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선문답 일고찰

수선님 2021. 7. 4. 11:28

선문답 일고찰

 

 

1. 서론

2. 선종 성립의 개괄

3. 공안의 성립

4. 선문답

5. 결론

6. 참고문헌

 

 

1. 서론

 

1-1.연구의 동기와 목적

 

지금부터 바로 5,6년 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는 일이 생겼다. 철모르는 고등학교 시절의 소년이 우연히 불교를 알게 된 것이다. 책상위에 꽃혀 있는 수필집을 꺼내서 읽으면서 참으로 마음 깨끗하게 사는 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러한 사람이 믿고 따르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픈 마음이 생겨났다.

 

불교를 접하면서 간화선수행을 알게 되었고, 무엇인지 알 듯 모를듯한 소리들은 더욱 더 깊은 추구를 하게 만들었다. 한구(一句)의 화두는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오는 것인가? 이것이 나 스스로의 화두가 되어 온지 벌써 4년이 되간다. 나 스스로의 진지한 탐구는 물론 대학생활을 통해서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특히 이것을 좀 더 공부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온 선학과는 나름대로 정신적 고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생활은 나의 진지한 추구만을 허락하지는 않아서, 시대의 젊은이답게 사느라고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의 고민수준이 그렇게 실다운 것은 아니다.

 

선을 접하면서 가장 흥미 있고, 또한 가장 난해한 부분이 바로 선문답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문답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 되는 데서 생기는 괴리를 많이 느꼈다. 물론 선의 도리를 시시콜콜하게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한다고 하여도 이해할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또한 그것이 미치는 해악성은 실로 심대하다.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 하는 선의 도리를 설명해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수행을 해나가는 데 장애만을 줄 뿐이다. 하지만 선문답을 완전히 비논리적 유희나 동문서답식 해프닝으로만 받아들이는 현상이 존재한다면 이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은 바로 불교의 정수이고, 이러한 선을 접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은 올바른 불교를 배우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의 오랜 관심사이고 또한 선의 문턱에 들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선의 문답이 갖는 본질적 작용과 지향을 나름대로 밝혀서 선문답에 대한 비방과 무지를 동시에 떨쳐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졸업논문의 의도이다.

 

1-2.연구의 방법과 범위

 

이 논문에서는 선문답과 관련된 자료를 통해 선문답의 지향과 기능을 살펴보도록 노력하겠다. 특히 선문답이 갖는 현재적 의의나 수행적인 면을 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의 선종 성립 이후에 전개된 여러 어록이나 공안집, 그리고 한국 불교의 선문염송 같은 공안집과 근래의 여러 선사들의 어록을 되집어 보면서 필요한 부분을 옮겨보도록 할 것이다. 특히 선종의 역사부분에서는 자세한2 역사를 살펴서 이론을 대두시키기 보다는 현재까지의 일반적인 설을 취하고 간략하게 넘어갈 것이며, 선문답의 예제는 한국의 근세 선사들의 선문답도 예로 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2. 선종 성립의 개괄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에 전해진 이래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선종의 성립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인도불교에도 여러 가지 선정사상이 있었지만, 중국에 와서는 독특한 성격의 선종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먼저 중국의 선종 성립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2-1.중국 선종 성립의 개괄

 

일반적으로 선종이 성립되는 근거는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중국으로 건너온 이래 육조혜능까지의 법맥이 형성되는 것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물론 달마의 정확한 인물과 연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보리달마를 중국선종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처음의 인물로 보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달마를 조사로 삼아서 이어 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으로 이어진다. 육조에 이르러서는 대통신수(大通神秀)와 대감혜능(大鑑慧能)으로 나뉘어 진다. 이후에 혜능의 제자인 하택신회(荷澤神會)에 의하여, 신수의 북종선(北宗禪)과 혜능의 남종선(南宗禪)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혜능으로부터 청원행사(靑源行思)와 남악회양(南岳懷讓)의 두 계통이 생겨나고 이것이 다시 임제, 위앙, 조동, 운문, 법안의 5종가풍(五宗家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중에 임제종은 황룡(黃龍)과 양기(楊岐)의 두 파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것을 통틀어서 5가7종(五家七宗)이라고 한다.

 

중국 불교 초기에는 선종이라는 명칭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달마가 중국에 오기 이전에는 여러 가지의 역경사업과 격의불교(格儀佛敎)가 유행하였고, 달마가 중국에 온 이후로 그의 문하에서 능가종(楞伽宗)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4조 도신의 문하에 홍인 등의 제자가 번성함에 따라 동산종(東山宗)이라는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우두법융의 절관망수(絶觀忘守) 사상에 근거해서 우두종이 성립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四祖 도신의 문하인 우두법융과 우두종과의 관계는 사실 좀 불확실한 면이 없지 않다. 신수 와 혜능에 이르러 혜능쪽에서 달마를 조사로 받드는 달마종의 명칭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에 이르러 북쪽의 신수와 남쪽의 혜능의 종파적 분리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 이것은 혜능의 제자인 하택신회의 노력인 것으로 보여진다.

 

혜능의 문하로 내려가면 하택종과 석두종, 그리고 홍주종의 명칭이 보인다. 하택종은 혜능의 제자인 하택신회가 一家를 이룬 것이고, 석두종은 청원행사의 뒤를 이어 석두희천(石頭希遷)이 일가를 이룬 것이다. 또한 홍주종은 남악회양의 뒤를 이은 강서의 미친 말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일가를 이룬 것이다. 초기에는 하택종이 번성하였으나, 이후에는 홍주종과 석두종이 더욱 크게 번성하였다고 한다. 특히 하택종은 혜능의 정통법맥이 바로 하택종임을 강조하였고, 규봉종밀 같은 이가 [선원제전집도서]에서 일체의 종파와 교의를 교선일치의 입장에서 정리하기도 하였다. 이심전심(以心傳心)불립문자(不立文字)의 숙어는 바로 규봉종밀이 저술한 [禪源諸全集都序]에서 가장 먼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하택종의 정통을 세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여기서부터 선종의 면모가 물씬 풍겨나기 시작한다.

 

홍주종의 마조도일과 석두종의 석두희천 그리고 우두종의 경산법흠 등이 당대의 3대 거장으로 추앙되면서 그들의 문하에 상당한 제자가 생겨난 것이다. 달마종이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법맥이 형성된 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그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마조도일 섣두희천 그리고 우두종의 경산법흠(勁山法欽)의 문하에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오대무명(五臺無名722-792) 오대무착(五臺無着) 복흥도융(福興道融) 용안여해(龍安如海 728-808) 용아원창(龍牙圓暢)오흥법해(吳興法海)태백관종(太白觀宗731-809)양주도견(壤州道堅  735-807) 청량징관(淸凉澄觀, 738-838) 서당지장(西堂智藏 739-814)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7) 장엄혜섭(莊嚴慧涉 741-822) 협산여회(夾山如會 744-822) 복우자재(伏牛自在) 부용태육(芙蓉太毓744-822) 천황도오(天皇道悟 748-807) 약산유엄(藥山惟儼 759-828) 불굴유칙(佛窟遺則 772-830) 등이 일시에 배출된 사실을 보면 선이 얼마나 발전을 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이들 제자들 속에는 마조도일과 석두희천 그리고 경산법흠을 오가면서 배운 사람이 많았다고 하니, 바야흐로 선종으로서의 형성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석두종과 홍주종 그리고 우두종은 서로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통틀어 남종(南宗)이라는 말 속에서 크게 흐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마조도일의 문하인 백장회해에 의해서 백장청규(百丈淸規)가 만들어 졌는데 이것은 선을 중시하는 종파가 어느 정도 독립을 하고 있었다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장회해의 청규에 의해서 불전(佛殿)을 세우지 않고, 다만 법당(法堂)을 꾸미는 제도가 시작되고, 방장(方丈), 승당(僧堂), 등의 선원의 조직이 정비되었다. 그리고 좌선(坐禪), 입당(入堂), 재죽(齋粥), 보청(普請)등 총림의 운영규칙이 새롭게 제정되었다. 바야흐로 선을 중시하는 종파적 독립성이 생긴 것이다.

 

백장회해가 82세 되던 해(801)는 황벽희운(805년 입적)이나 위산영우(771-853) 그리고 규봉종밀(780-841)의 청년시대 내지 장년시대에 해당된다. 규봉종밀은 그의 저서인 선원제전집도서에서 "선(禪)"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당시의 여러 가지 종파와 교의를 정리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특히 황벽희운의 [전심법요]라는 저서에 보면 [我此禪宗, 從上相承已來, 不曾敎人求智求解] 라 하는 데, 여기에서 바로 선종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것으로 볼 때 백장회해를 기점으로 해서 선종이라는 명칭이 성립되어 나갔음을 알 수가 있다. 대략적으로 선종이라는 종파적 독립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약 9세기 정도에 해당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의 당나라 시대 중에서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 사이에 해당되며, 우리나라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해당된다. 역사적으로 바다의 왕자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해서 당나라로 가는 유학생과 상인을 보호하는 일을 하던 때가 828년 이후이다. 서양의 카알대제가 서로마제국을 부활한 해가 800년이고, 프랑크 왕국이 분열한 해가 870년이다. 대체적으로 중세 전반기의 중, 후반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인도에서 전래된 보리달마의 선법(禪法)은 당나라 시대에 선종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이어서 송대까지 발전을 하게 된다. 바야흐로 5가7종이 번성을 하는 것이다. 송대에 들어서 선종의 공안이 만들어 지게 되는 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설두중현(雪竇重顯)이 뽑은 송고백칙(頌古百則)과 굉지정각(宏智正覺)이 뽑은 송고백칙이다. 설두 중현이 묶은 송고백칙은 원오극근이 벽암록(碧巖錄)으로 펴냈고, 굉지 정각의 송고백칙은 종용록으로 남았다. 어쨌든 벽암록과 종용록(從容錄)에 이르러 선종의 기연어구(機緣語句)와 문답상량(問答商量)이 정형화된 틀로 묶여서 수행의 지침으로 등장하게 된다. 한편 일본 조동종의 조사인 도오겐은 선종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백해무익하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는 선종적 독립의 시기를 송대 정도로 보고 있기도 하다.

 

선의 문답이 곧 불교의 정수를 거량하는 법의 문답이라고 할 때에, 어찌 송대에만 있고, 선종에만 있겠는가. 하지만 여기에서 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간화선(看話禪)의 종풍(宗風)이 형성되고 난 이후에 발전된 조사선(祖師禪)의 면목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문답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그러하기에 중국선종의 성립을 간략히 고찰한 것이다. 하지만 간화선이 아닌 묵조선 계통의 조동종과 초기 선종사에 선의 문답이 없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많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불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이 바로 간화선의 종풍이며, 여기에 기반한 문답상량이 많기 때문에 간화선을 주로 고찰하는 것이다. 아무튼 간화선의 종풍은 대혜종고에 이르러 거의 완결적 구조를 갖추게 되며, 여기에 비해서 굉지정각의 선풍이 차별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대혜와 굉지가 서로 비판하는 가운데, 간화선과 묵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2-2.한국 선의 개괄

 

우리나라에 선이 전래 된 것은 중국에서 선종의 형태가 생겨나는 당나라 시대부터 인 것으로 보여진다. 통일신라 말기에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승려나 학생이 많았던 것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할 정도로 해상교통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가 있다. 통일신라 말기부터는 선을 중심으로 하는 開山祖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선이 풍미할 때에 약간의 시간을 두고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도 선을 표방하는 산문이 열렸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에서 五家七宗의 가풍(家風)을 배워 와서, 새롭게 산문을 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구산선문(九山禪門) 또는 선문구산이다. 일본인 학자 홀골곡쾌천(忽滑谷快天)은 그의 저서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문의 구산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구산을 총칭하여 조계종이라고 한다. 조선의 현행하는 선문예참의문(禪門禮懺儀文)에 대가섭이하 육조혜능에 이르는 법계를 기록하고 다음에는 선문구산의 조사를 세웠으니, 이른바 도의(가지산) 범일(사굴산) 철감(사자산) 무염(성주산) 현욱(봉림산) 도헌(휘양산) 혜철(동리산) 이엄(수미산) 홍척(실상산)이다.]

 

바로 약간 앞 시기에는 원효와 의상이 있었다. 원효는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가장 먼저 확연하게 드러나는 인물이다. 그는 일승원교(一乘圓敎) 사상으로 확연하게 불교의 정수를 드러낸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원효의 시대에는 선을 표방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라의 말기부터 시작된 구산선문의 형성은 고려초기까지로 완성이 되나 크게 번성을 구가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숭불정책에 의하여 중앙의 왕실 귀족과 밀접하게 결부된 불교가 시간이 갈수록 화려한 불사와 정치권력의 개입 등에 골몰해 갔다. 대각국사 의천이 나타나 방대한 역경사업을 행하였으며, 천태지의의 사상을 받아들여 천태종을 세우면서 세력을 번성하였다. 약간의 후대에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주도하면서 집단적 수행가풍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정혜결사문등의 저작을 통해보면, 그는 선의 사상을 충분히 섭취하고, 당시의 시대상황 속에서 나름대로의 선종적 수행가풍을 만들어 나가려는 노력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눌의 제자 진각혜심(眞覺慧諶)에 의해서 선문염송이 저술됨에 따라, 한국불교에서도 간화선의 기틀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의 불교는 점차로 귀족과 왕실의 기복을 빌어주는 불교로 전락하면서, 조선시대 억불정책의 빌미가 된다. 고려 말기에는 태고보우 선사가 나타나 다시 한 번 선을 부흥시키고, 불교를 부흥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 태고보우는 중국에 건너가 임제종 석옥청공의 법을 받아왔다고도 한다.

 

조선에 이르러 불교는 지리멸렬하게 되고, 화려했던 귀족불교의 자취는 없어졌다. 불교도 혹독한 탄압을 받으면서, 산중으로 들어가 법맥을 이어서 겨우겨우 살아남아 왔다. 이러한 암흑기에 청허휴정과 송운유정이 등불을 밝혔다. 그러나 조선의 불교는 선과 교가 융합하고, 여러가지 수행방식이 혼합되면서 교세는 다 같이 쇠약해져가는 형태였다. 그러나 조선불교의 주류적 사상은 선종적 사상임을 여러가지 저작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조선말에 이르러서는 雪坡,白坡 등의 승려가 있었다. 백파가 지은 禪文手鏡에 대하여 草衣意恂이 四辨漫語로 논박하면서, 禪門證正錄,禪源溯流,禪門再正錄등의 저작이 나오고, 서로 선의 종지를 논박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나라의 운명과 같이 쇠망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조선말에 이르러 정치는 극도로 악화되어, 동학난이 발생하고 청일전쟁이 벌어져서 결국은 한일합방이 되었다. 이러한 최근세의 민족수난기에는 경허선사가 홀로 우뚝 솟아 있었다.

 

 

3. 공안의 성립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화두(話頭)라는 말은 사실 선종의 전문용어로는 공안(公案)이다. 이 말의 원뜻은 물론 "공적인 기록"이지만, 선종에서는 실제로 수많은 문답이 선가의 명판결에 따라 정리되고 보존되어 왔기에 이를 "판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공안은 깨달음을 검증하는 수단이 되어온 것이다. 공안의 성립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수,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리달마의 중국 도래와 이후 발전된 선종적 기풍은 백장회해에 의해서 백장청규가 만들어 지는 등 선종적 독립을 가져왔다. 이후 중국의 역사 속에서 회창폐불이 있었는데, 역사적인 폐불 사건을 통하면서도 다른 종파들의 몰락과는 달리 선종은 의연히 살아남았다. 소위 말하는 북종은 거의 몰락한 반면 남종은 겨우 살아남아 면모를 유지하였다. 이 회창폐불을 거치면서 선종의 가풍은 더욱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변모하였다. 실제적으로 임제, 조동, 운문, 법안, 위앙의 분리 원인을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9세기 정도에 이르러서는 종파적 독립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5가 7종의 형태로 번성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중세의 전반기 중에서도 중, 후반부에 해당되는 일이라고 앞에서 서술했다.

 

이러한 선의 황금시기에는 치열한 구도열에 불타는 선사와 납자 사이의 문답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이러한 문답들은 선사들의 어록이나 여러 저술을 통해서 문헌에 산재해서 남게 되었다. 그러다가 송대(宋代)에 내려와서 이러한 선의 문답을 기록으로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공안집이다.

 

당(唐) 시대 초기에도 물론 이러한 공안적 요소가 있는 문답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공안이 기록으로 남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회창의 대폐불(845년 무종5년 회창5년)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폐불을 겪으면서 초기 선종의 여러 선사들의 사상과 언설이 간단하게 수행의 지침으로 남아있게 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불교경전이 불태워지고 승려가 죽임을 당하는 엄청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생존방법이었을 것이다. 물론 회창폐불이 곧 [송고백칙]을 만들게 하는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쨌든 초기 선종사의 여러 선사들의 사상과 인도의 선정사상 등이 간단하게 압축되어 정리되었다. 이것은 선종의 수행과 깨달음에 있어서 기준과 방편이 요구되어 진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방대한 경전도 폐불과 같은 엄청난 역사적 시련 앞에서는 보존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또한 선종의 실천적 성격은 교학적으로 복잡하게 번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압축되고 효과적인 수행의 근거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불교경전이나 사상은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그러하기에 여러 선사들의 문답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회창폐불 이후 선종은 대승불교적 성격으로 대다수의 중국인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송고백칙]과 같은 압축되고 음률적인 문장은 사대부들에게도 널리 회자되게 되었다.

 

{송고백칙}은 송대에 들어서 임제종의 설두중현(980-1052)이 인도와 초기 선종 조사들의 문답을 뽑아서 백칙(百則)으로 엮은 것이다. 여기에 원오가 평창(唱評)과 시중(市重)을 보태어 {벽암록} 10권으로 만들었다. 원오의 제자인 대혜종고는 나중에 이 벽암록을 불태웠는데, 사람들이 벽암록에 너무 집착함을 안타까이 여겼다고 한다. 이 사실만을 보아도 공안의 목적은 그 자체적으로 어떤 독립의 의미가 있는 것이기 보다는, 깨달음을 지향하는 방편의 하나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인도 당시의 불교에서는 이러한 공안을 찾아볼 수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삼처전심(三處傳心)과 같은 선화(禪話)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대혜는 간화선을 주창하였고, 간화선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대혜는 여러가지의 공안을 총괄하여, 조주의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하나로 요약, 압축하였다. 대혜에 의하여 소위 말하는 무자화두(無子話頭) 드는 법이 정립된 것이다. 대혜는 원오극근의 공안선(公案禪) 사상을 이어받아서 화두로써 일체의 알음알이 제거하는 이른바 현성공안(現成公案)으로써의 간화선(看話禪)을 제창한 것이다. 초기 선종의 선문답이 공안으로 정리된 것이 이른바 [고칙(古則)]이라면, 이러한 고칙이 공안으로써, 여전히 그것을 참구하는 이에게 현재적으로 작용하는 현성공안을 주창한 것이다. 일본 조동종의 조사인 도오겐도 공안의 참구에 대하여 현성공안과 고칙공안으로 나누어서, 공안에 여러 가지 의미적 추구와, 사량 분별을 일으키는 태도를 고칙공안이라는 말을 통해서 경계했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간화선의 등장은 상당히 새로운 면목이다. 물론 초기의 선사들이 공안에 가까운 문답을 보이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답이 고칙으로 정리되고, 다시 이러한 고칙을 뚫어내는 방편으로 간화의 선법(禪法)이 주창되는 것은 새로운 창조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사실은 대혜가 바로 앞산인 천동산에 있던 굉지의 선풍에 대하여 비판하는 가운데 묵조선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간화선은 상당히 새로운 수행방법이었으며, 여기에 반해서 굉지의 선풍은 보다 전통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혜가 간화선을 주창할 때, 중국 선종의 전체적인 모습이 간화일변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로 임제종의 주된 수행방법으로 널리 퍼져갔음을 후대의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보조 지눌 또한 이러한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여서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을 주창하였는데, 그것은 송나라 상선(商船)을 통해서 구입한 [대혜어록] 30권을 통해서였다고 한다. 대혜가 입적한 때가 1163년이고, 보조 지눌이 태어난 때가 1158년 이니까, 시대적으로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볼 수가 있다. 지눌이 대혜어록을 본 것은 1198년 지리산 상무주암에서였다고 한다. 대혜 입적 후 약 35년의 차이가 생기긴 하지만, 고려시대라는 시대적 여건과 인쇄술의 발달 정도를 생각해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대혜의 간화선은 고려의 보조 지눌에게로 전해져 현재의 한국 간화선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이후 공안은 선종의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게 되었는데 간화선이라는 기풍은 여기로부터 기인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간화선의 기풍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고 생각된다. 조동종의 전통적인 선풍(禪風)은 도오겐에 의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고, 임제종의 대혜종고가 주창한 간화선의 새로운 선풍은 한국으로 건너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조 지눌의 제자인 진각혜심에 의하여 {선문염송}이라는 공안집이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간화선의 기틀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간화선이 주창되고 나서 공안집이 형성된 점이 중국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중국에서는 송대에 이르러 고칙이 정리되고 나서 공안집이 만들어 지고 이후에 대혜종고에 의해서 간화선이 주창되었기 때문이다.

 

벽암록 이외의 공안집으로는 굉지정각(1091-1157)이 백칙의 문답을 뽑아서 엮은 [종용록]과 무문혜개無門慧開(1129-1206)가 48칙을 모아서 엮은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우리나라의 공안집으로는 선문염송이 있고, 최근에는 숭산스님의 [바람이냐 깃발이냐] 와 성철스님의 [본지풍광]등의 공안집이 있다.

 

3-1.공안의 정의

 

공안이란 무엇인가? 공안은 다른 말로 화두이다. 화두(話頭)의 <頭> 자는 <話> 자의 뒤에 의미없이 붙어있는 접미사이다. 즉 화두는 말(話)이라는 뜻인데, 이를 다시 말하면 선사(禪師)들의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화두는 다른 일반사람들이 는 말이 아니고, 특정인<禪師>이 쓰는 말인 것이다. 특정인을 조금 확대 시켜 생각해 보면 특정계층<禪家>이 쓰는 말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두는 기본적으로 중국 수, 당시대의 선사들의 언설(言說)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런데 화두의 발생 자체는 다분히 중국적인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사상적 특색이 독특하게 배어있는 노장(老莊)사상과 역(易)사상 등의 도학(道學)적 삼현(三玄)학풍은 달마도래 이전에 이미 중국을 풍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속적인 공명과 명리를 버리고 예의와 도의도 무시하고 산수간(山水間)에 자유로이 노닐면서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일삼는 청담학(淸談學)이 유행하였다. 이것은 달마 도래 이전의 불교의 모습에서도 쉽게 드러나는 데, 불교의 교의를 이러한 청담적 기풍이나, 도교적 노장 사상에 맞추어서 해석하려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러한 모습을 격의불교(格儀佛敎)라고 한다.

 

삼현, 청담적인 중국적 특색은 지공(誌公)화상이나 부대사(傅大士, 497-569)에 이르러 독특한 행의(行儀)와 상정(常情)으로 이해하기 힘든 격외담(格外談)의 언구(言句)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중국적 특색은 선종의 선사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왜냐하면 수.당 시대 선종의 독특한 문답은 사실상 인도불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달마와 양무제와의 대화를 보아도, 달마는 일반적인 언어로 양무제의 공덕을 칭찬하지 않았다. 무언가 조금은 다른 언어로 양무제를 대하였으나 양무제는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이러한 문답을 문헌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선종의 전통적인 방법으로서 중국적 특색이 가미된 격외적 문답이 행해졌으며, 또한 전승되었다는 사실을 추측하게 해 준다. 이른바 선종의 종지인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은 선종의 종파적 독립을 전후해서 나온 말이지만, 이것은 다분히 중국적 개성이 가미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화두란 이러한 중국적 개성과 불교의 진수를 체득하고 압축하여 전달하려는 선사(禪師)들에 의해서 생겨난 선사들만의 독특한 언어라는 것이다. 특히 화두는 불교적 진리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미 상식적 접근이나 의미적 해석을 끊어내기 위해 격외적인 언구가 사용된 특수한 언어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러 꾸며낸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검증하거나 깨달음으로 이끌려는 지극한 노력이 중국적 개성으로 새롭게 창조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3-2.공안의 기능

 

공안, 다시 말해서 화두는 가장 기본적으로 수행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불교에 입문해서 어느 정도 기본적 교의를 터득하고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화두는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를 궁극적인 문제로 이끌어서 결국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려는 선사들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안의 기본적인 기능은 발심하여 수행을 할 수 있는 촉매제의 역할이다. 이러한 화두의 촉매적 역할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입문하여, 깨달음으로 인도되었는가의 문제는 뒤로 미루더라도 기본적으로 중생의 입장에서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정도의 인연이 있는 사람이 선사에게서 [이뭣고] 화두에 관해서 얼마간의 설법을 들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고민해 오던 세계와 인생에 대한 문제가 여기에 부딪쳐서 꽉 막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수행을 시작하게 되고, 나중에는 깨달음을 성취하게도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공안의 긍정적 측면은 마치 거대한 빙산이 물위에 머리만 내어놓고 자신의 웅장한 모습은 물속으로 감추면서, 거대한 빙산을 드러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안은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번뇌, 즉 앎음알이를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하여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모든 장애와 걸림을 스스로 털어버리는 것이다. 이것만 되어도 자기의 본성을 스스로 보겠지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므로 화두에 의지하여 몰입해 들어가면 이러한 앎음알이와 번뇌에서 벗어나기가 쉬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올바른 간화선 수행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화두를 가지고 오히려 번뇌 망상을 일으킨다면, 아무도 구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또한 간화의 병폐로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화두의 해답을 의미적으로 추구해 들어가면서, 생각을 이리저리 굴려서 여러 공안을 천착하는 것이 예로부터 간화의 가장 큰 병폐로 조사스님들이 경계하신 바다. 사선(死禪)이나 사구(死句) 고칙공안(古則公案) 등의 언어들은 모두 이러한 간화의 병폐를 잘 지적하는 말이다. 예로부터 간화선을 주창하신 분들은 항상 화두의 병폐를 잘 지적하여, 잘못된 앎음알이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화두의 기능은 깨달음을 검증하는 기능을 갖는다. 처음 발심을 했던 그 의문이 수행을 통해서 스스로 검증되어야 만이 진정한 깨달음인 것이다. 강을 건넌 사람이 뗏목을 버리듯이 화두를 의지해서 결과적으로 자기의 본성을 깨우치면, 1800가지의 나머지 공안들도 스스로 뚫려버리는 것이다. 물론 자기의 본성을 올바로 깨우친 것이 곧 올바른 수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화두는 그러한 판단의 기준까지도 되는 것이다.

 

3-3.간화선 수행의 전통

 

한국 불교에서는 여전히 간화선 수행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 들어서 일본 조동종이나 남방의 비파싸나 수행이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의 선방(禪方)에서는 여전히 간화선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이 고수되고 있다.

 

이러한 간화선 수행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대혜종고의 간화선 주창과 거의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보조 지눌과 진각혜심의 간화선 사상도 물론 거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간화선 수행은 화두에 의지해서 참구(參句)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외형적인 좌선의 형태나 정형적인 수행의 모습을 따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고, 항시 불성이 발현되는 일상적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좌선 수행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수행의 외형적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바로 간화의 특성인 것이다. 또한 좌선 수행의 병폐를 화두를 看하므로써 극복하려는 점이 또한 看話禪의 특징이다. 동시에 간화의 병폐 또한 여러 가지 나타나는 데, 이러한 병폐는 예부터 경계해 온 것이므로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경계해야 할 점을 몇 가지 옮겨본다.

 

 

 

1) 생사심을 해결할 발심을 하라. 오온이 개공함을 바르게 보고, 바깥세계와 나의 심신이 모두 인연으로 이룩된 거짓존재일 뿐 그것을 주재(主宰)하는 실체는 없다는 사실을(제법무아) 똑똑히 보아야 한다.

 

2) 의정을 일으켜라. 수행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진지한 추구력(正精進)이다. 이 진지한 추구력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문득 크게 의심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진지한 추구력(의심)이 가슴에 뭉치지 아니하고는 큰 깨달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어느 큰 스님의 옛말에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아예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진리에 대한 진지한 추구력이 없이는 수행이 무의미 하다.

 

3) 고요한 경계를 조심하라. 수행하는 이가 고요한 경계에 빠져들면 사람이 말라죽은 듯한 적막 속에 갇힌 것과 같게 된다. 더우기 이런 경계의 권태가 오래되면 잠자기를 좋아할 것이니, 자기가 이런 병통에 빠져있는 사실조차 알기가 어려워진다. 오직 육신의 생사를 깨치는 데 힘써서 자기가 고요한 곳에 있는 줄을 몰라야만 비로소 옳다 하겠다. 생사대사에서 고요한 모습을 구하려 해도 정말로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으면 이야말로 된 것이다.

 

4) 의단(疑團)을 깨뜨려야 한다. 공부하는 이는 몸과 마음이 온통 의심덩어리(疑團) 뿐이어서 세계를 하나로 뒤섞어 놓았다 할 만 해야 한다. 산을 보아도 산으로 보이지 않고, 물을 보아도 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 의심덩어리를 깨뜨리지 않고는 맹세코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 이것이 공부에 있어서 긴요하다.

 

5) 의정과 하나가 되라. 간화를 하는 요체는 의정(疑情)을 일으켜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데 있다. 그러면 들떠 움직이는 경계를 굳이 떨어버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지고, 허망한 마음도 억지로 맑히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맑아진다. 그리하여 6근(六根)이 자연히 텅 비어 자유로워진다.

 

6) 아집(我執)과 집착(執着)과 알음알이(計較)를 조심해야 한다. 아집은 병(病)이 되고 집착은 마(魔)가 되며, 알음알이 는 외도(外道)로 빠지게 된다. 결단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열심히 공부하면 앞서 말한 세 가지 폐단이 얼음 녹듯하여 말짱해질 것이다. 이른바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들뜨게 하면 그 자리에서 법체와 어긋난다." 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7) 항상 또렷하게 깨어있는 채로 참구해야 한다.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납자는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분명하고 또렷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상 속에서 허송세월만 하게 되니 단 10분을 참구하더라도 또렷하게 깨어서 경계에 흔들리지 않고 절실하게 공부해야 한다.

 

8) 옛스님의 공안을 천착하지 말라. 참선하는 납자는 옛스님의 공안을 알음알이로 헤아려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공안은 오직 그 목적이 참구에 있는 것이지 이리저리 해석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공안을 해석하고 이리저리 옮겨서 참구하는 것은 결국 자기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자기의 본심을 가려서 영원히 미혹함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마땅히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

 

9) 화두를 드는 장소와 시간은 일체처와 일체시이다. 어찌 한곳에 오래 눌러앉아 외연(外緣)을 끊고 마음을 일어나지 못하게 한 다음에야 定에 들었다고 하겠는가? 이를 곳 삿된 선정이라 하니, 납자는 모름지기 외형에 집착한 선을 하면 안 된다.

 

10) 언어. 문구를 따지지 말라. 참선하는 납자는 문구(文句)를 따져 연구하거나 옛사람의 말씀(言語)이나 외우고 다녀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일은 무익할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알음알이로 전락해 버린다.}

 

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간화선에서는 일체처와 일체시에서 화두를 들어 참구하는 것을 요구한다. 즉 외형에 집착하지 않는 집요한 수행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경계하고 있다. 빨리 화두를 깨뜨려서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면, 그것이 도리어 마음을 가리고 자칫하면 상기병과 같은 것에 걸리기 쉽다. 다만 일체처와 일체시에 화두를 들 뿐이지, 깨달음 같은 것은 이미 잊어버려야 한다. 또한 앎음알이를 가지고 화두를 해석하거나,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생각하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어쨌든 간화는 묵묵관조의 좌선이 자칫 빠지기 쉬운 적막함의 경계를 경계하면서 새롭게 주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4. 선문답

 

지금까지는 선종의 성립과 공안의 성립, 그리고 공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선종의 선문답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선문답은 간화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종의 성립과 간화선의 방편인 공안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써, 선문답에 대한 이해를 더욱 폭넓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부터 다루어 보고자 하는 것은 선에 관한 교의적. 학술적 문답이 아니라, 선가(禪家)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져 내려오는 학인 제접(制接)의 방편인 선문답이다. 선문답은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수행의 방편으로 행해지고, 깨달음을 검증해온 또 하나의 도구이다. 바로 여기에서 화두가 유래되었음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선문답은 여전히 하나의 현성공안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표현기능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묻고 답하는 일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발전의 원동력이자, 인간이 지닌 가장 본능적인 <자기표현수단>이다. 우리는 불교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묻고 답하는 일> 이야말로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더우기 실제적인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가르침은 더더욱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범주 속에서 발견되어진다. 이것이 바로 선문답이다. 선문답은 동문서답이 아니요, 신비적인 유희도 아니다. 선가의 언어체계 속에서 드러나는 절실한 표현방식인 것이다.

 

4-1.선문답의 정의

 

선문답이란 무엇인가? 실로 어려운 문제다. 세간에서는 대화 도중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할때에, 선문답하느냐고 놀리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선문답은 선(禪)을 지도, 체득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선사와 납자 사이의 문답이다. 어찌 보면, 좀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대화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문답에는 항상 명확한 주제가 있다. 그것은 불교의 진리를 체득하는 것에 관한 것과 불교의 진리, 즉 선종에서의 선(진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 한 선의 진리를 서로 묻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설명이나 가르침이 없다. 단지 물음에 대하여 단순하게 드러낸 대답이 있을 뿐이다. 또한 선문답은 깨달음에 관한 검증을 위해서도 쓰여진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선문답은 깨달은 사람 사이의 법의 문답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교종적 설명이 아니고, 선종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묻고 답하는 것이다. 여기에 선문답의 난해한 면이 있는 것이다. 선문답에는 그래서 선기(禪機)가 드러난다. 여기에서 막힌다면 그것은 곧바로 물은 사람의 현성공안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가르침의 방편이 또한 선문답인 것이다. 억지로 이야기 하자면, 선문답은 깨달은 사람이 선종의 전통적 방식에 의해서 본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공안과 함께 선사의 지극한 지도편달의 한 방편이다. 선종의 이러한 전통적 방식은 대화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시적 형식을 빌린 게송을 통해서도 드러내어 진다.

 

4-2.선문답의 일상적 유형

 

선문답은 보통 평범한 언어를 통하여 나타난다. 주로 격외적 도리를 나타내는 게송이나 납자의 질문에 대한 선사의 대답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서는 게송은 제외하고, 선문답의 일반적인 유형을 몇 가지 들어 보기로 하겠다. 편의상 선사의 이름은 생략하고, 납자衲子의 말을 A, 선사의 말을 B 라 하기로 한다.

 

1) 혜심이 지눌 선사를 모시고 길을 가는데 길바닥에 다 떨어진 짚신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B: 신발은 여기 있는데 사람은 어디 있지?

A: 웬걸요, 그때 만났지 않습니까?

선사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혜심에게 법을 전했다.

 

2) 고려의 나옹선사가 중국에 유학하고 있을 때 천암선사를 만났다. 천암이 나옹에게 물었다.

B: 스님은 어디서 왔소?

A: 정자사에서 왔습니다.

B: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는 어디서 왔소?

A: 오늘 아침은 4월 초 이틀이지요.

B: 눈 밝은 사람은 속일 수가 없다니까.

 

3) 약산 선사는 설법을 통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자진하여 이곳 살림을 맡은 똑똑한 스님 하나가 선사께 강력히 설법을 청했다. 선사가 비로소 허락을 했다. 그는 기쁨에 겨워 종을 땡땡 울렸다. 모여라! 그러나 정작 대중이 모이자 선사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러자 살림 맡은 스님은 화가 나서 말했다.

A: 스님은 왜 아까는 허락하셔 놓고 이제 와서 그러십니까? 왜 저를 속이십니까?

B: 설법으로 말하면, 경전에는 경사가 있고 논설에는 논사가 있고 계율에는 계사가 있는데 자네는 내게 뭘 말하라는 건가?

며칠 뒤 선사가 문득 법당에 올라오자 한 스님이 물었다.

A: 스님은 누구의 법을 이으셨습니까?

B: 오래된 불전 안에서 글귀 한 줄을 주웠지!

A: 무어라고 쓰여있는 글귀인데요?

B: 그는 나를 닮지 않고 나는 그를 닮지 않았네. 이런 글귀가 쓰였는데 내가 그 말을 알아들었지!

 

4) 백장 선사가 위산 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주지로 앉히려 하자 백장의 상좌인 수제자 화림이 따졌다.

A: 제가 상좌인데 왜 위산을 주지로 앉히려 하십니까?

B: 만일 네가 대중 앞에서 틀을 벗어난 말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네게 주지 자리를 주마.

선사는 대중을 불러 모은 뒤 물병을 가리키며 물었다.

B: 저것을 물병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느냐?

A: 말뚝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요.

선사는 고개를 흔들며 위산 쪽을 돌아보았다. 위산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물병을 발로 차 버렸다.

선사가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B: 첫째 자리가 촌놈에게 넘어가고 말았구먼.

 

5) 현사 선사의 문하에 갓 들어온 어떤 스님이 현사선사에게 물었다.

A: 저는 이제 막 선문에 들어왔습니다. 선문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B: 저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느냐?

A: 예, 들립니다.

B: 그 소리 따라 가거라.

 

6) 신록 선사가 법당에 앉아 시를 읊고 있는데, 제자 붕언이 다가와 물었다.

A:어떤 것이 본래의 마음입니까?

B: 붕언아!

A: 예?

B: 차 한 잔 갖다 줄래?

 

7) 신라의 범일 선사가 중국으로 건너가 제안 선사를 만났다. 제안 선사가 범일 선사에게 물었다.

B: 어디서 왔소?

A: 동국에서 왔습니다.

B: 수로로 왔소, 육로로 왔소?

A: 두 가지 길을 모두 밟지 않고 왔지요.

B: 두 가지 길을 밟지 않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요?

A: 해와 달이 동서로 다니는 데 무슨 거리낌이 있던가요?

B: 실로 동방의 보살이로군!

A: 그건 그렇고 스님, 어떻게 해야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B: 도는 닦을 필요가 없지. 그저 더럽히지만 말고 부처란 생각, 보살이란 생각을 하지 말게나. 평상심, 즉 일상의 마음이 도야.

 

8) 양나라 무제가 부대사를 초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게 했다. 그러자 부대사는 곧 강단에 올라가더니 책상을 한번 탕 치고는 곧 내려왔다. 무제가 깜짝 놀라자 지공선사가 물었다.

B: 폐하는 알아들으셨습니까?

A: 모르겠소.

B: 대사의 강의는 끝났습니다.

9) 하루는 어떤 스님이 방안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데 도응 선사가 창밖에서 듣고 그에게 물었다.

B: 지금 읽는 것이 무슨 경전이냐?

A: 유마경입니다.

B: 유마경을 물은 게 아니고 읽는 것이 무슨 경전이냔 말이다.

A: ......

 

10) 위산 선사와 그 제자 앙산이 차밭에서 각자 차잎을 따는 데 선사가 앙산에게 말했다.

 

B: 종일 찻잎을 따는데, 네 모습은 보이지 않고 네 목소리만 들리더구나. 어디 본모습을 좀 보여줄래?

그러자 앙상은 차나무를 흔들었다. 이것을 보고 선사는 말했다.

B: 너는 작용만 깨달았을 뿐 아직 본체를 깨닫지 못했구나.

A: 그럼 스님은 어떻습니까?

B: ......

A: 스님은 본체만 깨달으셨을 뿐 작용을 깨닫지 못하셨군요.

B: 하하하, 너 몽둥이 스무 방 면했다.

 

11) 어떤 스님이 유관 선사에게 물었다.

A: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B: 눈앞에 있지

A: 그렇다면 저는 왜 못 봅니까?

B: 너는 "내"가 있기 때문에 못 보는 거야.

A: 저는 "내"가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다지만, 스님은 보십니까?

B: "네"가 있고 "내"가 있으면 더더욱 못 보지.

A: "내"가 없고 "네"가 없으면 볼 수 있습니까?

B: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면 누가 보겠느냐?

 

위와 같이 선문답은 일체의 표현수단을 없애고 절벽에 떨어진 것이 아니다. 상황상황에 따라서 가장 적절한 언어와 행위를 구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쓰이는 언어는 사실 그 근본뜻을 제대로 파악해 내기가 어렵다. 특히 초심자의 경우에는 완전히 헛소리처럼 들리기 쉽상이고 아니면 전혀 반대인 신비주의적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선문답은 결코 있지도 않은 허위를 꾸며 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선의 진리를 그대로 일상적 언어를 통해 뱉어 낸 행위에 불과 한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이야기를 덧붙이기 위해 선문답의 언어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기로 한다.

 

4-3.선문답에 사용되는 언어

 

위의 선문답의 유형에서도 보았듯이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언어들이 사용되는 것이 선문답이다. 그러나 위의 예는 초기 선종의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것 이외에도 다양한 언어들이 선문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적인 표현을 위주로 표현하는 悟道頌이나 傳法偈 등의 게송을 살펴보면 상당한 상징과 비약이 등장한다. 그러나 거기에 사용되는 언어도 마찬가지로 상식적 언어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다만 논리의 비약이 따를 뿐이다. 혹시 이해 못하는 단어나 어휘는 시대상황 속에서 지금은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방언이나 도구의 이름 정도가 고작이다. 그리고 선문답에서는 단순한 언어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할, 방, 손짓, 발짓, 몸짓, 시늉 등의 광의의 언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할은 벽력같은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고, 방은 주장자로 상대를 치는 것이다. 또한 손짓, 발짓, 몸짓, 시늉 등이 모두 상황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구사되어 진다. 난데없이 계속 소리만 지른다면 그것 또한 선사를 흉내 내는 사선死禪일 것이다.

 

선문답에 사용되는 개개의 언어는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이다. 그러나 선문답의 정신은 결코 일상적이지가 않다. 선문답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서 항상 깨달음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조주 선사는 {무}로 대답했는데, 이것은 결코 의미적인 있다. 없다로 떨어지지 않는 대답이다. 조주선사는 깨달음의 세계를 [무]라는 언어를 통해서 드러내 보인 것뿐이기 때문이다.

 

4-4.선문답의 언어적 특성

 

위에서 선문답은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문답에서 엮어진 일상적인 언어들은 더 이상 일상적이지가 않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언어의 작용이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선문답에 사용된 언어는 더 이상 상식적 차원의 용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단계 승화된 선적 세계, 즉 깨달음의 세계에서 새롭게 구성되어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선문답의 첫 인사에서 [어디서 오는 가?] 또는 [어디서 왔는가?] 내지는 [어떻게 왔는가?] 등의 질문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결코 [부산에서 왔습니다.] [버스타고 왔습니다.] 식의 일상적 대답이 아니다. 그 질문은 이미 상식적 언어를 통하여 본래적 소식을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본래적 소식이란 물론 "선" 그 자체를 나타내는 진리를 말한다. 즉 선문답의 언어는 일상적 언어를 빌려서 본래적 소식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선문답의 언어적 특성은 언어를 의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적으로 사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작용적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구사하는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또한 게송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언어적 특성은 모순적 언어의 사용이다. 한암 선사의 오도송을 예로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다리 밑에 하늘이 있고, 머리 위에 땅이 있네.

본래 안팎이나 중간은 없는 것.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보는 것이여.

북산은 말없이 남산을 보네.

 

위의 오도송은 물론 깨침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적 언어의 사용이라는 말은, [다리 밑에 하늘이 있고 머리 위에 땅이 있네]와 같은 구절을 일컫을 수 있을 것이다. 사용된 언어는 일상적이지만 의미는 모순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모순적 사용 역시 선적인 진리가 체득되면서 나타난 도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즉 선적(禪的) 도리(道理)에 있어서는 전혀 모순되지 않는 표현인 것이다. 상식적 차원이 깨어지면서 지극히 올바른 것을 표현하려는 한 방법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선문답에서 언어는 이미 일상적 작용을 벗어나서 새롭게 구성되어 지고, 작용되어 진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모순이 결코 모순이 아니요, 상식이 결코 상식이 아니다. 하지만 결국은 상식적 수준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으므로, 여기에서 화두 즉 공안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은 상식적 수준으로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은 선의 도리가 언어 사용의 당사자에게 체득되지 않는 한, 결코 명확한 납득이 불가능해 진다는 말이다.

 

4-5.선문답의 지향과 방편

 

선문답은 물론 기본적으로 깨달음을 지향한다. 그 깨달음이란 선종의 근본적 사상인 돈오(頓悟)이다. 돈오란 스스로의 본성을 몰록 깨닫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선문답이 지향하는 바이다. 즉 선사와 납자 사이의 대화가 언어의 상식적 수준을 벗어나 있으면, 그것은 이미 본래면목을 파고들며, 서로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몇 권의 책을 뒤지고, 몇몇 선사의 말을 외워도 눈 밝은 선사는 당해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문답은 이미 무한한 창조와 응용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기의 체득한 바가 없으면 금방 위험한 급류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그리고 여기에는 온갖 가지 음모가 횡행하고 있으므로 스스로의 체득한 바가 확고하고, 완전하지 못하면 역시 바람에 날려가 버리고 말 것이다. 선문답의 세계는 준엄한 심판이고, 동시에 엄청난 파괴이다. 미혹의 세계에서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일순간에 제거하려는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선문답은 깨달음을 드러내 보이는 측면도 있지만, 실제적인 깨달음을 시험해 보려는 검증의 역할도 한다. 완전함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건드려 본다. 쿡쿡 찔러도 보고, 소리를 냅다 질러보기도 하고, 전혀 말을 안 하기도 한다. 선문답에는 이러한 예리한 칼날 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깨달음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감추기도 하는 것이다. 선문답은 실로 살활자재(殺活自在)한 것이다. 선문답은 깨달음의 세계를 분명히 지향하지만,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한마디의 말에 서슬이 시퍼런 두개의 칼날이 달려 있는 것이다. 미혹하면 베일 것이고, 밝으면 능히 피할 것이다. 혹은 베여도 죽고, 피해도 죽을 것이다. 살아있는 선문답이 바로 현성공안인 것이다. 선사(禪師)들의 이러한 방편을 몇 가지 들어 보기로 한다.

 

#1. 도솔三關(도솔선사의 세 가지 문)

1. 번뇌의 풀을 헤치고 도의 깊은 뜻을 참구하여 단지 자성을 보라. 바로 지금 그대의 참된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2. 자성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할텐데 눈빛 떨어질 때 어떻게 생사를 벗어날까?

3. 생사를 벗어났다면 갈 곳을 알 것인데 사대(四大)가 분리되면 어느 곳을 향하여 갈 것인가?

 

#2. 실중삼관(室中三關, 고봉선사의 세 가지 문)

1. 밝은 해가 허공에 높이 떠서 비추지 않은 곳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조각구름의 가림을 입는가?

2. 사람마다 모두 그림자가 있어 한 치도 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밟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3. 온 세상이 불구덩이인데, 어떤 삼매를 얻어야 그 불에 타지 않겠느냐?

 

#3. 효봉의 三關

1. 미륵산에 큰 호랑이가 있어 새끼를 낳으니 반은 개요, 반은 호랑이다. 이것을 호랑이라 할 것인가, 개라 할 것인가?

2. 하늘에 흑월과 백월이 있어, 흑월은 서쪽에서, 백월은 동쪽에서 오다가 서로 합해 하나가 되니, 이 무슨 도리인가?

3. 삼계?(三界)가 온통 벌겋게 타는 불 속이라. 어떻게 해야 한 점의 눈을 얻을 것인가?

 

#4. 조주의 사문(四門)

한 승려가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동문도 있고, 서문도 있고, 남문도 있고, 북문도 있다."

 

위의 예를 살펴보면 선사들은 마치 관문을 지키고 서있는 무서운 수문장처럼 이 문을 통과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이 문을 뚫고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자신 있으면 통과해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편을 통해서 납자들을 점검하고, 제접하는 것이다. 선문답은 실로 귀중한 수행의 방편이요, 보배인 것이다.

 

4-6.선문답의 기능과 한계

 

지금까지 다소 산만하게 살펴보았듯이 선문답은 선의 진수를 드러내고,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선문답이 공안화 되어 수행의 지침으로 쓰이는 것은 간화선의 훌륭한 전통이다. 물론 간화선의 병폐를 동시에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문답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즉 수행이 없는 선문답은 성립도 안 될 뿐더러, 있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또한 선문답만을 일삼는 다면, 이것 또한 하나의 폐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생긴다. 수행에 힘쓰지 않고 언구(言句)에 쫓아다니며 허덕이는 이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간화선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따라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을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깨달음은 결코 선문답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선문답으로 인해 생긴 공안에 의지해서 올바른 수행이 지어졌을 때만이 깨달음의 조건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선문답은 깨달음의 응용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의 드러냄인 것이며, 또한 확인인 것이다. 공안 하나를 뚫으면 1800공안을 다 뚫는 다는 것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물론 훌륭한 선사의 적절한 한마디는 기연으로 맞아 떨어질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항상 참구하며, 수행하는 자세일 것이다. 선문답은 활발발지한 응용의 세계이므로,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척이나 중요시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혹한 입장에서 보면 더욱더 미혹을 가중시킬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아무리 활발발지한 선문답의 세계도 결국은 공안 하나의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 오로지 힘써 수행하는 자세가 먼저 필요한 것이다.

 

 

5. 결론

 

이상에서 개략적으로 선종의 성립과 공안의 성립 그리고 간화선에 근거한 선문답의 여러 가지 모습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문답은 깨달음의 응용과 확인 그리고 체득을 지향하는 선종의 전통적인 표현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뜬금없는 동문서답이나 내용 없는 언어의 유희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잘 가꾸고 보존되어 내려온 선종의 전통적이고 비밀스런 문화에 속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글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대학생활을 정리하게 되었다.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 오히려 누를 끼쳤을 따름이다.(2537.12.8)

 

 

6.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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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보훈}, 藏經閣,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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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불광출판부, 1991

{무문관}, 경서원, 1992

{바람이냐 깃발이냐}, 법보출판사, 1992

{조선선교사}, 보련각, 1978

{선종사상사}, 보련각, 1985

{선종사상사}, 문학생활사, 1987

{중국선종의 성립사 연구}, 민족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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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선이다}, 대성문화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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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홍법원, 1992

{인도의 선 중국의 선}, 민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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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상사}, 선문화연구소, 불교사상사, 1993

{선종과 중국문화}, 동문선, 1991

{선의 향연 上.下}, 동국대학교 불전간행위원회

{해설 선림구집}, 보련각

{선의 탐구}, 홍법원, 1982

{선입문}, 도서출판 아카데미, 1981

{空性의 피안길}, 동화문화사, 1980

{선명구 이백선}, 홍신문화사, 1979

{선의 황금시대}, 경서원, 1988

{선의 진수}, 고려원, 1987

{달마}, 민족사, 1991

 

 논문:

정경규, [선종과 언어문자], 동국대 석사학위 논문, 1990

이동준, [고려 혜심의 간화선 연구],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 1992

 

 

 

 

 

 

 

[출처] 선문답 일고찰|작성자 정진연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