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불교의 보살정신 - 지산스님
대승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보살 정신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대승(大乘) 즉, ‘큰 수레’임을 자처하면서 소승불교를 폄하하는 것도 보살 정신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보살은 부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보살은 아라한이나 독각이 되지 않고 부처가 되기 위해 자신의 깨달음을 유보하면서 많은 중생들과 인연을 맺고, 공덕을 쌓고, 다양한 수행방편을 익힌다. 이러한 보살 정신의 핵심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이라거나 ‘자미도 선도타(自未度 先導他: 자신이 깨닫지 못했더라도 타인부터 인도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여러 불교의 흐름 중에서 이러한 보살 정신이 가장 살아 있는 불교가 바로 티베트 불교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몇 년 전 티베트 불교의 수행을 배우기 위해 인도 북부 따시종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캄바가라는 티베트 사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까규파 계열에 속하는 이 절에서는 티베트 수행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예비단계에서 네 가지 수행을 요구하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전신투지 대배(全身投地 大拜)를 10만 번 하는 것이다. 전신투지 대배를 하기 위해서는 몸을 엎드릴 수 있는 판자가 필요하고, 엎드린 다음에 손을 앞으로 죽 밀 수 있는 헝겊이 필요하다.
절을 하기 전에 이런 것들을 먼저 준비해 놓고 맞은 편 벽에 불보살님들과 밀교 전승 조사들의 모습을 그린 탱화를 걸어 놓는다. 절을 하는 의의는 기본적으로 이런 불보살님들과 스승들에 대한 귀의심을 확립하는 데에 있고, 하심(下心)의 자세를 기르는 데 있다.
필자에게 절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신 티베트 승려 암틴 노사께 덧붙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절을 할 때 그대의 앞에 그대의 부모, 형제, 친족, 친구들이 나란히 서서 같이 절을 한다고 상상하면서 절을 하도록 하라. 마음속으로 그들이 그대보다 더 빨리 수행을 성취해서 윤회계의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하라.” 그리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티베트 사람들은 절을 할 때 항상 모택동(毛澤東)을 맨 앞에 세워 놓는다.”
암틴 노사의 이 말씀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모택동이 누구인가? 평화롭게 지내던 티베트를 침공해서 공산화시키고, 무장도 하지 않은 승려들과 국민들을 무차별 학살하여 티베트를 중국의 식민지로 만든 장본인이다.
필자는 인도에 피난 나와 있는 티베트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중국인들에게 가족을 잃은 그들의 슬픔과 피난 나올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피난지인 인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고충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 장본인인 모택동이 그들 자신보다 빨리 해탈하고 성불하기를 기원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보살 정신을 필자는 티베트 스님들에게 수행을 배우고 그들과 생활해 나가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수행 방법을 설명해 주는 과정에서도 계속 보살의 정신을 강조한다.
“왜 우리가 수행을 해야 하는가? 일체 중생을 윤회의 괴로움으로부터 제도하기 위해서다.” “ 왜 우리가 부처가 되어야 하는가? 부처가 되어 일체 지혜와 다양한 방편을 얻어 다양한 근기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등등.
그들은 아라한이 되는 길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은 대단히 체계적으로 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 성불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각 파에 따라서 약간씩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예비 단계, 기초 단계, 본 단계의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먼저 예비 단계에서는 앞서 언급한 전신투지 대배 이외에도 금강살타 참회 진언과 법계 공양, 그리고 구루 요가 진언을 각각 십만 번씩 해야 한다.
금강살타 참회 진언 수행은 모든 보살의 근본인 금강살타 보살을 관상하면서, 백 글자로 된 산스크리트어 진언을 외우며 자신의 업장을 정화시키는 과정이다. 법계 공양이란 법계를 상징하는 둥근 원판을 앞에 놓고, 쌀을 한 움큼 집어 그 판 위에 일곱 번으로 나누어 놓으면서, 자신이 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방 삼세의 일체 불보살님께 바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는 성불하기 위해서는 지혜만 닦아서는 안 되고 반드시 공덕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라도 공덕을 지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구루 요가 진언에서의 구루란 스승을 의미하는데, 티베트 수행에서는 각각의 수행을 인도해 주는 본존(本尊)이라는 개념이 있다. 예컨대 내 수행의 본존이 관세음보살이라면 관세음보살을 관상하면서 관세음보살의 진언을 암송하는 방식이 구루 요가 진언 수행이다.
이때 처음에는 관세음보살로부터 나에게 가피가 주어진다고 관상하다가 나중에는 관세음보살과 내가 둘이 아님을 관상한다. 이러한 방편을 과승(果乘)이라고 하는데, 즉, 자신이 미래에 성취하고자 하는 경지의 불보살을 미리 마음에 떠올려서 불보살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신념을 마음속에 확실히 심어두면 반드시 그러한 불보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방편들이 보살의 길을 걸어, 결국에는 확실히 부처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라고 하겠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재 티베트 불교에는 린포체 제도가 정착되어 있다. 린포체는 티베트어로 보석을 의미하며 이는 ‘불·법·승 삼보(三寶)’를 말할 때의 보석과 같은 의미다.
린포체들은 자신의 수행을 어느 정도 성취한 사람들로서, 자신의 수행 쪽으로 더 밀고 나가면 해탈할 수 있으나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자신의 해탈을 유보하고, 계속 윤회의 흐름에 들어 인간 몸을 받아 오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린포체들이야말로 보살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며 영원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이러한 린포체들을 친견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지장보살의 서원이 현실적으로 나타나 있는 모습에 감동되곤 했다.
따시종에서 같이 수행했던 한국 비구니 스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비구니 스님이 어떤 티베트 가정에 식사 초대를 받아서 가 보니 아주 어렵게 사는 집인데도 자녀가 여섯 명이나 되었다 한다.
그래서 그 비구니 스님이 10년 정도 승려 생활을 하다가 환속해서 자녀들을 기르고 있는 그 집 거사에게 “생활도 어려우신데 왜 이렇게 많은 자녀를 낳으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거사가 “ 인간 몸 받기가 어렵다지 않습니까?”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장 자신들의 생계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한 중생이라도 더 인간 몸을 받게 하여 수행을 하거나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그 마음…. 많은 티베트 사람들의 원력은 이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이 다 열반을 증득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물론 티베트 불교에도 문제점이 있고 부정적인 측면들도 없지 않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받아 진정한 보살의 길을 가고자 하는 그들의 자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출처: 월간 불광 361호(www.bulkwang.co.kr) 지산스님의 수행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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