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 (론서)

무착보살(無着菩薩), 세친보살(世親菩薩)

수선님 2022. 3. 27. 12:29

무착보살(無着菩薩), 세친보살(世親菩薩)

 

유식학파를 개창한 창단 맴버들은 미륵(彌勒, Maitreya) 무착(無着, Asanga) 세친(世親, Vasubandhu)이다. 그러나 이들중 미륵이 실존 인물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으며 대체로 실존 인물이 아닐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유식학파의 교설을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격상시키기 위해 이상적인 보살중에 한 사람인 미륵보살을 불러들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아직까지는 확실히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착과 세친은 유식학파의 체계를 공고히 다진 실존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사상과 행동은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개방된 터전에서 인생의 의미를 관조하며 해탈의 길로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내면의 빛을 안겨다 주었다. 사실 그들은 실제 보살의 계위에 올랐다고 전해질 정도이다.

 

무착과 세친, 이들은 인도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한 굽타 시대(320-530)의 인물이다. 당시는 산스크리트가 고도의 문법 체계를 갖춘 공식적인 철학 용어로 자리를 잡아가 산스크리트 문헌이 백화난만한 시기였다. 거기에 따라 사상의 자유 또한 거침없이 표현되어 인도 육파철학이 공고히 체계를 잡았으며 그 밖의 여러 가지 종교나 철학도 자신들의 사상을 산스크리트로 정리해 나갔다.

 

이에 따라 불교도 고도의 철학성을 갖추고 발전하게 된다. 중관학파는 용수 이후 여러 논사(論師)들이 출현하여 더욱더 발전을 이룩해 나간다.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무착과 세친이 태어나 자신들의 사상을 꽃피우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인도 서북부 간다라 지방의 페사와르에서 태어났다. 무착(310 - 390)은 형이고 세친(320 - 400)은 그의 아우였다. 처음 이들은 소승불교에 귀의해서 소승불교에 남다른 공로를 끼쳤으나 나중에 대승으로 전환한다.

 

 

무착이 미륵보살의 만나는 과정, 그것은 사실 보살의 삶의 전형을 이루므로 이 자리에서 소개해 볼까 한다.

 

 

무착은 소승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교리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 나머지 도솔천에 올라가 미륵보살을 뵙고 대승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래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에 바위가 패어져 구멍이 날 정도로, 부드러운 새의 깃털이 바위를 스쳐 그 바위가 편편하게 될 정도의 오랜 시간 동안 수행을 쌓고서 미륵보살을 만나고자 하지만 그것도 역부족인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무엇을 소유하려는 욕망이 가득하여 미륵이 모습을 나투시지 않은 것이다.

 

어느날, 길을 가던 무착은 다 죽어가는 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섬짓 놀라서 가까히 다가가 보니 수많은 벌레들이 우굴거리며 상처난 개에 달라붙어 있는 끔찍한 현장이 전개되고 있었다. 벌레들은 벌써 개의 사지(四肢) 일부를 먹어 악취가 진동하였고 감히 처다보는 것조차 역겨울 정도였다.

 

그 순간 무착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인 목소리, 즉 자비의 목소를 듣게 된다. 우선 죽어가는 개를 살리기 위해 벌레들을 떼어놓으려고 하는 찰라, 아차하며 행동을 멈추었다. 벌레들, 그들이 한갖 미물에 불과할 지언정 하나의 생명체 아닌가. 그들의 생명 역시 소중한 것이다.

 

그는 개와 벌래 그 두 생명들을 하나도 해치지 않고 살리기를 작정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칼을 구한다. 다음, 칼로 자신의 넓적다리를 도려내어 그 살을 먹도록 떼낸 후 개에게 달라붙은 벌레들을 혓바닥으로 핥아 그곳으로 옮겼다.

 

순간 그 먹고 먹히던 처참한 현장이 사라지고 거기서 찬란한 광명을 발하면서 미륵보살이 현신하였다. '내가 항상 그대 곁에 있었건만 네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차 나를 보지 못하더니 이제야 나를 보는 구나. 내 옷자락을 잡아라.'

 

그렇게 해서 무착은 미륵보살을 따라 도솔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대승을 가르침을 들었으며 그 가르침 대로 사유하고 수행한 결과 깨달음을 얻고 공의 도리를 체득하게 된다. 그 공의 이치에 따라 아무런 것에도 집착함이 없었으므로 무착(無着, Asanga)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그 실존성이 다소 의문시되는 미륵보살이 설했다는 미륵의 여러 저술도 사실 무착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을 정도로 유식학파에서 그의 위치는 가히 그 개조(開祖)라 할 만하다. 그의 저서로서 『섭대승론(攝大乘論)』,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등이 있다.

 

그러나 역시 유식학의 본격적인 발전은 그의 아우 세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착은 대승 보살의 길로 향하는 강한 열정과 대자비의 정신이 철철 흘러 넘치는 감성의 소유자였음에 비하여 세친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날카로운 이성의 소유자였던 모양이다.

 

불교의 모든 개념들을 세분화하여 그것을 정리해 나간 세친의 주저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은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논서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불교의 교과서로 일컬어질 정도로 불법의 세밀한 분석과 정의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을 정도이다.

 

무착은 이렇게 뛰어난 세친을 대승불교로 개종시킨다. 그 과정이 진제(眞諦)의 『세친전(世親傳)』(정식 명칭은 『婆藪槃豆傳)』에 설화의 형식을 빌어 소개되고 있다. 세친의 산스크리트 명은 바수반두(Vasubandhu). 그것을 진제는 천친(天親)이라 번역했고 훗날 현장(玄裝)은 세친(世親)이라 번역했던 것이다. 바수반두(婆藪槃豆)는 그 산스크리트 이름을 진제가 음역한 것이다.

 

 

 

 

『세친전』에서는 그가 간다라의 페샤와르에서 태어나 당시 부파불교 교학의 중심지인 캐시미르에서 그 중심 교리를 배운 뒤 인도 육파철학의 하나인 삼키야 철학을 논파하고 중인도 북쪽 아요드야(Ayodhya)에서 『구사론』을 저술하여 그 가르침을 페샤와르, 캐시미르, 아요드야 등에 널리 편 후, 형 무착의 권고로 대승으로 귀의한 얘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형 무착은 총명하고 지식의 이해도 깊은 세친이 대승을 비방하는 것을 보고 매우 심려한 나머지 병에 걸려 드러눕고 만다. 아우는 그 사실을 알고 형을 문병하여 그 자리에서 대승의 이치를 듣고, 그것이 자기가 알고 있던 소승의 교리를 능가함을 깨우치고는 대승불교로 들어선다.

 

그러나 무착은 그것만으로 부족한 모양인지 세친에게 강한 어조로 말한다. '너는 혀로 아주 교묘하고 멋지게 대승을 비난하고 공격해 왔다. 네가 만약 그 죄를 면하고 싶다면, 바로 그 혀로 아주 교모하고 멋지게 대승불교를 설해야 한다.'

 

그 결과 세친은 유식철학의 근본 교설이라 불리는 『유식이십송(唯識二十頌)』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에 대한 알기 쉬운 해설서로 장경각에서 나온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소개한다.), 『삼자성게(三自性偈)』 등을 지어 냈으며 중변분별론』 『법법성분별론』 등 많은 대승 논서에 해석을 가해 유식철학의 체계를 굳건히 다진다.

 

 

공과 유식현상론

 

무착과 세친의 사상을 엄밀히 나누어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다. 단 세친이 미륵(미륵이 실존 인물이라고 가정할 경우)이나 무착의 저술에 해설을 가하고, 그 밖에 유식 관계의 학설을 좀더 체계화한 점으로 볼 때 학문적 성과에서는 세친이 무착보다 좀더 뛰어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구사론』의 바탕에다가 그것을 공과 유식현상론의 철리로 폭을 넓였으니 그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그렇지만 무착의 주저 『섭대승론(攝大乘論)』도 가히 유식철학의 개론서라 할 정도로 유식의 주요 개념을 총 망라하고 있을 뿐더러 유식의 가르침이 얼마난 타당성 있는 도리인가를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내고 있다.

 

이들은 용수를 중심으로 하는 중관불교가 너무 공을 강조한 나머지 모든 입장을 제거하는 허무론에 치우쳐 있기에, 그 약점을 극복하고자 모든 것의 입지 기반으로서 식(識, 마음)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에 뿌리들 두고 있으며 그 마음이 변화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는 유식현상학(唯識現像學)이다. 즉 세계는 우리들 인식의 표상(vijnapti)으로서의 세계일 뿐 이라는 유식(唯識 :vijnaptimarta)을 천명한 것이다.

 

세계는 우리 마음이 그려낸 표상(表像)일 뿐이다. 외부 대상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언어나 사상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우리 마음에 영향을 주고 그 마음은 다시 심층적인 마음의 씨앗인 알라야식(Alaya vijnana)에 저장되어 있다가 다시 외부 대상으로 표상된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들은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윤회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우리의 근본 식인 알라야 식을 공으로 비울 때라만이 가능하다. 알라야식이 공으로 전환할 때 우리의 마음이 정청해져 그때 가서는 사실 자체, 사태 자체가 여실하게 보이며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의 행보를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마음을 비우게 되면 자연히 모든 욕심에서 떠나게 되고 그 결과 마음이 청정해져 사태 자체를 올바로 직시할 수 있으며 거기에 따라 어디 치우침이 없는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말로만 지껄일 수 있는 일이 겠는가. 그러한 경지에 이르러면 수행이 필요하다. 앞서 무착보살이 미륵보살을 만나는 예에서 보았듯이 이들 유식의 구도자들은 피나는 수행을 거쳐 일가를 이룬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유식학파라는 말 외에, 수행을 강조하여 유가사(瑜伽師 Yogacara), 즉 요가 수행자라 불렸던 것이다.

 

진제와 현장은 이들 무착과 세친, 그리고 이들을 따르는 유식학파의 논사들의 책을 한역하여 유식종(唯識宗)과 법상종(法相宗)의 기틀을 마련한다. 신라의 원측(圓測) 또한 유식학을 독특한 목소리로 전개하여 그의 저서 『해심밀소(解深密疏)는 티베트 대장경에 입장되어 독보적인 위치를 다진 것으로 유명하다.

 

 

 

 

 

 

 

 

 

 

 

무착보살(無着菩薩), 세친보살(世親菩薩)

유식학파를 개창한 창단 맴버들은 미륵(彌勒, Maitreya) 무착(無着, Asanga) 세친(世親, Vasubandhu)이다. 그러나 이들중 미륵이 실존 인물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으며 대체로 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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