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해설(老子와 똥막대기)

노자 도덕경의 명언

수선님 2022. 12. 11. 13:35

 

 

노자 도덕경의 명언



1. 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하면(변하는 도를 생각의 틀 속에 집어넣는다면), 그것은 늘 그러한 道가 아니다..
-노자 1장



2. 名可名 非常名
이름을 이름지어서 부를 수 있으면 그러한 이름은 만고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선입관처럼 고착화되어버린 이름이 아닐 때만 진정한 이름 구실을 하는 것)
-노자 1장



3. 飄風不終朝(표풍부종조) 驟雨不終日(취우부종일)
회오리바람이 한 나절을 부는 일이 없고, 소나기가 온종일 쏟아지는 법이 없다.
-노자 23장


4. 獨立而不改 周行而不殆
現象을 초월하여 변화가 없으며, 두루 運行하여 쉬지 않는다.…
道란 萬物을 초월하여 永遠하지만, 또한 그 法則이 되어서 運行에 差別과 停息이 없다는 말이다.
-노자 25장


5.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無는 天地의 처음의 이름이고, 有는 萬物의 어미의 이름이다.
-노자 1장


6.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노자 25장

7. 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만물은 有에서 나오고 有는 無에서 나온다.
-노자 40장


8.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萬物을 낳아주고도 가지지 않고, 위하여 일을 하고도 뻐기지 않으며,
그들을 길러주고도 主宰하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玄德이라 한다.
-노자 51-34-10-2장

9.功을 이루고도 차지하지 않는지라,

이런 때문에 그 功이 영원하다.…
聖人은 功을 이루고도 이를 차지하지 않는바, 그것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 功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功이라 하여 자랑하고 으시대면 價値가 떨어지는 법이다.
-노자 2장


10.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道의 운동법칙이며,

언제나 柔弱을 지키는 것은 道의 운용방법이다.…
老子의 道는 物極必反의 循環法則이다.
그런데 柔弱을 지키는 것은 이와 같은 순환법칙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柔弱은 언제나 强健이 전제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항상 柔弱하면 항상 强健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현재의 强健은 곧 死滅할 사물의 極點이니까.
그러니까 老子의 道는 자기의 法則을 자기가 이용하는 體系이다.
그래서 無爲를 하면 無不爲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방의 弱點을 이용하여 해코지를 하는 武士道와는 다르다.
-노자 40장

11. 有無相生 難易相成
有와 無는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주고, 難과 易는 서로가 서로를 이루어준다. -
有와 無는 서로 바뀌어서 생겨나고, 難과 易는 서로 바뀌어서 이루어진다.……
有와 無는 서로가 서로를 생겨나게 하고, 難과 易는 서로가 서로를 이루어준다.
有는 다시 無로 돌아갈 것이고, 無는 다시 有로 나타날 것이며,
難은 또 易로 反轉하고, 易는 또 難으로 轉成될 것이다.
이것은 곧 老子의 ‘反者道之動’의 원리인 ‘反의 法則’이다.
-노자 2장


12. 見小曰明 守柔曰强
작은 것을 보는 것을 明이라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强이라 한다.…
明은 隱微한 宇宙의 道를 觀照하는 능력이고,
强은 부드러움을 지키면 저절로 뒤따르는 ‘反의 法則’의 효과이다.
-노자 52장


13. 兵强則滅 木强則折
군사가 강하면 무너지고, 나무가 강하면 꺾어진다.…‘
反의 法則’에 의하면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强한 것은 現象的 存在의 마지막 단계이다.
-노자 76장



14. 曲則全(곡즉전) 枉則直(왕즉직)
꼬부라지면 온전하고, 굽으면 곧다.…‘
反의 法則’에 의하면, 꼬부라진 것은 장차 펼쳐져서 온전하게 되도록 되어있고,
굽은 것은 장차 발라져서 완전하게 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굼벵이가 굽히는 것은 곧게 펴서 한걸음 나가기 위한 움추림입니다.
그러나 ‘曲則全’을 ‘자신을 굽히는 방법이 자기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이다’라고 한다면,
다음의 ‘枉則直’은 이를 같은 논리로 풀 수가 없다.
-노자 22장


15.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取之 必固與之
약하게 하고 싶으면 강하게 하여주고, 망하게 하고 싶으면 흥하게 하여주고,

가지고 싶으면 반대로 주라.…
强하게 해 주면 다시 弱하게 되는 것이 老子의 ‘反의 法則’이다.
-노자 36장

16. 大巧若拙 大辯若訥
能力이 뛰어난 자는 바보 같고, 雄辯이 뛰어난 자는 말더듬이 같다.…‘
大盈若沖, 大成若缺, 大音希聲, 大象無形, 大方無隅’ 등과 같은 계열의 말이다.
完全의 경지, 道의 경지는 상식적인 眼目의 판별 대상이 아니라는 말인데,
이를 바꾸어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긍정하는 것은 사실은 부정의 대상이고,
부정하는 것은 도리어 긍정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모두 反常識的인 발상이다.
-노자 45장

17. 爲者敗之 執者失之
무엇을 하는 자는 실패하고, 무엇을 잡는 자는 놓친다.…
老子의 사상은 作爲와 固執을 철저히 배격한다. 그래서 無爲요 無執이다.
일부러 하려고 하면 안 된다. 執着을 버리고 自然에 맡겨야 한다.
-노자 29-64장


18. 道常無爲而無不爲
道는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이든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진다. 그것이 自然인 道이다.
그러나 하지 않고도 이루어지는 것은 역시 自然的인 것이지 人爲的인 것이 아니다.
人爲的인 것은 하면 할수록 일을 그르친다.
-노자 37장


19.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없고, 잡지 않기 때문에 놓치는 것이 없다.…
무엇을 자꾸만 人爲的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자꾸만 執着을 하기 때문에 놓치는 것이다.
自然의 모습대로 내버려 두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老子의 삶은 自然에 맡기고 사는 삶이다.

人爲的인 造作을 거부한다.
-노자 64장


20. 絶聖棄智 民利百倍
거룩함을 단절하고 지혜로움을 포기하면 백성들이 백 배나 더 행복해질 것이다.…
聖이란 세속적 의미의 聖君의 資質을,

智란 그러한 資質의 실천적 조건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統治 資質로서의 聖이나 智란 곧 禮樂文物을 잘 만들어내고,
典章法度를 잘 만들어내고 해서 이를 잘 執行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老子의 觀點에서 보면 이런 것은 모두 反自然的인 作爲的 행위로서,
自然과 함께 살아야 할 백성들을 文明의 무대로 끌어내어서 괴롭히고 고문하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만약 이런 것을 훌훌 털어버리기만 한다면 백성들은 너무너무 행복해질 것이란 말이다.
堯舜의 ‘無爲而治’ 사상은 후일 儒家가 그 嫡子로 상속을 받지만,
핵심은 역시 道家思想에 接脈되어 있는 것이다.
-노자 19장


21.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天地는 사랑이 없어 萬物을 무용지물로 여기고,

聖人은 사랑이 없어 百姓을 무용지물로 여긴다.…
自然은 사람처럼 무엇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는 것이 없이,

어느 것이나 똑 같이 自然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둔다.

聖人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노자 5장


22. 持而盈之 不如其已
다잡아 쥐고 채워주는 것은 그만 두느니만 못하다.…
무슨 소린가? 채워놓은 것은 ‘反의 法則’에 의하면 다시 비게 되어 있지만,
반대로 그대로 비어있는 것은 다시 채워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보통 ‘붙잡고 가득 채우는 것은

적당한 시기에 그만 두는 것만 못하다’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老子 思想의 진정한 면목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노자 9장


23. 聖人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聖人은 無爲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고 不言의 방법으로 敎化를 행한다.…
無爲의 방법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人爲的인 作爲를 하지 않는 것이며,
不言의 방법이란 지시와 간섭을 통해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自然에 맡겨서 自然의 힘으로 處理하고 敎化하는 것이다.
-노자 2장


24. 知者不言 言者不知
슬기로운 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는 자는 슬기롭지 못하다.…
말을 해서 하는 방법은 有爲이고, 말을 하지 않고 하는 방법은 無爲이다.
-노자 56장


25. 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朝多利器 國家滋昏, 人多伎巧 奇物滋起, 法令滋彰 盜賊多有
天下에 禁忌가 많으면 백성들이 더욱 가난해지고,

國中에 利器가 많으면 나라가 더욱 昏亂해지고,
사람들이 技巧가 많으면 이상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고,

法令이 많고 복잡하면 도둑이 점점 늘어난다.…
노자 57장


26.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禍에는 福이 깃들어 있고 福에는 禍가 잠복해 있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거기에는 일정한 標準이라는 것이 없다.

바른 것은 다시 비뚫어지고,
善은 다시 바뀌어서 惡이 된다.…
모든 것은 轉變하여 흘러가게 되어 있다. ‘反의 法則’이다.
-노자 58장


27.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정치가 무던하면 백성들이 순박하고,

정치가 까탈스러우면 백성들이 교활하다.…
노자 58장

28. 治人事天 莫若嗇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일로 아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아낀다는 것은 무엇을 하지 않는 것, 有爲를 아낀다는 것이며,

하늘이란 自然, 곧 道를 말한다.
有爲를 하지 않으면, 그리하여 無爲를 하면,
그것은 곧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되고 自然에 歸一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를 “나라를 다스리고 心身을 기르는 것으로 精神을 아끼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구차스러울뿐더러, 적절치도 않다.
-노자 59장


29. 聖人 方而不割 廉而不? 直而不肆 光而不燿
聖人은 모가 나면서도 남을 다치지 않고, 날카로우면서도 남을 해치지 않고,
直切면서도 방자하지 않고, 빛이 나면서도 현란하지 않다.…
노자 58장


30. 治大國 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마치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
無爲로 다스리기 때문에 분주하고, 복잡하고, 야단스러울 것이 없다.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다를 것이 없다. 다 같이 無爲로 다스리니까.
-노자 60장


31.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無爲를 실천하고, 無事를 일삼고, 無味를 맛으로 즐긴다.…
모두 상식과는 반대이다.

여기에 바로 老子 사상의 妙味가 있다.
상식은 有爲인데 老子는 無爲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老子의 無爲自然이다.
-노자 63장


32.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세상에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되고,
세상에 엄청난 일은 반드시 하찮은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聖人은 결코 스스로 위대하려고 하지 않는바,

이런 때문에 능히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노자 63장

33.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아름드리 나무도 실낱같은 싹이 나서 자란 것이고,
九層의 돈대도 한 덩이씩 흙을 쌓아 올린 것이고,
천 리 길도 한 걸음씩 발로 걸어서 간 길이다.…
노자 64장


34. 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세속적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재앙이며,
이러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이 나라의 복이다.…
세속적 지혜는 곧 有爲이기 때문이다.
-노자 65장


35.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하늘의 道理는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을 하지 않아도 잘 호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
하늘의 道理는 自然의 法則인 道이다.

道는 다투지 않아도 萬物이 그 이치에 承服하고,
말을 해서 지시를 하지 않아도 그 理法을 따르고,

오라 가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그 원리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노자 73장


36.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은 그 그물이 넓고 커서 성긴 것 같지만,

그러나 이를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늘의 그물이란 自然의 法則인 道가 포괄하는 범위를 말하는 것으로,

것이 넓고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
그러나 이 宇宙의 어느 것도 이 道의 造化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노자 73장


37.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백성들을 다스리기가 어려운 것은
위에 있는 자가 有爲로써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인바,
이런 때문에 다스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노자 75장


38.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사람이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딱딱하고 뻣뻣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萬物이 ‘反의 法則’인 循環의 이치를 따르는 과정에서,

 强力하고, 旺盛하고, 단단하고,
딱딱한 것이 그 마지막 단계가 되는 것이다.
-노자 76장


39. 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초목이 처음 돋아나올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말라서 굳는다.…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노자 76장


40. 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단단하고 억센 것은 죽을 자들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살 자들이다.…
動物이나 植物의 태어날 때의 모습과 죽을 때의 모습을 보면 안다.
-노자 76장


41. 强大處下 柔弱處上
강하고 큰 것은 아랫자리를 차지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윗자리를 차지한다.…
强大한 것은 죽을 자들이고, 柔弱한 것은 살 자들이기 때문이다.
-노자 76장



42.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하늘의 道理란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다고 할까?
활의 시윗줄이 높으면 낮추어 주고, 낮으면 높여 주고,
느슨하면 당겨 주고, 팽팽하면 늦추어 주는 것이다.
-노자 77장


43.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 損不足而奉有餘
하늘의 道理는 남는 것을 덜어서 모자라는 곳에 보태어주는데,
사람이 사는 세상의 道理는 모자라는 것을 쪼개어서 남는 곳에 갖다 바친다.…
노자 77장


44. 天下莫柔弱於水 以攻堅强者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물로 굳고 단단한 것을 공격하면 이를 감당하는 자가 없다.
물의 攻擊力에 대응할 만 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노자 78장


45. 天道無親 常與善人
하늘의 道理는 친한 자가 따로 없고, 언제나 善한 사람과 함께 한다.…
노자 79장

46.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使民復結繩而用之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고 갈 곳이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써먹을 곳이 없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원시시대로 다시 돌아가게 하라.…

無爲로 다스리는 小國寡民의 세상의 모습이다.
-노자 80장


47. 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이웃 나라가 바라다보여서 개소리와 닭소리가 서로 들리지만,
늙어 죽을 때까지 백성들은 서로 오고 가는 법이 없다.…

인간의 社會가 自然에 同化된 모습이다.
-노자 80장


48. 信言不美 美言不信
眞實한 말은 華美하지 않고, 華美한 말은 眞實하지 않다.…
노자 81장


49. 善者不辯 辯者不善
善良한 자는 말이 유창하지 않고, 말이 유창한 자는 善良하지 않다.…
노자 81장


50. 聖人不積, 旣以爲人 己愈有, 旣以與人 己愈多
聖人은 자기를 위하여 쌓아두지 않는다.

남을 위하여 도와주고 보면 자신의 힘이 더욱 남아돌고,
남이 쓰라고 내어주고 나면 자신의 것이 더욱 많아진다.…

이 역시 ‘反의 法則’에 의한 反常識的 現象이다.
-노자 81장


51. 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하늘의 道理는 이롭게 하면서 해치지 않고, 聖人의 道理는 위하여 주면서 다투지 않는다.…
노자 81장


52. 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事物은 만약 줄이면 늘어나고 늘이면 줄어든다.…
老子는 항상 우리의 常識을 뒤집어서 말하였다. 세상에 대한 거꾸로 보기와 거꾸로 하기이다.
그것은 또 ‘反의 法則’이기도 하다.
老子는 사람들의 생각과 반대로 해야만 세상의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말을 하였다.
-노자 42장

53. 萬物恃之而生, 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爲主.
만물이 이 도(道)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데도 잔소리도 아니하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름을 가지려 하지 않으며,
만물을 입히고 먹이면서도 주인 노릇 하려하지 않는도다.
노자 34장.


54. 不尙賢 不貴貨
賢能을 숭상하지 않고, 財物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노자 3장


55.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마음을 비워서 배를 채워주고, 意慾을 弱化시켜 筋骨을 强化한다.…
마음에서 乞神이 빠져나가면 배가 부르고, 慾望의 시달림에서 해방되면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다. ‘
實其腹’을 ‘食慾充足’의 뜻으로 풀면 다음의 ‘弱其志 强其骨’의 풀이가 곤란해진다.
-노자 3장


56. 爲無爲 則無不治 無爲의 道理를
實踐하면 무엇이든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自然에 맡겨두면 自然의 理法에 따라 이루어진다.
-노자 3장


57. 道沖 而用之或不盈
道는 그 본질이 空虛하나 그 作用은 끝이 없다.…
道體는 空虛하고 沖漠하지만, 道用은 끝이 없어 아무리 使用하여도 늘거나 줄거나 하는 법이 없다.
-노자4장

58. 和其光 同其塵
강한 빛살을 부드러이 하여 흙먼지와 함께 어울려서 뒹군다.…
萬物에 구별이 없어서, 쇠똥에도 있고 말오줌에도 있는 것이 道이다.
그래서 道는 萬物과 어울리는데 지장이 되는 모든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하고,
그 어떤 것과도 거리감이 없이 調和를 이루는 것이다.
-노자 4장



59.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天地가 長久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산다.…
天地가 오래 사는 것은 ‘無爲故無敗 無執故無失’의 이치를 實踐하기 때문이다.
하려고 하면 되지 않고, 살려고 하면 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를, ‘자신을 위한 삶을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지 않기 때문에’ 등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無爲와 無執의 진정한 의미를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노자 7장



60. 聖人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聖人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앞서게 되고,
자신을 度外視하여 버리기 때문에 자신이 保存되는 것이다.…
無爲와 無執의 효과에 대한 설명이다.
-노자 7장


61. 上善若水
最上의 善은 그 性質이 물과 같다.…
물은 萬物에게 이로움을 주고,
萬物과 다투지 않으며,
물은 남들이 싫어하는 궂고 천한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이 곧 이기는 길이며, 그것이 곧 成功의 비결이다. ‘
反’을 法則으로 삼아서 운동하는 道의 효과적인 運用 方法이다.
老子 思想에서 물은 柔弱의 대명사이며, 柔弱은 곧 善이다.
-노자 8장


62. 夫唯不爭 故無尤
물은 도대체 다투지 않는다. 이런 때문에 원망하는 자가 없다.…
노자 8장



63. 尖而銳之 不可長保
갈고 다듬어서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보존될 수 없다.…
尖銳(첨예, 그런 심성)한 것은 쉬 망가진다. 사물의 마지막 段階이기 때문이다.
강하고, 날카롭고, 성대하고, 화려하고 한 것은 모두 사물의 마지막 단계이다.
-노자 9장


持而盈之 지이영지 不如其已 불여기이
취而銳之 취이예지 不可長保 불가장보
金玉滿堂 금옥만당 莫之能守 막지능수
富貴而驕 부귀이교 自遺其咎 자유기구
功遂身退 공수신퇴 天之道 천지도

가득찬 그릇을 들고 있음은 그것을 그만 두느니만 못하고
날카롭게 간 칼은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재물이 지나치게 쌓이면 지키기 어렵고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재앙을 부른다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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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장을 읽으면 대번 술자리가 생각난다
즉 술을 따를 때 조금 덜 차도록 따르지 가득 따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가득 채운 술잔은 실수로 너무 따른 술잔이 되는

노자는 매 장을 읽을 때마다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뒤통수 심하게 얻어맞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뒤 구절 또한
날카롭게 간 칼 하면 면도날이 생각난다
나이 드신 남자 분들은 오래 전 이발소에서 사용하던
접는 식으로 된 큼직한 면도칼이 생각날 것이고
그런데 이 칼을 사용하는 것도 달라져서 칼날 부분을 바꾸어 쓰던데
오래 전, 가끔 숫돌에다 이 칼을 갈아서는 사용할 때 허리띠같이 넓적한 가죽에다가
몇 번 앞뒤로 문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과정이 칼날을 조금 무디게 만드는 것이리라
물론 이즘에는 면도기 자체가 일회용을 넘어서 전기 모터가 들어있는
면도기를 쓴지 오래지만, 어쨌든 칼날을 갈아서 쓰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신세대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옛날 사람들이야 식칼에서 작두, 낫, 보습, 송곳 등등 모든 연장이
대부분 날을 자신이 세워서 사용했으니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을까
 
"취이예지 불가장보(취而銳之 不可長保)" 이 부분은 도올에 의하면
(노자와 21세기 下) "취이절지 불가장보"로 되어있다
그런데 김용옥 자신은 처음부터 왕필본을 원본으로 한다 했으니
원칙을 고수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쓰고 이유는 왕필의 오사라고
주장한다 즉 "취이예지"를 "재주 재(才)" 자를
써야할 부분에 나무 목(木)이 들어간 "절" 자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죽간 갑본에는 "단이군지 불가장보야"가
백서 을본에는 "단이윤지 불가장보"로 되어있다고 밝혔다
물론 여기서 별다른 문제는 없다 여러 책을 살펴보니 저마다
다른 내용도 있으므로 그럴 수 있다는 예를 든 것이고
해석에서는 공히 "취이예지"로 결론 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히려 "단이군지 불가장보야"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들어온다 여기서 湍은 여울을 뜻하고 群은 무리를 뜻한다
즉 "여울에는 무리의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 또는 "여울은 많은 물이
모이지 못한다" 이렇게 함이 오히려 더 노자적이지 않은가 해서 말이다

또한 부귀해져 교만해서 스스로 화를 부르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공을 이루면 물러난다 이것이 하늘의 도이다
노자의 시작부터 중요한 문제였던, 자신의 임무는 자신의 임무이지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누구에게 공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하나의 허상이 될 뿐.. 불교에서 말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나 구하지 못해 얻는 고통, 얻을 수 없고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는가
전에 들은 말 한 마디가 생각난다

"아내가 옷 한 벌 입으면 남편은 옷 한 벌 벗는다"

어차피 그릇에 물을 얼마만큼 담느냐는 스스로 결정해야할 일

64.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希(바랄 희)라 하고,
움켜잡아도 잡히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微(작을 미)라 한다.…
夷, 希, 微는 각각 無色, 無聲, 無形을 가리키는 말로,
感官(감각기관)으로 認知할 수 없는 道體의 沖漠(충막)하고 寂寥(적요)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노자 14장


65. 致虛極 守靜篤
마음의 虛를 지극히 하고, 마음의 靜을 철저히 지킨다.…
마음이 虛靜해야만 宇宙의 진리인 道體를 觀照할 수 있다.
-노자 16장


66. 太上 不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가장 좋은 세상은 임금이란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사람들이 모르는 세상이고,
그 다음은 사람들이 임금을 가까이 하면서 기리는 세상이고,
그 다음은 사람들이 임금을 두려워하는 세상이고,
그 다음은 사람들이 임금을 업신여기는 세상이다.…
노자 17장


67.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大道가 무너져서 仁義가 생겨났고, 智慧가 나와서 거짓이 생겨났으며,
家庭이 不睦하자 효도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있게 되었고,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忠臣이란 말이 나타나게 되었다.…
노자 18장



68. 絶仁棄義 民復孝慈
仁을 단절하고 義를 포기하면 사람들이 다시 효도하고 사랑할 것이다.…
노자 19장


69.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교기이 도적무유)
計巧를 단절하고 利害를 포기하면 도둑이 없어질 것이다.…
노자 19장


70.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若何? 人之所畏 不可不畏!
學問이란 것을 斷絶해 버리면 근심 걱정이 없을 것이다.
‘네’ 하는 아랫사람의 대답과 ‘오냐’ 하는 윗사람의 대답 사이에 그 거리가 얼마나 되며,
善과 惡이 그 거리가 얼마나 되던가?
어차피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지 않던가!…
노자 20장


71. 道之爲物 惟恍惟忽, 忽兮恍兮 其中有象, 恍兮忽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道란 것은 그 됨됨이가 황홀하기만 하다.
忽然하고 荒然(황연)하지만 그 가운데 形象이 있고,

荒然하고 忽然물연하지만 그 가운데 物體가 있고,
컴컴하고 으슥하지만 그 가운데 精質이 있다.…
노자 21장

 

72. 不自見 故明, 不自是 故彰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지라 이런 때문에 밝고,

스스로 옳다고 않는지라 이런 때문에 빛이 나는 것이다.…
노자 22장


73. 希言自然
말이 적은 것이 自然이다.…그러니 복잡하게 政令을 만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시키지 말 일이다.
-노자 23장


74. 企者不立 跨者不行
발끝으로 재겨디디고 일어서는 사람은 오래 서있을 수 없고,
커다란 발걸음으로 뛰어가는 사람은 멀리 갈 수 없다.…
노자 24장


75.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억지로 별명을 붙여서 道라 하고,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大라 한다.…
道를 형용하여 하는 말이다.
노자 25장


76.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크면 끊임없이 運行하고, 끊임없이 運行하면 멀리 가고, 멀리 가면 다시 돌아온다.…
道가 運行하여 循環하는 이치를 말한 것이다.
-노자 25장


77.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잘 닫아 거는 자는 빗장이 없이 닫아도 열 수가 없고,
잘 꾸려서 묶는 자는 노끈이 없이 묶어도 풀지를 못한다.…상식을 거부한 말이다.
-노자 27장

善行 無轍迹 (선행 무철적) 좋은 행실은 지나간 흔적이 없고
善言 無瑕謫 (선언 무하적) 좋은 언행은 트집 잡을 구실이 없고
善數 不用籌策 (선수 불용주책) 좋은 셈은 주판 두드릴 일이 없으며
善閉 無關楗而不可開 (선폐 무관건이불가개) 잘 닫힌 문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리지 않을 것이고
善結 無繩約而不可解 (선결 무승약이불가해) 잘 묶여진 것은 줄을 사용하지 않았도 풀리지 않는 것이다.


78.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
雄强을 알고 雌柔를 지키면 天下가 몰려드는 강물이 될 것이다.…
雄强은 陽剛, 곧 수컷의 强健함이고, 雌柔는 陰柔, 곧 암컷의 柔靜함이다.
雄强이 어떤 것인지 알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은 아니다.
왜? 그것은 事物의 마지막 段階니까. 그러나 雌柔를 지키면 天下가 다 내게로 몰려들 테니까.
-노자 28장


79.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흰 것을 알면서 검은 것을 지키면 천하의 法度가(標準이) 될 것이다.…
흰 것은 밝은 것, 검은 것은 어두운 것.
밝은 것은 안락하고 좋은 것이고, 어두운 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어두운 것을 지키면 앞으로 얼마든지 밝아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天下의 法度가 되니까. 그래서 ‘反의 法則’이 작용하고 있으니까.
-노자 28장


80. 知其榮 守其辱 爲天下谷
榮光을 알면서 汚辱을 지키면 天下가 모여드는 골짜기가 될 것이다.…
노자 28장


81.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事物이 旺盛하면 늙어버리는바, 이런 것을 일러 道가 아니라고 한다.
道가 아니면 쉬 끝나버린다.…촛불이 마지막에 반짝 빛을 발하듯이,
사물이 高調에 이르면 끝이 난다. 그래서 堅强은 죽을 자들인 것이다.
-노자 30장


82. 道常無名樸 雖小 天下莫能臣也
道는 언제나 이름없는 투박한 덩어리이다.
그것이 비록 隱微하지만, 天下의 누구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다.…
宇宙의 萬物은 모두 道의 신하이다.
-노자 32장


83. 知人者知 自知者明
남을 아는 것은 智慧로움이고, 자신을 아는 것은 明徹함이다.…
노자 33장


84.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은 德을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有德하다.
그러나 下德은 德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無德하다.…
얼핏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은 無爲와 無執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7장의 ‘以其不自生’과도 같은 맥락이다.
德을 물고 늘어지면 有爲가 되고 有執이 되어서 되지 않지만,
그대로 自然에 맡겨 두면 그것이 곧 德이 되는 것이다.
老子의 德은 有爲의 德이 아니라 無爲인 自然의 상태 바로 그것인 것이다.
그런데도 국내외의 모든 책들이 老子의 無爲思想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
上德은 스스로 有德한 척 하지 않기 때문에 有德하다’는 식으로
儒家的인 사고방식으로만 해석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노자 38장


85. 上德無爲而無以爲 下德無爲而有以爲
上德인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이를 하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
그러나 下德인 자는 아무것도 하지는 않지만 이를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있다.…
노자 38장


86. 上仁爲之而無以爲 上義爲之而有以爲
上仁인 자는 무엇을 하기는 하지만 이를 하려는 마음은 없다.
그러나 上義인 자는 무엇을 하기도 하고 이를 하려는 마음도 있다.…
노자 38장


87.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道를 잃어버리자 德이 생겼고, 德을 잃어버리자 仁이 생겼고,
仁을 잃어버리자 義가 생겼고, 義를 잃어버리자 禮가 생겼다.…
道, 德, 仁, 義, 禮는 세상이 한 단계씩 타락해서 떨어져가는 순서이다.
道와 德은 自然이기 때문에 높고, 仁, 義, 禮는 人爲이기 때문에 낮다.
그래서 또 “禮란 忠信이 薄弱한 것으로 禍亂의 端初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德을 道 다음에다 놓은 것은 다른 곳의 語法과도 맞지 않고 이론상으로도 모순으로서,
이것은 老子 言語의 嚴密性 부족의 한 사례라 할 것이다.
德은 곧 道의 성질, 또는 道가 표현된 모습이다.
-노자 38장


88.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대저 禮란 忠信이 薄弱한 것으로 禍亂의 端初이다.…
노자 38장


89. 天無以淸 將恐裂, 地無以寧 將恐廢, 神無以靈 將恐歇 谷無以盈 將恐竭
하늘이 맑지 않으면 갈라질지도 모르며, 땅이 편안하지 않으면 무너질지도 모르며,
神이 神靈하지 않으면 消失될지도 모르며, 골짜기의 물이 출렁이지 않으면 말라버릴지도 모른다.…
노자 39장


90.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가장 정확한 角形은 모서리가 없고, 가장 큰 그릇은 가장 늦게 이루어지고,
가장 큰 소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가장 큰 形象은 모양이 없다.…
道의 境地는 상식적인 차원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大器晩成’은 다른 것들과의 調和의 度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노자 41장


91.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道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萬物을 낳는다.…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1=道, 2=陰陽, 3=陰陽이 낳은 沖氣, 또는 和氣였다.
그러나 옳지 않다. 老子는 ‘萬物生於有 有生於無’라 하면서, 有는 ‘萬物의 母’라고 했다.
1은 곧 ‘有’이다. 또 이 때는 응달, 양달의 陰과 陽 이외의 宇宙의 理法으로서의

 陰陽의 개념은 없었다.
그래서 『老子』에는 ‘陰陽’이란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으며,
『論語』, 『孟子』, 『易卦爻辭』, 『今文尙書』에도 안 나오다가,
『莊子』, 『易傳』, 『禮記』 등에 와서 비로소 나오기 시작한다.
따라서 3도 陰陽의 沖氣나 和氣일 수가 없다.
1, 2, 3은 老子 사상의 無→單→多의 發展槪念의 단계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노자 42장


92.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꿰뚫어 달린다.…
부드러운 것의 대명사는 물이고, 단단한 것의 대명사는 金石이다.
그런데 물이 흐르는 곳은 山谷도 뚫리고 金石도 닳아서 패인다.
-노자 43장


93. 不言之敎 無爲之益 天下希及之
不言의 敎化와 無爲의 利益을 당할 자가 세상에 없다.…
노자 43장


94.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滿足을 알면 侮辱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험이 없어, 가히 長久할 수가 있을 것이다.…
老子의 言語 중 비교적 상식적인 語法에 가까운 표현이다.
-노자 44장


95. 大成若缺 其用不弊
가장 完全한 것은 마치 흠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作用은 다함이 없다.…
노자 45장

96. 大盈若沖 其用不窮
가장 充滿한 것은 마치 텅 빈 것 같다. 그러나 그 作用은 끝이 없다.…
노자 45장


97.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學問을 하면 하고 싶은 것이 날로 늘어나지만, 道理를 닦으면 하고 싶은 것이 날로 줄어든다.
줄고 또 줄어서 드디어 無爲의 境地에 이른다.…
이 또한 지금까지의 譯本이 모두 그 본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
爲學’을 하면 ‘知識’이 늘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有爲’가 늘어난다는 말이며, ‘
爲道’를 하면 ‘情慾’이 줄어든다는 말이 아니라 ‘有爲’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래야 文脈이 통한다.
-노자 48장


98. 禍莫大於不知足 咎莫大於欲得
禍患은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慾心을 부리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노자 46장


99. 不出戶 知天下, 不窺?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天下를 알고, 바깥을 내다보지 않고도 天道를 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줄어든다.…天下와 天道는 곧 自然이다.
自然의 理法은 자신의 明으로 觀照하는 것이지, 돌아다니면서 觀察하여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有爲가 되어서 無爲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노자 47장


100. 取天下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天下의 경영은 언제나 無事의 방법으로 해야 한다. 有事의 방법으로 하면 天下를 경영할 수 없다.…
노자 48


101.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道는
萬物을 낳아주고, 德은 萬物을 길러주고, 物質은 萬物에 形象을 주고,

大勢의 條件은 萬物을 成就하게 한다.…
노자 51장


102. 聖人云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聖人은 말한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저절로 敎化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발라지고,

내가 아무 일이 없으면 백성들이 저절로 가멸어지고,
내가 아무런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이 저절로 淳朴하여진다고.…
노자 57장


<노자 도덕경 명언 명구(老子 道德經 名言 名句)>

1) 金玉滿堂(금옥만당)이면 莫之能守(막지능수)오, 富貴而驕(부귀이교)면 自遺其咎(자유기구)니라.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능히 지켜내기가 어려울 것이요, 부귀하다고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길 것이다.
<九章>


2) 寵辱若驚(총욕약경)하고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이니라.
총애를 받음(인기를 얻음)과 욕됨을 당함에는 마치 놀라는 것처럼 하고, 큰 근심거리는 마치 내 몸처럼 귀하게 대해야 한다.
<十三章>


3) 自見者不明(자현자불명)하고, 自是者不彰(자시자불창)하며,
自伐者不功(자벌자불공)하고, 自矜者不長(자긍자부장)이니라.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빛나기가 어려우며,
스스로 자랑하는(떠벌리는) 사람은 공을 이루기가 어렵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장구하지 못할 것이다.
<二十四章>


4) 善人者(선인자)는 不善人之師(불선인지사)요, 不善人者(불선인자)는 善人之資(선인지자)니라.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밑천이다.
<二十七章>


5) 果而勿矜(과이물긍)하고 果而勿伐(과이물벌)하며, 果而勿驕(과이물교)니라
안좋은 결과가 와도 자기를 가엾게 여기지 말아야 하고,
좋은 결과가 와도 자랑하지(떠벌리지) 말아야 하며, 좋은 결과가 와도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三十章>


6) 知足不辱(지족불욕)하고 知止不殆(지지불태)하니, 可以長久(가이장구)하리라.
족함을 알면 욕됨을 당하지 않고 그칠줄 알면 위태롭지 않게 되니,

길이 오래도록 누릴 수 있을 것이다.
<四十四章>


7) 禍莫大於 不知足(화막대어 부지족)하고, 咎莫大於 欲得(구막대어 욕득)이니라.
재앙은 족함을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허물은 끝없이 얻고자 하는 욕망보다 더 큰 것이 없다.
<四十六章>


8) 善者 吾善之(선자 오선지)하고, 不善者 吾亦善之(불선자 오역선지)면, 德善(덕선)이니라.
선한 사람도 내가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내가 역시 선하게 대한다면,

그것이 곧 진정한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
<四十九章>



9) 塞其兌 閉其門(색기태 폐기문)하고 挫其銳 解其紛(좌기예 해기분)하며,

和其光 同其塵(화기광 동기진)이니라.
그 욕망의 구멍을 막아서 욕망의 문을 닫게 하고, 그 날카로움을 꺾어서 그 얽힌 것들을 풀어내며,
그 밝은 빛으로 함께 화합하여 그 때묻음도 함께 한다.
<五十六章>


10) 禍兮 福之所倚(화혜 복지소의)요 福兮 禍之所伏(복혜 화지소복)이니,

 孰知其極(숙지기극)이리오. 其無正(기무정)이니라.
화(禍) 속에는 복(福)이 의지해 있는 것이며, 복 속에는 화가 숨어 있는 것이니

누가 그(화와 복의) 끝을 알겠는가?
그 (끝은) 정해진 바가 없다.
<五十八章>



11) 民之從事(민지종사)는 常於幾成而敗之(상어기성이 패지)니,

愼終如始則 無敗事(신종여시즉 무패사)니라.
세상 사람들의 일을 보아 하니, 항상 거의 다 이루어질듯 하다가 실패한다.
끝 즈음에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삼가 조심하면 실패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六十四章>


12) 合抱之木(합포지목)도 生於毫末(생어호말)하고, 九層之臺(구층지대)도 起於累土(기어루토)니라.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같은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9층이나 되는 높은 누대(樓臺)도 한줌의 흙을 쌓음으로부터 시작된다.
<六十四章>


13) 信言不美(신언불미)하고 美言不信(미언불신)하며 善者不辯(선자불변)하고

辯者不善(변자불선)하며,
知者不博(지자불박)하고 博者不知(박자부지)라.
신뢰있는 말은 아름답지 못하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못하며,
선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고 말 잘하는 사람은 대체로 선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八十一章>

 

 

 

 

 

 

 

 

 

 

 

 

노자 도덕경의 명언

노자 도덕경의 명언 1. 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하면(변하는 도를 생각의 틀 속에 집어넣는다면), 그것은 늘 그러한 道가 아니다..-노자 1장 2. 名可名 非常名 이름을 이름지어서 부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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