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학의 완성자 현수 법장
현수 법장(賢首 法藏, 643~712)은 강거국(康居國) 출신으로 속성이 강(康)씨였다. 어머니가 빛을 삼키는 꿈을 꾸고 임신하여 정관(貞觀) 17년 11월2일에 아들을 낳았다. 16세에 법문사(法門寺) 사리탑 앞에서 연비공양을 한 후, 불승(佛乘)을 깨닫고자 맹세한 다음해에 법을 구하여 태백산(太白山)으로 입산하였다.
그 후 운화사(雲華寺)에서 지엄(智儼)의 〈화엄경〉 강의를 듣고 지엄(智嚴)의 문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에 대해 비문에는 ‘물을 이 병에서 저 병으로 옮겨 붓듯 하고, 우유를 물에 섞듯이 조화를 이루는 인연 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후 법장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 스승을 따라 수학한 것과는 달리 오로지 지엄, 한 사람만을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다. 법장이 출가한 때는 지엄이 도성(道成)과 박진(薄塵) 두 대덕에게 법장의 장래를 부탁하고 입적한 2년 뒤이다. 다시 말해 화엄 5조가 다 그랬듯이 사자관계가 스승이 죽은 후에 맺어졌던 것이다 법장은 측천무후가 돌아간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태원사(太原寺)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 후, 측천무후가 주선하여 열사람의 대덕(大德)으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현수(賢首)’라는 호를 하사받고 먼저 태원사에서〈화엄경〉을 강론하게 된다.
또한 운화사에서 〈화엄경〉을 강론할 당시 입에서 빛이 나와 천개(天蓋)가 되어 공중에 머물렀고, ‘십지품(十地品)’을 강론할 때에도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오색의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고 한다.
실차난타가 80권 화엄을 번역할 때에는 필수(筆受)를 맡아 참여하였고 번역이 완성된 후 측천무후의 요청으로 궁궐 안의 장생전(長生殿)에서 80화엄을 강론하였다. 이때 강의를 들은 무후가 심오한 화엄세계가 어려워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하자, 때마침 궁전 한 구석에 놓여있던 금사자상(金獅子像)을 예로 들어 십현육상(十玄六相)의 이치를 설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때의 금사자상에 대한 비유의 강의는 후에 저술된 『탐현기』 속에 〈금사자장(金獅子章)〉으로 남아있다.
법장은 『화엄경』을 강론하기를 30여회, 60화엄의 주석서인 『탐현기(探玄記)』를 비롯하여 수많은 저술을 남기고 대천복사(大薦福寺)에서 세수 70세, 승납 43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생몰연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원효와 의상보다 20여년 늦은 연배다.
법장은 항상 ‘분소(糞掃)를 옷으로 하고 선열(禪悅)을 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문하에는 구름에 비유될 정도로 많은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제자는 정법사(靜法寺) 혜원(慧苑)이었다. 혜원은 법장이 못 다한〈80화엄〉의 약소(略疏)를 이어받아 <간정기(刊定記)〉를 찬술했지만, 후대 화엄종 계열의 사람들은 법장 교학에 대한 혜원의 해석이 법장의 사상과 달라 법장의 사상을 이은 것이 아니라고 평가해 그를 이단시(異端視) 하였다. 그래서 혜원은 화엄종의 계보를 잇지 못하고, 법장의 입적 26년 후에 태어난 징관이 화엄의 제4조가 되었다.
* 법장의 화엄사상
화엄사상의 집대성자인 법장은 제3조이지만 실질적으로 화엄교학을 체계화시킨 인물이다. 그의 사상적 특질을 들자면, 먼저 화엄종의 입장을 표방하는 ‘교판론’과 화엄사상 형성의 근본으로써 ‘해인삼매’와 ‘법계연기’ 그리고 ‘성기(性起)사상’ 등을 들 수 있다.
법장의 화엄교학의 전체적 구조는 무엇을 토대로 구축되었는가. 이것을 논증한 것이 ‘해인삼매론’이다. 해인삼매를 일승(一乘)교의의 근본정(根本定)이라고 한 것은 지엄이지만 법장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일체이용(一體二用)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사유의 연원을 살펴보면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까지 소급될 수 있으나 화엄교학에 한정해 보면 ‘법계연기론’이 얼마나 법장의 독자적인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화엄종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법계연기를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계연기를 오교판(五敎判), 즉 제5원교(圓敎)의 입장에서의 연기설이라고 하는 명확한 규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교는 ‘별교일승’이고 ‘일승연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장은 자신의 기본적인 사상을 별교일승(別敎一乘)에다 두었다. 이것은 부분을 전체 속의 부분으로 보는 본질적인 법의 총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공과 유식의 이론, 중관학파의 변증법과 여래장의 이론들을 통합 회통하고자 하였다. 법장의 입장에서 보면 화엄은 ‘공통된 가르침을 가진 동교일승(同敎一乘)이 아니라, 구별된 가르침을 가지는 별교일승’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교일승을 내용으로 하는 법계연기설을 전개, 우주 속의 모든 존재는 공성(空性)이기 때문에 동시적으로 생긴다. 공성은 이(理)와 사(事)의 두 측면이 있고, 이 기본 명제에서 출발하여 이와 사가 서로 방해하지 않고 융합하여 존재한다는 이사무애(理事無碍)와, 현상계의 모든 존재가 서로 합일되어 있다는 사사무애(事事無碍)가 성립된다. 이는 하나가 곧 여럿이고 여럿이 곧 하나라는 일즉다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의미인 것이다.
이를 사회생활 속에서 생각해 보면, 개인의 일(一)과 사회의 다(多)가 있다. 개인의 일(一)은 결코 일(一)만으로 살아갈 수 없고 사회의 다(多)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의 다(多)와 개인의 일(一)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조화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화엄경』의 경우는 불성의 ‘본래성(本來性)’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일체를 불성의 현상으로 보고 있다. 즉 인간은 본래 불성을 갖고 있고, 인간의 존재라는 것은 불성이 실재(實在)로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기사상’이다.
그러므로 성기사상에서는 여래의 출현이 여래의 성기로 된 근거를 『화엄경』에서 구하였다. 그것은 성기라고 번역된 그 자체의 역사적 사실의 중요성에 착안하여 그와 같은 용어를 낳게 한 필연성을 찾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因)의 입장, 즉 성기를 결코 초월적인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현실의 구체적인 관계에서 이해하고 있는 지엄에 비하여 법장의 입장은 상당히 다르다. 성기사상은 특수한 사상의 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화엄교학의 본질을 보다 더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법장의 교학체계는 전불교의 종합화를 지향하여 모든 교설을 망라한 뒤, 이것에 각각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교학을 완성시킨 점에 그 특색이 있다고 하겠다.
법장의 저술은 60화엄의 주석서인 『탐현기』를 비롯해서 화엄교학의 개론서라고 할만한 『오교장(五敎章)』 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25부 70여권만이 현존하고 있다. 특히 『오교장』은 화엄교학의 원점이자 화엄종의 입교개종(立敎開宗)을 선언한 의미를 지닌 저술로써 그 가치를 지닌다.
『오교장』에서 그가 세운 ‘오교십종(五敎十宗)’은 많은 교판들 중에서도 비교적 후대에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완벽한 교판이라 할 수 있으나, 역시 화엄종을 최고위에 두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오교(五敎) 가운데 ① 소승교(小乘敎)에는 『아함경』과 『구사론』 등이 포함되고 ② 대승시교(大乘始敎)에는 『해심밀경』 및 『성유식론』 등이 해당된다. 그리고 삼론종과 법상종을 바로 여기에 포함시킨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③ 대승종교(大乘終敎)에는 『능가경』과 『기신론』 등이 해당되고 ④ 대승돈교(大乘頓敎)에는 돈오(頓悟)를 설하는 『유마경』을 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⑤ 대승원교(大乘圓敎)는 바로 『화엄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장이 신라 의상(義湘)에게 보낸 서간문인〈기해동서(寄海東書)〉도 현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사람간의 유대관계 뿐만 아니라, 법장이 저술한 7부의 서명(書名)과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즉 지엄 문하에서 7년간 사사한 의상이 스승의 입적 후인 671년 신라로 돌아와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을 때, 의상과 사형사제 관계인 법장이 자신의 저서를 의상에게 보내어 잘잘못을 지적해달라고 부탁한 편지가 바로〈기해동서〉인 것이다.
이 편지를 받은 의상 역시 보내온 법장의 저서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검토하게 한 후, 자신이 직접 전체를 살펴본 결과 9장과 10장의 순서를 서로 바꾸게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오교장〉의 화본(和本)과 송본(宋本)의 9장과 10장이 서로 반대로 되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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