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수선님 2022. 5. 22. 11:42

세계적인 불교의 현황 과연 어느 정도 될까? 

현대에 들어 서구불교에 대한 관심만 높아가고 있다. 1800년대 중후반에 들어 본격적으로 불교가 서구에 알려지게 되고 서구에서 처음 불교를 접하게 된 부류는 주로 목사 신부 식민지 행정관료 등이었다. 전 세계적  불교인구는 약 4억 5천만 명 이 중  미국 캐나다 1.2% 유럽 0.8% 아시아에 98% 있다. 1892년 처음 일본에 의해 미국에 불교가 알려졌다. 

 

스즈키 다이세츠<1870~1966> – 근대 일본 최대의 불교학자. 선을 근현대의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등장시킨 것뿐만 아니라 서구에 널리 알린 공적으로 유명하다. 대학생 시절 스즈키는 가마쿠라 소재 임제종 사찰인 원각사의 이마기타 코센과 그의 제자 샤쿠 소엔을 만나 참선을 배웠다. 대학 졸업 후 1897년 소엔의 추천을 받고 미국에 건너가  동양학자 폴 케라스가  운영하는 출판사 오픈 코트에서 동양학 출판편집 업무에 참여 노자도덕경과 대승기신론을 영역본 그리고 대승불교개론을 출판하여 일약 서구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21년 대곡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동방불교도협회를 창립하였으며 영문학술지 Estern Buddhist를 창간했다. 그의 명저로 알려진 Zen Buddhism and Its influence on Japanese culture, Essay in Zen Buddhism 등을 통해 선을 일본 발음인 Zen으로 서구에 정착시켰다. 그는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 등 미국과 유럽의 유수 대학에서 선에 대한 강연을 해왔으며 칼 융 하이데거 등 서구의 지성인들과 교류하고 중국의 호적과도 선 연구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중국은 선을 Chan으로 발음한다. 

 

불교도가 전체 인구에서 절반을 넘는 나라는?

라오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스리랑카 부탄 몽골. 의외로 중국과 베트남은 정치 체제로 인해 불교 인구가 적다. 앞으로 늘어날 것이다. 반면 한국은 갈 수록 줄어들고 있다. 불교학의 현대화에 앞장섰던 고 이기영 박사<1922~1996>가 공동연구 공동수련 공동참여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창립한 사단법인 한국불교연구원이 있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함께 노화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불교는 청소년 포교에 엄청난 힘을 쓰고 있다. 동남아시아 쪽 불상은 젊고 멋진 모습이다. 

 

세계 10대 불교국가 <2010년/ 2011 기준>

1위 중국. 인구의 18.2% 2억 4천만으로 전 세계 불교인구의 60% 차지. 중국 정부는 기독교는 저항의 종교로 보고 불교포교<목표 60%>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위 태국. 인구의 93% 전 세계 불교인구 중 6500만 명 차지. 태국은 남방불교의 종주국이다. 동남아시아 불교는 왕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3위 일본. 인구의 36% 전 세계 불교인구 중 4600만 명 차지. 일본 불교는 한국보다 더 폐쇄적이고 고령화 되어 있다. 

 

4위 미얀마. 인구의 80% 전 세계 불교인구 중 3800만 명 차지. 미얀마 인구의 20%는 힌두교인과 이슬람교인들이다. 19세기에 들어와 미얀마는 영국의 침입을 받아 쇠락해 갔고 1885년 영국 식민지로 전락해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되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48년 1월 4일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영국 미얀마 전쟁 1차 1824년 2차 1852년 3차 1885년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미얀마가 해방된 이후 15세기 인도북부에서 힌두교의 信愛<바크티>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이 융합된 현재 신도만 2300만 명에 이르는 세계 5대 종교 중 하나인 시크교는 태국으로 넘어가 스쿰빗을 중심으로 양복점 등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1885년 영국은 미얀마를 식민 지배하면서 수탈한 대규모 농지를 경작할 노동력으로 미얀마 근처에 있는 인도계 무슬림들을 이주시켰고 이들은 불교도인 토착민들과 문화적 종교적 갈등을 빚었다. 이런 배경 하에 1920년대 이후 토착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불교도와 무슬림 간의 종교갈등으로 번지게 되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로힝야족의 불교로의 개종을 강요하면서 토지를 몰수하고 강재노동을 시키는 폭정을 행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슬림이 들어왔을 때 불교는 살아남은 적이 없다. 

로힝야 족<Rohingya> – 미얀마의 소수민족 무슬림들로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무국적자로 차별받고 있다.  

 

5위 스리랑카.  인구의 70% 전 세계 불교인 중 1500만 명 차지. 도시지역은 이슬람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타밀족은 스리랑카 북반부에 거주하는 드라비다계 종족으로 Bc 1세기경 남부인도에서 이주해 왔다고 하는 스리랑카 타밀인들과 그후 영국식민시대에 농원 노동자로 흘러 들어온 인도 타밀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타밀 인구는 약 200만 명 정도로 스리랑카 인구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Sri-lanka= 성스러운 사자의 나라. 스리랑카 불교는 상당히 많이 힌두화되어 있다. 

 

6위 베트남. 인구의 16% 전 세계 불교인구 중 1400만 명 차지. 베트남 남부 호치민 쪽은 남방불교 북부 하노이 쪽은 북방불교 영향을 받았다. 1990년 이후 문호를 개방하면서 불교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사원 신축은 국가지원을 받고 있다. 노인 인구가 거의 없다. 캄보디아 불교는 태국불교 영향 하에 있다. 

7위 캄보디아. 인구의 97% 전 세계 불교인구 중 1300만 명 차지. 

8위 한국. 인구의 23% 전 세계 불교인구 중 1100만 명 차지. 반면 한국은 프로테스탄트 신교와 가톨릭 구교 그리고 불교가 함께 있어도 내전이 없는 나라라는 특이한 점이 있다. 

10회. 황순일 교수.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1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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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인도. 불교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인도에서 불어나고 있는 불가촉천민 찬달라<Candala>들의 불교인구를 순수불교로 볼 수 있을까? 이들은 불교인들일까 아니면 사회개혁 운동가들로 봐야 할까?

 

암베드카드와 신불교

암베드카드는 불가촉천민제의 근원은 힌두교에 있다는 이유에서 죽기 2개월 전에 수십만 대중과 함께 불교로 개종했다. 처음엔 카톨릭으로 개종하려 했으나 거부 당했다. 그의 불교는 구래의 불교와 구별해서 신불교<Neo-Buddhism>라고 불린다. 1956년 10월 15일 마하슈트라 주의 나그푸르에서 3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대대적인 개종식을 갖고 신불교 탄생을 주도했다. 당시 집단개종식에 참여했던 사람 대부분은 하층계급 출신이었다. 

Bhimraon Ramji Ambedkar <1891~1956> –  인도의 사회개혁운동가 정치인. 서부 데칸의 구 불가촉천민 카스트 출신. 봄베이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영국 유학. 1920년 경부터 볼가촉천민 철폐운동에 몸을 던져 사회개혁단체나 정당의 결성 기관지의 발행 대중시위운동위 지도 등에 종사. 


 

암베드카드의 22계

1.나는 브라만 비슈누  마하데바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2.나는 라마와 크리슈나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3.나는 가우리 가나파티 그외 힌두교의 여러 남신 여신을 인정하지 않고 예배하지 않는다 4.신은 화신으로 나타난다 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5.붓다가 비슈누의 화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전승은 오류이다. 6.나는 조령제를 행하지 않는다 7.나는 불교에 반하는 어떠한 말과 행위도 하지 않는다 8.나는 어떤 의식도 브라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9.나는 전 인류는 평등하다는 주장을 인정한다. 

10.나는 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11.나는 8정도를 준수한다 12.나는 10 파라미타를 준수한다 13.나는 일체 중생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불살생을 준수한다 14.나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 15.나는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 16.나는 삿된 음행을 범하지 않는다 17.나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18.나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인다 20.불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21.나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한다22.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신성하게 맹세한다. 

 

말레이시아의 불교

말레이 불교도 수는 10위. 말레이 총인구 3170만 명. 말레이계 종족 구성비율 말레이계 62%  중국계 22% 인도계 7% 기타 9%. 중국인 중 80% 이상이 불교인. 2010년 기준 말레이 인구의 17% 500만 불교인 수. 영어 중국어 다 잘한다. 말레이시아 수도에 1992년 공사를 시작해 1999년 8월 개관한 88층 Petronas twin tower는 2020년 선진국에 합류한다는 비전 2020 계획을 상징한 건물이j다. 불교+도교+유교=Mixed Buddhism. 

Penang은 페낭 섬 북서쪽에 위치한 섬의 주도로 조지타운을 페낭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국 식민지 시대 지어진 관사 교회와 불교사원 힌두교 사원 등이 한 곳에 자리한 동서양 문화가 같이 공존해 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중국 태국 미얀마의 건축양식을 사용하였으며 다양한 불교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극락사 길목 상점에서는 기독교 힌두교 신의 그림도 함께 판매하는 독특한 광경도 볼 수 있다. 한국불교는 세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네팔의 불교

인구 약 2천 9백만 명. 2016년 기준 힌두교 87% 불교 8% 이슬람교 4%.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 산맥 중앙부의 남쪽 반을 차지하고 있는 내륙국가. 13~16세기 중엽에 걸쳐 마츠라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나라얀 샤에 의해 1768년 12월 21일에 독립하고 이듬 해 구르카 왕조를 세웠다. 1847년 이후에야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고 2008년 5월 28일부터 공화제가 되었다. 전체 인구의 20% 불교. 네팔의 불교인구 속에는 금강승 티베트불교 남방불교 3가지로 나뉜다. 

바지라야나<Vajra-yana 금강승> – 동인도와 벵갈지역을 중심으로 융성했던 불교는 기존의 대승불교와 차별화된 교의 내용으로 보다 더 힌두교에 근접한 탄트라 불교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같이 힌두교와 습합된 탄트라 불교를 대승과 구별하여 금강승이라 한다. 

 

인도네시아의 불교

총 인구 중 5%=중국계 화교. 이슬람 86% 기독교 6% 가톨릭 3% 불교 2% 힌두교 1.8%. 

파키스탄의 불교

이슬람 96.28%<수니80% 시아20%> 기독교 1.59% 힌두 1.6% 기타 0.53%. 외교관의 30% 불교인. 

방글라데시의 불교

이슬람 88.3% 힌두교 10.5% 불교 0.6% 기독교 0.3% 기타 0.3%. 치타공은 옛날 미얀마 지역에 속해 미얀마 불교가 들어와 있음. 

라오스의 불교

불교 90% 정령신앙 기독교<포교 불허> 사회주의 표방 국가. 전세계 제일 한가한 수도 비엥짱. 루앙 프라방에 가면 탁발의식을 볼 수 있음. 

 

대승권인 한국  중국 일본도 서북인도 서역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법장부<담마굽타카>의 율장인 사분율에 의거하여 비구계를 전수해 왔다.  

남방불교는 스리랑카 마얀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 유포되어 있는 남방상좌부의 불교 팔리어 경전을 바탕으로 삼는다. 

설일체유부 →  붓다가 입멸한 후 300년 초에 상좌부에서 갈라져 나온 파로 가다연니자를 파조로 함. 설산부가 경을 중시한 반면 이 파는 논서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전개함. 

 

불교와 서구의 만남

현재 유럽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교는 언제 어떻게 세계와 만나게 됐을까? 불교를 유럽에 최초로 알린 사람은 마르코 폴로다. 그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으로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17년을 살았다. 이후 그는 이야기 작가인 루스티켈로에게 동방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필록시켜 세계 경이의 서<동방견문록>가 탄생하였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 하나인 스리파다산 정상엔 부처님 발자국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도의 불교 유적지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 → 지름 28.5m 높이 33.53m. Dharma chakra<법륜> 스투파로도 불리우는데 붓다가 5도반에게 처음 행한 설법인 초전법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35년 발굴 중 탑의 정상부에서 둥근 석판에 새겨진 법신게를 발견하였다. 이 석판은 Brahmi script로 쓰여 있으며 6~7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부처님 열반 200년 후에 세워졌다. 처음 영국인들이 인도에 갔을 때 불교는 모든 흔적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녹야원 → 초전법륜지. 18세기 홍수로 현재 유구만 남아 사슴의 왕이란 어원을 가졌다. 

11회. 황순일.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2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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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구 신흥국가들은 동인도 지역에 대한 경제적 독점권과 정치적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동인도 회사를 속속 설립하였다.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는 유럽 신흥국가들이 자행한 동방경략의 총본산이자 독점 무역회사였다. 처음 영국인들이 인도에 갔을 때 불교는 흔적조차 없었다. 영국처럼 똑같이 일본도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에 총독부를 세웠다. 1913년 일본인들은 석굴암을 보수 공사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알렉산더 커닝햄<Sir Alexander Cunningham 1814~1893> 

영국군 기술자로 벵골지역에 파견되었던 공병장교. 인도문화와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1861년 영국령 인도정부의 고고학 조사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인도의 문화유적들이 파괴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정식으로 인도고고학협회를 창립하고 인도의 고고학 유산들을 복원 정비 보존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제임스 프린셉<James Princep 1799~1840> – 영국 동인도회사의 캘커타 조폐국 근무. 1837년 아쇼카왕 비문과 석주를 최초로 해독. 

 

커닝햄은 현장스님의 대당서역기를 토대로 1873년 녹야원 Sarnath 1842년 상카샤 1851년 산치 등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며 발굴조사를 수행했고 수많은 불교유물들을 수집했다. 당시 대당서역기는 중국어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대당서역기는 현장스님의 16년간에 걸친 구법여행 동안 투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에서 견문한 것을 귀국한 이듬 해 태종의 명으로 646년 완성된 책이다. 커닝햄은 이 책을 근거로 녹야원 Sarnath 왕사성 Rajgir 사위성 Sahet-Mahet 등 많은 유적지를 발굴했다. 

 

1851년 커닝햄은 프레데릭 메이시와 함께 인도중부 산치와 주변을 발굴조사한다. 산치는 오늘날 남방불교의 기원이 되는 곳이다. 당시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3대 왕 아쇼카가 세운 세계 최초의 산치대탑은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살아 있을 때 항상 같이 다녔던 사리푸트라와 목갈라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함도 산치대탑 앞 작은 불탑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감쪽 같이 사라져 인도 최고의 고고학적 스캔들로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근처 사다하라 Satdhara 스투파에선 12명이 든 사리함 하나도 발굴되었다. 현재 인도 마디아 프라데시주<옛 보팔왕국>에 위치한 산치대탑은 모두 3기인데 그중 가장 큰 제1탑은 기단 지름이 37m 높이는 16.5m 다. 

 

불상 금화 등 많은 유물들 중 상당 부분은 1884년 인도에서 영국으로 향하던 증기선 인더스호에 실렸지만 스리랑카 파프나 앞 바다에서 모두 침몰 수장되었다. 커닝햄이 서술해 놓은 함의 생김새와 현재 사리들이 모셔져 있는 함의 생김새가 다소 일치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커닝햄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가 산치의 사리를 사다하라에서 발굴된 함 속에 옮겨 담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산치에서 발굴된 동석함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그 동안 사리들은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에 보존되어 왔었는데 1939년 마하보디협회는 사리를 인도에 다시 돌려달라고 영국정부에 요청했다. 이 청원은 즉각 받아들여졌으나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사리의 안전수송이 어려워 연기해 오다가 1947년 2월 24일 박물관에서 마하보디협회 대표들의 손에 전해져 본디 묻혀 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 사리들은 신생독립국인 인도와 미얀마 스리랑카의 독립을 상징하는 사리로 여겨진다. 영국에서 보내진 사리는 스리랑카 전역을 2년 돌고 인도의 캘커타로 보내져 전국순회 후 미얀마와 네팔로 보내진다. 

 

산치의 언덕 위 불교사원인 마하보디 소사이어티에는 아라한 사리푸타와 목갈라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그러나 진짜는 바다에 수장되어 있다>

Namo Buddhaya. Opening of this vihara. Enshrinement of sacred relics of Arahan Sariputta & Maha Mogallanna were performed by Jawaharal Nehru, Prime minister of India on Nov. 30. 1952.  

 

Anton Fuhrer<1853~1930> – 오스트리아 출신 인도학자.  ICS 정규직 직원이 아닌 part time position 직원. 1890년대 초반 ASI가 활동을 중단했을 때 영국령 인도의 North western province의 공식 고고학 조사관으로 활동. 퓨어러는 미투라에서 발견된 자이나 불상의 금문석을 위조 자신의 발굴활동을 부풀림. 영국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인도 북동부 네팔과의 국경에 있는 보드푸르 지역의 농장을 개척. 

 

윌리엄 페페의 발굴 

페페는 봉건영주 같은 역할을 한 아마추어 도굴꾼이었다. 1898년 1월 19일 피프라와 불탑 발견. 부처님의 진신사리로 추정되는 이 발굴은 영국령 인도 당시 최고의 발굴로 알려져 있다. 석관에서 열리지 않은 5개의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에는 이것은 샤키아족의 존귀하신 부처님 사리라고 아쇼카 시대의 브라미 문자로 쓰여 있고 부처님께 올린 꽃 공양으로 보이는 여러 금도 나왔다. 그러나 페페는 금은보석에 눈이 멀어 정말 소중한 사리는 잃어버렸다. 

The 5 reliquery urns from the Piprahwa stone coffer, as photographed by Dr. Fuhrer in late Feb 1898. 

 

마야데비<Maya Devi mandir> 사원 – 네팔 남부 룸비니 소재. 부처님 탄생지로 불교 4대 성지이다.  원래의 사원은 11세기에 세워졌고 현재의 사원은 1943년 재건된 것이다. 마야부인 상을 모시는 사당이다. 

 

아쇼카 석주<Pillars of Ashoka> – 인도북부 대륙에 산재해 있는 아쇼카 석주는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왕의 명령에 의해 불교의 가르침을 새겨 넣은 것이다. 석주의 기둥머리에는 4마리의 사자상 조각이 올려져 있는데 붓다에 대한 왕의 신분과 왕의 법령이 전국을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석주의 사자상 원형은 현재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자상의 기둥머리는 종 모양의 연꽃 위에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코끼리 말 황소 사자 4마리의 동물과 법륜을 의미하는 수레바퀴 4개가 조각된 원형의 판이 올려져 있으며 맨 위에는 4방향의 전 지역으로 아쇼카의 법이 미치는 것을 의미하는 4마리의 사자가 등을 맞대고 서있는 형상이다. 현재 사자상은 인도의 국가문장<National Emblem>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인도지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쇼카 석주를 최초로 발견한 이는 Khadga Shumsher Rana이다. 라나의 발견 당시 지면 윗부분에서 아쇼카 비문이 나오지 않았지만 안톤 퓨어러의 조언대로 땅속을 파들어가자 지면 아랫부분에서 비문이 발견되었다. 신들에게 사랑을 받고 백성들에게 사랑을 주는 왕 아쇼카는 왕이 되고 20년이 지난 다음 직접 여기까지 와서 절을 했는데 샤키야족의 성인인 부처님께서 바로 이곳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아쇼카 석주 Inscription 내용>

 

마야당 석상 – 부처님 태어나실 때 마야부인이 한 손을 뻗어올려 무수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모습. 새로운 생명이 위에서 내려오는 모양을 상징한다. 

12회. 황순일 교수.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3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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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와 불교의 만남

유럽과 미국은 18세기 식민지 시대에 불교를 접한다. Orientalism이란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다. 영국이 만난 최초의 불교는 스리랑카나 미얀마 같은 남방불교다. 유럽인들은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인간적인 측면에 열광했다. 유럽인들은식민지 불교인들에게 당신들의 과거는 뛰어났지만 현재는 타락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 살아있는 전통불교를 평가절하하고 개혁대상으로 매도했다.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 – 1843년생. 남방불교를 최초로 유럽에 알린 인물. 21세 인도파견 공무원이 되어 실론에 파견됨. Galle의 지방순회판사로 있으며 율장에 대한 공부함. 1868년 Bc 5세기~Ad 8세기 싱할라 왕국 수도 아누라다푸라로 고고학 조사관이 됨. 1882년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 설립. 

 

독일의 불교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정신심리 치료사라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교단에 서지 않고 주로 민간 문필가로 지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그의 대표 저서다. 당시 주체적 존재로서의 실존을 중심개념으로 하는 철학적 입장 및 그 20세기적 계승을 크게 부른 실존철학이 유행했다. 독일 황제는 불교를 허무주의 염세주의로 생각하고 금지시켰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사상적 기반을 이루는 고대 그리스의 민족시인 호메로스를 비롯해 베르그송의 자유의지 니체의 초인주의 부처님의 무소유 사상이 내포된 작가의 세계관이 잘 반영된 책이다. 독일은 철학을 통해 불교와 만나게 되었다. 

 

올덴베르그<Hermann Oldenberg> – 독일의 인도학학자 불교학자. 언어학적 문헌학적 원전비판에 입각한 연구활동을 했다. 저서에 베다의 종교 불타 등에서 역사적 존재로서의 부처님을 실증해 보였다. 부처님은 실존인물이라고 주장. 만약 부처님의 일생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부처님의 단점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13회. 황순일.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4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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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영국이 초기불교를 먼저 만났고 프랑스는 대승불교를 먼저 만났다. 베트남은 하노이 쪽은 대승불교 사이공 쪽은 남방불교가 있었던 독특한 나라다. 1923년 다비드 넬이란 프랑스 여성은 최초로 중국 윈난에서 출발해 라싸까지 3000Km를 여행하고 라싸를 방문한 후 1927년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이란 책을 내고  큰 인기를 끌었다. 

유진브르노프 – 1800년대 프랑스 최고의 불교학자 Buddhism이란 용어를 서구에 정착시킨 인물

 

일본도 1800년대 이미 불교의 세계화에 참여했다. 식민지 시대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통해서 불교를 처음 만났던 유럽과 달리 미국은 이민자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불교와 만나게 된다. 아직까지 미국 불교학의 중심에는 일본 선불교 전통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1893년 시카고에 있었던 세계종교회의를 통해서 일본은 선불교를 미국에 알렸다. 특히 영어에 능통한 일본의 불교학자이자 사학자인 스즈키 다이세츠는 인류문명이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을 서양의 합리주의에 두고 동양적인 직관 곧 선사상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샤쿠 쇼엔<Shaku soen> – 일본 린차이 계열의 선사. 세계종교회의에 참석. 1905년부터 1년간 미국을 순회하면서 선불교를 알린 인물. 

 

영국에 제대로 된 불교신자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이다. 영국불교협회는 특정한 지역이나 종파에 편향되지 않은 범불교적 성향을 가졌다. 영국불교가 다양화된 시기는 1970년대였다. 유럽인들은 기존 체제에 해답이 없음을 느끼고 아시아 종교에 눈을 돌린다. 

에드워드 콘제<Edward conze> –  1904년 독일인 영국 런던에서 출생. 반야계 경전 연구의 선구자.

14회. 황순일.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5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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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불교는 1980년대 도처에 티베트 불교사원이 생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한다. 영국에 자리잡은 티베트 불교는 4대 종파가 있다. 남방불교는 명상센터 위주로 변해 모두 탈종교화되었다. 2001년 기준 영국내 불교인구는 약 152,000명이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불교

독일과 프랑스 사회주의 시대에 불교는 허무주의 염세주의로 인식되어 용인되기 힘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어권에서 불교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럽 서부지역의 종교는 천주교가 지배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학자들만 불교를 연구했다. 

라 벨레뿌셍<Louis de la Vallee Poussin> – 벨기에 최초로 유럽에 동아시아 대승불교를 알린 불교학자

니야나 틸로카<Nyanatiloka> – 남방불교권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인 승려로 불교를 독어권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는 남방불교 동남아시아 이민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베트남 출신 스님이며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은 Plum village라는 명상공동체를 창설했다. 스님의 노력으로 불교는 계행과 명상을 동반한 진정한 종교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프랑스의 자발적 불교인구는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프랑스에서 불교의 이미지는 관용과 평화다. 젊은 프랑스인들은 주로 티베트 불교로 전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불교를 국가종교로 인정했다. 독일은 남방불교보다 일본 선불교에 더 관심이 많았다. 독어권의 불교는 특정 교리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평화 관용의 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15회. 황순일. 세계종교의 흐름과 불교의 변화 6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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