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불교란 무엇인가?

수선님 2022. 3. 13. 13:12

불교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 [Buddhism, Buddhismus, Buddhisme] 

--- 김승동 편저, 콘사이스판 불교사전, 민족사, 2011. 400-401쪽에서

인도의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에서 비롯된 종교. 정신적 심적(心的)인 고통 괴로움 번민 속박으로부터의 해탈 자유를 추구하는 종교. 붓다(Buddha; 부처)B. C. 5세기경 지금의 네팔 변경에 살고 있던 석가족 출신이다. 그는 당시의 우주의 절대적인 원리 내지 창조신[브라만]을 부정하고 반베다적인 자유사상가의 한 사람으로서 연기법(緣起法)을 기초로 사제 팔정도 삼법인 ‧ 12연기 등을 설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아 해탈 열반의 길에 들도록 가르쳤다. 붓다[佛陀; Buddha]에 의해 성립된 불교는 인도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 발전하였다. 그것을 역사적으로 분류하면, 원시[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밀교 등 4개의 형태로 분류된다. 그 후 불교는 인도에서 A. D. 12세기를 전후하여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오늘 날 세계 4대 종교로 되어있다. B. C. 3세기경에 등장하여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에 의하여 불교는 인도를 벗어나 스리랑카로 전래되었는데, 그것이 남방불교의 시원(始原)이 되어 동남아시아에 전해졌다. 한편 서력기원을 전후하여 인도에서는 기존의 보수적이고 유아적(唯我的)인 소승불교에 비해서, 보살도의 실천을 이상으로 삼는 대승불교가 성립하여 발전하게 된다. 이 대승불교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 전래되어 종교적 사상적 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각각 발전해 왔다.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엮음, 청소년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2009. 9-31쪽에서 발췌 인용함.

 

1. 불교는 어떤 종교인가

 

1-1 참다운 나를 찾는 종교

불교는 참다운 나를 찾는 종교이다. 부처님께서는 잃어버린 참 마음, 참모습을 찾아주고자 하셨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자.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해 주변 상황에 의해 자신의 판단이 좌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나를 찾는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지금의 자신이어야 한다. 부처님은 입멸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스로 등불로 삼고 스스로 의지하라. 법을 등불로 삼아 법에 의지하라.”

 

대부분의 종교가 신과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를 상정하여 숭배하던 시대에 부처님은 의지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전환하라고 가르치셨다. 자기 자신의 지고한 가치에 눈뜨게 한 이와 같은 주체적 인생관의 선양은 부처님이 인류에게 안겨준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1-2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종교

내가 주체가 되어 참다운 나를 찾는 과정에서 편견이나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면 타인과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 석 달을 지내면서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던 제자들을 향해 부처님은 서로서로 가르치고 서로서로 깨우쳐야 한다.’며 훈계하셨다. [, dharma]을 이야기할 때에도 정확한 뜻과 표현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 : 불교에서 말하는 법은 법칙성을 띤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진리를 의미한다. 개별적인 존재 하나하나를 법이라 하는 것도 그 존재 모두가 우주의 법칙을 담고 있으며 그런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1-3 진리를 깨닫게 하는 종교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로 알려져 있다. 깨달은 사람[()]이 깨닫고자 하는 사람[() 또는 菩薩(보살)]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음의 내용과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 바로 법이다. 불교는 진리를 강조한다. 그 진리를 불교에서 법이라 한다. 이 법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더불어 불자(佛子)가 의지해야 할 또 하나의 가치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삶을 영위해야겠지만, 그런 나 또한 얼마든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법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바른길을 걸어갈 수 없다. 불교의 길은 법에 의지하여 법을 깨달아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4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종교

깨달은 법에 입각해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둘러싸인 마음을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지혜롭게 바꾸어가는 과정이 수행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자신의 벗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이처럼 깨달음을 구하며 중생을 교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살[菩薩; bodhisattva]이라고 한다. 뭇 생명의 벗이 되는 보살의 삶이야말로 모든 불자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다.  

 

1-5 믿음과 정진의 종교

뭇 생명의 벗인 보살이 되려면 먼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사는 청정한 스님들[()] 믿고 따라야 한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 말씀의 진실한 의미를 생각하고[()] 깨달아 실천하는[()] 과정이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깊이 들어간 선지식(善知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두터운 나의 무지를 타파할 수 없다.

믿음을 갖춘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꾸준히 정진(精進)한다. 정진은 어떤 수행도 완성하게 하는 힘이다. 부처님께서도 나는 정진 하나로 최고의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셨으며, 제자를 향한 유훈의 마지막도 정진을 당부하는 것으로 맺었다. 믿음과 정진은 불교를 오늘날까지 있게 한 버팀목이다.

 

* 종교(宗敎)의 정의(定義)

종교는 한동안 신과 인간의 재결합이라 여겨졌다. 종교로 번역되는 ‘Religion’이란 단어가 다시 연결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의 지적 체계를 갖춘 불교가 서양에 알려지면서 그러한 종교의 정의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의 입장에서만 내려진 편협한 정의로 비판받고,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문과 윤리와 예술이 각각 진(), (), ()를 추구함과 같이 종교는 성스러운 것[()]과의 만남이라고 보는 견해가 서양에도 널리 퍼져 있다.  

종교(宗敎)라는 말은 능가경(楞伽經)』에서 나왔다. 마루 종(), 가르칠 교()가 결합한 말로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종교는 인간이 지니는 궁극적 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는 일본의 종교학자 키시모토 박사가 말한 종교에 대한 정의가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받는다.

종교는 첫째 인간이 지니는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을 준다고 주장하며, 둘째 그 주장을 신앙하는 무리에 의해 영위되는, 셋째 의례를 동반하는, 넷째 문화현상이다.”

 

 

2. 불교, 이래서 좋다

 

2-1 불교는 합리적이다

불교는 무엇보다 먼저 합리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말은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이치에 맞는 생각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사실에 입각해 있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거나 모든 존재는 서로 의지한다.’는 기본교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에 반해 대부분의 종교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신앙하거나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교리를 주장한다. 물론 종교는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학문과는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신앙의 대상이나 교리가 반드시 이해돠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가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것도 당장 이해되지 않는 내용을 중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 또한 믿음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믿음은 누구나 노력하면 깨달음으로 전환된다.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교리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합리적인 이해가 이루어진다. 믿음과 이해가 일치하는 것이다. 까다롭기 그지없던 수학 문제도 차근차근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 그렇구나!’하고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도 깨달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합리적인 것은 어렵지 않다. 생각하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다가가기 쉽다. 미신이나 맹신에 빠질 위험도 당연히 없다. 불교는 대화가 가능하다. 합리적인 것은 개방적이며 독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끝내 이해되지 않는 대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에 빠진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다. 그런 사람들은 주관적인 신앙 체험만을 신봉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힘들다. 불자가 다른 종교인보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한다고 평가받는 이유도 불교가 합리적인 사유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2-2 불교는 현실적이다

불교는 현실적이다. 현실 속에서 보람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영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열반도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 성취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다른 세상에서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는 다른 종교의 구원에 대한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영원한 행복의 경지인 피안(彼岸)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생각, 어지럽고 비뚤어진 마음이 사라진 상태가 곧 피안이다.

다른 종교인은 신을 믿으면서도 그 존재에 대한 의혹과 쉼 없이 싸워야 한다. 신은 비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교설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불교는 회의(懷疑)가 따르지 않는 순수한 믿음을 얼마든지 가능하게 한다.  

 

2-3 불교는 인간을 존중한다

불교는 인간중심적이다. 인간만을 고귀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을 지배하는 다른 존재나 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경에도 하늘나라나 신에 대한 서술은 많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신은 숭배나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나를 도와주거나 깊어진 수행의 단계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을 한없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이야말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나기 어려운 기회를 게으름과 악행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은 인간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 입장이지만,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극히 강대하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 전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환경 역시 인간의 행위에 의해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생태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크기 때문이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갈수록 강조될 수밖에 없다.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불교는 시대를 앞선 탁월한 안목을 갖추고 있다. 모든 생명의 평등함을 일찌감치 천명한 것이다. 인간 이외의 존재를 인간을 위한 수단이나 정복, 또는 지배의 대상으로 본 다른 종교나 사상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3. 행복을 추구하는 불교

 

3-1 행복을 구하는 불교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사람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짐승이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불행을 바라는 존재는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게 행복을 구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부처님의 제자 아니룻다는 해진 옷을 기우려고 바늘에 실을 꿰려고 하였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잘되지 않았다.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아니룻다는 탄식 섞인 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행복을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좀 도와주었으면….”

그때 아니룻다의 손에서 바늘과 실을 받아든 사람이 있었다. 부처님이었다. 깜짝 놀란 아니룻다가 물었다.

아니, 부처님께서는 가장 행복한 분인데 왜 저의 말에 응답하시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아니룻다여,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간절하게 행복을 구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부처님은 행복 그 자체였다. 스스로 행복을 이루고 모든 생명의 행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기 때문이다. 불법(佛法)을 전하는 목적도 천상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함이었으며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여라.”는 것이 부처님의 소망이었다.

불교는 행복의 길이다. 착한 일과 선정(禪定)은 기쁨을 부르며, 열반은 흔들림 없는 행복이다. 불자로서의 첫 단계를 화엄경에서는 환희지(歡喜地), 즉 기쁨의 자리라고 한다. 불교는 힘겨운 수행 끝에서 비로소 기쁨을 누리는 길이 아니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기쁨과 함께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행복을 바라면서도 오히려 불행 속에서 괴로워한다. 방법을 잘못 알거나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 것이다. 뱀을 잡으려면 머리를 잡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거나, 알고도 제대로 하지 못해 몸통이나 꼬리를 잡으면 오히려 뱀에 물려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돈만 있으면 돼.

인생이 뭐 별건가, 되는대로 살다 가는 거지.

잘 사나 못 사나 다 제 운명 탓이야!”

등의 잘못된 인생관이 그것이다.

나 살기도 바쁜데 남 생각할 틈이 어디 있나!

사람이 뭘 알 수 있겠어?”

와 같은 이기적인 마음,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도 행복을 가로막는다.    

 

3-2 현대인이 걷는 행복의 길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욕구가 충족되어 부족함이나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안심하는 심리적인 상태이다. 따라서 지극히 주관적인 상태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바라는 바가 다르고, 바라는 정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 해도 상황에 따라 욕구의 내용과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흔히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의식주 문제의 해결을 꼽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에게 빈곤과 행복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빈곤한 자는 일단 불행한 자요, 행복하려면 반드시 어느 정도의 경제적 풍요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또한 사람들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그에 대한 욕구를 자연스럽게 일으킨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객관적인 행복의 조건은 없다. 단지 공통된 욕구가 있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현대는 자본주의의 시대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긍정하고 그 욕구의 합리적인 충족을 도모한다. 다수의 지지를 받아 번성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 황금이 비 오듯이 쏟아져도 인간의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 풍요한 가정의 아이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비행(非行)을 저지르면 복에 겨워 저러지.’라며 혀를 차지만, 과연 그럴까? 복이 넘치면 더욱 행복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복이 넘쳐 짜증 부린다는 말은 모순이다.

부유할수록 욕구의 크기도 커지고, 아무리 부유해도 충족되지 않는 또 다른 욕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행복지수가 소득에 비례하지 않음은 상식에 속한다. 자본주의가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할 것처럼 보여도 근원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박에 없다.    

 

3-3 진정한 행복

불교는 어떤가? 부처님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의 존재임을 인정하셨다. 그래서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행위를 나쁘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할 때 타인의 욕구 또한 함께 배려하라고 권하셨다. 자신과 타인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행위를 선()이라 하며, 선에는 반드시 행복이 따른다는 가르침과 함께, 욕구를 그대로 둔 지혜로운 충족의 행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보면, 부처님은 행복을 누리는 길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입장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욕구를 대하는 입장의 전환이다. 욕구의 완전한 충족이 불가능하다면, 욕구를 충족하려는 노력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길이 남는가? 욕구 자체를 줄이거나 없애면 된다.

소욕지족(少欲知足)과 무탐(無貪)의 마음이다. 수행은 어리석은 생각을 떠나 넘치는 탐욕을 제어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매 순간 감사와 기쁨을 동반한다. 욕구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만족의 크기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욕구 없이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해도 바람직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도 욕심 없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욕구의 내용과 대상을 완전히 바꾸어야 함을 선포하셨다. 깨달음과 세상의 행복을 위한 욕구를 일으켜 적극적으로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것이 모두 함께 잘 살라는 서원(誓願)을 발하고 사는 삶이다. 이기적인 욕구가 사라진 만큼, 그러한 삶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오히려 크나큰 보람 속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질 수 있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에 있겠는가!

수많은 지성인들이 불교에 매료되는 현상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서양에서 불교 인구가 갈수록 늘어가고, 첨단을 구가하는 현대문명이 부딪친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불교를 지목하는 것도 이미 보편적인 경향이다. 불자(佛子)로서의 자부심을 품고 당당하게 생활하자.  

 

4. 괴로운 삶과 부처님

 

4-1 괴로운 삶

그래도 너희 때가 좋아. 공부만 하면 되니 무슨 걱정이 있겠어? 그것도 모르고 틈만 나면 놀려고 하니커서 고생을 해봐야 알지

어른들이 툭하면 하는 말이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니 힘든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인가 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자.

어른들은 좋겠어요. 돈만 벌면 되니.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이렇게 말한다면 이 말을 듣는 어른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한 학생이 쓴 글의 일부다. 힘든 상황을 전혀 몰라주는 기성세대에 대한 항변이다.

삶은 괴로움[(); dukkha]의 연속이다. 별로 힘겨워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 본인이 아니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사실은 그 사람도 쉽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리가 부러져 깁스한 친구의 고통보다 내 다리에 긁힌 상처 하나가 훨씬 더 아프지 않은가.

물론 신나는 일, 즐거운 일도 있다. 하지만 즐거움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다시 피곤한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번갈아 겪으며 차츰 늙어가고 병들고 죽음에 이른다. 삶 자체, 존재 자체가 고()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힘든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재수 없어서 그런 팔자를 타고났다며 투덜거리는 사람도, 신의 뜻이라 여기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와 같은 생각, 그와 같은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깨우치셨다.

삶이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힘든 하루하루를 애써 즐겁다 하고, 허무한 인생을 의미 있다 생각함은 스스로를 속이는 헛된 위로에 불과하다. 엄연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괴롭게 된 데에는 반드시 그럴만한 원인이 있다. 그런데 숙명이나 운수, 혹은 신을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저 막연한 생각이거나 사람들에게 박혀 있는 선입견일 뿐, 합당한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4-2 괴로운 삶의 극복

불교에서는 괴로운 현실을 자신과 세상의 참모습을 바로 보지 못한 무지와 이기적인 욕심의 결과라고 본다. 무지와 욕심을 떠나면 온갖 괴로움은 물론 죽음조차도 물리칠 수 있다. 우리 자신이 힘들고 허무한 삶을 기쁘고 보람 있게 바꾸는 열쇠이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도 현재의 우리에게 달렸다.

불교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약하기 이를 데 없고 온갖 허물과 이기적인 욕망으로 가득 차 있어도, 오만함에 빠져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몰라도,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라는 믿음을 굳게 지닌다. 모든 생명은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진 않으신다. 착하게 살 수 있기에 착하게 살라 하시고, 사랑으로 다른 생명을 바라볼 수 있기에 그리 하라 하셨다. 당신과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면 성불의 길로 굳이 힘들게 인도할 필요도 없었다. 부처님은 가르침에 나섰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회복하여 삶의 보람을 찾고, 해탈과 깨달음을 이루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그저 듣기 좋은 말,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4-3 언제나 빛나는 참다운 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은 의혹에 휩싸이셨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중생은 여래의 지혜가 있으면서도 어째서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이 의혹은 연민으로 이어져 우리 앞에 부처님이 출현하게 했다.

참으로 놀라운 소식이다. 중생인 우리에게도 부처님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말씀이 아니다. 이미 부처님과 다를 바 없는, 본래 부처님이라는 선언이다. 구름이 해를 가려 그 빛이 흐려도 해는 언제나 해이듯, 우리 또한 항상 부처님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처럼 우리의 고귀한 참모습을 일깨우시며 구름을 걷어내는 길을 알려주셨다. 그 등불이 수많은 선지식에 의해 전해졌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몫이다. 그토록 빛나는 나의 참모습을 어찌 한낱 구름으로 가릴 수 있겠는가!

 

* 읽어보면 좋을 책들

1.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엮음, 청소년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2009

2.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엮음, 조계종 신도교재 1 입문, 개정판 불교입문,

  조계종출판사, 2006

3.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엮음, 조계종 신도교재 2 교리, 불교의 이해와 신행,

  조계종출판사, 2004

4.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엮음, 조계종 신도교재 3 역사, 불교사의 이해,

  조계종출판사, 2004

5.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엮음, 조계종 신도교재 4 문화, 불교문화,

  조계종출판사, 2005

6.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부처님의 생애, 조계종출판사, 2010

7. 석지현, 윤창화, 일지 지음, <왕초보, 불교 박사 되다>, 민족사, 2008

8. 고명석 지음, 왕초보 불교 교리 박사 되다, 민족사, 2009

9.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이원섭 옮김, 불교개론, 현암사, 2001

10. 마스타니 후미오 지음/이원섭 옮김, 아함경, 현암사, 2001

11. 미산 스님 지음, 미산 스님 초기경전 강의, 명진출판, 2010

12. 正圓 김재성 지음, 초기불교 산책 1, 한언, 2010

13. 正圓 김재성 지음, 초기불교 산책 2, 한언, 2010

14. 구모이 쇼젠 지음/이필원 옮김, <붓다와의 대화, 초기불경 숫타니파타를 읽다>,

    심산, 2005

15. 법구경(담마빠다) - 여러 사람의 번역본이 있음.

    법정 스님 옮김, 진리의 말씀[법구경], 이레, 2005

    가 좋은데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혹시 중고서점에서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에서 3,000원에 구입한 것입니다.  

16. 일아 스님 역편,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민족사, 2008

17. 홍사성 엮음, 한 권으로 읽는 아함경, 불교시대사, 2009

18. 홍사성 칼럼집, 정법 천하를 기다리며, 우리출판사, 2010

19. 임승택 지음, 초기불교 94가지 주제로 풀다, 종이거울, 2013

20. 정상교 지음, 도쿄대학 불교학과 - 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동아시아, 2014

21. 김승동 편저, 콘사이스판 불교사전, 민족사, 2011

22. 소운 스님 지음, 하룻밤에 읽는 불교, 랜덤하우스중앙, 2004

23. 김미숙 지음, 붓다의 발자국 - 불교문화 이야기, 정우서적, 2007

24. 사진 백유선,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두리미디어, 2004

25. 명법 스님 지음, 미술관에 간 붓다, 나무를심는사람들, 2014

26. 김현준 지음, 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 효림, 1997

27. 목경찬 글사진,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조계종출판사, 2008

28. 각묵 스님 지음, 초기불교의 이해, 초기불전연구원, 2010

29. 히로 사치야 지음/강기희 옮김,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민족사, 1994

30. 히라가와 아키라 외 편/정승석 역, 대승불교개설, 김영사, 2005

 

 

 

 

 

 

 

 

 

 

 

 

불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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