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聲無臭又無明 到處相從不可明
欲識空王眞面目 雁扡秋色過江域 <소요태능>
공왕의 진면목을 알고자 하는가? 기러기 추색<가을 풍경>을 끌고 강역을 지나가네
暑王寒來春復秋 夕陽西去水東流
茫茫宇宙人無數 那箇親曾至地頭
더위가 가면 추위 오고 봄 뒤엔 다시 가을이라 저녁 해는 서쪽으로 가고 물은 동으로 흘러
망망한 우주의 수없이 많은 사람 중에 저 경지 도달할 이 몇이나 될까
空王 – 여래 10호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쓰이는 부처님의 다른 존칭. 미생전 소식
解悟 – 解脫悟得의 준말. 진리를 이해하는 수준에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증득하여 아는 증오보다는 낮은 경지로 본다.
義理禪 – 자신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고 선의 이치만을 분별함.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북송 휘종은 불과선사 라는 호를 남송 고종은 진각선사 라는 호를 내려 내려 지극히 존경했다. 제 47대 조사스님인 오조법연 스님의 수제자다. 불안청원 태평혜근 원오극근을 오조법연 문하의 3부처라고 한다. 원오극근 스님의 유명한 제자로 대혜종고 스님이 있다. 대혜종고 스님은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 참선방법인 간화선을 만들었다.
지금은 기침하고 팔 흔드는 것까지도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되었다.
祖師西來意
조주선사<778~897>의 화두로 한 승려가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 묻자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라 대답하였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板齒生毛다. <판자때기 이빨에서 털이 난다. 판치는 앞 이빨을 얘기한다>
밖으로 끄달리는 모든 마음을 쉬고 안으로 마음의 헐떡임을 없게 하여 마음을 장벽처럼 움직이지 않게 하면 도에 이를 수 있다.
설봉 의존스님은 덕산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님의 문하에는 뒷날 조동종의 종조인 동산 양개스님과 또 법안종의 종조인 법안 문익스님이 있어 선종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어록은 명 숭정 12년 임연행이 편집한 것으로 상당법문 법어 유계 등과 연보가 실려 있다. 현사 사비스님이 입적하기 몇 년 전에 문인 지엄스님이 편찬한 것이다. 상당법어 70여 가지와 방장록 등이 있고 특히 불법요체를 묻는 5가지 질문에 대한 설명과 게송은 현사록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현사스님은 설봉 의존스님의 법을 이었다.
임제의현<~867> – 중국 당나라의 선승.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의 시조.
라마나 마하르시 <1879~1950> – 인도의 힌두 철학자
사견을 가진 첫째 무리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자기로 삼으며 <대해스님 서장>
미래의 생을 위해 떠나는 여행? 죽음
1회. 정과스님 전국 선원 수좌회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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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속박을 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불멸의 길을 열망하면서 머리에 불이 붙듯 수행하라.
저는 삶과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얽히고 설킨 삶 가운데로 저를 끌어들일만한 것은 이제 그 뿌리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슬픔은 끊어지고 사라졌습니다. 슬픔이 비롯하는 근원을 저는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뭇타 비구니>
獨有一物 常獨露 澹然不隨 於生死
오직 한 물건이 있어서 항상 홀로 승승적적하게 존재하면서 빛나고 있으니
이것은 나고 죽음의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아니하고 걸림이 없더라.
모든 장애와 갈애를 벗어난 사람 모든 속박을 끊어버리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집착을 초월하고 묶임에서 벗어난 사람 분노하지 않고 책임감이 있고 계율을 지키고 겸손하고 자신을 다스려 마지막 몸에 이른 사람 적의를 품은 자들 가운데 우호적이며 폭력을 쓰는 자들 가운데 평화적이며 집착하는 자들 가운데 집착을 떠난 사람 송곳 끝의 겨자씨가 떨어지듯이 욕망과 증오를 떨쳐버리고 거짓과 교만을 떨쳐버린 사람 그를 나는 브라만이라고 부른다 <숫타니파타 바쎗타의 경>
전등록 석두희천과 약산유엄의 대화
여기서 뭘 하느냐?
아무 것도 안 합니다.
그렇다면 한가하게 앉아 있는 거로군.
한가하게 앉아 있는 것도 하는 겁니다.
아무 것도 안 한다니 도대체 뭘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건가?
모든 성인도 모릅니다
無爲 –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음
몸은 가만히 있는지 몰라도 마음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런데 그 마음이 끊어졌으니 이것이야 말로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다.
건달바 – 여러 천들을 위해 허공을 날아다니며 음료와 약품을 제공하는 신이다. 술 고기를 먹지 않고 향만 먹는다고 하여 향신 식향 심향이라고도 한다.
자기의 마음이 본래 완전한 부처라서 참으로 자유자재하고 안락하며 해탈청정하니 <운암 극문>
남전 보원스님이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정과 혜를 함께 닦아 부처님의 성품을 밝게 본다고 하는데 이 뜻이 무엇이요?
하루 종일 한 물건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완릉록<宛陵錄> – 당의 배휴가 848년 안휘성 완릉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 황벽희운스님을 능양산 개원사에 모시고 조석으로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가르침을 기록한 법어집
건너야 할 저쪽 언덕도 없고 떠나야 할 이쪽 언덕도 없으며 아무런 근심이 없고 모든 속박에서 해방된 이가 있다면 그가 곧 브라만이다 <Walpola Raula 스리랑카>
이치가 다하고 알음알이마저 잊는데 어찌 비유조차 있겠는가?
필경 서리 내리는 밤 달은 고스란히 앞 시내에 떨어지네
과일 익으니 원숭이 따라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이 아득 하구나.
고개 들어보니 낙조가 지는데 원래부터 서방에 살았구나 <법안스님 원성실성승>
옳으니 그르니 상관 말고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라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임제스님 시>
아무리 풍요로운 곳이라도 자기 마음이 편하치 못하면 행복한 곳이 아니다.
보고 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 짓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왜 죄가 됩니까?
<이산혜원선사 발원문>.
바히아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거기에 그대가 없을 때 그대에게는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그 둘 사이의 어떤 세상도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법구경 우다나 바히야경>
言下大悟 – 말을 듣고 크게 깨우친다
2회. 정과스님 전국 선원 수좌회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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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대사탑<보물 제 137호>
이 탑에는 봉암사를 처음 창건한 지증대사<824~882>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불법은 일상생활에 있으니
가고 앉고 눕는데 있고 차 마시고 밥 먹는데 있으며
말을 서로 주고 받는데 있고 짓고 움직이는 데 있다.
<화엄학에 정통한 위부노화엄으로 불린 회동선사의 시>.
존장<830~925>
당나라 때 고승으로 임제 의현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875년 위부 흥화사에 머무르면서 불법을 펼쳤기 때문에 흥화존장 선사로 일컬어진다.
마조도일 스님의 문하에 동운봉 스님이 계셨다.
괴팍하고 괴이한 행동으로 유명했는데 어느 날 제자들에게 나는 역대 스님들과는 다르게 가야겠다 하면서 바닥에 손을 짚고 벽에 두 발을 붙인 채 물구나무를 서셨다. 그리고 잠시 후 열반에 들었다.
제자들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법구를 옮기려 했지만 스님의 법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여동생 비구니 스님이 찾아와 살아서도 괴팍하더니 죽어서까지 골탕을 먹이냐 라고 나무라면서 손바닥으로 벽을 치니 그제야 법구가 움직였다고 한다.
옳으니 그르니 상관 말고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임제스님>
백운스님 임종게
곳곳마다 돌아가는 길이요 이르는 곳마다 고향인데
어찌 나룻배를 고쳐 몰아 내달으면서 유별난 곳으로 귀향코자 하리요.
내 본래 지닌 것 없었으니 마음 또한 머물 곳 없다.
재로 만들어 사방에 뿌려 시주의 땅을 차지하지 말도록 하라 <백운스님1298~1374>
본여스님 임종게
곳곳마다 돌아갈 길 만들고 곳곳마다 그곳이 고향일세
본래 다 완성되어 드러나는 것을 하필 사량을 기다리랴 <신조본여 982~1051>
비 지나간 밤 연못에 강을 물 깊네
이 공부는 말에 있지 아니하여 말로써는 다다를 수 없습니다. 다만 절집의 말 중에서도 세간의 것과 비슷한 게 있기는 합니다. 공께서도 소염시를 아시죠. 자주 소옥을 부르지만 소옥에겐 일이 없네. 담장 너머 정인에게 알리는 소리일 뿐.
양귀비가 시녀 소옥을 부르지만 정인 안록산에게 이제 와도 된다는 소리다. 말에 매이지 말라.
오직 마음이 정토임을 깨닫고 자성이 미타임을 알아보십시오.
그러면 이승이든 저승이든 이르는 곳마다 즐거울 것입니다 <대혜스님 영가법문>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디에서 부처를 구하리오 <육조단경>
범인과 성인 두 가지를 모두 잊어버리고 알음알이가 다 하여 드디어 본체가 드러났구나
제목은 죽음이지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이야기다.
티벳 사자의 서에서 망자에게 소리나 형상에 끌려가지 말라고 계속 주문한다.
3회. 정과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담선법회. 마음이 정토 자성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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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념은 죽기 살기로 끊어내야 한다.
절박함으로 하지 않으면 죽음이 곧 끌고 갈 것이다. 머리에 불 타는 듯한 다급함으로 끊어내야 한다.
平常心是道
도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의 마음이 곧 도라는 가르침
모든 속박을 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삼으라.
지극한 도의 요점은 마음을 쉬는데 있을 뿐이니 마음을 쉬고 나면 모든 인연이 쉬어버린다. 허공 같이 툭 튀어 조금도 의탁함이 없는 이것이 진실한 해탈인데 어찌 어려움이 있으랴 <원오심요>
황벽희운
중국 당 후기의 선승. 임제 의현의 스승. 강서에서 백장회해의 법을 잇고 황벽산을 개창해서 그 가르침을 펼쳤다.
대혜종고<1089~1163>
중국 송나라 양기파의 선승. 마조도일의 80명 제자 중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화두를 관하는 명상법인 간화선을 만들었다.
원오극근<1063~1135>
중국 송나라 양기파의 선승. 제 47대 조사스님인 오조 법연스님의 수제자.
무릇 중생과 부처가 나뉘기 전 확 트여 밝고 오묘하며 전혀 기댐이 없이 우뚝 독존 <원오심요>
부처란 무엇입니까?
내 이제 그대에게 말해도 그대가 믿지 않을 것 같구나.
화상의 지극한 말씀을 어찌 제가 믿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대가 부처이니라.
어떻게 하면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티눈이 눈에 있으면 헛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선문염송 고칙>
귀종선사
중국 당나라 말기 조동종의 종풍을 크게 떨친 스님. 마조도일의 제자. 신채가 기묘해 보는 사람들이 왕이 될 상호 라고 수근거려 스스로 독약을 눈에 쏘여 눈을 붉게 하고 눈 붉은 귀종화상 이라 불렀다.
손을 들어 남두성을 더듬고 몸을 돌이켜 북극성에 기댄다
머리를 내밀어 하늘 밖에서 보나니 누가 나와 같은 사람이더냐 <지통선사 임종게>
금가루가 비록 귀하긴 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장애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내가 그대를 일개 속한으로 오해하고 있었구나.
붉은 먼지 길거리에 노는 아이는 언제 돌아오나.
미친 기운 쉬기만 하면 오두막은 가까이 있네.
세존께서는 도솔천을 떠나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났고
모친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세상사람들을 이미 다 제도하셨다.
우리를 뛰쳐나온 소 석씨네 약초밭을 망치는데 콧구멍이 없구나.
삼세제불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네.
구속에서 벗어난 본래인의 모습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언제 약초밭을 재배했나? 약초밭은 8만4천 가지 중생들 병에 대한 부처님의 약방문이 효험 없는 가르침이라고 비방하고 다니는 선지식들의 행위를 말한다. 약초밭을 망치는 것 같지만 제불은 미소 짓는다.
열반경 40권이 모두 다 마구니의 언설입니다.
이후로는 아무도 그대를 어쩌지 못하겠구나.
그런가 하면 덕산스님은 법당 앞에 경을 쌓아놓고 불 질러버렸다.
공왕의 진면목을 알고자 하는가?
기러기 가을 풍경을 끌며 강역을 지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 옳고 그름 더럽고 깨끗함 아름답고 추함 범부와 성인 좋아하고 싫어함 이익과 손해 나와 남이 있나?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대상을 볼 때 보기만 하고 들을 땐 듣기만 하라. 깨달은 이들은 세상을 이렇게 본다는 가르침이다.
4회. 정과스님 전국선원수좌회 담선법회 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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