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이 있다. 탐욕스런 한 사나이가 지평선에 해가 떨어질기 전에 한 치라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걸음을 재촉하다가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마는 내용인데, 그 소설의 끝은 다음과 같은 글로 맺고 있다.
"바흠(주인공의 이름)의 하인은 괭이를 들고 주인을 위해 구덩이를 팠다. 그 구덩이는 바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단 2미터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 묻혔다.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 나머지는 모두 세상에 속한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소속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고 보다 뜻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 그때 그때 자신의 분수와 처지에서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소유를 최소한의 것으로 제한하는 것은 정신 생활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하는 요체다. 자신의 분수를 망각한 채 소유에 마음이 빼앗기면 눈이 흐려져 인간적인 마음이 움트기 어렵다.
유교경(遺敎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만족할 줄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편안하다. 그런 사람은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국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분수와 처지를 돌아보고 만족할 줄을 알면 비록 가난할지라도 그는 부자나 다름없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 아니겠느냐는 교훈이다. 욕망과 탐욕의 늪에 갇히게 되면 철철 넘치고 있는 신선하고 풍성한 우주의 흐름을 느낄 수 없다. 정직과 청빈의 덕을 지녀야 한다. 정직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믿으려고도 따르려고도 하지 않는다. 청빈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사는 덕이다. 그것은 소극적인 금욕 원리가 아니라 동양의 전통적인 감성에 뿌리내린 선비정신이며 적극적인 우주와의 합일 원리이다. <93.4.18>
출처 : 법정 스님<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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