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험난한 과정이나 고생을 강조하기보다 깨닫는 것을 강조. 내가 있고 깨닫는 것이 아닌 내가 없어져버릴 정도의 공이 된 상태. 비운만큼 비워지지 억지로 생각만으로 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번뇌망상은 내가 걸어온 인생. 태어날 때부터 익힌 모든 발자국이 번뇌망상 그게 화두가 되어 청정이 되어야 한다. 번뇌망상은 남이 맡긴 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 놓은 것 내 단점을 내가 사랑 안 하면 누가 하겠는가? 모든 단점과 모든 업을 인정하면 그것을 인과를 믿는다고 합니다. 인과를 철저히 믿고 인과가 없는 자리 연기공성을 보여준 부처님이 제행무상 제법무아 도리 그것만 확실히 믿는 것을 저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라 그러고 자기 번뇌망상 단점을 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자기 인과도 꼭 믿어야만 이 공부는 된다. 불법은 신앙이 아니라 신심입니다. 신심이란 내가 부처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 이야기
티베트 불교의 장점 삶과 수행의 하나 됨. 티베트 불교의 마지막 수행 목적지 자비와 공성. 우리나라는 깨닫는 것에 너무 집중. 같이 하는 것이 아닌 순서대로 이루려는 것이 강함. 비폭력이 티베트의 수복이다.
신심명 몰록 깨달음의 노래를 발간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부처님의 사상을 인간의 글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신심명. 부처님의 중도 총론을 바로 보여주는 신심명. 컴퓨터를 하지 못해 처음부터 끝까지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쓰신 스님. 부처님이 깨달은 세계를 노래로 표현.
至道無難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지루한 적이 없었던 54년 불도의 시간. 지심귀명례 매일 기다려지는 새벽 예불시간. 다음 생이 이번 생처럼 힘들더라도 스님의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시겠다는 스님.
뜰 앞의 잣나무를 보고 계신 불자들께 한 말씀?
물질문명으로 인해 정신문명을 놓친 우리나라. 부처님 사상과 가르쳐주신 마음 수행법, 남을 배려하는 법, 남과 나는 둘이 아닌 법. 불자들만큼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날마다 부처님 가르침이 삶으로 이론만 좋다고 할 것이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삶이 되도록 다 같이 노력.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이름하여 생사라 하니
이러한 생사에 당하여서 다시금 힘을 다해 화두를 들지어다.
38회. 뜰 앞에 잣나무. 혜국스님 2부<석종사 금봉선원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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