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파불교(部派佛敎, Early Buddhist schools, Nikāya Buddhism)
부파불교(部派佛敎, Early Buddhist schools, Nikāya Buddhism)는 불멸(佛滅)후 100년 경 이후에 생긴 부파들의 불교이다. 부파불교 이전까지의 불교는 원시불교 혹은 근본불교라고도 하는데 한개의 종단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구전 전통이 지키지고 있었다. 계율상의 문제로 분열이 일어난 이후부터 부파 불교로 부른다.
부파불교는 니가야 혹은 아가마를 근본 경전으로 사용하고 경장, 율장, 논장을 결집하여 편찬하였다. 경전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내용을 체계화하여 방대한 논서를 집필하여 아비달마불교라고도 불린다. 부파불교 시대의 경전은 간다라 문서, 아함경, 팔리어 경장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부파불교의 비구들은 대승경전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파불교를 소승불교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대승 불교가 발전하는 시기에는 명확한 구분없이 승단이 섞여 있어서 대승불경을 취급하는 비구들도 부파불교의 승단에서 같이 생활하였다. 현재와 같은 대승불교 교단이 성립된 것은 후대의 일이다.
팔리어 율장에 의하면 불멸후 3개월 후, 라자가하(Rajagaha 王舍城) 밖의 칠엽굴(Sattapanni caves)에서 500명의 비구가 모여 경과 율을 결집하였다.
2차 결집
대략 기원전 334년에 계율상의 문제로 바이샬리(Vaishali)에 승단이 모여 율장을 편집하였다. 이를 계기로 상좌부와 대중부로 분열하여 부파불교가 시작되었다. 이때에 진보적인 대중부의 비구들이 모여 따로 경전을 결집하였다는 설도 있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내부에서 다시 분열하여 여러 부파로 나뉘어 졌다.
3차 결집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 황제의 주최로 팔리어 삼장이 결집되었다. 이때 결집된 내용은 주로 분별설부(Vibhajjavada) 부파의 교리에 기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분별설부로부터 이어 받은 것이 현재 스리랑카의 테라바다이다.
붓다의 입멸 이후 점차로 발전을 거듭하였던 불교교단은 기원전 3세기경에 이르러 마침내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본래 교단의 각 구성원이 평등하게 책임을 지고 서로 존경하는 일미화합(一味和合)을 이상으로 하는 교단이었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차츰 대립과 분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근본 분열
교단의 분열에 대한 전승 내용은 남전(南傳)과 북전(北傳)에 차이가 있다. 남전의 문헌으로는 『디파방사(DI-pavam톝a)』와 『마하방사(Maha-vam톝a)』가 있으며, 북전의 기록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이다.
Vasumitra 사진. 우측 참조 Vasumitra인도의 학승 바수미트라(Vasumitra, 서기 1~2세기경)가 저술한 『이부종륜론』의 서두에서는 붓다가 입멸한 지 100여년이 흐르자 여러 부파들이 일어나 이롭지 못한 주장으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게 되자 붓다의 진정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논서를 저술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붓다가 열반한 후 100여 년이 지난 뒤 아쇼카왕이 재위에 있을 당시에 처음으로 교단 분열이 일어나게되었다고 전한다. 그 첫 번째 분파의 원인은 마하데바(Maha-deva)가 주장했던 다섯 가지에 있었다. 그 당시 교단은 용상중(龍象衆), 변비중(邊鄙衆), 다문중(多聞衆), 대덕중(大德衆)등 네 부류로 나뉘어져 논쟁을 거듭하였다. 그 결과 교단은 대중부(大衆部)와 상좌부(上座部)라는 두 파로 분열되고 말았다. 이를 가리켜 첫 번째 교단의 분열이라는 의미에서 근본 분열이라고 한다.
지말(支末) 분열
한번 분열된 교단에서는 논쟁점이 있을 때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끼리 따로 갈라져 나와 별개의 부파를 이루었다.
상좌부와 대중부 가운데서 먼저 분열되기 시작한 쪽은 대중부였다고 전한다. 상좌부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졌던 대중부는 근본 분열 이후로 100년 사이에 총 4회의 분열을 거듭했다. 결국 8개 부파가 성립되었는데, 그 근본이었던 대중부와지말 8부파를 합하여 ‘본말 9부파’라고 한다.
상좌부는 붓다의 입멸 후 300년이 지났을 때,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설산부(雪山部) 둘로 나누어진 것을 시작으로 하여, 100년 동안에 7회의 분열을 거듭하여 총 11개의 지말 부파로 나뉘어졌다.
그런데 대중부가 지말 분열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근본 부파로서의 명맥을 유지했던 것과는 달리, 상좌부의 지위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사료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근본과 지말을 합하여 부르는 숫자에도 차이가 나며, 근본 상좌부의 맥을 정하는 데에도 설이 나뉘고 있다. 대체로 설산부를 근본 상좌부와 동일시하고, ‘본말 11부파’라고 헤아린다.
그리하여 초기 교단은 모두 20개의 부파로 나뉘어졌으나, 그 밖에도 수많은 분파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남전과 북전의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2. 부파 간의 논쟁점과 공과
과연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였던 교단 내의 논쟁점들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먼저 근본 분열을 초래했던 논쟁점, 즉 마하데바의 다섯 가지 주장들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아르하트(arhat, 아라한)는 성욕을 일으킬 수 있다.
둘째, 아르하트는 무지(無知)가 남아 있다.
셋째, 아르하트는 의심이 남아 있다.
넷째, 아르하트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다섯째, 불도(佛道), 즉 길은 소리로써 얻어진다.
마하데바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가 붓다의 참된 가르침이라 주장하였으며, 그에 대한 논박과 논쟁으로 인해서 마침내 교단은 두 파로 나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의 이면에는 사회적 변화가 또 다른 이유로서 작용하였다고 본다. 교단이 지역적으로 확장되고 생활환경이나 사회적 상황들이 변화되면서 고정적인 율장의 내용만으로는 모두 대처할 수 없게 되자 교단 내부에서도 진보와 보수 사이에 의견 충돌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승단 내에서 벌어졌던 온갖 논쟁의 전말을 상세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부파 분열 당시의 정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문헌들에서 전하는 각 부파 간의 논쟁점들은 그 당시 교단의 최대 관심사가 바로 불법(佛法)에 대한 엄밀한 해석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각 부파 간의 분열은 상호간의 차이를 드러낼지언정 각자가 이해하는 대로 올바른 붓다의 가르침을 계승하고자 노력했던 결과였다.
각 부파의 논쟁 내용은 예컨대 취(聚), 심(心), 삼매(三昧), 천(天)의 4대(大) 등을 비롯하여, 업과 과보의 문제라든지, 출세간법의 문제, 무위법(無爲法)의 인정 여부, 과거와 미래의 실체성이라든지 사물의 실재성 여부, 그리고 깨달음의 문제 등을 비롯한 교리상의 쟁점들을 비롯하여 불탑신앙의 문제 등이다.
사실 『이부종륜론』 등의 문헌에서 전하는 각 부파의 주장점들은 언뜻 보기에 별반 차이가 없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고 논쟁하였던 교리상의 논점들은 대승불교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대승에 속하는 경전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수많은 부파가 갈리는 논쟁점들이 보다 더 진전되고 체계화된 형태로 승화된 것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부파불교시대에 이어서 발달한 대승불교의 씨앗이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명료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원류가 부파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니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중부의 교리가 바로 대승불교의 내용을 이루고 있으며, 유부, 경량부, 화지부, 법장부 등 상좌부의 교리도 대승불교 속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사상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른 사상적 조류와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어 가고, 또한 다시 갈리거나, 다시 또 합쳐지면서, 다른 또 하나의 대해(大海)를 이룬다. 불교라는 막막한 대해 속에서 여러 부파의 논쟁과 분파는 작은 개울이거나 아니면 강물이나 또는 파도 거품과 같은 것이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무나도 엄밀하고 치열하다 못해 번쇄하기 짝이 없다는 혹평까지 들어야만 했던 부파 논사들의 쟁론들이 ‘철학적 불교’라는 튼튼한 주춧돌을 놓고 ‘종교적 불교’라는 튼실한 기둥을 세우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부파 논사들의 불교’가 흔히 지칭하듯이 ‘소승(小乘)’, 즉 작은 수레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인식을 재고(再考)하는 것이 부파불교시대의 논쟁사를 올바로 보는 첩경일지도 모른다. 대승불교시대는 부파불교시대라는
알껍데기를 깨고 나온 거대한 붕새와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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