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
편저 - 한국불교대학 교재편찬회
감수 - 無一(무일) 우학스님
차 례
六祖法寶壇經 原序(육조법보단경 원서)
六祖大師法寶壇經 略序(육조대사법보단경 약서)
제1. 行由品(행유품)
제2. 般若品(반야품)
제3. 疑問品(의문품)
제4. 定慧品(정혜품)
제5. 坐禪品(좌선품)
제6. 懺悔品(참회품)
제7. 機緣品(기연품)
제8. 頓漸品(돈점품)
제9. 宣詔品(선조품)
제10. 付囑品(부촉품)
六祖法寶壇經 附錄(육조법보단경 부록)
六祖大師法寶壇經 跋(육조대사법보단경 발)
六祖大師法寶壇經 贊(육조대사법보단경 찬)
六祖大師法寶壇經 略序
육조대사법보단경 약서
편저 - 한국불교대학 교재편찬회
감수 - 無一(무일) 우학스님
門人 法海 撰
문인 법해 찬
大師 名 惠能. 父 盧氏 諱 行瑫 母 李氏.
대사 명 혜능. 부 노씨 휘 행도 모 이씨.
대사의 이름은 혜능이다.
아버지는 노씨로서 휘는 행도이고 어머니는 이씨이다.
誕師於唐貞觀十二年戊戌二月八日子時 時 毫光 騰空 異香 滿室.
탄사어당정관십이년무술이월팔일자시 시 호광 등공 이향 만실.
대사는 당나라 정관12년 무술년 2월 8일 자시에 태어나셨는데, 그때에 백호의 광명이 허공에 떠오르고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黎明 有二異僧 造謁 謂師之父曰 “夜來生兒 專爲安名 可上惠下能也”
여명 유이이승 조알 위사지부왈 “야래생아 전위안명 가상혜하능야”
새벽녘에 범상치 않은 두 스님이 찾아와서 대사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밤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가하면 위에 자는 혜로, 아래 자는 능으로 하십시오.” 하였다.
父曰 “何名惠能” 僧曰 “惠者 以法 惠施 衆生 能者 能作佛事” 言畢而出 不知所之.
부왈 “하명혜능” 승왈 “혜자 이법 혜시 중생 능자 능작불사” 언필이출 불지소지.
아버지가“어찌하여 혜능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이 말씀하기를 “<혜>라는 것은 법으로써 중생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고, <능>이라하는 것은 부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말을 마치고 나갔는데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師不飮乳 遇夜 神人 灌以甘露.
사불음유 우야 신인 관이감로.
대사가 젖을 먹지 않았는데 밤이 되면 신인이 와서 감로를 먹여 주었다.
旣長 年 二十有四 聞經悟道 往黃梅 求印可
기장 년 이십유사 문경오도 왕황매 구인가
자라나서 나이가 스물넷이 되었을 때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아 황매로 가서 인가를 구하였더니,
五祖 器之 付衣法 令嗣祖位 時 龍朔元年辛酉歲也.
오조 기지 부의법 영사조위 시 용삭원년신유세야.
오조가 법기로 여기시어 가사와 법을 전하시며 조사의 자리를 잇게 하시니, 때는 용삭 원년 신유년(당 고종 12년) 이었다.
南歸隱遯 一十六年 至儀鳳元年丙子正月八日 會印宗法師 宗 悟契師旨
남귀은둔 일십육년 지의봉원년병자정월팔일 회인종법사 종 오계사지
남으로 되돌아가 은둔하신지 16년이 되는 의봉 원년 병자년 정월 8일에 인종법사와 만났는데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깨달아 모든 면에서 뜻이 서로 잘 맞으므로
是月十五日 普會四衆 爲師薙髮 二月八日 集諸名德 授具足戒.
시월십오일 보회사중 우사체발 이월팔일 집제명덕 수구족계.
이달 15일에 사부 대중을 널리 모아서 대사의 머리를 깎고 2월 8일에 여러 이름 있는 대덕스님들을 모아서 구족계를 주시었다.
西京智光律師 爲授戒師 蘇州慧靜律師 爲羯磨 形州通應律師 爲敎授
서경지광율사 위수계사 소주혜정율사 위갈마 형주통응율사 위교수
서경의 지광율사는 수계사가 되고 소주의 혜정율사는 갈마사가 되고 형주의 통응율사는 교수사가 되고
中天耆多羅律師 爲說戒 西國密多三藏 爲證戒.
중천기다라율사 위설계 서국밀다삼장 위증계.
중천축의 기다라율사는 설계사가 되고 서국의 밀다삼장은 증계사(證戒師)가 되었다.
具戒檀 乃宋朝求那跋陀羅三藏 創建立碑曰後當有肉身菩薩 於此受戒
기계단 내송조구나발타라삼장 창건입비왈후당유육신보살 어차수계
그 계단은 송나라 때의 구나발다라 삼장이 처음 세우실 때 비를 세우며 이르시길 「후일에 육신보살이 여기에서 계를 받을 것이다.」 하였으며
又梁天監元年 智藥三藏 自西竺國 航海而來 將彼土菩提樹一株 植此檀畔
우양천감원년 지약삼장 자서축국 항해이래 장피토보리수일주 식차단반
또 양나라 천감 원년(서기502년)에 지약삼장이 서축국(서인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그 땅에서 가져온 보리수 한 그루를 이 단가에 심으시며
亦預誌曰後一百七十年 有肉身菩薩 於此樹下 開演上乘 度無量重 眞傳佛心印之法主也
역예지왈후일백칠십년 유육신보살 어차수하 개연상승 도무량중 진전불심인지법주야
미리 예언하기를「170년 뒤에 육신보살이 이 나무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열고 연설하여 한량없는 대중을 제도할 것인데 참으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법의 주인이시다.」하시더니
師 至是 祝髮受戒 及與四衆 開示單傳之法旨 一與昔讖.
사 지시 축발수계 급여사중 개시단전지법지 일여석참.
대사가 이곳에 이르러서 비로소 머리를 깎고 계를 받으며 또 사부대중과 더불어 단전(깨달음은 언어나 문자로 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밖에 전할 수 없다는 뜻)의 법지를 열어 보이시니 한 결 같이 예전에 예언하신 바와 꼭 같았다.
次年春 師 辭衆 歸寶林 印宗 與緇白 送者 千餘人.
차년춘 사 사중 귀보림 인종 여치백 송자 천여인.
다음해 봄에 대사가 대중을 하직하고 보림사로 돌아가시니 인종화상이 재가자 및 출가자 천여명과 함께 전송하였다.
直至曺溪 時 荊州通應律師 與學者數百人 依師而住.
직지조계 시 형주통응율사 여학자수백인 의사이주.
바로 조계산으로 가셨는데 그 때 형주의 통응율사가 학인 수백 명과 함께 대사를 의지하여 머물렀다.
師 至曺溪寶林 覩堂宇湫隘 不足容衆 欲廣之 遂謁里人陳亞仙曰 老僧 欲就檀越 求坐具地 得不
사 지조계보림 도당우초애 부족용중 욕광지 수알리인진아선왈 노승 욕취단월 구좌구지 득불
대사가 조계산의 보림사에 이르러 보니 당우가 너무 좁아서 대중을 수용하기엔 부족함을 보시고는 넓히시려고, 마을 사람인 진아선을 찾아가 만나 말씀하시길 “노승이 단월에게 이르러 좌구 깔 땅을 구하고자 하는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시니
仙 曰和尙坐具 幾許闊 祖出坐具 示之 亞仙 唯然 祖以坐具 一展 盡조曺溪四境 四天王 現身 坐鎭四方.
선 왈화상좌구 기허활 조출좌구 시지 아선 유연 조이좌구 일전 진조조계사경 사천왕 현신 좌진사방.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좌구가 얼마나 넓습니까?” 하므로 조사가 좌구(앉거나 누울 때 까는 방석)를 내어 보이시자 진아선이 허락하므로 조사가 좌구를 한번 펴니 조계의 사방경계를 다 덮었는데 사천왕이 몸을 나타내어 사방에 앉아 눌렀다.
今寺境 有天王嶺 因玆而名.
금사경 유천왕령 인자이명.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천왕령은 이때의 일로 붙여진 이름이다.
仙 曰知和尙 法力 廣大 但吾高祖 墳墓 竝在此地 他日造塔 幸望存留 餘願盡捨 永爲寶坊.
선 왈지화상 법력 광대 단오고조 분묘 병재차지 타일조탑 행망존류 여원진사 영위보방.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법력이 크고 넓으신 것을 알겠습니다마는 저의 고조의 분묘가 이 땅에 있으니 후일 사찰을 지으시더라도 그대로 남겨두실 것을 바라며 나머지는 원 대로 모두 드리니 영원히 절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然 此地 乃生龍白象來脈 只可平天 不可平地. 寺後營建 一依其言.
연 차지 내생룡백상래맥 지가평천 불가평지. 사후영건 일의기언.
그러나 이 땅은 생룡(살아있는 용)과 백상(흰 코끼리)이 뻗어 내린 맥이므로, 높고 낮은 데로 지을지언정 땅을 깎아 평평하게 하여 짓지는 마십시오.” 하였기에 뒤에 절을 지을 때 한 결 같이 그 말대로 하였다.
師遊境內 山水勝處 輒憩止 遂成蘭若 一十三所 今曰花果院 隷籍寺門.
사유경내 산수승처 첩게지 수성난야 일십삼소 금왈화과원 예적사문.
대사가 경내를 다니시다가 산수가 뛰어난 곳에 번번이 머물러 쉬시다가 13개의 난야(수행처소)를 세우셨는데 오늘날 화과원이라는 이름으로 절 문에 써 놓은 곳이다.
玆菩林道場 亦先是西國智藥三藏 自南海 經曺溪口 菊水而飮 香美異之 謂其徒曰此水 與西天之水 無別
자보림도장 역선시서국지약삼장 자남해 경조계구 국수이음 향미이지 위기도왈차수 여서천지수 무별
이 보림도량은 역시 이보다 앞서 서국(인도)의 지약삼장이 남해로부터 와서 조계의 어귀를 지날 때에, 물을 한 모금 움켜 마시고 향기로운 맛을 이상히 여기어 그 제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길 「이 물이 서천의 물과 다르지 않으니
溪源上 必有勝地 堪爲蘭若, 隨流至源上 四顧 山水 回環 峯巒 寄秀 歎曰宛如西天寶林山也
계원상 필유승지 감위난야, 수류지원상 사고 산수 회환 봉만 기수 탄왈완여서천보림산야
시냇물 저 위에는 반드시 뛰어난 땅이 있을 것이고 도량을 세울만할 것이니라.」하시며, 흐르는 물을 따라가 그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과 물이 감아 돌고 산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므로 감탄을 하며 말씀하시길 「완연히 서천의 보림과 같구나.」하시며
乃謂曺侯村居民曰可於此山 建一梵刹 一百七十年後 當有無上法寶 於此演化 得道者 如林 宜號寶林.
내위조후촌거민왈가어차산 건일범찰 일백칠십년후 당유무상법보 어차연화 득도자 여림 의호보림.
조후촌의 사람들에게 「이 산에 절을 하나 지으십시오. 170년 뒤에 마땅히 위없는 법을 이곳에서 연설하고 교화하여 도를 얻는 자가 수풀과 같을 것이니 응당 보림이라 이름 하시오.」 하셨다.
時 韶州牧侯敬中 以其言 具表聞秦 上 可其請 賜寶林爲額 遂成梵宮 落成於梁天監三年.
시 소주목후경중 이기언 구표문진 상 가기청 사보림위액 수성범궁 낙성어양천감삼년.
그때 소주 목사인 후경준이 그 말씀을 표로 갖추어 왕에게 상주하니 임금이 그 청을 옳게 여겨서 <보림>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시어 절을 지었는데 양나라천감삼년(서기503년)에 낙성을 하였다.
寺殿前 有潭一所, 龍 常出沒其間 觸뇨林木 一日 現形甚巨, 波浪 洶涌 雲霧 陰翳 徒衆 皆懼
사전전 유담일소, 용 상출몰기간 촉뇨림목 일일 현형심거, 파랑 흉용 운무 음예 도중 개구
절의 전각 앞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용이 항상 그 속에서 출몰하여 숲의 나무를 흔들어 꺾어 놓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아주 큰 형상으로 나타났기에, 물결이 솟아오르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어 대중들이 모두 두려워하므로
師 叱之曰爾只能現大身 不能現小身 若爲神龍 當能變化 以小現大 以大現小也
사 질지왈이지능현대신 불능현소신 약위신용 당능변화 이소현대 이대현소야
대사가 꾸짖으시며, “네가 큰 몸으로만 나타날 수 있지 작은 몸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모양이구나. 만약 신령스런 용이라면 마땅히 변화하여 작은 몸을 크게 나타내고 큰 몸을 작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니라.” 하시니
其龍 忽沒 俄頃 復現小身 躍出潭面 師展鉢試之曰 爾且不敢入老僧鉢盂裏 龍乃游揚至前
기용 홀몰 아경 복현소신 약출담면 사전발시지왈 이차불감입노승발우리 용내유양지전
그 용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조금 있으니 다시 작은 몸으로 나타나 못 위에 뛰어 나오므로, 대사가 발우를 펴 보이시면서 “네가 감히 노승의 발우 속에는 들지 못할 것이다.” 하시니 용이 나르다시피 헤엄쳐 앞에 이르므로
師以鉢 舀之 龍 不能動 師 持鉢上堂 與龍說法 龍 遂蛻骨而去.
사이발 요지 용 불능동 사 지발상당 여룡설법 용 수태골이거.
대사가 발우에 담으시니 용이 움직이지 못하였다. 대사가 발우를 법당에 가지고 가서 용을 위하여 설법을 하시니 용이 마침내 뼈를 벗고 사라졌다.
其骨長 可七寸 首尾角足 皆具 留傳寺門 師 後 以土石 堙其潭 今殿前左側 有鐵塔鎭處 是也.
기골장 가칠촌 수미각족 개구 유전사문 사 후 이토석 인기담 금전전좌측 유철탑진처 시야.
그 뼈의 길이가 칠촌이나 되고 머리와 꼬리와 뿔과 발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 절에 전해져 오고 있다. 대사가 후에 흙과 돌로 그 못을 메우셨는데 지금의 전각 앞 좌측에 철탑으로 누른 곳이 바로 그 곳이다.
六祖大師法寶壇經 原序
육조대사법보단경 원서
古筠比丘 德異 撰
고균비구 덕이 찬
妙道虛玄 不可思議 忘言得旨 端可悟明.
묘도허현 불가사의 망언득지 단가오명.
묘한 도는 비어 그윽하여, 생각으로는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니 말을 버리고 뜻을 얻어야 근본적으로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으리라.
故 世尊 分座於多子搭前 拈花於靈山會上 似火與火 以心印心.
고 세존 분좌어다자탑전 염화어영산회상 사화여화 이심인심.
그러므로 세존이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나누시고 영산회상에서 꽃을 잡으신 것이다. 불로써 불을 줌과 같아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인가하는 것이다.
西傳四七 至菩提達摩 東來此土 直指人心 見性成佛.
서전사칠 지보리달마 동래차토 직지인심 견성성불.
서역에서 28번을 전하여 보리달마에 이르자 동으로 이 땅에 오시어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다.
有可大師者 首於言下 悟入 末上三拜得髓 受依紹祖 開闡正宗
유가대사자 수어언하 오입 말상삼배득수 수의소조 개천정종
혜가대사가 처음으로 말씀 아래에 깨닫고 마지막에 삼배하여 그 진수를 얻었으며 가사를 받아 조사의 대를 이었으며, 바른 법의 종지를 열어 밝히셨고,
三傳而至黃梅會中 高僧七百 惟負舂居士 一偈傳依 爲六代祖.
삼전이지황매회중 고승칠백 유부용거사 일게전의 위육대조.
세 번 전하여 황매회중에 이르러서는 고승 칠백이 있었지만 오직 부용거사가 한 게송으로 가사를 전해 받고 육대 조사가 되었다.
南遯十與年 一旦 以‘非風幡動’之機 觸開印宗正眼
남돈십여년 일단 이‘비풍번동’지기 촉개인종정안
남으로 피신한지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바람과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라는 기연으로 광주 법성사의 주지였던 인종의 바른 눈을 열어주셨다.
居士 由是 祝髮登壇 應跋陀羅懸記 開東山法門
거사 유시 축발등단 응발타라현기 개동산법문
이로 말미암아 거사는 머리를 깎고 법단에 올라 발타라 삼장이 미리 예언하신 바대로 동산법문을 여시니
韋使君 命海禪者 錄其語 目之曰法寶壇經.
위사군 명해선자 록기어 목지왈법보단경.
위 사군이 법해선자로 하여금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고 그 이름을 법보단경이라 하였다.
大師 始於五羊 終至曹溪 設法三十七年 霑甘露味 入聖超凡者 莫記其數,
대사 시어오양 종지조계 설법삼십칠년 점감로미 입성초범자 막기기수,
대사가 광주의 오양에서 시작하여 소주의 조계에 이르기까지 설법하신 지 삼십 칠 년 동안 감로의 맛에 젖어 범부를 뛰어나 성인이 된 자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고,
悟佛心宗 行解相應 爲大知識者 名載傳燈 惟南嶽 靑原 執侍最久 盡得無巴鼻.
오불심종 행해상응 위대지식자 명재전등 유남악 청원 집시최구 진득무파비.
부처님의 마음 바탕을 깨달아서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가 되어 큰 선지식이 된 자의 이름이 전등록에 실려 있는데, 오직 남악과 청원이 가장 오래 모시었고 무소득의 도리를 남김없이 얻었다.
故 出馬祖石頭 機智圓明 玄風大振,
고 출마조석두 기지원명 현풍대진,
그리하여 마조와 석두를 배출하였는데 기틀과 지혜가 뚜렷이 밝아서 현풍(현묘한 종풍)을 크게 떨쳤으며,
乃有臨濟 潙仰 曹洞 雲門 法眼諸公 巍緣而出 道德 歷群 門庭 險峻 啓迪英靈衲子 奪志衝關 一門深入.
내유임제 위앙 조동 운문 법안제공 외연이출 도덕 역군 문정 험준 계적영령납자 탈지충관 일문심입.
이에 임제와 위앙과 조동과 운문과 법안같이 높은 이들이 드높게 출현하셨는데 도덕이 뛰어나고 문호가 험준하여 영특하고 신령한 납자(누더기를 입은 스님)들을 가르쳐 인도하니 뜻을 크게 일으켜 조사관문을 뚫고 한 문에 깊이 들었다.
五派同源 歷遍爐錘 規模 廣大 原其五家網要 盡出壇經.
오파동원 역편로추 규모 광대 원기오가강요 진출단경.
다섯 문 파의 근원이 같은지라 두루 겪으며 다듬고 수도하는 규모가 크고 넓지만 그 다섯 문 파의 중요한 요점을 근원적으로 찾아보면 모두 다 육조단경에서 나온 것이다.
夫壇經者 言簡義豊 理明事備 具足諸佛無量法門 一一法門 具足無量妙義
부단경자 언간의풍 이명사비 구족제불무량법문 일일법문 구족무량묘의
무릇 단경은 말은 간략하지만 뜻이 풍부하며 이치가 명백하고 사(事)가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법문을 모두 갖추었고 하나하나의 법문에 한량없이 묘한 뜻을 두루 갖추었으며,
一一妙義 發揮諸佛無量妙理 卽彌勒樓閣中 卽普賢毛孔中.
일일묘의 발휘제불무량묘리 즉미륵누각중 즉보현모공중.
하나하나의 묘한 뜻에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훌륭하게 나타내시니 이는 곧 미륵부처님의 누각이고 보현보살의 털구멍이다.
善入者 卽同善財 於一念間 圓滿功德 與普賢等 如諸佛等.
선입자 즉동선재 어일념간 원만공덕 여보현등 여제불등.
잘 들어가는 자는 선재동자와 같이 일념 사이에 공덕을 원만히 하여 보현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과 같으리라.
惜乎. 壇經 爲後人 節略 太多 不見六祖 大全之旨.
석호. 단경 위후인 절략 태다 불견육조 대전지지.
애석하도다. 단경을 훗날 사람들이 너무 많이 줄여서 육조의 크고 온전한 뜻을 보지 못하는구나.
德異幼年 嘗見古本 自後遍求 三十餘載 近得通上人 尋到全文 遂侃於吳中休休禪庵 與諸勝士 同一受用
덕이유년 상견고본 자후편구 삼십여재 근득통상인 심도전문 수간어오중휴휴선암 여제승사 동일수용
내가 어린 시절에 일찍이 고본을 본 뒤로 30여년을 두루 구했는데 근래에 통스님이 그 전문을 찾아왔기에 드디어 오중(吳中)의 휴휴선암에서 발간하여 모든 승사(계를 잘 지키는 이의 존칭)와 함께 수용하게 되었으니
惟願開巷擧目 直入大願覺海 續佛祖慧命無窮 斯余志願 滿矣.
유원개권거목 직입대원각해 속불조혜명무궁 사여지원 만의.
오직 원컨대 책을 열어 한번 보면 바로 대원각해(사람의 본성을 바다에 비유하는 것)에 들어서 불조의 혜명(심인)을 이어 다함이 없기를 바라며 이것을 나의 원과 뜻이 만족하는 것으로 삼겠다.
至元二十七年康寅歲仲春日 敍
지원이십칠년강인세중춘일 서
지원 27년 경인년 중춘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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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祖法寶壇經 육조법보단경
편저 - 한국불교대학 교재편찬회
감수 - 無一(무일) 우학스님
門人 法海 集
문인 법해 집
第一 行由品
제일 행유품
時 大師 至寶林 韶州韋刺史 與官僚 入山 請師出於城中大梵寺講堂 爲衆開緣 說摩訶般若波羅密法
시 대사 지보림 소주위자사 여관료 입산 청사출어성중대범사강당 위중개연 설마하반야파라밀법
그때에 대사께서 보림에 이르시자 소주의 위 자사가 관료들과 함께 산에 들어와서 대사께 대범사의 강당에서 대중을 위하여 인연을 열어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주시기를 청하므로
師 升座次 勅使官僚三十餘人 儒宗學士 三十餘人 僧尼道俗一千餘人 同時作禮 願聞法要
사 승좌차 칙사관료삼십여인 유종학사 삼십여인 승니도속일천여인 동시작례 원문법요
대사가 자리에 오르시니 자사와 관료30여명과 유교의 선비 30여명과 비구와 비구니와 도를 닦는 이와 속인 등 천 여명이 다 같이 절을 하고 법문 듣기를 원하므로
大師 告衆曰.善知識 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 善知識 且廳惠能 行由 得法事意.
대사 고중왈.선지식 보리자성 본래청정 단용차심 직료성불 선지식 차청혜능 행유 득법사의.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보리의 자성이 본래 맑고 깨끗하니 다만 이 마음만 쓰면 바로 성불 할 것이니라. 선지식아! 또 나의 행적과 법을 얻은 내용을 들어보아라.
能 嚴父 本貫 范陽, 左降 流于嶺南 作新州百姓. 此身 不幸 父又早亡 老母孤遺, 後來南海 艱辛貧乏
능 엄부 본관 범양, 좌강 유우영남 작신주백성. 차신 불행 부우조망 노모고유, 후래남해 간신빈핍
나의 선친은 본관이 범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으로 내려가 신주의 백성이 되셨다. 이 몸이 불행하여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와 외롭게 남았는데, 뒤에 남해로 와서 가난한 살림에 쪼들리어 고생을 하며
於市 賣柴, 時 有一客 買柴 使令送至客店 客 收去 能 得錢 却出門外 見一客 誦經. 能 一聞經
어시 매시, 시 유일객 매시 사령송지객점 객 수거 능 득전 각출문외 견일객 송경. 능 일문경
시장에서 나무를 팔다가, 어느 날 한 손님이 나무를 사서 객점으로 갖다 달라 하시므로 손님에게 갖다 드리고 돈을 받아서 문밖으로 나오다가 어떤 손님이 경 외우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경을 잠깐 들으니
云<應無所住而生其心> 心卽開悟 遂問 客誦何經. 客 曰金剛經. 復問 從何所來 持此經典.
운<응무소주이생기심> 심즉개오 수문 객송하경. 객 왈금강경. 복문 종하소래 지차경전.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하므로 마음이 곧 열리고 깨쳐서 「손님께서 무슨 경을 외우고 계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손님이 「금강경입니다」하시므로, 다시 「어느 곳에서 오셨는데 이 경전을 지니고 계십니까?」 하였더니
客云我從蘄州黃梅懸東禪寺客來. 其寺 是五祖忍大師 在彼主化 門人 一千有餘. 我到彼中 禮拜 聽受此經.
객운아종기주황매현동선사객래. 기사 시오조인대사 재피주화 문인 일천유여. 아도피중 예배 청수차경.
손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기주의 황매현 동선사에서 왔습니다. 그 절에는 오대조인 홍인 대사가 계시면서 교화를 하시는데 문인이 천여 명이나 됩니다. 저도 그 곳에 가서 예배하고 이 경을 듣고 받아 왔습니다.
大師 常勸僧俗 ‘但持金剛經 卽自見性 直了成佛’ 能 聞說 宿昔有緣 乃蒙一客 取銀十兩 與能
대사 상권승속 ‘단지금강경 즉자견성 직료성불’ 능 문설 숙석유연 내몽일객 취은십양 여능
대사께서는 항상 스님들과 속인들에게 권하시기를, ‘다만 금강경만 받아 지니면 스스로 견성하여 바로 성불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런 말을 들었는데 숙세에 인연이 있었는지 그 손님이 은 열 냥을 나에게 주시면서
令充老母衣糧 敎便往黃梅 禮拜五祖 能 安置母畢 卽便辭親 不經三十餘日 便至黃梅. 禮拜五祖
영충노모의량 교편왕황매 예배오조 능 안치모필 즉편사친 불경삼십여일 변지황매. 예배오조
노모의 옷과 양식을 마련해 놓고 바로 황매에 가서 오조에게 예배하라 하시므로 나는 어머니를 편안히 모셔놓고 하직하여 30여일이 못되어 황매에 다다랐느니라. 오조께 예배하니
問曰汝何方人 欲求何物. 能 對曰弟子 是嶺南新州百姓 遠來禮師 惟求作佛 不求餘物. 祖言
문왈여하방인 욕구하물. 능 대왈제자 시령남신주백성 원래예사 유구작불 불구여물. 조언
나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어느 지방 사람이며 무슨 물건을 구하고자 하는고?」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의 신주에 있는 백성인데 멀리 와서 스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오직 부처님 되기를 구할 뿐 나머지 물건을 구하지 않습니다.」하였더니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汝是嶺南人 又是獦獠 若爲堪作佛.
여시영남인 우시갈료 약위감작불.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영남 사람이라면 곧 오랑케인데 어떻게 부처님이 될 수 있단 말이냐?」 하시므로
能 曰人 雖有南北 佛性本無南北 獦獠身與和尙 不同 佛性 有何差別.
능 왈인 수유남북 불성본무남북 갈요신여화상 부동 불성 유하차별.
내가 말씀드리기를 「사람에게는 비록 남북이 있습니다만, 불성에는 본래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케의 몸이 화상과는 같지 않습니다만 불성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하였더니
五祖 更欲與語 且見徒衆 總在左右 乃令隨衆作務. 惠能曰 啓和尙 弟子自心 常生智慧 不離自性
오조 갱욕여어 차견도중 총재좌우 내령수중작무. 혜능왈 계화상 제자자심 상생지혜 불리자성
오조께서 다시 말씀을 하시려다가 대중들이 좌우에 모여 있음을 보시고 이내 「대중을 따라가서 일이나 하라.」 하시므로 내가 말씀드리기를 「혜능이 화상께 여쭙겠습니다. 제자는 자기의 마음이 항상 지혜를 내어서 자성을 여의지 않는 것이
卽是福田 未審和尙 敎作何務. 祖 云這獦獠 根性 大利 汝更勿言 著槽廠去. 能 退至後院
즉시복전 미심화상 교작하무. 조 운저갈료 근성 대리 여갱물언 착조창거. 능 퇴지후원
곧 복전이라고 아는데, 화상께서는 무슨 일을 하라 하시는지 알지를 못하겠습니다.」하였더니 오조가 말씀하시기를 「이 오랑캐가 근성이 너무 날카롭구나. 너는 여러 말 하지 말고 방앗간에나 가 있거라.」하시었다. 내가 물러 나와 후원에 이르니
有一行者 差能 破柴踏碓, 經八月餘 祖 一日 忽見能曰吾 思汝之見 可用 恐有堊人 害汝 遂不與汝言
유일행자 차능 파시답대, 경팔월여 조 일일 홀견능왈오 사여지견 가용 공유악인 해여 수불여여언
한 행자가 나에게 나무를 쪼개고 방아를 찧게 하였는데, 8개월 정도가 지나서 어느 날 오조가 나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견해가 쓸 만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거친 사람들이 너를 해칠까 두려워서 결국은 너와 함께 말하지 못하였는데
汝知之否. 能 曰弟子 亦知師意 不敢行至堂前 令人不覺. 祖 一日 喚諸門人 總來 吾向汝說.
여지지부. 능 왈제자 역지사의 불감행지당전 영인불각. 조 일일 환제문인 총래 오향여설.
알고 있었느냐?」 하시므로 「제자도 역시 대사님의 뜻을 알았으므로 감히 당 앞에 나가지 않았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오조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 모으시고 「내가 너희들에게 설하리라.
世人 生死事大 汝等 終日只求福田 不求出離生死苦海 自性 若迷 福何可救.
세인 생사사대 여등 종일지구복전 불구출리생사고해 자성 약미 복하가구.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큰데 너희들은 날마다 온종일 복전만 구하고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는 일은 구하지 않는구나. 자성이 만일 미혹하다면 복으로 어찌 구원할 수 있겠느냐.
汝等 各去 自看智慧 取自本心般若之性 各作一偈 來吾呈看.
여등 각거 자간지혜 취자본심반야지성 각작일게 내오정간.
너희들은 각자 가서 스스로 지혜를 살펴보고 자기의 본심인 반야의 성품을 취하여서 각자 게송을 하나씩 지어서 나에게 갖고 와 바쳐 보이어라.
若悟大意 付汝衣法 爲弟六代祖 火急速去 不得遲滯.
약오대의 부여의법 위제육대조 화급속거 부득지체.
만일 대의를 깨달았으면 너희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여 제 육대조로 삼으리니 어서 빨리 돌아가되 지체하지 말아라. 생각으로 헤아린다면 맞지 않을 것이니라.
思量 卽不中用. 見性之人 言下 須見.
사량 즉불중용. 견성지인 언하 수견.
견성한 사람은 말 아래에 모름지기 볼 수 있을 것이다.
若如此者 輪刀上陣 亦得見之.
약여차자 윤도상진 역득견지.
만일 이와 같은 사람은 칼을 휘두르는 전쟁터에서 나가더라도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셨느니라.
衆得處分 退而체相謂曰我等衆人 不須澄心 用意作偈 將呈和尙 有何所益.
중득처분 퇴이체상위왈아등중인 불수징심 용의작게 장정화상 유하소익.
대중들이 분부를 받고 물러나와 수군거리며 서로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생각을 다하여 게송을 지어 화상에게 바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神秀上座 現爲敎授師 必是他得 我輩 曼作偈頌 枉用心力. 餘人 聞語 總皆息心 咸言
신수상좌 현위교수사 필시타득 아배 만작게송 왕용심력. 여인 문어 총개식심 함언
신수상좌가 현재 교수사이시니 반드시 이분이 그것을 얻을 것인데 우리가 부질없이 게송을 짓는 것은 마음만 헛되이 수고할 뿐이다」 하므로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다 마음을 놓으면 말하기를
我等 已後 依止秀師 何煩作偈. 神秀 思惟 諸人 不呈偈者 爲我與他 爲敎授師 我須作偈 將呈和尙.
아등 이후 의지수사 하번작게. 신수 사유 제인 불정게자 위아여타 위교수사 아수작게 장정화상.
「우리들은 이후에 신수에게 의지할 것인데 어찌 번거롭게 게송을 지으리오.」라 하였다. 신수가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게송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저희들의 교수사가 된 때문이니 내가 모름지기 게송을 지어서 화상에게 바쳐야겠다.
若不呈偈 和尙 如何知我心中 見解深淺. 我呈偈意 求法卽善 覓祖卽堊 却同凡心 奪其聖位 奚別.
약불정게 화상 여하지아심중 견해심천. 아정게의 구법즉선 멱조즉악 각동범심 탈기성위 해별.
만일 게송을 바치지 아니하면 화상이 어떻게 내 마음속의 견해가 깊은지 옅은지를 아시겠는가? 내가 게송을 바치려는 뜻은 법을 구하는 것이며 좋은 일이나 조사의 자리를 찾는데 있다면 나쁜 일이며 도리어 범부의 마음과 같아서 그 성인의 자리를 빼앗음과 어찌 다르겠느냐.
若不呈偈 終不得法 大難大難.
약불정게 종불득법 대난대난.
만일 게송을 바치지 아니하면 결국은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니 크게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구나’ 하였다.
五祖堂前 有步廊三間 擬請供奉盧珍 畵楞伽經變相 及五祖血脈圖 流傳供養.
오조당전 유보랑삼간 의청공봉노진 화릉가경변상 급오조혈맥도 유전공양.
오조의 당 앞에는 복도가 세 칸 있었는데, 공봉(재주와 기예가 있는 사람에게 준 벼슬 이름)인 노진을 청하여 능가경의 변상도와 오조의 혈맥도를 그려서 전하여 내려가며 공양하게 하도록 하려는 중이었다.
神秀 作偈成已 數度欲呈 行至堂前 心中恍惚 遍身汗流 擬呈不得 前後經四日 一十三度 呈偈不得.
신수 작게성이 수도욕정 행지당전 심중황홀 변신한유 의정불득 전후경사일 일십삼도 정게불득.
신수가 게송을 바치려고 여러 번 당 앞에까지 갔었는데 마음이 황홀하고 온 몸에 땀이 흐르는지라 바치려는 생각을 못 내어 전후 4일 동안 열 세 번이나 게송을 바치지 못하였다.
秀乃思惟 不如向廊下書着 從他和尙 看見 忽若道好 卽出禮拜 云是秀作.
수내사유 불여향랑하서착 종타화상 간견 홀약도호 즉출예배 운시수작.
신수가 이에 생각하기를 ‘복도 아래에다 적어두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화상이 다니시다가 보시고, 만일 좋다고 말씀하시면 곧 나아가 예배하며, 이 신수가 지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若道不堪 枉向山中 數年 受人禮拜 更須何道 是夜三更 不使人知 自執燈 書偈於南廊壁間 呈心所見.
약도불감 왕향산중 수년 수인예배 갱수하도 시야삼경 불사인지 자집등 서게어남랑벽간 정심소견.
만일 마땅치 못하다고 말씀하시면 헛되이 산중에 들어와서 여러 해 동안 다른 사람의 예배만 받은 것이니 다시 무슨 도를 닦겠다고 하겠느냐’ 하며 이날 밤 삼경에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직접 등을 잡고 남쪽 복도의 벽 사이에 게송을 써서 마음의 소견을 바쳤다.
偈 曰,
게 왈,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시시근불식, 물사야진애.
게송에 이르기를,
몸은 곧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은지라.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가 들어붙지 않도록 할지어다. 하였다.
秀 書偈了 便却歸房 人總不知, 秀復思惟
수 서게료 편각귀방 인총부지, 수복사유
신수가 게송을 다 쓰고 곧 방에 돌아왔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알지 못하였는데, 신수가 다시 생각하기를
五祖 明日 見偈歡喜 卽我與法有緣 若言不堪 自是我迷 宿業障重 不合得法 聖意難測.
오조 명일 견게환희 즉아여법유연 약언불감 자시아미 숙업장중 불합득법 성의난측.
‘오조가 밝은 날 게송을 보시고 기뻐하시면 법과 내가 인연이 있는 것이지만 만일 잘 되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 나 자신이 미혹한 것이며 숙세의 업장이 두꺼워 법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성인의 뜻은 헤아리기가 어렵구나.’하며
房中思想 坐臥不安 直至五更 祖 已知神秀 入門未得 不見自性.
방중사상 좌와불안 직지오갱 조 이지신수 입문미득 불견자성.
방안에서 이런 생각으로 앉았다 누웠다하며 불안해하였는데 바로 오경이 되었고, 조사께서는 신수가 자성을 보지 못하여 문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음을 이미 아시고 계셨다.
天明 祖 喚盧供奉來 向南廊壁間 繪畵圖相 忽見其偈, 報言供奉 却不用畵 勞爾遠來.
천명 조 환노공봉래 향남랑벽간 회화도상 홀견기게, 보언공봉 각불용화 노이원래.
날이 밝자 오조께서 노 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의 벽에 그림을 그리게 하시려다가 홀연히 그 게송을 보고 공봉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될 것이네. 그대가 멀리 오느라 수고만 하시었네.
經 云凡所有相 皆是虛妄 但留此偈 與人誦持 依此偈修 免墮堊道 依此偈修 有大利益.
경 운범소유상 개시허망 단류차게 여인송지 의차게수 면타악도 의차게수 유대이익.
경에 이르시기를 ‘무릇 모양 있는 바는 모두 다 허망하다.’ 하였으니 이 게만 두어서 사람들에게 외우고 지니게 하겠네.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악도에 떨어짐을 면하고,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일세.」하시고는
令門人 炷香禮敬, 盡誦此偈 卽得見性 門人 誦偈 皆歎善哉. 祖 三更 喚秀入堂 問曰偈是汝作否.
영문인 주향예경, 진송차게 즉득견성 문인 송게 개탄선재. 조 삼경 환수입당 문왈게시여작부.
문인으로 하여금 향을 사르게 하고 예경하게 하시며, 「이 게송을 다 외우면 곧 견성하게 되느니라.」하시니 문인들이 이 게송을 외우며 모두 다 훌륭하다고 찬탄하였느니라. 오조께서 삼경에 신수를 방으로 들어오게 하여 「게송을 네가 지었느냐?」 라고 물으시니
秀言實是秀作 不敢妄求祖位. 望和尙 慈悲 看. 弟子 有少智慧否, 祖 曰.汝作此偈 未見本性. 只到門外
수언실시수작 불감망구조위. 망화상 자비 간. 제자 유소지혜부, 조 왈.여작차게 미견본성. 지도문외
신수가 말하기를 「실로 제가 지었으나 감히 망령스럽게 조사의 지위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로 살펴주십시오. 제자에게 조금마한 지혜라도 있습니까?」하므로, 오조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은 이 게송은 본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다만 문 밖에 이르렀을 뿐
未入門內. 如此見解 覓無上菩提 了不可得. 無上菩提 須得言下 識自本心 見自本性 不生不滅
미입문내. 여차견해 멱무상보리 요불가득. 무상보리 수득언하 식자본심 견자본성 불생불멸
문 안에는 들지 못한 것이니라. 이와 같은 견해로는 위없는 보리를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니라. 위없는 보리는 모름지기 말 아래에 자기의 본심을 알고 자기의 본성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임을 알아서
於一切時中 念念自見萬法無滯 一眞 一切眞 萬境 自如如. 如如之心 卽是眞實 若如是見
어일체시중 염념자견만법무체 일진 일체진 만경 자여여. 여여지심 즉시진실 약여시견
어느 때라도 만법이 막힘이 없으므로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어 만 가지 경계가 스스로 여여(성품에 어긋남이 없고 영원불변한 진실의 모습)한 것임을 생각 생각에 끊임없이 보아야 한다. 여여한 마음이 곧 진실이니 만일 이와 같이 본다면
卽是無上菩提之自性也. 汝且去 一兩日思惟 更作一偈 將來吾看. 汝偈 若入得門 付汝衣法.
즉시무상보리지자성야. 여차거 일양일사유 갱작일게 장래오간. 여게 약입득문 부여의법.
이것이 곧 위없는 보리의 자성이니라. 너는 가서 하루 이틀 더 생각하여보고 게송을 다시 지어서 나에게 가져와 보여라. 너의 게가 만일 문에 들어 왔으면 너에게 가사와 법을 맡기겠노라.」
神秀 作禮而出 又經數日 作偈不成 心中 恍惚 神思不安 猶如夢中 幸坐不樂.
신수 작례이출 우경수일 작게불성 심중 황홀 신사불안 유여몽중 행좌불락.
신수가 예를 갖추고 물러나와 며칠을 보냈지만 게송을 짓지 못해 마음이 혼란하고 정신과 생각이 불안하여 마치 꿈속과 같았으며 앉거나 움직이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였다.
復兩日 有一童子 於碓坊過 唱誦其偈 能 一聞 便知此偈 未見本性. 雖未蒙敎授 早識大意
부양일 유일동자 어대방과 창송기게 능 일문 변지차게 미견본성. 수미몽교수 조식대의
다시 이틀이 지난 뒤에 어떤 동자가 방앗간을 지나면서 그 게송을 소리 내어 외우기에 내가 한번 들어보니 이 게는 본성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가르침은 받지 못하였으나 일찍이 큰 뜻을 알았기에
遂問童子曰誦者, 何偈 童子 言 爾這獦獠 不知. 大師 言 世人 生死事大 欲得傳付衣法 令門人
수문동자왈송자, 하게 동자 언 이저갈료 부지. 대사 언 세인 생사사대 욕득전부의법 영문인
동자에게 묻기를, 「외우는 것이 무슨 게송입니까?」 하였더니 동자승이 말하기를 「너 이 오랑캐야 그것도 모르느냐.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부탁하여 전하려 한다.’ 하시며 문인들로 하여금
作偈來看. 若悟大意 卽付衣法 爲第六祖. 神秀上座 於南廊壁上 書無相偈 大師 令人, 皆誦此偈.
작게래간. 약오대의 즉부의법 위제육조. 신수상좌 어남랑벽상 서무상게 대사 영인 개송차게.
‘게송을 지어 와서 보여라. 만일 큰 뜻을 깨달았다면 곧 가사와 법을 맡기고 제 육조를 삼으리라.’ 하셨기에 신수상좌가 남쪽 복도의 벽 위에 무상게송을 쓰셨는데 대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다 이 게송을 외워라.
依此偈修 免墮堊道 依此偈修有大利益, 惠能曰 上人 我此踏碓 八箇餘月 未曾行到堂前 望上人
의차게수 면타악도 의차게수유대이익, 혜능왈 상인 아차답대 팔개여월 미증행도당전 망상인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스님, 내가 이 방아를 밟은 지가 8개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당 앞에 가 보지 못하였으니 스님께서
引至偈前 禮拜. 童子 引至偈前 作禮, 能 曰能 不識字 請上人 爲讀. 時 有江州別駕 姓 張 名 一用
인지게전 예배. 동자 인지게전 작례, 능 왈능 불식자 청상인 위독. 시 유강주별가 성 장 명 일용
게송 앞으로 인도해서 예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하였더니 동자가 게송 앞에 이르러서 예배하게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능은 문자를 알지 못하니 청컨대 스님께서 읽어주십시오.」하였다. 그때에 강주의 별가(자사의 다음벼슬)가 성은 장이요, 이름은 일용이라 하는 이가
便高聲讀 惠能 聞已 遂言, 亦有一偈 望別駕 爲書. 別駕 言 獦獠汝亦作偈 其事 希有. 能 啓別駕言
편고성독 혜능 문이 수언, 역유일게 망별가 위서. 별가 언 갈료여역작게 기사 희유. 능 계별가언
문득 큰소리로 읽기에 내가 듣고서 말하기를,「내게도 게(偈)가 하나 있으니 별가께서 써 주시기 바랍니다.」하였더니 별가가 말하기를 「오랑캐야, 너도 게송을 짓겠다 하니 그 일이 희유하구나.」하므로, 내가 별가에게 말하기를
欲學無上菩提 不得輕於初學 下下人 有上上智 上上人 有沒意智 若輕人 卽有無量無邊罪.
욕학무상보리 부득경어초학 하하인 유상상지 상상인 유몰의지 약경인 즉유무량무변죄.
「위없는 보리를 배우고자 하는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낮고 낮은 사람이라도 높고 높은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높고 높은 사람이라도 생각과 지혜가 없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을 가볍게 여기면 곧 한량없고 가없는 죄가 될 것입니다.」
別駕 言 汝但誦偈 吾爲汝書 汝若得法 先須度吾 勿忘此言. 能 偈曰
별가 언 여단송게 오위여서 여약득법 선수도오 물망차언. 능 게왈
별가가 말하기를 「너는 다만 게송을 외워라 내가 너를 위하여 써 주리라. 네가 만약 법을 얻으면 나부터 꼭 제도하여 주어라. 이 말을 잊지 말아라.」 하므로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菩提 本無樹, 明鏡 亦非臺.
보리 본무수, 명경 역비대.
本來無一物, 何處 惹塵埃!
본래무일물, 하처 야진애!
보리수 본래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님이라.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 앉고 때가 끼겠는가!
書此偈已 徒衆 總驚 無不嗟訝 各相謂言, 奇哉 不得以貌 取人 何得多時 使他肉身菩薩
서차게이 도중 총가 무불차아 각상위언, 기재 부득이모 취인 하득다시 사타육신보살
이 게송을 써 놓으니 대중이 다 놀라며 감탄하거나 의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서로에게 말하기를, 「기특하다. 사람은 모양만으로는 알 수가 없구나. 어찌하여 오랫동안 저 육신보살을 부렸던가.」
祖 見衆人 驚怪 恐人損害 遂將鞋 擦了偈云 亦未見性 衆人疑息.
조 견중인 가괴 공인손해 수장혜 찰요게운 역미견성 중인의식.
조사께서는 대중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김을 보시고 사람들이 해칠까 두려워하시어 마침내 신발로 게송을 문질러버리며 말씀하시기를 「역시 성품을 보지 못하였다.」 하시니 대중들이 그런 줄 알았다.
次日 祖 潛至碓坊 見能 腰石舂米, 語曰求道之人 爲法忘軀 當如是乎 卽問曰米熟也未
차일 조 잠지대방 견능 요석용미, 어왈구도지인 위법망구 당여시호 즉문왈미숙야미
다음날 조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오셔서 내가 돌을 허리에 달고 쌀을 찧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도를 구하는 사람은 법을 위하여 몸을 잊어야 하는 것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하시며 「쌀을 얼마나 찧었느냐?」하시기에
能 曰未熟 久矣 猶欠篩在, 祖 以杖 擊碓三下而去 能 卽會祖意 三鼓 入室 祖以袈裟 遮圍
능 왈미숙 구의 유흠사재, 조 이장 격대삼하이거 능 즉회조의 삼고 입실 조이가사 차위
「쌀을 찧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체로 치지를 못 했습니다.」하였더니, 조사가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치시고 나가시므로 곧 조사의 뜻을 알아 치리고 삼경에 방으로 들어가 뵈오니 조사께서 가사로 주위를 막아
不令人見 爲說金剛經 至應無所住而生其心 能 言下 大悟一切萬法 不離自性 遂啓祖言.
불령인견 위설금강경 지응무소주이생기심 능 언하 대오일체만법 불리자성 수계조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고 금강경을 설하여 주셨는데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하는 구절에 이르러 그 말씀 아래 일체 만법이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크게 깨닫고서 조사께 말씀드렸다.
何期自性 本自淸淨 何期自性 本不生滅 何期自性 本自具足 何期自性 本無動搖 何期自性 能生萬法
하기자성 본자청정 하기자성 본불생멸 하기자성 본자구족 하기자성 본무동요 하기자성 능생만법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기약(때를 정하여 약속함)했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나고 멸하지 않음을 기약했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기약했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흔들림이 없음을 기약했으며 어찌 자성이 능히 만법을 내는 줄 기약했겠습니까?」
祖 知悟本性謂惠能曰, 不識本心 學法無益. 若識自本心 見自本性 卽名丈夫天人師佛. 三更 受法
조 지오본성위혜능왈, 불식본심 학법무익. 약식자본심 견자본성 즉명장부천인사불. 삼경 수법
조사께서 내가 본성을 깨달은 것을 아시고 이르시기를, 「본심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 무슨 이익이 있으랴. 스스로 본심을 알고 본성을 보면 곧 장부, 천인사, 불이니라」하셨다. 삼경에 법을 받았으므로
人盡不知. 便傳頓敎 及衣鉢云, 汝爲第六代祖 善自護念 廣度有情 流布將來 無令斷絶. 聽吾偈 曰
인진부지. 변전돈교 급의발운, 여위제육대조 선자호념 광도유정 유포장래 무령단절. 청오게 왈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돈교(말 아래에 대번에 깨치는 것)와 가사와 발우를 전하시면서, 「네가 이제 제 육대조가 되었으니 스스로 잘 보호하고 지켜서 널리 유정(有情)을 제도하고 장래에 유포하여 단절되지 않게끔 하여라.」하시며 게송을 하셨다.
有情 來下種, 因地 果還生.
유정 래하종, 인지 과환생.
無情 旣無種, 無性亦無生.
무정 기무종, 무성역무생
유정이 와 종자를 내리니, 인지(因地)에서 결과가 다시 나도다.
무정은 이미 종자가 없는지라. 성품도 없고 태어남도 없도다.
祖 復曰昔 達摩大師 初來此土 人未之信 故傳此衣 以爲信體 代代相承 法卽以心傳心 皆令自悟自害.
조 부왈석 달마대사 초래차토 인미지신 고전차의 이위신체 대대상승 법즉이심전심 개령자오자해.
조사가 다시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달마대사가 처음 이 땅에 오시니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이 가사를 전하며 믿음의 바탕으로 삼아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것인데 법은 곧 마음으로 마음을 전해서 누구나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다.
自故 佛佛 惟傳本體 師師 密付本心. 衣爲爭端 止汝勿傳. 若傳此衣 命如懸絲. 汝須速去 恐人害汝.
자고 불불 유전본체 사사 밀부본심. 의위쟁단 지여물전. 약전차의 명여현사. 여수속거 공인해여.
예로부터 부처님과 부처님이 오직 본체를 전하시고 조사와 조사가 은밀히 본심을 부탁하신 것이다.
가사는 다툼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니 너에게서 그치고 전하지 말아라. 만일 이 가사를 전하면 목숨이 실에 달린 것과 같으리라. 너는 속히 떠나거라. 사람들이 너를 해칠까 두렵구나.」하시므로,
能 曰向甚處去 祖 云逢懷卽止 遇會卽獎. 惠能 三更 領得衣鉢云 能 本是南中人 久不知此山路.
능 왈향심처거 조 운봉회즉지 우회즉장. 혜능 삼경 영득의발운 능 본시남중인 구불지차산로.
내가 「어느 곳으로 가면 좋겠습니까?」하였더니 「회(懷)를 만나면 머물고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하셨다. 내가 삼경에 의발을 받아들고 「저는 본래 남쪽 사람이라서 이 산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如何出得江口. 五祖 言 汝不須憂 吾自送汝. 祖 相送 直至九江驛邊 有一隻船子 祖令惠能 上船
여하출득강구. 오조 언 여불수우 오자송여. 조 상송 직지구강역변 유일척선자 조령혜능 상선
어떻게 하여야 강가에 까지 갈 수 있습니까?」하였더니,「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기 직접 너를 보내어 주겠노라.」하셨다. 조사가 배웅하시기 위해 구강나루에 이르시니, 배가 한 척 있으므로 조사께서 나를 배에 오르게 하시고
五祖 把艣自搖 惠能 言 請和尙 坐 弟子 合搖艣. 五祖 云 合是吾渡汝
오조 파로자요 혜능 언 청화상 좌 제자 합요로. 오조 운 합시오도여
직접 노를 잡고 저으시기에 내가 「청컨대 화상께서는 앉으십시오. 제자가 노를 젓겠습니다.」 하였더니 「내가 너를 건네어 주겠노라.」하시므로
能 云 迷時 師度, 悟了 自度. 度名 雖一 用處 不同. 惠能 生在邊方 語音 不正 蒙師傳法 今已得悟
능 운 미시 사도, 오료 자도. 도명 수일 용처 부동. 혜능 생재변방 어음 부정 몽사전법 금이득오
「제가 미혹 했을 때에는 스님께서 건네 주셨지만, 깨닫고 나서는 스스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합니다. 건넌다는 이름은 비록 하나이나 쓰는 곳은 같지 않습니다. 혜능이 변방에서 태어나 말조차 바르지 못하였는데 스님의 법을 받아 이제 깨달음을 얻었사오니
只合自性自度. 祖 云如是如是. 以後 佛法 由汝大行. 汝去三年 吾方逝世 汝今好去.
지합자성자도. 조 운여시여시. 이후 불법 유여대행. 여거삼년 오방서세 여금호거.
다만 자성으로 스스로 건너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압니다.」 하였더니 조사가「옳고도 옳도다. 이후에 불법이 너를 말미암아 크게 번성하겠구나. 네가 가고 삼년이 지나면 내가 바야흐로 세상을 버리리니 너는 이제 잘 가거라.
努力向南 不宜俗說 佛法難起. 能 辭違祖己 發足南行 兩月中間 至大庾嶺, 逐後數百人 來 欲奪衣鉢.
노력향남 불의속설 불법난기. 능 사위조기 발족남행 양월중간 지대유령, 축후수백인 래 욕탈의발.
남으로 향하여 가되 마땅히 설하려고 서두르지 말아라. 불법의 난이 일어나느니라.」하셨다.
내가 조사와 하직하고 남쪽으로 걸어 두 달 반쯤이 지나 대유령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 수백 명이 의발을 빼앗으려고 쫓아왔다.
一僧 俗姓 陳 名 惠明 先是四品將軍 性行 麤慥 極意參尋 爲衆人先 趁及於能惠能
일승 속성 진 명 혜명 선시사품장군 성행 추조 극의참심 위중인선 진급어능혜능
그 가운데 혜명이라는 스님이 속성이 진씨이었는데 본래는 장군이라서 성질과 행동이 거칠고 사나웠다. 온갖 힘을 다하여 찾으며 대중들의 맨 앞에서 나를 쫓아 왔으므로
能 擲下衣鉢於石上云 此衣 表信 可力爭耶 能 隱草莽中. 惠明 至 提惙不動 乃喚云行者行者 我爲法來
능 척하의발어석상운 차의 표신 가력쟁야 능 은초망중. 혜명 지 제철부동 내환운행자행자 아위법래
나는 바위 위에 올려놓고「이 가사는 믿음의 표시인데 힘으로 다툴 수 있겠느냐?」하고는 풀 속에 숨어 있었다. 혜명이 이르러서 잡아 당겼으나 움직이지 않자 큰 소리로 「행자여, 행자여, 나는 법을 위하여 온 것이지
不爲衣來. 能 遂出 坐盤石上, 惠明 作禮云 望行者 爲我說法. 能 云 汝旣爲法而來 可屛息諸緣
불위의래. 능 수출 좌반석상, 혜명 작례운 망행자 위아설법. 능 운 여기위법이래 가병식제연
가사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하므로 내가 나와서 반석 위에 앉으니, 혜명이 절을 하고 「바라건대 행자는 나를 위하여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하였다. 해서 내가 말하기를 "그대는 이미 법을 위해 왔으므로 가히 모든 인연을 막아 쉬어서
勿生一念 吾爲汝說. 良久 謂明曰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 是明上座 本來面目, 惠明 言下 大悟
물생일념 오위여설. 양구 위명왈불사선 불사악. 정여마시 나개 시명상좌 본래면목, 혜명 언하 대오
한 생각도 내지 마십시오.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겠습니다.」하고는 조금 있다가 혜명에게「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마십시오. 바로 이러할 때에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 면목입니까?」 하였더니, 혜명이 그 말 아래에 크게 깨닫고
復問云 上來密圄密意外 還更有密意否, 能 云與汝說者 卽非密也 汝若返照 密在汝邊. 明 曰
부문운 상래밀어밀의외 환갱유밀의부, 능 운여여설자 즉비밀야 여약반조 밀재여변. 명 왈
다시 묻기를 「처음의 조사 이래로 내려오는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이 외에 또다시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하므로, 내가 「그대에게 설한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대가 만일 돌이켜 비추면 비밀이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하였더니 혜명이 말하기를
惠明 雖在黃梅 實未省自己面目 今蒙指示 如人 飮水 冷暖 自知. 今行者 卽惠明 師也. 能 曰汝若如是
혜명 수재황매 실미성자기면목 금몽지시 여인 음수 냉난 자지. 금행자 즉혜명 사야. 능 왈여약여시
「혜명이 비록 황매에 있었으나 실로 자기의 면목을 살피지 못 하였는데 이제 가르침을 받았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 부아야 차가운지 더운지를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행자께서는 혜명의 스승이십니다.」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대가 만일 이와 같다면
吾與汝 同師黃梅 善自護持. 明 又問 惠明 今後 向甚處去, 能 曰逢袁卽止 遇蒙卽居. 明 禮辭.
오여여 동사황매 선자호지. 명 우문 혜명 금후 향심처거, 능 왈봉원즉지 우몽즉거. 명 예사.
나와 그대는 함께 황매를 스승으로 삼은 바이니 깨달음 그 마음을 놓치지 말고 보호하여 지녀야 하느니라.」하였다. 혜명이 또 묻기를 「혜명은 이제 어느 곳으로 가야 되겠습니까?」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원(袁)을 만나면 머무르고 몽(蒙)을 만나면 그 곳에 서 살아라.」하였더니 혜명이 절하고 하직하였느니라.
能 後至曹溪 又被惡人 尋逐 乃於四會縣 避難 獵人隊中 凡經一十五載. 時與獵人 隨宜說法 獵人
능 후지조계 우피악인 심축 내어사회현 피난 엽인대중 범경일십오재. 시여엽인 수의설법 엽인
내가 뒤에 조계에 이르렀으나 또 나쁜 사람들에게 쫓기는 바가 되어서 사회현으로 피난하여 사냥을 하는 사람들 틈에 무릇 15년을 지냈다. 때로는 사냥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함을 따라 법을 설하였는데 사냥하는 사람들은
常令守網 每見生命 盡妨之 每至飯時 以菜 寄煮肉鍋 或 問卽代曰但契肉邊菜. 一日 思惟 時當弘法
상령수망 매견생명 진방지 매지반시 이채 기자육과 혹 문즉대왈단계육변채. 일일 사유 시당홍법
항상 그물을 지키게 하였으므로 살아 있는 놈만 보면 다 놓아주었으며 언제나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채소를 고기 삶는 냄비위에 얹어서 익혀먹었는데 혹 누가 물으면 「고기 곁의 채소만 먹는다.」고 대답하였다. 하루는 생각하기를 마땅히 법을 펼 때가 되었으니
不可終遯 遂出至廣州法性寺 値印宗法師 講涅槃經. 時 有風吹幡動 一僧 云風動 一僧 云幡動 議論不己
불가종둔 수출지광주법성사 치인종법사 강열반경. 시 유풍취번동 일승 운풍동 일승 운번동 의논불기
더 이상 숨어 있는 것은 옳지가 않겠다 싶어 산에서 나와 광주의 법성사에 이르렀는데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니 한 스님이 말하기를 ‘바람이 움직인다.’ 하시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시며 의논을 그치지 않으므로
能 進曰不是風動 不是幡動 仁者 心動. 一衆 駭然 印宗 延至上席 微詰奧義 見能 言簡理當 不由文字
능 진왈불시풍동 불시번동 인자 심동. 일중 해연 인종 연지상석 미힐오의 견능 언간이당 불유문자
내가 나아가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하였더니 모여 있던 대중들이 놀랐으며 인종이 상석으로 맞아 들여 깊은 뜻을 추궁하여 물었는데 나의 말이 간략하고 이치가 합당하며 문자에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보고
宗 云行者 定非常人 久聞黃梅衣法 南來 莫是行者否. 能 曰不敢. 宗 於是 執弟子禮 告請傳來衣鉢
종 운행자 정비상인 구문황매의법 남래 막시행자부. 능 왈불감. 종 어시 집제자례 고청전래의발
인종이 말하기를 「행자는 보통사람이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오래전에 듣기를 황매의 가사와 법이 남쪽으로 왔다 하던데 행자님이 아니십니까?」하기에 내가 「부끄럽습니다.」하였더니 인종이 제자의 예를 갖추며 전해져 내려오는 의발을
出示大衆 宗 復問曰黃梅付囑 如何指授. 能 曰指授卽無. 唯論見性 不論禪定解脫.
출시대중 종 부문왈황매부촉 여하지수. 능 왈지수즉무. 유론견성 불론선정해탈.
대중에게 내어 보이기를 청하고는 다시 묻기를 「황매께서 부촉하시면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습니까?」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가르쳐 주신 것은 없습니다. 오직 견성만을 의논하였을 뿐 선정과 해탈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하였더니
宗 曰何不論禪定解脫, 謂曰爲是二法 不是佛法, 佛法 是不二之法, 宗 又問如何是佛法不二之法,
종 왈하불론선정해탈, 위왈위시이법 불시불법, 불법 시불이지법, 종 우문여하시불법불이지법,
인종이 「어찌하여 선정과 해탈을 의논하시지 않았습니까?」하므로,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법이 되어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은 두 가지 법이 아닙니다.」 하였다. 인종이 다시 묻기를「어떤 것이 불법의 둘이 아닌 도리입니까?」하므로,
能 曰法師 講涅槃經 明見佛性 是佛法不二之法. 如涅槃經 高貴德王菩薩 白佛言 ‘犯四重禁 作五逆罪
능 왈법사 강열반경 명견불성 시불법불이지법. 여열반경 고귀덕왕보살 백불언 ‘범사중금 작오역죄
내가 말하기를 법사께서 열반경을 강의하시여 밝게 불성을 보는 것이 불법의 둘 아닌 도리입니다. 열반경에서 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사중금계(살생, 투도, 사음, 망어)를 범한 자와 오역죄를 지은 자와
及一闡提等 當斷善根佛性否’ 佛言 ‘善根 有二 一者 常 二者 無常 佛性 非常非無常 是故 不斷
급일천제등 당단선근불성부’ 불언 ‘선근 유이 일자 상 이자 무상 불성 비상비무상 시고 부단
일천제(선근이 아주 끊어진 자)들은 마땅히 선근과 불성을 끊은 것이 옵니까?’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선근에는 둘이 있는데 하나는 상(常)이요, 둘은 무상(無常)인데 불성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끊어지지 않는 것을
名爲不二 一者 善 二者 不善 佛性 非善非不善 是名不二’ 蘊之與界 凡夫 見二 智者 了達其性 無二
명위불이 일자 선 이자 불선 불성 비선비불선 시명불이’ 온지여계 범부 견이 지자 요달기성 무이
이름 하여 둘이 아니다 하시며 하나는 선한 것이고 둘은 선하지 않는 것인데 불성은 선한 것도 아니고 선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이름 하여 둘이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오온과 십팔계(육근, 육경, 육식)를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닌 줄을 꿰뚫어 아나니
無二之性 卽是佛性. 印宗 聞說 歡喜合掌言 某甲 講經 猶如瓦礫 仁者 論義 猶如眞金.
무이지성 즉시불성. 인종 문설 환희합장언 모갑 강경 유여와력 인자 논의 유여진금.
둘 없는 성품이 곧 불성입니다. 라고 하였다. 인종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 합장하며 말하기를 「제가 경을 강의 하는 것은 오히려 깨진 기와조각과 같은데 인자께서 논의 하시는 것은 마치 순금과 같습니다.」 하였느니라.
於是 爲能雉髮 願事爲師 能 遂於菩提樹下 開東山法門.
어시 위능치발 원사위사 능 수어보리수하 개동산법문.
이에 나의 머리를 깎아 주고 스승으로 섬기기를 원하였으므로 내가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동산법문을 열게 된 것이니라.
能 於東山 得法 辛苦受盡 命似懸絲 今日 得與使君官僚 僧尼道俗 同此一會 莫非累劫之緣.
능 어동산 득법 신고수진 명이현사 금일 득여사군관료 승니도속 동차일회 막비루겁지연.
내가 동산에서 법을 얻고 나서 갖은 고생을 모두 받아 목숨이 마치 실낱과 같았는데 오늘날 위사군과 관료들과 비구와 비구니와 도를 닦는 사람과 세속의 사람들과 더불어 이와 같은 모임을 함께 하게 되었으니 누 겁의 인연이 아닐 수 없구나.
亦是過去生中 供養諸佛 同種善根 方始得聞如上頓敎得法之因. 敎是先聖 所傳 不是惠能自智.
역시과거생중 공양제불 동종선근 방시득문여상돈교득법지인. 교시선성 소전 부시혜능자지.
또한 과거 생 가운데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같은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비로소 이와 같은 돈교와 법 얻은 인연을 듣게 된 것이니라. 가르침은 옛 성현들께서 전하신 것이지 나의 지혜가 아니다.
願聞先聖敎者 各令淨心 聞了 各自除疑 如先代聖人無別. 一衆 聞法 歡喜作禮而退.
원문선성교자 각령정심 문료 각자제의 여선대성인무별. 일중 문법 환희작례이퇴.
옛 성현의 가르침을 듣고 싶은 사람은 각자 마음을 깨끗이 하고 듣고 나서는 각자가 궁금함을 없애어 옛 성인과 다름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대중이 법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절하고 물러갔다
第二 般若品
제이 반야품
次日 韋使君 請益 師陞座 告大衆曰.
차일 위사군 청익 사승좌 고대중왈.
다음날 위사군이 다시 청하므로 대사께서 자리에 오르셔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總淨心 念摩訶般若波羅密多. 復云
총정심 염마하반야바라밀다. 부운
“모두 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생각하여라.” 하시며 대사가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善知識, 菩提般若之智 本自有之 只緣心迷 不能自悟 須假大善知識 示導見性.
선지식, 보리반야지지 본자유지 지연심미 불능자오 수가대선지식 시도견성.
“선지식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서 자성을 보게 되느니라.
當知. 愚人智人 佛性 本無差別 只緣迷悟不同. 所以 有愚有智.
당지. 우인지인 불성 본무차별 지연미오부동. 소이 유우유지.
마땅히 알아라.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 있는 사람이나 불성은 차별이 없는데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느니라.
吾今爲說摩訶般若波羅密法 使汝等 各得智慧 志心諸聽. 吾爲汝說.
오금위설마하반야바라밀법 사여등 각득지혜 지심제청. 오위여설.
이 때문에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는 것이니라. 내가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너희로 하여금 각각 지혜를 얻게 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 설하리라.
善知識, 世人 終日口念般若 不識自性般若 猶如說食不飽 口但說空 萬劫 不得見性 終無有益.
선지식, 세인 종일구념반야 불식자성반야 유여설식불포 구단설공 만겁 부득견성 종무유익.
선지식아, 세상 사람들이 온종일 입으로는 반야를 말하지만 자성의 반야를 알지 못하니 마치 밥 먹는 것을 이야기로만 하면 배는 부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善知識, 摩訶般若波羅密 是梵語 此言 大智慧到彼岸. 此須心行 不在口念.
선지식, 마하반야바라밀 시범어 차언 대지혜도피안. 차수심행 부재구념.
선지식아, <마하반야바라밀>은 범어인데 여기 말로는 큰 지혜로 피안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이는 모름지기 마음으로 행할 것이지 입으로 외우는데 있지 않느니라.
口念心不行 如幼如化 如露如電 口念心行 則心口相應. 本性 是佛 離性無別佛.
구념심불행 여유여화 여로여전 구념심행 즉심구상응. 본성 시불 이성무별불.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환(幻)과 같고 화(化)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라.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할 것이다. 본성이 곧 부처이므로 성품을 떠나서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何名摩訶 摩訶, 是大 心量 廣大.
하명마하 마하, 시대 심량 광대.
어떤 것을 <마하>라 하는가 하면, 마하는 곧 크다는 뜻이다.
猶如虛空 無有邊畔 亦無方圓大小 亦非靑黃赤白 亦無上下長短
유여허공 무유변반 역무방원대소 역비청황적백 역무상하장단
亦無瞋無喜 無是無非 無善無惡 無有頭尾.
역무진무희 무시무비 무선무악 무유두미.
마음의 양은 크고 넓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끝이나 가가 없으며 모나거나 둥글거나 크거나 작지 않으며, 또 푸르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희지도 않으며, 위와 아래와 길거나 짧은 것이 없으며 또한 성낼 것도 기쁠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으며, 머리나 꼬리가 있는 것도 아님이라.
諸佛刹土 盡同虛空 世人 妙性 本空 無有一法可得 自性眞空 亦復如是.
제불찰토 진동허공 세인 묘성 본공 무유일법가득 자성진공 역부여시.
모든 부처님의 국토는 다 허공과 같음이니 세상 사람들이 묘한 성품은 본래 공(空 ) 하여서 한 가지도 얻을 게 없으니 자성의 진공(眞空)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 莫聞吾說空 便卽着空 第一莫着空. 若空心靜坐 卽着無記空.
선지식, 막문오설공 변즉착공 제일막착공. 약공심정좌 즉착무기공.
선지식아, 내가 설한 <공>을 듣고 공에 집착해서는 안되니 제일 먼저 공에 걸리지 말아라.
만일 마음을 비우고 앉아 있기만 하면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느니라.
善知識, 世界虛空 能含萬物色像 日月星宿 山河大地 泉源溪澗 草木叢林 惡人善人 惡法善法 天堂地獄
선지식, 세계허공 능함만물색상 일월성숙 산하대지 천원계간 초목총림 악인선인 악법선법 천당지옥
一切大海 須彌諸山 總在空中. 世人性空 亦復如是.
일체대해 수미제산 총재공중. 세인성공 역부여시.
선지식아, 세계의 허공이 삼라만상을 다 가질 수 있어서 해와 달과 별과 산과 강과 대지와 샘과 개울과 풀과 나무와 숲과 악인과 선인과 악법과 선법과 천당과 지옥과 일체의 큰 바다와 수미산을 비롯한 모든 산들이 모두 다 이 허공중에 있다.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공>한 것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 自性 能含萬法 是大. 萬法 在諸人性中 若見一切人 惡之與善 盡皆不取不捨 亦不染着
선지식, 자성 능함만법 시대. 만법 재제인성중 약견일체인 악지여선 진개불취불사 역불염착
心如虛空 名之爲大 故 曰摩訶.
심여허공 명지위대 고 왈마하.
선지식아, 자성은 능히 만법을 머금을 수 있으므로 큰 것이다. 만법이 모든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만일 모든 사람들의 악과 선을 보더라도 모두 다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하여 마음이 허공과 같음을 이름 하여 크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하>라 하느니라.
善知識, 迷人 口說 智者 心行.
선지식, 미인 구설 지자 심행.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만 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又有迷人 空心靜坐 百無所思 自稱爲大 此一輩人 不可與語 爲邪見故.
우유미인 공심정좌 백무소사 자칭위대 차일배인 불가여어 위사견고.
또 어떤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서 백가지 생각을 없앤 것으로 스스로를 크다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과는 함께 말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삿된 소견이 있기 때문이다.
善知識, 心量 廣大 偏周法界 用卽了了分明 應用 便知一切 一切卽一 一卽一切 去來自由 心體無滯
선지식, 심량 광대 변주법계 용즉요료분명 응용 편지일체 일체즉일 일즉일체 거래자유 심체무체
卽是般若.
즉시반야.
선지식아, 마음의 크기는 넓고 커서 법계에 두루 하며 그 작용이 아주 분명하니 그 쓰임새에 바로 일체를 알며 일체가 곧 하나고 하나가 곧 일체여서 가고 오는 것이 자유롭고 마음자리에 막힘이 없는 것이 곧 반야니라.
善知識, 一切般若智 皆從自性而生 不從外入.
선지식, 일체반야지 개종자성이생 부종외입.
선지식아, 일체의 반야지혜는 모두 다 자성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莫錯用意 名爲眞性自用. 一眞 一切眞.
막착용의 명위진성자용. 일진 일체진.
뜻을 그릇되게 쓰지 않는 것을 참된 성품을 스스로 쓰는 것이라 한다.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느니라.
心量大事 不行小道 口莫終日說空.
심량대사 불행소도 구막종일설공.
마음으로 큰 일만 헤아리고 작은 도라도 행하지 아니하면서 입으로 종일토록 공을 말하지 말라.
心中 不須此行 恰似凡人 自稱國王 終不可得 非吾弟子.
심중 불수차행 흡사범인 자칭국왕 종불가득 비오제자.
마음으로 이 행을 닦지 않으면 마치 범부가 스스로는 국왕이라 칭하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이런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善知識, 何名般若. 般若者 唐言 智慧也, 一切處所 一切時中 念念不愚 常行智慧 卽是般若行.
선지식, 하명반야. 반야자 당언 지혜야, 일체처소 일체시중 염념불우 상행지혜 즉시반야행.
선지식아, 무엇을 <반야>라 하느냐? 반야는 당나라 말로 지혜이며 어는 곳 어느 때라도 생각 생각이 어리석지 아니하여 항상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곧 반야행이다.
一念 愚 卽般若絶 一念 智 卽般若生.
일념 우 즉반야절 일념 지 즉반야생.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어지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생겨나는 것이니라.
世人 愚迷 不見般若 口說般若 心中常愚 常自言 我須般若 念念說空 不識眞空.
세인 우미 불견반야 구설반야 심중상우 상자언 아수반야 염념설공 불식진공.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반야를 보지 못하므로 입으로만 반야를 말하고 마음속은 언제나 어리석어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반야를 닦는다.」하며 생각 생각에 공을 말하지만 진공(眞空)은 알지 못하느니라.
般若 無形象 智慧心 卽是 若作如是解 卽名般若智.
반야 무형상 지혜심 즉시 약작여시해 즉명반야지.
반야는 형상이 없으며 지혜로운 마음이 곧 이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이해를 하면 이것이 곧 반야지혜라 하느니라.
何名波羅密. 此是西國語 唐言 到彼岸 解義 離生滅.
하명바라밀 차시서국어 당언 도피안 해의 이생멸.
어떤 것을 바라밀이라고 이름 하는냐? 이것은 서국의 말인데 당나라 말로 하면 저 언덕에 이른다는 말이고 생멸을 떠난다는 뜻이다.
著境生滅起 如水有波浪 卽名爲此岸, 離境無生滅 如水相通流 卽名爲彼岸 故號波羅密.
저경생멸기 여수유파랑 즉명위차안, 이경무생멸 여수상통류 즉명위피안 고호바라밀.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나니 물에 물결이 있는 것과 같은 이것이 곧 이 언덕이고, 경계를 여의면 생멸이 없어지므로 물이 잠잠함이 곧 저 언덕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한다.
善知識, 迷人 口念 當念之時 有妄有非 念念若行 是名眞性.
선지식, 미인 구념 당념지시 유망유비 염념약행 시명진성.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는지라 외울 때는 망령됨이 있고 그릇됨이 있지만 생각 생각에 만일 행을 하면 이것이 참된 성품이니라.
悟此法者 是般若法, 須此行者 是般若行.
오차법자 시반야법, 수차행자 시반야행.
이 법을 깨닫는 것이 곧 반야법이요, 이 행을 닦는 것이 곧 반야행이니라.
不修 卽凡, 一念修行 自身等佛.
불수 즉범, 일념수행 자신등불.
닦지 않으면 범부요, 일념으로 수행하면 자신들이 부처님이니라.
善知識, 凡夫卽佛 煩惱 卽菩提 前念 迷 卽凡夫, 後念 悟 卽佛.
선지식, 범부즉불 번뇌 즉보리 전념 미 즉범부, 후념 오 즉불.
선지식아, 범부가 곧 부처님이며 번뇌가 곧 보리니 앞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다.
前念 着境 卽煩惱 後念 離境 卽菩提.
전념 착경 즉번뇌 후념 이경 즉보리.
앞생각이 경계에 집착하면 곧 번뇌고 뒷생각이 경계를 여의면 곧 보리니라.
善知識, 摩訶般若波羅密 最尊最上最第一. 無住無往 亦無來 三世諸佛 皆從中出.
선지식, 마하반야바라밀 최존최상최제일. 무주무왕 역무래 삼세제불 개종중출.
선지식아, 마하 반야바라밀이 가장 높고 가장 위이며 가장 으뜸이다. 머무름도 없고 지나가는 것도 없으며 또 오는 것도 없어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다 여기에서 나오느니라.
當用大智慧 打破五蘊煩惱塵勞. 如此修行 定成佛道 變三毒爲戒定慧.
당용대지혜 타파오온번뇌진로. 여차수행 정성불도 변삼독위계정혜.
마땅히 큰 지혜를 써서 오온의 번뇌와 망상을 타파하여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반드시 불도를 이루며 삼독이 변하여 계, 정, 혜가 되리라.
善知識, 我此法門 從一般若 生八萬四千智慧 何以故, 爲世人 有八萬四千塵勞.
선지식, 아차법문 종일반야 생팔만사천지혜 하이고, 위세인 유팔만사천진로.
선지식아, 이 법문은 하나의 반야에서 팔만 사천의 지혜를 내는데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팔만사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라.
若無塵勞 智慧常現 不離自性.
약무진로 지혜상현 불이자성.
만일 번뇌가 없으면 지혜가 항상 나타나서 자성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悟此法者 卽是無念無憶無着 不起誑妄 用自眞如性 以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오차법자 즉시무념무억무착 불기광망 용자진여성 이지혜관조 어일체법 불취불사.
卽是見性成佛道.
즉시견성성불도.
이 법을 깨닫는 자는 곧 생각도 없고 기억도 없고 집착함도 없어서 미친 망령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자기의 진여성(참되고 참된 성품)을 쓰므로 지혜로써 미루어 보아 일체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견성하여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善知識, 若欲入甚深法界 及般若三昧者 須修般若行 持誦金剛般若經. 卽得見性.
선지식, 약욕입심심법계 급반야삼매자 수수반야행 지송금강반야경. 즉득견성.
선지식아, 만일 매우 깊은 법계와 반야삼계에 들고자하면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행을 지니고 외워야 되느니라. 그러면 견성할 것이다.
當知. 此功德 無量無邊 經中 分明讚嘆 莫能具說.
당지. 차공덕 무량무변 경중 분명찬탄 막능구설.
마땅히 알라. 이 공덕이 한량없고 끝없다는 것을 경 가운데에서 분명히 찬탄하였는데 말로써는 다할 수가 없느니라.
此法門 是最上乘 爲大智人說 爲上根人說. 小根小智人 聞 心生不信.
차법문 시최상승 위대지인설 위상근인설. 소근소지인 문 심생불신.
이 법문은 곧 최상승이고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라. 근기가 낮고 지혜가 얕은 사람이 들으면 믿지 않는 마음이 생기리라.
何以故 譬如大龍 下雨於閻浮提 城邑聚落 悉皆漂流 如漂棗葉 若雨大海 不增不減.
하이고 비여대룡 하우어염부제 성읍취락 실개표류 여표조엽 약우대해 불증불감.
왜냐하면 비유하건대, 큰 용이 염부제에 비를 내리면 도시와 마을이 모두 다 떠내려가는 것이 대추 나뭇잎이 떠내려가는 것과 같지만 만일 큰 바다에 비를 내리면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若大乘人 若最上乘人 聞說金剛經 心開悟解.
약대승인 약최상승인 문설금강경 심개오해.
만일 대승인과 최상승인이 금강경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어 깨닫느니라.
故知本性 自有般若之智 自用智慧 常觀照故 不假文字.
고지본성 자유반야지지 자용지혜 상관조고 불가문자.
그러므로 본성에는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스스로 지혜를 써서 항상 관조하므로 문자를 빌리지 않는 것임을 아느니라.
譬如雨水 不從天有 元是龍能興致 令一切衆生 一切草木 有情無情 悉皆蒙潤,
비여우수 부종천유 원시용능흥치 영일체중생 일체초목 유정무정 실개몽윤,
비유하건대 비와 물이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용이 일으켜서 일체 중생과 일체 초목과 유정과 무정들을 모두 다 윤택하게 하고,
百川衆流 却入大海 合爲一體 衆生本性 般若之智 亦復如是.
백천중류 각입대해 합위일체 중생본성 반야지지 역부여시.
백가지의 강으로 흐르다가 마침내는 큰 바다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이 중생의 본성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 小根之人 聞此頓敎 猶如草木 根性小者 若被大雨 悉皆自到 不能增長.
선지식, 소근지인 문차돈교 유여초목 근성소자 약피대우 실개자도 불능증장.
선지식아, 근기가 낮은 사람이 이 돈교를 들으면 뿌리가 약한 작은 초목이 만약 큰비를 만나게 되면 뿌리가 뽑히고 뒤집혀져서 자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小根之人 亦復如是 元有般若之智 與大智人 更無差別 因何聞法 不自開悟 緣邪見障重 煩惱根深
소근지인 역부여시 원유반야지지 여대지인 갱무차별 인하문법 부자개오 연사견장중 번뇌근심
猶如大雲 覆蓋於日 不得風吹 日光 不現.
유여대운 부개어일 부득풍취 일광 불현.
근기가 낮은 사람도 역시 이와 같이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지혜가 큰 사람과 차별이 없는데 어찌하여 법을 듣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하면 삿된 소견으로 업장이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인데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햇빛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般若之智 亦無大小 爲一切衆生 自心 迷悟 不同 迷心外見 修行覓佛 未悟自性 卽是小根.
반야지지 역무대소 위일체중생 자심 미오 부동 미심외견 수행멱불 미오자성 즉시소근.
반야의 지혜도 역시 크거나 작은 것이 없는데 일체의 중생이 자신의 마음에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하여 밖으로만 보고 닦으며 부처를 찾으려 할 뿐 자성을 깨닫지 못하나니 이것은 곧 근기가 낮기 때문이니라.
若開悟頓敎 不執外修 但於自心 常起正見 煩惱塵勞 常不能染 卽是見性.
약개오돈교 불집외수 단어자심 상기정견 번뇌진로 상불능염 즉시견성.
만일 돈교를 깨달아서 밖으로 닦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항상 정견을 일으켜서 번뇌와 세속 일에 대한 괴로움이 항상 물들지 못하게 하면 이것이 곧 견성이니라.
善知識, 內外不住 去來自由 能除執心 通達無碍, 能修此行 與般若經 本無差別.
선지식, 내외부주 거래자유 능제집심 통달무애, 능수차행 여반야경 본무차별.
선지식아, 안과 밖에 머무르지 말고 가고 옴이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면 일체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능히 이 행을 닦으면 반야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善知識, 一切修多羅 及諸文字 大小二乘 十二部經 皆因人置 因智慧性 方能建立 若無世人 一切萬法
선지식, 일체수다라 급제문자 대소이승 십이부경 개인인치 인지혜성 방능건립 약무세인 일체만법
本自不有.
본자불유.
선지식아, 일체의 수다라와 문자로 되어 있는 대, 소 이승의 십이부경이 모두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며 지혜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워진 것이니 만일 세상 사람이 없다면 일체 만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라.
故知. 萬法 本自人興 一切經書 因人說有.
고지. 만법 본자인흥 일체경서 인인설유.
그러므로 알아라. 만법은 본래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일체의 경서는 사람이 설하므로 있는 것이니라.
緣其人中 有愚有智 愚爲小人 智爲大人.
연기인중 유우유지 우위소인 지위대인.
그 사람을 인연하는 가운데에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어서 어리석음을 소인이라 하고 지혜로움을 대인이라 하느니라.
愚者 問於智人 智者 與愚人說法. 愚人 忽然悟解心開 卽與智人 無別.
우자 문어지인 지자 여우인설법. 우인 홀연오해심개 즉여지인 무별.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묻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법을 설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홀연히 깨달아서 마음이 열리면 곧 지혜 있는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善知識, 不悟 卽佛是衆生, 一念悟時 衆生 是佛.
선지식, 불오 즉불시중생, 일념오시 중생 시불.
선지식아,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이 곧 중생이요, 한 순간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님이니라.
故知. 萬法 盡在自心 何不從自心中 頓見眞如本性.
고지. 만법 진재자심 하부종자심중 돈견진여본성.
그러므로 알라. 만법이 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자신의 마음 가운데로부터 진여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가?
菩薩戒經 云我本元自性 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 淨名經 云卽是豁然 還得本心.
보살계경 운아본원자성 청정 약식자심견성 개성불도, 정명경 운즉시활연 환득본심.
보살계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본원 자성은 원래 청정하니 만일 자기의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성품을 보면 모두 다 불도를 이룬다.」하였으며, 정명경에서는 「즉시에 확 트이면 다시 본심을 얻는다.」하였느니라.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 言下便悟 頓見眞如本性 是以 將此敎法流行 令學道者頓悟菩提 各自觀心
선지식, 아어인화상처 일문 언하변오 돈견진여본성 시이 장차교법유행 영학도자돈오보리 각자관심
自見本性 若自不悟 須覓大善知識 解最上乘法者直示正路 是善知識 有大因緣.
자견본성 약자불오 수멱대선지식 해최상승법자직시정로 시선지식 유대인연.
선지식아, 내가 홍인화상이 계신 곳에서 한번 듣고 말씀 아래에 문득 깨달아서 진여의 본성을 보았기에 이 교법을 널리 펴서 도를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단번에 보리를 깨달아서 각자 스스로 마음을 살피고 스스로 본성을 보게 하려 하는데 만일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최상승법을 이해하는 큰 선지식을 찾는 것이 바른 길을 봄이니 이 선지식이 큰 인연 있음이라.
所謂化導 令得見性 一切善法 因善知識 能發起故.
소위화도 영득견성 일체선법 인선지식 능발기고.
이른바 교화하고 인도해서 견성을 얻게 하는데 일체 선법이 선지식으로 인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니라.
三世諸佛 十二部經 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悟 須求善知識 指示 方見. 若自悟者 不假外求.
삼세제불 십이부경 재인성중 본자구유 불능자오 수구선지식 지시 방견. 약자오자 불가외구.
삼세제불의 십이부경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에 있으며 본래 스스로 갖춰 있건마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선지식의 가르침을 구하여야 바야흐로 보게 되느니라.
만일 스스로 깨닫는 자는 밖으로 구함을 빌리지 않느니라.
若一向執謂 須要他善知識 望得解脫者 無有是處.
약일향집위 수요타선지식 망득해탈자 무유시처.
만일 한쪽만 고집하며 모름지기 다른 선지식을 의지하여 해탈을 얻음을 희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何以故 自心內 有智識自悟 若起邪迷 妄念顚倒 外善知識 雖有敎授 救不可得.
하이고 자심내 유지식자오 약기사미 망념전도 외선지식 수유교수 구불가득.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 안에 선지식이 있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인데 만일 삿된 미혹을 일으켜서 망령된 생각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비록 가르쳐 주더라도 구원되지 못하리라.
若起正眞般若觀照 一刹那間 妄念 俱滅 若識自性一悟 卽至佛地.
약기정진반야관조 일찰나간 망념 구멸 약식자성일오 즉지불지.
만일 바르고 참된 반야를 일으켜 관조하면 한 찰나 사이에 헛된 생각이 모두 다 없어질 것이며 만일 자성을 알아서 한번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리라.
善知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선지식, 지혜관조 내외명철 식자본심.
선지식아, 지혜로 관조하면 안과 밖이 분명하게 통하여 자기의 본심을 알게 된다.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약식본심 즉본해탈, 약득해탈 즉시반야삼매 즉시무념.
만일 본심을 알면 본래 해탈이요, 만일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무념이니라.
何名無念 若見一切法 心不染著 是爲無念.
하명무념 약견일체법 심불염착 시위무념.
무엇을 무념이라 하는가 하면 일체법을 보더라도 마음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이것을 무념이라 하느니라.
用卽偏一切處 亦不著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 出六門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용즉편일체처 역불착일체처 단정본심 사육식 출육문 어육진중 무염무잡 래거자유 통용무체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즉시반야삼매 자재해탈 명무념행.
작용하여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으로 하여금 육문(육근)을 나오더라도 육진 가운데 물들지 않고 섞이지 않아 오고 감이 자유롭고 통용에 막힘이 없는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 해탈이고 무념행이라 이름 하느니라.
若百物 不思 當令念絶 卽是法縛 卽名邊見.
약백물 불사 당령념절 즉시법박 즉명변견.
만일 백가지를 생각하지 아니하여 생각으로 끊으려하면 이것은 법에 얽히는 것이라서 변견(극단으로 치우쳐 집착하는 견해)이라 하느니라.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梧無念法者 至佛地位.
선지식, 오무념법자 만법진통, 오무념법자 견제불경계, 오무념법자 지불지위.
선지식아,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만법이 다 통하며,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면,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善知識, 後代 得吾法者 將此頓敎法門 於同見同行 發願受持 如事佛故 終身而不退者 定入聖位.
선지식, 후대 득오법자 장차돈교법문 어동견동행 발원수지 여사불고 종신이불퇴자 정입성위.
선지식아, 후대에 나의 법을 얻은 자가 이 돈교 법문을 가지고 견해가 같아서 같은 행을 하는 사람에게 받아 지니도록 원을 세워 부처님 섬기는 것 같이 하며 몸이 다하도록 물러나지 않으면 반드시 성인의 지위에 들리라.
然 須傳授從上以來 黙傳分付 不得匿其正法 若不同見同行 在別法中 不得傳付.
연 수전수종상이래 묵전분부 불득익기정법 약부동견동행 재별법중 부득전부.
그러나 위로부터 묵묵히 전해 내려오는 분부를 다시 전해주어서 그 정법을 숨기지 말아야 하겠지만 견해가 같지 않고 행이 같지 않는 다른 법에 있는 자에게는 당부하며 전하지 말아라.
損彼前人 究境無益 恐愚人 不解 謗此法門 百劫千生 斷佛種性.
손피전인 구경무익 공우인 부해 방차법문 백겁천생 단불종성.
그 앞에 있는 사람을 해치어 결국은 이익이 없을 것이며, 어리석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 법문을 비방하여 백겁 천생에 부처님 될 성품을 끊을까 두렵기 때문이니라.
善知識, 吾有一無相頌 各須誦取 在家出家 但依此修. 若不自修 惟記吾言 亦無有益. 聽吾頌 曰.”
선지식, 오유일무상송 각수송취 재가출가 단의차수. 약불자수 유기오언 역무유익. 청오송 왈.”
선지식아, 내게 무상송이 하나 있으니 각자 외워 지니어 재가인이거나 출가인이거나 이것을 의지하여 닦아라.
만일 스스로 닦지 않고 나의 말만 기억하면 이익이 없을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說通及心通 如日處虛空,
설통급심통 여일처허공,
말로 통하고 마음이 통함이여 태양이 허공에 있는 것과 같으니,
唯傳見性法 出世破邪宗.
유전견성법 출세파사종.
오직 견성하는 법만 전하여 출세토록 삿된 가르침을 쳐부수도다.
法卽無頓漸 迷悟 有遲疾.
법즉무돈점 미오 유지질.
법은 곧 돈과 점이 없건마는 미(迷)와 오(悟)에는 더디고 빠름이 있네.
只此見性門 愚人不可悉.
지차견성문 우인불가실.
다만 견성하는 문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네.
설즉수만반 합리 환귀일,
說卽雖萬般 合理 還歸一,
말로 설하면 비록 만 가지이지만 이치에 합하면 도리어 하나로 돌아감이니,
번뇌암택중 상수생혜일.
煩惱暗宅中 常須生慧日.
번뇌로 어두운 집 가운데에 항상 지혜의 햇빛을 낼지어다.
邪來 煩惱至 正來 煩惱除,
사래 번뇌지 정래 번뇌제,
삿된 것이 오면 번뇌가 일어나고 바른 것이 오면 번뇌가 사라지리니,
邪正 俱不用 淸淨至無餘.
사정 구불용 청정지무여.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다 쓰지 않으면 청정하여 남음이 없는데 이르리라.
菩提本自性 起心卽是妄.
보리본자성 기심즉시망.
보리의 근본 자성에 마음을 일으키면 곧 망념이라.
淨心 在妄中 但正 無三障.
정심 재망중 단정 무삼장.
깨끗한 마음이 망념 가운데에 있으니 바르면 세 가지 장애가 없으리라.
世人 若修道 一切 盡不妨
세인 약수도 일체 진불방
세상 사람들이 만일 도를 닦으면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常自見己過 與道卽相當.
상자견기과 여도즉상당.
항상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보면 도와 더불어 곧 서로 맞으리라.
色類 自有道 各不相妨惱,
색류 자유도 각불상방뇌,
모든 것은 스스로 도가 있어서 각각 서로 방해하며 괴롭히지 않으니,
離道別覓道 終身不見道.
이도별멱도 종신불견도.
도를 여의고 따로 도를 찾으면 몸이 다하여도 도를 보지 못하리라.
波波度一生 到頭 還自澳,
파파도일생 도두 환자오,
부질없이 일생을 지내서 눈앞에 닥쳐서야 뒤늦게 뉘우치나니,
欲得見眞道. 行正 卽是道.
욕득견진도. 행정 즉시도.
참된 도를 보고자 하느냐. 바른 것을 행하는 것이 곧 도이니라.
自若無道心 闇行不見道,
자약무도심 암행불견도,
스스로 만일 도의 마음이 없으면 어둡게 행하여 도를 보지 못하나니,
若眞修道人 不見世間過.
약진수도인 불견세간과.
만일 참으로 도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허물을 보지 말아라.
若見他人非 自非 却是左.
약견타인비 자비 각시좌.
만일 남의 그릇됨을 보면 도리어 나의 그릇됨이 되느니라.
他非我不非 我非 自有過.
타비아불비 아비 자유과.
다른 이는 그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 하면 나는 그르지 않다 하는 그것이 스스로 허물이니라.
但自却非心 打除煩惱破
단자각비심 타제번뇌파
다만 스스로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물리치고
번뇌를 쳐부수어 없애버리고
憎愛不關心 長伸兩脚臥.
증애불관심 장신양각와.
밉고 고운 데에 관계하지 않으면 길이 두 다리를 펴고 누우리라.
欲擬化他人 自須有方便.
욕의화타인 자수유방편.
다른 사람을 교화하고자 하면 스스로 모름지기 방편을 쓰라.
勿令彼有疑 卽是自性現.
물령피유의 즉시자성현.
저로 하여금 의심을 없애면 곧 자성이 나타나리라.
佛法 在世間 不離世間覺,
불법 재세간 불리세간각,
불법이 세간에 있어서 세간을 여의고 깨달음은 없음이니,
離世覓菩提 恰如求兎角.
이세멱보리 흡여구토각.
세간을 여의고 보리를 찾으면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으니라.
正見 名出世, 邪見 是世間,
정견 명출세, 사견 시세간,
정견의 이름이 출세요, 사견이 곧 세간이니,
邪正 盡打却 菩提性宛然.
사정 진타각 보리성완연.
사와 정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 성품이 완연하리라.
此頌 是頓敎 亦名大法船
차송 시돈교 역명대법선
이 송이 바로 돈교며 또한 이름이 대법선(大法船)이니
迷聞 經累劫 悟卽刹那間.
미문 경누겁 오즉찰나간.
미혹하여 들으면 누겁을 지내고, 깨달으면 곧 찰나 사이니라.
師 復曰. “今於大梵寺 說此頓敎 普願法界衆生 言下 見性成佛”
사 부왈. “금어대범사 설차돈교 보원법계중생 언하 견성성불”
대사가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대범사에서 이 돈교를 설했으니 온 법계의 중생이 말 아래에 견성 성불하기를 원하노라.”
時 韋使君 與官僚道俗 聞師所說 無不省悟 一時 作禮 “皆歎善哉 何期嶺南 有佛出世”.
시 위사군 여관료도속 문사소설 무불성오 일시 작례 “개탄선재 하기영남 유불출세”.
때에 위 사군과 관료와 도 닦는 이와 속인들이 다 함께 대사의 설법을 듣고 살펴 깨닫지 못한 이가 없었기에 함께 예를 올리고 찬탄하기를 “거룩하십니다. 어찌 영남에 부처님이 나오실 것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하였다.
第三 疑問品
제삼 의문품
一時 韋刺士 爲師 設大會齊.
일시 위자사 위사 설대회제.
어느 날 위자사가 대사를 위하여 큰 재를 베풀었다.
齊訖 刺士 請師陞座 同官僚士庶 肅容再拜 問曰弟子 聞和尙說法 實不可思議.
제흘 자사 청사승좌 동관료사서 숙용재배 문왈제자 문화상설법 실불가사의.
재를 마치고 자사는 대사를 청하여 자리에 오르시게 하고 관료와 선비와 백성들과 함께 엄숙한 모습으로 거듭 절하고 여쭙기를 “제자가 화상의 설법을 들으니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今有少疑 願大慈悲 特爲解說.
금유소의 원대자비 특위해설.
이제 조그마한 의심이 있으니 원컨대 대자비로 특별히 해설하여 주십시오.” 하니
師曰 有疑卽問 吾當爲說. 韋公曰 和尙所說 可不是達摩大師宗旨乎.
사왈 유의즉문 오당위설. 위공왈 화상소설 가불시달마대사종지호.
“의심이 있거든 바로 물어라. 내가 마땅히 설하리라.”하시므로 “화상께서 설하신 바는 달마 대사의 종지가 아닙니까?” 하니
師曰 是 公曰 弟子 聞達摩 初化梁武帝 帝 問云朕 一生 造寺供僧 布施設齊 有何功德.
사왈 시 공왈 제자 문달마 초화양무제 제 문운짐 일생 조사공승 보시설제 유하공덕.
“그러하니라.” 하시기에 “제자가 듣기로는 달마대사께서 처음 양 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 무제가 여쭙기를 「짐이 일생동안 절을 짓고 스님들을 공양하고 보시를 하며 재를 베풀었으니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하시니
達摩 言 實無功德 弟子 未達此理 願和尙 爲說.
달마 언 실무공덕 제자 미달차리 원화상 위설.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실로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제자는 이 이치를 알지 못하겠으니 원컨대 화상께서 설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師曰 實無功德. 勿疑先聖之言. 武帝 心邪 不知正法 造寺供養 布施設齊 名爲求福.
사왈 실무공덕. 물의선성지언. 무제 심사 부지정법 조사공양 보시설제 명위구복.
대사가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느니라.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아라. 무제가 마음이 삿되어 정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절을 짓고 공양하며 보시하고 재를 베푼 것은 이름 하여 복을 구하였을 뿐이다.
不可將福 便爲功德 功德 在法身中 不在修福.
불가장복 변위공덕 공덕 재법신중 부재수복.
복은 공덕으로 삼을 수 없다. 공덕은 법신 가운데 있지, 복을 닦는데 있지 않느니라.”
師 又曰見性 是功 平等 是德 念念無滯 常見本性 眞實妙用 名爲功德.
사 우왈견성 시공 평등 시덕 염념무체 상견본성 진실묘용 명위공덕.
하시며 또 말씀하셨다.
“성품을 보는 것이 <공>이요, 평등함이 곧 <덕>이다. 생각 생각에 막힘이 없어서 항상 본성의 진실한 묘용을 보는 것을 공덕이라 하느니라.
內心謙下 是功, 外行於禮 是德, 自性 建立萬法 是功,
내심겸하 시공, 외행어례 시덕, 자성 건립만법 시공,.
안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 곧 공이요, 밖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덕이며, 자성이 만법을 세우는 것이 곧 공이요,
心體離念 是德, 不離自性 是功, 應用無念 是德, 若覓功德法身 但依此作 是眞功德.
심체이념 시덕, 불리자성 시공, 응용무념 시덕, 약멱공덕법신 단의차작 시진공덕.
마음 바탕이 생각을 떠난 것이 덕이며, 자성을 떠나지 않음이 곧 공이요, 대응해 쓰되 물들지 않는 것이 곧 덕이니, 만일 공덕법신(功德法身)을 찾으려 하면 이렇게 하여야만 이것이 참된 공덕이니라.
若修功德之人 心卽不輕 常行普敬.
약수공덕지인 심즉불경 상행보경.
만일 공덕을 닦는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남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항상 널리 공경하여야 하느니라.
心常輕人 吾我 不斷 卽自無功 自性 虛妄不實 卽自無德. 爲吾我自大 常輕一切故.
심상경인 오아 부단 즉자무공 자성 허망부실 즉자무덕. 위오아자대 상경일체고.
마음으로는 항상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겨서 나를 세우는 마음을 끊지 않으면 곧 스스로 공이 없고 자성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아니하면 곧 스스로 덕이 없음이니라.
나를 세우며 스스로 잘난 체하고 항상 일체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니라.
善知識, 念念無間 是功, 心行平直 是德, 自修性 是功, 自修身 是德.
선지식, 염념무간 시공, 심행평직 시덕, 자수성 시공, 자수신 시덕.
선지식아, 순간순간에 간격이 없는 것이 곧 공이요, 마음을 평등하고 곧게 쓰는 것이 덕이며, 스스로 성품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이니라.
善知識, 功德 須自性內見 不是布施供養之所救也.
선지식, 공덕 수자성내견 불시보시공양지소구야.
선지식아, 공덕은 모름지기 자성을 안으로 보는 것이지, 보시나 공양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니라.
是以 福德 與功德 別. 武帝 不識眞理 非我祖師 有過.
시이 복덕 여공덕 별. 무제 불식진리 비아조사 유과.
그러므로 복덕이 공덕과는 다른 것이니라. 무제가 진리를 알지 못하였을 뿐 우리 조사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又問弟子 常見僧俗 念阿彌陀佛 願生西方 請和尙 說. 得生彼否. 願爲破疑.
우문제자 상견승속 염아미타불 원생서방 청화상 설. 득생피부. 원위파의.
또 여쭙기를 “제자가 항상 보니 승과 속이 아미타불을 염하며 서방극락에 나기를 원하던데, 청컨대 화상께서 설하여 주십시오. 그 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원컨대 의심을 풀어주십시오.” 하니
사 언 使君, 善聽 惠能 與說.
師 言 사군, 선청 혜능 여설.
대사가 말씀하셨다. “위 사군은 잘 들어라. 내가 설하여 주겠노라.
世尊 在舍衛城中 說西方引化 經文 分明去此不遠 若論相說 里數 有十萬八千,
세존 재사위성중 설서방인화 경문 분명거차불원 약론상설 이수 유십만팔천,
卽身中 十惡八邪 便是說遠.
즉신중 십악팔사 변시설원.
세존이 사위성에 계실 때에 서방으로 인도하여 교화한다고 설하셨는데 경문에 보면 분명히 이곳에서 멀지 않다 하셨고 만일 현상계로 논하여 말한다면 거리가 십만 팔 천리다 하셨는데, 이것은 곧 몸 가운데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가리킨 것으로 멀다고 하신 말씀이다.
說遠 爲其下根 說根 爲其上智. 人有兩種 法無兩般. 迷悟有殊 見有遲疾.
설원 위기하근 설근 위기상지. 인유양종 법무양반. 미오유수 견유지질.
멀다고 설하신 것은 낮은 근기를 위한 것이고 가깝다고 설하신 것은 높은 근기를 위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낮고 높은 두 가지가 있으나 법에는 두 가지가 없느니라.
미혹함과 깨달음이 다르므로 견해가 더디고 빠르니라.
迷人 念佛 救生於彼 悟人 自淨其心. 所以 佛言 隨其心淨 卽佛土淨.
미인 염불 구생어피 오인 자정기심. 소이 불언 수기심정 즉불토정.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 곳에 나기를 구하고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곧 불토가 깨끗하다.」하셨느니라.
使君, 東方人 但心淨 卽無罪 雖西方人 心不淨 亦有愆.
사군, 동방인 단심정 즉무죄 수서방인 심불정 역유건.
사군아, 동방 사람이라도 마음만 깨끗하면 곧 죄가 없고 비록 서방 사람이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역시 허물이 있느니라.
東方人 造罪 念佛 求生西方 西方人 造罪 念佛 求生何國.
동방인 조죄 염불 구생서방 서방인 조죄 염불 구생하국.
동방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염불하여 서방에 나기를 구하겠지만 서방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염불하여 어느 나라에 나기를 구할 것인가?
凡愚 不了自性 不識身中淨土 願東願西 悟人 在處一般. 所以 佛言 隨所住處 恒安樂.
범우 불료자성 불식신중정토 원동원서 오인 재처일반. 소이 불언 수소주처 항안락.
어리석은 범부는 자성을 모르므로 몸 가운데 정토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동방을 원하고 서방을 원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으나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를「머무는 곳마다 항상 안락하다」하셨느니라.
使君, 心地 但無不善 西方 去此不遙 若懷不善之心 念佛 往生難到.
사군, 심지 단무불선 서방 거차불요 약회불선지심 염불 왕생난도.
사군아, 마음자리가 오직 착하면 서방이 여기서 멀지 않은데 만일 착하지 못한 마음을 품으면 염불을 하여도 태어나기는 어려우니라.
今勸善知識 先除十惡 卽行十萬 後除八邪 乃過八千 念念見性 常行平直 到如彈指 便覩彌陀.
금권선지식 선제십악 즉행십만 후제팔사 내과팔천 염념견성 상행평직 도여탄지 편도미타.
이제 선지식에게 권하는데 먼저 십악을 없애면 곧 십만리를 가는 것이고 다음에 팔사를 없애면 곧 팔천리를 지나가는 것이니 순간순간에 성품을 보아 항상 평등하고 바르게 행하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문득 아미타불을 보는 것이니라.
使君, 但行十善 何須更願往生 不斷十惡之心 何佛 卽來迎請.
사군, 단행십선 하수갱원왕생 부단십악지심 하불 즉래영청.
사군아, 다만 십선(十善)을 행하면 어찌하여 다시 왕생을 원할 것이며 십악의 마음을 끊지 못한다면 어느 부처님이 오셔서 맞아주실 것인가?
若悟無生頓法 見西方 只在刹那 不悟 念佛求生 路遙 如何得達.
약오무생돈법 견서방 지재찰나 불오 염불구생 로요 여하득달.
만일 무생(無生)의 돈법(頓法)을 깨달으면 서방이 다만 찰나에 있음을 보겠지만 깨닫지 못하면 염불하여 태어나기를 구하더라도 길이 멀 테니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惠能 與諸人 移西方於刹那間 目前便見 各願見否.
혜능 여제인 이서방어찰나간 목전변견 각원견부.
혜능이 그대들에게 서방을 찰나 사이에 옮겨서 눈앞에 문득 보게 하리니 다들 보기를 원하느냐?
衆皆頂禮云 若此處 見 何須更願往生. 願和尙 慈悲 便現西方 普令得見.
중개정례운 약차처 견 하수갱원왕생. 원화상 자비 변현서방 보령득견.
대중이 모두 다 큰 절을 올리며, “만일 이곳에서 볼 수 있다면 구태여 다시 왕생을 원하겠습니까? 원컨대 화상께서 자비로 서방을 나타내시어 모두 다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하므로
師 言 大衆 世人 自色身 是城 眼耳鼻舌 是門. 外有五門 內有意門. 心是地 性是王.
사 언 대중 세인 자색신 시성 안이비설 시문. 외유오문 내유의문. 심시지 성시왕.
대사가 말씀하셨다. “대중들아 세상 사람은 자기 육신이 성(城)이고, 안(眼), 이(耳), 비(鼻), 설(舌)은 문이다. 밖으로는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는 뜻(意)의 문이 있다. 마음은 땅이며 성품은 임금이니라.
王居心地上 性在 王在 性去 王無, 性在 身心 存, 性去 身心 壞, 佛向性中作 莫向身外求.
왕거심지상 성재 왕재 성거 왕무, 성재 신심 존, 성거 신심 괴, 불향성중작 막향신외구.
임금이 마음 땅 위에 지내는데 성품이 있으면 임금이 있고, 성품이 가면 임금이 없으며, 성품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면 몸과 마음이 무너지니, 부처는 성품 가운데를 향하여 지을지언정 몸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아라.
自性 迷 卽是衆生 自性 覺 卽是佛. 慈悲 卽是觀音 喜捨 名爲勢至 能淨 卽釋迦 平直 卽彌陀.
자성 미 즉시중생 자성 각 즉시불. 자비 즉시관음 희사 명위세지 능정 즉석가 평직 즉미타.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고 자성이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라.
자비는 곧 관세음보살이고 희사(喜捨)는 이름 하여 대세지보살이며 청정함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평등하고 바름은 아미타부처님이다.
人我 是須彌, 邪心 是海水, 煩惱 是波浪, 毒害 是惡龍, 虛妄 是鬼神, 塵勞 是魚鼈, 貪瞋 是地獄,
인아 시수미, 사심 시해수, 번뇌 시파랑, 독해 시악룡, 허망 시귀신, 진노 시어별, 탐진 시지옥,
愚癡 是畜生.
우치 시축생.
나다 남이다 하는 생각은 수미산이고, 삿된 마음은 바닷물이고, 번뇌는 물결이며, 독한 해를 주는 것은 악한 용이고 헛된 망상은 귀신이며, 세상살이의 괴로움은 고기나 자라이며, 탐내고 성내는 것은 지옥이며, 어리석음은 곧 축생이니라.
善知識, 常行十善 天堂 便至, 除人我 須彌 倒, 去邪心 海水竭, 煩惱無 波浪 滅, 毒害除 魚龍 絶.
선지식, 상행십선 천당 변지, 제인아 수미 도, 거사심 해수갈, 번뇌무 파랑 멸, 독해제 어룡 절.
선지식아, 항상 십선을 행하면 천당에 곧 이르고, <나다> <남이다>를 없애면 수미산이 무너지고, 사심이 없으면 바닷물이 마르고, 번뇌가 없으면 물결이 잠잠해지고, 독하고 해치려는 마음을 버리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리라.
自心地上 覺性如來 放大光明 外照六門淸淨 能破六欲諸天 自性內照 三毒 卽除 地獄嶝罪 一時消滅
자심지상 각성여래 방대광명 외조육문청정 능파육욕제천 자성내조 삼독 즉제 지옥등죄 일시소멸
內外明徹 不異西方 不作此修 如何到彼.
내외명철 불이서방 불작차수 여하도피.
자기의 마음자리 위에 각성여래가 큰 광명을 놓아서 밖으로 육문을 청정하게 비추면 능히 육욕 제천(六欲諸天)을 깨뜨리고 자성이 안으로 비추면 삼독이 곧 없어지고 지옥 등의 죄가 일시에 소멸하여 안과 밖이 밝게 통하여서 서방과 다르지 않으리라. 이렇게 닦지 아니하면 어떻게 저 곳에 이르겠느냐.”
大衆 聞說 了然見性 悉皆禮拜 俱歎善哉 唯言 普願法系衆生 聞者 一時悟解.
대중 문설 요연견성 실개예배 구탄선재 유언 보원법계중생 문자 일시오해.
대중이 설법을 듣고는 자기의 성품을 똑똑히 보고 다 함께 예배하며 다 함께「거룩하시다.」라고 찬탄하고「원컨대 온 법계 중생이 듣고서 한꺼번에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師言 善知識, 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在家能行 如東方人心善, 在寺不修 如西方人心惡
사언 선지식, 약욕수행 재가역득. 불유재사. 재가능행 여동방인심선, 재사불수 여서방인심악
但心淸淨 卽是自性西方.
단심청정 즉시자성서방.
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만일 수행하고자 하면 재가불자라도 할 수 있다. 절에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집에 있어도 능히 행하면 동방인으로서 마음이 선한 것과 같고, 절에 있어도 닦지 않으면 서방인으로서 마음이 악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만 청정하면 이것이 곧 자성의 서방이니라.”
韋公 又問 在家 如何修行 願爲敎授, 師言 吾與大衆 說無相頌, 但依此修 常與吾 同處無別,
위공 우문 재가 여하수행 원위교수, 사언 오여대중 설무상송, 단의차수 상여오 동처무별,
若不依此修 剃髮出家 於道 何益. 頌曰.
약불의차수 체발출가 어도 하익. 송왈.
위공이 또 여쭙기를 “집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수행하여야 합니까? 원컨대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대중에게 무상송(無相頌)을 설하리니, 다만 이를 의지하여 닦으면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지만, 만일 이를 의지하여 닦지 아니하면 머리를 깎고 출가한들 도에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하시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心平 何勞持戒
심평 하로지계
行直 何用修禪.
행직 하용수선.
마음이 평등하면 어찌 계가 필요하며
행이 곧으면 선을 닦아 무엇 하리.
恩卽孝養父母
은즉효양부모
義卽上下相憐
의즉상하상련
은혜로 친히 부모를 부양하고
의로우면 상하가 서로 아끼게 되며
讓卽尊卑和睦
양즉존비화목
忍卽衆惡無喧.
인즉중악무훤.
사양하면 높고 낮은 이가 화목하고
참으면 온갖 것이 미워해도 싸울 일이 없느니라.
若能鑽木出火
약능찬목출화
淤泥 定生紅蓮.
어니 정생홍련.
능히 나무를 비벼 불을 내듯하면
진흙에서 결정코 홍련이 피어나리라.
苦口的是良藥
고구적시양약
亦耳必是忠言.
역이필시충언.
입에 쓴 것은 반드시 좋은 약이고,
귀에 거슬리는 것은 반드시 충성스런 말이니라.
改過必生智慧
개과필생지혜
護短心內非賢.
호단심내비현
허물을 고치면 반드시 지혜가 나고
흠을 덮으려 하면 마음속이 무디어 지느니
日用 常行饒益.
일용 상행요익.
成道 非由施錢.
성도 비유시전.
나날이 이로운 것을 행하여라.
도를 이루는 것이 돈을 보시함에 있지 않느니라.
菩提只向心覓
보리지향심멱
何勞向外求玄.
하로향외구현.
보리는 다만 마음을 향하여 찾을지언정
어찌 밖을 향하여 그윽함을 구하고자 애쓰는가.
聽說依此修行
청설의차수행
西方 只在目前.
서방 지재목전.
내 말을 듣고 이대로 수행하면
극락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師 復曰善知識, 總須依偈修行 見取自性 直成佛道.
사 부왈선지식, 총수의게수행 견취자성 직성불도.
法不相待 衆人 且散. 吾歸曹溪 衆若有疑 却來相問.
법불상대 중인 차산. 오귀조계 중약유의 각래상문.
“선지식아, 모두 다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자성을 보면 바로 불도를 이루리라. 법은 기다리지 않으니 대중은 이제 헤어져라. 나도 조계로 돌아가리니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누구든지 와서 물어라.”
時 刺史官僚 在會善男善女 各得開悟 信受奉行.
시 자사관료 재회선남선녀 각득개오 신수봉행.
때에 자사와 관료와 그 모임에 있던 선남자 선여인이 각각 깨달음을 얻어서 믿고 받아들이며 받들어 행하였다.
第四 定慧品
제사 정혜품
師 示衆云善知識, 我此法門 以定慧 爲本. 大衆 勿迷 言定慧別.
사 시중운선지식, 아차법문 이정혜 위본. 대중 물미 언정혜별.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나의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는다.
대중은 미혹하게 정과 혜가 다르다고 말하지 말아라.
定慧 一體 不是二. 定是慧體 慧是定用. 卽慧之時 定在慧 卽定之時 慧在定. 若識此義 卽是定慧等學.
정혜 일체 불시이. 정시혜체 혜시정용. 즉혜지시 정재혜 즉정지시 혜재정. 약식차의 즉시정혜등학.
<정>과 <혜>는 일체요 둘이 아니다.
정은 혜의 바탕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니라.
혜가 나타날 때 정이 혜에 있고, 정이 나타날 때 혜가 정에 있다.
만일 이 뜻을 알면 곧 정과 혜를 고루 배우는 것이니라.
諸學道人 莫言先定發慧 先慧發定 各別.
제학도인 막언선정발혜 선혜발정 각별.
作此見者 法有二相 口說善語 心中不善.
작차견자 법유이상 구설선어 심중불선.
空有定慧 定慧不等 若心口俱善 內外一種 定慧卽等.
공유정혜 정혜부등 약심구구선 내외일종 정혜즉등.
도 배우는 사람들은 정을 먼저 하여 혜를 일으킨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일으킨다하며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아라.
이런 견해를 가지는 자는 법에 두 모양을 두어서 입으로 좋은 말을 하지만 마음속이 착하지 못하니라.
공연히 정과 혜를 두어서 정과 혜가 같지 않거니와 만일 마음과 말이 다 선해서 안과 밖이 한 가지면 정과 혜가 곧 평등하리라.
自悟修行 不在於諍. 若諍先後 卽同迷人 不斷勝負 却增我法 不離四相.
자오수행 부재어쟁. 약쟁선후 즉동미인 부단승부 각증아법 불리사상.
스스로 깨달아 수행함은 다투는데 있지 않다.
만일 선후를 다투면 곧 미혹한 사람과 같으며 승부를 끊지 못하고 <나다> <진리다>하는 것만 늘여서 사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여의지 못하리라.
善知識, 定慧 猶女何等, 猶女燈光 有燈卽光, 無燈卽暗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선지식, 정혜 유여하등, 유여등광 유등즉광, 무등즉암 등시광지체, 광시등지용.
선지식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하면, 등불과 같아서 등이 있으므로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곧 어두우니 등은 빛의 본체요, 빛은 등의 작용이다.
名雖有二 體本同一 此定慧法 亦復如是.
명수유이 체본동일 차정혜법 역부여시.
이름은 비록 둘이 있지만 체는 본래 동일한 것처럼 이 정혜의 법도 그와 같으니라.
師示衆云善知識, 一行三昧者 於一切處行住坐臥 常行一直心 是也, 如淨名經 云直心 是道場 直心
사시중운선지식, 일행삼매자 어일체처행주좌와 상행일직심 시야, 여정명경 운직심 시도량 직심
是淨土.
시정토.
대중을 바라보며 말씀하시길 선지식아, 일행삼매라 하는 것은 어느 곳 어느 때나(행, 주, 좌, 와) 항상 한결같이 곧은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니, 정명경에 이르시기를「곧은 마음이 곧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곧 정토다.」하시었듯이
莫心行 諂曲 口但說直 口說一行三昧 不行直心 但行直心 於一切法 勿有執着.
막심행 첨곡 구단설직 구설일행삼매 불행직심 단행직심 어일체법 물유집착.
마음과 행동이 아첨하고 바르지 못하여 입으로만 곧음을 말하고 입으로만 일행삼매를 말하며 곧은 마음을 행하지 않나니 곧은 마음만을 행하고 일체 법에 집착하지 말아라.
迷人 着法相 執一行三昧 直言坐不動 妄不起心 卽是一行三昧 作此解者 卽同無情 却是障道因緣.
미인 착법상 집일행삼매 직언좌부동 망불기심 즉시일행삼매 작차해자 즉동무정 각시장도인연.
미혹한 사람은 법상(法相)에 빠져서 일행삼매에 집착하여 말하기를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망령되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일행삼매라 하는데, 이런 견해를 내는 것은 곧 생명이 없는 것과 같으며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 되느니라.
善知識, 道須通流 何以却滯. 心不住法 道卽通流 心若住法 名爲自縛.
선지식, 도수통류 하이각체. 심부주법 도즉통류 심약주법 명위자박.
선지식아, 도는 모름지기 통하고 흐르게 하여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막히게 하겠느냐.
마음이 법에 머무르지 아니하면 도가 통하여 흐르지만 마음이 만일 법에 머무르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 되느니라.
若言常坐不動 是 只如舍利弗 宴坐林中 却被維摩詰訶.
약언상좌부동 시 지여사리불 연좌림중 각피유마힐가.
만일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면 사리불이 숲 속에 고요히 앉아 있다가 도리어 유마힐의 꾸짖음을 당한 것과 같으니라.
善知識, 又有人 敎坐 看心觀靜 不動不起 從此置功 迷人 不會 便執成顚.
선지식, 우유인 교좌 간심관정 부동불기 종차치공 미인 불회 변집성전.
如此者 衆 如是相敎 故知大錯.
여차자 중 여시상교 고지대착.
선지식아, 또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앉아있게 하되 마음을 보고 고요함을 관해서 움직이지 않고 일어나지 아니하는 이것으로 공부를 삼게 한다고 하면,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문득 집착하여 전도됨을 이룬다.
이와 같은 자가 많고 이와 같이 가르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師示衆云善知識, 本來正敎 無有頓漸 人性 自有利鈍 迷人 漸契 悟人 頓修 自識本心 自見本性
사시중운선지식, 본래정교 무유돈점 인성 자유이둔 미인 점계 오인 돈수 자식본심 자견본성
卽無差別. 所以 立頓漸之假名.
즉무차별. 소이 입돈점지가명.
선지식아, 본래 바른 가르침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지마는 사람의 성품이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어서 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깨닫게 되고 영리한 사람은 단번에 닦아 스스로 본심을 깨달으며 스스로 본성을 보는 것이니 곧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과 점을 세운 것은 거짓 이름이니라.
善知識, 我此法門 從上以來 先立無念爲宗 無相爲體, 無住爲本.
선지식, 아차법문 종상이래 선립무념위종 무상위체, 무주위본.
선지식아, 나의 이 법문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따라 먼저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으로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住)로 근본을 삼는다.
無相者 於相而離相, 無念者 於念而無念,
무상자 어상이리상, 무념자 어념이무념,
무상이라는 것은 상에 대하여 상을 여의는 것이고, 무념이라는 것은 생각에 대하여 생각이 없는 것이고,
無住者 人之本性 於世間善惡好醜 乃至寃之與親 言語觸刺 欺爭之時 竝將爲空 不思酬害 念念之中
무주자 인지본성 어세간선악호추 내지원지여친 언어촉자 기쟁지시 병장위공 불사수해 염념지중
不思前境.
불사전경.
무주라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세간의 선악과 밉고 고움과 원수와 친한 이와 또 말로 주고받고 찌르고 속이고 다툴 때에도 모두 <공>한 것으로 여겨서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 생각하는 가운데 앞 경계를 생각지 않는 것이다.
若前念今念後念 念念相續不斷 名爲繫縛 於諸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此是以無住 爲本.
약전념금념후념 염념상속부단 명위계박 어제법상 염념부주 즉무박야. 차시이무주 위본.
만일 앞생각과 지금 생각과 뒷생각이 생각마다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으면 얽매임이라 하고 모든 법에 대하여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무주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니라.
善知識, 外離一切相 名爲無相. 能離於相 卽法體淸淨 此是以無相 爲體.
선지식, 외리일체상 명위무상. 능리어상 즉법체청정 차시이무상 위체.
선지식아, 밖으로 일체의 상을 여의면 무상이라 한다.
능히 상을 여의면 곧 법체(法體)가 청정해지는데 이것이 곧 무상으로써 체를 삼는 것이니라.
善知識, 於諸境上 心不染曰無念 於自念上 常離諸境 不於境上 生心.
선지식, 어제경상 심불염왈무념 어자념상 상리제경 불어경상 생심.
선지식아, 모든 경계 위에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는데 자기 생각 위에 항상 모든 경계를 여의어서 경계 위에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若只百物 不思 念盡除却, 一念 絶 卽死 別處受生 是爲大錯.
약지백물 불사 염진제각, 일념 절 즉사 별처수생 시위대착.
만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 모든 생각을 다 없애려고만 한다면 한 생각이 끊어질 때, 곧 죽는 것이어서 다른 곳에 몸을 받아 나리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學道者 思之. 若不識法意 自錯 猶可 更勸他人 自迷不見 又謗佛經. 所以 入無念爲宗.
학도자 사지. 약불식법의 자착 유가 갱권타인 자미불견 우방불경. 소이 입무념위종.
도를 배우는 자는 잘 생각하여라.
만일 법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신을 그르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다시 다른 사람에게까지 권해서 미혹하여 보지 못하게 하며 또 불경을 비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는 것이니라.
善知識, 云何立無念爲宗. 只緣口說見性 迷人 於境上 有念 念上 便起邪見 一切塵勞妄想 從此而生.
선지식, 운하립무념위종. 지연구설견성 미인 어경상 유념 염상 변기사견 일체진로망상 종차이생.
선지식아, 어떤 것을 무념을 세워서 종을 삼는다 하는가? 단지 입으로만 성품을 보았다고 말함이니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이 있고 생각 위에 문득 사견을 일으키는데 일체의 진로 망상이 이로부터 생겨나느니라.
自性 本無一法可得. 若有所得 妄說禍福 卽是震怒邪見. 故此法門 立無念爲宗.
자성 본무일법가득. 약유소득 망설화복 즉시진로사견. 고차법문 입무념위종.
자성은 본래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다.
만일 얻을 것이 있다하여 망령되이 화와 복을 말한다면 이것이 곧 번뇌며 삿된 소견이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는 것이다.
善知識, 無者 無何事 念者 念何物.
선지식, 무자 무하사 염자 염하물.
선지식아, <무>라는 것은 무슨 일이 없다는 것이며 <념>이라는 것은 무슨 물건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無者 無二相 無諸塵勞之心, 念者 念眞如本性.
무자 무이상 무제진로지심, 염자 염진여본성.
무라는 것은 두 가지 상이 없는 것이니 모든 번거로운 망상이 없는 것이며, 념이라는 것은 진여 본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眞如 卽是念之體, 念 卽是眞如之用.
진여 즉시념지체, 염 즉시진여지용.
진여(眞如)는 곧 생각의 체(體)요, 생각은 곧 진여의 용(用)이니라.
眞如自性 起念 非眼耳鼻舌 能念. 眞如 有性 小以 起念. 眞如若無 眼耳色聲當時卽壞.
진여자성 기념 비안이비설 능념. 진여 유성 소이 기념. 진여약무 안이색성당시즉괴.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지, 눈, 귀, 코, 혀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라.
진여가 성품이 있으므로 생각이 일어난다.
만일 진여자성이 없다면 눈이나 귀나 빛깔이나 소리가 곧 없어지리라.
善知識, 眞如自性 起念 六根 雖有見聞覺知 不染萬境 而眞性 常自在.
선지식, 진여자성 기념 육근 수유견문각지 불염만경 이진성 상자재.
故 云能善分別諸法相 於第一義 而不動.
고 운능선분별제법상 어제일의 이부동.
선지식아,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므로 육근이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안다 하더라도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고 참된 성품이 항상 스스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능히 모든 법상을 잘 분별하되 가장 으뜸가는 뜻은 움직임이 없다.」하셨느니라.
第五 坐禪品
제오 좌선품
師示衆云此門坐禪 元不着心 亦不着淨 亦不是不動.
사시중운차문좌선 원불착심 역불착정 역불시부동.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좌선이라는 이 문은 원래 마음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 깨끗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며 움직이지 않는 것도 옳지 않느니라.
若言着心 心元是妄 知心如幻 故無所着也.
약언착심 심원시망 지심여환 고무소착야.
만일 마음에 집착한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망령된 것이어서 그 마음이 허깨비와 같음을 알 것이므로 집착하는 바가 없을 것이니라.
若言着淨 人性 本淨 由妄念故 盖覆眞如.
약언착정 인성 본정 유망념고 개부진여.
만일 깨끗한 것에 집착한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인데 망상으로 인하여 진여를 덮은 것이 되느니라.
但無妄想 性自淸淨, 起心着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着者是妄.
단무망상 성자청정, 기심착정 각생정망 망무처소, 착자시망.
망상만 없으면 성품이 스스로 청정한 것인데,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한 것에 집착하므로 도리어 청정하다는 망상을 내는데, 망상은 있을 곳이 없음이라, 집착하는 것이 곧 망상이니라.
淨無形相 却立淨相 言是工夫 作此見者 障自本性 却被淨縛.
정무형상 각립정상 언시공부 작차견자 장자본성 각피정박.
깨끗함도 형상이 없는데 도리어 깨끗하다는 생각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 말하지만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자기의 본성을 막아 도리어 깨끗하다는 생각의 결박을 당하리라.
善知識, 若修復動者 但見一切人時 不見人之是非善惡過患, 卽是自性不動.
선지식, 약수부동자 단견일체인시 불견인지시비선악과환, 즉시자성부동.
선지식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닦는다.」라고 하는 것은 일체 사람을 볼 때에 사람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과 허물과 근심을 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곧 자성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善知識, 迷人 身雖不動 開口 便說他人 是非長短好惡 與道違背. 若着心着淨 却障道也.
선지식, 미인 신수부동 개구 변설타인 시비장단호오 여도위배. 약착심착정 각장도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몸은 비록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을 열어 타인의 옳고 그름과 잘하고 못함과 좋고 미워함을 말해서 도와는 어긋나고 등진다.
만일 마음에 집착하고 청정함에 집착하면 도리어 도에 장애가 되느니라.”
師 示衆云善知識 何名坐禪, 此法門中 無障無礙 外於一切善惡境界 心念不起 名爲坐 內見自性不動
사 시중운선지식 하명좌선, 차법문중 무장무애 외어일체선악경계 심념불기 명위좌 내견자성부동
名爲禪.
명위선.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하면, 이 법문 가운데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마음 가운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라 하고 안으로 자성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는 것을 <선>이라 한다.
善知識, 何名禪定, 外離相 爲禪, 內不亂 爲定.
선지식, 하명선정, 외리상 위선, 내불란 위정.
선지식아,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하면, 밖으로 상을 여의는 것이 <선>이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는 것이 <정>이다.
外若着相 內心卽亂 外若離相 心卽不亂.
외약착상 내심즉란 외약리상 심즉불란.
밖으로 만일 상에 빠지면 안의 마음이 곧 어지럽고, 밖으로 만일 상을 여의면 마음이 곧 어지럽지 않으리라.
本性 自淨自定 只爲見境思境 卽亂.
본성 자정자정 지위견경사경 즉란.
본성이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한 것인데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若見諸境 心不亂者 是眞定也.
약견제경 심불란자 시진정야.
만일 모든 경계를 보되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이것이 참된 <정>이다.
善知識, 外離相 卽禪. 內不亂 卽定, 外禪內定 是爲禪定.
선지식, 외리상 즉선. 내불란 즉정, 외선내정 시위선정.
선지식아, 밖으로 상을 여의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으면 <정>이니, 밖의 <선>과 안의 <정>이 곧 선정이니라.
淨名經 云卽時豁然 還得本心. 菩薩戒經 云我本性 元自淸淨.
정명경 운즉시활연 환득본심. 보살계경 운아본성 원자청정.
정명경에 이르시길,「즉시에 시원하게 깨달으면 다시 본심을 얻는다.」하셨으며 보살계경에 이르시길,「나의 본성이 원래 스스로 청정하다.」하셨느니라.
善知識, 於念念中 自見本性淸淨 自修自行 自成佛道.
선지식, 어념념중 자견본성청정 자수자행 자성불도.
선지식아, 생각 생각 가운데에 자기의 본성이 청정함을 보아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스스로 불도를 이루리라.
第六 懺悔品
제육 참회품
時 大師 見廣韶二郡 洎四方士庶 騈集山中 聽法 於是 陞座告衆曰來 諸善知識,
시 대사 견광소이군 계사방사서 병집산중 청법 어시 승좌고중왈래 제선지식,
이때에 대사는 광주와 소주 두 개 군을 비롯한 사방의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산중에 모여 법을 들으려하는 것을 보시고 법좌에 오르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잘 왔다. 선지식아,
此事 須從自性中起 於一切時 念念自淨其心 自修自行 見自己法身 見自心佛 自度自戒 始得 不假到此.
차사 수종자성중기 어일체시 염념자정기심 자수자행 견자기법신 견자심불 자도자계 시득 불가도차.
이 일은 모름지기 자성으로 일어난 것이니 어느 때나 생각 생각에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자기의 법신을 볼 것이며 자기 마음의 부처를 보아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경계하여 비로소 얻게 되니 구태여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느니라.
旣從遠來 一會于此 皆共有緣 今可各各胡跪. 先爲傳自性五分法身香 次授無相懺悔.
기종원래 일회우차 개공유연 금가각각호궤. 선위전자성오분법신향 차수무상참회.
먼 곳에서 와서 이렇게 모였으니 모두 다 인연이 있는가보다. 이제 다들 꿇어 앉아라.
먼저 자성의 오분 법신향을 전하고 다음에 무상 참회를 주겠노라.”
衆 胡跪 師 曰一 戒香 卽自心中 無非無惡 無嫉妬 無貪瞋 無劫害 名戒香.
중 호궤 사 왈일 계향 즉자심중 무비무악 무질투 무탐진 무겁해 명계향.
대중이 꿇어앉자 대사가 말씀하셨다.
“첫째는 <계향>이다.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그릇됨이 없고 악함이 없으며 질투가 없고 탐냄과 성냄이 없으며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없는 것을 계향이라 하느니라.
二 定香. 卽覩諸善惡境相 自心不亂 名定香.
이 정향. 즉도제선악경상 자심불난 명정향.
둘째는 <정향>이다. 곧 모든 선과 악의 경계와 모양을 보더라도 자기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것을 정향이라 하느니라.
三 慧香. 自心無碍 常以知慧 觀照自性 不造諸惡 雖修衆善 心不執著 敬上念下 矜恤孤貧 名慧香.
삼 혜향. 자심무애 상이지혜 관조자성 부조제악 수수중선 심불집착 경상념하 긍휼고빈 명혜향.
셋째는 <혜향>이다. 자기의 마음이 걸림이 없어서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관조하여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비록 많은 선을 닦지만 마음에 두지 않고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보살피며 외롭고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혜향이라 하느니라.
四 解脫香. 卽自心 無所攀緣 不思善不 思惡 自在無碍 名解脫香.
사 해탈향. 즉자심 무소반연 불사선불 사악 자재무애 명해탈향.
넷째는 <해탈향>이다. 자기의 마음에 인연을 일으키는 바가 없어서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것을 해탈향이라 하느니라.
五 解脫知見香. 自心 旣無所攀緣善惡 不可沈空守寂 卽須廣學多聞 識自本心 達諸佛理 和光接物
오 해탈지견향. 자심 기무소반연선악 불가침공수적 즉수광학다문 식자본심 달제불리 화광접물
無我無人 直至菩提 眞性不易 名解脫知見香.
무아무인 직지보리 진성불역 명해탈지견향.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이다. 자기의 마음이 이미 선악에 인연이 일어나는 바가 없지만 공에 빠져 고요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으며 자기의 본심을 알아 모든 부처님의 이치를 통달하여 법신에 화해서 사물을 대함에 있어 나도 없고 남도 없어서 깨달음의 참된 성품이 바뀌지 않는 곳에 이르는 것을 해탈지견향이라 하느니라.
善知識, 此香 各自內薰 莫向外覓.
선지식, 차향 각자내훈 막향외멱.
선지식아, 이 향은 각자 안으로 그윽하게 익힐 것이지 밖을 향하여 찾지 말아라.
今與汝等 授無相懺悔 滅三世罪 令得三業淸淨. 善知識, 各隨語 一時道.
금여여등 수무상참회 멸삼세죄 영득삼업청정. 선지식, 각수어 일시도.
이제 너희들에게 무상참회를 주어서 삼세의 죄를 멸하고 삼업을 청정하게 해주겠노라.
선지식아, 모두 내 말을 같이 따라 하여라.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念 念念 不被愚迷染, 從前所有惡業愚迷等罪 悉皆懺悔, 願一時消滅 永不復起.
제자등 종전념금념급후념 염념 불피우미염, 종전소유악업우미등죄 실개참회, 원일시소멸 영불부기.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念 念念 不被僑誑染, 從前所有惡業憍誑等罪 悉皆懺悔, 願一時消滅 永不復起.
제자등 종전념금념급후념 염념 불피교광염, 종전소유악업교광등죄 실개참회, 원일시소멸 영불부기.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念 念念 不被嫉妬染, 從前所有惡業嫉妬等罪 悉皆懺悔, 願一時消滅 永不復起.
제자등 종전념금념급후념 염념 불피질투염, 종전소유악업질투등죄 실개참회, 원일시소멸 영불부기.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어리석고 미혹한데 물들지 않고,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된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교만과 속임에 물들지 않고, 예전부터 지은 악업인 교만하고 속인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질투에 물들지 않고 지은 바 악업인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善知識, 已上 是爲無相懺悔 云何名懺 云何名悔, 懺者 懺其前愆 從前所有惡業愚迷憍誑嫉妬等罪
선지식, 이상 시위무상참회 운하명참 운하명회, 참자 참기전건 종전소유악업우미교광질투등죄
悉皆盡懺 永不復起 是名爲懺,
실개진참 영불부기 시명위참,
선지식아, 이상이 무상참회인데 어떤 것을 <참>이라 하고 어떤 것을 <회>라 하느냐하면, 참이라는 것은 그 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으로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교만과 속임과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뉘우쳐서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참이라 하고,
悔者 悔其後過 從今已後所有惡業愚迷憍誑嫉妬等罪 今已覺悟 悉皆永斷 更不復作 是名爲悔 故稱懺悔.
회자 회기후과 종금이후소유악업우미교광질투등죄 금이각오 실개영단 갱불부작 시명위회 고칭참회.
회라는 것은 이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으로 이제부터 이후에 지을 바 악업인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교만과 속임과 질투 등의 죄를 지금 미리 깨달아서 모두 다 영원히 끊어서 다시는 또 짓지 않는 것을 회라고 하므로 참회라 말하느니라.
凡夫 愚迷 只知懺其前愆 不知悔其後過 以不悔故 前愆 不滅 後過又生.
범부 우미 지지참기전건 부지회기후과 이불회고 전건 불멸 후과우생.
前愆 旣不滅 後過 復又生 何名懺悔.
전건 기불멸 후과 부우생 하명참회.
범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만 그 전의 허물만 뉘우칠 줄 알고 앞으로의 허물은 알지 못하여 뉘우칠 줄 모르므로 예전의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의 허물이 또 생기느니라.
앞의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의 허물이 다시 또 생기면 어찌 참회라 하겠느냐.
善知識, 旣懺悔己 與善知識 發四弘誓願. 各須用心正聽.
선지식, 기참회기 여선지식 발사홍서원. 각수용심정청.
선지식아, 이미 참회를 하였으니 선지식과 더불어 <사홍서원>을 일으키자.
각각 마음을 바로 하여 잘 들어라.
自心衆生無邊誓願度,
자심중생무변서원도,
自心煩惱無邊誓願斷,
자심번뇌무변서원단,
自性法門無盡誓願學,
자성법문무진서원학,
自性無上佛道誓願成.
자성무상불도서원성.
내 마음의 중생이 가 없지만 기어코 제도하겠으며,
내 마음의 번뇌가 가 없지만 기어코 끊겠으며,
내 마음의 법문이 한이 없지만 맹세코 배우겠으며,
자성의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습니다.
善知識, 大家 豈不道衆生無邊誓願度 恁麽道 且不是惠能 度.
선지식, 대가 기불도중생무변서원도 임마도 차불시혜능 도.
선지식아,「대중이 중생이 가 없지만 맹세코 건지겠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이 혜능이 제도하는 것이 아니니라.
善知識, 心中衆生 所謂邪迷心, 誑妄心, 不善心, 嫉妬心, 惡毒心如是等心 盡是衆生 各須自性自度 是名眞度.
선지식, 심중중생 소위사미심, 광망심, 불선심, 질투심, 악독심여시등심 진시중생 각수자성자도 시명진도.
선지식아, 각자의 마음 가운데 중생인 이른바, 삿되고 미혹한 마음, 속이고 망령된 마음, 착하지 못한 마음, 질투하는 마음, 악독한 마음 등 이와 같은 마음이 다 이 중생이니 각각 모름지기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을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何名自性自度, 卽自心中 邪見煩惱愚癡衆生 將正見度.
하명자성자도, 즉자심중 사견번뇌우치중생 장정견도.
어떤 것을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즉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의 중생을 바른 견해로 제도하는 것이다.
旣有正見 使般若智 打破愚癡迷妄衆生 各各自度, 邪來 正度 迷來 悟度 愚來 智度 惡來 善度 如是度者 名爲眞度.
기유정견 사반야지 타파우치미망중생 각각자도, 사래 정도 미래 오도 우래 지도 악래 선도 여시도자 명위진도.
이미 바른 견해가 있으므로 반야의 지혜로 어리석고 미혹하여 망령된 중생을 쳐부수어 각각 스스로 제도하되, 삿된 것이 오면 바른 것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하는 이와 같은 제도를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又煩惱無邊誓願斷 將自性般若智 除却虛妄思想心 是也,
우번뇌무변서원단 장자성반야지 제각허망사상심 시야,
又法門無盡誓願學 須自見性 常行正法 是名眞學.
우법문무진서원학 수자견성 상행정법 시명진학.
又無上佛道誓願成 旣常能下心 行於眞正 離迷離覺 常生般若 除眞除妄 卽見佛性 卽言下 佛道成.
우무상불도서원성 기상능하심 행어진정 이미리각 상생반야 제진제망 즉견불성 즉언하 불도성.
또 번뇌가 가 없지만 기어이 끊겠다 하는 것은 자성의 반야 지혜로 허망한 사상(思想)을 없애버리는 것이며,
또 법문이 다함이 없지만 맹세코 배우겠습니다.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견성하여 항상 정법을 행하는 것이며 참된 배움이라 하느니라.
또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습니다. 하는 것은 항상 하심하여 참되고 바른 것을 행하고 미혹도 여의고 깨달음도 여의어서 항상 반야를 내고 참도 없애고 거짓도 없애어 불성을 보며 곧 말 아래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常念修行 是願力法.
상념수행 시원력법.
항상 수행을 생각하여라. 이것이 원력의 법이니라.
善知識, 今發四弘願了 更與善知識 授無相三歸依戒.
선지식, 금발사홍원료 갱여선지식 수무상삼귀의계.
선지식아, 이제 사홍서원을 일으켰으니 다시 선지식들에게 상이 없는 삼귀의의 계를 주겠노라.
善知識,
선지식,
歸依覺兩足尊,
귀의각양족존,
歸依正離欲尊,
귀의정이욕존,
歸依淨衆中尊.
귀의정중중존.
선지식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며,
올바름의 <이욕존>께 귀의하며,
청정함의 <중중존>께 귀의하여라.
從今日去 稱覺爲師 更不歸依邪魔外道 以自性三寶 常自證明 勸善知識 歸依自性三寶.
종금일거 칭각위사 갱불귀의사마외도 이자성삼보 상자증명 권선지식 귀의자성삼보.
오늘부터는 깨달음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된 악마와 외도에 귀의하지 말고 자성삼보로써 항상 스스로 증명하고 선지식에게 권하여 자성삼보에 귀의하게 하라.
佛者 覺也, 法者 正也, 僧者 淨也,
불자 각야, 법자 정야, 승자 정야,
<불>이라는 것은 깨달음이요, <법>이라는 것은 바른 것이요, <승>이라는 것은 청정함이다.
自心 歸依覺 邪迷不生 少欲知足 能離財色 名兩足尊,
자심 귀의각 사미불생 소욕지족 능이재색 명양족존,
自心 歸依正 念念無邪見 以無邪見故 卽無人我貢高 貪愛執著 名離欲尊,
자심 귀의정 염념무사견 이무사견고 즉무인아공고 탐애집착 명이욕존,
自心 歸依正 一切震怒愛慾境界 自性 皆不染著 名衆中尊.
자심 귀의정 일체진로애욕경계 자성 개불염착 명중중존.
자기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됨과 미혹함이 일어나지 않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아서 재물과 여색에서 떠남에 양족존이라 하고,
자기의 마음이 바른 곳에 귀의하여 생각 생각에 사견이 없고 사견이 없으므로 곧 나다 남이다 하며 잘난 체함과 탐욕과 애욕의 집착이 없음에 이욕존이라 하며,
자기의 마음이 청정함에 귀의하여 일체의 번뇌와 애욕의 경계에 자성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음에 중중존이라 하느니라.
若修此行 是自歸依 凡夫 不會 從日至夜 受三歸戒 若言歸依佛 佛在何處, 若不見佛 憑何所歸.
약수차행 시자귀의 범부 불회 종일지야 수삼귀계 약언귀의불 불재하처, 약불견불 빙하소귀.
言却成妄.
언각성망.
만일 이런 행을 닦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인데 범부는 알지 못해서 해가 지고 밤이 되도록 삼귀의의 계를 받는다 하는데, 만일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하지만 부처님이 어느 곳에 계시며, 만일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면 무엇을 빙자하여 귀의한단 말인가. 말이 도리어 허망함을 이루는구나.
善知識, 各自觀察 莫錯用心. 經文 分明言自歸依佛, 不言歸依他佛 自佛不歸 無所依處.
선지식, 각자관찰 막착용심. 경문 분명언자귀의불, 불언귀의타불 자불불귀 무소의처.
선지식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마음을 잘못 쓰지 않도록 하여라.
경문(화엄경 정행품)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스스로 부처에게 귀의하라.」했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하라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는다면 의지할 곳이 없으리라.
今旣自悟 各須歸依自心三寶 內調心性 外敬他人. 是自歸依也.
금기자오 각수귀의자심삼보 내조심성 외경타인. 시자귀의야.
이제 스스로 깨달았으면 각자 자기 마음의 삼보에게 귀의하여 안으로 심성을 고르게 하고 밖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여라.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善知識, 旣歸依自三寶竟 各各志心.
선지식, 기귀의자삼보경 각각지심.
선지식아, 이미 자기의 삼보에게 귀의하였으니 각각 지극한 마음을 가져라.
吾與說一體三身自性佛 令汝等 見三身了然 自悟自性 總隨我道.
오여설일체삼신자성불 영여등 견삼신료연 자오자성 총수아도.
내가 하나의 바탕이면서 세 가지 몸인 자성(自性)불을 설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세 가지의 몸이 뚜렷함을 보게 하고 스스로 자성을 깨닫게 하리니 따라 외워라.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
어자색신 귀의청정법신불,
於自色身 歸依圓滿報身佛,
어자색신 귀의원만보신불,
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
어자색신 귀의천백억화신불.
<자기 육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육신의 원만 보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육신의 천 백억 화신불에 귀의합니다.>
善知識, 色身 是舍宅 不可言歸向者.
선지식, 색신 시사택 불가언귀향자.
선지식아, 육신은 집과 같아서 여기에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三身佛 在自性中 世人 總有 爲自心迷 不見內性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身中 有三身佛.
삼신불 재자성중 세인 총유 위자심미 불견내성 외멱삼신여래 불견자신중 유삼신불.
삼신(三身)불은 자성 가운데 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마음이 미혹하여 안으로 성품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삼신 여래를 찾느라고 자신 가운데에 삼신불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구나.
汝等 聽說. 令汝等 於自身中 見自性 有三身佛.
여등 청설. 영여등 어자신중 견자성 유삼신불.
너희들은 잘 들어라. 너희들로 하여금 자기 몸 안의 자성에 삼신불이 있는 것을 보게 하겠노라.
此三身佛 從自性生 不從外得.
차삼신불 종자성생 불종외득.
이 삼신불은 자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니라.
何名淸淨法身, 世人 性本淸淨 萬法 從自性生.
하명청정법신, 세인 성본청정 만법 종자성생.
어떤 것을 청정법신이라 하는가 하면, 세상 사람들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만법이 자성에서 나온다.
思量一切惡事 卽生惡行 思量一切善事 卽生善行. 如是諸法 在自性中.
사량일체악사 즉생악행 사량일체선사 즉생선행. 여시제법 재자성중.
온갖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행이 일어나고, 온갖 선한 일을 생각하면 곧 선행이 나오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자성 가운데 있다.
如天常淸 日月 常明, 爲浮雲 蓋覆 上明下暗 忽愚風吹雲散 上下俱明 萬象 皆現.
여천상청 일월 상명, 위부운 개부 상명하암 홀우풍취운산 상하구명 만상 개현.
하늘이 맑을 때는 해와 달이 항상 밝지마는,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지만 아래는 어둡다가 홀연히 바람이 불면 구름이 흩어져 위와 아래가 다 밝아지고 모든 것이 다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世人 性常浮游 如彼天雲.
세인 성상부유 여피천운.
세상 사람의 성품이 항상 들떠 있음은 저 하늘의 구름과 같음이라.
善知識, 智如日 慧如月 智慧常明 於外著境 被妄念浮雲 蓋覆 自性 不得明朗,
선지식, 지여일 혜여월 지혜상명 어외착경 피망념부운 개부 자성 부득명랑,
若愚善知識 聞眞正法 自除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 萬法 皆現.
약우선지식 문진정법 자제미망 내외명철 어자성중 만법 개현.
선지식아, <지>는 해와 같고 <혜>는 달과 같아서 지혜는 항상 밝은데 밖으로 경계에 집착해서 헛된 생각의 뜬구름에 덮이므로 자성이 밝지를 못하다가, 만일 선지식을 만나서 참된 정법을 듣고 스스로 어리석음과 망령됨을 없애어 안과 밖이 밝게 하면 자성 가운데에 만법이 모두 다 나타나느니라.
見性之人 亦復如是 此名淸淨法身佛.
견성지인 역부여시 차명청정법신불.
견성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은데 이것을 청정법신불이라 이름 하느니라.
善知識, 自心 歸依自性 是歸依眞佛.
선지식아,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면 이것이 참 부처에 귀의하는 것이다.
自歸依者 除却自性中 不善心 嫉妬心 憍慢心 吾我心 誑妄心 輕人心 慢人心 邪見心 貢高心
자귀의자 제각자성중 불선심 질투심 교만심 오아심 광망심 경인심 만인심 사견심 공고심
及一切時中 不善之行, 常自見己過 不說他人好惡 是自歸依.
급일체시중 불선지행, 상자견기과 불설타인호악 시자귀의.
스스로 귀의한다는 것은 자성 가운데에 있는 착하지 못한 마음과 질투심과 교만과 나라는 생각과 허황한 생각과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과 삿된 마음과 잘난 체 하는 마음 등 언제 어디서나 착하지 못한 행을 모두 없애고, 항상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보되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는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常須下心 普行恭敬 卽是見性通達 更無滯碍 是自歸依.
상수하심 보행공경 즉시견성통달 갱무체애 시자귀의.
모름지기 항상 마음을 낮추고 널리 공경을 행하면 곧 자기의 성품을 보고 통달하게 되어 걸리거나 막힘이 없게 되니 이것을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何名千百億化身, 若不思萬法 性本如空 一念思量 名爲變化, 思量惡事 化爲地獄, 思量善事 化爲天堂,
하명천백억화신, 약불사만법 성본여공 일념사량 명위변화, 사량악사 화위지옥, 사량선사 화위천당,
毒害 化爲龍蛇, 慈悲 化爲菩薩, 智慧 化爲上界, 愚癡 化爲下方.
독해 화위용사, 자비 화위보살, 지혜 화위상계, 우치 화위하방.
어떤 것을 천 백억 화신이라 하는가 하면, 만일 만법을 생각지 아니하면 성품이 본래 허공과 같고 한 생각 헤아리면 이것을 변화라 하는데, 악한 일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선한 일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며, 모진 해를 입히면 변화하여 용이나 뱀이 되고 ,자비를 베풀면 변화하여 보살이 되고, 지혜로우면 변화하여 천상세계가 되고, 어리석으면 변화하여 악도가 되느니라.
自性 變化甚多 迷人 不能省覺 念念起惡 常行惡道 回一念善 智慧卽生 此名自性化身佛.
자성 변화심다 미인 불능성각 염념기악 상행악도 회일염선 지혜즉생 차명자성화신불.
자성이 변화가 매우 많은데 미혹한 사람은 살펴 깨닫지 못하고 생각 생각에 악을 일으켜서 항상 악도에 떨어지는데 한 생각 돌이켜 착해지면 지혜가 곧 생기니, 이것을 이름 하여 자성의 화신불이라 하느니라.
何名圓滿報身 譬如, 一燈 能除千年暗 一智 能滅萬年愚 莫思向前.
하명원만보신 비여, 일등 능여천년암 일지 능멸만년우 막사향전.
어떤 것을 원만보신이라 하는가하면 비유하건대, 한 등이 능히 천년의 어두음을 없애는 것과 같아서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아라.
已過 不可得, 常思於後 念念圓明 自見本性 善惡 雖殊 本性 無二.
이과 불가득, 상사어후 염념원명 자견본성 선악 수수 본성 무이.
이미 지난 것은 얻지 못하니, 항상 후일을 생각하여 생각 생각을 뚜렷하고 밝게 하여 스스로 본성을 보는 것이니, 선과 악은 비록 다르지만 본래 성품은 둘이 아니니라.
無二之性 名爲實性 於實性中 不染善惡 此名圓滿報身佛.
무이지성 명위실성 어실성중 불염선악 차명원만보신불.
둘이 없는 성품을 참다운 성품이라 하는데, 참다운 성품 가운데에서 선악에 물들지 않는 것을 원만보신불이라 하느니라.
自性 起一念惡 滅萬劫善因, 自性 起一念善 得恒沙惡盡, 直至無上菩提 念念自見 不失本念 名爲報身.
자성 기일념악 멸만겁선인, 자성 기일념선 득항사악진, 직지무상보리 염념자견 부실본념 명위보신.
자성에 한 생각 악한 것을 일으키면 만겁동안 착한 씨앗이 없어지고, 자성에 한 생각 착한 것을 일으키면 항하의 모래수 같은 악이 모두 다 없어지니, 곧 바로 위없는 보리에 이르러서 생각 생각 자성을 보아 근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을 보신이라 하느니라.
善知識, 從法身思量 卽是化身佛, 念念自性自見 卽是報身佛. 自悟自修 自性功德 是眞歸依.
선지식, 종법신사량 즉시화신불, 염념자성자견 즉시보신불. 자오자수 자성공덕 시진귀의.
선지식아, 법신에서 생각하면 이것이 곧 화신불이고, 생각 생각에 자성을 스스로 보면 이것이 곧 보신불이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는 자성 공덕이 참다운 귀의이니라.
皮肉 是色身 色身 是舍宅 不言歸依也. 但悟自性三身 卽識自性佛.
피육 시색신 색신 시사택 불언귀의야. 단오자성삼신 즉식자성불.
가죽과 살은 육신이고 육신은 집이라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다만 자성의 삼신을 깨달으면 곧 자성불을 아는 것이니라.
吾有一無相頌 若能頌持 言下 令汝 積劫迷罪 一時消滅. 頌曰
오유일무상송 약능송지 언하 영여 적겁미죄 일시소멸. 송왈
내게 한 무상송이 있으니 만일 외우고 지니면 말 아래에 너희로 하여금 오랜 겁 동안 쌓아온 미혹한 죄를 일시에 소멸케 하리라.”
迷人 修福不修道
미인 수복불수도
只言修福 便是道.
지언수복 변시도.
미혹한 사람은 복만 닦고 도를 닦지 아니하며
단지 말하기를 복을 닦음이 곧 도라 하나니
布施供養福無邊
보시공양복무변
心中三惡元來造.
심중삼악원래조.
보시하고 공양하는 것이 복이 많지만
마음 가운데 삼악은 원래 지었도다.
擬將修福欲滅罪
의장수복욕멸죄
後世 得福罪還在.
후세 득복죄환재.
생각에 복을 닦아 죄를 없애려고 하지만
후세에 복은 받아도 죄는 도리어 있네.
但向心中除罪緣
단향심중제죄연
各自性中眞懺悔.
각자성중진참회.
다만 마음 가운데의 죄의 인연을 없애면
각각 자기의 성품 가운데 참다운 참회니라.
忽悟大乘眞懺悔
홀오대승진참회
除邪行正卽無罪.
제사행정즉무죄.
홀연히 대승의 참다운 참회를 깨달아서
삿됨을 없애고 바른 것을 행하면 곧 죄가 없으리.
學道 常於自性觀
학도 상어자성관
卽與諸佛同一類.
즉여제불동일류.
도를 배우며 항상 자성을 관하면
곧 부처님과 더불어 한 가지가 되리라.
吾祖 惟傳此頓法
오조 유전차돈법
普願見性同一體.
보원견성동일체.
우리 조사가 오직 이 돈법을 전하여
널리 견성을 하여 일체가 되기를 원하시네.
若欲當來覓法身
약욕당래멱법신
離諸法相心中洗.
이제법상심중세.
만일 앞으로 법신을 찾고자 하면
모든 법상을 여의고 마음을 씻어라.
努力自見莫悠悠.
노력자견막유유.
後念 忽絶 一世休
후념 홀절 일세휴
힘써 스스로를 보고 한가히 지내지 말아라.
뒷생각이 홀연히 끊어지면 한 세상 쉬는 것이니
若悟大乘得見性
약오대승득견성
虔恭合掌至心求.
건공합장지심구.
만일 대승을 깨달아 견성하려면
정성스레 합장 공경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여라.
師言. 善知識, 總須誦取 依此修行 言下 見性 雖去吾千里 如常在吾邊 於此言下 不悟 卽對面千里,
사언. 선지식, 총수송취 의차수행 언하 견성 수거오천리 여상재오변 어차언하 불오 즉대면천리,
何勤遠來 珍重好去.
하근원래 진중호거.
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모두 다 모름지기 외워 이를 의지하고 수행하여 말 아래 견성하면 비록 내게서 천리를 가더라도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같고 말 아래 깨닫지 못하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하여 멀리서 힘들여 오겠느냐? 아무쪼록 잘 가거라.”
一衆 聞法 靡不開悟 歡喜奉行.
일중 문법 미불개오 환희봉행.
대중들이 법을 듣고 깨닫지 않은 사람이 없어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第七 機緣品
제칠 기연품
師自黃梅得法 回至韶州曹侯村 人無知者 有儒士劉志略 禮遇甚厚. 志略 有姑爲尼 名 無盡藏.
사자황매득법 회지소주조후촌 인무지자 유유사류지략 예우심후. 지략 유고위니 명 무진장.
대사가 황매로부터 법을 얻으시고 소주의 조후촌으로 돌아오시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선비인 유지략이 매우 두터운 대접을 하였다. 지략의 고모가 비구니였는데 이름은 무진장이었다.
常誦大涅槃經 師 暫聽 卽知妙義 遂爲解說 尼乃執卷問字 師 曰字卽不識 義卽請問.
상송대열반경 사 잠청 즉지묘의 수위해설 니내집권문자 사 왈자즉불식 의즉청문.
항상 대열반경을 외웠는데 대사께서 잠깐 들으시고는 곧 그 심오한 뜻을 아시고 해설하여 주시니 그 비구니가 책을 잡고 글자를 묻기에 대사가 말씀하시길 “글자를 알지 못하니 뜻을 물어라.” 하시니.
尼 曰字尙不識 曷能會義. 師 曰諸佛妙理 非關文字.
니 왈자상불식 갈능회의. 사 왈제불묘리 비관문자.
비구니가 말하기를 “글자도 알지 못하는데 뜻을 어떻게 압니까?” 하므로 대사가 말씀하시길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는 문자와 관계가 없느니라.”하셨다.
尼 驚異之 遍告里中耆德云 此是有道之士 宜請供養 有晉武侯玄孫曹叔良 及居民 競來瞻禮.
니 경이지 변조이중기덕운 차시유도지사 의청공양 유진무후현손조숙량 급거민 경래첨례.
비구니가 놀라고 이상히 여겨서 마을을 두루 다니며 덕이 높은 노인들에게 말하기를「이 사람은 반드시 도가 있는 선비이니 마땅히 청하여 공양하십시오.」하였기에 진무후의 현손인 조숙량과 주민들이 다투어 와서 뵈었다.
時 寶林古寺 自隋末 兵火已廢 遂於故基 重建梵宇 延師居之 俄成寶坊.
시 보림고사 자수말 병화이폐 수어고기 중건범우 연사거지 아성보방.
그때 보림사라는 옛 절이 수나라 말기의 병화로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이 빈터에 다시 법당을 세우고 맞이하여 지내시게 하니 얼마 안 되어 사찰이 이룩되었다.
師住 九月餘日 又爲惡黨 尋逐 師乃遁于前山 被其縱火焚燒草木.
사주 구월여일 우위악당 심축 사내둔우전산 피기종화분소초목.
대사가 머무신지 9개월쯤, 또 나쁜 무리에게 쫓기게 되어 대사가 앞산으로 피하시자 그들이 불을 질러 초목을 다 태웠다.
師 隱身挨入石中 得免 石 於是 有師趺坐膝痕 及衣布之紋 因名避難石.
사 은신애입석중 득면 석 어시 유사부좌슬흔 급의포지문 인명피난석.
대사는 돌 틈에 몸을 숨겨 화를 면하셨는데 그때 대사께서 가부자 하셨던 돌에 무릎 흔적과 옷자락 무늬가 남아 있어 피난석이라고 이름 하였다.
師憶五祖 悔會止藏之囑 遂行 隱于二邑焉.
사억오조 회회지장지촉 수행 은우이읍언.
대사는 오조께서 회(懷)를 만나면 머물고 회(會)를 만나면 숨으라고 당부하시던 것을 기억하시고 이 두 고을에 몸을 숨기셨다.
一僧法海 韶州曲江人也 初參祖師 問曰 卽心卽佛 願垂指諭.
일승법해 소주곡강인야 초참조사 문왈 즉심즉불 원수지유.
법해라는 스님은 소주의 곡강 사람이다. 처음 조사를 참례하고 묻기를 “지금 이 마음이 곧 부처다 하는 것을 원하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하니
師 曰前念不生 卽心, 後念不滅 卽佛, 成一切相 卽心, 離一切相 卽佛, 吾若具說 窮劫不盡 聽吾偈. 曰
사 왈전념불생 즉심, 후념불멸 즉불, 성일체상 즉심, 이일체상 즉불, 오약구설 궁겁부진 청오게. 왈
대사가 말씀하셨다. “앞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곧 마음이요, 뒷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곧 부처이며 일체의 상(相)을 이루는 것이 곧 마음이요, 일체의 상을 여의는 것이 곧 부처인데, 내가 만일 이를 다 말하려면 겁이 다 하여도 다하지 못하느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 보라.
卽心名慧,
즉심명혜,
卽佛乃定
즉불내정
마음이 곧 혜요,
부처가 곧 정(定)이니
定慧等持
정혜등지
意中淸淨.
의중청정.
정과 혜가 서로 같으면
그 뜻이 청정하리라.
悟此法門
오차법문
由汝習性
유여습성
나의 이 법문을 깨달음은
너의 습성을 말미암음이니
用本無生
용본무생
雙修是正.
쌍수시정.
용(用)은 본래 나는 것이 아니므로
쌍으로 닦음이 옳으리라.
法海 言下 大悟 以偈讚曰.
법해 언하 대오 이게찬왈.
법해가 말씀 아래 크게 깨달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卽心元是佛
즉심원시불
不悟而自屈
불오이자굴
지금 이 마음이 원래 부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바르지 못하였는데
我知定慧因
아지정혜인
雙修離諸物.
쌍수이제물.
나는 이제 정과 혜의 원인을 알았으니
쌍으로 닦아 모든 물건을 여의겠습니다.
僧法達 洪州人. 七歲 出家 常誦法華經 來禮祖師 頭不至地 師 訶曰
승법달 홍주인. 칠세 출가 상송법화경 내례조사 두불지지 사 가왈
법달 스님은 홍주 사람이다. 7세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외웠는데 조사에게 예배드릴 때에 머리가 땅에 닿지 않으므로 조사가 꾸짖으며
禮不投地 何如不禮 汝心中 必有一物 蘊習何事耶. 曰念法華經 已及三千部.
예불투지 하여불례 여심중 필유일물 온습하사야. 왈념법화경 이급삼천부.
“절을 할 때 머리가 땅에 닿지 않으니 절을 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느냐. 네 마음속에 반드시 한 물건이 있기 때문인데 무슨 일을 쌓아 익혔느냐.”하시니 “법화경을 이미 삼천 번이나 외웠습니다.”하기에
祖 曰汝若念至萬部 得其經意 不以爲勝 卽與吾偕行 汝今負此事業 都不知過 聽吾偈. 曰
조 왈여약념지만부 득기경의 불이위승 즉여오해행 여금부차사업 도불지과 청오게. 왈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만 번을 외워 그 경을 뜻을 얻었더라도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으면 나와 더불어 함께 행할 것인데 네가 지금 그 일을 자부하며 도무지 허물을 알지 못하니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禮本折萬幢
예본절만당
頭奚不至地.
두해부지지.
예배(禮拜)는 본래 아만의 깃발을 꺽자는 것인데
어찌하여 머리가 땅에 닿지를 않는가.
有我 罪卽生
유아 죄즉생
亡功 福無比.
망공 복무비.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허물이 생겨나고
공(功)을 잊으면 복이 한량없으리라.
師 又曰汝名 什麽 曰法達 師 曰汝名法達 何曾達法. 復說偈曰.
사 우왈여명 십마 왈법달 사 왈여명법달 하증달법. 부설게왈.
대사가 다시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시니 “법달입니다.” 하므로 “너의 이름이 법달이라, 하지만 어찌 법을 통달했겠느냐.”하시며 다시 게송을 설하셨다.
汝今名法達
여금명법달
勤誦未休歇
근송미휴헐
네가 방금 법달이라 하였는데
부지런히 외울 뿐 쉬지 못하니
空誦 但循聲
공송 단순성
明心 號菩薩.
명심 호보살.
공연히 외우면 소리만 쫓고
마음을 밝히면 보살이라 이름 하리.
汝今有緣故
여금유연고
吾今爲汝說.
오금위여설.
네가 이제 인연이 있으므로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但信佛無言
단신불무언
蓮華 從口發.
연화 종구발.
다만 부처님은 말이 없음을 믿으면
연꽃이 입에서 피어나리라.
達 聞偈悔謝曰. 而今而後 當謙恭一切, 弟子 誦法華經 未解經義 心常有疑 和尙 智慧廣大
달 문게회사왈. 이금이후 당겸공일체, 제자 송법화경 미해경의 심상유의 화상 지혜광대
願略說經中義理.
원략설경중의리.
법달이 게송을 듣고 깊이 뉘우치며 말씀드렸다.
“이제부터는 마땅히 일체에 대하여 겸손하겠으며, 공경하겠습니다. 제자가 법화경을 외웠으나 경의 뜻을 알지 못해서 마음에 항상 의심이 있었는데 화상께서는 지혜가 넓고 크시니 원컨대 간략하게 경의 뜻을 말씀해주십시오.”
師 曰法達 法卽心達 汝心不達. 經本無疑 汝心自疑. 汝念此經 以何爲宗.
사 왈법달 법즉심달 여심불달. 경본무의 여심자의. 여념차경 이하위종.
대사가 말씀하셨다.
“법달이 법에는 잘 통달했으나 네 마음은 통달하지 못했구나. 경은 본래 의심할 것이 없는 것인데 네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는구나. 네가 이 경을 외울 때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느냐?”
達 曰學人 根性 暗鈍 從來 但依文誦念 豈知宗趣.
달 왈학인 근성 암둔 종래 단의문송념 기지종취.
법달이 말하기를 “저는 근성이 어둡고 둔하여 이제까지 문자에만 의지하여 외웠을 뿐이니 어찌 근본취지를 알겠습니까?” 하므로
師 曰吾不識文字 汝試取經 誦之一扁. 吾當爲汝解說.
사 왈오불식문자 여시취경 송지일편. 오당위여해설.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문자를 모르니 네가 경을 가지고 한 번 외워보아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해설해주리라.”
法達 卽高聲經 至譬喩品 師 曰
법달 즉고성경 지비유품 사 왈
법달이 곧 고성으로 경을 외워 <서품, 방편품, 비유품>에 이르렀을 때 조사가 이르시기를
止. 此經 元來以因緣出世 爲宗 縱說多種譬喩 亦無越於此.
지. 차경 원래이인연출세 위종 종설다종비유 역무월어차.
“그쳐라. 이 경은 원래 <인연 출세>로써 근본을 삼았으니 비록 여러 가지의 비유를 설하지만 이를 넘지 않는다.
何者因緣 經 云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一大事者 佛之知見也.
하자인연 경 운제불세존 유이일대사인연고 출현어세 일대사자 불지지견야.
어떤 것을 인연이라 하는가 하면 경에 이르시기를 「모든 부처님 세존은 오직 일 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신다.」하셨는데 일대사(한 가지 큰 일)란 곧 부처님의 지견이다.
世人 外迷著相 內迷著空, 若能於相 離相 於空離空 卽是內外不迷.
세인 외미착상 내미착공, 약능어상 이상 어공이공 즉시내외불미.
세상 사람들은 밖으로 미혹하여 상(相)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여 공(空)에 집착하는데, 만일 상에 대하여 상을 여의고 공에 대하여 공을 여의면 곧 안과 밖이 미혹하지 않을 것이다.
若悟此法 一念心開 是爲開佛知見. 佛 猶覺也 分爲四門.
약오차법 일념심개 시위개불지견. 불 유각야 분위사문.
만일 이 법을 깨달아서 한 순간에 마음이 열리면 이것이 부처님의 지견이 열린 바니라.
부처란 깨달음이라는 뜻인데 나누면 네 가지가 되느니라.
開覺知見 示覺知見 悟覺知見 入覺知見.
개각지견 시각지견 오각지견 입각지견.
깨달음의 지견을 열고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며 깨달음의 지견을 깨닫게 하고 깨달음의 지견에 들게 하는 것이다.
若聞開示 便能悟入 卽覺知見本來眞性 而得出現.
약문개시 변능오입 즉각지견본래진성 이득출현.
만일 열어 보이심을 듣고 문득 깨달아 들어가면 곧 깨달음의 지견인 본래의 참 성품이 나타날 것이다.
汝愼勿錯解經意 見他道開示悟入 自是佛之知見 我輩 無分.
여신물착해경의 견타도개시오입 자시불지지견 아배 무분.
네가 경의 뜻을 잘못 알아서「열어 보이어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고 하신 것에 대하여 이것은 부처님의 지견이지 우리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若作此解 乃是謗經毁佛也. 彼旣是佛 已具知見 何用更開.
약작차해 내시방경훼불야. 피기시불 이구지견 하용갱개.
만일 이렇게 이해하면 이것은 경을 비방하는 것이며 부처님을 헐뜯는 것이다.
자기가 이미 부처님이고 이미 지견을 갖추었는데 어찌 다시 열 것이 있겠는가.
汝今當信. 佛知見者 只汝自心 更無別佛.
여금당신. 불지견자 지여자심 갱무별불.
너는 이제 마땅히 믿어라.
부처님의 지견이라는 것은 다만 너 자신의 마음이지 다시 다른 부처님이 없느니라.
蓋爲一切衆生 自蔽光明 貪愛塵境 外緣內擾 甘受驅馳 便勞他世尊 從三昧起 種種苦口 勸令寢息.
개위일체중생 자폐광명 탐애진경 외연내요 감수구치 변노타세존 종삼매기 종종고구 권령침식.
대체로 모든 중생이 스스로 광명을 가리고 육진 경계를 탐내고 애착하여서 밖으로 인연을 일으키고 안으로 흔들려서 쫓고 쫓기는 시달림을 달게 받으므로 부처님께서 수고스럽게도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갖가지 간곡한 말씀으로 권하여 편안히 쉬게 하셨느니라.
莫向外求 與佛無二.
막향외구 여불무이.
밖을 향하여 구하지 않으면 부처님과 더불어 둘이 아니니라.
故 云開佛知見. 吾亦勸一切人 於自心中 常開佛之知見.
고 운개불지견. 오역권일체인 어자심중 상개불지지견.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 하셨느니라.
나도 사람들에게 권하는데 자기의 마음 가운데서 부처님의 지견을 항상 열어라.
世人 心邪 愚迷造罪, 口善心惡 貪瞋嫉妬 諂佞我慢 侵人害物 自開衆生知見.
세인 심사 우미조죄, 구선심악 탐진질투 첨녕아만 침인해물 자개중생지견.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삿되어 어리석고 미혹하여 죄를 짓게, 되며 입으로는 착하지만 마음으로는 약해서 탐내고 성내며 질투하는 마음과 아첨하고 교만함으로 남을 해치고 사물을 해롭게 하여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여느니라.
若能正心 常生智慧 觀照自心 止惡行善 是自開佛之知見 汝須念念 開佛知見 勿開衆生知見.
약능정심 상생지혜 관조자심 지악행선 시자개불지지견 여수념념 개불지견 물개중생지견.
만일 바른 마음으로 항상 지혜를 내어서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아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면 이것이 스스로 부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생각 생각에 부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은 열지 말아라.
開佛知見 卽是出世 開衆生知見 卽是世間, 汝若但勞勞執念 以爲功課者 何異犛牛愛尾.
개불지견 즉시출세 개중생지견 즉시세간, 여약단로로집념 이위공과자 하이이우애미.
부처의 지견을 열면 이것이 곧 세간을 떠난 것이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곧 세간이니, 네가 만일 힘들여 경이나 외우고 생각을 집착하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이우(길고 칼 같은 꼬리를 스스로 핥다가 죽는다는 소)가 제 꼬리를 애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達 曰 若然者 但得解義 不勞誦經耶.
달 왈 약연자 단득해의 불로송경야.
법달이 말하기를 “만일 그렇다면 뜻만 이해하고 경은 수고스럽게 외울 필요가 없습니까?” 하니
師 曰 經有何過 豈障汝念.
사 왈 경유하과 기장여념.
조사가 말씀하셨다. “경에 무슨 허물이 있어서 너보고 못 외우게 하겠느냐.
只爲迷悟 在人 損益 由己 口誦心行 卽是轉經 口誦心不行 卽是被經轉. 聽吾偈, 曰
지위미오 재인 손익 유기 구송심행 즉시전경 구송심불행 즉시피경전. 청오게, 왈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이 사람에게 있고 손해와 이익이 자기에게 달렸으니 입으로 외우며 마음으로 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이고 입으로 외우지만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경에게 굴림을 받는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心迷 法華 轉,
심미 법화 전,
心悟 戰法華.
심오 전법화.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경이 너를 굴리고,
마음이 열리면 네가 법화경을 굴리느니라.
誦經久不明
송경구불명
與義作讐家.
여의작수가.
경을 아무리 외워도 그 뜻을 밝히지 못하면
뜻과는 오히려 원수가 되리라.
無念 念卽正,
무념 념즉정,
有念 念成邪
유념 념성사
생각이 없으면 생각이 곧 바르고,
생각이 있으면 생각이 삿되니
有無俱不計
유무구불계
長御白牛車.
장어백우거.
유와 무를 다 따지지 않으면 오
래도록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놀 수 있으리라.
達 聞偈 不覺悲泣 言下 大悟 而告師 曰法達, 從昔已來 實未曾轉法華 乃被法華轉.
달 문게 불각비읍 언하 대오 이고사 왈법달, 종석이래 실미증전법화 내피법화전.
법달이 게송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울다가 말 아래에 크게 깨달아서 조사께 말씀드리기를, “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고 법화경의 굴림을 받았습니다.”하며
再啓曰 經 云諸大聲聞 乃至菩薩 皆盡思共度量 不能測佛智 今令凡夫 但悟自心 便名佛之知見
재계왈 경 운제대성문 내지보살 개진사공탁량 불능측불지 금령범부 단오자심 변명불지지견
自非上根 未免疑謗.
자비상근 미면의방.
다시 말씀드리기를 “경에서는 대 성문들과 보살들이 모두 생각을 다 하여 함께 헤아리더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헤아릴 수가 없다 하였는데 지금 범부로 하여금 다만 자기의 마음을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지견이라 하시니 자신의 상근기가 아니면 의심이나 비방을 면하지 못하겠습니다.
又經 說三車 羊鹿牛車 與白牛之車 如何區別, 願和尙 再垂開示.
우경 설삼거 양록우거 여백우지거 여하구별, 원화상 재수개시.
또 경에 세 가지 수레를 설하였는데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가 흰 소가 끄는 수레와 어떻게 다른지, 원하옵건대 화상께서 한 번 더 가르침을 열어 주십시오.” 하니
師 曰 經意分明 汝自迷背. 諸三乘人 不能測佛智者 患在度量也. 饒伊盡思共推 轉可縣遠.
사 왈 경의분명 여자미배. 제삼승인 불능측불지자 환재도량야. 요이진사공추 전가현원.
조사가 말씀하시길 “경의 뜻이 분명한데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등진 것이로다. 성문 연각 보살들이 능히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하지 못하는 것도 그 병이 헤아리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생각을 다하고 이치를 따져 보아도 점점 더 먼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니라.
佛 本爲凡夫說 不爲佛說. 此理 若不肯信者 從他退席 殊不知坐却白牛車 更於門外 覓三車.
불 본위범부설 불위불설. 차리 약불긍신자 종타퇴석 수부지좌각백우거 갱어문외 멱삼거.
부처님은 본래 범부를 위하여 설하신 것이지 부처님을 위하여 설하신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만약 기꺼이 믿지 못하는 것이라면 자리에서 물러가도 좋은데 흰 소가 끄는 수레에 앉아 있으면서 다시 문 밖에 있는 세 수레를 찾는 것은 전혀 알 수가 없구나.
況經文 明向汝道 唯一佛乘 無有餘乘 若二若三. 乃至無數方便 種種因緣譬喩言詞 是法 皆爲一佛乘.故 황경문 명향여도 유일불승 무유여승 약이약삼. 내지무수방편 종종인연비유언사 시법 개위일불승.고 汝何不省.
여하불성.
하물며 경문에 너희에게 분명히 이르기를 ‘오직 일불승이요, 다른 이승과 삼승은 없다.’ 하였고 ‘수 없는 방편과 가지가지 인연과 비유와 이야기가 곧 법이며 모두 다 일불승을 위한 것이다.’ 하셨는데 너는 어찌 살피지 못하는가.
三車 是假 爲昔時故 一乘 是實 爲今時故.
삼거 시가 위석시고 일승 시실 위금시고.
세 가지 수레는 거짓이고 옛날을 위한 것이며 일승은 진실하고 지금을 위한 것이다.
只敎汝 去假歸實 歸實之後 實亦無名.
지교여 거가귀실 귀실지후 실역무명.
다만 너희로 하여금 거짓을 버리고 참다운 것에 돌아가게 함인데 참다움에 돌아가면 참다움이란 이름도 없느니라.
應知所有珍財 盡屬於汝 由汝受用 更不作父想 亦不作子想 亦無用想.
응지소유진재 진속어여 유여수용 갱부작부상 역부작자상 역무용상.
마땅히 알아라. 온갖 보배와 재물이 다 너에게 속해있고 네가 쓰기에 달려 있으니 다시는 아버지라는 생각도 하지 말고 아들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며 또 쓴다는 생각도 없어야 하느니라.
是名持法華經. 從劫至劫 手不釋卷 從晝至夜 無不念時也.
시명지법화경. 종겁지겁 수불석권 종주지야 무불념시야.
이것을 법화경을 지닌다고 이름 하느니라. 아득한 과거에서 먼 미래에 이르도록 손에 책을 놓지 않고 아침부터 밤이 되도록 생각지 않는 때가 없음이 되느니라.”
達 蒙啓發 踊躍歡喜 以偈讚曰,
달 몽계발 용약환희 이게찬왈,
법달이 가르침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게송으로 찬탄하기를
經誦三千部
경송삼천부
曹溪一句亡.
조계일구망.
경을 삼천 번 외운 것이
조계의 일구(一句)에 없어졌다.
未明出世旨
미명출세지
寧歇累生狂.
영헐누생광.
출세(出世)의 뜻 밝히지 못하면
어찌 여러 생의 미친 짓을 쉴 것인가.
羊鹿牛 勸設
양록우 권설
初中後善揚.
초중후선양.
양과 사슴과 소를 방편으로 삼아
처음과 중간과 나중에도 잘 설하셨네.
誰知火宅內
수지화택내
元是法中王.
원시법중왕.
누가 불난 집의 속이
원래 이 법왕의 처소인 줄 알았으랴.
師 曰汝今後 方可名念經僧也. 達 從此領玄旨 亦不輟誦經.
사 왈여금후 방가명념경승야. 달 종차령현지 역불철송경.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야 비로소 경을 외우는 스님이라 이름 할 수 있겠구나.” 법달이 이때부터 깊은 뜻을 알았으며 경 외우기를 쉬지 않았다.
僧智通 壽州安豊人.
승지통 수주안풍인.
지통이라는 스님은 수주의 안풍 사람이다.
初看楞伽經 約千餘遍 而不會三身四智 禮師 求解其義.
초간능가경 약천여편 이불회삼신사지 예사 구해기의.
처음에 능가경 보기를 약 천 번을 하였지만 세 가지의 몸과 네 가지의 지혜를 알지 못해서 조사께 예배하고 그 뜻의 해석을 구하였다.
師 曰三身者 淸淨法身 汝之性也, 圓滿報身 汝之智也, 千百億化身 汝之行也.
사 왈삼신자 청정법신 여지성야, 원만보신 여지지야, 천백억화신 여지행야.
조사가 이르시길 “세 가지 몸이라는 것에서 청정법신은 너의 성품이고, 원만보신은 너의 지혜며, 천 백억 화신은 너의 행이다.
若離本性 別說三身 卽名有身無智, 若悟三身 無有自性 卽名四智菩提. 聽吾偈. 曰
약리본성 별설삼신 즉명유신무지, 약오삼신 무유자성 즉명사지보리. 청오게. 왈
만일 본성을 여의고 따로 세 가지 몸을 말한다면 곧 몸만 있고 지혜가 없는 것이며, 만일 세 가지 몸에 자성이 없음을 깨달으면 곧 네 가지 지혜의 보리라 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自性 具三身
자성 구삼신
發明成四智
발명성사지
자성이 삼신(三身)을 갖추었으니
이를 밝히면 사지(四智)를 이루나니
不離見聞緣
불리견문연
超然登佛地.
초연등불지.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불지(佛地)에 오르도다.
吾今爲汝說
오금위여설
諦信永無迷
체신영무미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노니
자세히 믿고 영원히 미혹하지 말아서
莫學馳求者
막학치구자
終日說菩提.
종일설보리.
허겁지겁 달리며 구하는 자가
종일토록 떠드는 보리는 배우지 말아라.
通 再啓曰四智之義 可得聞乎.
통 재계왈사지지의 가득문호.
지통이 다시 여쭙기를 “네 가지 지혜의 뜻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師 曰旣會三身 便明四智 何更問耶. 若離三身 別談四智 此名有智無身也 卽此有智 還成無智 復偈曰.
사 왈기회삼신 변명사지 하갱문야. 약리삼신 별담사지 차명유지무신야 즉차유지 환성무지 부게왈.
대사가 말씀하셨다. “이미 세 가지 몸을 알았다면 네 가지 지혜를 밝힌 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묻느냐? 만일 삼신을 떠나서 별도로 사지를 말한다면 이것은 지혜만 있고 몸이 없는 것이니 지혜가 도리어 무지(無智)를 이룬 것이니라.”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大圓鏡智 性淸淨
대원경지 성청정
平等性智 心無病
평등성지 심무병
妙觀察智 見非功
묘관찰지 견비공
成所作智 同圓鏡
성소작지 동원경
대원경지는 성품이 청정한 것이고(나, 너가 없고, 팔식)
평등성지는 마음에 병이 없는 것이며(혼자, 칠식)
묘관찰지는 견(見)이 공(功)이 아니요(상대, 육식)
성소작지는 둥근 거울과 같은 것이니라.(오식)
五八六七 果因轉
오팔육칠 과인전
但用名言無實性
단용명언무실성
오식과 팔식은 과(果)이고 육식과 칠식은 인(因)을 굴린 것이다.
이름과 말만 있을 뿐 참 성품은 없네.
若於轉處 不留情
약어전처 불류정
繁興永處那伽定
번흥영처나가정
구르는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번잡히 일어나더라도 영원히 나가정(부처님의 삼매)에 있으리라.
通 頓悟性智 遂呈偈曰.
통 돈오성지 수정게왈.
지통이 성품의 지혜를 대번에 깨달아서 게송을 바쳤다.
三身 元我體
삼신 원아체
四智 本心名.
사지 본심명.
세 가지 몸이 원래 나의 몸이고
네 가지 지혜는 본래 마음의 밝음이라.
身智 融無碍
신지 융무애
應物任隨形.
응물임수형.
몸과 지혜가 원융하여 걸림이 없으니
만물에 응함에 형세 따라 맡기네.
起修 皆妄動
기수 개망동
守住匪眞精
수주비진정
수행을 일으킴이 모두 망령된 움직임이요.
머무름을 지키는 것도 참다움이 아니네.
妙旨 因師曉
묘지 인사효
終亡染汚名
종망염오명
묘한 뜻을 스승으로 인하여 깨달으니
마침내 물들었다는 이름도 없어지네.
僧智常 信州貴谿人.
승지상 신주귀계인.
지상스님은 신주 귀계 사람이다.
髫年 出家 志求見性 一日 參禮. 師 問曰汝從何來 欲求何事.
초년 출가 지구견성 일일 참례. 사 문왈여종하래 욕구하사.
어릴 때 출가하여 견성하기를 바라다가 어느 날 찾아뵙고 예를 드리니 조사가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일을 구하고자 하는가?”
曰學人 勤往洪州白峯山 禮大通和尙 蒙示見性成佛之義 未決狐疑 遠來投禮 伏望和尙 慈悲指示.
왈학인 근주홍주백봉산 예대통화상 몽시견성성불지의 미결호의 원래투예 복망화상 자비지시.
“제가 근래에 홍주 백봉산에 가서 대통화상을 뵈었더니 견성성불의 뜻을 보여 주시던데 의심을 풀지 못하여 멀리서 와서 예배드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화상께서 자비로 가르쳐 주십시오.”
師 曰彼 有何言句 汝試擧看.
사 왈피 유하언구 여시거간.
“그곳에서 어떤 말을 하더냐. 네가 한 번 보여 보아라.”
曰智常 到彼 凡經三月 未蒙示誨. 爲法切故 一夕 獨入丈室 請問如何是某甲 本心本性.
왈지상 도피 범경삼월 미몽시회. 위법절고 일석 독입장실 청문여하시모갑 본심본성.
“제가 그곳에 이르러서 석 달이나 지났는데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법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으므로 어느 날 저녁에 홀로 방장실에 들어가「어떤 것이 이 지상의 본래 마음이고 본래 성품입니까?」라고 여쭈었더니
大通 乃曰汝見虛空否. 對曰見. 彼 曰汝見虛空 有相貌否.
대통 내왈여견허공부. 대왈견. 피 왈여견허공 유상모부.
대통화상께서 말씀하시길「네가 허공을 보았느냐?」하시기에「보았습니다.」하니「네가 본 허공이 모양이 있더냐?」하시기에
對曰虛空 無形 有何相貌. 彼 曰汝之本性 猶如虛空 了無一物可見 是名正見.
대왈허공 무형 유하상모. 피 왈여지본성 유여허공 요무일물가견 시명정견.
「허공은 형체가 없는데 무슨 모양이 있겠습니까!」하였더니 말씀하시길「너의 본래 성품도 허공과 같아서 마침내 한 물건도 볼 것이 없는데 이것을 정견이라 한다.
了無一物可知 是名眞知 無有靑黃長短 但見本源淸淨 覺體圓明 卽名見性成佛 亦名如來知見.
요무일물가지 시명진지 무유청황장단 단견본원청정 각체원명 즉명견성성불 역명여래지견.
마침내 한 물건도 알 것이 없음을 깨달아서 이것이 참되게 아는 것이며 푸른 것, 노란 것, 긴 것, 짧은 것이 없고 다만 근본 바탕이 청정하고 깨달음의 본체가 뚜렷이 밝음을 보는 것이 곧 견성성불이며 여래의 지견이라 하셨습니다.」
學人 雖聞此說 猶未決了 乞和尙 開示.
학인 수문차설 유미결료 걸화상 개시.
제가 비록 이 말씀을 들었으나 확실히 알지 못했사오니 빌건대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師 曰彼師所說 猶存見知 故 令汝未了 吾今示汝一偈.
사 왈피사소설 유존견지 고 영여미료 오금시여일게.
조사가 말씀하셨다. “그 스님의 말씀에는 아직도 보는 것과 아는 것이 남아 있으므로 너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한 게송을 보이리라.”
不見一法存無見.
불견일법존무견.
大似浮雲遮日面.
대사부운차일면.
한 법도 보지 않고 없다는 생각을 두는가.
크게 뜬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과 같구나.
不知一法守空知,
부지일법수공지,
還如太虛 生閃電.
환여태허 생섬전.
한 법도 알지 못해서 공한 지(知)를 지킴이여,
도리어 허공에 번개가 번쩍 일어남과 같도다.
此之知見 瞥然興
차지지견 별연흥
錯認 何曾解方便.
착인 하증해방편.
이런 지견이 잠시라도 일어나면
잘못 안 것이니 어찌 방편인줄 알리요.
汝當一念自知非
여당일념자지비
自己靈光 常顯現.
자기영광 상현현.
네가 마땅히 한 생각에 그릇된 줄만 알면
자기의 신령스런 광명이 항상 드러나리라.
常 聞偈已 心意豁然 乃述偈曰.
상 문게이 심의활연 내술게왈.
지상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활짝 열려 게송을 지어 올렸다.
無端起知見
무단기지견
著相求菩提
저상구보리
무단히 지견을 일으켜서
상에 빠져 보리를 구하나니
情存一念悟
정존일념오
寧越昔時迷.
영월석시미.
마음에 한 생각 깨달음을 두면
어찌 옛날의 미혹함을 넘으리오.
自性覺源體
자성각원체
隨照枉遷流
수조왕천유
자성의 각원체(覺源體)가
비침을 따라 잘못 흐르니
不入祖師室
불입조사실
茫然趣兩頭.
망연취양두.
조사의 방에 들지 못하면
막연하게 두 가지만 키우리라.
智常 一日 問師曰佛說三乘法 又言最上乘 弟子未解 願爲敎授.
지상 일일 문사왈불설삼승법 우언최상승 제자미해 원위교수.
지상이 어느 날 조사에게 여쭙기를 “부처님이 삼승법을 설하시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니 제자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가르쳐 주십시오.”
師 曰汝觀自本心 莫著外法相. 法無四乘 人心 自有等差 見聞轉誦 是小乘, 悟法解義 是中乘,
사 왈여관자본심 막착외법상. 법무사승 인심 자유등차 견문전송 시소승, 오법해의 시중승,
조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기의 본심만 보고 밖의 법상에 집착하지 말아라. 법에는 네 가지 승이 없는데 사람들의 마음에 차별이 있어서 듣고 외우기만 하는 것은 소승이고, 법을 깨달아 뜻을 알면 중승이며,
依法修行 是大乘, 萬法盡通 萬法具備 一切不染 離諸法相 一無所得 名最上乘.
의법수행 시대승, 만법진통 만법구비 일체불염 이제법상 일무소득 명최상승.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대승이고, 만법을 다 통하여 만법을 다 갖추되 일체에 물들지 않고 모든 법상을 여의어서 하나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최상승이라 이름 하느니라.
乘是行義 不在口爭 汝須自修 莫問吾也. 一切時中 自性自如.
승시행의 부재구쟁 여수자수 막문오야. 일체시중 자성자여.
승이라는 것은 곧 행한다는 뜻이며 입으로 다투는데 있지 않으니 네가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아라. 언제 어느 때나 자성은 스스로 여여 하니라.”
常 禮謝執侍 終師之世.
상 예사시 종사지세.
지상이 예배드리고 조사가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항상 모셨다.
一僧志道 廣州南海人也.
일승지도 광주남해인야.
지도라는 스님은 광주의 남해 사람이다.
請益曰學人 自出家 覽涅槃經 十載有餘 未明大意 願和尙 垂誨.
청익왈학인 자출가 남열반경 십재유여 미명대의 원화상 수회.
법문을 청하며 말씀드리길 “제가 출가해서 열반경을 두루 본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대의를 밝히지 못했사오니 원컨대 화상께서 가르침을 주옵소서.”
師 曰汝何處 未明. 曰諸行 無常 是生滅法 生滅 滅已 寂滅 爲樂 於此 疑惑.
사 왈여하처 미명. 왈제행 무상 시생멸법 생멸 멸이 적멸 위락 어차 의혹.
조사가 “네가 어느 곳을 밝히지 못했는고?” 하시자 “「모든 현상이 무상하여 나고 죽는 법이니 나고 죽음이 없어지면 적멸이 낙이 된다.」하는 것에 의심이 있습니다.” 하므로
師 曰汝作麽生疑. 曰一切衆生 皆有二身 謂色身法身也.
사 왈여작마생의. 왈일체중생 개유이신 위색신법신야.
色身 無常 有生有滅 法身 有常 無知無覺 經 云生滅 滅已 寂滅 爲樂者 不審.
색신 무상 유생유멸 법신 유상 무지무각 경 운생멸 멸이 적멸 위락자 불심.
“네가 어떻게 의심하는가.” 하시니 말하기를 “일체 중생이 모두 두 가지 몸이 있으니 이른바 색신(육신)과 법신입니다. 색신은 무상하여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마는 법신은 항상하여 앎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데 경(열반경)에 이르기를 「나고 죽음이 멸하여 마치면 적멸이 낙이 된다.」하는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何身 寂滅 何身 受樂. 若色身者 色身 滅時 四大分散 全然是苦 苦不可言樂.
하신 적멸 하신 수락. 약색신자 색신 멸시 사대분산 전연시고 고불가언락.
若法身 寂滅 卽同草木瓦石 誰當受樂.
약법신 적멸 즉동초목와석 수당수락.
어떤 몸이 적멸이며, 어떤 몸이 낙을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만일 육신이라면 육신이 없어질 때에 사대가 흩어져서 아주 괴로울 뿐인데 괴로움을 낙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 법신이라면 적멸하여 곧 초목이나 흙이니 돌과 같은 것인데 누가 마땅히 낙을 받습니까?
又法性 是生滅之體 五蘊 是生滅之用 一體五用 生滅 是常 生卽從體起用 滅卽攝用歸體 若聽更生
우법성 시생멸지체 오온 시생멸지용 일체오용 생멸 시상 생즉종체기용 멸즉섭용귀체 약청갱생
卽有情之類 不斷不滅.
즉유정지류 부단불멸.
또 법의 성품은 나고 죽는 것의 체(體)이고 오온은 생멸의 용(用)이니 한 체에 다섯 작용(色, 受, 想, 行, 識)으로 나고 죽는 것은 떳떳한(常)것으로써 나는 것은 본체에서 일으킨 작용이고 죽는 것은 작용을 거두어서 본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若不聽更生 卽永歸寂滅 同於無情之物 如是卽一切諸法 被涅槃之所禁伏 常不得生 何樂之有.
약불청갱생 즉영귀적멸 동어무정지물 여시즉일체제법 피열반지소금복 상부득생 하락지유.
만일 다시 난다고 하면 곧 유정의 종류(중생살이)에서 끊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다시 나지 않는다고 하면 영원히 적멸한 곳으로 돌아가서 무정의 물질과 같을 텐데 이와 같다면 모든 법이 열반에 묶이어 오히려 나지도 못할 것이니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師 曰汝是釋子 何習外道 斷常 邪見 而議最上乘法. 據汝所說 卽色身外 別有法身 離生滅 求於寂滅.
사 왈여시석자 하습외도 단상 사견 이의최상승법. 거여소설 즉색신외 별유법신 이생멸 구어적멸.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부처님의 제자인데 어찌 외도의 단(斷), 상(常)의 삿된 소견을 익혀 최상승법을 의논하려 하느냐. 네가 말한 대로 한다면 곧 육신 외에 별도로 법신이 있으며 생멸을 떠나서 적멸을 구하는 것이다.
又推涅槃常樂 言有身受用 斯乃執悋生死 眈著世樂 汝今當知.
우추열반상락 언유신수용 사내집린생사 탐착세락 여금당지.
또 열반의 항상 즐거움도 몸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는 생사를 집착하고 아껴서 세간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것이다.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라.
佛 爲一切迷人 認五蘊和合 爲自體相, 分別一切法 爲外塵相 好生惡死, 念念遷流 不知夢幻虛假
불 위일체미인 인오온화합 위자체상, 분별일체법 위외진상 호생악사, 념념천유 부지몽환허가
枉受輪廻, 以常樂涅槃 翻爲苦相 終日馳求,
왕수윤회, 이상락열반 번위고상 종일치구,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미혹한 사람들이 오온이 화합된 것을 자기의 근본 모습으로 삼고, 일체법을 분별하여 바깥 모습으로 삼아서 나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며, 생각 생각에 바뀌며 흘러가서 꿈이고 허깨비이며 거짓인줄 모르고 잘못 윤회를 받아서, 항상 즐거운 열반을 도리어 괴로운 것으로 잘못 알고 종일토록 찾아 헤매므로,
佛 愍此故 乃示涅槃眞樂 刹那 無有滅相 刹那 無有滅相, 更無生滅可滅 是卽寂滅現前.
불 민차고 내시열반진락 찰나 무유멸상 찰나 무유멸상, 갱무생멸가멸 시즉적멸현전.
부처님이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열반의 참다운 즐거움은 찰나에도 나는 상이 없으며 찰나에도 없어지는 상이 없어서, 다시 생과 멸이 멸할 것도 없는 것으로 즉 적멸이 앞에 드러나는 것임을 보이신 것이니라.
當現前時 亦無現前之量 乃謂常樂.
당현전시 역무현전지량 내위상락.
앞에 드러났을 때에 앞에 드러났다는 생각도 없어야 상락(常樂)이라 하느니라.
此樂 無有受者 亦無不受者, 豈有一體五用之名, 何況更言涅槃 禁伏諸法 令永不生. 斯乃謗佛毁法.
차락 무유수자 역무불수자, 기유일체오용지명, 하황갱언열반 금복제법 영영불생. 사내방불훼법.
聽吾偈 曰.
청오게 왈.
이 낙을 받는 자도 없고 또한 받지 않는 자도 없는 것이니, 어찌 하나의 체에 다섯 가지 용이라는 이름이 있겠으며, 어찌 하물며 다시 열반이 모든 법을 묶어서 영원히 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겠느냐. 이런 말은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헐뜯는 것이로다.”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無上大涅槃,
무상대열반,
圓明常寂照
원명상적조
위가 없는 대 열반이여,
뚜렷이 밝아 항상 고요히 비치거늘
凡愚 謂之死
범우 위지사
外道 執爲斷
외도 집위단
어리석은 범부는 죽는다고 말하고
외도는 집착하여 단멸(斷滅)을 삼으며
諸求二乘人
제구이승인
目以爲無作.
목이위무작.
이승(二乘)을 구하는 모든 사람은
하는 것 없음을 내세우네.
盡屬情所計
진속정소계
六十二見本.
육십이견본.
모두 다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
육십이견의 근본이로다.
妄立虛假名
망립허가명
何爲眞實義.
하위진실의.
망령되이 세운 헛된 이름이리니
어찌 진실한 뜻이 되리요.
惟有過量人
유유과량인
通達無取捨
통달무취사
오직 헤아림을 초월한 사람이라야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음을 통달하여서
以知五蘊法
이지오온법
及以蘊中我
급이온중아
오온법을 알아서
오온 가운데의 나와
外現衆色像
외현중색상
一一音聲相
일일음성상
밖으로 나타나는 온갖 색상과
낱낱 음성의 상이
平等如夢幻
평등여몽환
不起凡聖見
불기범성견
평등하여 꿈이고 환상인 줄 알아서
범부다 성인이다는 소견이 나지 않고
不作涅槃解
부작열반해
二邊三際斷
이변삼제단
열반의 알음알이도 짓지 않으며,
이변(二邊)과 삼제(三際)가 끊어져서
常應諸根用
상응제근용
而不起用想
이불기용상
항상 모든 근기를 맞추어 쓰지만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分別一切法
분별일체법
不起分別想
불기분별상
일체 법을 분별하지만
분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니
劫火燒海底
겁화소해저
風鼓山相擊
풍고산상격
겁화(劫火)가 일어나 바다 밑을 태우고
바람이 불어와서 산이 서로 부딪칠지라도
眞常寂滅樂
진상적멸락
涅槃相 如是.
열반상 여시.
참되고 항상 적멸의 즐거움이라.
열반의 모습 이와 같으니라.
吾今强言說
오금강언설
令汝捨邪見
영여사사견
내가 이제 굳이 말한 것을
너로 하여금 사견을 버리게 함이니
汝勿隨言解
여물수언해
許汝知少分.
허여지소분.
네가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네가 조금 알았다고 허락하리라.
志道 聞偈 大悟 踊躍 作禮而退.
지도 문게 대오 용약 작례이퇴.
지도가 게송을 듣고 크게 깨달아서 뛸 듯이 기뻐하며 절을 하고 물러갔다.
行思禪師 姓 劉氏 吉州安城人也.
행사선사 성 류씨 길주안성인야.
행사선사의 성은 유씨이고 길주 안성 사람이다.
聞曹溪法席 盛化 徑來參禮 遂問曰. 當何所務 卽不落階級.
문조계법석 성화 경래참례 수문왈. 당하소무 즉불락계급.
조계의 법석이 성황을 이룬다는 말을 듣고 바로 와서 예를 드리고 물었다.
“마땅히 어떻게 힘써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師 曰汝 曾作什麽來. 曰聖諦 亦不爲.
사 왈여 증작십마래. 왈성체 역불위.
조사가 말씀하시길 “네가 일찍이 무엇을 어떻게 해 왔느냐?” 하시니
“성인의 진리도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하므로
師 曰落何階級. 曰聖諦 尙不爲 何階級之有. 師 深器之 令思 首衆.
사 왈락하계급. 왈성체 상불위 하계급지유. 사 심기지 영사 수중.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느냐?” 하시니 “성인의 진리도 오히려 하지 않았는데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하므로 조사가 깊이 법기로 여기시고 행사를 대중의 우두머리로 삼으셨다.
一日 師 謂曰汝當分化一方 無令斷絶. 思旣得法 遂回吉州靑原山 弘法紹化.
일일 사 위왈여당분화일방 무령단절. 사기득법 수회길주청원산 홍법소화.
어느 날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땅히 한 지방을 맡아 교화하여 법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하셨다. 행사가 이미 법을 얻었으므로 길주의 청원산으로 돌아가 법을 크게 펴고 교화하였다.
悔讓禪師 金州杜氏 子也.
회양선사 김주두씨 자야.
회양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初謁嵩山安國師 安 發之曹溪參扣 讓 至禮拜.
초알숭산안국사 안 발지조계참구 양 지례배.
처음에 숭산의 안국사를 뵈었는데 안국사가 조계에 가서 뵈옵고 물어보라 하므로 찾아와서 예배하였다.
師 曰甚處來. 曰嵩山. 師 曰什麽物 恁麽來. 曰說似一物 卽不中.
사 왈심처래. 왈숭산. 사 왈십마물 임마래. 왈설사일물 즉부중.
조사가 말씀하셨다. “어느 곳에서 왔는고?” “숭산에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한 물건이라고 말하여도 맞지 않습니다.”(8년 뒤 대답)
師 曰還可修證否. 曰修證 卽不無 汚染 卽不得.
사 왈환가수증부. 왈수증 즉불무 오염 즉부득.
“도리어 가히 닦아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냐?”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물들어 더럽혀지지는 않습니다.”
師 曰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如是 吾亦如是.
사 왈지차불오염 제불지소호념 여기여시 오역여시.
“다만 때묻지도 물들지도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바인데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西天般若多羅 讖 汝足下 出一馬駒 踏殺天下人 應在汝心 不須速說.
서천반야다라 참 여족하 출일마구 답살천하인 응재여심 불수속설.
서천의 반야다라가 예언하시기를 너의 발아래에 망아지가 한 마리 나와서 천하의 사람을 밟아 죽이리라 하셨으니 마땅히 네 마음에만 두고 모름지기 속히 설하지 말지어다.”
讓 豁然契會 遂執侍左右 一十五載 日臻玄奧 後往南嶽 大闡禪宗.
양 활연계회 수집시좌우 일십오재 일진현오 후왕남악 대천선종.
회양이 활연히 깨닫는 바가 있어서 좌우에서 모시기를 15년이니 하였으며, 날로 더욱 깊고 오묘한 경지에 들어갔으며 뒤에 남악으로 가서 선종을 크게 드날렸다.
永嘉玄覺禪師 溫州戴氏子.
영가현각선사 온주대씨자.
영가 현각선사는 온주대씨의 자손이다.
少習經論 精天台止觀法門 因看維摩經 發明心地.
소습경론 정천태지관법문 인간유마경 발명심지.
젊어서부터 경과 논을 익혀 천태의 지관 법문에 정통하였는데 유마경을 보다가 마음자리를 밝히게 되었다.
偶師弟子玄策 相訪 與其劇談, 出言 暗合諸祖 策 云仁者 得法師 誰.
우사제자현책 상방 여기극담, 출언 암합제조 책 운인자 득법사 수.
우연히 조사의 제자인 현책이 찾아와서 그와 더불어 법에 대하여 깊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하는 말이 은근히 조사들의 뜻에 맞으므로 현책이 “인자에게 법을 주신 스승은 누구십니까?” 하니
曰我聽方等經論 各有師承 後於維摩經 悟佛心宗 未有證明者.
왈아청방등경론 각유사승 후어유마경 오불심종 미유증명자.
현각이 말하길 “내가 방등경론을 들을 적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뒤에 유마경에서 불심종(佛心宗)을 깨닫고는 아직 증명해 주실 분이 없습니다.” 하였다.
策 云威音王已前 卽得 威音王已後 無師自悟 盡是天然外道.
책 운위음왕이전 즉득 위음왕이후 무사자오 진시천연외도.
현책이 “위음왕불 이전에는 그럴 수 있었지만 위음왕불 이후에는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은 천연외도라 하였습니다.” 하니
云 願仁者 爲我證據. 策 云我言 輕. 曹溪 有六祖大師 四方 雲集 幷是受法者 若去 卽與偕行.
운 원인자 위아증거. 책 운아언 경. 조계 유육조대사 사방 운집 병시수법자 약거 즉여해행.
현각이 “그렇다면 나를 위하여 증거 하여 주십시오.”하므로 현책이 말하기를 “나의 말은 가볍습니다. 조계에 육조대사가 계시는데 사방에서 모여들어 법을 받고 있으니 만일 가시겠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하였다.
覺 遂同策來參 繞師三匝 振錫而立, 師 曰夫沙門者 具三千威儀 八萬細行 大德 自何方而來 生大我慢.
각 수동책래참 요사삼잡 진석이립, 사 왈부사문자 구삼천위의 팔만세행 대덕 자하방이래 생대아만.
현각이 드디어 현책과 같이 와서 찾아뵈었는데 조사의 주위를 세 번 돌고는 지팡이를 짚고 서 있으므로 조사가 “무릇 사문은 3천의 위의와 8만의 세행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덕은 어느 곳에서 왔기에 큰 아만을 부리는가?” 하시니,
覺 曰生死事大 無常 迅速. 師 曰何不體取無生 了無速乎.
각 왈생사사대 무상 신속. 사 왈하불체취무생 요무속호.
현각이 말하길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하나이다.” 하므로 “어찌 나는 것이 없음을 체달하지 못하며 빠르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자
曰體卽無生 了本無速. 師 曰如是如是. 玄覺 方具威儀 禮拜 須臾 告辭.
왈체즉무생 요본무속. 사 왈여시여시. 현각 방구위의 예배 수유 고사.
“체달함에는 곧 생겨남이 없고 요달함에는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하기에 조사가 “옳다. 옳다.”하시니 현각이 바야흐로 위의를 갖추어 예배하고 곧 하직인사를 드렸다.
師 曰返太速乎. 曰本自非動 豈有速也.
사 왈반태속호. 왈본자비동 기유속야.
조사가 “도리어 너무 빠르지 않느냐?” 하시니 “본래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하였다.
師 曰誰知非動. 曰仁者 自生分別. 師 曰汝甚得無生之意. 曰無生 豈有意耶.
사 왈수지비동. 왈인자 자생분별. 사 왈여심득무생지의. 왈무생 기유의야.
조사께서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하시니 “스승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하였다.
조사께서 “네가 완전히 무생의 뜻을 얻었도다.”하시니 “무생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하므로
師 曰無意 誰當分別. 曰分別 亦非意. 師 曰善哉 少留一宿.
사 왈무의 수당분별. 왈분별 역비의. 사 왈선재 소류일숙.
“뜻이 없으면 누가 마땅히 분별하겠느냐?” 하시니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하였다.
조사가 이르시기를 “장하도다.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도록 하라.” 하셨다.
時 謂一宿覺 後 著證道歌 盛行于世.
시 위일숙각 후 저증도가 성행우세.
그때의 일로 그를 일숙각(깨닫고 하룻밤 잠)이라 하였는데 뒤에 증도가를 지으니 세간에 성행하였다.
禪者智隍 初參五祖 自謂已得正受 庵居長坐 積二十年,
선자지황 초참오조 자위이득정수 암거장좌 적이십년,
선자 지황은 처음 오조를 참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이미 삼매를 얻었다 하며 암자에서 20년 동안이나 장좌불와를 하고 있었는데
師 弟子玄策 游方 至河朔 聞隍之名 造庵問云 汝在此 作什麽. 隍 云入定.
사 제자현책 유방 지하삭 문황지명 조암문운 여재차 작십마. 황 운입정.
조사의 제자인 현책이 사방을 다니다가 하삭(땅이름)에 이르러서 지황의 이름을 듣고 암자로 찾아가 “그대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십니까?”하니 황이 말하길 “정에 듭니다.”하므로
策 云汝云入定 爲有心入耶. 無心入耶. 若無心入者 一切無情草木瓦石 應合得定.
책 운여운입정 위유심입야. 무심입야. 약무심입자 일체무정초목와석 응합득정.
“그대가 정에 든다 하니 마음이 있어 듭니까? 마음이 없어 듭니까? 만일 마음이 없이 든다 하면 일체 무정인 초목과 돌과 기왓장도 마땅히 정을 얻을 것이오.
若有心入者 一切有情含識之流亦應得定. 隍 曰我正入定時 不見有有無之心.
약유심입자 일체유정함식지류역응득정. 황 왈아정입정시 불견유유무지심.
만일 마음이 있어 든다 하면 알음알이가 있는 온갖 중생들도 마땅히 정을 얻을 것이 아닙니까?” 하니 “내가 바르게 정에 들 때에는 <있다>, <없다>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하므로
策 云不見有有無之心 卽是常定 何有出入. 若有出入 卽非大定.
책 운불견유유무지심 즉시상정 하유출입. 약유출입 즉비대정.
“있다와 없다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면 이것이 곧 항상 정인데 어찌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습니까? 만일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다면 큰 정이 아닙니다.” 하자,
隍 無對 良久 問曰師嗣誰耶. 策 云我師 曹溪六祖. 隍 云六祖 以何爲禪定.
황 무대 양구 문왈사사수야. 책 운아사 조계육조. 황 운육조 이하위선정.
황이 대답을 못하고 한참 있다가 “스님은 누구의 법을 이었습니까?” 라고 물었다.
“나의 스승은 조계의 육조대사입니다.”
“육조는 무엇으로 선정을 삼으십니까?”
策 云我師所說 妙湛圓寂 體用 如如. 五陰本空 六塵 非有, 不出不入 不定不亂.
책 운아사소설 묘담원적 체용 여여. 오음본공 육진 비유, 불출불입 부정불란.
“우리 스승의 설법은 묘하고 맑고 둥글고 고요하여 그 체와 용이 여여(如如)합니다.
오음(오온)이 본래 공하고 육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며 정(定)도 아니고 어지러운 것도 아닙니다.
禪性 無住 離住禪寂 禪性 無生 離生禪想. 心如虛空 亦無虛空之量.
선성 무주 이주선적 선성 무생 이생선상. 심여허공 역무허공지량.
참선의 성질은 머무름이 없는지라 고요한데 머무름을 떠났고 선의 성질은 생겨나는 것이 없는지라 선이라는 관념을 내는 것을 떠났습니다. 마음이 허공과 같지만 허공과 같다는 헤아림도 없습니다.”
隍 聞是說 徑來謁師 師 問云仁者何來.
황 문시설 경래알사 사 문운인자하래.
황이 이 말을 듣고 바로 와서 조사를 찾아뵈니 조사가 물으셨다. “인자는 어찌 왔는가?”
隍 具述前緣 師 云誠如所言. 汝但心如虛空 不著空見 應用無碍, 動靜無心, 凡聖情忘 能所俱泯,
황 구술전연 사 운성여소언. 여단심여허공 불착공견 응용무애, 동정무심, 범성정망 능소구민,
性相如如 無不定時也.
성상여여 무부정시야.
황이 지난번의 인연을 다 말씀드리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진실로 말한 바와 같다. 그대는 다만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되 비었다는 소견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응용하여 걸림이 없으며, 움직임과 고요함에 마음이 없으며,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생각이 없어져 능(주관)과 소(객관)가 다 없어지며, 성품과 형상이 여여하여 정(定)이 아닌 때가 없으리라.”
隍 於是 大悟 二十年所得心 都無影響.
황 어시 대오 이십년소득심 도무영향.
황이 이에 크게 깨달아서 20년에 얻은바 마음이 도무지 그림자조차도 없었다.
其夜 何北士庶 聞空中 有聲云隍禪師 今日 得道.
기야 하북사서 문공중 유성운황선사 금일 득도.
그날 밤 하북 땅의 선비와 백성들이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황 선사가 오늘에야 도를 얻었다.” 하였다.
隍 後 禮辭 復歸河北 開化四衆.
황 후 예사 복귀하북 개화사중.
지황이 뒤에 예배하고 하직하여 다시 하북으로 돌아가 사부대중을 교화하였다.
一僧 問師云 黃梅意旨 甚麽人 得. 師 云會佛法人 得. 僧 云和尙 還得否. 師 云我不會佛法.
일승 문사운 황매의지 심마인 득. 사 운회불법인 득. 승 운화상 환득부. 사 운아불회불법.
한 스님이 조사에게 “황매(5조)의 참 뜻을 어떤 사람이 얻었습니까?” 라고 여쭈니 조사가 “불법을 아는 사람이 얻었느니라.” 하시자 그 스님이 “화상께서는 얻었습니까?” 하기에 “나는 불법을 알지 못하노라.” 하셨다.
師 一日 欲濁所授之衣 而無美泉 因至寺後五里許 見山林 鬱茂 瑞氣 盤旋 師 振錫卓地,
사 일일 욕탁소수지의 이무미천 인지사후오리허 견산림 울무 서기 반선 사 진석탁지,
조사께서 하루는 전해 받으신 법의를 세탁하려 하셨는데 좋은 샘이 없어서 절 뒤로 5리쯤을 가시니 울창한 숲 속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음을 보시고 주장자를 떨쳐 땅에 세우시니,
泉 應手而出 積以爲池 乃跪膝 浣衣石上, 忽有一僧 來 禮拜云方辯 是西蜀人.
천 응수이출 적이위지 내궤슬 완의석상, 홀유일승 내 예배운방변 시서촉인.
샘이 손을 따라 솟구쳐 올라 와 못이 되므로 무릎을 꿇고 돌 위에서 옷을 빨고 있었는데, 홀연히 한 스님이 앞에 와서 예배하며 말하기를 “저는 방변이라 하는 서촉 사람입니다.
昨於南天竺國 見達摩大師 囑方辯 速往唐土 吾傳大迦葉 正法眼藏 及僧伽梨 見傳六代 於韶州曹溪
작어남천축국 견달마대사 촉방변 속왕당토 오전대가섭 정법안장 급승가리 견전육대 어소주조계
汝去瞻禮.
여거첨례.
어제 남 천축국에서 달마대사를 뵈었더니, 저에게 당부하시기를「속히 당나라로 가거라. 내가 전한 대가섭의 정법안장과 승가리가 여섯 대를 전하여 소주의 조계에 있으니 네가 가서 참배하라.」하시기에
方辯遠來 願見我師 傳來衣鉢. 師乃出示 次問上人 攻何事業. 方辯 曰善塑. 師 正色曰汝試塑看.
방변원래 원견아사 전래의발. 사내출시 차문상인 공하사업. 방변 왈선소. 사 정색왈여시소간.
제가 멀리서 찾아왔사오니 원하옵건대 전해져 내려오는 의발을 보여 주십시오.” 하므로 조사가 내여 보이신 다음에 물으셨다. “그대는 무슨 일을 익혔는가?”
방변이 말하기를 “소상을 잘 합니다.” 하므로, 조사가 정색을 하여 “네가 나의 모습을 한번 만들어 보아라.” 하시니
方辯 罔措 數日 塑就眞相 可高七寸 曲盡其妙 師 笑曰汝只解塑性 不解佛性.
방변 망조 수일 소취진상 가고칠촌 곡진기묘 사 소왈여지해소성 불해불성.
방변이 망설이다가 수일만에 조사의 실제 모습을 만드니 높이가 7촌이고 아주 절묘하고 세밀하였다. 조사에게 바쳐 드리니 조사가 웃으시며 “네가 다만 흙을 빚는 도리만 알고 불성은 모르는구나.” 하시며
師 舒手 摩方辯頂曰 永爲人天福田.
사 서수 마방변정왈 영위인천복전.
손을 펴서 방변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영원히 인간과 천상의 복전이 되어라.”
有僧 擧臥輪禪師偈云 臥輪 有伎倆 能斷百思想. 對境 心不起 菩提日日長.
유승 거와륜선사게운 와륜 유기량 능단백사상. 대경 심불기 보리일일장.
한 스님이 와륜 선사의 게송이라 하며 외우기를「와륜은 기량이 있어서 능히 백가지 사상을 끊는지라.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니 보리(菩提)가 나날이 자라난다.」하므로
師 聞之曰此偈 未明心地 若依而行之 是加繫縛 因示一偈曰
사 문지왈차게 미명심지 약의이행지 시가계박 인시일게왈
조사가 듣고 말씀하시기를 “이 게는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했으니 만일 이대로 행하면 곧 얽히기만 더 하리라.” 하시며 한 게송을 말씀하셨다.
惠能 沒伎倆
혜능 몰기량
不斷百思想.
부단백사상.
혜능은 기량이 없어서
백가지 사상을 끊지 않았네.
對境 心數起
대경 심수기
菩提作麽長.
보리작마장.
경계를 대하면 마음이 자주 일어나니
보리가 어찌 자라리오.
第八 頓漸品
제팔 돈점품
時 祖師 居曹溪寶林 神秀大師 在荊南玉泉寺.
시 조사 거조계보림 신수대사 재형남옥천사.
때에 조사는 조계 보림에 계시고 신수대사는 형남 옥천사에 계셨다.
于時 兩宗 盛化 人皆稱南能北秀.
우시 양종 성화 인개칭남능북수. .
그때에 두 종이 모두 다 성대히 교화하니 사람들이 모두 남능과 북수라고 말하였다.
故 有南北二宗頓漸之分 而學者 莫知宗趣 師 謂衆曰.
고 유남북이종돈점지분 이학자 막지종취 사 위중왈
그리하여 남과 북의 두 종이 돈과 점으로 갈라졌는데 배우는 사람들은 근본취지를 몰랐으므로 조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法本一宗 人有南北 法卽一種 見有遲疾.
법본일종 인유남북 법즉일종 견유지질.
“법은 본래 한 종이건만 사람이 남북을 둔 것이다. 법은 곧 한가지인데 보는 것이 더디고 빠를 수 있다.
何名頓漸 法無頓漸 人有利鈍 故名頓漸.
하명돈점 법무돈점 인유이둔 고명돈점.
무엇을 <돈>이라 하고 무엇을 <점>이라 하는가 하면 법은 돈과 점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영특함과 둔함이 있으므로 <돈>이고 <점>이라 한다.”
然 秀之徒衆 往往譏南宗祖師 不識一字 有何所長, 秀 曰他得無師之智 深悟上乘 吾不如也.
연 수지도중 왕왕기남종조사 불식일자 유하소장, 수 왈타득무사지지 심오상승 오불여야.
그러나 신수의 대중들은 이따금 남종의 조사는 한 글자도 모르니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느냐하며 비방하였는데, 신수대사는 말하기를 “그분은 스승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상승의 법을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그 분만 못하다.
且吾師五祖 親傳衣法 豈徒然哉. 吾恨不能遠去親近 虛受國恩 汝等諸人 毋滯於此 可往曹溪 參決.
차오사오조 친전의법 기도연재. 오한불능원거친근 허수국은 여등제인 무체어차 가왕조계 참결.
또 나의 스승인 오조께서 친히 가사와 법을 전하셨으니 어찌 공연한 일이겠느냐.
내가 멀리 가서 친근하지 못하고 헛되이 나라의 은혜만 받고 있어 한스러우니 너희들은 이곳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조계에 가서 배우도록 하여라.” 하며
一日 命門人志誠曰 如聰明多智 可爲吾 到曹溪聽法, 汝若聞法 盡心記取 還爲吾說.
일일 명문인지성왈 여총명다지 가위오 도조계청법, 여약문법 진심기취 환위오설.
어느 날 문인인 지성에게 명하기를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에 가서 법을 듣고, 들은 법은 마음을 다하여 기억해 두었다가 돌아와서 나를 위해 설하여 달라.” 하였다.
志誠 稟命 至曹溪 隨衆參請 不言來處 時 祖師 告衆曰今有盜法之人.
지성 품명 지조계 수중참청 불언래처 시 조사 고중왈금유도법지인.
지성이 명을 받고 조계에 이르러서 대중을 따라 참례하고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때 조사가 대중에게 “지금 법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이 모임에 숨어 있다.” 하시므로
潛在此會 志誠 卽出禮拜 具陳其事.
잠재차회 지성 즉출예배 구진기사.
지성이 곧 나와서 예배하고 그간의 일을 다 말씀드리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師 曰汝從玉泉寺 應是細作. 對曰不是. 師 曰何得不是. 對曰未說卽是 說了不是.
사 왈여종옥천사 응시세작. 대왈불시. 사 왈하득불시. 대왈미설즉시 설료불시.
“네가 옥천에서 왔으니 필시 염탐꾼이겠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말씀드리지 않았을 때는 그러합니다만 말씀드렸으니 그렇지 않습니다.”
師 曰汝師 若爲示衆. 對曰常指誨大衆 住心觀淨 長坐不臥.
사 왈여사 약위시중. 대왈상지회대중 주심관정 장좌불와.
“너의 스승은 어떻게 대중을 가르치시는가?”
“항상 대중을 가르치시기를「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살피어보고 장좌하여 눕지 말라.」하셨습니다.”
師 曰住心觀淨 是病 非禪 常坐拘身 於理 何益. 聽吾偈 曰.
사 왈주심관정 시병 비선 상좌구신 어리 하익. 청오게 왈.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하는 것은 병이지 선이 아니며, 마냥 앉아 있는 것은 몸을 구속하는 것이니 이치에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生來 坐不臥
생래 좌불와
死去 臥不坐.
사거 와부좌.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네.
一具臭骨頭
일구취골두
何爲立功課.
하위입공과.
한 덩어리 냄새나는 뼈다귀가
어찌 공과를 세우리오.
志誠 再拜曰弟子 在秀大師處 學道九年 不得契悟 今聞和尙 一說 便契本心.
지성 재배왈제자 재수대사처 학도구년 부득계오 금문화상 일설 편계본심.
弟子 生死事大 和尙 大慈 更爲敎示.
제자 생사사대 화상 대자 갱위교시.
지성이 다시 절하며 말하였다.
“제자가 신수대사의 처소에 있으면서 도를 배운지 9년이 되었으나 깨닫지 못하였는데 지금 화상의 한 말씀을 듣고 문득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제자에게 생사의 일이 크니 화상께서 대 자비로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십시오.”
師 曰吾聞汝師 敎示學人戒定慧法 未審汝師 說戒定慧行相 如何 與吾說看.
사 왈오문여사 교시학인계정혜법 미심여사 설계정혜행상 여하 여오설간.
“내가 들으니 너의 스승은 학인들에게 계, 정, 혜의 법을 가르친다 하시던데 알지 못하겠으니 너의 스승이 계, 정, 혜를 어떻게 설하시는지 내게 말해 보아라.”
誠 曰秀大師 說諸惡莫作 名爲戒, 諸善奉行 名爲慧, 自淨其意 名爲定. 彼說如此 未審和尙 以何法誨人.
성 왈수대사 설제악막작 명위계, 제선봉행 명위혜, 자정기의 명위정. 피설여차 미심화상 이하법회인.
“신수대사께서는「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 이름 한다.」라고 설하시는데, 화상께서는 어떠한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師 曰吾若言有法與人 卽爲誑汝 但且隨方解縛 假名三昧.
사 왈오약언유법여인 즉위광여 단차수방해박 가명삼매.
“내가 만일 사람에게 줄 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너를 속이는 것이 되느니라. 단지 경우를 따라 얽힘을 풀어줄 뿐인데 이름을 빌려 말한다면 삼매라 하느니라.
如汝師所說戒定慧 實不可思議也 吾所見戒定慧 又別.
여여사소설계정혜 실불가사의야 오소견계정혜 우별.
너의 스승이 말씀하시는 계, 정, 혜는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내가 보는 계, 정, 혜와는 다르구나.”
志誠 曰戒定慧 只合一種 如何更別.
지성 왈계정혜 지합일종 여하갱별.
“계, 정, 혜는 다만 한가지인데 어찌 다를 수 있습니까?”
師 曰汝師戒定慧 接大乘人 吾戒定慧 接最上乘人. 悟解 不同 見有遲疾.
사 왈여사계정혜 접대승인 오계정혜 접최상승인. 오해 부동 견유지질.
“너의 스승의 계, 정, 혜는 대승의 사람을 대하는 것이지만 나의 계, 정, 혜는 최상승의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깨달아 앎이 같지 않으므로 지견이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汝聽吾說 與彼同否. 吾所說法 不離自性 離體說法 名爲相說 自性 常迷.
여청오설 여피동부. 오소설법 불이자성 이체설법 명위상설 자성 상미.
너는 내가 말하는 것이 그와 같은지 다른지 들어보아라. 내가 말하는 법은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체(體)를 여의고 법을 설하는 것을 상으로 설하는 것이라 하는데 자성을 항상 미혹하게 하느니라.
須知一切萬法 皆從自性起用. 是眞戒定慧法 聽吾偈 曰.
수지일체만법 개종자성기용. 시진계정혜법 청오게 왈.
모름지기 알아라. 일체의 만법이 모두 다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느니라. 이것이 참된 계, 정, 혜의 법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心地無非 自性戒,
심지무비 자성계,
心地無癡 自性慧,
심지무치 자성혜,
心地無亂 自性定,
심지무난 자성정,
不增不減 自金剛,
부증불감 자금강,
身去身來 本三昧.
신거신래 본삼매.
마음자리에 잘못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자리에 어리석음 없는 것이 자성의 혜요,
마음자리에 어지러움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것이 자기의 금강이요,
몸이 가고 몸이 옴이 본래 삼매이니라.
誠 聞偈悔謝 乃呈一偈 曰.
성 문게회사 내정일게 왈 .
지성이 게송을 듣고 뉘우쳐 감사하며 한 게송을 바치었다.
五蘊幻身 幻何究境,
오온환신 환하구경,
廻趣眞如 法還不淨.
회취진여 법환부정.
오온의 허깨비 몸이여
허깨비가 어찌 구경(究竟)이리요,
진여로 돌이켜 나아가면
법이 도리어 깨끗하지 못하리.
師 然之 復語誠曰. 汝師戒定慧 勸小根智人 吾戒定慧 勸大根智人.
사 연지 부어성왈. 여사계정혜 권소근지인 오계정혜 권대근지인.
조사가 “그렇다.” 하시고 다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네 스승의 계, 정, 혜는 작은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고 나의 계, 정, 혜는 큰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若悟自性 亦不立菩提涅槃 亦不立解脫知見 無一法可得 方能建立萬法.
약오자성 역불립보리열반 역불립해탈지견 무일법가득 방능건립만법.
만일 자기의 성품을 깨닫고서 보리나 열반을 세우지 않고 또한 해탈지견도 세우지 않으면 한 법도 가히 얻을게 없어서 바야흐로 만 법을 세울 수 있느니라.
若解此意 亦名佛身 亦名菩提涅槃 亦名解脫知見.
약해차의 역명불신 역명보리열반 역명해탈지견.
만일 이 뜻을 알면 이것을 부처님의 몸이라 하며 보리와 열반이라 하며 해탈지견이라 하느니라.
見性之人 立亦得不立亦得 去來自由 無滯無碍 應用隨作 應語隨答 普見化身 不離自性 卽得自在神通 견성지인 입역득불입역득 거래자유 무체무애 응용수작 응어수답 보견화신 불리자성 즉득자재신통 遊戱三昧 是名見性.
유희삼매 시명견성.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되고 세우지 않아도 되니 가고 옴이 자유로워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경우에 따라 작용을 하고 물음에 따라 답하며 널리 화신을 나타내지만 자성을 여의지 않으므로 곧 자재한 신통과 유희하는 삼매를 얻는다. 이것을 견성이라 이름 하노라.”
志誠 再啓師曰. 如何是不立義.
지성 재계사왈. 여하시불립의.
지성이 다시 조사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師 曰 自性 無非無癡無亂 念念般若觀照 常離法相 自由自在 縱橫無得 有何可立.
사 왈 자성 무비무치무난 염념반야관조 상리법상 자유자재 종횡무득 유하가립.
조사가 말씀하셨다.
“자성은 그릇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어서 순간순간이 반야를 비추어 보아 항상 법이라는 생각을 여의고 자유자재하며 가로 세로 모두 얻으니 무엇을 세우겠느냐.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 所以 不立一切法. 諸法 寂滅 有何次第.
자성자오 돈오돈수 역무점차 소이 불립일체법. 제법 적멸 유하차제.
자성을 스스로 깨달아서 몰록 닦으면(돈오 돈수) 늦고 더딤이 없으므로 일체 법을 세우지 않느니라. 모든 법이 적멸한데 무슨 순서가 있겠는가?”
志誠 禮拜 願爲執侍 朝夕不懈.
지성 예배 원위집시 조석불해.
지성이 예배드리고 모시기를 원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一僧志徹 江西人 本姓 張 名 行昌 少 任俠.
일승지철 강서인 본성 장 명 행창 소 임협.
지철스님은 강서 사람이다. 본성은 장씨이고 이름은 행창인데 젊어서는 불한당이었다.
自南北分化 二宗主 雖亡彼我 而徒侶 競起愛憎.
자남북분화 이종주 수망피아 이도려 경기애증.
남북이 나뉘어 교화하였지만 두 종주는 네 편, 내 편이 없었는데 그 문도들은 서로 다투며 미워하였다.
時 北宗門人 自立秀師 爲第六祖 而忌祖師傳衣 爲天下所聞 乃囑行昌 來勅於師 師 心通 預知其事
시 북종문인 자립수사 위제육조 이기조사전의 위천하소문 내촉행창 내자어사 사 심통 예지기사
卽置金十兩於座間.
즉치금십양어좌간.
그때에 북종의 문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신수대사를 육조로 삼았으며 조사에게 가사가 전해진 것이 천하에 알려지는 것이 꺼려서 행창을 시켜 조사를 해치려 보냈는데 조사께서는 타심통으로 그 일을 미리 아시고 금 열 냥을 자리 사이에 준비하여 두고 계셨다.
時夜暮 行昌 入祖室 將欲加害 師 舒頸就之, 行昌 揮刃者 三 悉無所損.
시야모 행창 입조실 장욕가해 사 서경취지, 행창 휘인자 삼 실무소손.
밤이 깊어져 행창이 조사의 방에 들어와 해치려 하니 조사가 목을 쭉 내미시므로, 행창이 칼을 세 번이나 휘둘렀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으셨는데
師 曰 正劍 不邪 邪劍 不正 只負汝金 不負汝命. 行昌 驚仆 久而方蘇 求哀悔過 卽願出家
사 왈 정검 불사 사검 부정 지부여금 불부여명. 행창 경부 구이방소 구애회과 즉원출가
조사께서 “바른 칼은 삿되지 않고 삿된 칼은 바르지 못하니라. 너에게 전생에 돈을 빚졌지만 목숨은 빚지지 않았느니라.” 하시니 행창이 놀라 자빠졌다가가 한참 만에 깨어나 슬피 울며 잘못을 뉘우치며 출가를 원하였으나
師遂與金言, 汝且去 恐徒衆 翻害於汝 汝可他日 易刑而來 吾當攝受.
사수여금언, 여차거 공도중 번해어여 여가타일 역형이래 오당섭수.
조사가 금을 주시며 말씀하시길, “너는 우선 가거라. 대중들이 도리어 너를 해칠까 걱정되니 네가 다른 날에 모습을 바꾸어 오면 내가 마땅히 받아 주겠노라.” 하셨다.
行昌 稟旨宵遁 後 投僧出家, 具戒精進 一日 憶師之言 遠來禮覲.
행창 품지소둔 후 투승출가, 구계정진 일일 억사지언 원래예근.
행창이 조사의 뜻을 받들어 달아났다가 다른 스님을 의탁하여 출가한 뒤, 계를 갖추어 정진하다가 어느 날 조사의 말씀을 기억하고, 멀리서 찾아와 절하고 뵈었다.
師 曰 吾久念汝 汝來何晩. 曰昨蒙和尙 捨罪 今雖出家苦行, 終難報德. 其惟傳法度生乎.
사 왈 오구념여 여래하만. 왈작몽화상 사죄 금수출가고행, 종난보덕. 기유전법도생호.
조사께서 “내가 너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이리 늦었는가.” 하시니 “예전에 화상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신 덕분에 지금은 비록 출가하여 고행을 하지만, 그 은덕을 갚기가 어렵습니다. 은덕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弟子 常覽涅槃經 未曉常無常義 乞和尙 慈悲 略爲解說.
제자 상람열반경 미효상무상의 걸화상 자비 약위해설.
제자가 일찍이 열반경을 보았으나 상(常)과 무상(無常)의 뜻을 깨닫지 못하겠으니 비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풀어 간략히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師 曰無常者 卽佛性也, 有常者 卽一切善惡諸法 分別心也.
사 왈무상자 즉불성야, 유상자 즉일체선악제법 분별심야.
이에 조사가 “무상이라는 것은 곧 불성이고, 유상이라는 것은 일체 선과 악의 모든 법을 분별하는 마음이다.” 하시니
曰和尙所說 大違經文. 師 曰吾傳佛心印 安敢違於佛經.
왈화상소설 대위경문. 사 왈오전불심인 안감위어불경.
“화상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경문에 크게 어긋납니다.” 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는데 어찌 감히 불경을 어기겠느냐?” 그러자
曰經 說佛性 是常 和尙 却言無常 善惡之法 乃至菩提心 皆是無常 和尙 却言是常.
왈경 설불성 시상 화상 각언무상 선악지법 내지보리심 개시무상 화상 각언시상.
“경에는 불성이 곧 상이라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이라 말하시며 선악의 법과 보리심이 다 무상인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상이라 말씀하십니다.
此卽相違 令學人 轉加疑惑.
차즉상위 영학인 전가의혹.
이것이 서로 틀리는 것이라 학인으로 하여금 점점 더 의심스럽게 합니다.” 하므로
師 曰涅槃經 吾昔 聽尼無盡藏 讀誦一遍 便爲講說 無一字一義 不合經文 乃至爲汝 終無二說.
사 왈열반경 오석 청니무진장 독송일편 변위강설 무일자일의 불합경문 내지위여 종무이설.
조사가 말씀하셨다.
“열반경은 내가 옛적에 무진장이라는 비구니가 독송하는 것을 한 번 듣고 곧 그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한 글자, 한 뜻도 경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너에게도 두 가지 말이 있을 수 없느니라.”
曰學人 識量 淺昧 願和尙 委曲開示.
왈학인 식량 천매 원화상 위곡개시.
“제가 아는 것이 얕고 어두우니 원컨대 화상께서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師 曰汝知否 佛性 若常 更說什麽善惡諸法. 乃至窮劫 無有一人 發菩提心者.
사 왈여지부 불성 약상 갱설십마선악제법. 내지궁겁 무유일인 발보리심자.
“네가 아느냐? 불성이 만일 상(常)이라면 다시 어떻게 선과 악의 모든 법을 설하겠느냐? 한량없는 세월을 다하더라도 보리심을 일으킬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故 吾說無常. 正是佛說眞常之道也.
고 오설무상. 정시불설진상지도야.
그러므로 내가 무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설하신 참된 상(常)의 도리이니라.
又 一切諸法 若無常者 卽物物 皆有自性 容受生死 而眞常性 有不偏之處.
우 일체제법 약무상자 즉물물 개유자성 용수생사 이진상성 유불변지처.
또 일체의 모든 법이 만일 무상(無常)이라면 곧 물건마다 모두 자기의 성품이 있어서 생과 사를 받아들이므로 참된 상의 성품이 두루 하지 못하는 곳이 있으리라.
故 吾說常者 正是佛說眞無常義.
고 오설상자 정시불설진무상의.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상이라는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참된 무상의 뜻이니라.
佛 比爲凡夫外道 執於邪常 諸二乘人 於常 計無常 共成八倒 故 於涅槃了義敎中 破彼偏見,
불 비위범부외도 집어사상 제이승인 어상 계무상 공성팔도 고 어열반요의교중 파피편견,
부처님께서 평소에 범부와 외도들은 삿된 상(常)에 빠지고 이승의 사람들은 상을 무상으로 알아서 다 같이 여덟 가지 뒤집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열반 요의교를 말씀하시는 가운데에 그런 편견을 없애고자,
而顯說眞常眞樂眞我眞淨 汝今依言背義 以斷滅無常 及確定死常 而錯解佛之圓妙 最後微言 縱覽千偏 이현설진상진락진아진정 여금의언배의 이단멸무상 급확정사상 이착해불지원묘 최후미언 종람천편 有何所益.
유하소익.
진상(眞常)과 진락(眞樂)과 진아(眞我)와 진정(眞淨)을 밝혀 말씀하셨는데 네가 그 말만 의지하여 뜻을 잘못 알고 아무것도 없는 무상(無常)과 고정된 상(常)으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최후의 미묘한 말씀을 잘못 이해하니 비록 천 번을 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行昌 忽然大悟 乃說偈言.
행창 홀연대오 내설게언.
행창이 그 순간 크게 깨달아서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因守無常心
인수무상심
佛說有常性
불설유상성
무상의 마음을 지킴으로 인하여
부처님이 유상의 성품을 설하셨는데
不知方便者
부지방편자
猶春池拾礫.
유춘지습력.
방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여
봄 못 속에 조약돌 주음과 같았다.
我今不施功
아금불시공
佛性 而現前
불성 이현전
내가 이제 아무런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
불성이 앞에 나타나니
非師相授與
비사상수여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스승이 주신 것도 아니고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도다.
師 曰 汝今徹也 宜名志徹. 徹 禮謝而退.
師 曰 汝今徹也 宜名志徹. 徹 禮謝而退.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 똑똑히 알았으니 마땅히 이름을 지철이라 하여라.”
지철이 절하고 감사하며 물러갔다.
有一童子 名 紳會 襄陽高氏 子.
유일동자 명 신회 양양고씨 자.
동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이름이 신회이고 양양 고씨의 자손이었다.
年 十三 自玉泉來 參禮 師 曰 知識, 遠來艱辛 還將得本來否. 若有本卽合識主 試說看.
년 십삼 자옥천래 참례 사 왈 지식, 원래간신 환장득본래부. 약유본즉합식주 시설간.
나이 13세에 옥천사로부터 와서 참배하니 조사가 “선지식아,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근본은 얻어 가지고 왔느냐? 만일 근본이 있다면 당연히 주인을 알 것이니 한 번 말해 보아라.” 하시니
會 曰以無住 爲本 見卽是主. 師 曰這沙彌 爭合取次語. 會 乃問曰和尙 坐禪 還見 不見.
회 왈이무주 위본 견즉시주. 사 왈저사미 쟁합취차어. 회 내문왈화상 좌선 환견 불견.
신회가 말하기를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니 보는 것이 곧 주인입니다.” 하므로 조사께서 “이 사미가 어찌 그리 경솔하게 말하는가.”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좌선하실 때 보십니까? 보시지 않으십니까?” 하므로
師 以拄杖 打三下 云吾打汝 通 不通. 對曰 亦通亦不通. 師 曰吾亦見亦不見.
사 이주장 타삼하 운오타여 통 불통. 대왈 역통역부통. 사 왈오역견역불견.
주장자로 세 번이나 때리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때렸는데 아프냐? 아프지 않느냐?”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나도 역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紳會 問如何是亦見亦不見. 師言 吾之所見 常見自心過愆 不見他人 是非好惡. 是以 亦見亦不見.
신회 문여하시역견역불견. 사언 오지소견 상견자심과건 불견타인 시비호악. 시이 역견역불견.
신회가 묻기를 “어떤 것이 또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보는 것은 항상 자기 마음의 허물만 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보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니라.
汝言亦通亦不通 如何. 汝若不通 同其木石 若通 卽同凡夫 卽起恚恨 汝向前 見不見 是二邊.
여언역통역불통 여하. 여약불통 동기목석 약통 즉동범부 즉기에한 여향전 견불견 시이변.
네가 말한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네가 만일 아프지 않다면 나무나 돌과 같고 만일 아프다면 곧 범부와 같아서 곧 성내고 원한을 일으킬 것이니 네가 아까 보거나 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두 가지 극단이다.
通不通 是生滅 汝自性 且不見 敢爾戱論. 紳會 禮拜悔謝. 師 又曰.
통불통 시생멸 여자성 차불견 감이희론. 신회 예배회사. 사 우왈.
아프거나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은 생, 멸이니라. 네가 자성을 아직 보지 못하였으면서 감히 그렇게 희롱하듯이 말하느냐.” 신회가 뉘우치며 절하고 사과하였다. 조사가 또 말씀하셨다.
汝若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汝若心悟 卽自見性 依法修行, 汝自迷 不見自心 却來問吾 見與不見.
여약심미불견 문선지식멱로, 여약심오 즉자견성 의법수행, 여자미 불견자심 각래문오 견여불견.
“네가 만일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야 하고, 네가 만일 마음을 깨달았다면 곧 스스로 성품을 보고 법대로 수행하여야 할 것인데, 너는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의 마음을 보지 못하였으면서도 도리어 나에게 와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吾見自知 豈代汝迷. 汝若自見 亦不代吾迷, 何不自知自見 乃問吾 見與不見.
오견자지 기대여미. 여약자견 역불대오미, 하불자지자견 내문오 견여불견.
나의 봄은 스스로 아는데 어찌 너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네가 만일 스스로 보더라도 나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는데, 어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스스로 보지 못하면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紳會 再禮百餘拜 求謝過愆 服僅給侍 不離左右.
신회 재례백여배 구사과건 복근급시 불리좌우.
신회가 다시 백여 번 절을 하며 허물을 사죄하였고 부지런히 모시며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一日 師 告衆曰吾有一物 無頭無尾 無名無字 無背無面 諸人 還識否.
일일 사 고중왈오유일물 무두무미 무명무자 무배무면 제인 환식부.
어느 날 조사가 대중에게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등도 없고 얼굴도 없으니 너희들은 알겠느냐?” 하시니
紳會 出曰是諸佛之本源 紳會之佛性.
신회 출왈시제불지본원 신회지불성.
신회가 나와서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며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므로
師 曰向汝道無名無字 汝便喚作本源佛性 汝向去 有把묘蓋頭 也只成箇知解宗徒.
사 왈향여도무명무자 여변환작본원불성 여향거 유파묘개두 야지성개지해종도.
조사가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 하였는데 네가 문득 본원이며 불성이라고 하니 너는 어디 가서 지도자가 되더라도 한낱 지해종도(안다는 확신을 내세워 이름이나 글자의 집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무리) 밖에 만들지 못하겠구나.”
祖師滅後 會入京洛 大弘曹溪頓敎 著顯宗記 盛行於世.
조사멸후 회입경락 대홍조계돈교 저현종기 성행어세.
신회가 조사가 돌아가신 후에 서울에 들어가서 조계의 돈교를 크게 넓히고 현 종기를 지으니 세상에 유행하였다.
師 見諸宗 難問 咸起惡心 多集座下 愍而謂曰學道之人.
사 견제종 난문 함기악심 다집좌하 민이위왈학도지인.
조사께서는 여러 종파들이 힐난하면서 모두가 나쁜 마음을 품고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며 말씀하셨다.
一切善念惡念 應當盡除 無名可名 名於自性無二之性 是名實性.
일체선념악념 응당진제 무명가명 명어자성무이지성 시명실성.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일체의 착한 생각과 악한 생각을 마땅히 다 없애어서 무어라 이름 할 것이 없어야 자성의 둘이 없는 성품이라 이름 하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 하여 실다운 성품이라 하느니라.
於實性上 建立一切敎門 言下 便須自見.
어실성상 건립일체교문 언하 변수자견.
실다운 성품 위에 일체의 교문(敎門)을 세우는 것이니 말 아래에 모름지기 스스로 볼지어다.”
諸人 聞說 總皆作禮 請事爲師.
제인 문설 총개작례 청사위사.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다 예를 드리고 스승으로 모시기를 청하였다.
<!-- div { color: #000000; } li { color: #000000; } a, a:link, a:hover, a:visited { color: #000000; } td { color: #000000; } .txc-search-border { border-color: #000000; } .me2day_daily_digest p, .me2day_daily_digest a, .me2day_daily_digest a:hover { font: 11px '돋움', dotum, sans-serif; } //--> 第九 宣詔品
제구 선조품
神龍元年上元日 則天 中宗 詔云,
신룡원년상원일 측천 중종 조운,
신룡 원년(705년) 정월 보름날에 측천과 중종이 조서를 보내며 이르기를
朕 請安秀二師 宮中 供養 萬機之暇 每究一僧 二師 推讓云
짐 청안수이사 궁중 공양 만기지가 매구일승 이사 추양운
“짐이 혜안국사와 신수 두 대사를 청하여 궁중에서 공양하며 만사를 보살피는 겨를에 언제나 일승을 연구하였더니 두 대사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南方 有能禪師 密授忍大師衣法 傳佛心印 可請彼問
남방 유능선사 밀수인대사의법 전불심인 가청피문
「남방의 혜능선사가 홍인대사의 가사와 법을 받아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았으니 그 분을 청하여 물으십시오.」하기에
今遣內侍薛簡 馳詔請迎 願師 慈念 速赴上京. 師 上表辭迭 願終林麓.
금견내시설간 치조청영 원사 자념 속부상경. 사 상표사질 원종임록.
이제 내시인 설간을 보내어 조서를 전하며 청하오니 조사께서는 자비로 살피시어 속히 서울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였으나 조사께서는 아프다는 글을 올려 사양하시며 산기슭 숲 속에서 여생을 마치기 원하였다.
薛簡 曰京城禪德 皆云欲得會道 必須坐禪習定. 若不因禪定 而得解脫者 未之有也. 未審師所說法 如何.
설간 왈경성선덕 개운욕득회도 필수좌선습정. 약불인선정 이득해탈자 미지유야. 미심사소설법 여하.
설간이 말하기를 “경성의 선덕들이 모두 다 말하기를「도를 알고자 하면 반드시 좌선하여 정(定)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시던데 조사께서는 어떻게 설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師 曰道由心悟 豈在坐也. 經 云若言如來 若坐若臥 是行邪道. 何故 無所從來 亦無所去.
사 왈도유심오 기재좌야. 경 운약언여래 약좌약와 시행사도. 하고 무소종래 역무소거.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데 있겠습니까. 경(금강경)에 이르시길「만일 여래가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도를 행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어디로부터 온 바가 없으면 또한 갈 바도 없다.」하셨습니다.
無生無滅 是如來淸淨禪 諸法空寂 是如來淸淨坐 究境無證 豈況坐耶.
무생무멸 시여래청정선 제법공적 시여래청정좌 구경무증 기황좌야.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禪)이고 모든 법이 비어 고요한 것이 여래의 청정 좌(坐)이며 끝내 증득할 것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앉는데 있겠습니까?”
簡 曰弟子 回京 主上 必問 願師 慈悲 指示心要 傳秦兩宮 及京城學道者,
간 왈제자 회경 주상 필문 원사 자비 지시심요 전주양궁 급경성학도자,
설간이 말하기를 “제자가 경성에 돌아가면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조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마음의 요점을 가르쳐 주시면 두 궁전과 경성에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아룀으로서,
譬如一燈 燃百千燈 冥者皆明 明明無盡.
비여일등 연백천등 명자개명 명명무진.
비유하건대 한 개의 등이 백 천 개의 등을 켜서 어두운 것을 모두 밝게 하듯이 밝고 밝음이 영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師 云道無明暗. 明暗 是代謝之義. 明明無盡 亦是有盡 相待立名故.
사 운도무명암. 명암 시대사지의. 명명무진 역시유진 상대입명고.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에는 밝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번갈아 바뀐다는 뜻입니다. 밝고 밝아 다 함이 없는 것도 역시 다함이 있는 것이니 상대로 이름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淨名經 云法無有比 無相待故.
정명경 운법무유비 무상대고.
정명경에서 말씀하시길「법은 비교할 데가 없음이니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簡 曰明喩智慧 暗喩煩惱 修道之人 倘不以智慧 照破煩惱 無始生死 憑何出離.
간 왈명유지혜 암유번뇌 수도지인 당불이지혜 조파번뇌 무시생사 빙하출리.
설간이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 도를 닦는 사람이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리지 아니하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무엇을 의지하여 벗어나겠습니까?” 하니
師 曰煩惱 卽是菩提. 無二無別. 若以智慧 照破煩惱者 此是二乘 見解 羊鹿等機 上智大根 悉不如是.
사 왈번뇌 즉시보리. 무이무별. 약이지혜 조파번뇌자 차시이승 견해 양록등기 상지대근 실불여시.
조사가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입니다. 둘이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린다고 하면 이것은 이승의 견해이고 양과 사슴 등의 근기이지 높은 지혜의 대 근기는 다 이와 같지 않습니다.”
簡 曰如何是大乘見解.
간 왈여하시대승견해.
설간이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라고 여쭈니
師 曰明與無明 凡夫 見二 智者 了達其性 無二 無二之性 卽是實性.
사 왈명여무명 범부 견이 지자 요달기성 무이 무이지성 즉시실성.
“밝은 것과 밝지 못한 것을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합니다.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입니다.
實性者 處凡愚而不感 在賢聖而不增 住煩惱而不亂 居禪定而不寂 不斷不常 不來不去
실성자 처범우이불감 재현성이부증 주번뇌이불란 거선정이불적 부단불상 불래불거
실다운 성품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에게 있어도 줄어들지도 않고 현명한 성인에게 있어도 늘어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으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 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不在中間 及其內外 不生不滅 性相 如如 常住不遷 名之曰道.
부재중간 급기내외 불생불멸 성상 여여 상주불천 명지왈도.
중간과 그 안팎에도 있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 성품의 모습이 여여하여 항상 머물러 변천하지 않는 것을 도라고 이름 합니다.” 하셨다.
簡 曰師說不生不滅 何異外道.
간 왈사설불생불멸 하이외도.
설간이 “조사께서 말씀하시는 불생불멸은 외도와 어떻게 다릅니까?” 라고 여쭈니
師 曰外道所說不生不滅者 將滅止生 以生顯滅.
사 왈외도소설불생불멸자 장멸지생 이생현멸.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멸을 가지고 생을 멈추고 생으로써 멸을 나타내는 것이라.
滅猶不滅 生說不生 我說不生不感者 本自無生 今亦不滅 所以 不同外道.
멸유불멸 생설불생 아설불생불감자 본자무생 금역불멸 소이 부동외도.
멸도 오히려 불멸과 같으며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이라 말하지만 내가 말한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는 것이어서 이제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도와는 같지 않습니다.
汝若欲知心要 但一切善惡 都莫思量 自然得入淸淨心體 湛然常寂 妙用 恒沙.
여약욕지심요 단일체선악 도막사량 자연득입청정심체 담연상적 묘용 항사.
그대가 만일 핵심을 알고자 하면 일체의 선과 악을 전혀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바탕에 들어설 것이며 맑고 항상 고요하여 그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 수 같을 것입니다.”라 하셨다.
簡 蒙指敎 豁然大悟 禮辭歸闕 表秦師語.
간 몽지교 활연대오 예사귀궐 표주사어.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 크고 시원하게 깨달아서 절하고 하직하여 대궐로 돌아와 조사의 말씀을 글로 올렸다.
其年九月三日 有詔 獎諭師曰師辭老疾 爲朕修道 國之福田.
기년구월삼일 유조 장유사왈사사노질 위짐수도 국지복전.
그해 9월 3일에 조서가 있었는데 조사께 감사하며 이르기를 “조사께서 늙고 병들었다고 말씀하시며 짐을 위하여 도를 닦으시니 나라의 복전입니다.
師若淨名 託疾毘耶 闡揚大乘 傳諸佛心 談不二法.
사약정명 탁질비야 천양대승 전제불심 담불이법.
조사께서는 정명(유마힐 거사)께서 병을 들어 비야리 성에서 사양하고 대승을 명백하게 들어 나타내며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시고 둘이 아닌 법을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薛簡 傳師 指授如來知見 朕 積善餘慶 宿種善根 値師出世 頓悟上乘 感荷師恩 頂戴無已.
설간 전사 지수여래지견 짐 적선여경 숙종선근 치사출세 돈오상승 감하사은 정대무이.
설간이 조사께서 가르쳐 주신 여래의 지견을 전하여 주니 짐은 적선을 쌓은 집에 경사가 있는 생활이 되었고 숙세에 심은 선근으로 조사의 출현하심을 만나서 높은 <승>을 몰록 깨달았으니 조사의 은혜에 감사하여 머리에 받들어 마지않습니다.” 하며
幷奉磨衲袈裟 及水晶鉢 勅韶州勅史 修飾寺宇 賜師舊居 爲國恩寺焉.
병봉마납가사 급수정발 칙소주칙사 수식사우 사사구거 위국은사언.
마납 가사와 수정 발우를 드리고 소주자사에게 명하여 도량을 수리하여 장엄하게 하고 조사의 옛 거처에 국은사 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第十 付囑品
제십 부촉품
師 一日 喚門人法海, 志誠, 法達, 紳會, 智常, 智通, 志徹, 志道, 法珍, 法如等 曰.
사 일일 환문인법해, 지성, 법달, 신회, 지상, 지통, 지철, 지도, 법진, 법여등 왈.
조사께서 하루는 문인인 법해와 지성과 법달과 신회와 지상과 지통과 지철과 지도와 법진과 법여 등을 불러 말씀하셨다.
汝等 不同餘人 吾滅度後 各爲一方師 吾今敎汝說法 不失本宗.
여등 부동여인 오멸도후 각위일방사 오금교여설법 부실본종.
“너희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 내가 멸도한 후에 각각 한 지방의 스승이 될 것이므로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지를 잃지 않게 하리라.
先須擧三科法門 動用三十六對 出沒 卽離兩邊 說一切法 莫離自性.
선수거삼과법문 동용삼십육대 출몰 즉리양변 설일체법 막리자성.
먼저 삼과 법문에 의거하여 움직이고 작용하는 36가지 상대를 들것이니 나오고 들어감에 두 끝을 여의고 일체 법이 자성을 떠나지 않았음을 설하리라.
忽有人 問汝法 出語盡雙 皆取對法 來去相因 究境 二法 盡除 更無去處.
홀유인 문여법 출어진쌍 개취대법 내거상인 구경 이법 진제 갱무거처.
갑자기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법을 묻거든 말을 모두 쌍으로 하고 모두 상대법을 취하여 오고 감을 서로 원인으로 하고 마침내는 두 법을 모두 없애어 다시 갈 곳이 없게 하여라.
三科法門者陰界入也. 陰 是五陰 色受想行識 是也,
삼과법문자음계입야. 음 시오음 색수상행식 시야,
삼과 법문이라 하는 것은 <음> <계> <입>을 말한다.
음은 곧 5음이니 색, 수, 상, 행, 식 이것이고,
入 是十二入 外六塵色聲香味觸法 內六門眼耳卑舌身意 是也,
입 시십이입 외육진색성향미촉법 내육문안이비설신의 시야,
입은 곧 12입으로 밖의 6진인 색, 성, 향, 미, 촉, 법과 안의 6문인 안, 이, 비, 설, 신, 의 이것이며,
界 是十八界 六塵六門六識 是也.
계 시십팔계 육진육문육식 시야.
계는 18계로 6진과 6문과 6식 이것이니라.
自性 能含萬法 名含藏識. 若起思量 卽是전識. 生六識出六門見六塵.
자성 능함만법 명함장식. 약기사량 즉시전식. 생육식출육문견육진.
자성이 만법을 머금었으므로 함장식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생각을 일으키면 곧 의식을 굴리는 것이다.
6식을 내어 6문을 나와 6진을 보게 된다.
如是一十八界 皆從資性起用 自性 若邪 起十八邪 自性 若正 起十八正.
여시일십팔계 개종자성기용 자성 약사 기십팔사 자성 약정 기십팔정.
이와 같이 18계가 모두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성이 만일 삿되면 18사(邪)가 일어나고 자성이 만일 바르면 18정(正)이 일어나느니라.
若惡用 卽衆生用 善用 卽佛用. 用由何等. 有自性 有對法. 外境無情 五對.
약악용 즉중생용 선용 즉불용. 용유하등. 유자성 유대법. 외경무정 오대.
만일 악하게 쓰면 중생의 용(用)이고 착하게 쓰면 부처님의 용이니라.
작용은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지는가?
자성을 말미암아 상대법이 있느니라.
바깥 경계인 물질세계에는 다섯 가지 상대가 있다.
天與地對, 日與月對, 明與暗對, 陰與陽對, 水與火對. 此是五對也.
천여지대, 일여월대, 명여암대, 음여양대, 수여화대. 차시오대야.
하늘과 땅이 상대고, 해와 달이 상대고, 밝음과 어두움이 상대고, 음과 양이 상대고, 물과 불이 상대다.
法相語言 十二對. 語與法對, 有與無對, 有色與無色對, 有相與無相對, 有漏與無漏對, 色與空對,
법상어언 십이대. 어여법대, 유여무대, 유색여무색대, 유상여무상대, 유루여무루대, 색여공대,
動與靜對, 淸與濁對, 凡與聖對, 僧與俗對, 老與少對, 大與小對, 此是十二對也.
동여정대, 청여탁대, 범여성대, 승여속대, 노여소대, 대여소대, 차시십이대야.
법상을 나타내는 말에는 열두 가지 상대가 있다.
말과 법이 상대고, 유와 무가 상대며, 빛깔과 빛깔 아닌 것이 상대고, 모양과 모양 아닌 것이 상대며, 번뇌와 번뇌 없음이 상대고, 물질과 허공이 상대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고, 맑음과 흐림이 상대며, 범부와 성인이 상대고, 승려와 속인이 상대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상대다. 이것이 열두 가지의 상대다.
自性起用 十九對. 長與短愛, 邪與正對, 痴與慧對, 愚與智對, 亂與定對, 慈與毒對, 戒與非對,
자성기용 십구대. 장여단애, 사여정대, 치여혜대, 우여지대, 난여정대, 자여독대, 계여비대,
直與曲對, 實與虛對, 險與平對, 煩惱與菩提對, 常與無常對, 悲與害對, 喜與瞋對, 捨與慳對, 進與退對, 직여곡대, 실여허대, 험여평대, 번뇌여보리대, 상여무상대, 비여해대, 희여진대, 사여간대, 진여퇴대, 生與滅對, 法身與色身對, 化身與報身對, 此是十九對也.
생여멸대, 법신여색신대, 화신여보신대, 차시십구대야.
자성이 작용을 일으키는 데는 열아홉 가지의 상대가 있다.
긴 것과 짧은 것이 상대고, 삿된 것과 올바른 것이 상대며, 어리석은 것과 지혜로운 것이 상대고, 모르는 것과 앎이 상대며, 어지러움과 고요함이 상대고, 자비로움과 독한 것이 상대며, 계(戒)와 그릇됨이 상대고, 곧은 것과 굽은 것이 상대며, 참된 것과 헛됨이 상대고, 험한 것과 평탄한 것이 상대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고, 늘 있음과 덧없음이 상대며, 불쌍히 여기는 것과 해치는 것이 상대고, 기쁜 것과 성내는 것이 상대며, 주는 것과 인색한 것이 상대고,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이 상대며,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이 상대고, 법신과 육신이 상대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다. 이것이 곧 열아홉 가지의 상대이니라.
師 言 此三十六對法 若解用 卽道貫一切經法 出入 卽離兩邊 自性動用 共人言語 外於相 離相 內於空 사 언 차삼십육대법 약해용 즉도관일체경법 출입 즉리양변 자성동용 공인언어 외어상 이상 내어공 離空.
이공.
이 서른여섯 가지 상대법을 만일 쓸 줄 알면 곧 도가 모든 경전의 법을 꿰뚫어 출입함에 두 가지 끝을 여의어서 자성을 움직여 쓰는 것과, 사람과 함께 말함에 있어서 밖으로는 상에 대하여 상을 떠나고 안으로는 공에 대하여 공을 떠나느니라.
若全著相 卽長邪見 若全執空 卽長無明.
약전착상 즉장사견 약전집공 즉장무명.
만일 상에 완전히 집착하면 사견을 기르고 만일 공을 완전히 집착하면 무명을 기르느니라.
執空之人 有謗經 直言不用文字 旣云不用文字 人亦不合語言 只此語言 便是文字之相.
집공지인 유방경 직언불용문자 기운불용문자 인역불합어언 지차어언 변시문자지상.
공에 집착한 사람은 경을 비방하여 바로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문자를 이미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도 부당한 것이니 이런 말은 다만 문자의 모습일 뿐이다.
又云直道 不立文字 卽此不立兩字 亦是文字. 見人所說 便卽謗他 言著文字 汝等 須知.
우운직도 불립문자 즉차불립양자 역시문자. 견인소설 변즉방타 언착문자 여등 수지.
또 말하기를 곧은 도는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우지 않는다는 두 글자도 또한 문자이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고 곧 그를 비방하기를 문자에 집착한다 하는데, 너희들은 모름지기 알아라.
自迷 猶可 又謗佛經 不要謗經 罪障 無數.
자미 유가 우방불경 불요방경 죄장 무수.
스스로 미혹함을 오히려 옳지만 불경까지 비방하겠느냐, 절대 경을 비방하지 말아라.
죄의 업장이 헤아릴 수 없느니라.
若著相於外 而作法求眞 或廣立道場 說有無之過患 如是之人 累劫 不得見性 但聽依法修行,
약착상어외 이작법구진 혹광립도량 설유무지과환 여시지인 누겁 부득견성 단청의법수행,
만일 밖으로의 모습에 집착하여 법을 만들어서 참(眞)을 구하거나 혹은 도량을 넓게 세워서 유와 무의 허물과 근심을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몇 겁이 지나더라도 견성하지 못할 것이니, 다만 법을 듣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이며,
又莫百物 不思 而於道性 窒碍.
우막백물 불사 이어도성 질애.
또 백가지 물건을 생각지 아니하는 것이 수행이라 하여 도의 성품을 막히게 하지 말아라.
若聽說不修 令人 反生邪念 但依法修行 無住相法施.
약청설불수 영인 반생사념 단의법수행 무주상법시.
만일 설법을 듣고 닦지 아니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도리어 삿된 생각을 내게 하니 다만 법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상에 머무름이 없이 법을 베풀어라.
汝等 若悟 依此說依此用 依此行依此作 卽不失本宗.
여등 약오 의차설의차용 의차행의차작 즉불실본종.
너희들이 만일 깨닫고 이를 의지하여 말하고 이를 의지하여 쓰며 이를 의지하여 행하고 이를 의지하여 지으면 곧 근본 종지를 잃지 않으리라.
若有人 問汝義 問有 將無對 問無 將有對 問凡 以聖對 問聖 以凡對 二道相因 生中道義,
약유인 문여의 문유 장무대 문무 장유대 문범 이성대 문성 이범대 이도상인 생중도의,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들에게 뜻을 물을 때 유를 물으면 무로써 대답하고, 무를 물으면 유로써 대답하며, 범부를 물으면 성인으로써 대답하고, 성인을 물으면 범부로 대답하여 두 도가 서로 원인이 되어 중도의 뜻이 나게 할 것이며,
如一問一對 餘問 一依此作 卽不失理也.
여일문일대 여문 일의차작 즉불실리야.
한번 물으면 한번 대답하고, 나머지 물음을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면 이치를 잃지 않으리라.
設有人 問 何名爲暗 答云明是因 暗是緣 明沒卽暗.
설유인 문 하명위암 답운명시인 암시연 명몰즉암.
가령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떤 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느냐하면 대답하기를 밝음이 <인>이고 어두움이 <연>이 되어 밝음이 없어지면 곧 어두움이다. 라고 하여라.
以明顯暗 以暗顯明 來去相因 成中道義, 餘問 悉皆如此
이명현암 이암현명 내거상인 성중도의, 여문 실개여차
밝음으로써 어두움을 나타내고 어두움으로써 밝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오고 감이 서로 원인이 되어 중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니, 나머지 물음에도 모두 이와 같이 하여라.
汝等 於後傳法 依此傳法 依此迭相敎授 勿失宗旨.
여등 어후전법 의차전법 의차질상교수 물실종지.
너희들이 후에 법을 전할 때에도 이것에 의지하여 서로 바꾸어 가르쳐서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師於太極元年壬子七月 命門人 往新州國恩寺 健塔 仍令促工 次年夏末 落成.
사어태극원년임자칠월 명문인 왕신주국은사 건탑 잉령촉공 차년하말 낙성.
조사께서 태극 원년 임자년(712년) 7월에 문인에게 명하시어 신주 국은사에 가서 탑을 세우게 하시고, 일하는 사람들을 자주 독촉하여 다음해 늦여름에 낙성을 하였다.
七月一日 集徒衆曰. 吾至八月 欲離世間 汝等 有疑 早須相問. 爲汝破疑 令汝迷盡. 吾若去後 無人敎汝.
칠월일일 집도중왈. 오지팔월 욕리세간 여등 유의 조수상문. 위여파의 영여미진. 오약거후 무인교여.
7월 1일에 문도 대중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8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이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빨리 물어 보아라.
너희들의 의심을 부수어서 너희로 하여금 어리석음이 없게 하리라.
내가 간 뒤에는 너희를 가르칠 사람이 없을 것이니라.”
法海等 聞 悉皆涕泣 惟有紳會 神精不動 亦無涕泣 師曰.
법해등 문 실개체읍 유유신회 신정부동 역무체읍 사왈.
법해 등이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데 오직 신회만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울지도 않았기에 조사가 말씀하셨다.
紳會小師 却得善不善等, 毁譽不動, 哀樂不生.
신회소사 각득선불선등, 훼예부동, 애락불생.
“신회소사가 오히려 선과 선하지 못함이 평등함을 얻었으며, 헐뜯는 것과 칭찬하는 것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며, 슬픔과 즐거움을 내지 않는 마음을 얻었구나.
餘者 不得 數年 在山 竟修何道. 汝今悲泣 爲愚阿誰.
여자 부득 수년 재산 경수하도. 여금비읍 위우옥수.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했으니 몇 해씩 산에 있으면서 결국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데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근심하는 것이냐?
若愚吾 不知去處 吾 自知去處. 若吾不知去處 終不預報於汝.
약우오 부지거처 오 자지거처. 약오부지거처 종불예보어여.
만일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여 근심한다면 내가 스스로 갈 곳을 알고 있느니라.
내가 만일 갈 곳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했을 것이니라.
汝等悲泣 蓋爲不知吾 去處. 若知吾 去處 卽不合悲泣.
여등비읍 개위부지오 거처. 약지오 거처 즉불합비읍.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대체로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가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슬퍼하며 울지는 않으리라.
法性 本無生滅去來 汝等 盡坐. 吾與汝說一偈. 名曰眞假動靜偈,
법성 본무생멸거래 여등 진좌. 오여여설일게. 명왈진가동정게,
법의 성품에는 본래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과 가는 것과 오는 것이 없으니 너희들은 모두 앉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리라. 이름은 <진가동정게>라 하는데,
汝等 誦取此偈 與吾意同 依此修行 不失宗旨. 衆僧 作禮 請師說偈 偈 曰.
여등 송취차게 여오의동 의차수행 부실종지. 중승 작례 청사설게 게 왈.
너희들이 이 게송을 외워서 지니면 나의 생각과 같아질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종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스님들이 예를 올리고 조사에게 게송을 설해 주실 것을 청하자 말씀을 하셨다.
一切無有眞
일체무유진
不事見於眞.
불사견어진.
일체가 참다움이 없으니
참이라고 보지 말지어다.
若見於眞者
약견어진자
是見 盡非眞.
시견 진비진.
만일 참인 줄 보는 자는
그 소견이 참되지 못하리.
若能自有眞
약능자유진
離假卽心眞
이가즉심진
만일 스스로 참다움이 있다면
거짓을 여윈 즉 마음이 참이니
自心 不離假
자심 불리가
無眞 何處眞.
무진 하처진.
스스로 마음에 거짓을 여의지 않으면 참은 없거니 어느 곳이 참이겠느냐.
有情 卽解動
유정 즉해동
無情 卽不動
무정 즉부동
유정은 곧 움직일 줄 알고
무정은 움직일 줄 모르니
若修不動行
약수부동행
同無情不動.
동무정부동.
만일 움직이지 않는 행을 닦으면
무정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
若覓眞不動
약멱진부동
動上 有不動.
동상 유부동.
만일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찾으려면
움직이는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다.
不動 是不動
부동 시부동
無情 無佛種.
무정 무불종.
움직이지 않음이 부동이라면
무정은 부처님 될 종자도 없겠구나?
能善分別相
능선분별상
第一義 不動
제일의 부동.
능히 상을 잘 분별하되
제일의(구경의 진리)에 움직이지 말아라.
但作如此見
단작여차견
卽是眞如用.
즉시진여용.
다만 이 같은 소견을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작용이니라.
報諸學道人
보제학도인
努力須用意
노력수용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알리니
힘써 모름지기 뜻을 써서
莫於大乘門
막어대승문
却執生死智.
각집생사지.
대승의 문에서
지혜로 생사를 돌이켜 집착하지 말라.
若言下 相應
약언하 상응
卽共論佛義
즉공론불의
만일 말끝에 서로 맞으면
곧 불법을 같이 의논하되
若實不相應
약실부상응
合掌今歡喜.
합장금환희.
만일 실답게 상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여라.
此宗 本無諍.
차종 본무쟁.
諍卽失道義
쟁즉실도의
이 종은 본래 다툼이 없는 것이라.
다투면 곧 도의 뜻을 잃어버리며
執逆諍法門
집역쟁법문
自性 入生死.
자성 입생사.
거꾸로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빠지리라.
時 徒衆 聞說偈已 普皆作禮 竝體師意. 各各攝心 依法修行 更不敢諍.
시 도중 문설게이 보개작례 병체사의. 각각섭심 의법수행 갱불감쟁.
때에 대중들이 조사께서 설하신 게송을 듣고 모두 다 절하였고 아울러 조사의 뜻을 알았다.
각각 마음을 거두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않았다.
乃知大師 不久住世 法海上座 再拜問曰, 和尙 入滅之後 衣法 當付何人.
내지대사 불구주세 법해상좌 재배문왈, 화상 입멸지후 의법 당부하인.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지 못할 것을 알고 법해상좌가 다시 절하며 여쭙기를, “화상께서 입멸하신 뒤에 가사와 법은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맡기십니까?” 하니
師 曰吾於大梵寺 說法 以至于今 抄錄流行 目曰法寶壇經
사 왈오어대범사 설법 이지우금 초록류행 목왈법보단경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대범사에서 설법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법보단경이라고 기록하여 둔 것이 유행하고 있으니
汝等 守護 遞相傳受 度諸群生 但依此說 是名正法. 今爲汝等 說法 不付其衣.
여등 수호 체상전수 도제군생 단의차설 시명정법. 금위여등 설법 불부기의.
너희들은 이것을 수호하고 번갈아 가며 서로 전해 주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다만 이 말대로만 하면 곧 정법이라 할 것이니라.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되 그 가사는 맡기지 않겠노라.
蓋爲汝等 新根 淳熟 決定無疑 堪任大事 然 據先祖達摩大師 付授偈意 衣不合傳 偈 曰.
개위여등 신근 순숙 결정무의 감임대사 연 거선조달마대사 부수게의 의불합전 게 왈.
대체로 너희들은 믿음의 근기가 순박하고 무르익었으며 의심이 전혀 없으므로 큰일을 감당할 만하지만 선조인 달마대사께서 부탁하며 주신 게의 뜻에 의거하여 옷은 마땅히 전하지 않을 것이니라.” 하시며 게송을 말씀하셨다.
吾本來玆土
오본래자토
傳法救迷情
전법구미정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구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려 함인데
一花開五葉
일화개오엽
結果自然成.
결과자연성.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려서
열매가 자연히 맺으리라.
師 復曰諸善知識, 汝等 各各淨心 聽吾說法. 若欲成就種智 須達一相三昧 一行三昧.
사 부왈제선지식, 여등 각각정심 청오설법. 약욕성취종지 수달일상삼매 일행삼매.
“선지식아, 너희들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의 설법을 들어라.
만일 일체종지를 성취하고자 하면 모름지기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에 통달하여야 하느니라.
若於一切處 而不住相 於彼相中 不生憎愛 亦無取捨 不念利益成壞等事 安閒恬靜 虛融湛泊
약어일체처 이불주상 어피상중 불생증애 역무취사 불념이익성괴등사 안한념정 허융담박
此名一相三昧.
차명일상삼매.
만일 언제 어디서나 상에 머물지 않아서 그 상 가운데 있으면서 미워하거나 애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또 취하거나 버리지 아니하며 이익과 성취와 무너짐 등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편안하고 한가로우며 아주 고요하고 허공처럼 비어 통하고 욕심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이것을 일상삼매라 한다.
若於一切處 行住坐臥 純一直心 不動道場 眞成淨土 此名一行三昧.
약어일체처 행주좌와 순일직심 부동도량 진성정토 차명일행삼매.
만일 언제 어디서나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더라도 순수하고 곧은 마음으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참으로 정토를 이루면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若人 具二三昧 如地有種 含藏長養 成熟其實 一相一行 亦復如是.
약인 구이삼매 여지유종 함장장양 성숙기실 일상일행 역부여시.
만일 어떤 사람이 두 가지 삼매를 갖추면 마치 땅에 종자가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나서 열매가 여무는 것과 같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我今說法 猶如時雨 普潤大地 汝等佛性 譬諸種子 遇玆霑洽 悉得發生.
아금설법 유여시우 보윤대지 여등불성 비제종자 우자점흡 실득발생.
내가 지금 법을 설하는 것은 때맞춰 비가 내려 대지를 두루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고 너희들의 불성은 비유하건대 모든 종자가 이 비를 만나 흠뻑 적셔져서 모두 다 싹이 트는 것과 같으니라.
承吾旨者 決獲菩提 依吾行者 定證妙果. 聽吾偈 曰.
승오지자 결획보리 의오행자 정증묘과. 청오게 왈.
나의 뜻을 이어 받는 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나의 행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묘한 과보를 얻을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心地含諸種
심지함제종
普雨悉皆萌.
보우실개맹.
마음의 땅이 모두 종자를 머금어서
널리 비를 내리면 다 싹이 트리라.
頓悟花情已
돈오화정이
菩提果自成.
보리과자성.
몰록 깨달아 꽃의 정(情)이 다하면
보리의 열매는 절로 이루리라.
師 說偈已 曰其法 無二 其心 亦然 其道淸淨 亦無諸相 汝等 愼勿觀靜 及空其心.
사 설게이 왈기법 무이 기심 역연 기도청정 역무제상 여등 신물관정 급공기심.
게송을 마치고 말씀하시길 “그 법이 둘이 없어서 그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그 도가 청정하여 모든 상이 또한 없으니 너희들은 아무쪼록 고요함을 관하려 하지 말고 그 마음을 비우려 하지 말아라.
此心 本淨 無可取捨 各自努力 隨緣好去. 爾時 徒衆 作禮而退.
차심 본정 무가취사 각자노력 수연호거. 이시 도중 작례이퇴.
이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으니 각각 스스로 힘써서 인연을 따라 잘 가거라.”
이에 대중들이 절하고 물러갔다.
大師 七月八日 忽謂門人曰. 吾欲歸新州 汝等 速理舟接. 大衆 哀留甚堅 師曰.
대사 칠월팔일 홀위문인왈. 오욕귀신주 여등 속리주접. 대중 애유심견 사왈.
대사가 7월 8일에 갑자기 문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신주로 돌아가고자 하니 너희들은 속히 배와 돛대를 손질해 놓아라.”
대중이 슬퍼하며 더 계시기를 간곡히 원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諸佛 出現 猶示涅槃 有來必去 理亦常然. 吾此刑骸 歸必有所.
제불 출현 유시열반 유래필거 이역상연. 오차형해 귀필유소.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열반을 보이시듯이 오면 반드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나의 이 몸뚱이도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느니라.”
衆 曰師從此去 早晩可回. 師 曰葉落歸根 來時無口. 又問曰 正法眼藏 傳付何人.
중 왈사종차거 조만가회. 사 왈엽락귀근 내시무구. 우문왈 정법안장 전부하인.
“조사께서 이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십니까?”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지라 올 때를 말로 할 수 없느니라.”
“정법안장은 어떤 사람에게 전하십니까?”
師 曰有道者 得 無心者 通. 又問後 莫有難否.
사 왈유도자 득 무심자 통. 우문후 막유난부.
“도 있는 자가 얻을 것이고 무심한 자가 통할 것이다.”
“후에 난이 없겠습니까?”
師 曰吾滅後五六年 當有一人 來取吾首 聽吾記.
사 왈오멸후오육년 당유일인 내취오수 청오기.
“내가 죽은 후 5~6년이 되면 어떤 사람이 내 머리를 가지러 올 것이니 나의 예언을 들어라.
曰頭上養親 口裡須餐 遇滿之難 楊柳爲官.
왈두상양친 구리수찬 우만지난 양유위관.
머리를 받들어 친히 공양하고자 함에(김대비), 입 속에 먹을 것을 구하는 장정만의 난을 만날 때 양유(양간, 유무첨)가 관이 되리라.
又云吾去七十年 有二菩薩 從東方來 一 出家 一 在家 同時興化 建立吾宗 締緝伽藍 昌隆法嗣.
우운오거칠십년 유이보살 종동방래 일 출가 일 재가 동시흥화 건립오종 체즙가람 창륭법사.
내가 가고 70년이 되면 두 보살(마조, 방거사)이 동방에서 오는데 한 사람은 출가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재가자인데 동시에 크게 교화하여 나의 종(宗)을 세우고 가람을 짜임새 있게 하여 법을 이을 이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問曰 未知從上佛祖 應現以來 傳授幾代 願垂開示.
문왈 미지종상불조 응현이래 전수기대 원수개시.
“위로부터 불조께서 나타나신 이래 몇 대를 전해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師 云古佛應世 已無數量 不可計也 今以七佛 爲始 過去莊嚴劫 毘婆尸佛 尸棄佛, 毘舍浮佛,
사 운고불응세 이무수량 불가계야 금이칠불 위시 과거장엄겁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고불(옛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그 수가 한량없어서 가히 헤아리지 못하니 이제 7불을 처음으로 삼으면 과거 장엄겁의 비바시불과 시기불과 비사부불과
今賢劫 狗留孫佛, 狗那含牟尼佛, 迦葉佛, 釋迦文佛 是爲七佛, 釋迦文佛 首傳第一摩訶迦葉尊者,
금현겁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문불 시위칠불, 석가문불 수전제일마하가섭존자,
지금 현겁의 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과 가섭불과 석가모니불이 7불이 되는데 석가모니불이 처음에 마하 가섭존자에게 전하셨으니,
第二 阿難尊者, 第三 商那和修尊者, 第四 優波麴多尊者, 第五 提多迦尊者, 第六 彌遮迦尊者,
제이 아난존자, 제삼 상나화수존자, 제사 우바국다존자, 제오 제다가존자, 제육 미차가존자,
第七 婆須密多尊者, 第八 佛馱難提尊者, 第九 伏馱密多尊者, 第十 脇尊者, 十一 富那夜奢尊者,
제칠 바수밀다존자, 제팔 불타난제존자, 제구 복타밀다존자, 제십 협존자, 십일 부나야사존자,
十二 馬鳴大士, 十三 迦毘摩羅尊者, 十四 龍樹大士, 十五 迦那提婆尊者, 十六 羅喉羅多尊者,
십이 마명대사, 십삼 가비마라존자, 십사 용수대사, 십오 가나제바존자, 십육 라후라다존자,
十七 僧伽難提尊者, 十八 伽耶舍多尊者, 十九 鳩摩羅多尊者, 二十 사耶多尊者, 二十一 婆修盤頭尊者,
십칠 승가난제존자, 십팔 가야사다존자, 십구 구마라다존자, 이십 사야다존자, 이십일 바수반두존자,
二十二 摩拏羅尊者, 二十三 鶴勒那尊者, 二十四 師子尊者, 二十五 婆舍斯多尊者,
이십이 마나라존자, 이십삼 학륵나존자, 이십사 사자존자, 이십오 바사사다존자,
二十六 不如密多尊者, 二十七 般若多羅尊者, 二十八 菩提達摩尊者, 此土 是爲初祖,
이십육 불여밀다존자, 이십칠 반야다라존자, 이십팔 보리달마존자, 차토 시위초조,
二十九 慧可大師, 三十 僧璨大師, 三十一 道信大師, 三十二 弘忍大師, 惠能 是爲三十三祖.
이십구 혜가대사, 삼십 승찬대사, 삼십일 도신대사, 삼십이 홍인대사, 혜능 시위삼십삼조.
제 이는 아난존자고, 제 삼은 상나화수 존자며, 제 사는 우바국다 존자고, 제 오는 제다가 존자며, 제 육은 미차가 존자고, 제 칠은 바수밀다 존자며, 제 팔은 불타난제 존자고, 제 구는 복타밀다 존자며, 제 십은 협 존자고, 십일은 부나야사 존자며, 십이는 마명대사고, 십삼은 가비마라 존자며, 십사는 용수 대사고, 십오는 가나제바 존자며, 십육은 라후라다 존자며, 십칠은 승가난제 존자며, 십팔은 가야사다 존자고, 십구는 구마라다 존자며, 이십은 사야다 존자고, 이십일은 바수반두 존자며, 이십이는 마나라 존자고, 이십삼은 학륵나 존자며, 이십사는 사자 존자고 이십오는 바사사다 존자며, 이십육은 불여밀다 존자고, 이십칠은 반야다라 존자며, 이십팔은 보리달마 존자이니 이 땅에 초조가 되고, 이십구는 혜가 대사고, 삼십은 승찬 대사며, 삼십일은 도신 대사고, 삼십이는 홍인 대사이니, 혜능은 삼십삼 조(祖)가 되는 것이다.
從上諸祖 各有稟承 汝等向後 遞代流傳 毋令乖悞.
종상제조 각유품승 여등향후 체대유전 무령괴오.
위로부터 모든 조사께서 이와 같이 각각 이어 받으셨으니 너희들도 이 뒤에 번갈아 가며 전하고 틀리거나 그르침이 없도록 하여라.
大師 開元元年癸丑歲八月初三日 於國恩寺 齊罷 謂諸徒衆曰汝等 各依位坐 吾與汝別.
대사 개원원년계축세팔월초삼일 어국은사 제파 위제도중왈여등 각의위좌 吾與汝別.
대사가 개원 원년(713년) 계축년 8월 3일에 국은사에서 재를 파하시고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각 지위를 따라서 앉아라. 내가 너희들과 이별하리라.”
法海 白言 和尙 留何敎法 令後代迷人 得見佛性.
법해 백언 화상 유하교법 영후대미인 득견불성.
법해가 말씀드리길 “화상께서는 무슨 교법을 남기시어 후대에 미혹한 사람으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하시겠습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師言 汝等 諦聽. 後代迷人 若識衆生 卽是佛性 若不識衆生 萬劫 覓佛難逢.
사언 여등 체청. 후대미인 약식중생 즉시불성 약불식중생 만겁 멱불난봉.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후대에 미혹한 사람이 만일 중생임을 알면 그것이 곧 불성이고 만일 중생임을 알지 못하면 만겁동안 부처님을 찾아도 만나기 어려우니라.
吾今敎汝 識自心衆生 見自心佛性 欲求見佛 但識衆生.
오금교여 식자심중생 견자심불성 욕구견불 단식중생.
내가 이제 너희를 가르쳐서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게 하고 자기 마음의 불성을 보게 하리니 부처님을 보고자 하면 다만 중생임을 알아라.
只爲衆生 迷佛 非是佛 迷衆生 自性 莫悟 衆生 是佛, 自性 若迷 佛 是衆生.
지위중생 미불 비시불 미중생 자성 막오 중생 시불, 자성 약미 불 시중생.
중생이 부처를 미혹하게 한 것이지 부처가 중생을 미혹하게 한 것이 아니니, 자성을 만일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요. 자성이 만일 어리석으면 부처가 바로 중생이니라.
自性 平等 衆生 是佛 自性 邪險 佛 是衆生.
자성 평등 중생 시불 자성 사험 불 시중생.
자성이 평등하면 중생이 바로 부처고 자성이 삿되고 험하면 부처가 바로 중생이니라.
汝等 心若險曲 卽佛 在衆生中 一念平直 卽是衆生 成佛 我心 自有佛.
여등 심약험곡 즉불 재중생중 일념평직 즉시중생 성불 아심 자유불.
너희들의 마음이 만일 험하고 굽으면 곧 부처가 중생 가운데 있고 한 생각 평등하고 곧으면 곧 중생이 성불하는 것이다.
自佛 是眞佛 自若無佛心 何處 求眞佛.
자불 시진불 자약무불심 하처 구진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으며 자기의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일 불심이 없으면 어느 곳에서 참 부처를 구하리오.
汝等 自心 是佛 更莫狐疑. 外無一物 而能建立. 皆是本心 生萬種法.
여등 자심 시불 갱막호의. 외무일물 이능건립. 개시본심 생만종법.
너희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아라.
밖으로는 한 물건도 세울 것이 없다.
모두 이 본심이 만 가지 법을 내는 것이다.
故 經 云心生 種種法 生 心滅 種種法 滅.
고 경 운심생 종종법 생 심멸 종종법 멸.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마음이 생기면 온갖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온갖 법이 없어진다.」하셨느니라.
吾今留一偈 與汝等別 名自性眞佛偈. 後代之人 識此偈意 自見本心 自成佛道. 偈 曰.
오금유일게 여여등별 명자성진불게. 후대지인 식차게의 자견본심 자성불도. 게 왈.
내가 이제 한 게송을 남기고 너희들과 이별하리니 이름이 <자성진불게>이니라.
후대 사람이 이 게의 뜻을 알면 스스로 본심을 보아서 스스로 불도를 이루리라.”
眞如自性 是眞佛,
진여자성 시진불,
邪見三毒 是魔王.
사견삼독 시마왕.
진여자성이 참 부처요,
사견과 삼독이 마왕이다.
邪迷之時 魔在舍
사미지시 마재사
正見之時 佛在堂.
정견지시 불재당.
삿되고 어리석을 때 악마가 집에 있고
견해가 올바를 때 부처가 방에 있네.
性中邪見三毒生
성중사견삼독생
卽是魔王 來住舍
즉시마왕 내주사
성품 가운데 사견으로 삼독이 생겨나면
곧 마왕이 집에 와서 살고
正見自除三毒心
정견자제삼독심
魔變成佛眞無假.
마변성불진무가.
정견으로 스스로 삼독의 마음을 없애면
마(魔)가 변하여 부처가 되며 참일 뿐 거짓은 없네.
法身報身及化身,
법신보신급화신,
三身 本來是一身
삼신 본래시일신
법신과 보신과 화신이여!
삼신이 본래 한 몸이니
若向性中能自見
약향성중능자견
卽是成佛菩提因.
즉시성불보리인.
만일 성품 가운데를 향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부처를 이루는 보리의 원인이니라.
本從化身生淨性
본종화신생정성
淨性 常在化身中.
정성 상재화신중.
본래부터 화신은 깨끗한 성품에서 나는지라.
깨끗한 성품이 항상 화신 가운데 있네.
性使化身行正道
성사화신행정도
當來 圓滿眞無窮
당래 원만진무궁.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정도를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이 없으리라.
淫性 本是淨性因,
음성 본시정성인,
除淫卽是淨性身.
제음즉시정성신.
음란한 성품이 본래 깨끗한 성품의 씨앗이요,
음란함을 없애면 곧 깨끗한 성품의 몸이니
性中 各自離五欲
성중 각자리오욕
見性 刹那 卽是眞.
견성 찰나 즉시진.
성품 가운데에 각각 오욕을 떠나면
견성이 찰나이고 곧 참이니라.
今生 若遇頓敎門
금생 약우돈교문
忽遇自性見世尊
홀우자성견세존
금생에 만일 돈교의 문을 만나면
홀연히 자성을 깨달아 세존을 보지만
欲修行覓作佛
욕수행멱작불
不知何處 擬求眞.
부지하처 의구진.
만일 수행하여 부처를 찾으려 하면
어느 곳에서 헤아려 참을 구할지 모르겠구나.
若能心中 自見眞
약능심중 자견진
有眞 卽是成佛因.
유진 즉시성불인.
만일 마음 가운데에 스스로 참을 본다면
참이 곧 성불하는 원인이니라.
不見自性外覓佛
불견자성외멱불
起心 總是大癡人.
기심 총시대치인.
자성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마음을 일으킴이 다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頓敎法門 今已留
돈교법문 금이유
救度世人須自修.
구도세인수자수.
돈교법문을 이제 남겨두니
세상 사람을 제도할 때 모름지기 스스로 닦게 하라.
報汝當來學道者
보여당래학도자
不作此見大悠悠.
부작차견대유유.
장차 도 배우는 자에게 알렸으니
이런 소견을 짓지 아니하면 크게 유유하리라.
師 說偈已 告曰. 汝等 好住. 吾滅度後 莫作世情 悲泣雨淚 受人弔問 身着孝服. 非吾弟子 亦非正法.
사 설게이 고왈. 여등 호주. 오멸도후 막작세정 비읍우루 수인조문 신착효복. 비오제자 역비정법.
조사가 게송을 마치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살아라. 내가 멸도한 후에 세속의 정으로 슬피 울지도 말고 사람의 조문도 받지 말고 상복도 입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고 또한 정법도 아니니라.
但識自本心 見自本性 無動無靜 無生無滅 無去無來 無是無非 無住無往.
단식자본심 견자본성 무동무정 무생무멸 무거무래 무시무비 무주무왕.
다만 자기의 본심을 알아서 자기의 본성을 보면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릇됨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느니라.
恐汝等 心迷 不會吾意 今再囑汝 令汝見性 吾滅度後 依此修行 如吾在日 若違吾敎 縱吾在世 亦無有益. 공여등 심미 불회오의 금재촉여 영여견성 오멸도후 의차수행 여오재일 약위오교 종오재세 역무유익. 復說偈曰.
부설게왈.
너희들의 마음이 어리석어서 나의 뜻을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지금 다시 너희에게 당부하며 너희로 하여금 견성하게 하니 내가 멸도한 후에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는 날과 같을 것이고 만일 나의 가르침을 어기면 비록 내가 세상에 있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으리라.”
다시 게송을 읊으셨다.
兀兀不修善
올올부수선
騰騰不造惡.
등등부조악.
寂寂斷見聞
적적단견문
蕩蕩心無着.
탕탕심무착.
올올히(모든 것을 초월하여 태연함) 선을 닦지 않고
등등히(자재 무애하며 당당함) 악도 짓지 않는지라.
적적하여 보고 듣는 것이 끊어지고
넓고 넓어 마음이 걸림이 없구나.
師 說偈已 端坐至三更 忽謂門人曰 吾行矣, 奄然遷化 于時 異香 滿室 白虹 屬地 林木 變白 禽獸哀鳴.
사 설게이 단좌지삼경 홀위문인왈 오행의, 엄연천화 우시 이향 만실 백홍 촉지 임목 변백 금수애명.
조사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단정히 앉아 계시다가 삼경이 되자 홀연히 문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간다.” 하시며 조용히 돌아가시니 그때에 이상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고 흰 무지개가 땅에 꽂혔으며 숲과 나무들이 하얗게 변하고 짐승들이 슬피 울었다.
十一月 廣韶新三郡官僚 洎門人僧俗 爭迎眞身 莫決所之.
십일월 광소신삼군관료 계문인승속 쟁영진신 막결소지.
11월에 광주, 소주, 신주 세 군(郡)의 관료와 문인과 승(僧)과 속(俗)이 서로 진신을 모셔가려고 다투느라 갈 곳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乃焚香禱曰 香煙指處 師所歸焉 時 香煙 直貫曹溪 十一月十三日 遷紳龕 倂所傳衣鉢而回.
내분향도왈 향연지처 사소귀언 시 향연 직관조계 십일월십삼일 천신감 병소전의발이회.
이에 향을 사르고 빌기를 “향의 연기가 가리키는 곳이 조사께서 돌아가실 곳입니다.” 하니 그때 향의 연기가 바로 조계를 향하여 곧게 뻗치므로 11월 3일에 신감(시신을 모신 관)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의발을 옮겨 돌아왔다.
次年七月二十五日 出龕 弟子方辯 以香泥 上之 門人 憶念取首之記 遂以鐵葉漆布 固護師頸
차년칠월이십오일 출감 제자방변 이향니 상지 문인 억념취수지기 수이철엽칠포 고호사경
다음 해 7월 25일에 신감을 꺼내어서 제자 방변이 향을 그 위에 바르고 문인들이 머리를 취하리라는 예언을 생각하여 먼저 철판과 옻칠을 한 천으로 조사의 목을 단단히 보호하여
入塔 忽於塔內 白光 出現 直上衝天 三日始散 韶州 奏聞 奉勅立碑 紀師道行.
입탑 홀어탑내 백광 출현 직상충천 삼일시산 소주 주문 봉칙입비 기사도행.
탑에 모셨더니 홀연히 탑 안에서 흰 빛이 나와 하늘로 뻗어 올랐는데 3일 만에 비로소 흩어지므로 소주자사가 조정에 아뢰었고 칙명을 받들어 비를 세워서 조사의 도행(道行)을 기록하였다.
師 春秋 七十有六 年. 二十四 傳衣 三十九 祝髮 說法利生 三十七載.
사 춘추 칠십유육 년. 이십사 전의 삼십구 축발 설법이생 삼십칠재.
조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스물넷에 의발을 전해 받으시고 서른아홉에 스님이 되어 설법을 하시며 중생을 이롭게 하신 것이 삼십칠 년이었다.
得嗣法者 四十三人 悟道超凡者 莫知其數.
득사법자 사십삼인 오도초범자 막지기수.
종지를 얻어 법을 이은 자가 마흔 세 명이고 도를 깨달아 범부를 넘어선 사람은 그 수를 알 수가 없었다.
達摩所傳信衣 中宗 賜磨衲寶鉢 及方辯 塑師眞相 幷道具等 主塔侍者 尸之 永鎭寶林道場
달마소전신의 중종 사마납보발 급방변 소사진상 병도구등 주탑시자 시지 영진보림도량
달마가 전하신 믿음의 징표인 가사와 중종이 주신 마납가사와 보배발우와 방변이 새긴 조사의 진영과 그 밖의 도구들은 탑을 주관하는 시자가 맡아서 영원히 보림 도량에 두게 하고
流傳壇經 以顯宗旨 興隆三寶 普利群生者.
유전단경 이현종지 흥륭삼보 보리군생자.
단경을 유전하여서 종지를 나타내고 삼보를 일으켜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六祖大師法寶壇經 附錄
육조대사법보단경 부록
師入塔後 至開元十年壬戌八月三日夜半 忽聞塔中 如拽鐵索聲 衆僧 驚起 見
사입탑후 지개원십년임술팔월삼일야반 홀문탑중 여예철삭성 중승 경기 견
조사께서 탑에 드신 후(722년) 개원 10월 임술 8월 3일 한 밤중이 되었을 때 갑자기 탑 속에서 쇠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소리가 나므로 스님들이 놀라서 나가보니
一孝子 從塔中走出 尋見 師頸 有傷.
일효자 종탑중주출 심견 사경 유상.
한 상주가 탑에서 달아나므로 자세히 살펴보니 조사의 목에 상처가 있었다.
具以賊事 聞于州縣 縣令楊侃 勅史柳無添 得牒 切加擒捉五日 於石角村 捕得賊人.
구이적사 문우주현 현령양간 자사유무첨 득첩 절가금착오일 어석각촌 포득적인.
도적이 든 사실을 고을에 자세히 알리니 현령인 양간과 자사인 유무첨이 통첩을 받고 사로잡으려고 애를 쓰더니 5일 만에 석각촌에서 도적을 잡았다.
送韶州 諶問 云 姓 張 名 淨滿 汝州梁縣人.
송소주 심문 운 성 장 명 정만 여주양현인.
소주로 보내 죄를 심문하니 성은 장이고 이름은 정만인데 여주의 양현 사람이라 하였다.
於洪州開元寺 受新新羅僧金大悲錢二十千 令取六祖大師首 歸海東供養
어홍주개원사 수신신라승김대비전이십천 영취육조대사수 귀해동공양
홍주의 개원사에서 신라 스님 김대비로부터 돈 2만 냥을 받았고 김대비는 육조대사의 머리를 가지고 해동으로 돌아가서 공양하려 했다 하므로
柳守 聞狀 未卽加刑 乃躬至曹溪 問師上足令韜曰 如何處斷,
유수 문상 미즉가형 내궁지조계 문사상족영도왈 여하처단,
유수가 이 사실을 듣고 형의 집행을 보류하고 몸소 조계에 가서 조사의 제자 가운데 제일 뛰어난 사람인 영도에게 어떻게 처단해야 할지를 물으니,
韜 曰若以國法 論 理須誅夷 但以佛敎 慈悲 寃親 平等 況彼求欲供養 罪可恕矣.
도 왈약이국법 논 이수주이 단이불교 자비 원친 평등 황피구욕공양 죄가서의.
영도가 말하길 “만약 국법으로 논한다면 모조리 죽여야 마땅하겠지만 불교는 자비로워 원수나 친한 이나 모두가 평등한데 하물며 그 사람이 공양을 하고 싶어서 한 짓이니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므로
柳守 加歎曰始知佛門 廣大 遂赦之.
유수 가탄왈시지불문 광대 수사지.
유수가 감탄하며 “비로소 불문이 넓고 큰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며 풀어주었다.
上元元年 肅宗 遣使 就請師衣鉢 歸內供養 至永泰元年五月五日 代宗 夢 六祖大師 請衣鉢,
상원원년 숙종 견사 취청사의발 귀내공양 지영태원년오월오일 대종 몽 육조대사 청의발,
상원 원년(760년 - 멸도한지 47년째)에 숙종이 사신을 보내어 조사의 의발을 대궐 안으로 가져와 공양하였는데 영태 원년 5월 5일 대종의 꿈에 육조대사가 나타나 의발을 청하므로
七日 勅刺史楊緘云 朕夢 感能禪師 請傳法袈裟 却還曹溪. 今遣鎭國大將軍劉崇景 頂戴而送.
칠일 칙자사양함운 짐몽 감능선사 청전법가사 각환조계. 금견진국대장군류숭경 정대이송.
7일에 자사인 양함에게 분부하여 이르시길, “짐의 꿈에 혜능선사가 나타나서「법을 전하는 가사를 조계로 되돌려 주라.」하시므로 진국대장군인 류숭경으로 하여금 받들어 보낸다.
朕謂之國寶 卿可於本寺 如法安置 傳令僧衆 親承宗旨者 嚴加守護 勿令遺墜.
짐위지국보 경가어본사 여법안치 전령승중 친승종지자 엄가수호 물령유추.
짐이 국보로 생각하니 경이 직접 본사에 가서 법대로 잘 모시고 스님 가운데 종지를 친히 이은 자로 하여금 더욱 엄중하게 수호하게 하여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셨다.
後 或爲人偸竊 皆不遠而獲 如是者 數四.
후 혹위인투절 개불원이획 여시자 수사.
그 뒤에 가끔 사람들이 몰래 훔쳐 갔으나 모두 오래지 않아 찾아왔는데 이와 같은 일이 네 번이나 있었다.
憲宗 諡大鑑禪師 塔曰元和靈照.
헌종 시대감선사 탑왈원화영조.
헌종(806년)이 대감선사라 시호하시고 탑을 원화영조라 이름하였다.
其餘事蹟 係載唐尙書王維 刺史柳宗元 刺史劉禹錫等碑.
기여사적 계재당상서왕유 자사유종원 자사류우석등비.
그 나머지 사적은 당나라의 상서인 왕유와 자사인 유종원과 자사인 류우석 등이 비문에 실었다.
守塔沙門令韜 錄.
수탑사문영도 녹.
탑을 지키는 사문 영도가 기록하노라.
六祖大師法寶壇經 跋
육조대사법보단경 발
태화(1207년, 고려 희종) 7년 12월 어느 날 도량 안에 있던 담묵이라는 도인이 책 한 권을 가지고 방에 들어와 말하기를 “근래에 법보단경을 얻었는데 장차 판각을 새겨서 널리 전하고자 하니 대사께서 발문을 좀 써주십시오.” 하므로 내가 흔쾌히 대답하였다.
“이것은 내가 평생 종(宗)으로 이어 닦으며 배우는 귀감인데 당신이 그것을 인쇄하여 두루 펴서 후세에 오래 가도록 하겠다하니 노승의 뜻에 아주 들어맞는구나.
그러나 여기에 일단의 의심이 있는 것은 남양의 혜충 국사께서 선객들에게 말씀하시기를「나는 요사이 몸과 마음이 한가지여서 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완전히 생멸하지 않는데 너희 남방에는 몸은 무상하고 정신은 상이라 한다. 그러므로 반은 생멸하고 반은 불생불멸인 것이다.」하셨고 또 말씀하시길「내가 근래 지방에 다닐 적에 이런 경향이 더욱 많아지는 것을 보았다.」하시며 단경을 들고 하시는 말씀이「이것을 남방의 종지라 하며 더러운 말을 섞어 넣고 성인의 뜻을 깎아 없애므로 후배들을 혼란으로 유혹하는구나.」하신 일이다.
자네가 지금 얻은 것은 바르고 옳은 본문이고 덧붙인 기록이 아니니 가히 국사의 꾸짖음은 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자세히 본문을 살펴보니 역시 몸은 나고 죽는데, 마음은 불생불멸이라는 뜻이 있다.
예컨대 진여의 성품이 스스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고 안, 이, 비, 설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한 것 등이 국사께서 꾸짖으신 뜻이다.
마음을 닦는 자가 여기에 이르면 의심스런 생각이 없지 않을 것인데 어떻게 풀어야 깊이 믿게 하며, 성인의 가르침을 유통하게 하겠느냐?”
담묵이 “그러면 그 적절한 뜻을 들려주십시오.” 하므로 내가 말하였다.
“노승이 지난번에 이 경을 마음에 두고 그 참뜻을 잘 생각하여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조사의 뛰어난 방편의 뜻을 얻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조사께서 회양과 행사 등을 위해서 가만히 마음으로 법을 전하신 외에 위거 등의 도, 속, 천 여인을 위해서는 상(相)이 없는 마음의 계를 설명해 주셨던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참된 말씀만 하시어 속인들을 거스를 수 없었고 또 오로지 세속만 따라 주어서 참된 것을 어길 수 없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반은 남의 뜻을 따르고 반은 자기가 증득하신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진여가 생각을 일으키고 눈이나 귀는 생각하지 못한다는 등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 속 등으로 하여금 먼저 몸속의 보고 듣는 성품을 돌이켜 보게 하여 진여를 깨닫게 한 뒤에 바야흐로 조사의 몸과 마음이 하나인 비밀한 뜻을 보게 하신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뛰어난 방편이 없이 바로 몸과 마음이 하나인 진리만 말씀했다면 눈으로 생, 멸이 있는 몸만 보는 중생들이기 때문에 출가 수도하는 자들도 오히려 의심할 것인데 천 명이나 되는 세속의 선비들이 어떻게 믿고 받아들였겠는가.
이것이 조사께서 중생의 기틀을 따라 달래며 이끄신 말씀이시다.
혜충국사께서 남방 불법의 병을 꾸짖어 파하시고 가히 무너진 기강을 다시 정돈함으로써 성인의 뜻이 나타남을 도우시는 것은 갚기 어려운 은혜를 갚는 것이로다.
후손인 우리들이 그 비밀히 전하신 뜻을 직접 이어 받지 못하였으므로 마땅히 이와 같이 들어내는 문(현전문)의 성실한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도리어 비추어 보고 없다는 생각이나 항상 하다는 생각에 떨어지지 않으면 가히 허물을 여윈 것이리라.
그러나 만일 마음은 생, 멸하지 않는다고 관하고 몸은 생, 멸한다고 관하면 곧 한 법 위에 두 가지 소견을 낸 것이니 성품과 모양을 자세히 이해 한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알아라.
이 한 권의 신령스런 글에 의지하여 그 뜻을 얻어 자세히 참구하면 오랜 세월이 걸릴 것 없이 빨리 보리를 증득할 것이니 판을 새겨 인쇄하고 유행시킴으로 큰 이익이 있지 않겠느냐.” 하니 담묵이 “그러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기에 이에 글을 쓰노라. - 끝.
六祖大師法寶壇經 撰
육조대사법보단경 찬
편저 - 한국불교대학 교재편찬회
감수 - 無一(무일) 우학스님
宋 明敎大師 契 嵩 撰
송 명교대사 계 숭 찬
찬(撰)은 고한다는 것으로 경을 펴서 널리 알린다는 것이다.
단경이란 지극한 어른(육조)께서 마음을 펴신 것인데 어떤 마음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전하신 묘한 마음이다.
크도다. 마음이여, 창조하고 변화하지만 청정하여 항상 같으니, 범부도 그러하고 성인도 그러하며 어둠에도 그러하고 밝음에도 그러하여 어디에 있으나 얻지 못함이 없느니라.
성인은 밝다 하고 범부는 어둡다 말하며 어두운 것은 변하고 밝은 것은 회복이니 변하고 회복함은 비록 다르지만 묘한 마음은 하나이다.
처음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것을 가섭존자인 대구(大龜)에게 전하시고 대구(大龜)가 전하여 33대까지 하여 육조대사에게 전해졌으며 육조대사께서 다시 전하시니 설법을 한 이가 매우 많을 것이다.
이름은 같으나 내용은 다른 것이 있고 그 뜻이 많지만 마음은 하나인 것이다.
오관 신경과 같은 혈육심과 생각하는 연여심(緣儢心)과 집기심(集起心)(잠재의식)과 생각의 주체이며 진아(眞我)인 견실심(堅實心)은 다 마음에서 일어난 일체의 객관인 심소(心所)의 마음이 더욱 많은 것 같으니, 이것은 다 이름은 같지만 실상은 다른 것이며, 진여심, 생멸심, 번뇌심, 보리심 등이 경에 수없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른바 겉 뜻이 많지만 마음은 하나인 것이다.
뜻은 깨달은 뜻이 있고 깨닫지 못한 뜻이 있으며, 마음에 참 마음이 있고 망령된 마음이 있으나 다 바른 마음을 분별한 것이다.
단경에서 말하는 마음은 그 뜻이 깨달은 뜻이며 견실한 마음이다.
옛 성인께서 장차 숨으심에 가섭에게 명하시어 교(敎) 밖에 따로 법의 요긴함을 전하신 것은 사람들이 혹시 현상계의 자취에 걸리어 본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을까하여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근본을 이끌어 지엽말단을 바로 잡게 하려 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열반경에 <나는 위없는 정법이 있는데 마하가섭에게 이미 부촉했노라.> 하신 것이다.
하늘의 도는 바뀌는데 있고 땅의 도는 간결한데 있고 성인의 도는 요긴한데 있으니 요긴이라 함은 지극히 묘함을 일컫는다.
성인의 도가 요긴하여 법계의 추기가 되고 무량한 이치의 모임이 되며 대승의 시작이 되므로 법화경에 <마땅히 알라. 이 묘법은 제불의 비밀한 요지이니라.> 하셨으며 화엄경에 <작은 방편으로써 속히 보리를 얻는다.> 하시지 않았겠느냐?
요긴함이여, 성인의 도에 이롭고 크도다.
그러므로 단경의 종지는 그 마음의 요긴함을 높인 것이니라.
마음이여, 밝은 것 같고 어두운 것 같으며 빈 것 같고 신령한 것 같으며 고요한 것 같고 깨어 있는 것 같으니 어떤 물건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한 물건이라면 진실로 만물에 가득하고 만물이라면 한 물건에 통일될 것이니, 한 물건이 만물과 같고 만물이 한 물건과 같은지라.
이는 가히 생각하고 의논한다 하겠지만 생각할 수 없고 의논할 수 없는 것이다.
천하를 깊이 안 것이며 신기롭게 안 것이며 상대가 끊어진 것이며 잠잠히 체득했다하며 가만히 하나에 통했다하니 다 여의고 보내며, 보내고 또 보냄이니 어찌 미묘한 것뿐이겠느냐?
과연 홀로 얻음이로다.
무릇 육조의 서로 같은 경계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넓게 미루어 보면 가는데 마다 옳지 않음이 없고 탐구하여 헤아려 보면 마땅하지 않은 바가 없으며 성품을 증득하는데 쓰면 보는 바가 지극히 친하고 마음을 닦는데 쓰면 나아감이 지극히 바르고 덕을 높이고 미혹함을 가리는데 쓰면 참과 거짓이 잘 나타나고 세상을 뛰어나는데 쓰면 불도를 빨리 이루고 세간을 구하는데 쓰면 번뇌가 쉽게 사라지리라.
이것이 단경의 종지가 천하에 유행하되 싫어하지 않음이로다.
마음이 곧 부처다. 라고 하신 말씀은 소견이 얕은 사람이 어떻게 그 뜻을 헤아려 알 수 있겠느냐?
부러진 송곳으로 땅속을 찔러보고 땅을 얇게 여기는 것과 새는 지붕 틈으로 하늘을 엿보아 하늘을 작게 여김과 같은데 어찌 하늘과 땅이 그러한 것이겠느냐?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비록 뛰어났지만 이 이치를 알지 못하는데 지극한 이는 통달하고 꿰어 뚫어서 단경의 종지가 뭇 경에 합해 있음을 결단코 보는도다.
지극한 이가 변하고 통함에는 이름과 글자로 통하는 것이 아니지만 드러내어 설하심에는 차례가 있고 이치가 있으며 은밀히 설하실 적엔 가히 측량하지 못하여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어서 타고난 근기가 날카로운 자는 그 깊음을 얻고 타고난 근기가 둔한 자는 얕은 이치를 얻는 것이니 가히 헤아릴 수 있겠으며 의논할 수 있겠느냐?
부득이 비유하면 원돈교(圓頓敎)며 취상승이며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며 보살장의 바른 종지다.
논하는 자들이 현학이라 하는 것은 자세하지 않으니 천하가 다 종문이라 하는 것이 역시 마땅하지 않겠느냐?
단경에 말씀하시기를,
<정과 혜로 근본을 삼는다는 것은 도에 나아가는 처음을 가르치는 것이고, 정이란 고요함이요, 혜는 밝음이니, 밝음으로써 관하고 고요함으로써 편안케 하는 것이니 그 마음을 편안히 하므로 가히 마음을 체득하고 도를 관하므로 가히 도를 말하느니라.
일행삼매란 법계가 한 모습임을 말한다.
만 가지 선이 비록 다 다르지만 한 행위에 모두 바르게 됨을 말한다.
무상으로 체를 삼는다 함은 큰 계를 높이는 말이고, 무념으로 종을 삼는다 함은 큰 정을 높임이며, 무주로 근본을 삼는다 함은 큰 지혜를 높인 것이다.
무릇 계 정 혜는 삼승을 통달하는 도며 무릇 묘한 마음은 계, 정, 혜의 큰 밑천이다.
하나의 묘한 마음으로 세 가지 법을 통합하는 것이므로 크다고 한 것이다.
무상계는 반드시 바르게 깨닫는 것을 뜻하고 사홍서원이란 괴로움에 제도하는 것을 제도하기 원하는 것이고, 번뇌를 끊는 것을 끊기 원하는 것이며, 도 배우는 것을 배우기 원하는 것이고, 적멸을 이루기를 이루기 원하는 것이니 멸하되 멸하는 바가 없으므로 끊지 못하는 바가 없고, 도(道)이지만 도라 할 것이 없으므로 제도하지 못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무상참회라 함은 참회하지만 참회가 아니며 삼귀계라 함은 하나에 돌아가는 것이며 하나는 삼보를 내는 것이니라.
마하반야를 설한다 함은 마음의 지극한 중도를 일컬음이니 반야는 성인의 방편이고 성인의 큰 지혜니라.>
매우 고요하고 밝으며 권도(權道)이고 실다움이니 천하가 고요하면 그 고요함으로 뭇 악을 없애고 천하가 밝으면 밝음으로 가히 뭇 선을 모으며 천하가 권하면 그 권으로써 크게 위함이 있으며 천하가 실다우면 그 실다움으로써 가히 크게 위함이 없느니라.
지극하도다. 반야여!
성인의 도는 반야가 아니면 밝지 못하며 이루지 못하는도다.
천하의 힘씀이여 무릇 반야가 아니면 마땅하지 못하며 온당하지 못하리니 지극한 이의 하는 바는 반야로써 떨침이 심원하지 않겠는가?
나의 법은 상상 근(根)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라고 하신 것은 마땅한 말씀이니 가벼운 물건을 무겁게 쓰면 이겨내지 못하고 큰 도를 작은 이에게 주면 깨뜨리느라.
종래에 묵묵히 전하여 분부한다. 하신 것은 은밀히 설함을 가리키는 말씀인데 은밀하다는 것은 말없이 가만히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 참답게 은밀함을 뜻한다.
이 법을 알지 못하고 비방하고 헐뜯으면 백 겁 천생에 부처의 종자인 성품을 끊는다. 라고 하신 것은 천하가 그 마음을 잃을까 막으신 것이리라.
위대하시다. 단경을 지으심이여!
그 근본이 바르고 그 자취가 본받았으며 그 원인이 참되고 그 결과가 어긋나지 않음이니 앞 성인과 뒷 성인이 이와 같이 일어나고 이와 같이 보이고 이와 같이 회복하심이니 그 호연하고 넉넉함이 큰 강의 흐름과 같고 허공의 트임과 같으며 해와 달의 밝음과 같으며 형체와 그림자가 서로 걸림이 없는 것과 같으며 기러기 떼의 질서와 같도다.
묘하게 얻는 것을 근본이라 하고 잘 맞도록 미루어 쓰는 것을 자취라 하며 비롯함이 아닌 것으로 비롯함을 일으키는 것을 인(因)이라 하며 이룸 아닌 것으로 이루는 것을 과(果)라 하며 과(果)가 인(因)과 다르지 않음을 바른 과라 하며 인이 과와 다르지 아니함을 바른 인이라 하며 자취가 반드시 근본을 돌아봄을 큰 용(用)이라 하고 근본이 자취를 반드시 돌아봄을 대승(大乘)이라 한다.
승(乘)이란 성인의 도를 비유한 말이고 용이란 성인의 가르침을 일으킴이라 일컫느니라.
무릇 성인의 도는 마음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고 성인의 가르침은 닦는 것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고 정신을 길들여서 도에 들어가는 것은 일상지관(一相止觀), 이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고 선을 본받아 덕을 이루는 데는 일행삼매(一行三昧)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으며 일체 계(戒)를 재산으로 하는 데는 무상(無相)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으며 일체의 정(定)을 올바르게 하는 데는 무념(無念)보다 더 지극함이 없으며 일체의 지혜를 통하는 데는 무주(無住)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느니라.
선을 내고 악을 멸하는 데는 무상계(無相戒)보다 더 지극함이 없고 도를 돈독히 하고 덕을 추구하는 데는 사홍서원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고 허물을 잘 관하는 데는 무상의 참회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고 바로 나아감에는 삼귀계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으며 큰 체를 바르게 하고 큰 작용을 마름질함에 있어서는 큰 반야보다 더 지극함이 없고 큰 믿음을 일으켜 큰 도를 힘쓰는 데는 큰 의지보다 더 지극함이 없으며 천하의 이치를 추구하여 성품을 다 하는 데는 묵묵히 전하는 것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으며 마음에 허물이 없고자 하는 데는 비방하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느니라.
정과 혜로 시작을 삼는 것이 도의 기초이고 일행삼매가 덕의 단서며 무념의 종지가 해탈을 일컬음이며 무주의 근본이 곧 반야이며 무상의 체는 법신이고 무상계가 계의 으뜸이며 사홍서원이 원력의 지극함이고 무상참회가 참회의 지극함이고 삼귀계가 참으로 돌아갈 곳이며 마하지혜가 성인과 범부의 큰 규범이며 상상근(上上根)이 사람을 위하여 설하심이 바로 설함이요, 묵묵히 전함이 전함에 있어 지극함이요, 비방을 경계함이 계의 마땅함이니라.
무릇 묘한 마음이란 닦아서 이루는 것이 아니며 깨달아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이룬 것이며 본래 밝은 것이니라.
본래 밝은 것을 미혹한 자가 다시 밝히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이룸을 저버린 자가 다시 이루는 것을 닦는 것이라 하니 닦는 것 아님으로써 닦는 것을 바른 닦음이라 하고 밝히는 것 아닌 것으로 밝힘을 바른 깨달음이라 한다.
지극한 이는 가만히 그 위의를 보고서 덕을 이루고 행을 실천함이 무성하며 없는 듯하면 지니는 바가 없지만 도가 천하에 나타나니 바로 닦음으로 닦은 때문이고 바른 깨달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인데 닦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인도 없고 과도 없다 하면서 꼬치꼬치 따지고 파헤치며 다투어 그 말을 내세우니 지극한 이의 뜻을 어긋나게 하는구나.
슬프다. 계, 정, 혜를 버리고 꼭 혼망한 공에 나아가 빠진다면 나도 어찌할 수 없구나.
심하다. 함식(含識)이 마음을 빠뜨리고 식이 들뜸으로 식(識)과 업(業)이 서로 타고 일어나 메아리치듯 쉬지 않는구나.
형상을 드러냄에 사람과 만물이 다투어 생겨서 천지 사이에 소란하니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인간의 형성을 얻은 자는 억의 하나고 사람으로 깨닫기는 더욱 드무니 성인이 이를 생각하여 비록 많은 뜻을 내셨지만 천하가 오히려 밝지 못함이 있고 성인이 이를 구원하여 방편으로 대치하지만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현명하다고 하는 자는 지혜로써 어지럽고 둔한 자는 어리석음으로 막히며 보통 사람은 혼미해서 어둡게 되느니라.
그리하여 사물에 부딪혀 감동을 받고 정서를 일으킴으로써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여 만단(萬端)으로 더욱 가리어지니 마치 어둡고 깜깜한 밤길을 가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구나.
또한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경우에도 계교(計校)를 널리 하여 안개를 무릅쓰고 먼데를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 있다거나, 없다거나, 있는 것도 아니라거나, 없는 것도 아니라거나, 또한 있기도 하다거나, 없기도 하다거나, 등의 말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이에 가리어져서 몸이 다하도록 살피지 못하구나.
그것은 마치 바다가 물로 이루어진 것인데 고기와 용이 그 생사가 바다에 매여 있지만 물의 덕을 모르는 것과 같이 도가 마음에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종일토록 도를 말하면서 마음을 보지 못하니 슬프다.
마음이 진실로 미묘하고 그윽하고 멀어서 밝히기 어렵고 나아가기 어려움이 이와 같도다.
성인이 가시면서 천하 백세에 이를 글로써 전하지만 밝은 증험(證驗)할 수 없으므로 이에 단경의 종지가 바로 그 마음을 보이니 천하가 바야흐로 그 성품의 도를 바르게 하므로 구름과 안개가 없는 맑고 밝은 하늘을 보는 것 같으며 태산에 올라 앞이 탁 트이는 것 같구나.
왕씨가 속세의 글로써 <제나라가 한 번 변하여 노나라에 이르고 노나라가 변하여 도를 이른다.> 했는데 이 말이 가까운 점이 있다.
열반경에 이르시기를 <처음 녹야원으로부터 마지막 발제하(跋提河)에 이르도록 오십 년 동안 한 글자도 말씀한 것이 없다.> 하심은 법은 문자가 아님을 보이신 것이니 문자로써 구함을 막으신 것이다.
또 <법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하심은 법은 참이고 사람은 거짓이기 때문이고 <뜻을 의지하고 말을 의지하지 말라.> 하심은 뜻은 사실이지만 말은 거짓인 때문이며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말라.> 하심은 지혜는 지극하고 알음알이는 허망하기 때문이며 또 <대승실교인 요의경에 의지하고, 소승교나 구경의 대승교가 아닌 불요의경(不了義經)을 의지하지 말라.> 하신 것은 요의경이 이치가 다하기 때문이며 <보살이 대열반경을 말씀했다.> 함은 당신의 말씀한 바가 경과 더불어 같음을 뜻한 것이로다.
성인이 네 가지 법을 의지하여 출세(出世)함으로 정법을 보호하고 유지하시니 마땅히 깨달아 아실 것을 깨달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지극한 이는 근본을 미루어 그 끝을 바르게 하시고 스스로 하신 말씀이 경과 같으므로 지극한 이(육조대사)가 경을 말씀하신 것은 경과 더불어 같으며 뜻을 의지하고 요의경을 의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한 이가 드러내어 말씀하신 것은 뜻에 합하고 경에 맞으니 법에 의지하고 지혜에 의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한 이가 엄밀히 말씀하신 것은 변하고 통하여 구차하게 걸리지 않으며 법이 문자가 아님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한 종지를 오히려 묵묵하게 전하신 것이다.
성인(부처님)은 봄과 같아서 화창하게 일으키시고 지극한 이는 가을과 같아서 견실하게 이루시며 성인이 명하시고 지극한 이가 본 받으시는도다.
지극한 이는 진실로 성인의 문에 기특함이니 덕이 뛰어나고 공이 크심이로다.
지극한 이는 처음에 작은 데서 시작하여 스스로 세속의 문자를 알지 못한다고 하시다가 지극함을 이루고 바야흐로 설법하실 적엔 도를 드러내어 세상을 구하시는데 큰 성인이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꼭 들어맞는 것과 같다.
진실로 그윽한 덕과 높은 지혜는 태어나면서 아신 것이지만 그 법을 표현하기 위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신 것이리라.
돌아가신지 사백년 가까이 그 법의 흐름이 사방에 널리 흘러 바름을 잊지 아니하였거니와 성현을 찾는 자 삼십 세에 이르지만 그 도를 구하여 더욱 공경했으니 큰 성인이 설하신 바에 이르지 못했다면 하늘이 싫어한지 오래였을 것이니 어찌 능히 이와 같겠는가.(우주의 대 진리에 어긋났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정법으로 존속되겠는가.)
또 내가 어찌 진실로 그 도를 다할 수 있겠는가.
다행이 모기와 등에가 바닷물을 마시지만 그 맛이 한 가지인 것처럼 감히 머리를 조아려 선포하여 후학에게 남겨주노라.
명교대사의 심진문집단경찬 이라는 제목의 주(註)에 경이라 한 것은 뒷사람이 그 법을 존경하여 말한 것이지 육조의 뜻이 아니므로 지금 그대로 따랐을 뿐 감히 고치지 못한다. 라고 운운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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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六祖壇經) 한글
편저 - 한국불교대학 교재편찬회
감수 - 無一(무일) 우학스님
略序
약서
대사의 이름은 혜능이다.
아버지는 노씨로서 휘는 행도이고 어머니는 이씨이다.
대사는 당나라 정관12년 무술년 2월 8일 자시에 태어나셨는데, 그 때에 백호의 광명이 허공에 떠오르고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새벽녘에 범상치 않은 두 스님이 찾아와서 대사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밤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가하면 위에 자는 혜로, 아래 자는 능으로 하십시오.” 하였다.
아버지가“어찌하여 혜능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이 말씀하기를 “<혜>라는 것은 법으로써 중생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고, <능>이라하는 것은 부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였으며 말을 마치고 나갔는데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대사가 젖을 먹지 않았는데 밤이 되면 신인이 와서 감로를 먹여 주었다.
자라나서 나이가 스물넷이 되었을 때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아 황매로 가서 인가를 구하였더니, 오조가 법기로 여기시어 가사와 법을 전하시며 조사의 자리를 잇게 하시니, 때는 용삭 원년 신유년(당 고종 12년) 이었다.
남으로 되돌아가 은둔하신지 16년이 되는 의봉 원년 병자년 정월 8일에 인종법사와 만났는데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깨달아 모든 면에서 뜻이 서로 잘 맞으므로 이달 15일에 사부 대중을 널리 모아서 대사의 머리를 깎고 2월 8일에 여러 이름 있는 대덕스님들을 모아서 구족계를 주시었다.
서경의 지광율사는 수계사가 되고 소주의 혜정율사는 갈마사가 되고 형주의 통응율사는 교수사가 되고 중천축의 기다라율사는 설계사가 되고 서국의 밀다삼장은 증계사(證戒師)가 되었다.
그 계단은 송나라 때의 구나발다라 삼장이 처음 세우실 때 비를 세우며 이르시길 「후일에 육신보살이 여기에서 계를 받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양나라 천감 원년(서기502년)에 지약삼장이 서축국(서인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그 땅에서 가져온 보리수 한 그루를 이 단가에 심으시며 미리 예언하기를「170년 뒤에 육신보살이 이 나무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열고 연설하여 한량없는 대중을 제도할 것인데 참으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법의 주인이시다.」하시더니, 대사가 이곳에 이르러서 비로소 머리를 깎고 계를 받으며 또 사부대중과 더불어 단전(깨달음은 언어나 문자로 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밖에 전할 수 없다는 뜻)의 법지를 열어 보이시니 한 결 같이 예전에 예언하신 바와 꼭 같았다.
다음해 봄에 대사가 대중을 하직하고 보림사로 돌아가시니 인종화상이 재가자 및 출가자 천여명과 함께 전송하였다.
바로 조계산으로 가셨는데 그 때 형주의 통응율사가 학인 수백 명과 함께 대사를 의지하여 머물렀다.
대사가 조계산의 보림사에 이르러 보니 당우가 너무 좁아서 대중을 수용하기엔 부족함을 보시고는 넓히시려고, 마을 사람인 진아선을 찾아가 만나 말씀하시길 “노승이 단월에게 이르러 좌구 깔 땅을 구하고자 하는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시니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좌구가 얼마나 넓습니까?” 하므로 조사가 좌구(앉거나 누울 때 까는 방석)를 내어 보이시자 진아선이 허락하므로 조사가 좌구를 한번 펴니 조계의 사방경계를 다 덮었는데 사천왕이 몸을 나타내어 사방에 앉아 눌렀다.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천왕령은 이때의 일로 붙여진 이름이다.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법력이 크고 넓으신 것을 알겠습니다마는 저의 고조의 분묘가 이 땅에 있으니 후일 사찰을 지으시더라도 그대로 남겨두실 것을 바라며 나머지는 원 대로 모두 드리니 영원히 절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땅은 생룡(살아있는 용)과 백상(흰 코끼리)이 뻗어 내린 맥이므로, 높고 낮은 데로 지을지언정 땅을 깎아 평평하게 하여 짓지는 마십시오.” 하였기에 뒤에 절을 지을 때 한 결 같이 그 말대로 하였다.
대사가 경내를 다니시다가 산수가 뛰어난 곳에 번번이 머물러 쉬시다가 13개의 난야(수행처소)를 세우셨는데 오늘날 화과원이라는 이름으로 절 문에 써 놓은 곳이다.
이 보림 도량은 역시 이보다 앞서 서국(인도)의 지약삼장이 남해로부터 와서 조계의 어귀를 지날 때에, 물을 한 모금 움켜 마시고 향기로운 맛을 이상히 여기어 그 제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길 「이 물이 서천의 물과 다르지 않으니 시냇물 저 위에는 반드시 뛰어난 땅이 있을 것이고 도량을 세울만할 것이니라.」하시며 흐르는 물을 따라가 그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과 물이 감아 돌고 산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므로 감탄을 하며 말씀하시길 「완연히 서천의 보림과 같구나.」하시며 조후촌의 사람들에게 「이 산에 절을 하나 지으십시오. 170년 뒤에 마땅히 위없는 법을 이곳에서 연설하고 교화하여 도를 얻는 자가 수풀과 같을 것이니 응당 보림이라 이름 하시오.」 하셨다.
그때 소주 목사인 후경준이 그 말씀을 표로 갖추어 왕에게 상주하니 임금이 그 청을 옳게 여겨서 <보림>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시어 절을 지었는데 양나라천감삼년(서기503년)에 낙성을 하였다.
절의 전각 앞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용이 항상 그 속에서 출몰하여 숲의 나무를 흔들어 꺾어 놓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아주 큰 형상으로 나타났기에, 물결이 솟아오르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어 대중들이 모두 두려워하므로 대사가 꾸짖으시며, “네가 큰 몸으로만 나타날 수 있지 작은 몸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모양이구나. 만약 신령스런 용이라면 마땅히 변화하여 작은 몸을 크게 나타내고 큰 몸을 작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니라.” 하시니 그 용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조금 있으니 다시 작은 몸으로 나타나 못 위에 뛰어 나오므로, 대사가 발우를 펴 보이시면서 “네가 감히 노승의 발우 속에는 들지 못할 것이다.” 하시니 용이 나르다시피 헤엄쳐 앞에 이르므로 대사가 발우에 담으시니 용이 움직이지 못하였다.
대사가 발우를 법당에 가지고 가서 용을 위하여 설법을 하시니 용이 마침내 뼈를 벗고 사라졌다.
그 뼈의 길이가 칠촌이나 되고 머리와 꼬리와 뿔과 발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 절에 전해져 오고 있다.
대사가 후에 흙과 돌로 그 못을 메우셨는데 지금의 전각 앞 좌측에 철탑으로 누른 곳이 바로 그 곳이다.
第一 行由品
제일 행유품
그때에 대사께서 보림에 이르시자 소주의 위 자사가 관료들과 함께 산에 들어와서 대사께 대범사의 강당에서 대중을 위하여 인연을 열어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주시기를 청하므로 대사가 자리에 오르시니 자사와 관료30여명과 유교의 선비 30여명과 비구와 비구니와 도를 닦는 이와 속인 등 천 여명이 다 같이 절을 하고 법문 듣기를 원하므로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보리의 자성이 본래 맑고 깨끗하니 다만 이 마음만 쓰면 바로 성불 할 것이니라.
선지식아! 또 나의 행적과 법을 얻은 내용을 들어보아라.
나의 선친은 본관이 범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으로 내려가 신주의 백성이 되셨다.
이 몸이 불행하여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와 외롭게 남았는데, 뒤에 남해로 와서 가난한 살림에 쪼들리어 고생을 하며 시장에서 나무를 팔다가 어느 날 한 손님이 나무를 사서 객점으로 갖다 달라 하시므로 손님에게 갖다 드리고 돈을 받아서 문밖으로 나오다가 어떤 손님이 경 외우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경을 잠깐 들으니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하므로 마음이 곧 열리고 깨쳐서
「손님께서 무슨 경을 외우고 계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손님이 「금강경입니다」하시므로, 다시 「어느 곳에서 오셨는데 이 경전을 지니고 계십니까?」 하였더니 손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기주의 황매현 동선사에서 왔습니다. 그 절에는 오대조인 홍인 대사가 계시면서 교화를 하시는데 문인이 천여 명이나 됩니다. 저도 그 곳에 가서 예배하고 이 경을 듣고 받아 왔습니다. 대사께서는 항상 스님들과 속인들에게 권하시기를, ‘다만 금강경만 받아 지니면 스스로 견성하여 바로 성불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숙세에 인연이 있었는지 그 손님이 은 열 냥을 나에게 주시면서 노모의 옷과 양식을 마련해 놓고 바로 황매에 가서 오조에게 예배하라 하시므로 나는 어머니를 편안히 모셔놓고 하직하여 30여일이 못되어 황매에 다다랐느니라.
오조께 예배하니 나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어느 지방 사람이며 무슨 물건을 구하고자 하는고?」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의 신주에 있는 백성인데 멀리 와서 스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오직 부처님 되기를 구할 뿐 나머지 물건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였더니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영남 사람이라면 곧 오랑케인데 어떻게 부처님이 될 수 있단 말이냐?」 하시므로 내가 말씀드리기를 「사람에게는 비록 남북이 있습니다만, 불성에는 본래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케의 몸이 화상과는 같지 않습니다만 불성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하였더니 오조께서 다시 말씀을 하시려다가 대중들이 좌우에 모여 있음을 보시고 이내 「대중을 따라가서 일이나 하라.」 하시므로 내가 말씀드리기를 「혜능이 화상께 여쭙겠습니다. 제자는 자기의 마음이 항상 지혜를 내어서 자성을 여의지 않는 것이 곧 복전이라고 아는데, 화상께서는 무슨 일을 하라 하시는지 알지를 못하겠습니다.」하였더니 오조가 말씀하시기를 「이 오랑캐가 근성이 너무 날카롭구나. 너는 여러 말 하지 말고 방앗간에나 가 있거라.」하시었다.
내가 물러 나와 후원에 이르니 한 행자가 나에게 나무를 쪼개고 방아를 찧게 하였는데, 8개월 정도가 지나서 어느 날 오조가 나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견해가 쓸 만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거친 사람들이 너를 해칠까 두려워서 결국은 너와 함께 말하지 못하였는데 알고 있었느냐?」 하시므로 「제자도 역시 대사님의 뜻을 알았으므로 감히 당 앞에 나가지 않았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오조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 모으시고 「내가 너희들에게 설하리라.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큰데 너희들은 날마다 온종일 복전만 구하고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는 일은 구하지 않는구나. 자성이 만일 미혹하다면 복으로 어찌 구원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각자 가서 스스로 지혜를 살펴보고 자기의 본심인 반야의 성품을 취하여서 각자 게송을 하나씩 지어서 나에게 갖고 와 바쳐 보이어라. 만일 대의를 깨달았으면 너희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여 제 육대조로 삼으리니 어서 빨리 돌아가되 지체하지 말아라.
생각으로 헤아린다면 맞지 않을 것이니라.
견성한 사람은 말 아래에 모름지기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사람은 칼을 휘두르는 전쟁터에서 나가더라도 역시 볼 수 있을 것이다」하셨느니라.
대중들이 분부를 받고 물러나와 수군거리며 서로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생각을 다하여 게송을 지어 화상에게 바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신수상좌가 현재 교수사이시니 반드시 이분이 그것을 얻을 것인데 우리가 부질없이 게송을 짓는 것은 마음만 헛되이 수고할 뿐이다」 하므로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다 마음을 놓으면 말하기를 「우리들은 이후에 신수에게 의지할 것인데 어찌 번거롭게 게송을 지으리오.」라 하였다.
신수가 생각하기를 ‘사람들이 게송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저희들의 교수사가 된 때문이니 내가 모름지기 게송을 지어서 화상에게 바쳐야겠다.
만일 게송을 바치지 아니하면 화상이 어떻게 내 마음속의 견해가 깊은지 옅은지를 아시겠는가?
내가 게송을 바치려는 뜻은 법을 구하는 것이며 좋은 일이나 조사의 자리를 찾는데 있다면 나쁜 일이며 도리어 범부의 마음과 같아서 그 성인의 자리를 빼앗음과 어찌 다르겠느냐.
만일 게송을 바치지 아니하면 결국은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니 크게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구나’ 하였다.
오조의 당 앞에는 복도가 세 칸 있었는데, 공봉(재주와 기예가 있는 사람에게 준 벼슬 이름)인 노진을 청하여 능가경의 변상도와 오조의 혈맥도를 그려서 전하여 내려가며 공양하게 하도록 하려는 중이었다.
신수가 게송을 바치려고 여러 번 당 앞에까지 갔었는데 마음이 황홀하고 온 몸에 땀이 흐르는지라 바치려는 생각을 못 내어 전후 4일 동안 열 세 번이나 게송을 바치지 못하였다.
신수가 이에 생각하기를 ‘복도 아래에다 적어두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화상이 다니시다가 보시고, 만일 좋다고 말씀하시면 곧 나아가 예배하며, 이 신수가 지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만일 마땅치 못하다고 말씀하시면 헛되이 산중에 들어와서 여러 해 동안 다른 사람의 예배만 받은 것이니 다시 무슨 도를 닦겠다고 하겠느냐’ 하며 이날 밤 삼경에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직접 등을 잡고 남쪽 복도의 벽 사이에 게송을 써서 마음의 소견을 바쳤다.
게송에 이르기를,
몸은 곧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은지라.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가 들어붙지 않도록 할지어다.
신수가 게송을 다 쓰고 곧 방에 돌아왔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알지 못하였는데, 신수가 다시 생각하기를 ‘오조가 밝은 날 게송을 보시고 기뻐하시면 법과 내가 인연이 있는 것이지만 만일 잘 되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면 나 자신이 미혹한 것이며 숙세의 업장이 두꺼워 법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성인의 뜻은 헤아리기가 어렵구나.’하며 방안에서 이런 생각으로 앉았다 누웠다하며 불안해하였는데 바로 오경이 되었고, 조사께서는 신수가 자성을 보지 못하여 문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음을 이미 아시고 계셨다.
날이 밝자 오조께서 노 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의 벽에 그림을 그리게 하시려다가 홀연히 그 게송을 보고 공봉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될 것이네. 그대가 멀리 오느라 수고만 하시었네. 경에 이르시기를 ‘무릇 모양 있는 바는 모두 다 허망하다.’ 하였으니 이 게(偈)만 두어서 사람들에게 외우고 지니게 하겠네.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악도에 떨어짐을 면하고,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일세.」하시고는 문인으로 하여금 향을 사르게 하고 예경하게 하시며 「이 게송을 다 외우면 곧 견성하게 되느니라.」하시니 문인들이 이 게송을 외우며 모두 다 훌륭하다고 찬탄하였느니라.
오조께서 삼경에 신수를 방으로 들어오게 하여 「게송을 네가 지었느냐?」 라고 물으시니 신수가 말하기를 「실로 제가 지었으나 감히 망령스럽게 조사의 지위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로 살펴주십시오. 제자에게 조금마한 지혜라도 있습니까?」하므로 오조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지은 이 게송은 본성을 보지 못한 것이다.
다만 문 밖에 이르렀을 뿐 문 안에는 들지 못한 것이니라.
이와 같은 견해로는 위없는 보리를 아무리 찾아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니라.
위없는 보리는 모름지기 말 아래에 자기의 본심을 알고 자기의 본성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임을 알아서 어느 때라도 만법이 막힘이 없으므로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어 만 가지 경계가 스스로 여여(성품에 어긋남이 없고 영원불변한 진실의 모습)한 것임을 생각 생각에 끊임없이 보아야 한다.
여여한 마음이 곧 진실이니 만일 이와 같이 본다면 이것이 곧 위없는 보리의 자성이니라.
너는 가서 하루 이틀 더 생각하여보고 게송을 다시 지어서 나에게 가져와 보여라. 너의 게가 만일 문에 들어 왔으면 너에게 가사와 법을 맡기겠노라.」
신수가 예를 갖추고 물러나와 며칠을 보냈지만 게송을 짓지 못해 마음이 혼란하고 정신과 생각이 불안하여 마치 꿈속과 같았으며 앉거나 움직이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였다.
다시 이틀이 지난 뒤에 어떤 동자가 방앗간을 지나면서 그 게송을 소리 내어 외우기에 내가 한번 들어보니 이 게(偈)는 본성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가르침은 받지 못하였으나 일찍이 큰 뜻을 알았기에 동자에게 묻기를 「외우는 것이 무슨 게송입니까?」하였더니 동자승이 말하기를 「너 이 오랑캐야 그것도 모르느냐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의 사람들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부탁하여 전하려 한다.’ 하시며 문인들로 하여금 ‘게송을 지어 와서 보여라. 만일 큰 뜻을 깨달았다면 곧 가사와 법을 맡기고 제 육조를 삼으리라.’ 하셨기에 신수상좌가 남쪽 복도의 벽 위에 무상게송을 쓰셨는데 대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다 이 게송을 외워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닦으면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고 큰 이익이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스님, 내가 이 방아를 밟은 지가 8개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당 앞에 가 보지 못하였으니 스님께서 게송 앞으로 인도해서 예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하였더니 동자가 게송 앞에 이르러서 예배하게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능은 문자를 알지 못하니 청컨대 스님께서 읽어주십시오.」 하였다.
그때에 강주의 별가(자사의 다음벼슬)가 성은 장이요, 이름은 일용이라 하는 이가 문득 큰소리로 읽기에 내가 듣고서 말하기를 「내게도 게(偈)가 하나 있으니 별가께서 써 주시기 바랍니다.」하였더니 별가가 말하기를 「오랑캐야, 너도 게송을 짓겠다 하니 그 일이 희유하구나.」하므로, 내가 별가에게 말하기를 「위없는 보리를 배우고자 하는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낮고 낮은 사람이라도 높고 높은 지혜가 있을 수 있고 높고 높은 사람이라도 생각과 지혜가 없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을 가볍게 여기면 곧 한량없고 가없는 죄가 될 것입니다.」
별가가 말하기를 「너는 다만 게송을 외워라 내가 너를 위하여 써 주리라. 네가 만약 법을 얻으면 나부터 꼭 제도하여 주어라. 이 말을 잊지 말아라.」 하므로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보리수 본래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님이라.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 앉고 때가 끼겠는가!
이 게송을 써 놓으니 대중이 다 놀라며 감탄하거나 의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서로에게 말하기를 「기특하다. 사람은 모양만으로는 알 수가 없구나. 어찌하여 오랫동안 저 육신보살을 부렸던가.」
조사께서는 대중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김을 보시고 사람들이 해칠까 두려워하시어 마침내 신발로 게송을 문질러버리며 말씀하시기를 「역시 성품을 보지 못하였다.」하시니 대중들이 그런 줄 알았다.
다음날 조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오셔서 내가 돌을 허리에 달고 쌀을 찧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도를 구하는 사람은 법을 위하여 몸을 잊어야 하는 것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하시며 「쌀을 얼마나 찧었느냐?」하시기에 「쌀을 찧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체로 치지를 못 했습니다.」 하였더니, 조사가 지팡이로 방아를 세 번 치시고 나가시므로 곧 조사의 뜻을 알아 치리고 삼경에 방으로 들어가 뵈오니 조사께서 가사로 주위를 막아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고 금강경을 설하여 주셨는데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하는 구절에 이르러 그 말씀 아래 일체 만법이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크게 깨닫고서 조사께 말씀드렸다.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기약(때를 정하여 약속함)했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나고 멸하지 않음을 기약했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함을 기약했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흔들림이 없음을 기약했으며 어찌 자성이 능히 만법을 내는 줄 기약했겠습니까?」
조사께서 내가 본성을 깨달은 것을 아시고 이르시기를 「본심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 무슨 이익이 있으랴. 스스로 본심을 알고 본성을 보면 곧 장부, 천인사, 불이니라」하셨다.
삼경에 법을 받았으므로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돈교(말 아래에 대번에 깨치는 것)와 가사와 발우를 전하시면서 「네가 이제 제 육대조가 되었으니 스스로 잘 보호하고 지켜서 널리 유정(有情)을 제도하고 장래에 유포하여 단절되지 않게끔 하여라.」하시며 게송을 하셨다.
유정이 와 종자를 내리니
인지(因地)에서 결과가 다시 나도다.
무정은 이미 종자가 없는지라.
성품도 없고 태어남도 없도다.
조사가 다시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달마대사가 처음 이 땅에 오시니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이 가사를 전하며 믿음의 바탕으로 삼아서 대대로 이어져오는 것인데 법은 곧 마음으로 마음을 전해서 누구나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알게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부처님과 부처님이 오직 본체를 전하시고 조사와 조사가 은밀히 본심을 부탁하신 것이다.
가사는 다툼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니 너에게서 그치고 전하지 말아라. 만일 이 가사를 전하면 목숨이 실에 달린 것과 같으리라. 너는 속히 떠나거라. 사람들이 너를 해칠까 두렵구나.」하시므로,
내가 「어느 곳으로 가면 좋겠습니까?」하였더니 「회(懷)를 만나면 머물고 회(會)를 만나면 숨어라.」하셨다.
내가 삼경에 의발을 받아들고 「저는 본래 남쪽 사람이라서 이 산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강가에 까지 갈 수 있습니까?」 하였더니,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기 직접 너를 보내어 주겠노라.」하셨다.
조사가 배웅하시기 위해 구강나루에 이르시니, 배가 한 척 있으므로 조사께서 나를 배에 오르게 하시고 직접 노를 잡고 저으시기에 내가 「청컨대 화상께서는 앉으십시오. 제자가 노를 젓겠습니다.」 하였더니 「내가 너를 건네어 주겠노라.」하시므로 「제가 미혹 했을 때에는 스님께서 건네 주셨지만, 깨닫고 나서는 스스로 건너는 것이 옳은가 합니다. 건넌다는 이름은 비록 하나이나 쓰는 곳은 같지 않습니다. 혜능이 변방에서 태어나 말조차 바르지 못하였는데 스님의 법을 받아 이제 깨달음을 얻었사오니 다만 자성으로 스스로 건너는 것이 합당할 것으로 압니다.」
하였더니 조사가「옳고도 옳도다. 이후에 불법이 너를 말미암아 크게 번성하겠구나. 네가 가고 삼년이 지나면 내가 바야흐로 세상을 버리리니 너는 이제 잘 가거라. 남으로 향하여 가되 마땅히 설하려고 서두르지 말아라. 불법의 난이 일어나느니라.」하셨다.
내가 조사와 하직하고 남쪽으로 걸어 두 달 반쯤이 지나 대유령에 이르렀을 때, 뒤에서 수백 명이 의발을 빼앗으려고 쫓아왔다.
그 가운데 혜명이라는 스님이 속성이 진씨이었는데 본래는 장군이라서 성질과 행동이 거칠고 사나웠다. 온갖 힘을 다하여 찾으며 대중들의 맨 앞에서 나를 쫓아 왔으므로 나는 바위 위에 올려놓고「이 가사는 믿음의 표시인데 힘으로 다툴 수 있겠느냐?」하고는 풀 속에 숨어 있었다.
혜명이 이르러서 잡아 당겼으나 움직이지 않자 큰 소리로 「행자여, 행자여, 나는 법을 위하여 온 것이지 가사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하므로
내가 나와서 반석 위에 앉으니 혜명이 절을 하고 「바라건대 행자는 나를 위하여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해서 내가 말하기를 「그대는 이미 법을 위해 왔으므로 가히 모든 인연을 막아 쉬어서 한 생각도 내지 마십시오. 내가 그대를 위하여 설하겠습니다.」하고는 조금 있다가 혜명에게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마십시오. 바로 이러할 때에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 면목입니까?」하였더니, 혜명이 그 말 아래에 크게 깨닫고 다시 묻기를 「처음의 조사 이래로 내려오는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이 외에 또다시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하므로 내가 「그대에게 설한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대가 만일 돌이켜 비추면 비밀이 그대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하였더니 혜명이 말하기를 「혜명이 비록 황매에 있었으나 실로 자기의 면목을 살피지 못 하였는데 이제 가르침을 받았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셔 부아야 차가운지 더운지를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행자께서는 혜명의 스승이십니다.」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대가 만일 이와 같다면 나와 그대는 함께 황매를 스승으로 삼은 바이니 깨달음 그 마음을 놓치지 말고 보호하여 지녀야 하느니라.」하였다.
혜명이 또 묻기를 「혜명은 이제 어느 곳으로 가야 되겠습니까?」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원(袁)을 만나면 머무르고 몽(蒙)을 만나면 그 곳에 서 살아라.」하였더니 혜명이 절하고 하직하였느니라.
내가 뒤에 조계에 이르렀으나 또 나쁜 사람들에게 쫓기는 바가 되어서 사회현으로 피난하여 사냥을 하는 사람들 틈에 무릇 15년을 지냈다.
때로는 사냥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함을 따라 법을 설하였는데 사냥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물을 지키게 하였으므로 살아 있는 놈만 보면 다 놓아주었으며 언제나 밥을 먹을 때가 되면 채소를 고기 삶는 냄비위에 얹어서 익혀먹었는데 혹 누가 물으면 「고기 곁의 채소만 먹는다.」고 대답하였다
하루는 생각하기를 마땅히 법을 펼 때가 되었으니 더 이상 숨어 있는 것은 옳지가 않겠다 싶어 산에서 나와 광주의 법성사에 이르렀는데 인종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이니 한 스님이 말하기를 ‘바람이 움직인다.’ 하시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시며 의논을 그치지 않으므로 내가 나아가서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하였더니 모여 있던 대중들이 놀랐으며 인종이 상석으로 맞아 들여 깊은 뜻을 추궁하여 물었는데 나의 말이 간략하고 이치가 합당하며 문자에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보고 인종이 말하기를 「행자는 보통사람이 아님이 틀림없습니다. 오래전에 듣기를 황매의 가사와 법이 남쪽으로 왔다 하던데 행자님이 아니십니까?」하기에 내가 「부끄럽습니다.」하였더니 인종이 제자의 예를 갖추며 전해져 내려오는 의발을 대중에게 내어 보이기를 청하고는 다시 묻기를 「황매께서 부촉하시면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습니까?」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가르쳐 주신 것은 없습니다. 오직 견성만을 의논하였을 뿐 선정과 해탈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더니 인종이 「어찌하여 선정과 해탈을 의논하시지 않았습니까?」하므로 「그렇게 되면 두 가지 법이 되어 불법이 아닙니다. 불법은 두 가지 법이 아닙니다.」 하였다.
인종이 다시 묻기를「어떤 것이 불법의 둘이 아닌 도리입니까?」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법사께서 열반경을 강의하시여 밝게 불성을 보는 것이 불법의 둘 아닌 도리입니다. 열반경에서 고귀덕왕보살이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사중금계(살생, 투도, 사음, 망어)를 범한 자와 오역죄를 지은 자와 일천제(선근이 아주 끊어진 자)들은 마땅히 선근과 불성을 끊은 것이 옵니까?’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선근에는 둘이 있는데 하나는 상(常)이요, 둘은 무상(無常)인데 불성은 상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이름 하여 둘이 아니다 하시며 하나는 선한 것이고 둘은 선하지 않는 것인데 불성은 선한 것도 아니고 선하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이름 하여 둘이 아니니라.’ 하셨습니다. 오온과 십팔계(육근, 육경, 육식)를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닌 줄을 꿰뚫어 아나니 둘 없는 성품이 곧 불성입니다.」라고 하였다.
인종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 합장하며 말하기를 「제가 경을 강의 하는 것은 오히려 깨진 기와조각과 같은데 인자께서 논의 하시는 것은 마치 순금과 같습니다.」 하였느니라.
이에 나의 머리를 깎아 주고 스승으로 섬기기를 원하였으므로 내가 마침내 보리수 아래에서 동산법문을 열게 된 것이니라.
내가 동산에서 법을 얻고 나서 갖은 고생을 모두 받아 목숨이 마치 실낱과 같았는데 오늘날 위사군과 관료들과 비구와 비구니와 도를 닦는 사람과 세속의 사람들과 더불어 이와 같은 모임을 함께 하게 되었으니 누 겁(累劫)의 인연이 아닐 수 없구나.
또한 과거 생 가운데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같은 선근을 심었기 때문에 비로소 이와 같은 돈교와 법 얻은 인연을 듣게 된 것이니라.
가르침은 옛 성현들께서 전하신 것이지 나의 지혜가 아니다.
옛 성현의 가르침을 듣고 싶은 사람은 각자 마음을 깨끗이 하고 듣고 나서는 각자가 궁금함을 없애어 옛 성인과 다름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라.”
대중이 법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절하고 물러갔다.
第二 般若品
제이 반야품
다음날 위사군이 다시 청하므로 대사께서 자리에 오르셔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두 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생각하여라.” 하시며 대사가 다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서 자성을 보게 되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 있는 사람이나 불성은 차별이 없는데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느니라. 이 때문에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는 것이니라. 내가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너희로 하여금 각각 지혜를 얻게 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 설하리라.
선지식아, 세상 사람들이 온종일 입으로는 반야를 말하지만 자성의 반야를 알지 못하니 마치 밥 먹는 것을 이야기로만 하면 배는 부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입으로만 공을 말한다면 만겁이 지나더라도 견성할 수 없으니 결국은 아무 이익도 없느니라.
선지식아, <마하반야바라밀>은 범어인데 여기 말로는 큰 지혜로 피안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이는 모름지기 마음으로 행할 것이지 입으로 외우는데 있지 않느니라.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환(幻)과 같고 화(化)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라.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할 것이다.
본성이 곧 부처이므로 성품을 떠나서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 하는가 하면 마하는 곧 크다는 뜻이다. 마음의 양은 크고 넓어서 마치 허공과 같아, 끝이나 가가 없으며 모나거나 둥글거나 크거나 작지 않으며, 또 푸르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희지도 않으며, 위와 아래와 길거나 짧은 것이 없으며 또한 성낼 것도 기쁠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으며, 머리나 꼬리가 있는 것도 아님이라.
모든 부처님의 국토는 다 허공과 같음이니 세상 사람들이 묘한 성품은 본래 공(空 ) 하여서 한 가지도 얻을 게 없으니 자성의 진공(眞空)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내가 설한 <공>을 듣고 공에 집착해서는 안 되니 제일 먼저 공에 걸리지 말아라.
만일 마음을 비우고 앉아 있기만 하면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느니라.
선지식아, 세계의 허공이 삼라만상을 다 가질 수 있어서 해와 달과 별과 산과 강과 대지와 샘과 개울과 풀과 나무와 숲과 악인과 선인과 악법과 선법과 천당과 지옥과 일체의 큰 바다와 수미산을 비롯한 모든 산들이 모두 다 이 허공중에 있다.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공>한 것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자성은 능히 만법을 머금을 수 있으므로 큰 것이다. 만법이 모든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만일 모든 사람들의 악과 선을 보더라도 모두 다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하여 마음이 허공과 같음을 이름 하여 크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하>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만 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 어떤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서 백가지 생각을 없앤 것으로 스스로를 크다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과는 함께 말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삿된 소견이 있기 때문이다.
선지식아, 마음의 크기는 넓고 커서 법계에 두루 하며 그 작용이 아주 분명하니 그 쓰임새에 바로 일체를 알며 일체가 곧 하나고 하나가 곧 일체여서 가고 오는 것이 자유롭고 마음자리에 막힘이 없는 것이 곧 반야니라.
선지식아, 일체의 반야지혜는 모두 다 자성으로부터 생기는 것이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뜻을 그릇되게 쓰지 않는 것을 참된 성품을 스스로 쓰는 것이라 한다.
하나가 참되면 일체가 참되느니라.
마음으로 큰 일만 헤아리고 작은 도라도 행하지 아니하면서 입으로 종일토록 공을 말하지 말라.
마음으로 이 행을 닦지 않으면 마치 범부가 스스로는 국왕이라 칭하지만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과 같으니 이런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선지식아, 무엇을 <반야>라 하느냐?
반야는 당나라 말로 지혜이며 어는 곳 어느 때라도 생각 생각이 어리석지 아니하여 항상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곧 반야행이다.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어지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생겨나는 것이니라.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반야를 보지 못하므로 입으로만 반야를 말하고 마음속은 언제나 어리석어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반야를 닦는다.」하며 생각 생각에 공을 말하지만 진공(眞空)은 알지 못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으며 지혜로운 마음이 곧 이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이해를 하면 이것이 곧 반야지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이라고 이름 하는냐? 이것은 서국의 말인데 당나라 말로 하면 저 언덕에 이른다는 말이고 생멸을 떠난다는 뜻이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나니 물에 물결이 있는 것과 같은 이것이 곧 이 언덕이고, 경계를 여의면 생멸이 없어지므로 물이 잠잠함이 곧 저 언덕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한다.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는지라 외울 때는 망령됨이 있고 그릇됨이 있지만 생각 생각에 만일 행을 하면 이것이 참된 성품이니라.
이 법을 깨닫는 것이 곧 반야법이요, 이 행을 닦는 것이 곧 반야행이니라.
닦지 않으면 범부요, 일념으로 수행하면 자신들이 부처님이니라.
선지식아, 범부가 곧 부처님이며 번뇌가 곧 보리니 앞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다.
앞생각이 경계에 집착하면 곧 번뇌고 뒷생각이 경계를 여의면 곧 보리니라.
선지식아, 마하 반야바라밀이 가장 높고 가장 위이며 가장 으뜸이다.
머무름도 없고 지나가는 것도 없으며 또 오는 것도 없어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다 여기에서 나오느니라.
마땅히 큰 지혜를 써서 오온의 번뇌와 망상을 타파하여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반드시 불도를 이루며 삼독이 변하여 계, 정, 혜가 되리라.
선지식아, 이 법문은 하나의 반야에서 팔만 사천의 지혜를 내는데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팔만사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라.
만일 번뇌가 없으면 지혜가 항상 나타나서 자성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을 깨닫는 자는 곧 생각도 없고 기억도 없고 집착함도 없어서 미친 망령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자기의 진여성(참되고 참된 성품)을 쓰므로 지혜로써 미루어 보아 일체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견성하여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선지식아, 만일 매우 깊은 법계와 반야삼계에 들고자하면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행을 지니고 외워야 되느니라. 그러면 견성할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 공덕이 한량없고 끝없다는 것을 경 가운데에서 분명히 찬탄하였는데 말로써는 다할 수가 없느니라.
이 법문은 곧 최상승이고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라.
근기가 낮고 지혜가 얕은 사람이 들으면 믿지 않는 마음이 생기리라.
왜냐하면 비유하건대, 큰 용이 염부제에 비를 내리면 도시와 마을이 모두 다 떠내려가는 것이 대추 나뭇잎이 떠내려가는 것과 같지만 만일 큰 바다에 비를 내리면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만일 대승인과 최상승인이 금강경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어 깨닫느니라.
그러므로 본성에는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스스로 지혜를 써서 항상 관조하므로 문자를 빌리지 않는 것임을 아느니라.
비유하건대 비와 물이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용이 일으켜서 일체 중생과 일체 초목과 유정과 무정들을 모두 다 윤택하게 하고, 백가지의 강으로 흐르다가 마침내는 큰 바다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이 중생의 본성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근기가 낮은 사람이 이 돈교를 들으면 뿌리가 약한 작은 초목이 만약 큰비를 만나게 되면 뿌리가 뽑히고 뒤집혀져서 자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근기가 낮은 사람도 역시 이와 같이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지혜가 큰 사람과 차별이 없는데 어찌하여 법을 듣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하면 삿된 소견으로 업장이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인데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햇빛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도 역시 크거나 작은 것이 없는데 일체의 중생이 자신의 마음에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하여 밖으로만 보고 닦으며 부처를 찾으려 할 뿐 자성을 깨닫지 못하나니 이것은 곧 근기가 낮기 때문이니라.
만일 돈교를 깨달아서 밖으로 닦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항상 정견을 일으켜서 번뇌와 세속 일에 대한 괴로움이 항상 물들지 못하게 하면 이것이 곧 견성이니라.
선지식아, 안과 밖에 머무르지 말고 가고 옴이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면 일체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능히 이 행을 닦으면 반야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선지식아, 일체의 수다라와 문자로 되어 있는 대, 소 이승의 십이부경이 모두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며 지혜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워진 것이니 만일 세상 사람이 없다면 일체 만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만법은 본래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일체의 경서는 사람이 설하므로 있는 것이니라.
그 사람을 인연하는 가운데에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어서 어리석음을 소인이라 하고 지혜로움을 대인이라 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묻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법을 설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이 홀연히 깨달아서 마음이 열리면 곧 지혜 있는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선지식아,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이 곧 중생이요, 한 순간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님이니라.
그러므로 알라. 만법이 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자신의 마음 가운데로부터 진여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본원 자성은 원래 청정하니 만일 자기의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성품을 보면 모두 다 불도를 이룬다.」하였으며, 정명경에서는 「즉시에 확 트이면 다시 본심을 얻는다.」하였느니라.
선지식아, 내가 홍인화상이 계신 곳에서 한번 듣고 말씀 아래에 문득 깨달아서 진여의 본성을 보았기에 이 교법을 널리 펴서 도를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단번에 보리를 깨달아서 각자 스스로 마음을 살피고 스스로 본성을 보게 하려 하는데 만일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최상승법을 이해하는 큰 선지식을 찾는 것이 바른 길을 봄이니 이 선지식이 큰 인연 있음이라.
이른바 교화하고 인도해서 견성을 얻게 하는데 일체 선법이 선지식으로 인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니라.
삼세제불의 십이부경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에 있으며 본래 스스로 갖춰 있건마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선지식의 가르침을 구하여야 바야흐로 보게 되느니라.
만일 스스로 깨닫는 자는 밖으로 구함을 빌리지 않느니라.
만일 한쪽만 고집하며 모름지기 다른 선지식을 의지하여 해탈을 얻음을 희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 안에 선지식이 있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인데 만일 삿된 미혹을 일으켜서 망령된 생각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비록 가르쳐 주더라도 구원되지 못하리라.
만일 바르고 참된 반야를 일으켜 관조하면 한 찰나 사이에 헛된 생각이 모두 다 없어질 것이며 만일 자성을 알아서 한번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리라.
선지식아, 지혜로 관조하면 안과 밖이 분명하게 통하여 자기의 본심을 알게 된다.
만일 본심을 알면 본래 해탈이요, 만일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무념이니라.
무엇을 무념이라 하는가 하면 일체법을 보더라도 마음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이것을 무념이라 하느니라.
작용하여 일체처에 두루 하되 일체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으로 하여금 육문(육근)을 나오더라도 육진 가운데 물들지 않고 섞이지 않아 오고 감이 자유롭고 통용에 막힘이 없는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 해탈이고 무념행이라 이름 하느니라.
만일 백가지를 생각하지 아니하여 생각으로 끊으려하면 이것은 법에 얽히는 것이라서 변견(극단으로 치우쳐 집착하는 견해)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만법이 다 통하며,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면,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선지식아, 후대에 나의 법을 얻은 자가 이 돈교 법문을 가지고 견해가 같아서 같은 행을 하는 사람에게 받아 지니도록 원을 세워 부처님 섬기는 것 같이 하며 몸이 다하도록 물러나지 않으면 반드시 성인의 지위에 들리라.
그러나 위로부터 묵묵히 전해 내려오는 분부를 다시 전해주어서 그 정법을 숨기지 말아야 하겠지만 견해가 같지 않고 행이 같지 않는 다른 법에 있는 자에게는 당부하며 전하지 말아라.
그 앞에 있는 사람을 해치어 결국은 이익이 없을 것이며, 어리석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 법문을 비방하여 백겁 천생에 부처님 될 성품을 끊을까 두렵기 때문이니라.
선지식아, 내게 무상송이 하나 있으니 각자 외워 지니어 재가인이거나 출가인이거나 이것을 의지하여 닦아라.
만일 스스로 닦지 않고 나의 말만 기억하면 이익이 없을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말로 통하고 마음이 통함이여
태양이 허공에 있는 것과 같으니,
오직 견성하는 법만 전하여
출세토록 삿된 가르침을 쳐부수도다.
법은 곧 돈과 점이 없건마는
미(迷)와 오(悟)에는 더디고 빠름이 있네.
다만 견성하는 문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네.
말로 설하면 비록 만 가지이지만
이치에 합하면 도리어 하나로 돌아감이니,
번뇌로 어두운 집 가운데에
항상 지혜의 햇빛을 낼지어다.
삿된 것이 오면 번뇌가 일어나고
바른 것이 오면 번뇌가 사라지리니,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다 쓰지 않으면
청정하여 남음이 없는데 이르리라.
보리의 근본 자성에
마음을 일으키면 곧 망념이라.
깨끗한 마음이 망념 가운데에 있으니
바르면 세 가지 장애가 없으리라.
세상 사람들이 만일 도를 닦으면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항상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보면
도와 더불어 곧 서로 맞으리라.
모든 것은 스스로 도가 있어서
각각 서로 방해하며 괴롭히지 않으니,
도를 여의고 따로 도를 찾으면
몸이 다하여도 도를 보지 못하리라.
부질없이 일생을 지내서
눈앞에 닥쳐서야 뒤늦게 뉘우치나니,
참된 도를 보고자 하느냐.
바른 것을 행하는 것이 곧 도이니라.
스스로 만일 도의 마음이 없으면
어둡게 행하여 도를 보지 못하나니,
만일 참으로 도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허물을 보지 말아라.
만일 남의 그릇됨을 보면
도리어 나의 그릇됨이 되느니라.
다른 이는 그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 하면
나는 그르지 않다 하는 그것이 스스로 허물이니라.
다만 스스로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물리치고
번뇌를 쳐부수어 없애버리고
밉고 고운 데에 관계하지 않으면
길이 두 다리를 펴고 누우리라.
다른 사람을 교화하고자 하면
스스로 모름지기 방편을 쓰라.
저로 하여금 의심을 없애면
곧 자성이 나타나리라.
불법이 세간에 있어서
세간을 여의고 깨달음은 없음이니,
세간을 여의고 보리를 찾으면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으니라.
정견의 이름이 출세요,
사견이 곧 세간이니,
사와 정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 성품이 완연하리라.
이 송이 바로 돈교며
또한 이름이 대법선(大法船)이니
미혹하여 들으면 누겁(累劫)을 지내고,
깨달으면 곧 찰나 사이니라.
대사가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대범사에서 이 돈교를 설했으니 온 법계의 중생이 말 아래에 견성 성불하기를 원하노라.”
때에 위 사군과 관료와 도 닦는 이와 속인들이 다 함께 대사의 설법을 듣고 살펴 깨닫지 못한 이가 없었기에 함께 예를 올리고 찬탄하기를 “거룩하십니다. 어찌 영남에 부처님이 나오실 것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하였다.
第三 疑問品
제삼 의문품
어느 날 위자사가 대사를 위하여 큰 재를 베풀었다.
재를 마치고 자사는 대사를 청하여 자리에 오르시게 하고 관료와 선비와 백성들과 함께 엄숙한 모습으로 거듭 절하고 여쭙기를 “제자가 화상의 설법을 들으니 실로 불가사의합니다.
이제 조그마한 의심이 있으니 원컨대 대자비로 특별히 해설하여 주십시오.” 하니 “의심이 있거든 바로 물어라. 내가 마땅히 설하리라.”하시므로 “화상께서 설하신 바는 달마 대사의 종지가 아닙니까?” 하니 “그러하니라.” 하시기에 “제자가 듣기로는 달마대사께서 처음 양 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 무제가 여쭙기를 「짐이 일생동안 절을 짓고 스님들을 공양하고 보시를 하며 재를 베풀었으니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하시니 달마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실로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제자는 이 이치를 알지 못하겠으니 원컨대 화상께서 설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느니라.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아라. 무제가 마음이 삿되어 정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절을 짓고 공양하며 보시하고 재를 베푼 것은 이름 하여 복을 구하였을 뿐이다.
복은 공덕으로 삼을 수 없다. 공덕은 법신 가운데 있지, 복을 닦는데 있지 않느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셨다.
“성품을 보는 것이 <공>이요, 평등함이 곧 <덕>이다. 생각 생각에 막힘이 없어서 항상 본성의 진실한 묘용을 보는 것을 공덕이라 하느니라.
안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 곧 공이요, 밖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덕이며, 자성이 만법을 세우는 것이 곧 공이요, 마음 바탕이 생각을 떠난 것이 덕이며, 자성을 떠나지 않음이 곧 공이요, 대응해 쓰되 물들지 않는 것이 곧 덕이니, 만일 공덕법신(功德法身)을 찾으려 하면 이렇게 하여야만 이것이 참된 공덕이니라.
만일 공덕을 닦는 사람이라면 마음으로 남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항상 널리 공경하여야 하느니라.
마음으로는 항상 다른 사람을 가볍게 여겨서 나를 세우는 마음을 끊지 않으면 곧 스스로 공이 없고 자성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아니하면 곧 스스로 덕이 없음이니라.
나를 세우며 스스로 잘난 체하고 항상 일체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니라.
선지식아, 순간순간에 간격이 없는 것이 곧 공이요, 마음을 평등하고 곧게 쓰는 것이 덕이며, 스스로 성품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이니라.
선지식아, 공덕은 모름지기 자성을 안으로 보는 것이지, 보시나 공양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복덕이 공덕과는 다른 것이니라.
무제가 진리를 알지 못하였을 뿐 우리 조사에게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또 여쭙기를 “제자가 항상 보니 승과 속이 아미타불을 염하며 서방극락에 나기를 원하던데, 청컨대 화상께서 설하여 주십시오. 그 곳에 태어날 수 있습니까? 원컨대 의심을 풀어주십시오.” 하니 대사가 말씀하셨다.
“위 사군은 잘 들어라. 내가 설하여 주겠노라.
세존이 사위성에 계실 때에 서방으로 인도하여 교화한다고 설하셨는데 경문에 보면 분명히 이곳에서 멀지 않다 하셨고 만일 현상계로 논하여 말한다면 거리가 십만 팔 천리다 하셨는데, 이것은 곧 몸 가운데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가리킨 것으로 멀다고 하신 말씀이다.
멀다고 설하신 것은 낮은 근기를 위한 것이고 가깝다고 설하신 것은 높은 근기를 위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낮고 높은 두 가지가 있으나 법에는 두 가지가 없느니라.
미혹함과 깨달음이 다르므로 견해가 더디고 빠르니라.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 곳에 나기를 구하고 깨달은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곧 불토가 깨끗하다.」하셨느니라.
사군아, 동방 사람이라도 마음만 깨끗하면 곧 죄가 없고 비록 서방 사람이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면 역시 허물이 있느니라.
동방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염불하여 서방에 나기를 구하겠지만 서방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염불하여 어느 나라에 나기를 구할 것인가?
어리석은 범부는 자성을 모르므로 몸 가운데 정토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동방을 원하고 서방을 원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으나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를「머무는 곳마다 항상 안락하다」하셨느니라.
사군아, 마음자리가 오직 착하면 서방이 여기서 멀지 않은데 만일 착하지 못한 마음을 품으면 염불을 하여도 태어나기는 어려우니라.
이제 선지식에게 권하는데 먼저 십악을 없애면 곧 십만리를 가는 것이고 다음에 팔사를 없애면 곧 팔천리를 지나가는 것이니 순간순간에 성품을 보아 항상 평등하고 바르게 행하면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사이에 문득 아미타불을 보는 것이니라.
사군아, 다만 십선(十善)을 행하면 어찌하여 다시 왕생을 원할 것이며 십악의 마음을 끊지 못한다면 어느 부처님이 오셔서 맞아주실 것인가?
만일 무생(無生)의 돈법(頓法)을 깨달으면 서방이 다만 찰나에 있음을 보겠지만 깨닫지 못하면 염불하여 태어나기를 구하더라도 길이 멀 테니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혜능이 그대들에게 서방을 찰나 사이에 옮겨서 눈앞에 문득 보게 하리니 다들 보기를 원하느냐?
대중이 모두 다 큰 절을 올리며, “만일 이곳에서 볼 수 있다면 구태여 다시 왕생을 원하겠습니까? 원컨대 화상께서 자비로 서방을 나타내시어 모두 다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하므로 대사가 말씀하셨다.
“대중들아 세상 사람은 자기 육신이 성(城)이고, 안(眼), 이(耳), 비(鼻), 설(舌)은 문이다. 밖으로는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는 뜻(意)의 문이 있다.
마음은 땅이며 성품은 임금이니라.
임금이 마음 땅 위에 지내는데 성품이 있으면 임금이 있고, 성품이 가면 임금이 없으며, 성품이 있으면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면 몸과 마음이 무너지니 부처는 성품 가운데를 향하여 지을지언정 몸 밖을 향하여 구하지 말아라.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고 자성이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라.
자비는 곧 관세음보살이고 희사(喜捨)는 이름 하여 대세지보살이며 청정함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평등하고 바름은 아미타부처님이다.
나다 남이다 하는 생각은 수미산이고 삿된 마음은 바닷물이고 번뇌는 물결이며, 독한 해를 주는 것은 악한 용이고 헛된 망상은 귀신이며, 세상살이의 괴로움은 고기나 자라이며, 탐내고 성내는 것은 지옥이며, 어리석음은 곧 축생이니라.
선지식아, 항상 십선을 행하면 천당에 곧 이르고, <나다> <남이다>를 없애면 수미산이 무너지고 사심이 없으면 바닷물이 마르고 번뇌가 없으면 물결이 잠잠해지고 독하고 해치려는 마음을 버리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리라.
자기의 마음자리 위에 각성여래가 큰 광명을 놓아서 밖으로 육문을 청정하게 비추면 능히 육욕 제천(六欲諸天)을 깨뜨리고 자성이 안으로 비추면 삼독이 곧 없어지고 지옥 등의 죄가 일시에 소멸하여 안과 밖이 밝게 통하여서 서방과 다르지 않으리라. 이렇게 닦지 아니하면 어떻게 저 곳에 이르겠느냐.”
대중이 설법을 듣고는 자기의 성품을 똑똑히 보고 다 함께 예배하며 다 함께「거룩하시다.」라고 찬탄하고「원컨대 온 법계 중생이 듣고서 한꺼번에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만일 수행하고자 하면 재가불자라도 할 수 있다. 절에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집에 있어도 능히 행하면 동방인으로서 마음이 선한 것과 같고 절에 있어도 닦지 않으면 서방인으로서 마음이 악한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만 청정하면 이것이 곧 자성의 서방이니라.”
위공이 또 여쭙기를 “집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수행하여야 합니까? 원컨대 가르쳐 주십시오.” 하니,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대중에게 무상송(無相頌)을 설하리니, 다만 이를 의지하여 닦으면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겠지만, 만일 이를 의지하여 닦지 아니하면 머리를 깎고 출가한들 도에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하시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마음이 평등하면 어찌 계가 필요하며
행이 곧으면 선을 닦아 무엇 하리.
은혜로 친히 부모를 부양하고 의로우면
상하가 서로 아끼게 되며
사양하면 높고 낮은 이가 화목하고 참으면
온갖 것이 미워해도 싸울 일이 없느니라.
능히 나무를 비벼 불을 내듯하면
진흙에서 결정코 홍련이 피어나리라.
입에 쓴 것은 반드시 좋은 약이고,
귀에 거슬리는 것은 반드시 충성스런 말이니라.
허물을 고치면 반드시 지혜가 나고
흠을 덮으려 하면 마음속이 무디어 지느니
나날이 이로운 것을 행하여라.
도를 이루는 것이 돈을 보시함에 있지 않느니라.
보리는 다만 마음을 향하여 찾을지언정
어찌 밖을 향하여 그윽함을 구하고자 애쓰는가.
내 말을 듣고 이대로 수행하면
극락이 눈앞에 있을 것이다.
“선지식아, 모두 다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자성을 보면 바로 불도를 이루리라. 법은 기다리지 않으니 대중은 이제 헤어져라. 나도 조계로 돌아가리니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누구든지 와서 물어라.”
때에 자사와 관료와 그 모임에 있던 선남자 선여인이 각각 깨달음을 얻어서 믿고 받아들이며 받들어 행하였다.
第四 定慧品
제사 정혜품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나의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는다.
대중은 미혹하게 정과 혜가 다르다고 말하지 말아라.
<정>과 <혜>는 일체요 둘이 아니다.
정은 혜의 바탕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니라.
혜가 나타날 때 정이 혜에 있고, 정이 나타날 때 혜가 정에 있다.
만일 이 뜻을 알면 곧 정과 혜를 고루 배우는 것이니라.
도 배우는 사람들은 정을 먼저 하여 혜를 일으킨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일으킨다하며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아라.
이런 견해를 가지는 자는 법에 두 모양을 두어서 입으로 좋은 말을 하지만 마음속이 착하지 못하니라.
공연히 정과 혜를 두어서 정과 혜가 같지 않거니와 만일 마음과 말이 다 선해서 안과 밖이 한 가지면 정과 혜가 곧 평등하리라.
스스로 깨달아 수행함은 다투는데 있지 않다.
만일 선후를 다투면 곧 미혹한 사람과 같으며 승부를 끊지 못하고 <나다> <진리다>하는 것만 늘여서 사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여의지 못하리라.
선지식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하면, 등불과 같아서 등이 있으므로 빛이 있고, 등이 없으면 곧 어두우니 등은 빛의 본체요, 빛은 등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 있지만, 체는 본래 동일한 것처럼 이 정혜의 법도 그와 같으니라.
대중을 바라보며 말씀하시길 선지식아, 일행삼매라 하는 것은 어느 곳 어느 때나(행, 주, 좌, 와) 항상 한결같이 곧은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니, 정명경에 이르시기를「곧은 마음이 곧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곧 정토다.」하시었듯이 마음과 행동이 아첨하고 바르지 못하여 입으로만 곧음을 말하고 입으로만 일행삼매를 말하며 곧은 마음을 행하지 않나니 곧은 마음만을 행하고 일체 법에 집착하지 말아라.
미혹한 사람은 법상(法相)에 빠져서 일행삼매에 집착하여 말하기를 앉아서 움직이지 않고, 망령되이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일행삼매라 하는데, 이런 견해를 내는 것은 곧 생명이 없는 것과 같으며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 되느니라.
선지식아, 도는 모름지기 통하고 흐르게 하여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막히게 하겠느냐.
마음이 법에 머무르지 아니하면 도가 통하여 흐르지만 마음이 만일 법에 머무르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 되느니라.
만일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면 사리불이 숲 속에 고요히 앉아 있다가 도리어 유마힐의 꾸짖음을 당한 것과 같으니라.
선지식아, 또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앉아있게 하되 마음을 보고 고요함을 관해서 움직이지 않고 일어나지 아니하는 이것으로 공부를 삼게 한다고 하면,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문득 집착하여 전도됨을 이룬다.
이와 같은 자가 많고 이와 같이 가르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선지식아, 본래 바른 가르침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지마는 사람의 성품이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어서 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깨닫게 되고 영리한 사람은 단번에 닦아 스스로 본심을 깨달으며 스스로 본성을 보는 것이니 곧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과 점을 세운 것은 거짓 이름이니라.
선지식아, 나의 이 법문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따라 먼저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으로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住)로 근본을 삼는다.
무상이라는 것은 상에 대하여 상을 여의는 것이고, 무념이라는 것은 생각에 대하여 생각이 없는 것이고, 무주라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세간의 선악과 밉고 고움과 원수와 친한 이와 또 말로 주고받고 찌르고 속이고 다툴 때에도 모두 <공>한 것으로 여겨서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 생각하는 가운데 앞 경계를 생각지 않는 것이다.
만일 앞생각과 지금 생각과 뒷생각이 생각마다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으면 얽매임이라 하고 모든 법에 대하여 생각 생각이 머무르지 않으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무주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밖으로 일체의 상을 여의면 무상이라 한다.
능히 상을 여의면 곧 법체(法體)가 청정해지는데 이것이 곧 무상으로써 체를 삼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모든 경계 위에 마음이 물들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는데 자기 생각 위에 항상 모든 경계를 여의어서 경계 위에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만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 모든 생각을 다 없애려고만 한다면 한 생각이 끊어질 때, 곧 죽는 것이어서 다른 곳에 몸을 받아 나리니, 이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도를 배우는 자는 잘 생각하여라.
만일 법의 뜻을 알지 못하면 자신을 그르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다시 다른 사람에게까지 권해서 미혹하여 보지 못하게 하며 또 불경을 비방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어떤 것을 무념을 세워서 종을 삼는다 하는가? 단지 입으로만 성품을 보았다고 말함이니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이 있고 생각 위에 문득 사견을 일으키는데 일체의 진로 망상이 이로부터 생겨나느니라.
자성은 본래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다.
만일 얻을 것이 있다하여 망령되이 화와 복을 말한다면 이것이 곧 번뇌며 삿된 소견이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는 것이다.
선지식아, <무>라는 것은 무슨 일이 없다는 것이며 <념>이라는 것은 무슨 물건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무라는 것은 두 가지 상이 없는 것이니 모든 번거로운 망상이 없는 것이며, 념이라는 것은 진여 본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진여(眞如)는 곧 생각의 체(體)요, 생각은 곧 진여의 용(用)이니라.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지, 눈, 귀, 코, 혀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라.
진여가 성품이 있으므로 생각이 일어난다.
만일 진여자성이 없다면 눈이나 귀나 빛깔이나 소리가 곧 없어지리라.
선지식아, 진여자성이 생각을 일으키므로 육근이 비록 보고 듣고 깨닫고 안다 하더라도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고 참된 성품이 항상 스스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능히 모든 법상을 잘 분별하되 가장 으뜸가는 뜻은 움직임이 없다.」하셨느니라.
第五 坐禪品
제오 좌선품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좌선이라는 이 문은 원래 마음에 집착해서도 안 되고 또 깨끗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며 움직이지 않는 것도 옳지 않느니라.
만일 마음에 집착한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망령된 것이어서 그 마음이 허깨비와 같음을 알 것이므로 집착하는 바가 없을 것이니라.
만일 깨끗한 것에 집착한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인데 망상으로 인하여 진여를 덮은 것이 되느니라.
망상만 없으면 성품이 스스로 청정한 것인데, 마음을 일으켜서 청정한 것에 집착하므로 도리어 청정하다는 망상을 내는데, 망상은 있을 곳이 없음이라, 집착하는 것이 곧 망상이니라.
깨끗함도 형상이 없는데 도리어 깨끗하다는 생각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 말하지만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자기의 본성을 막아 도리어 깨끗하다는 생각의 결박을 당하리라.
선지식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닦는다.」라고 하는 것은 일체 사람을 볼 때에 사람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과 허물과 근심을 보지 않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곧 자성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몸은 비록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을 열어 타인의 옳고 그름과 잘하고 못함과 좋고 미워함을 말해서 도와는 어긋나고 등진다.
만일 마음에 집착하고 청정함에 집착하면 도리어 도에 장애가 되느니라.”
대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하면, 이 법문 가운데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마음 가운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라 하고 안으로 자성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는 것을 <선>이라 한다.
선지식아,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하면, 밖으로 상을 여의는 것이 <선>이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는 것이 <정>이다.
밖으로 만일 상에 빠지면 안의 마음이 곧 어지럽고, 밖으로 만일 상을 여의면 마음이 곧 어지럽지 않으리라.
본성이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한 것인데 경계를 보고 경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경계를 보되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으면 <정>이니, 밖의 <선>과 안의 <정>이 곧 선정이니라.
정명경에 이르시길,「즉시에 시원하게 깨달으면 다시 본심을 얻는다.」하셨으며 보살계경에 이르시길,「나의 본성이 원래 스스로 청정하다.」하셨느니라.
선지식아, 생각 생각가운데에 자기의 본성이 청정함을 보아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스스로 불도를 이루리라.
第六 懺悔品
제육 참회품
이때에 대사는 광주와 소주 두 개 군을 비롯한 사방의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산중에 모여 법을 들으려하는 것을 보시고 법좌에 오르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잘 왔다. 선지식아, 이 일은 모름지기 자성으로 일어난 것이니 어느 때나 생각 생각에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면 자기의 법신을 볼 것이며 자기 마음의 부처를 보아 스스로 제도하고 스스로 경계하여 비로소 얻게 되니 구태여 이곳까지 올 필요가 없느니라.
먼 곳에서 와서 이렇게 모였으니 모두 다 인연이 있는가보다. 이제 다들 꿇어 앉아라.
먼저 자성의 오분 법신향을 전하고 다음에 무상 참회를 주겠노라.”
대중이 꿇어앉자 대사가 말씀하셨다.
“첫째는 <계향>이다.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그릇됨이 없고 악함이 없으며 질투가 없고 탐냄과 성냄이 없으며 빼앗고 해치는 마음이 없는 것을 계향이라 하느니라.
둘째는 <정향>이다. 곧 모든 선과 악의 경계와 모양을 보더라도 자기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것을 정향이라 하느니라.
셋째는 <혜향>이다. 자기의 마음이 걸림이 없어서 항상 지혜로써 자성을 관조하여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비록 많은 선을 닦지만 마음에 두지 않고 위를 공경하고, 아래를 보살피며 외롭고 가난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을 혜향이라 하느니라.
넷째는 <해탈향>이다. 자기의 마음에 인연을 일으키는 바가 없어서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아니하여 자유롭고 걸림이 없는 것을 해탈향이라 하느니라.
다섯째는 <해탈지견향>이다. 자기의 마음이 이미 선악에 인연이 일어나는 바가 없지만 공에 빠져 고요함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널리 배우고 많이 들으며 자기의 본심을 알아 모든 부처님의 이치를 통달하여 법신에 화해서 사물을 대함에 있어 나도 없고 남도 없어서 깨달음의 참된 성품이 바뀌지 않는 곳에 이르는 것을 해탈지견향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이 향은 각자 안으로 그윽하게 익힐 것이지 밖을 향하여 찾지 말아라.
이제 너희들에게 무상참회를 주어서 삼세의 죄를 멸하고 삼업을 청정하게 해주겠노라.
선지식아, 모두 내 말을 같이 따라 하여라.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어리석고 미혹한데 물들지 않고,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고 미혹된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교만과 속임에 물들지 않고, 예전부터 지은 악업인 교만하고 속인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들이 앞의 생각과 지금 생각과 뒤의 생각으로 순간순간에 질투에 물들지 않고 지은 바 악업인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참회하오니 원하옵건대 일시에 소멸하여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선지식아, 이상이 무상참회인데 어떤 것을 <참>이라 하고 어떤 것을 <회>라 하느냐하면, 참이라는 것은 그 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으로 이제까지 지은 바 악업인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교만과 속임과 질투 등의 죄를 모두 다 뉘우쳐서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을 참이라 하고, 회라는 것은 이후의 허물을 뉘우치는 것으로 이제부터 이후에 지을 바 악업인 어리석음과 미혹함과 교만과 속임과 질투 등의 죄를 지금 미리 깨달아서 모두 다 영원히 끊어서 다시는 또 짓지 않는 것을 회라고 하므로 참회라 말하느니라.
범부는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만 그 전의 허물만 뉘우칠 줄 알고 앞으로의 허물은 알지 못하여 뉘우칠 줄 모르므로 예전의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의 허물이 또 생기느니라.
앞의 허물이 없어지지 않고 뒤의 허물이 다시 또 생기면 어찌 참회라 하겠느냐.
선지식아, 이미 참회를 하였으니 선지식과 더불어 <사홍서원>을 일으키자.
각각 마음을 바로 하여 잘 들어라.
내 마음의 중생이 가 없지만 기어코 제도하겠으며,
내 마음의 번뇌가 가 없지만 기어코 끊겠으며,
내 마음의 법문이 한이 없지만 맹세코 배우겠으며,
자성의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습니다.
선지식아,「대중이 중생이 가 없지만 맹세코 건지겠습니다.」라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이 혜능이 제도하는 것이 아니니라.
선지식아, 각자의 마음 가운데 중생인 이른바 삿되고 미혹한 마음, 속이고 망령된 마음, 착하지 못한 마음, 질투하는 마음, 악독한 마음 등 이와 같은 마음이 다 이 중생이니 각각 모름지기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을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자성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라 하는가 하면, 즉 자기의 마음 가운데에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의 중생을 바른 견해로 제도하는 것이다.
이미 바른 견해가 있으므로 반야의 지혜로 어리석고 미혹하여 망령된 중생을 쳐부수어 각각 스스로 제도하되, 삿된 것이 오면 바른 것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하는 이와 같은 제도를 참된 제도라 하느니라.
또 번뇌가 가 없지만 기어이 끊겠다. 하는 것은 자성의 반야 지혜로 허망한 사상(思想)을 없애버리는 것이며, 또 법문이 다함이 없지만 맹세코 배우겠습니다.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견성하여 항상 정법을 행하는 것이며 참된 배움이라 하느니라.
또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겠습니다. 하는 것은 항상 하심하여 참되고 바른 것을 행하고 미혹도 여의고 깨달음도 여의어서 항상 반야를 내고 참도 없애고 거짓도 없애어 불성을 보며 곧 말 아래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항상 수행을 생각하여라. 이것이 원력의 법이니라.
선지식아, 이제 사홍서원을 일으켰으니 다시 선지식들에게 상이 없는 삼귀의의 계를 주겠노라.
선지식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며,
올바름의 <이욕존>께 귀의하며,
청정함의 <중중존>께 귀의하여라.
오늘부터는 깨달음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된 악마와 외도에 귀의하지 말고 자성삼보로써 항상 스스로 증명하고 선지식에게 권하여 자성삼보에 귀의하게 하라.
<불>이라는 것은 깨달음이요, <법>이라는 것은 바른 것이요, <승>이라는 것은 청정함이다.
자기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됨과 미혹함이 일어나지 않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아서 재물과 여색에서 떠남에 양족존이라 하고,
자기의 마음이 바른 곳에 귀의하여 생각 생각에 사견이 없고 사견이 없으므로 곧 나다 남이다 하며 잘난 체함과 탐욕과 애욕의 집착이 없음에 이욕존이라 하며,
자기의 마음이 청정함에 귀의하여 일체의 번뇌와 애욕의 경계에 자성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음에 중중존이라 하느니라.
만일 이런 행을 닦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인데 범부는 알지 못해서 해가 지고 밤이 되도록 삼귀의의 계를 받는다 하는데, 만일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하지만 부처님이 어느 곳에 계시며, 만일 부처님을 보지 못했다면 무엇을 빙자하여 귀의한단 말인가. 말이 도리어 허망함을 이루는구나.
선지식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마음을 잘못 쓰지 않도록 하여라.
경문(화엄경 정행품)에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스스로 부처에게 귀의하라.」했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하라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는다면 의지할 곳이 없으리라.
이제 스스로 깨달았으면 각자 자기 마음의 삼보에게 귀의하여 안으로 심성을 고르게 하고 밖으로 다른 사람을 공경하여라.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선지식아, 이미 자기의 삼보에게 귀의하였으니 각각 지극한 마음을 가져라.
내가 하나의 바탕이면서 세 가지 몸인 자성(自性)불을 설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세 가지의 몸이 뚜렷함을 보게 하고 스스로 자성을 깨닫게 하리니 따라 외워라.
<자기 육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육신의 원만 보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육신의 천 백억 화신불에 귀의합니다.>
선지식아, 육신은 집과 같아서 여기에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삼신(三身)불은 자성 가운데 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갖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마음이 미혹하여 안으로 성품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삼신 여래를 찾느라고 자신 가운데에 삼신불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구나.
너희들은 잘 들어라.
너희들로 하여금 자기 몸 안의 자성에 삼신불이 있는 것을 보게 하겠노라.
이 삼신불은 자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을 청정법신이라 하는가 하면, 세상 사람들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만법이 자성에서 나온다.
온갖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행이 일어나고, 온갖 선한 일을 생각하면 곧 선행이 나오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자성 가운데 있다.
하늘이 맑을 때는 해와 달이 항상 밝지마는,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지만 아래는 어둡다가 홀연히 바람이 불면 구름이 흩어져 위와 아래가 다 밝아지고 모든 것이 다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세상 사람의 성품이 항상 들떠 있음은 저 하늘의 구름과 같음이라.
선지식아, <지>는 해와 같고 <혜>는 달과 같아서 지혜는 항상 밝은데 밖으로 경계에 집착해서 헛된 생각의 뜬구름에 덮이므로 자성이 밝지를 못하다가, 만일 선지식을 만나서 참된 정법을 듣고 스스로 어리석음과 망령됨을 없애어 안과 밖이 밝게 하면 자성 가운데에 만법이 모두 다 나타나느니라.
견성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은데 이것을 청정법신불이라 이름 하느니라.
선지식아,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면 이것이 참 부처에 귀의하는 것이다.
스스로 귀의한다는 것은 자성 가운데에 있는 착하지 못한 마음과 질투심과 교만과 나라는 생각과 허황한 생각과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과 거만한 마음과 삿된 마음과 잘난 체 하는 마음 등 언제 어디서나 착하지 못한 행을 모두 없애고, 항상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보되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는 이것이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니라.
모름지기 항상 마음을 낮추고 널리 공경을 행하면 곧 자기의 성품을 보고 통달하게 되어 걸리거나 막힘이 없게 되니 이것을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천 백억 화신이라 하는가 하면, 만일 만법을 생각지 아니하면 성품이 본래 허공과 같고 한 생각 헤아리면 이것을 변화라 하는데, 악한 일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선한 일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며, 모진 해를 입히면 변화하여 용이나 뱀이 되고, 자비를 베풀면 변화하여 보살이 되고, 지혜로우면 변화하여 천상세계가 되고, 어리석으면 변화하여 악도가 되느니라.
자성이 변화가 매우 많은데 미혹한 사람은 살펴 깨닫지 못하고 생각 생각에 악을 일으켜서 항상 악도에 떨어지는데 한 생각 돌이켜 착해지면 지혜가 곧 생기니, 이것을 이름 하여 자성의 화신불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원만보신이라 하는가하면 비유하건대, 한 등이 능히 천년의 어두음을 없애는 것과 같아서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아라.
이미 지난 것은 얻지 못하니, 항상 후일을 생각하여 생각 생각을 뚜렷하고 밝게 하여 스스로 본성을 보는 것이니, 선과 악은 비록 다르지만 본래 성품은 둘이 아니니라.
둘이 없는 성품을 참다운 성품이라 하는데, 참다운 성품 가운데에서 선악에 물들지 않는 것을 원만보신불이라 하느니라.
자성에 한 생각 악한 것을 일으키면 만겁동안 착한 씨앗이 없어지고, 자성에 한 생각 착한 것을 일으키면 항하의 모래수 같은 악이 모두 다 없어지니, 곧 바로 위없는 보리에 이르러서 생각 생각 자성을 보아 근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을 보신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법신에서 생각하면 이것이 곧 화신불이고, 생각 생각에 자성을 스스로 보면 이것이 곧 보신불이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는 자성 공덕이 참다운 귀의이니라.
가죽과 살은 육신이고 육신은 집이라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다만 자성의 삼신을 깨달으면 곧 자성불을 아는 것이니라.
내게 한 무상송이 있으니 만일 외우고 지니면 말 아래에 너희로 하여금 오랜 겁 동안 쌓아온 미혹한 죄를 일시에 소멸케 하리라.”
미혹한 사람은 복만 닦고 도를 닦지 아니하며
단지 말하기를 복을 닦음이 곧 도라 하나니
보시하고 공양하는 것이 복이 많지만
마음 가운데 삼악은 원래 지었도다.
생각에 복을 닦아 죄를 없애려고 하지만
후세에 복은 받아도 죄는 도리어 있네.
다만 마음 가운데의 죄의 인연을 없애면
각각 자기의 성품 가운데 참다운 참회니라.
홀연히 대승의 참다운 참회를 깨달아서
삿됨을 없애고 바른 것을 행하면 곧 죄가 없으리.
도를 배우며 항상 자성을 관하면
곧 부처님과 더불어 한 가지가 되리라.
우리 조사가 오직 이 돈법을 전하여
널리 견성을 하여 일체가 되기를 원하시네.
만일 앞으로 법신을 찾고자 하면
모든 법상을 여의고 마음을 씻어라.
힘써 스스로를 보고 한가히 지내지 말아라.
뒷생각이 홀연히 끊어지면 한 세상 쉬는 것이니
만일 대승을 깨달아 견성하려면
정성스레 합장 공경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여라.
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모두 다 모름지기 외워 이를 의지하고 수행하여 말 아래 견성하면 비록 내게서 천리를 가더라도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같고 말 아래 깨닫지 못하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하여 멀리서 힘들여 오겠느냐? 아무쪼록 잘 가거라.”
대중들이 법을 듣고 깨닫지 않은 사람이 없어 환희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第七 機緣品
제칠 기연품
대사가 황매로부터 법을 얻으시고 소주의 조후촌으로 돌아오시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선비인 유지략이 매우 두터운 대접을 하였다.
지략의 고모가 비구니였는데 이름은 무진장이었다.
항상 대열반경을 외웠는데 대사께서 잠깐 들으시고는 곧 그 심오한 뜻을 아시고 해설하여 주시니 그 비구니가 책을 잡고 글자를 묻기에 대사가 말씀하시길 “글자를 알지 못하니 뜻을 물어라.” 하시니. 비구니가 말하기를 “글자도 알지 못하는데 뜻을 어떻게 압니까?” 하므로 대사가 말씀하시길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는 문자와 관계가 없느니라.”하셨다.
비구니가 놀라고 이상히 여겨서 마을을 두루 다니며 덕이 높은 노인들에게 말하기를「이 사람은 반드시 도가 있는 선비이니 마땅히 청하여 공양하십시오.」하였기에 진무후의 현손인 조숙량과 주민들이 다투어 와서 뵈었다.
그때 보림사라는 옛 절이 수나라 말기의 병화로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이 빈터에 다시 법당을 세우고 맞이하여 지내시게 하니 얼마 안 되어 사찰이 이룩되었다.
대사가 머무신지 9개월쯤, 또 나쁜 무리에게 쫓기게 되어 대사가 앞산으로 피하시자 그들이 불을 질러 초목을 다 태웠다.
대사는 돌 틈에 몸을 숨겨 화를 면하셨는데 그때 대사께서 가부자 하셨던 돌에 무릎 흔적과 옷자락 무늬가 남아 있어 피난석이라고 이름 하였다.
대사는 오조께서 회(懷)를 만나면 머물고 회(會)를 만나면 숨으라고 당부하시던 것을 기억하시고 이 두 고을에 몸을 숨기셨다.
법해라는 스님은 소주의 곡강 사람이다. 처음 조사를 참례하고 묻기를 “지금 이 마음이 곧 부처다 하는 것을 원하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하니 대사가 말씀하셨다.
“앞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곧 마음이요, 뒷생각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곧 부처이며 일체의 상(相)을 이루는 것이 곧 마음이요, 일체의 상을 여의는 것이 곧 부처인데 내가 만일 이를 다 말하려면 겁이 다 하여도 다하지 못하느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 보라.
마음이 곧 혜요,
부처가 곧 정(定)이니
정과 혜가 서로 같으면
그 뜻이 청정하리라.
나의 이 법문을 깨달음은
너의 습성을 말미암음이니
용(用)은 본래 나는 것이 아니므로
쌍으로 닦음이 옳으리라.
법해가 말씀 아래 크게 깨달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지금 이 마음이 원래 부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바르지 못하였는데
나는 이제 정과 혜의 원인을 알았으니
쌍으로 닦아 모든 물건을 여의겠습니다.
법달 스님은 홍주 사람이다. 7세에 출가하여 항상 법화경을 외웠는데 조사에게 예배드릴 때에 머리가 땅에 닿지 않으므로 조사가 꾸짖으며
“절을 할 때 머리가 땅에 닿지 않으니 절을 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느냐. 네 마음속에 반드시 한 물건이 있기 때문인데 무슨 일을 쌓아 익혔느냐.”
하시니 “법화경을 이미 삼천 번이나 외웠습니다.”하기에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네가 만일 만 번을 외워 그 경을 뜻을 얻었더라도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으면 나와 더불어 함께 행할 것인데 네가 지금 그 일을 자부하며 도무지 허물을 알지 못하니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예배(禮拜)는 본래 아만의 깃발을 꺽자는 것인데
어찌하여 머리가 땅에 닿지를 않는가.
나라는 생각이 있으면 허물이 생겨나고
공(功)을 잊으면 복이 한량없으리라.
대사가 다시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하시니 “법달입니다.” 하므로 “너의 이름이 법달이라, 하지만 어찌 법을 통달했겠느냐.”하시며 다시 게송을 설하셨다.
네가 방금 법달이라 하였는데
부지런히 외울 뿐 쉬지 못하니
공연히 외우면 소리만 쫓고
마음을 밝히면 보살이라 이름 하리.
네가 이제 인연이 있으므로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리라.
다만 부처님은 말이 없음을 믿으면
연꽃이 입에서 피어나리라.
법달이 게송을 듣고 깊이 뉘우치며 말씀드렸다.
“이제부터는 마땅히 일체에 대하여 겸손하겠으며, 공경하겠습니다. 제자가 법화경을 외웠으나 경의 뜻을 알지 못해서 마음에 항상 의심이 있었는데 화상께서는 지혜가 넓고 크시니 원컨대 간략하게 경의 뜻을 말씀해주십시오.”
대사가 말씀하셨다.
“법달이 법에는 잘 통달했으나 네 마음은 통달하지 못했구나. 경은 본래 의심할 것이 없는 것인데 네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는구나. 네가 이 경을 외울 때 무엇으로써 근본을 삼느냐?”
법달이 말하기를 “저는 근성이 어둡고 둔하여 이제까지 문자에만 의지하여 외웠을 뿐이니 어찌 근본취지를 알겠습니까?” 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문자를 모르니 네가 경을 가지고 한 번 외워보아라.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해설해주리라.”
법달이 곧 고성으로 경을 외워 <서품, 방편품, 비유품>에 이르렀을 때 조사가 이르시기를
“그쳐라. 이 경은 원래 <인연 출세>로써 근본을 삼았으니 비록 여러 가지의 비유를 설하지만 이를 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인연이라 하는가 하면 경에 이르시기를 「모든 부처님 세존은 오직 일 대사 인연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신다.」하셨는데 일대사(한 가지 큰 일)란 곧 부처님의 지견이다.
세상 사람들은 밖으로 미혹하여 상(相)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여 공(空)에 집착하는데, 만일 상에 대하여 상을 여의고 공에 대하여 공을 여의면 곧 안과 밖이 미혹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 법을 깨달아서 한 순간에 마음이 열리면 이것이 부처님의 지견이 열린 바니라.
부처란 깨달음이라는 뜻인데 나누면 네 가지가 되느니라.
깨달음의 지견을 열고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며 깨달음의 지견을 깨닫게 하고 깨달음의 지견에 들게 하는 것이다.
만일 열어 보이심을 듣고 문득 깨달아 들어가면 곧 깨달음의 지견인 본래의 참 성품이 나타날 것이다.
네가 경의 뜻을 잘못 알아서「열어 보이어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고 하신 것에 대하여 이것은 부처님의 지견이지 우리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만일 이렇게 이해하면 이것은 경을 비방하는 것이며 부처님을 헐뜯는 것이다.
자기가 이미 부처님이고 이미 지견을 갖추었는데 어찌 다시 열 것이 있겠는가.
너는 이제 마땅히 믿어라.
부처님의 지견이라는 것은 다만 너 자신의 마음이지 다시 다른 부처님이 없느니라.
대체로 모든 중생이 스스로 광명을 가리고 육진 경계를 탐내고 애착하여서 밖으로 인연을 일으키고 안으로 흔들려서 쫓고 쫓기는 시달림을 달게 받으므로 부처님께서 수고스럽게도 삼매에서 일어나셔서 갖가지 간곡한 말씀으로 권하여 편안히 쉬게 하셨느니라.
밖을 향하여 구하지 않으면 부처님과 더불어 둘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견을 연다 하셨느니라.
나도 사람들에게 권하는데 자기의 마음 가운데서 부처님의 지견을 항상 열어라.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삿되어 어리석고 미혹하여 죄를 짓게 되며 입으로는 착하지만 마음으로는 약해서 탐내고 성내며 질투하는 마음과 아첨하고 교만함으로 남을 해치고 사물을 해롭게 하여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여느니라.
만일 바른 마음으로 항상 지혜를 내어서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아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면 이것이 스스로 부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생각 생각에 부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은 열지 말아라.
부처의 지견을 열면 이것이 곧 세간을 떠난 것이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곧 세간이니 네가 만일 힘들여 경이나 외우고 생각을 집착하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이우(길고 칼 같은 꼬리를 스스로 핥다가 죽는다는 소)가 제 꼬리를 애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법달이 말하기를 “만일 그렇다면 뜻만 이해하고 경은 수고스럽게 외울 필요가 없습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경에 무슨 허물이 있어서 너보고 못 외우게 하겠느냐.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이 사람에게 있고 손해와 이익이 자기에게 달렸으니 입으로 외우며 마음으로 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이고 입으로 외우지만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경에게 굴림을 받는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경이 너를 굴리고
마음이 열리면 네가 법화경을 굴리느니라.
경을 아무리 외워도 그 뜻을 밝히지 못하면
뜻과는 오히려 원수가 되리라.
생각이 없으면 생각이 곧 바르고,
생각이 있으면 생각이 삿되니
유와 무를 다 따지지 않으면
오래도록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놀 수 있으리라.
법달이 게송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울다가 말 아래에 크게 깨달아서 조사께 말씀드리기를 “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고 법화경의 굴림을 받았습니다.”하며 다시 말씀드리기를
“경에서는 대 성문들과 보살들이 모두 생각을 다 하여 함께 헤아리더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헤아릴 수가 없다 하였는데 지금 범부로 하여금 다만 자기의 마음을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지견이라 하시니 자신의 상근기가 아니면 의심이나 비방을 면하지 못하겠습니다.
또 경에 세 가지 수레를 설하였는데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가 흰 소가 끄는 수레와 어떻게 다른지 원하옵건대 화상께서 한 번 더 가르침을 열어 주십시오.” 하니 조사가 말씀하시길 “경의 뜻이 분명한데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등진 것이로다. 성문 연각 보살들이 능히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하지 못하는 것도 그 병이 헤아리는 것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생각을 다하고 이치를 따져 보아도 점점 더 먼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니라.
부처님은 본래 범부를 위하여 설하신 것이지 부처님을 위하여 설하신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만약 기꺼이 믿지 못하는 것이라면 자리에서 물러가도 좋은데 흰 소가 끄는 수레에 앉아 있으면서 다시 문 밖에 있는 세 수레를 찾는 것은 전혀 알 수가 없구나.
하물며 경문에 너희에게 분명히 이르기를 ‘오직 일불승이요, 다른 이승과 삼승은 없다.’ 하였고 ‘수 없는 방편과 가지가지 인연과 비유와 이야기가 곧 법이며 모두 다 일불승을 위한 것이다.’ 하셨는데 너는 어찌 살피지 못하는가.
세 가지 수레는 거짓이고 옛날을 위한 것이며 일승은 진실하고 지금을 위한 것이다.
다만 너희로 하여금 거짓을 버리고 참다운 것에 돌아가게 함인데 참다움에 돌아가면 참다움이란 이름도 없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온갖 보배와 재물이 다 너에게 속해있고 네가 쓰기에 달려 있으니 다시는 아버지라는 생각도 하지 말고 아들이라는 생각도 하지 말며 또 쓴다는 생각도 없어야 하느니라.
이것을 법화경을 지닌다고 이름 하느니라.
아득한 과거에서 먼 미래에 이르도록 손에 책을 놓지 않고 아침부터 밤이 되도록 생각지 않는 때가 없음이 되느니라.”
법달이 가르침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며 게송으로 찬탄하기를
경을 삼천 번 외운 것이
조계의 일구(一句)에 없어졌다.
출세(出世)의 뜻 밝히지 못하면
어찌 여러 생의 미친 짓을 쉴 것인가.
양과 사슴과 소를 방편으로 삼아
처음과 중간과 나중에도 잘 설하셨네.
누가 불난 집의 속이
원래 이 법왕의 처소인 줄 알았으랴.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야 비로소 경을 외우는 스님이라 이름 할 수 있겠구나.” 법달이 이때부터 깊은 뜻을 알았으며 경 외우기를 쉬지 않았다.
지통이라는 스님은 수주의 안풍 사람이다.
처음에 능가경 보기를 약 천 번을 하였지만 세 가지의 몸과 네 가지의 지혜를 알지 못해서 조사께 예배하고 그 뜻의 해석을 구하였다.
조사가 이르시길
“세 가지 몸이라는 것에서 청정법신은 너의 성품이고, 원만보신은 너의 지혜며, 천 백억 화신은 너의 행이다.
만일 본성을 여의고 따로 세 가지 몸을 말한다면 곧 몸만 있고 지혜가 없는 것이며, 만일 세 가지 몸에 자성이 없음을 깨달으면 곧 네 가지 지혜의 보리라 한다.”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자성이 삼신(三身)을 갖추었으니
이를 밝히면 사지(四智)를 이루나니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불지(佛地)에 오르도다.
내가 이제 너를 위하여 설하노니
자세히 믿고 영원히 미혹하지 말아서
허겁지겁 달리며 구하는 자가
종일토록 떠드는 보리(菩提)는 배우지 말아라.
지통이 다시 여쭙기를 “네 가지 지혜의 뜻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대사가 말씀하셨다.
“이미 세 가지 몸을 알았다면 네 가지 지혜를 밝힌 것인데 어찌하여 다시 묻느냐? 만일 삼신을 떠나서 별도로 사지를 말한다면 이것은 지혜만 있고 몸이 없는 것이니 지혜가 도리어 무지(無智)를 이룬 것이니라.”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대원경지는 성품이 청정한 것이고(나, 너가 없고, 팔식)
평등성지는 마음에 병이 없는 것이며(혼자, 칠식)
묘관찰지는 견(見)이 공(功)이 아니요(상대, 육식)
성소작지는 둥근 거울과 같은 것이니라.(오식)
오식과 팔식은 과(果)이고 육식과 칠식은 인(因)을 굴린 것이다.
이름과 말만 있을 뿐 참 성품은 없네.
구르는 곳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번잡히 일어나더라도 영원히 나가정(부처님의 삼매)에 있으리라.
지통이 성품의 지혜를 대번에 깨달아서 게송을 바쳤다.
세 가지 몸이 원래 나의 몸이고
네 가지 지혜는 본래 마음의 밝음이라.
몸과 지혜가 원융하여 걸림이 없으니
만물에 응함에 형세 따라 맡기네.
수행을 일으킴이 모두 망령된 움직임이요.
머무름을 지키는 것도 참다움이 아니네.
묘한 뜻을 스승으로 인하여 깨달으니
마침내 물들었다는 이름도 없어지네.
지상스님은 신주 귀계 사람이다.
어릴 때 출가하여 견성하기를 바라다가 어느 날 찾아뵙고 예를 드리니 조사가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일을 구하고자 하는가?”
“제가 근래에 홍주 백봉산에 가서 대통화상을 뵈었더니 견성성불의 뜻을 보여 주시던데 의심을 풀지 못하여 멀리서 와서 예배드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화상께서 자비로 가르쳐 주십시오.”
“그곳에서 어떤 말을 하더냐. 네가 한 번 보여 보아라.”
“제가 그곳에 이르러서 석 달이나 지났는데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법을 위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으므로 어느 날 저녁에 홀로 방장실에 들어가「어떤 것이 이 지상의 본래 마음이고 본래 성품입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대통화상께서 말씀하시길「네가 허공을 보았느냐?」하시기에「보았습니다.」하니「네가 본 허공이 모양이 있더냐?」하시기에「허공은 형체가 없는데 무슨 모양이 있겠습니까!」하였더니 말씀하시길「너의 본래 성품도 허공과 같아서 마침내 한 물건도 볼 것이 없는데 이것을 정견이라 한다. 마침내 한 물건도 알 것이 없음을 깨달아서 이것이 참되게 아는 것이며 푸른 것, 노란 것, 긴 것, 짧은 것이 없고 다만 근본 바탕이 청정하고 깨달음의 본체가 뚜렷이 밝음을 보는 것이 곧 견성성불이며 여래의 지견이라 하셨습니다.」
제가 비록 이 말씀을 들었으나 확실히 알지 못했사오니 빌건대 화상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조사가 말씀하셨다. “그 스님의 말씀에는 아직도 보는 것과 아는 것이 남아 있으므로 너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내가 이제 너에게 한 게송을 보이리라.”
한 법도 보지 않고 없다는 생각을 두는가.
크게 뜬 구름이 해를 가리는 것과 같구나.
한 법도 알지 못해서 공한 지(知)를 지킴이여
도리어 허공에 번개가 번쩍 일어남과 같도다.
이런 지견이 잠시라도 일어나면
잘못 안 것이니 어찌 방편인줄 알리요.
네가 마땅히 한 생각에 그릇된 줄만 알면
자기의 신령스런 광명이 항상 드러나리라.
지상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활짝 열려 게송을 지어 올렸다.
무단히 지견을 일으켜서
상에 빠져 보리를 구하나니
마음에 한 생각 깨달음을 두면
어찌 옛날의 미혹함을 넘으리오.
자성의 각원체(覺源體)가
비침을 따라 잘못 흐르니
조사의 방에 들지 못하면
막연하게 두 가지만 키우리라.
지상이 어느 날 조사에게 여쭙기를 “부처님이 삼승법을 설하시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니 제자가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가르쳐 주십시오.”
조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기의 본심만 보고 밖의 법상에 집착하지 말아라. 법에는 네 가지 승이 없는데 사람들의 마음에 차별이 있어서 듣고 외우기만 하는 것은 소승이고, 법을 깨달아 뜻을 알면 중승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대승이고, 만법을 다 통하여 만법을 다 갖추되 일체에 물들지 않고 모든 법상을 여의어서 하나도 얻은 것이 없는 것을 최상승이라 이름 하느니라.
승이라는 것은 곧 행한다는 뜻이며 입으로 다투는데 있지 않으니 네가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아라. 언제 어느 때나 자성은 스스로 여여 하니라.”
지상이 예배드리고 조사가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항상 모셨다.
지도라는 스님은 광주의 남해 사람이다.
법문을 청하며 말씀드리길 “제가 출가해서 열반경을 두루 본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대의를 밝히지 못했사오니 원컨대 화상께서 가르침을 주옵소서.”
조사가 “네가 어느 곳을 밝히지 못했는고?” 하시자 “「모든 현상이 무상하여 나고 죽는 법이니 나고 죽음이 없어지면 적멸이 낙이 된다.」하는 것에 의심이 있습니다.” 하므로 “네가 어떻게 의심하는가.” 하시니 말하기를 “일체 중생이 모두 두 가지 몸이 있으니 이른바 색신(육신)과 법신입니다. 색신은 무상하여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마는 법신은 항상하여 앎도 없고 깨달음도 없는데 경(열반경)에 이르기를 「나고 죽음이 멸하여 마치면 적멸이 낙이 된다.」하는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몸이 적멸이며, 어떤 몸이 낙을 받는다는 말씀입니까? 만일 육신이라면 육신이 없어질 때에 사대가 흩어져서 아주 괴로울 뿐인데 괴로움을 낙이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만일 법신이라면 적멸하여 곧 초목이나 흙이니 돌과 같은 것인데 누가 마땅히 낙을 받습니까?
또 법의 성품은 나고 죽는 것의 체(體)이고 오온은 생멸의 용(用)이니 한 체에 다섯 작용(色, 受, 想, 行, 識)으로 나고 죽는 것은 떳떳한(常)것으로써 나는 것은 본체에서 일으킨 작용이고 죽는 것은 작용을 거두어서 본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다시 난다고 하면 곧 유정의 종류(중생살이)에서 끊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다시 나지 않는다고 하면 영원히 적멸한 곳으로 돌아가서 무정의 물질과 같을 텐데 이와 같다면 모든 법이 열반에 묶이어 오히려 나지도 못할 것이니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부처님의 제자인데 어찌 외도의 단(斷), 상(常)의 삿된 소견을 익혀 최상승법을 의논하려 하느냐. 네가 말한 대로 한다면 곧 육신 외에 별도로 법신이 있으며 생멸을 떠나서 적멸을 구하는 것이다.
또 열반의 항상 즐거움도 몸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는 생사를 집착하고 아껴서 세간의 즐거움에 빠져드는 것이다.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라.
부처님께서는 일체의 미혹한 사람들이 오온이 화합된 것을 자기의 근본 모습으로 삼고 일체법을 분별하여 바깥 모습으로 삼아서 나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싫어하며 생각 생각에 바뀌며 흘러가서 꿈이고 허깨비이며 거짓인줄 모르고 잘못 윤회를 받아서 항상 즐거운 열반을 도리어 괴로운 것으로 잘못 알고 종일토록 찾아 헤매므로, 부처님이 이를 불쌍히 여기시고 열반의 참다운 즐거움은 찰나에도 나는 상이 없으며 찰나에도 없어지는 상이 없어서 다시 생과 멸이 멸할 것도 없는 것으로 즉 적멸이 앞에 드러나는 것임을 보이신 것이니라.
앞에 드러났을 때에 앞에 드러났다는 생각도 없어야 상락(常樂)이라 하느니라.
이 낙을 받는 자도 없고 또한 받지 않는 자도 없는 것이니 어찌 하나의 체에 다섯 가지 용이라는 이름이 있겠으며 어찌 하물며 다시 열반이 모든 법을 묶어서 영원히 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겠느냐. 이런 말은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헐뜯는 것이로다.”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위가 없는 대 열반이여,
뚜렷이 밝아 항상 고요히 비치거늘
어리석은 범부는 죽는다고 말하고
외도는 집착하여 단멸(斷滅)을 삼으며
이승(二乘)을 구하는 모든 사람은
하는 것 없음을 내세우네.
모두 다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
육십이견의 근본이로다.
망령되이 세운 헛된 이름이리니
어찌 진실한 뜻이 되리요.
오직 헤아림을 초월한 사람이라야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음을 통달하여서
오온법을 알아서
오온 가운데의 나와
밖으로 나타나는 온갖 색상과
낱낱 음성의 상이
평등하여 꿈이고 환상인 줄 알아서
범부다 성인이다는 소견이 나지 않고
열반의 알음알이도 짓지 않으며,
이변(二邊)과 삼제(三際)가 끊어져서
항상 모든 근기를 맞추어 쓰지만
쓴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일체 법을 분별하지만
분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니
겁화(劫火)가 일어나 바다 밑을 태우고
바람이 불어와서 산이 서로 부딪칠지라도
참되고 항상 적멸의 즐거움이라.
열반의 모습 이와 같으니라.
내가 이제 굳이 말한 것은
너로 하여금 사견을 버리게 함이니
네가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지 않으면
네가 조금 알았다고 허락하리라.
지도가 게송을 듣고 크게 깨달아서 뛸 듯이 기뻐하며 절을 하고 물러갔다.
행사선사의 성은 유씨이고 길주 안성 사람이다.
조계의 법석이 성황을 이룬다는 말을 듣고 바로 와서 예를 드리고 물었다.
“마땅히 어떻게 힘써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조사가 말씀하시길 “네가 일찍이 무엇을 어떻게 해 왔느냐?” 하시니
“성인의 진리도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하므로 “어떠한 계급에 떨어졌느냐?” 하시니 “성인의 진리도 오히려 하지 않았는데 무슨 계급이 있겠습니까?” 하므로 조사가 깊이 법기로 여기시고 행사를 대중의 우두머리로 삼으셨다.
어느 날 조사가 말씀하시기를 “너는 마땅히 한 지방을 맡아 교화하여 법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라.” 하셨다. 행사가 이미 법을 얻었으므로 길주의 청원산으로 돌아가 법을 크게 펴고 교화하였다.
회양선사는 금주 두씨의 아들이다.
처음에 숭산의 안국사를 뵈었는데 안국사가 조계에 가서 뵈옵고 물어보라 하므로 찾아와서 예배하였다.
조사가 말씀하셨다.
“어느 곳에서 왔는고?”
“숭산에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한 물건이라고 말하여도 맞지 않습니다.”(8년 뒤 대답)
“도리어 가히 닦아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냐?”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물들어 더럽혀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때묻지도 물들지도 않는 이것을 모든 부처님이 호념하시는 바인데 네가 이미 이와 같고 나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서천의 반야다라가 예언하시기를 너의 발아래에 망아지가 한 마리 나와서 천하의 사람을 밟아 죽이리라 하셨으니 마땅히 네 마음에만 두고 모름지기 속히 설하지 말지어다.”
회양이 활연히 깨닫는 바가 있어서 좌우에서 모시기를 15년이니 하였으며, 날로 더욱 깊고 오묘한 경지에 들어갔으며 뒤에 남악으로 가서 선종을 크게 드날렸다.
영가 현각선사는 온주대씨의 자손이다.
젊어서부터 경과 논을 익혀 천태의 지관 법문에 정통하였는데 유마경을 보다가 마음자리를 밝히게 되었다.
우연히 조사의 제자인 현책이 찾아와서 그와 더불어 법에 대하여 깊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하는 말이 은근히 조사들의 뜻에 맞으므로 현책이 “인자에게 법을 주신 스승은 누구십니까?” 하니 현각이 말하길 “내가 방등경론을 들을 적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뒤에 유마경에서 불심종(佛心宗)을 깨닫고는 아직 증명해 주실 분이 없습니다.” 하였다.
현책이 “위음왕불 이전에는 그럴 수 있었지만 위음왕불 이후에는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은 천연외도라 하였습니다.” 하니 현각이 “그렇다면 나를 위하여 증거 하여 주십시오.” 하므로 현책이 말하기를 “나의 말은 가볍습니다. 조계에 육조대사가 계시는데 사방에서 모여들어 법을 받고 있으니 만일 가시겠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하였다.
현각이 드디어 현책과 같이 와서 찾아뵈었는데 조사의 주위를 세 번 돌고는 지팡이를 짚고 서 있으므로 조사가 “무릇 사문은 3천의 위의와 8만의 세행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덕은 어느 곳에서 왔기에 큰 아만을 부리는가?” 하시니, 현각이 말하길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하나이다.” 하므로 “어찌 나는 것이 없음을 체달하지 못하며 빠르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자 “체달함에는 곧 생겨남이 없고 요달함에는 본래 빠름이 없습니다.” 하기에 조사가 “옳다. 옳다.”하시니 현각이 바야흐로 위의를 갖추어 예배하고 곧 하직인사를 드렸다.
조사가 “도리어 너무 빠르지 않느냐?” 하시니 “본래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하였다.
조사께서 “누가 움직이지 않음을 아는가?” 하시니 “스승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하였다.
조사께서 “네가 완전히 무생의 뜻을 얻었도다.”하시니 “무생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하므로
“뜻이 없으면 누가 마땅히 분별하겠느냐?” 하시니 “분별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하였다.
조사가 이르시기를 “장하도다. 하룻밤이라도 쉬어 가도록 하라.” 하셨다.
그때의 일로 그를 일숙각(깨닫고 하룻밤 잠)이라 하였는데 뒤에 증도가를 지으니 세간에 성행하였다.
선자 지황은 처음 오조를 참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이미 삼매를 얻었다 하며 암자에서 20년 동안이나 장좌불와를 하고 있었는데 조사의 제자인 현책이 사방을 다니다가 하삭(땅이름)에 이르러서 지황의 이름을 듣고 암자로 찾아가 “그대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십니까?”하니 황이 말하길 “정에 듭니다.”하므로 “그대가 정에 든다 하니 마음이 있어 듭니까? 마음이 없어 듭니까? 만일 마음이 없이 든다 하면 일체 무정인 초목과 돌과 기왓장도 마땅히 정을 얻을 것이오. 만일 마음이 있어 든다 하면 알음알이가 있는 온갖 중생들도 마땅히 정을 얻을 것이 아닙니까?” 하니 “내가 바르게 정에 들 때에는 <있다>, <없다>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못합니다.”하므로 “있다와 없다는 마음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면 이것이 곧 항상 정인데 어찌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습니까? 만일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다면 큰 정이 아닙니다.” 하자, 황이 대답을 못하고 한참 있다가 “스님은 누구의 법을 이었습니까?” 라고 물었다.
“나의 스승은 조계의 육조대사입니다.”
“육조는 무엇으로 선정을 삼으십니까?”
“우리 스승의 설법은 묘하고 맑고 둥글고 고요하여 그 체와 용이 여여(如如)합니다.
오음(오온)이 본래 공하고 육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것도 아니며 정(定)도 아니고 어지러운 것도 아닙니다.
참선의 성질은 머무름이 없는지라 고요한데 머무름을 떠났고 선의 성질은 생겨나는 것이 없는지라 선이라는 관념을 내는 것을 떠났습니다. 마음이 허공과 같지만 허공과 같다는 헤아림도 없습니다.” 황이 이 말을 듣고 바로 와서 조사를 찾아뵈니 조사가 물으셨다.
“인자는 어찌 왔는가?” 황이 지난번의 인연을 다 말씀드리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진실로 말한 바와 같다. 그대는 다만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되 비었다는 소견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응용하여 걸림이 없으며, 움직임과 고요함에 마음이 없으며,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생각이 없어져 능(주관)과 소(객관)가 다 없어지며, 성품과 형상이 여여하여 정(定)이 아닌 때가 없으리라.”
황이 이에 크게 깨달아서 20년에 얻은바 마음이 도무지 그림자조차도 없었다.
그날 밤 하북 땅의 선비와 백성들이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황 선사가 오늘에야 도를 얻었다.” 하였다.
지황이 뒤에 예배하고 하직하여 다시 하북으로 돌아가 사부대중을 교화하였다.
한 스님이 조사에게 “황매(5조)의 참 뜻을 어떤 사람이 얻었습니까?” 라고 여쭈니 조사가 “불법을 아는 사람이 얻었느니라.” 하시자 그 스님이 “화상께서는 얻었습니까?” 하기에 “나는 불법을 알지 못하노라.” 하셨다.
조사께서 하루는 전해 받으신 법의를 세탁하려 하셨는데 좋은 샘이 없어서 절 뒤로 5리쯤을 가시니 울창한 숲 속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음을 보시고 주장자를 떨쳐 땅에 세우시니, 샘이 손을 따라 솟구쳐 올라 와 못이 되므로 무릎을 꿇고 돌 위에서 옷을 빨고 있었는데, 홀연히 한 스님이 앞에 와서 예배하며 말하기를 “저는 방변이라 하는 서촉 사람입니다. 어제 남 천축국에서 달마대사를 뵈었더니, 저에게 당부하시기를「속히 당나라로 가거라. 내가 전한 대가섭의 정법안장과 승가리가 여섯 대를 전하여 소주의 조계에 있으니 네가 가서 참배하라.」하시기에 제가 멀리서 찾아왔사오니 원하옵건대 전해져 내려오는 의발을 보여 주십시오.” 하므로 조사가 내여 보이신 다음에 물으셨다.
“그대는 무슨 일을 익혔는가?”
방변이 말하기를 “소상을 잘 합니다.” 하므로, 조사가 정색을 하여 “네가 나의 모습을 한번 만들어 보아라.” 하시니 방변이 망설이다가 수일만에 조사의 실제 모습을 만드니 높이가 7촌이고 아주 절묘하고 세밀하였다.
조사에게 바쳐 드리니 조사가 웃으시며 “네가 다만 흙을 빚는 도리만 알고 불성은 모르는구나.” 하시며 손을 펴서 방변의 이마를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셨다.
“영원히 인간과 천상의 복전이 되어라.”
한 스님이 와륜 선사의 게송이라 하며 외우기를「와륜은 기량이 있어서 능히 백가지 사상을 끊는지라. 경계를 대하여도 마음이 일어나지 아니하니 보리(菩提)가 나날이 자라난다.」하므로 조사가 듣고 말씀하시기를 “이 게는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했으니 만일 이대로 행하면 곧 얽히기만 더 하리라.” 하시며 한 게송을 말씀하셨다.
혜능은 기량이 없어서
백가지 사상을 끊지 않았네.
경계를 대하면 마음이 자주 일어나니
보리(菩提)가 어찌 자라리오.
第八 頓漸品
제팔 돈점품
때에 조사는 조계 보림에 계시고 신수대사는 형남 옥천사에 계셨다.
그때에 두 종이 모두 다 성대히 교화하니 사람들이 모두 남능과 북수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남과 북의 두 종이 돈과 점으로 갈라졌는데 배우는 사람들은 근본취지를 몰랐으므로 조사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법은 본래 한 종이건만 사람이 남북을 둔 것이다. 법은 곧 한가지인데 보는 것이 더디고 빠를 수 있다. 무엇을 <돈>이라 하고 무엇을 <점>이라 하는가 하면 법은 돈과 점이 없는데 사람에게는 영특함과 둔함이 있으므로 <돈>이고 <점>이라 한다.”
그러나 신수의 대중들은 이따금 남종의 조사는 한 글자도 모르니 무엇이 그리 대단하겠느냐하며 비방하였는데, 신수대사는 말하기를 “그분은 스승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상승의 법을 깊이 깨달았으니 나는 그 분만 못하다. 또 나의 스승인 오조께서 친히 가사와 법을 전하셨으니 어찌 공연한 일이겠느냐. 내가 멀리 가서 친근하지 못하고 헛되이 나라의 은혜만 받고 있어 한스러우니 너희들은 이곳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조계에 가서 배우도록 하여라.” 하며 어느 날 문인인 지성에게 명하기를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에 가서 법을 듣고, 들은 법은 마음을 다하여 기억해 두었다가 돌아와서 나를 위해 설하여 달라.” 하였다.
지성이 명을 받고 조계에 이르러서 대중을 따라 참례하고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때 조사가 대중에게 “지금 법을 도적질하는 사람이 이 모임에 숨어 있다.” 하시므로 지성이 곧 나와서 예배하고 그간의 일을 다 말씀드리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옥천에서 왔으니 필시 염탐꾼이겠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은가?”
“말씀드리지 않았을 때는 그러합니다만 말씀드렸으니 그렇지 않습니다.”
“너의 스승은 어떻게 대중을 가르치시는가?”
“항상 대중을 가르치시기를「마음을 머물러 고요함을 살피어보고 장좌하여 눕지 말라.」하셨습니다.”
“마음을 머물러서 고요함을 관하는 것은 병이지 선이 아니며, 마냥 앉아 있는 것은 몸을 구속하는 것이니 이치에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살아서는 앉아서 눕지 못하고
죽어서는 누워서 앉지 못하네.
한 덩어리 냄새나는 뼈다귀가
어찌 공과를 세우리오.
지성이 다시 절하며 말하였다.
“제자가 신수대사의 처소에 있으면서 도를 배운지 9년이 되었으나 깨닫지 못하였는데 지금 화상의 한 말씀을 듣고 문득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제자에게 생사의 일이 크니 화상께서 대 자비로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들으니 너의 스승은 학인들에게 계, 정, 혜의 법을 가르친다 하시던데 알지 못하겠으니 너의 스승이 계, 정, 혜를 어떻게 설하시는지 내게 말해 보아라.”
“신수대사께서는「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이라 이름 한다.」라고 설하시는데, 화상께서는 어떠한 법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일 사람에게 줄 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곧 너를 속이는 것이 되느니라. 단지 경우를 따라 얽힘을 풀어줄 뿐인데 이름을 빌려 말한다면 삼매라 하느니라. 너의 스승이 말씀하시는 계, 정, 혜는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내가 보는 계, 정, 혜와는 다르구나.”
“계, 정, 혜는 다만 한가지인데 어찌 다를 수 있습니까?”
“너의 스승의 계, 정, 혜는 대승의 사람을 대하는 것이지만 나의 계, 정, 혜는 최상승의 사람을 대하는 것이다. 깨달아 앎이 같지 않으므로 지견이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너는 내가 말하는 것이 그와 같은지 다른지 들어보아라. 내가 말하는 법은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체(體)를 여의고 법을 설하는 것을 상으로 설하는 것이라 하는데 자성을 항상 미혹하게 하느니라. 모름지기 알아라. 일체의 만법이 모두 다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느니라. 이것이 참된 계, 정, 혜의 법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자리에 잘못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자리에 어리석음 없는 것이 자성의 혜요,
마음자리에 어지러움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것이 자기의 금강이요,
몸이 가고 몸이 옴이 본래 삼매이니라.
지성이 게송을 듣고 뉘우쳐 감사하며 한 게송을 바치었다.
오온의 허깨비 몸이여
허깨비가 어찌 구경(究竟)이리요,
진여로 돌이켜 나아가면
법이 도리어 깨끗하지 못하리.
조사가 “그렇다.” 하시고 다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네 스승의 계, 정, 혜는 작은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고 나의 계, 정, 혜는 큰 근기의 지혜를 가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만일 자기의 성품을 깨닫고서 보리나 열반을 세우지 않고 또한 해탈지견도 세우지 않으면 한 법도 가히 얻을게 없어서 바야흐로 만 법을 세울 수 있느니라.
만일 이 뜻을 알면 이것을 부처님의 몸이라 하며 보리와 열반이라 하며 해탈지견이라 하느니라.
견성한 사람은 세워도 되고 세우지 않아도 되니 가고 옴이 자유로워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경우에 따라 작용을 하고 물음에 따라 답하며 널리 화신을 나타내지만 자성을 여의지 않으므로 곧 자재한 신통과 유희하는 삼매를 얻는다. 이것을 견성이라 이름 하노라.”
지성이 다시 조사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조사가 말씀하셨다.
“자성은 그릇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어서 순간순간이 반야를 비추어 보아 항상 법이라는 생각을 여의고 자유자재하며 가로 세로 모두 얻으니 무엇을 세우겠느냐. 자성을 스스로 깨달아서 몰록 닦으면(돈오 돈수) 늦고 더딤이 없으므로 일체 법을 세우지 않느니라. 모든 법이 적멸한데 무슨 순서가 있겠는가?”
지성이 예배드리고 모시기를 원하여 아침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철스님은 강서 사람이다. 본성은 장씨이고 이름은 행창인데 젊어서는 불한당이었다.
남북이 나뉘어 교화하였지만 두 종주는 네 편, 내 편이 없었는데 그 문도들은 서로 다투며 미워하였다.
그때에 북종의 문인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신수대사를 육조로 삼았으며 조사에게 가사가 전해진 것이 천하에 알려지는 것이 꺼려서 행창을 시켜 조사를 해치려 보냈는데 조사께서는 타심통으로 그 일을 미리 아시고 금 열 냥을 자리 사이에 준비하여 두고 계셨다.
밤이 깊어져 행창이 조사의 방에 들어와 해치려 하니 조사가 목을 쭉 내미시므로, 행창이 칼을 세 번이나 휘둘렀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으셨는데 조사께서 “바른 칼은 삿되지 않고 삿된 칼은 바르지 못하니라. 너에게 전생에 돈을 빚졌지만 목숨은 빚지지 않았느니라.” 하시니 행창이 놀라 자빠졌다가가 한참 만에 깨어나 슬피 울며 잘못을 뉘우치며 출가를 원하였으나, 조사가 금을 주시며 말씀하시길, “너는 우선 가거라. 대중들이 도리어 너를 해칠까 걱정되니 네가 다른 날에 모습을 바꾸어 오면 내가 마땅히 받아 주겠노라.” 하셨다.
행창이 조사의 뜻을 받들어 달아났다가 다른 스님을 의탁하여 출가한 뒤, 계를 갖추어 정진하다가 어느 날 조사의 말씀을 기억하고, 멀리서 찾아와 절하고 뵈었다.
조사께서 “내가 너를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이리 늦었는가.” 하시니 “예전에 화상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신 덕분에 지금은 비록 출가하여 고행을 하지만, 그 은덕을 갚기가 어렵습니다. 은덕에 보답하는 길은 오직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제자가 일찍이 열반경을 보았으나 상(常)과 무상(無常)의 뜻을 깨닫지 못하겠으니 비옵건대 화상께서 자비를 베풀어 간략히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이에 조사가 “무상이라는 것은 곧 불성이고, 유상이라는 것은 일체 선과 악의 모든 법을 분별하는 마음이다.” 하시니, “화상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경문에 크게 어긋납니다.” 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는데 어찌 감히 불경을 어기겠느냐?” 그러자, “경에는 불성이 곧 상이라 하였는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무상이라 말하시며 선악의 법과 보리심이 다 무상인데 화상께서는 도리어 상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서로 틀리는 것이라 학인으로 하여금 점점 더 의심스럽게 합니다.” 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열반경은 내가 옛적에 무진장이라는 비구니가 독송하는 것을 한 번 듣고 곧 그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한 글자, 한 뜻도 경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너에게도 두 가지 말이 있을 수 없느니라.”
“제가 아는 것이 얕고 어두우니 원컨대 화상께서 자세히 가르쳐 주십시오.”
“네가 아느냐? 불성이 만일 상(常)이라면 다시 어떻게 선과 악의 모든 법을 설하겠느냐? 한량없는 세월을 다하더라도 보리심을 일으킬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설하신 참된 상(常)의 도리이니라.
또 일체의 모든 법이 만일 무상(無常)이라면 곧 물건마다 모두 자기의 성품이 있어서 생과 사를 받아들이므로 참된 상의 성품이 두루 하지 못하는 곳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상이라는 것은 바로 부처님께서 참된 무상의 뜻이니라.
부처님께서 평소에 범부와 외도들은 삿된 상(常)에 빠지고 이승의 사람들은 상을 무상으로 알아서 다 같이 여덟 가지 뒤집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열반 요의교를 말씀하시는 가운데에 그런 편견을 없애고자, 진상(眞常)과 진락(眞樂)과 진아(眞我)와 진정(眞淨)을 밝혀 말씀하셨는데 네가 그 말만 의지하여 뜻을 잘못 알고 아무것도 없는 무상(無常)과 고정된 상(常)으로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최후의 미묘한 말씀을 잘못 이해하니 비록 천 번을 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행창이 그 순간 크게 깨달아서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무상의 마음을 지킴으로 인하여
부처님이 유상의 성품을 설하셨는데
방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여
봄 못 속에 조약돌 주음과 같았다.
내가 이제 아무런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
불성이 앞에 나타나니
스승이 주신 것도 아니고
나도 또한 얻은 바가 없도다.
조사가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 똑똑히 알았으니 마땅히 이름을 지철이라 하여라.”
지철이 절하고 감사하며 물러갔다.
동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이름이 신회이고 양양 고씨의 자손이었다.
나이 13세에 옥천사로부터 와서 참배하니 조사가 “선지식아,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근본은 얻어 가지고 왔느냐? 만일 근본이 있다면 당연히 주인을 알 것이니 한 번 말해 보아라.” 하시니 신회가 말하기를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니 보는 것이 곧 주인입니다.” 하므로 조사께서 “이 사미가 어찌 그리 경솔하게 말하는가.” 하셨는데 “화상께서는 좌선하실 때 보십니까? 보시지 않으십니까?” 하므로 주장자로 세 번이나 때리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때렸는데 아프냐? 아프지 않느냐?”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나도 역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묻기를 “어떤 것이 또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보는 것은 항상 자기 마음의 허물만 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을 보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는 것이니라. 네가 말한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네가 만일 아프지 않다면 나무나 돌과 같고 만일 아프다면 곧 범부와 같아서 곧 성내고 원한을 일으킬 것이니 네가 아까 보거나 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두 가지 극단이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다고 하는 것은 생, 멸이니라. 네가 자성을 아직 보지 못하였으면서 감히 그렇게 희롱하듯이 말하느냐.”
신회가 뉘우치며 절하고 사과하였다.
조사가 또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한다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야 하고 네가 만일 마음을 깨달았다면 곧 스스로 성품을 보고 법대로 수행하여야 할 것인데 너는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의 마음을 보지 못하였으면서도 도리어 나에게 와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나의 봄은 스스로 아는데 어찌 너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네가 만일 스스로 보더라도 나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는데 어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스스로 보지 못하면서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다시 백여 번 절을 하며 허물을 사죄하였고 부지런히 모시며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조사가 대중에게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으며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으며 등도 없고 얼굴도 없으니 너희들은 알겠느냐?” 하시니 신회가 나와서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본원이며 신회의 불성입니다.” 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 하였는데 네가 문득 본원이며 불성이라고 하니 너는 어디 가서 지도자가 되더라도 한낱 지해종도(안다는 확신을 내세워 이름이나 글자의 집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무리) 밖에 만들지 못하겠구나.”
신회가 조사가 돌아가신 후에 서울에 들어가서 조계의 돈교를 크게 넓히고 현 종기를 지으니 세상에 유행하였다.
조사께서는 여러 종파들이 힐난하면서 모두가 나쁜 마음을 품고 모여드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며 말씀하셨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일체의 착한 생각과 악한 생각을 마땅히 다 없애어서 무어라 이름 할 것이 없어야 자성의 둘이 없는 성품이라 이름 하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 하여 실다운 성품이라 하느니라. 실다운 성품 위에 일체의 교문(敎門)을 세우는 것이니 말 아래에 모름지기 스스로 볼지어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다 예를 드리고 스승으로 모시기를 청하였다.
第九 宣詔品
제구 선조품
신룡 원년(705년) 정월 보름날에 측천과 중종이 조서를 보내며 이르기를 “짐이 혜안국사와 신수 두 대사를 청하여 궁중에서 공양하며 만사를 보살피는 겨를에 언제나 일승을 연구하였더니 두 대사가 사양하며 말하기를「남방의 혜능선사가 홍인대사의 가사와 법을 받아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았으니 그 분을 청하여 물으십시오.」하기에 이제 내시인 설간을 보내어 조서를 전하며 청하오니 조사께서는 자비로 살피시어 속히 서울로 오시기 바랍니다.” 하였으나 조사께서는 아프다는 글을 올려 사양하시며 산기슭 숲 속에서 여생을 마치기 원하였다.
설간이 말하기를 “경성의 선덕들이 모두 다 말하기를「도를 알고자 하면 반드시 좌선하여 정(定)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시던데 조사께서는 어떻게 설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데 있겠습니까. 경(금강경)에 이르시길「만일 여래가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도를 행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어디로부터 온 바가 없으면 또한 갈 바도 없다.」하셨습니다.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한 선(禪)이고 모든 법이 비어 고요한 것이 여래의 청정 좌(坐)이며 끝내 증득할 것이 없는데 어찌 하물며 앉는데 있겠습니까?”
설간이 말하기를 “제자가 경성에 돌아가면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조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마음의 요점을 가르쳐 주시면 두 궁전과 경성에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아룀으로서, 비유하건대 한 개의 등이 백 천 개의 등을 켜서 어두운 것을 모두 밝게 하듯이 밝고 밝음이 영원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에는 밝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번갈아 바뀐다는 뜻입니다. 밝고 밝아 다 함이 없는 것도 역시 다함이 있는 것이니 상대로 이름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정명경에서 말씀하시길「법은 비교할 데가 없음이니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설간이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 도를 닦는 사람이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리지 아니하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무엇을 의지하여 벗어나겠습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입니다. 둘이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린다고 하면 이것은 이승의 견해이고 양과 사슴 등의 근기이지 높은 지혜의 대 근기는 다 이와 같지 않습니다.”
설간이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 라고 여쭈니
“밝은 것과 밝지 못한 것을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합니다.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실다운 성품입니다. 실다운 성품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에게 있어도 줄어들지도 않고 현명한 성인에게 있어도 늘어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으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 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중간과 그 안팎에도 있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 성품의 모습이 여여하여 항상 머물러 변천하지 않는 것을 도라고 이름 합니다.” 하셨다.
설간이 “조사께서 말씀하시는 불생불멸은 외도와 어떻게 다릅니까?” 라고 여쭈니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멸을 가지고 생을 멈추고 생으로써 멸을 나타내는 것이라. 멸도 오히려 불멸과 같으며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이라 말하지만 내가 말한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는 것이어서 이제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도와는 같지 않습니다. 그대가 만일 핵심을 알고자 하면 일체의 선과 악을 전혀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바탕에 들어설 것이며 맑고 항상 고요하여 그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 수 같을 것입니다.”라 하셨다.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 크고 시원하게 깨달아서 절하고 하직하여 대궐로 돌아와 조사의 말씀을 글로 올렸다.
그해 9월 3일에 조서가 있었는데 조사께 감사하며 이르기를 “조사께서 늙고 병들었다고 말씀하시며 짐을 위하여 도를 닦으시니 나라의 복전입니다. 조사께서는 정명(유마힐 거사)께서 병을 들어 비야리 성에서 사양하고 대승을 명백하게 들어 나타내며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시고 둘이 아닌 법을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설간이 조사께서 가르쳐 주신 여래의 지견을 전하여 주니 짐은 적선을 쌓은 집에 경사가 있는 생활이 되었고 숙세에 심은 선근으로 조사의 출현하심을 만나서 높은 <승>을 몰록 깨달았으니 조사의 은혜에 감사하여 머리에 받들어 마지않습니다.” 하며 마납 가사와 수정 발우를 드리고 소주자사에게 명하여 도량을 수리하여 장엄하게 하고 조사의 옛 거처에 국은사 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第十 付囑品
제십 부촉품
조사께서 하루는 문인인 법해와 지성과 법달과 신회와 지상과 지통과 지철과 지도와 법진과 법여 등을 불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 내가 멸도한 후에 각각 한 지방의 스승이 될 것이므로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지를 잃지 않게 하리라.
먼저 삼과 법문에 의거하여 움직이고 작용하는 36가지 상대를 들것이니 나오고 들어감에 두 끝을 여의고 일체 법이 자성을 떠나지 않았음을 설하리라.
갑자기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법을 묻거든 말을 모두 쌍으로 하고 모두 상대법을 취하여 오고 감을 서로 원인으로 하고 마침내는 두 법을 모두 없애어 다시 갈 곳이 없게 하여라.
삼과 법문이라 하는 것은 <음> <계> <입>을 말한다.
음은 곧 5음이니 색, 수, 상, 행, 식 이것이고,
입은 곧 12입으로 밖의 6진인 색, 성, 향, 미, 촉, 법과 안의 6문인 안, 이, 비, 설, 신, 의 이것이며,
계는 18계로 6진과 6문과 6식 이것이니라.
자성이 만법을 머금었으므로 함장식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생각을 일으키면 곧 의식을 굴리는 것이다.
6식을 내어 6문을 나와 6진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18계가 모두 자성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므로 자성이 만일 삿되면 18사(邪)가 일어나고 자성이 만일 바르면 18정(正)이 일어나느니라.
만일 악하게 쓰면 중생의 용(用)이고 착하게 쓰면 부처님의 용이니라.
작용은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지는가?
자성을 말미암아 상대법이 있느니라.
바깥 경계인 물질세계에는 다섯 가지 상대가 있다.
하늘과 땅이 상대고, 해와 달이 상대고, 밝음과 어두움이 상대고, 음과 양이 상대고, 물과 불이 상대다.
법상을 나타내는 말에는 열두 가지 상대가 있다.
말과 법이 상대고, 유와 무가 상대며, 빛깔과 빛깔 아닌 것이 상대고, 모양과 모양 아닌 것이 상대며, 번뇌와 번뇌 없음이 상대고, 물질과 허공이 상대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고, 맑음과 흐림이 상대며, 범부와 성인이 상대고, 승려와 속인이 상대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고, 큰 것과 작은 것이 상대다.
이것이 열두 가지의 상대다.
자성이 작용을 일으키는 데는 열아홉 가지의 상대가 있다.
긴 것과 짧은 것이 상대고, 삿된 것과 올바른 것이 상대며, 어리석은 것과 지혜로운 것이 상대고, 모르는 것과 앎이 상대며, 어지러움과 고요함이 상대고, 자비로움과 독한 것이 상대며, 계(戒)와 그릇됨이 상대고, 곧은 것과 굽은 것이 상대며, 참된 것과 헛됨이 상대고, 험한 것과 평탄한 것이 상대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고, 늘 있음과 덧없음이 상대며, 불쌍히 여기는 것과 해치는 것이 상대고, 기쁜 것과 성내는 것이 상대며, 주는 것과 인색한 것이 상대고, 나아가는 것과 물러나는 것이 상대며,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이 상대고, 법신과 육신이 상대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다.
이것이 곧 열아홉 가지의 상대이니라.
이 서른여섯 가지 상대법을 만일 쓸 줄 알면 곧 도가 모든 경전의 법을 꿰뚫어 출입함에 두 가지 끝을 여의어서 자성을 움직여 쓰는 것과, 사람과 함께 말함에 있어서 밖으로는 상에 대하여 상을 떠나고 안으로는 공에 대하여 공을 떠나느니라.
만일 상에 완전히 집착하면 사견을 기르고 만일 공을 완전히 집착하면 무명을 기르느니라.
공에 집착한 사람은 경을 비방하여 바로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문자를 이미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도 부당한 것이니 이런 말은 다만 문자의 모습일 뿐이다.
또 말하기를 곧은 도는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우지 않는다는 두 글자도 또한 문자이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고 곧 그를 비방하기를 문자에 집착한다 하는데, 너희들은 모름지기 알아라.
스스로 미혹함을 오히려 옳지만 불경까지 비방하겠느냐, 절대 경을 비방하지 말아라.
죄의 업장이 헤아릴 수 없느니라.
만일 밖으로의 모습에 집착하여 법을 만들어서 참(眞)을 구하거나 혹은 도량을 넓게 세워서 유와 무의 허물과 근심을 말한다면 이런 사람은 몇 겁이 지나더라도 견성하지 못할 것이니, 다만 법을 듣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이며, 또 백가지 물건을 생각지 아니하는 것이 수행이라 하여 도의 성품을 막히게 하지 말아라.
만일 설법을 듣고 닦지 아니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도리어 삿된 생각을 내게 하니 다만 법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상에 머무름이 없이 법을 베풀어라.
너희들이 만일 깨닫고 이를 의지하여 말하고 이를 의지하여 쓰며 이를 의지하여 행하고 이를 의지하여 지으면 곧 근본 종지를 잃지 않으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들에게 뜻을 물을 때 유를 물으면 무로써 대답하고, 무를 물으면 유로써 대답하며, 범부를 물으면 성인으로써 대답하고, 성인을 물으면 범부로 대답하여 두 도가 서로 원인이 되어 중도의 뜻이 나게 할 것이며, 한번 물으면 한번 대답하고, 나머지 물음을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하면 이치를 잃지 않으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떤 것을 어두움이라고 하느냐하면 대답하기를 밝음이 <인>이고 어두움이 <연>이 되어 밝음이 없어지면 곧 어두움이다. 라고 하여라.
밝음으로써 어두움을 나타내고 어두움으로써 밝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오고 감이 서로 원인이 되어 중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니, 나머지 물음에도 모두 이와 같이 하여라.
너희들이 후에 법을 전할 때에도 이것에 의지하여 서로 바꾸어 가르쳐서 종지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조사께서 태극 원년 임자년(712년) 7월에 문인에게 명하시어 신주 국은사에 가서 탑을 세우게 하시고, 일하는 사람들을 자주 독촉하여 다음해 늦여름에 낙성을 하였다.
7월 1일에 문도 대중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8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이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빨리 물어 보아라.
너희들의 의심을 부수어서 너희로 하여금 어리석음이 없게 하리라.
내가 간 뒤에는 너희를 가르칠 사람이 없을 것이니라.”
법해 등이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데 오직 신회만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울지도 않았기에 조사가 말씀하셨다.
“신회소사가 오히려 선과 선하지 못함이 평등함을 얻었으며, 헐뜯는 것과 칭찬하는 것에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며, 슬픔과 즐거움을 내지 않는 마음을 얻었구나.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했으니 몇 해씩 산에 있으면서 결국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데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근심하는 것이냐?
만일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여 근심한다면 내가 스스로 갈 곳을 알고 있느니라.
내가 만일 갈 곳을 알지 못한다면 너희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했을 것이니라.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대체로 내가 가는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가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슬퍼하며 울지는 않으리라.
법의 성품에는 본래 생겨나는 것과 없어지는 것과 가는 것과 오는 것이 없으니 너희들은 모두 앉아라.
내가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리라.
이름은 <진가동정게>라 하는데, 너희들이 이 게송을 외워서 지니면 나의 생각과 같아질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종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스님들이 예를 올리고 조사에게 게송을 설해 주실 것을 청하자 말씀을 하셨다.
일체가 참다움이 없으니
참이라고 보지 말지어다.
만일 참인 줄 보는 자는
그 소견이 참되지 못하리.
만일 스스로 참다움이 있다면
거짓을 여윈 즉 마음이 참이니
스스로 마음에 거짓을 여의지 않으면
참은 없거니 어느 곳이 참이겠느냐.
유정은 곧 움직일 줄 알고
무정은 움직일 줄 모르니
만일 움직이지 않는 행을 닦으면
무정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
만일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찾으려면
움직이는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다.
움직이지 않음이 부동이라면
무정은 부처님 될 종자도 없겠구나?
능히 상을 잘 분별하되
제일의(구경의 진리)에 움직이지 말아라.
다만 이 같은 소견을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작용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알리니
힘써 모름지기 뜻을 써서
대승의 문에서
지혜로 생사를 돌이켜 집착하지 말라.
만일 말끝에 서로 맞으면
곧 불법을 같이 의논하되
만일 실답게 상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여라.
이 종은 본래 다툼이 없는 것이라.
다투면 곧 도의 뜻을 잃어버리며
거꾸로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빠지리라.
때에 대중들이 조사께서 설하신 게송을 듣고 모두 다 절하였고 아울러 조사의 뜻을 알았다.
각각 마음을 거두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않았다.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르시지 못할 것을 알고 법해상좌가 다시 절하며 여쭙기를, “화상께서 입멸하신 뒤에 가사와 법은 마땅히 어떤 사람에게 맡기십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내가 대범사에서 설법한 이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법보단경이라고 기록하여 둔 것이 유행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이것을 수호하고 번갈아 가며 서로 전해 주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다만 이 말대로만 하면 곧 정법이라 할 것이니라.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되 그 가사는 맡기지 않겠노라.
대체로 너희들은 믿음의 근기가 순박하고 무르익었으며 의심이 전혀 없으므로 큰일을 감당할 만하지만 선조인 달마대사께서 부탁하며 주신 게의 뜻에 의거하여 옷은 마땅히 전하지 않을 것이니라.” 하시며 게송을 말씀하셨다.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구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려 함인데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려서
열매가 자연히 맺으리라.
“선지식아, 너희들은 모두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의 설법을 들어라.
만일 일체종지를 성취하고자 하면 모름지기 일상삼매와 일행삼매에 통달하여야 하느니라.
만일 언제 어디서나 상에 머물지 않아서 그 상 가운데 있으면서 미워하거나 애착하는 생각을 내지 않으며 또 취하거나 버리지 아니하며 이익과 성취와 무너짐 등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여 편안하고 한가로우며 아주 고요하고 허공처럼 비어 통하고, 욕심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이것을 일상삼매라 한다.
만일 언제 어디서나 움직이거나 머무르거나 앉거나 눕더라도 순수하고 곧은 마음으로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 참으로 정토를 이루면 이것을 일행삼매라 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두 가지 삼매를 갖추면 마치 땅에 종자가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나서 열매가 여무는 것과 같이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내가 지금 법을 설하는 것은 때맞춰 비가 내려 대지를 두루 윤택하게 하는 것과 같고 너희들의 불성은 비유하건대 모든 종자가 이 비를 만나 흠뻑 적셔져서 모두 다 싹이 트는 것과 같으니라.
나의 뜻을 이어 받는 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나의 행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묘한 과보를 얻을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마음의 땅이 모두 종자를 머금어서
널리 비를 내리면 다 싹이 트리라.
몰록 깨달아 꽃의 정(情)이 다하면
보리의 열매는 절로 이루리라.
게송을 마치고 말씀하시길 “그 법이 둘이 없어서 그 마음도 또한 그러하며 그 도가 청정하여 모든 상이 또한 없으니 너희들은 아무쪼록 고요함을 관하려 하지 말고 그 마음을 비우려 하지 말아라.
이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으니 각각 스스로 힘써서 인연을 따라 잘 가거라.”
이에 대중들이 절하고 물러갔다.
대사가 7월 8일에 갑자기 문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신주로 돌아가고자 하니 너희들은 속히 배와 돛대를 손질해 놓아라.”
대중이 슬퍼하며 더 계시기를 간곡히 원하므로 조사가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시어 열반을 보이시듯이 오면 반드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나의 이 몸뚱이도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느니라.”
“조사께서 이제 가시면 언제 돌아오십니까?”
“잎이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가는 지라 올 때를 말로 할 수 없느니라.”
“정법안장은 어떤 사람에게 전하십니까?”
“도 있는 자가 얻을 것이고 무심한 자가 통할 것이다.”
“후에 난이 없겠습니까?”
“내가 죽은 후 5~6년이 되면 어떤 사람이 내 머리를 가지러 올 것이니 나의 예언을 들어라.
머리를 받들어 친히 공양하고자 함에(김대비), 입 속에 먹을 것을 구하는 장정만의 난을 만날 때 양유(양간, 유무첨)가 관이 되리라.
내가 가고 70년이 되면 두 보살(마조, 방거사)이 동방에서 오는데 한 사람은 출가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재가자인데 동시에 크게 교화하여 나의 종(宗)을 세우고 가람을 짜임새 있게 하여 법을 이을 이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위로부터 불조께서 나타나신 이래 몇 대를 전해왔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고불(옛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그 수가 한량없어서 가히 헤아리지 못하니 이제 7불을 처음으로 삼으면 과거 장엄겁의 비바시불과 시기불과 비사부불과 지금 현겁의 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과 가섭불과 석가모니불이 7불이 되는데 석가모니불이 처음에 마하 가섭존자에게 전하셨으니, 제 이는 아난존자고, 제 삼은 상나화수 존자며, 제 사는 우바국다 존자고, 제 오는 제다가 존자며, 제 육은 미차가 존자고, 제 칠은 바수밀다 존자며, 제 팔은 불타난제 존자고, 제 구는 복타밀다 존자며, 제 십은 협 존자고, 십일은 부나야사 존자며, 십이는 마명대사고, 십삼은 가비마라 존자며, 십사는 용수 대사고, 십오는 가나제바 존자며, 십육은 라후라다 존자며, 십칠은 승가난제 존자며, 십팔은 가야사다 존자고, 십구는 구마라다 존자며, 이십은 사야다 존자고, 이십일은 바수반두 존자며, 이십이는 마나라 존자고, 이십삼은 학륵나 존자며, 이십사는 사자 존자고 이십오는 바사사다 존자며, 이십육은 불여밀다 존자고, 이십칠은 반야다라 존자며, 이십팔은 보리달마 존자이니 이 땅에 초조가 되고, 이십구는 혜가 대사고, 삼십은 승찬 대사며, 삼십일은 도신 대사고, 삼십이는 홍인 대사이니, 혜능은 삼십삼 조(祖)가 되는 것이다.
위로부터 모든 조사께서 이와 같이 각각 이어 받으셨으니 너희들도 이 뒤에 번갈아 가며 전하고 틀리거나 그르침이 없도록 하여라.
대사가 개원 원년(713년) 계축년 8월 3일에 국은사에서 재를 파하시고 모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각 지위를 따라서 앉아라. 내가 너희들과 이별하리라.”
법해가 말씀드리길 “화상께서는 무슨 교법을 남기시어 후대에 미혹한 사람으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하시겠습니까?” 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후대에 미혹한 사람이 만일 중생임을 알면 그것이 곧 불성이고 만일 중생임을 알지 못하면 만겁동안 부처님을 찾아도 만나기 어려우니라.
내가 이제 너희를 가르쳐서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게 하고 자기 마음의 불성을 보게 하리니 부처님을 보고자 하면 다만 중생임을 알아라.
중생이 부처를 미혹하게 한 것이지 부처가 중생을 미혹하게 한 것이 아니니, 자성을 만일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요. 자성이 만일 어리석으면 부처가 바로 중생이니라.
자성이 평등하면 중생이 바로 부처고 자성이 삿되고 험하면 부처가 바로 중생이니라.
너희들의 마음이 만일 험하고 굽으면 곧 부처가 중생 가운데 있고 한 생각 평등하고 곧으면 곧 중생이 성불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으며 자기의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일 불심이 없으면 어느 곳에서 참 부처를 구하리오.
너희들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아라.
밖으로는 한 물건도 세울 것이 없다.
모두 이 본심이 만 가지 법을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마음이 생기면 온갖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온갖 법이 없어진다.」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한 게송을 남기고 너희들과 이별하리니 이름이 <자성진불게>이니라.
후대 사람이 이 게의 뜻을 알면 스스로 본심을 보아서 스스로 불도를 이루리라.”
진여자성이 참 부처요,
사견과 삼독이 마왕이다.
삿되고 어리석을 때 악마가 집에 있고
견해가 올바를 때 부처가 방에 있네.
성품 가운데 사견으로 삼독이 생겨나면
곧 마왕이 집에 와서 살고
정견으로 스스로 삼독의 마음을 없애면
마(魔)가 변하여 부처가 되며 참일 뿐 거짓은 없네.
법신과 보신과 화신이여!
삼신이 본래 한 몸이니
만일 성품 가운데를 향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부처를 이루는 보리의 원인이니라.
본래부터 화신은 깨끗한 성품에서 나는지라.
깨끗한 성품이 항상 화신 가운데 있네.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정도를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이 없으리라.
음란한 성품이 본래 깨끗한 성품의 씨앗이요,
음란함을 없애면 곧 깨끗한 성품의 몸이니
성품 가운데에 각각 오욕을 떠나면
견성이 찰나이고 곧 참이니라.
금생에 만일 돈교의 문을 만나면
홀연히 자성을 깨달아 세존을 보지만
만일 수행하여 부처를 찾으려 하면
어느 곳에서 헤아려 참을 구할지 모르겠구나.
만일 마음 가운데에 스스로
참을 본다면 참이 곧 성불하는 원인이니라.
자성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마음을 일으킴이 다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돈교법문을 이제 남겨두니
세상 사람을 제도할 때 모름지기 스스로 닦게 하라.
장차 도 배우는 자에게 알렸으니
이런 소견을 짓지 아니하면 크게 유유하리라.
조사가 게송을 마치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잘 살아라. 내가 멸도한 후에 세속의 정으로 슬피 울지도 말고 사람의 조문도 받지 말고 상복도 입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고 또한 정법도 아니니라.
다만 자기의 본심을 알아서 자기의 본성을 보면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고 태어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릇됨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느니라.
너희들의 마음이 어리석어서 나의 뜻을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지금 다시 너희에게 당부하며 너희로 하여금 견성하게 하니 내가 멸도한 후에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는 날과 같을 것이고 만일 나의 가르침을 어기면 비록 내가 세상에 있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으리라.”
다시 게송을 읊으셨다.
올올히(모든 것을 초월하여 태연함) 선을 닦지 않고
등등히(자재 무애하며 당당함) 악도 짓지 않는지라.
적적하여 보고 듣는 것이 끊어지고
넓고 넓어 마음이 걸림이 없구나.
조사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단정히 앉아 계시다가 삼경이 되자 홀연히 문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간다.” 하시며 조용히 돌아가시니 그때에 이상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고 흰 무지개가 땅에 꽂혔으며 숲과 나무들이 하얗게 변하고 짐승들이 슬피 울었다.
11월에 광주, 소주, 신주 세 군(郡)의 관료와 문인과 승(僧)과 속(俗)이 서로 진신을 모셔가려고 다투느라 갈 곳을 결정하지 못하였다.
이에 향을 사르고 빌기를 “향의 연기가 가리키는 곳이 조사께서 돌아가실 곳입니다.” 하니 그때 향의 연기가 바로 조계를 향하여 곧게 뻗치므로 11월 3일에 신감(시신을 모신 관)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의발을 옮겨 돌아왔다.
다음 해 7월 25일에 신감을 꺼내어서 제자 방변이 향을 그 위에 바르고 문인들이 머리를 취하리라는 예언을 생각하여 먼저 철판과 옻칠을 한 천으로 조사의 목을 단단히 보호하여 탑에 모셨더니 홀연히 탑 안에서 흰 빛이 나와 하늘로 뻗어 올랐는데 3일 만에 비로소 흩어지므로 소주자사가 조정에 아뢰었고 칙명을 받들어 비를 세워서 조사의 도행(道行)을 기록하였다.
조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스물넷에 의발을 전해 받으시고 서른아홉에 스님이 되어 설법을 하시며 중생을 이롭게 하신 것이 삼십칠 년이었다.
종지를 얻어 법을 이은 자가 마흔 세 명이고 도를 깨달아 범부를 넘어선 사람은 그 수를 알 수가 없었다.
달마가 전하신 믿음의 징표인 가사와 중종이 주신 마납가사와 보배발우와 방변이 새긴 조사의 진영과 그 밖의 도구들은 탑을 주관하는 시자가 맡아서 영원히 보림 도량에 두게 하고 단경을 유전하여서 종지를 나타내고 삼보를 일으켜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였다.
附錄
부록
조사께서 탑에 드신 후(722년) 개원 10월 임술 8월 3일 한 밤중이 되었을 때 갑자기 탑 속에서 쇠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소리가 나므로 스님들이 놀라서 나가보니 한 상주가 탑에서 달아나므로 자세히 살펴보니 조사의 목에 상처가 있었다.
도적이 든 사실을 고을에 자세히 알리니 현령인 양간과 자사인 유무첨이 통첩을 받고 사로잡으려고 애를 쓰더니 5일 만에 석각촌에서 도적을 잡았다.
소주로 보내 죄를 심문하니 성은 장이고 이름은 정만인데 여주의 양현 사람이라 하였다.
홍주의 개원사에서 신라 스님 김대비로부터 돈 2만 냥을 받았고 김대비는 육조대사의 머리를 가지고 해동으로 돌아가서 공양하려 했다 하므로 유수가 이 사실을 듣고 형의 집행을 보류하고 몸소 조계에 가서 조사의 제자 가운데 제일 뛰어난 사람인 영도에게 어떻게 처단해야 할지를 물으니 영도가 말하길, “만약 국법으로 논한다면 모조리 죽여야 마땅하겠지만 불교는 자비로워 원수나 친한 이나 모두가 평등한데 하물며 그 사람이 공양을 하고 싶어서 한 짓이니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므로, 유수가 감탄하며 “비로소 불문이 넓고 큰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며 풀어주었다.
상원 원년(760년 - 멸도한지 47년째)에 숙종이 사신을 보내어 조사의 의발을 대궐 안으로 가져와 공양하였는데 영태 원년 5월 5일 대종의 꿈에 육조대사가 나타나 의발을 청하므로 7일에 자사인 양함에게 분부하여 이르시길, “짐의 꿈에 혜능선사가 나타나서「법을 전하는 가사를 조계로 되돌려 주라.」하시므로 진국대장군인 류숭경으로 하여금 받들어 보낸다. 짐이 국보로 생각하니 경이 직접 본사에 가서 법대로 잘 모시고 스님 가운데 종지를 친히 이은 자로 하여금 더욱 엄중하게 수호하게 하여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셨다.
그 뒤에 가끔 사람들이 몰래 훔쳐 갔으나 모두 오래지 않아 찾아왔는데 이와 같은 일이 네 번이나 있었다.
헌종(806년)이 대감선사라 시호하시고 탑을 원화영조라 이름 하였다.
그 나머지 사적은 당나라의 상서인 왕유와 자사인 유종원과 자사인 류우석 등이 비문에 실었다.
탑을 지키는 사문 영도가 기록하노라.
-육조단경 한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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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六祖壇經: 돈황본)
1. 序言 - 머리말
혜능(慧能)대사가 대범사(大梵寺) 강당의 높은 법좌(法座)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
고 무상계(無相戒)를 주시니, 그 때 법좌 아래에는 스님·비구니·도교인(道敎人)·속인 등,
일 만여 명이 있었다.
소주(韶州) 자사 위거와 여러 관료 삼십여 명과 유가(儒家)의 선비 몇몇 사람들이 대사(大
師)에게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주기를 함께 청하였고, 자사는 이윽고 문인 법해(法海)로
하여금 설법 내용을 모아 기록하게 하였으며, 후대에 널리 행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
께 이 종지(宗旨)를 이어받아서 서로서로 전수케 한지라, 의지하여 믿는 바가 있어서 이에
받들어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이 <단경(壇經)>을 설하였다.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혜능대사는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대사께서는 말씀하시지 않고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 묵묵하신 다음 이윽고 말
씀하셨다.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范陽)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
(嶺南新州) 백성으로 옮겨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늙은 어머니와 외
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와서 가난에 시달리며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았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을 데리고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러 손님은 나무를
가져갔고, 혜능은 값을 받고서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한 손님이 <금강경> 읽는 것을 보
았다. 혜능은 한 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黃梅縣) 동빙무산에서 오조(五祖) 홍인(弘忍)화상을 예배하였는데, 지금
그 곳에는 문인(門人)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다만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自性)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다.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하였다.
오조대사께서는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하셨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얼굴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
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하였다.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시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
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 때 혜능
은 한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3. 命偈 -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
오조 홍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이 다 모이자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너
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
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상좌는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
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그 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삼칸의 복도에 <능가변상>과 오조대사가 가사
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공양해서,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자 벽을 살펴본 뒤 다음날
착수하려고 하였다.
4. 神秀 - 신수스님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게송(心偈)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
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
겠는가. 내가 마음의 게송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지만, 조사(祖師)
의 지위를 넘보는 것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凡心)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마침내 법(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 참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우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밤이 삼
경(三更)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
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해야겠다. 만약 오조스님께서 게송을 보시고 이 게송이 당치 않다고
나를 찾으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꺼워서 합당이 법을 얻지 못함이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쉬리라."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지어 써 놓았으나 사람들
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은 이르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莫使有塵埃)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다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오조스님께서 아침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 하시다가, 문득
이 게송을 보셨다. 다 읽고 나서 공봉에게 말씀하셨다.
"홍인이 공봉에게 돈 삼만 냥을 주어 멀리서 온 것을 깊이 위로하니, 변상을 그리지 않으리
라.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법을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을 앞에 향을 사루게 하시니, 사람들
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오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라. 외는 자는 바야흐로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
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인들이 다들 외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오조스님이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으시되,
"내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하셨다.
신수상좌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습니까?"
하였다.
오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
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
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안으로 들어와야
만 자기의 본성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
서 나에게 와 보여라. 만약 문안에 들어와서 자성(自性)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
에게 부촉하리라"하셨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났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5. 呈偈 - 게송을 바침
한 동자가 방앗간 평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
성(見性)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인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 지어 와서 보이라 하시고, 큰 뜻을 깨쳤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
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 놓았더니, 오조스님께서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다 외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
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질 못하였으니, 바
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주게. 또한 바라건
대 이 게송을 외어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
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이었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
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明鏡亦無臺)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佛性常淸淨)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요.(何處有塵埃)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心是菩提樹)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身爲明鏡臺)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明鏡本淸淨)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何處染塵埃)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
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 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
까 두려워하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도 또한 아니로다!" 하셨느니라.
6. 受法 - 법을 받음
오조스님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시었다. 혜능이
한 번 듣고 말끝에 문득 깨쳐서(言下便悟)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를 전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
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혜능아, 옛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 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혜능이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께서 몸소 구강역까지 혜능을 전송해
주시며, 떠날 때 문득 오조께서 처분을 내리시되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하셨다.
이에 혜능은 오조스님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두 달 가량 되어서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쫓아와서 혜능
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반쯤 와서 다들 돌아간 것을 몰랐었다. 오직 한 스
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
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덮치려 하였다.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
사는 필요치 않습니다"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이었
으므로,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
7. 定慧 - 정과 혜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도교인·속인들과 더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요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
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淨心)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서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랄지니라."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보리반야(菩提般若)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
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루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定)과 혜(慧)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
는 곧 정의 씀이니(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
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定惠等).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
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法)에 두 모양(相)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
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
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입으로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한 사
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이 생겨 네 모양(四相)을 버리
지 못함이니라.
일행삼매(一行三昧)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行住坐臥) 항상 곧은 마음
(直心)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淨名經)-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直心
是道場 直心是淨土)"라고 하였느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
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가가 아니니라. 오직 곧은 마음으
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
(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坐不動)이 곧은 마
음이라고 하며, 망심(妄心)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無情)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道)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하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된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유마힐이 숲 속에 편안히 앉아 있는 사리불을
꾸짖었던 것은 합당하지 않으니라.
선지식들아, 또한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앉거나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 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
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體)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用)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8. 無念 - 생각이 없음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에 깨침(頓)과 점차로 깨침(漸)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
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
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
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
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금의 생각(今念)과 다
음의 생각(後念)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
(法身)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
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
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모양(相)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
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無念)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
계(境界)를 떠나고 법(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되느니
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
시 다른 사람에게 귄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르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無念爲宗).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
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 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 함은 두 모양(二相)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眞如)의 본성을 생각하
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體)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用)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
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自
在)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第一義)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느니라."
9. 坐禪 - 좌선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의 좌선(坐禪)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
하지 않느니라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眞如)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깨끗하느니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
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이 생기느니
라.
망상은 처소가 없다(忘無處所).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라. 깨
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
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느니라.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
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나니, 도(道)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니라.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
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坐禪)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禪定)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
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定)이니라.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
은 것이 곧 정(定)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禪定)이라고 이름하느
니라.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自性)이 깨끗하다"고 하였느니라.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지음(自修自作)
이 자기 성품인 법신(法身)이며, 스스로 행함(自行)이 부처님의 행위(佛行)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니라(自作自成佛道)."
10. 三身 - 세 몸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三身佛)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自色身)의 청정 법신불(法身佛)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 화신불(化身
佛)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 보신불(報身佛)에 귀의합니다"하라.(이상을 세 번
한다)
색신(色身)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
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어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
성(法性)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法身)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
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
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
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한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 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밝아 사무쳐 자
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
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自歸依)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돌
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천백억 화신불(化身佛)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空寂)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
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 세계
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랫 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自性)의 화신(化身)이라 하니
라.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報身佛)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라
고 하느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느
니라.
11. 四願 - 네 가지 원
"이제 이미 스스로 삼신불(三身佛)에 귀의하여 마쳤으니, 선지식들과 더불어 네 가지 넓고
큰 원을 발하리라(發四弘大願).
선지식들아, 다 함께 혜능을 따라 말하라.
무량한 중생 다 제도하기를 서원합니다(衆生無邊誓願度).
무량한 번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煩惱無邊誓願斷).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法門無邊誓願學).
위없는 불도 모두 이루기를 서원합니다(無上佛道誓願成).
선지식들아,
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 함은 혜능이 선지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의 중생을 각기 자기의 몸에 있는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기 육신 속의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과 미망에 본래의 깨달음의 성품을 스스로 가
지고 있으므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이미 바른 생각인 반야의 지혜(般若智)를 깨쳐서 어리석음과 미망을 없애 버리면 중생들 저
마다 스스로 제도한 것이니라. 삿됨(邪)이 오면 바름(正)으로 제도하고 미혹함(迷)이 오면
깨침(悟)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愚)이 오면 지혜(智)로 제도하고 악함(惡)이 오면 착함(善)
으로 제도하며 번뇌(煩惱)가 오면 보리(菩提)로 제도하나니, 이렇게 제도함을 진실한 제도
(眞度)라고 하느니라.
무량한 번뇌를 맹세코 다 끊는다 함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허망(虛妄)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량한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운다 함은 위없는 바른 법(無上正法)을 배우는 것이다.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는 행동(下心行)으로 일체를 공경하며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곧 스스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誓願力)을 행하는 것이니라."
12. 懺悔 - 참회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에게 "무상참회(無相懺悔)"를 주어서 삼세
(三世)의 죄장(罪障)을 없애게 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영원히 끊어서 자기의 성품에서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懺悔)니라.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영원히 끊음을 이름하여 자성의 참회
(自性懺)라고 한다. 과거의 생각,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
아서 지난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도록 하라. 자기의 성품에서 만약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이니라."
"선지식들아, 무엇을 이름하여 참회(懺悔)라고 하는가?
참(懺)이라고 하는 것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요, 회(悔)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나쁜 죄업을 항상 마음에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하여도 이익이 없느니라. 나의 이 법문 가운데는 영원히 끊어서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참
회라 하느니라."
13. 三歸 - 세 가지 귀의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를 주리
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覺兩足尊)께 귀의하오며, 바름의 이욕존(正離欲尊)께 귀의하
오며, 깨끗함의 중중존(淨衆中尊)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사오
니, 바라건대 자성(自性)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써 증명하소서"하라.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 삼보에게 귀의하게 하나니, 부처란 깨달음
(覺)이요 법이란 바름(正)이며 승이란 깨끗함(淨)이니라.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
아(小欲知足) 재물(財)을 떠나고 색(色)을 떠나는 것을 양족존(兩足尊)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착이 없나니, 애착이 없는 것을 이
욕존(離欲尊)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
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衆中尊)이라고 하느니라. 범부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삼귀의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말한다
면 부처가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곧 귀의할 바가 없느니라. 이미 귀
의할 바가 없으면 그 말이란 도리어 허망될 뿐이니라.
선지식들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스
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只卽言自歸依佛:화엄경 정행품)"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14. 性空 - 성품이 빔
"지금 이미 삼보에게 스스로 귀의하여 모두들 지극한 마음들일 것이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리라.
선지식들아, 비록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은 하나 알지 못하므로 혜능이 설명하여 주리니,
각각 잘 들어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 나라의 범어이다. 당나라 말로는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大
智惠彼岸到)"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는 데 있지 않다. 입
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
처와 같으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摩訶)란 큰 것이다. 마음의 한량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
라.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느니라.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一月星辰)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
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자성이 만법(萬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모든 사람
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 이것이 곧 큰 실행(摩訶行)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크다고 하나, 이도 또한 옳지 않으니라.
마음의 한량이 넓고 크다고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공연히 말하면
서 이 행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15. 般若 - 반야
"어떤 것을 반야(般若)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 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般若行)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나니,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波羅密)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 "저 언덕에 이른다(彼岸到)"는 뜻이니라.
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
는 곧 이 언덕(此岸)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
니, 곧 저 억덕(彼岸)에 이른다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으로 행한다. 생각할 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 생각마다 행한다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반야의 법을 깨친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
부요 한 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아, 번뇌가 곧 보리니(卽煩惱是菩提),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
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니라.
선지식들아,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오음(五
陰)의 번뇌와 진로(塵勞)를 쳐부수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탄하여 최상승 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
며 내왕 또한 없나니, 이는 정(定)과 혜(慧)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않음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戒定惠)로 삼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팔만 사천의 지혜를 좇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세상에 팔만 사천의 진로(塵勞)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無念)이니라.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
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16. 根機 - 근기
"선지식들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法界)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般若三昧)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 권말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서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이 나지 않나니,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閻浮提)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
다니듯 하고, 만약 큰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사람은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래 성
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서 문자를 빌
리지 않음을 알라.
비유컨대, 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
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과 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頓敎)을 들으면 마치 근성이 작은 대지의 초
목이 큰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또한 차별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곧 깨치지 못하는가?
삿된 소견(邪見)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
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닦아 부처를 찾으므로 자기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頓敎)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正見)를
일으키면 번뇌, 진로(塵勞)의 중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치느니라.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자성을 보면 안팎에 머물지 아니하며 오고감에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본래 차별
이 없느니라."
17. 見性 - 견성
"모든 경서(經書) 및 문자와 소승(小乘)과 대승(大乘)과 십이부(十二部)의 경전이 다 사람으
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나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세운 것이니라. 만약 내가
없다면 지혜 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
느니라.
사람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
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
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
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모
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
여(眞如)의 본성(本性)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 자
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
라."
18. 頓悟 - 단박에 깨침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弘忍)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말끝(言下)에 크게 깨쳐 진
여(眞如)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頓見眞如本性). 이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
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菩提)를 단박에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치게(頓悟) 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
(因緣)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본래부터 스스로 갖
추어져 있다고 말할지라도, 능히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만약 스스로 깨친 이라면 밖으로 선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밖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
얻기를 바란다면 옳지 않다.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알면 곧 해탈을 얻느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이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觀照)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다.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般若三昧)
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無念)이니라.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 하되 그 모든 곳
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六賊)로 하여금 여섯 문으로
달려나가게 하나 육진(六塵) 속을 떠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
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自在解脫)인 무념행(無念行)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
니 곧 변견(邊見)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
념의 돈법(頓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19. 滅罪 - 죄를 없앰
"선지식들아, 뒷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나의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
을 보리라.
선지식들아, 이 돈교(頓敎)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同見同行) 소원을 세워
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예로부터 말없이 법을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
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分付)한 것이니라.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
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 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을 들어라. 너희 미혹한 사람들의 죄를 없앨 것
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滅罪頌)"이라고 하느니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三業)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요.
만약 마음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懺悔)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韋使君)과 관료와 스님들도 도교인과 속인들의 찬탄
하는 말이 끊기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0. 功德 - 공덕
위사군이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법을 설하심은 실로 부사의 합니다. 제자가 일찍이 조금한 의심이 있어서 큰스
님께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큰스님께서는 대자대비로 제자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의심이 있거든 물으라. 어찌 두 번 세 번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宗旨)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들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功德)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대사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고 복밭(福田)에 있지 않으니라.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見性)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
(德)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內見佛性 外行恭敬). 만약 모든 사람을 경
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功)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德)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
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21. 西方 - 서방극락
위사군이 예배하고 또 물었다.
"제자가 보오니 스님과 도교인과 속인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서쪽 나라(西方)에
가서 나기를 바랍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저기에 날 수가 있습니까? 바
라건대 의심을 풀어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군은 들어라. 혜능이 말하여 주리라. 세존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서방정토에로 인도하여
교화해 말씀하셨느니라. 경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여기서 멀지 않다(去此不遠)"고 하였다.
다만 낮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멀다 하고,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지혜가 높은 사람
때문이니라.
사람에는 자연히 두 가지가 있으나, 법은 그렇지 않다. 미혹함과 깨달음이 달라서 견해에 더
디고 바름이 있을 뿐이다.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속에 나려고 하지만 깨친 사람은 스스
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부처의 땅도
깨끗하다(隨其心淨 則佛淨土)"고 말씀하셨느니라.
사군아, 동쪽 사람일지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쪽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깨
끗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가서 나기를 원하나(願生) 동방과 서방은 사
람이 있는 곳으로는 다 한가지니라.
다만 마음에 깨끗치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아니한 생
각이 일어나면 염불하여 왕생하고자 하여도 이르기 어렵느니라. 십악(十惡)을 제거하면 곧
십만 리를 가고, 팔사(八邪)가 없으면 곧 팔천 리를 지난 것이다. 다만 곧은 마음을 행하면
도달하는 것은 손가락 퉁기는 것과 같으니라.
사군아, 다만 십선(十善)을 행하라. 어찌 새삼스럽게 왕생하기를 바랄 것인가. 십악(十惡)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어느 부처가 와서 맞이하겠는가.
만약 남이 없는 돈법(無生頓法)을 깨치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만약 돈교의 큰 가
르침을 깨치지 못하면 염불을 하여도 왕생할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혜능이 사군을 위하여 서쪽 나라를 찰나 사이에 옮겨 눈앞에 바로 보게 하리니 사군은 보
기를 바라는가?"
위사군이 예배하며 말하였다.
"만약 여기서 볼 수 있다면 하필 가서 나겠습니까. 원컨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서쪽 나라를
보여 주시면 매우 좋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문득 서쪽 나라를 보아 의심이 없을 터이니 당장 흩어져라."
대중들이 놀라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은 정신 차리고 들어라. 세상 사람의 자기 색신(色身)은 성(城)이요 눈·귀·코·혀·
몸(眼耳鼻舌身)은 곧 성의 문(門)이니 밖으로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 뜻(意)의 문이 있다.
마음은 곧 땅이요 성품은 곧 왕이니 성품이 있으면 왕이 있고 성품이 가매 왕은 없느니라.
성품이 있으매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느니라.
부처는 자기의 성품이 지은 것이니(佛是自性作),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 자기의 성품이 미
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이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이니라.
자비(慈悲)는 곧 관음(觀音)이요 희사(喜捨)는 세지(勢至)라고 부르며, 능히 깨끗함은 석가요
평등하고 곧음은 미륵이니라. 인아상(人我相)은 수미요 삿된 마음은 큰 바다이며 번뇌는 파
랑이요 독한 마음은 악한용이며 진로(塵勞)는 고기와 자라요 허망함은 곧 귀신이며 삼독(三
毒)은 곧 지옥이요 어리석음은 곧 짐승이며 십선(十善)은 천당이니라.
인아상이 없으면 수미산이 저절로 거꾸러지고 삿된 마음을 없애면 바닷물이 마르며, 번뇌가
없으면 파랑이 없어지고 독해를 제거하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느니라.
자기 마음의 땅 위에 깨달은 성품의 부처가 큰 지혜를 놓아서 그 광명이 비추어 여섯 문(眼
耳鼻舌身意)이 청정하게 되고 욕계(欲界)의 모든 여섯 하늘들을 비추어 부수고, 아래로 비추
어 삼독을 제거하면 지옥이 일시에 사라지라고 안팎으로 사무쳐 밝으면 서쪽 나라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 수행을 닦지 아니하고 어찌 피안에 이르겠는가."
법문을 들은 법좌 아래서는 찬탄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으니, 응당 미혹한 사람도 문득
밝게 볼 수 있었다.
위사군이 예배하며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널리 원하옵나니, 법계의 중생으로 이 법을 듣는 이는 모두
일시에 깨쳐지이다!"
22. 修行 - 수행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
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쪽 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
면서 수행하면 동쪽 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
함을 닦으라. 그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세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닦습니까? 원하오니 가르쳐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혜능이 도속(道俗)을 위하여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을 지어 주리니 다들 외
어 가지라.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항상 혜능과 더불어 한 곳에 있음과 다름이 없느니
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법도 통달하고 마음도 통달함이여!
해가 허공에 떠오름과 같나니
오직 돈교(頓敎)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수는구나.
가르침에는 돈과 점이 없으나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느니라.
설명하자면 비록 일만 가지이나
그 낱낱을 합하면 다시 하나로 돌아오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 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음 없음(無餘)에 이르는 도다.
보리(菩提)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 도다.
만약 세간에서 도를 닦더라도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항상 허물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는 도다.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 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正行)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 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邪見)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正見)는 세간을 벗어남(出世間)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치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大乘)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23. 行化 - 교화를 행하심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너희들은 다들 이 게송을 외어 가지라. 이 게송을 의지
하여 수행을 하면 천리를 혜능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혜능의 곁에 있는 것이요, 이를 수
행하지 않으면 얼굴을 마주하여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각각 스스로 수행하면 법을
서로 지님이 아니겠느냐.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지거라. 혜능은 조계산(曹溪山)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부처의 성품을 보
게 하리라(同見佛性)."
함께 앉아 있던 관료·스님·속인들이 육조대사께 예배하며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들은 "훌륭하십니다. 크게 깨치심이여! 옛적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입니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한 다음 한꺼번에 다 흩어졌다.
대사께서 조계산으로 가시어 소주(韶州)·광주(廣州) 두 고을에서 교화하기를 사십여 년이
었다.
만약 문인을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이 삼오천 명이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宗
旨)를 말한다면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하였다. 만약 <단경>을
얻지 못하면 곧 법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간 곳과 년 월 일과 성명을 알아서
서로 서로 부촉하되 <단경>을 이어받지 못하였으면 남종(南宗)의 제자가 아니다. <단경>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법(頓敎法)을 말하나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함이라, 마침내 다
툼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돈교법의) 수행함을 권하
라. 다툼은 이기고 지는 마음이니 도(道)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24. 頓修 - 단박에 닦음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南能北秀)"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
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神秀)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玉泉寺)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
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漸)"과 "돈(頓)"이라고 하는가?
법은 한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딘즉 "점(漸)"이요, 견해가
빠른즉 "돈(頓)"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
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疾直指路)고 말하
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志誠)스님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서 혜능스님의 처소에 이르
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왔다 하지 말라. 들은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혜능스님과 나의 견해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다. 그는 혜능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다(卽契本心). 그는
일어서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
의 법문을 듣고 문득 본래의 마음에 결합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렷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람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戒定惠)를 전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
라."
지성이 말하였다.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惡)을 짓지 않는 것을 계(戒)라고 하고, 모든
선(善)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惠)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定)이
라고 한다. 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心地)에 그릇됨이 없는 것(無非)이 자
성의 계(戒)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無亂)이 자성의 정(定)이요, 마음의 땅에 어
리석음이 없는 것(無癡)이 자성의 혜(惠)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성품은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다. 생각 생각마다 지혜로
관조(觀照)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기의 성품을 단박 닦으라
(自性頓修).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25. 佛行 - 부처님의 행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法達)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어 칠년이 되었으나 마
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正法之處)를 알지 못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
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는 의심이 없거
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正定)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
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
니라."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었다.
육조스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명하시었
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
리 삼승(三乘)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서 분명히
"다른 승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 불승(佛乘)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너는 일불승(一佛乘)을 듣고서 이불승(二佛乘)을 구하여 너의 자성을 미혹하게 하
지 말라. 경 가운데서 어느 곳이 일불승인지를 너에게 말하리라.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나
타나셨다"고 하셨다. 이 법을 어떻게 알며 이 법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너는 나의 말을 들
어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空寂)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이것이 곧 일대사인연이리라. 안팎이 미혹하지 않으면 곧 양변(兩邊)을 떠난다. 밖으로 미혹
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
을 떠난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 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
을 여는 것(開)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示)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悟)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入)이니라.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어감(開示悟入)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
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
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언제나 마음 자리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항상 바라노라. 세상 사람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열고, 세상 사람의 마음이 발라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면
스스로 부처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고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一乘)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삼승(三乘)을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까닭이니, 너는 오직 일불승만을 의지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心行) <법화경>을 굴리고(轉法華),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
화경>에 굴리게 되나니,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구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
리게 되느니라.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힘써 법대로 수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轉經)이니라."
법달은 한 번 듣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실로 지금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습니다.
칠년을 <법화경>에 굴리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법화경>을 굴려서 생각 생각마다 부처
님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卽佛行是佛)."
그 때 듣는 사람으로서 깨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26. 參請 - 예배하고 법을 물음
그 무렵 지상(智常)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
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三乘)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
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四乘)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
은 소승(小乘)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中乘)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大
乘)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
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은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最上乘)이니라. 승(乘)은 행한다는 뜻
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神會)라고 하였으며 남양 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
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
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했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無情)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
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앉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
음은 생멸(生滅)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依法修行).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
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로 문인이 되어 조계 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 머물렀다.
27. 對法 - 상대되는 법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法海), 지성(志誠), 법달(法達), 지상(智常), 지통(志通), 지철(志
徹), 지도(志道), 법진(法珍), 법여(法如), 신회(神會)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
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 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三科)의 법문을 들고, 동용삼십육대(動用三十六對)를 들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
을 여의도록 하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性相)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
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여라.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
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 마저 없게 하라.
삼과법문(三科法門)이란 음(蔭). 계(界). 입(入)이다. 음(蔭)은 오음(五陰)이요, 계(界)는 십팔
계(十八界)요, 입(入)은 십이입(十二入)이니라.
어떤 것을 오음(五陰)이라고 하는가?
색음(色陰)·수음(受蔭)·상음(相蔭)·행음(行蔭)·식음(識蔭)이니라.
어떤 것을 십팔계(十八界)라고 하는가?
육진(六塵)·육문(六門)·육식(六識)이니라.
어떤 것을 십이입(十二入)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六塵)과 안의 육문(六門)이니라.
어떤 것을 육진(六塵)이라고 하는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이니라.
어떤 것을 육문(六門)이라고 하는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이니라.
법의 성품(法性)이 육식인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
식(意識)의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
고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육은 십
팔이니라(3*6=18).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 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正)을 포함하면 열 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작용은 무엇들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對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相對)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과 직언 하는 말의 대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 두 가지가 있다. 유위(有爲)와 무위
(無爲), 유색(有色)과 무색(無色)이 상대이며, 유상(有相)과 무상(無相)이 상대이며, 유루(有
漏)와 무루(無漏)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空)이 상대이며,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상
대이며, 맑음(淸)과 흐림(濁)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
대이며, 늙음(老)과 젊음(少)이 상대이며, 큼(大)과 작음(少)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高)과 낮음(下)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 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邪) 바름(正)이 상대요, 어리
석음(癡)과 지혜(惠)가 상대이며, 미련함(愚)과 슬기로움(智)이 상대요, 어지러움(亂)과 선정
(定)이 상대이며, 계(戒)와 잘못됨(非)이 상대이며, 곧음(直)과 굽음(曲)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險)과 평탄함(平)이 상대이며, 번뇌(煩惱)와 보리(菩提)가 상대이며,
사랑(慈)과 해침(害)이 상대이며, 기쁨(喜)과 성냄(嗔)이 상대이며, 버림(捨)과 아낌( )이 상
대이며, 나아감(進)과 물러남(退)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함(常)과
덧없음(無常)이 상대이며,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이 상대이며, 화신(化身)과 보신(報身)이
상대이며, 본체(體)와 작용(用)이 상대이며, 성품(性)과 모양(相)이 상대이니라.
유정·무정의 대법인 어(語)·언(言)과 법(法)·상(相)에 열 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계
인 무정(無情)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데 열 아홉 가지의 대법
이 있어서 모두 서른 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
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이 기용하는가?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相離相),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에서 공을 떠나나니(空離空) 공(空)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相)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르느니라.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
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은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
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
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 감이 서로 인연한 것
이다.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대사께서 열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라."
열 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
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28. 眞假 - 참됨과 거짓
대사께서는 선천(先天) 이년 팔월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 일에 문인들을 불러 고별하시
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國恩寺)에 탑을 만들고 선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
셨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의심을
부수어 마땅히 미혹을 다 없애어 너희들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
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리라."
법해(法海)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
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
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다면 여러 해 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
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내가 모른다고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
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너희들은 다 앉거라. 내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노니,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이다. 너희들이 다 외어 이 게송의 뜻을 알면 너희는 나와 더불어
같을 것이다.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종지를 잃지 말라."
스님들이 예배하고 대사께 게송 남기시기를 청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가졌다.
게송에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假)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假)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유정(有情)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無情)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는 행(不動行)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능히 모양(相)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씀(用)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는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用意)
대승(大乘)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존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道)의 뜻을 잃으리오.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29. 傳偈 - 게송을 전함
대중스님들은 다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았으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아니하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임을 알았
다.
상좌인 법해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뒤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게 부촉하시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전하여 마쳤으니 너희는 모름지기 묻지 말라. 내가 떠난 뒤 이십여 년에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宗旨)를 혼란케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몸과 목숨을 아
끼지 않고 불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다.
그러므로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
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들을 외어 주리라.
만약 제일조 달마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리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제일조 달마화상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제이조 혜가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제삼조 승찬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제사조 도신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에 나는 성품 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나지 않는도다.
제오조 홍인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유정(有情)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無情)이 꽃을 피우고
정도 없고(無情) 씨앗도 없나니(無種)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제육조 혜능의 게송에 말한다.
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지은 두 게송을 들어라. 달마스님의 게송의 뜻을 취하였으니 너희 미혹한
사람들은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자성을 보리라."
첫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心地)에 삿된 꽃이 피니
다섯 잎(五葉)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무명의 업을 지어
업의 바람에 나부낌을 보는도다.
둘재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바른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반야의 지혜를 닦으니
장차 오실 부처님의 깨달음이로다.
육조스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시고 대중을 해산시켰다. 밖으로 나온 문인들은 생각하
였으니,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다.
30. 傳統 - 법을 전한 계통
그 뒤, 육조스님께서는 팔월 초삼일에 이르러 공양 끝에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차례를 따라 앉아라. 내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법해가 여쭈었다.
"이 돈교법(頓敎法)의 전수는 옛부터 지금까지 몇 대입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은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되었으니, 석가모니불은 그 일곱째이시다.
대가섭은 제팔, 아난은 제구,
말전지는 제십, 상나화수는 제십일
우바국다는 제십이, 제다가는 제십삼,
불타난제는 제십사, 불타밀다는 제십오,
협비구는 제십육, 부나사는 제십칠,
마명은 제십팔, 비라장자는 제십구,
용수는 제이십, 가나제바는 제이십일,
라후라는 제이십이, 승가나제는 제이십삼,
승가야사는 제이십사, 구마라타는 제이십오,
사야타는 제이십육, 바수반다는 제이십칠,
마나라는 제이십팔, 학륵나는 제이십구,
사자비구는 제삼십, 사나바사는 제삼십일,
우바굴은 제삼십이, 승가라는 제삼십삼,
수바밀다는 제삼십사,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는 제삼십오,
당나라 스님 혜가는 제삼십육, 승찬은 제삼십칠,
도신은 제삼십팔, 홍인은 제삼십구,
나 혜능이 지금 법을 받은 것은 제 사십대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서로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믿어서 종지를 잃지 말라."
31. 眞佛 - 참 부처님
법해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이제 가시면 무슨 법을 부촉하여 남기시어, 뒷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부
처님을 보게 하시렵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들어라. 뒷세상의 미혹한 사람이 중생을 알면 곧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 만약 중
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처를 찾아도 보지 못하리라. 내가 지금 너희로 하여금 중생을
알아 부처를 보게 하려고 다시 "참 부처를 보는 해탈의 노래"를 남기리니, 미혹하면 부처를
보지 못하고 깨친 이는 곧 보느니라."
"법해는 듣기를 바라오며 대대로 유전하여 세세생생에 끊어지지 않게 하리이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들어라. 내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리라.
만약 뒷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
의 마음이 없느니라(離衆生無佛心).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 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문인들은 잘 있거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기리니 "자성진불해탈송(自性眞佛解脫頌)"이
라고 이름하느니라. 뒷세상에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으면 곧 자기의 마음, 자기
성품의 참 부처를 보리라. 너희에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 너희와 작별하리라."
게송을 말씀하셨다.
진여(眞如)의 깨끗한 성품(淨性)이 참 부처(眞佛)요
삿된 견해의 삼독(三毒)이 곧 참 마군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가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化身)과 보신(報身)과 정신(淨身)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찿는다면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성취한 씨앗이니라.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성품 나는지라.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의 성품은 본래 몸의 깨끗한 씨앗이니,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이로다.
만약 금생에 돈교(頓敎)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도다.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32. 滅道 - 멸도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
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33. 後記 - 후기
이 <단경>은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이다. 법해스님이 돌아가니 같이 배운 도제(道 )스
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니 문인 오진(悟眞) 스님에게 부촉하였는데, 오진스님
은 영남 조계산 법흥사에서 지금 이 법을 전수하니라.
만약 이 법을 부촉할진대는 모름지기 상근기의 지혜라야 하며,
마음으로 불법을 믿어 큰 자비를 세우고 이 경을 지니고 읽어 의지를 삼아 이어받아서 지금
까지 끊이지 않는다.
법해스님은 본래 소주 곡강현 사람이다.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법의 가르침이 동쪽 땅으로
흘러서 머무름이 없음을 함께 전하니, 곧 나의 마음이 머무름이 없음이로다.
이 진정한 보살이 참된 종취를 설하고 진실한 비유를 행하여 오직 큰 지혜의 사람만을 가르
치나니, 이것이 뜻의 의지하는 바이다.
무릇 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되, 어려움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서도 능히 참아 복과 덕이 깊고 두터워야만 바야흐로 이 법을 전할 것이다. 만약 근성
이 감내하지 못하고 재량이 좋지 못하면 모름지기 이 법을 구하더라도 법을 어긴 덕 없는
이에게는 망령되이 <단경>을 부촉하지 말 것이니, 도를 같이 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 비밀
한 뜻을 알게 하노라.
※ 출처 : 佛紀 2545. 9.28.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자료실
[출처] 육조단경(六祖壇經) |작성자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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