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순(違順, 거슬림과 따름) - 3
多言多慮 轉不相應
다언다려 전불상응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이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설명하고 거듭 설명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래 대도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 것(言語道斷 心行處滅)'입니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대도(大道)가 이와 같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려하다가는 대도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絶言絶慮 無處不通
절언절려 무처불통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 곳에서는 자연히 대도를 모를래야 모를 �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과 생각이 끊어진' 여기에 집착하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통하지 않아 아주 모르게 되어 버립니다. 이 '말과 생각이 끊긴 것'은 그 자취마저 없는 데서 하는 말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경지에서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하여 통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과 생각이 끊어진 곳'에 집착하면 전체가 막히고 맙니다. 여기서도 근본은 취사심을 버려야 대도를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은 명칭과 개념이고 명칭은 이름일 뿐이고 개념은 공유되는 습관화된 인식의 조건에 불과한 것입니다.
歸根得旨 隨照失宗
귀근득지 수조실종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 종취(宗趣)를 잃나니
자기의 근본 자성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어 무상대도를 성취하고, '비춤을 따른다(隨照)'는 것은 자기 생각나는 대로 번뇌망상 업식(業識)의 망정(妄情)을 자꾸 따라가면 근본 대도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須臾返照 勝却前空
수유반조 승각전공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보면
앞의 공(空)함보다 뛰어남이라.
잠깐 동안에 돌이켜 비춰보고 자성을 바로 깨치면 '공(空)했느니 공하지 않느니' 한 것이 다 소용없는 꿈같은 소리라는 뜻입니다.
前空轉變 皆由妄見
전공전변 개유망견
앞의 공(空)함이 전변함은
모두 망견(妄見) 때문이니
앞에서의 공함이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는 것은 모두 망령된 견해(妄見)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18공(十八空) 20공(二十空) 등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중생이 못 알아듣기 때문에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 실제로 뜻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허공이 어떻게 옮겨 변할 수 있겠습니까? 공함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게 된 것은 중생의 망견(妄見)때문이며 진공(眞空)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不用求眞 唯須息見
불용구진 유수식견
애써서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쉴지니라.
누구든지 깨치려면 진여(眞如)의 본성을 깨치려 하지 말고 망령된 견해만 쉬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빛나듯 태양을 따로 찾으려 하지 말고 망상의 구름만 걷어 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은 부처님과 같은 자성청정(自性淸淨)한 진여(眞如)의 본성을 다 갖추고 있어서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보지 못하는 까닭도 망견(妄見)이 앞을 가려서 보지 못하는 것이니, 망견만 쉬어버리면 진여자성을 달리 구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견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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