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6. 마침내 출가하는 태자

수선님 2022. 7. 17. 12:03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6. 마침내 출가하는 태자
“중생구제 위해 왕궁 떠난다”


 

生死의 수레 타는 것
이제는 끊으련다.
칸타카야 나를 보내주라,
道 얻으면 잊지 않으리.
 <수행본기경>


깊고 미묘한 法 듣자
그는 이내 집을 떠났네.
은혜·사랑의 감옥 벗어나
아무런 결박도 있을 수 없네.
 <장아함경>

 

<출가와 고행.>사진설명: 가운데 조각 중 왼쪽 아래는 말타고 출가하는 싯다르타, 바로 위는 삭발하는 싯다르타, 오른쪽 옆으로 옷을 받고 있는 찬다카가 보인다.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소장.

인도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 인도에서 맨 처음 만나는 것은 '가난'이다. 도시건 시골이건 특유의 '카레 냄새'와 함께 인도 전역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 바로 가난이다.

 


뭄바이 로나블라 보팔 나그푸르 아우랑가바드 럭나우 발람푸르 마투라 라즈기르 보드가야 쿠시나가라 델리 등 모든 곳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가난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보는 사람이 오히려 고개를 돌릴 정도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거리와 골목을 헤매는 사람들, 휴지와 먼지가 자욱한 골목, 매연으로 가득 찬 도심(都心)을 대하면 인도 전체가 마치 '살아있는 가난'처럼 느껴진다. 얻어먹을 곳이 있는 도시는 그래도 괜찮다. 시골의 사정은 도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맨발은 기본이고, 맨 흙바닥에 그대로 누워 자며, 지붕 없는 집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


2살만 되도 동냥하러 다니니, 학교 가는 것은 애초 생각도 못한다. 넓은 농토와 대지를 가진 인도가 왜 가난한 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인도의 가난은 뿌리깊다. 오늘날도 사정이 이러한데, 2500년 전 평민의 삶은 상상이상으로 가난에 찌들렸을 것이다.


'불안·권태'에 빠진 태자


그런데 싯다르타 태자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세 채의 별궁에 각각 파란 빨간 하얀 연꽃이 피어날 수 있는 연못 딸린 궁전에서 성장했다. 커서는 4만 명의 무희들의 시중을 받고, 남자는 하나도 없이, 계속 울려 퍼지는 음악을 즐기며 그렇게 살았다.


가난이 뭔지, 늙는다는 것이 뭔지, 병(病)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른 채 화려한 궁성 안에서 하루 하루를 보냈다. 부왕 슛도다나가 마련해준 '화려한 성채'(城砦)에 갇혀 '삶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성장했던 싯다르타 태자다. 그런 그가 카필라바스투성의 동·서·남문을 나가다 늙음·병듦·죽음을 만난 것이다. 당연히 거대한 충격이 다가왔다.


그리하여 "진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자신도 죽어야만 하고 또한 죽음을 초월할 수 없는데도,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매우 당황하고 놀라워하며 싫어한다. 그리고 나 또한 죽어야 하고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 죽어야 하고 죽음을 초월할 수 없는 내가 다른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놀라워하며 싫어한다면, 그것은 나답지 못하다"(<앙굿타라 니까야>)고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싯다르타 태자는 "삶에 대한 교만한 마음을 일순간 버린다." 동시에 쾌락적 삶도 사실은 허망한 것이자 무상(無常)한 것임을 직감하고, 권태와 불안에 잠긴다.


삶의 실상을 눈치 챈 태자가 불안에 떨었을, 네팔 측이 카필라바스투라고 주장하는 틸라우라코트에는 동문 서문 궁성유적지와 고요함만 있다. 때때로 푸닥거리며 날아가는 새, 떨어지는 나뭇잎이 소리, 바람소리만 이따금 적막을 깬다. 무수한 미희들에 둘러싸여 쾌락에 젖었을 싯다르타의 영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노인을 만났다는 동문, 죽음을 보았다는 서문이 있지만 감흥이 그리 다가 오지 않는다.


틸라우라코트 유적을 지키는 관리인이 다가와 이것저것 설명해도 싯다르타 태자의 '심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니다나 가타>와 <장아함경>의 관련 구절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그것뿐이었다. 2500년 전의 시간과 공간에 들어갈 수 없어 그런 것인지, 좀처럼 '사문유관'(四門遊觀)의 느낌이 생동감 있게 돋아나지 않았다.


아들 라훌라(장애) 출생

 

<출가전야.>사진설명: 출가하던 날 밤 태자는 야소다라의 방을 찾아 아들을 먼발치에서 본다. 싯다르타가 누워있는 야소다라 비를 등지고 앉아 고뇌하고 있다. 룸비티 출토, 룸비니박물관 소장.

어찌됐던, 권태와 불안은, 보는 각도에 따라 인간을 성장시키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 화(禍)를 복(福)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싯다르타는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카필라바스투성 북문에서 출가 사문의 위의(威儀)를 보고 희망을 발견, 성으로 돌아온 후부터 줄곧 '출가와 사문'을 생각했다.

 


"도를 생각하며 깨끗하려면 집에 있어서는 안되겠다. 언제나 산과 숲에 살면서 힘써 연구하며 선정을 행해야 한다"(<수업본기경> 출가품)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동·서·남·북 네 성문에서 '삶의 실상'을 보고 고민하던 싯다르타에게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태자의 이상한 동태를 파악한 슛도다나왕이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의 아들에게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라"고 명했다. 사자들은 즉각 소식을 싯다르타에게 전했다. 그러자 싯다르타는 "라훌라(장애)가 생겨났구나, 나를 속박할 이가 태어났다"(<니다나 가타>)고 외쳤다.


아들이 태어난 뒤에도 싯다르타 태자의 생활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화려함으로 가득 찬 자신의 궁성에서, 아름다운 침상에 누워 미희들의 시중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음속으로는 출가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불태우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가 침상에 눕자 "갖가지 장식으로 몸을 꾸미고 춤이며 노래에 아주 익숙한, 천녀와도 같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여러 가지 악기를 가지고 와서 태자를 즐겁게 하려고 춤과 노래와 연주를 시작했다."(니다나 가타). 그렇지만 태자는 이미 번뇌를 떠난 마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춤 따위에는 즐거워지지 않고 잠시 잠에 빠져들었다.


잠자는 美姬들의 추한 모습


그러자 여인들이 "우리는 저 분을 위해 춤과 노래를 시작했지만 저분은 잠이 들고 말았다. 우리가 누굴 위해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구나"하며 각자의 손에 지니고 있던 악기를 저만치 대충 던져놓고 잠들어 버렸다. 다만 향(香) 좋은 등잔만이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무희들이 잠들자 싯다르타 태자는 눈을 뜨고, 침상 위에 발을 포개고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조금 전의 여인들이 악기를 대충 내던지고 잠자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침을 흘려 온 몸을 적시고, 또 어떤 사람은 이를 갈며 자고 있었다. 또 다른 미희는 입을 벌리고 잠들었으며, 누구는 코를 골았고, 누구는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옷이 풀어 헤쳐져 메슥거릴 정도로 음부를 드러내놓고 자는 무희도 있었다. 어처구니없이 돌변한 여인들의 모습을 본 태자는 점점 더 욕망의 생활을 즐기지 않으려고 마음 잡았다.


화려하게 꾸민 제석천의 궁전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넓은 방이 태자에게는 마치 꼬챙이에 찔려 죽은 시체가 가득 찬 공동묘지 같아 보였다. 그리고 세계가 온통 타오르고 있는 집과도 같이 여겨졌다. 태자는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무의식중에 계속 읊었다. 마음은 이미 출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29살이 되던 어느 날 밤 태자는 "오늘이야말로 출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결심하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출입구로 간 태자는 "그곳에 누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문지방에 머리를 베고 누워있던 찬다카가 "주인이시여! 저는 찬다카이옵니다"고 대답했다. 태자는 찬다카에게 명했다. "지금 나는 위대한 출가를 하려 한다. 내게 필요한 말 한 필을 준비해 다오." 찬다카가 말을 준비하려 간 사이, 태자는 "그렇다 아들을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찬다카 끄는 말 타고 성벽 넘어


자리에서 일어나 라훌라의 어머니의 방으로 가 내실 문을 열었다. 그때 내실에는 좋은 등잔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라훌라의 어머니 야소다라는 쟈스민과 말리카 꽃을 가득 흩뿌려놓은 침대 위에서, 아들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문지방 위에 발 올리고 선 채 태자는 생각했다. "내가 만약 비(妃)의 손을 치우고 내 아들을 안게 된다면 비는 눈을 뜰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내 앞길에 삿된 마가 끼게 된다. 내가 부처가 돼 돌아와 만나기로 해야겠구나."


아들을 먼발치에서 보고 궁전에서 내려온 태자는 말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마부 찬다카가 이미 말 칸타카를 끌고 와 있었다. "자 칸타카여! 너는 오늘 밤 나를 데려가라. 그러면 네 덕택으로 나는 부처가 되어 천인을 포함한 세계 사람들을 구제하게 되리라." 칸타카의 등 위로 오른 태자는 힘껏 박차를 가했다. 이리하여 태자는 단 하룻밤에 세 왕국을 지나 30요자나(10 - 15km) 거리에 있는 아노마 강가(지금의 라프티강)에 도착했다.

 

강에 도착한 태자는 찬다카에게 "이 강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노마입니다"는 대답을 듣고 태자는 "나의 출가도 아노마(最勝)이 되리로다"고 외쳤다. 말 잔등에 내린 태자는 강가 모래밭에 서서 찬다카에게 "찬다카여! 나의 말을 들으라. 그대는 나의 장신구를 가지고 칸타카를 데리고 돌아가라. 나는 출가할 결심이 섰다"고 말했다.

 

<돌아온 찬다카, 칸타카.>사진설명: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할 때 타고 간 말 칸타카를 몰고 마부 찬다카(오른쪽)가 카필라바스투성으로 돌아오고 있다.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소장.

삭발 탈의 후 왕사성으로


찬다카가 "주인이시여! 저도 당신과 함께 출가하고자 합니다. 이제 따르면서 필요한 것을 이바지해야 하겠으며 혼자는 돌아가지 않겠나이다. 말이나 놓아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산중에는 독충과 호랑이와 사자들이 많이 있는데 누가 음식과 물이며 침구 등을 공양하며, 누구로부터 얻을 것이 옵니까. 반드시 따르면서 몸과 목숨을 같이 하겠나이다"(<수업본기경> 출가품)고 외쳤다. 길게 꿇고 앉아 칸타카는 계속해 애원했다.


태자는 그러나 "그대는 출가할 수 없다. 어서 가거라!"며 세 번 거절하고, 장신구와 칸타카를 넘겨주었다. 그리곤 "몸이 강하여도 병이 들면 꺾이고/ 기운이 왕성해도 늙음이 오면 쇠하고/ 죽어지면 살아서 이별하거늘/ 어찌하여 세간을 즐기겠느냐"고 읊었다.


직후 태자는 "지금 내 머리카락은 사문에게 어울리지가 않다"며 칼로 잘랐다. 태자의 머리카락은 손가락 두 개 정도의 굵기이며, 오른쪽 방향으로 감겨 있던 것이었다.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려보낸 태자는 카시 지방에서 난 화려한 의복 또한 필요한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카시 산의 이 옷은 사문인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훌훌 벗어버렸다. 태자는 이후 7일간 아노마 강가의 아누피아 망고 숲에서 기쁨에 젖어 지냈다. 그리곤 하루에 30요자나 거리를 걸어 라자가하(왕사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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