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조사 法性偈.
화엄종 초조는 두순선사다. 두순선사는 지엄선사에게 의발을 전하고 지엄은 법장에게 전했다.
두순선사<557~640> – 중국 수당시대 고승. 화엄종 초조.
지엄선사<602~668> – 화엄종 제 2대 조사.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에 걸쳐 활동했으며 화엄종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자에 법상과 의상이 있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중국으로 가다 하루 밤을 토굴에서 잔다. 그리고 심한 갈증에 달게 마신 해골 물 사건을 경험한다. 어제 밤 마신 물과 아침에 본 물은 같은 물인데 더럽다는 분별심에 그만 토하고 만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心生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 한 생각 분별심이 일어나니 천만 가지 번뇌가 일어나고 한 생각이 본 성품자리로 돌아가니 천만 가지 번뇌가 사라지니 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 보신 것이다.
당나라로 유학 길에 오른 의상스님은 지엄선사 문하에서 화엄을 배우고 법성게를 짓는다. 용수보살이 용궁에 가서 본 화엄경은 글자수만 10조9만5천48자로 너무 방대해서 중생들은 평생 읽어도 시간이 안 된다. 그래서 39품으로 줄여 처음엔 60권80권 40권 화엄경이 순차적으로 나온다. 이 화엄경을 의상스님은 7言 30句 210字로 줄여 법성게를 지었다.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은 원융하여 2모습이 없다. 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니 본래 적멸하다.
법성게는 우주 전체 생명의 순리와 순환을 잘 요약한 게송이다. 법성게를 잘 알면 대승의 열린 마음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法性은 보통 한 단어로 같이 쓰지만 여기서는 法과 性을 나누어 그 뜻을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우주 법계의 가지 가지 울 눈 앞에 펼쳐진 모양이 法이다. 봄이 되니 많은 꽃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자연 현상으로 드러난 모든 것을 法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모든 현상들은 인연법을 바탕으로 生하고 滅한다.
모든 현상은 因果가 있다. 비유하자면 바닷물은 어떤 緣이 와서 부딪치지 않으면 본래 고요하다. 움직임이 없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이 없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단풍잎이 물 위에 떨어지면 물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마음의 세계도 이와 같다. 明鏡止水에 바람이라는 緣이 와서 물이라는 因에 부딪치니 물결이 일어나고 출렁이는 果가 생긴다. 우리 마음은 원래 맑고 고요하다. 맑고 고요하니 마음은 밝기도 하다. 그런데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동요되어 우울해지고 회가 나기도 한다.
본 마음 바탕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떤 경계가 와서 부딪치면 소견에 따라 그 마음이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이 열린 사람은 비록 경계를 따라가지만 본 마음 바탕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분노와 증오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마음은 일편 단순해 보이지만 마음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혜에 따라서 천 층 만 층 다르다. 같은 물이지만 보살이 보면 감로수지만 지옥중생이 보면 피고름으로 보인다. 사람이 지혜가 없으면 부딪치는 경계마다 괴로운 것이다.
우리는 전생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복잡다단한 사연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정서가 다르니 고정관념과 지혜의 크기는 너무나 다 다르다. 고정관념과 지혜만 잘 알아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森羅萬象 頭頭物物은 그냥 자연스럽게 왔다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인과법칙에 따라 생기고 멸한다. 因果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관계 속에 형성한 우리의 정서 인격 성격들을 말한다. 많은 선행이나 남을 위로하는 일들은 전부 복덕을 짓는 인과에 해당한다. 이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 없고 緣이 없는 결과 없다.
緣은 사연 즉 동기를 말한다. 보고 있지 않다고 상대를 험담하거나 못할 짓을 하면 안 된다. 반대로 표나지 않게 복을 짓는 陰德은 많이 지어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좋은 일은 될수록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 숨어서 베푸는 음덕은 無念布施의 덕을 쌓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 가운데 음덕이 가장 훌륭한 복이다. 선행을 해도 이치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한 공덕을 바로 잊어버린다. 그런데 그 사람 내 음덕을 알지 모르겠다고 은연 중 표현하면 다 복을 까먹는 일이 된다. 불교는 음덕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래서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을 불교는 싫어한다.
首陽山陰 江東八十里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나 간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정성으로 탑을 쌓고 내가 했다고 드러내는 짓을 경계하는 말이다. 불교는 자랑하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보살은 相이 없기 때문이다. 相이 많으면 복이 감한다. 저 사람은 인과가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인과가 없는 사람은 시주나 선행을 해도 전혀 말이 없다. 입을 닫고 좋은 일을 했는지 공덕을 지었는지 전혀 모르니 인과가 없는 것이다. 자기의 自性을 조금도 오염시키지 않은 상태의 순수함 그대로 보시하고 행하는 사람이 인과를 벗어난 사람이다. 요즘엔 인과 없다는 소리 듣기가 어렵다. 인과 법칙 없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없다.
회주에서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터졌다. 천하의 명의를 찾아서 돼지 어깨 왼쪽 위에 뜸을 떠 줘라 <두순선사 법신송>
그러니 회주의 소도 편안하고 익주의 말도 편안하고 세상이 전부 편안하다. 이 세상은 티끌 하나도 인연 없이 관계성을 떠나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생명현상은 하나도 없다. 다 연결되어 있다. 상대를 높이 띄워 주기 위해서는 힘껏 널을 밟아줘야 한다.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은 그대로 생명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至高至順해서 거기엔 악도 없고 선도 없다. 그런 사랑이 원수가 되는 것은 조건을 붙여 스스로 복을 감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간택을 꺼릴 뿐이다.
손익을 따지는 분별심 때문에 사랑이 타락한다. 내 생명을 당신을 위해 바치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결혼 서약이다. 그런데 결혼생활 오래하다 보면 주머니 다 따로 찬다. 익주에서 회주는 수천 리나 떨어진 거리다. 그런데 회주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터졌다? 일체 생명세계는 다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정주 선생은 불교에 밝으니 한 송이 국화꽃 시를 지은 것이다. 소쩍새 울고 한 송이 국화꽃 피는 소식을 누가 알겠나?
1회. 설우스님. 법성게 요지 설명 중에서
[출처] 887.법성게 요지 설명|작성자 Ink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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