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신 · 보신 · 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에 관해 우리는 소박한 질문을 하나 할 수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면 왜 죽음은 피할 수 없었던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법(法)과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당신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는 말씀하신 것은 모든 중생 하나, 하나가 스스로 깨달음의 주체임을 말씀하셨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법에 의지하라는 말씀 중에 법은 무엇을 의미하고 부처님과 법의 관계는 어떤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한편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몸은 법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본래 모습은 법 그 자체인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몸을 빌려 중생의 세계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우리 중생들은 본래 부처님의 법 그 자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존재이므로 그 법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처님과 법의 관계를 불교 교리에서는 삼신설(삼신설(三身設)로 설명하고 있다. 삼신이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한다. 첫 번째 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法)이라는 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불교에서의 법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우선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 교리를 말한다.
두 번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을 일컫는 말로 중생의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의 본질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내가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할 때 나라는 존재는 보는 주체가되고, 보이는 사물은 대상 그리고 눈은 보는 수단이 되듯이 우리의 의식이 주체가 되어 어떤 것을 인식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것을 법이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의 어떤 추억을 회상할 때 그 추억이란 우리 의식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법신의 법이란 두 번째의 법을 의미한다. 이 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도 그리고 열반에 든 이후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존재하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한다. 따라서 법신이란 이와 같이 영원불변하고 유일한 법을 부처님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오분향 예불문’의 첫머리에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라고 나오는데, 계율을 지키고[戒],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定] 참된 지혜를 갖추고, 깨달음을 얻어 속박에서 벗어나고[解脫], 그 깨달음으로 얻은 자유자재 함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解脫知見], 이 다섯 가지 법신불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라 한다. 대표적인 법신불로서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를 들 수 있다.
두 번째 보신은 응신(應身)이라 하는데 보신의 보(報)나 응신의 응(應)은 모두 받는다는 뜻으로 깨달음을 얻은 뒤 그 깨달음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했던 과보를 즐긴다는 의미이다. 법신이 중생을 직접 제도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보신은 법신과 같은 덕목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생의 간절한 서원에 따라 중생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내생에 그 중생을 제도하기도 하는 부처님이, 보신불이다.
마지막으로 화신이란 보신과 같이 본래 법신의 부처님이지만 중생 제도를 위해 중생의 몸으로 바꾸어 직접 중생의 세계로 오신 부처님을 말한다. 따라서 보신불과는 달리 중생은 현생에서 언제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대표적인 화신불이다.
앞에서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자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열반에 두셨을까 하는 소박한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법을 스승으로 삼고 당신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을 통해 그 의문을 해결하고자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이란 법신으로서의 부처님을, 그리고 당신은 화신의 부처님이 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