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무주(無住)] 8. 화엄경의 무주
『화엄경(華嚴經)』에 나타나는 ‘무주(無住)’라는 용어는 총체적으로 말하면, ‘하나가 여럿이요 여럿이 하나[一卽多多卽一]’ 혹은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원융무애(圓融無礙)한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설하려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개별적 문맥 속에 나타나는 각각의 ‘무주’라는 단어가 문맥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총체적으로 볼 때『화엄경』에서 ‘머묾 없다’는 말은 ‘일체법에 걸림 없는 무애자재(無礙自在) 혹은 원융무애(圓融無礙)’라는 뜻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화엄종(華嚴宗)에서 수립한 화엄교학(華嚴敎學)에 따르면, 화엄의 가르침은 그 세계관인 법계연기(法界緣起)와 수행법인 법계관법(法界觀法)으로 요약된다. 법계연기는 무한히 펼쳐진 법계의 본질을 밝힌 것으로서, 본성에서 만유를 전개시키는 것으로 말하면 성기(性起)라 하고, 그 드러난 형상(形相)에서 본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말하면 연기(緣起)라 한다.
연기는 법계의 본성을 밝힌 것으로서 법계연기라고 하는데, 이법계(理法界)․사법계(事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넷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법계관법은 이러한 법계연기를 관(觀)하는 수행법으로서, 이법계를 관하는 진공관(眞空觀), 이사무애법계를 관하는 이사무애관(理事無礙觀), 사사무애법계를 관하는 주변함용관(周邊含容觀) 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편의상 이러한 화엄교학을 따라, ‘무주’가 사용된 문맥을 법계연기를 드러낸 문맥과 법계관법을 드러낸 문맥으로 나누어 살펴 보겠다. 물론『화엄경』에서는 이런 교학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분류하여 살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① 법계연기를 나타내는 ‘무주(無住)’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니, 이르는 곳마다 모두 부처를 만난다.”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니, 두루 법계에 들어간다.”
“머물 곳 없는 지혜로써, 모든 머물 곳을 안다.”
“그 몸을 가지고 온 우주의 모든 불국토(佛國土)를 두루 돌아다니지만 막힘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머묾 없고 조작 없는 신통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모든 국토에 들어가지만, 머묾이 없다.”
“여래는 머묾이 없지만, 모든 국토에 두루 머문다.”
“비록 머묾이 없고 머물 곳도 없지만, 언제나 모든 지혜의 길에 들어가, 변화의 힘으로써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의 무리 속으로 두루 들어가, 일체의 세계를 모두 장엄(莊嚴)한다.”
“비록 머묾이 없지만, 여러 국토에 머문다.”
“여섯 번째, 이사무애문(理事無礙門) 역시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모든 교법(敎法)이 본체인 진여를 드러내지만 사상(事相)이 뚜렷하여 차별되는 것을 장애하지 않음을 말하고, 둘째는 진여가 본체를 일체법으로 삼지만 일미(一味)가 깨끗하여 평등한 것을 장애하지 않음을 말한다.
앞의 경우는 물결이 곧 물이지만 움직이는 모습이 장애되지 않는 것과 같고, 뒤의 경우는 물이 곧 물결이지만 습성(濕性)을 잃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 속의 도리(道理)도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사(理事)는 원융무애(圓融無礙)하여 오직 하나의 머묾 없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다.”
② 법계관법을 나타내는 ‘무주(無住)’
“모든 법이 모두 머묾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음을 관(觀)한다.”
“모든 법이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아 일어나 머무는 곳이 없음을 관(觀)하고, 모든 사물이 모두 의지함이 없음을 알고, 모든 국토가 모두 머묾이 없음을 깨닫는다.”
“모든 중생과 모든 법에서 마음은 모두 평등하여 머묾이 없음을 관(觀)한다.”
“모든 법이 머묾이 없어서 일체의 묘한 법의 궁전에 두루 들어가면서도 들어온 바가 없음을 잘 관찰할 수 있다.”
“햇빛이나 달빛처럼 모습도 없고 항상하는 것도 아니고 단멸하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머무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일체법이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음을 알게 된다.”
“이 선지식은 세간을 멀리 떠나 머묾 없음에 머물러, 육처(六處)를 뛰어 넘고 모든 집착을 벗어나, 장애 없는 길을 알아 깨끗한 법신을 갖춘다.”
한편『화엄경』에는『반야경』이나『유마경』이나 유식학 등에서 사용하는 ‘무주’와 관련된 용어나 표현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화엄경』이 모든 대승불교를 총괄하는 경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반야경』에서 연기법을 표현하는 구절과 유사한 표현이 많은 것은,『화엄경』이『반야경』의 연기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다.
“머물러도 머묾이 없다.”
“머묾도 없고 움직임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
“무주해탈”
“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공적하다.”
“만약 머묾이 없으면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보살마하살의 제삼 무생법인(無生法忍)이라 한다.”
연기(緣起)와 성기(性起)의 양면을 말하는『화엄경』의 법계연기는『아함경』,『반야경』,『중론』의 상의상대(相依相待)․공성(空性)․중도(中道)의 연기법을 계승하고, 더럽고 깨끗한 모든 법은 전부 여래장(如來藏)에서 연기해 나온 것이라는『능가경』과『승만경』의 여래장연기(如來藏緣起) 혹은 진여연기(眞如緣起)를 포괄하여 종합된 연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결의 분별에서 해탈하려면 물결이 곧 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만, 물은 언제나 물결의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물에도 머물지 않고 물결에도 머물지 않아야 물에도 막힘이 없고 물결에도 막힘이 없어서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통하는 것과도 같다. 진여본성과 분별망상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둘 모두에 막힘 없이 원융무애하게 통하는 무애자재(無礙自在)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바로 『화엄경』의 ‘무주(無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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