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老子)는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전해지고 있다. 성은 이 (李), 이름은 이(耳), 시호는 담(聃)이다.
출생과 사망년도는 확실하지 않고 여러 설이 있으나, 기원전 604년경(공자보다 50여 년 전) 출생하고 기원전 6세기 말경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노자는 중국에서 우주 만물에 대하여 생각한 최초의 사람으로, 우주의 진리를 '도'(道)라고 이름 지었다.
그 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을 '도교'라고 하며, 그는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가 곧 '도'라고 설명 하였다.
노자는 후세에 '도교의 시조'로 불리고, 사상은 '노장 사상' 또는 '도가 사상'으 로 발전하여 유교와 함께 중국 정신 사상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되었다.
노자의 사상은 도는 성질이나 모양을 가지지 않으며,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항상 어디 에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우주 만물은 다만 도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우주 만물의 형태는 그 근본 을 따지면 결국은 17가지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저서 노자 도덕경 속에 있는데, 사람이 우주의 근본이며, 진리인 도의 길에 도달하려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무위 자연'의 사상으로 나타난다.
즉, 법률·도덕·풍속·문화 등 인위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사람의 가장 순수한 양심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때 비로소 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사상이다.
노자의 말이라고 하여 오늘날 老子, 또는 道德經이라고하는 경서로서 상·하 2권, 81장이 남겨져 있다.
이제부터 노자의 사상 속으로 매일 한 발짝 씩 들어가 보기로 한다.
오늘날 우리가 도덕경으로 규정한 판본은 삼국시대 말기에 왕필이 정리한 것이며, 이를 소위 왕필본 혹은 통용본이라고 부른다.
또한 왕필본 보다 연대가 훨씬 앞선 것으로서, 1973년도에 중국 장시성에서 발견된 고분 마왕퇴(BC 168년 추정)에서 발굴된 백서본은 갑, 을 두 종류가 있는데, 백서본 갑본은 전국시대 말기(BC 247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을본은 한나라 초기(BC 195년 이전)에 제작된 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1993년 중국 화북성의 곽점촌에서 발견된 곽점본(혹은 죽간본, BC 300년 추정)이 있다.
당나라 때까지는 주석서로서 하상공장구가 많이 읽혔으나, 송, 명, 청 시대에는 왕필본이 백서본 출토 이전까지 무려 천년 이상 동서양 도덕경 이해의 근간이 되었다.
노자에 대한 것은 사마천의 사기열전 제63권 노자한비열전과 제130권 태사공자서에 나온다.
노자는 주(周) 장서실(藏書室)을 관리하는 관리(도서관장)였기 때문에, 복희씨 이래로 모든 문물 서적들과, 역대 국가와 군왕들의 성쇄와 존망에 관한 기록들을 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강약과 성패 득실의 이치를 모두 깨닫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할 수 있어서, 공자도 가서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마치 용과 같아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노자는 도덕(道德)을 수행했으며, 그의 학문은 자신을 감추어 이름이 드러나지 않게 힘쓰는 것이었다. 주에 오래 살았지만 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는 홀연히 떠났는데, 함곡관 관문에 이르렀을 때 관문을 관리하는 윤희(尹喜)의 부탁을 들어, 도덕의 뜻을 담은 5천 여 글자, 상하 두 편의 글을 써주고 떠난 뒤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노자는 도를 닦아 수명을 늘였기 때문에 160살이 넘게, 또는 200살이 넘게 살았다고 한다.
노자는 사람이 일부러 일삼지 않으면 만물은 절로 조화를 이루고, 맑고 깨끗하면 만물이 절로 바르게 된다고 했다.(無為自化, 清浄自正)
태사공자서에는 육가의 요지를 논평한 것이 있는데 그중에서 도가에 대한 것이다.
도가는 정신을 하나로 모아 인간의 모든 활동의 보이지 않는 객관적 규율에 합치하게 하고 만물을 만족시킨다. 그 학술은 음양가의 사계절의 큰 운행이란 순서를 흡수하고, 유가와 묵가의 좋은 점을 취하고, 명가와 법가의 요점을 모으니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변화하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변하고, 풍속을 세워 일을 시행하니 적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그 이치는 간명하면서 파악하기가 쉽고, 힘은 적게 들지만 효과는 크다.
도가의 기본 원칙은 그저 강하기만 한 것을 버리고 탐욕을 없애며 총명을 물리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위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객관적 형세에 순응하는 것이다.
도가는 ‘억지로 일삼지 않는’ ‘무위’를 말하면서 ‘하지 않는 것도 없는’ ‘무불위’도 말한다. 실제로 행동하기는 쉬운데 그 말이 이해하기 어렵다. 도가의 학술은 ‘허무’를 근본으로 삼고, 행동상 ‘순응’이란 객관적 형세를 강구한다. 그 자체로 이미 만들어진 세태도 고정불변의 형상도 없기 때문에 만물에 순응하여 만물의 정상을 추구할 수 있다. 만물에 앞서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으면서 순응하기 때문에 만물을 주재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이 있지만 법에 맡기지 않는 것을 법으로 여기고 때에 맞추어 일을 이루며, 법도가 있지만 고집하지 않고 만물과 서로 어울린다. 그렇기에 “성인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시세의 변화에 맞추어 변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허무는 도의 본질이며, 순응은 군주가 파악해야 할 강령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군주는 여러 신하들을 모두 소집하여 각자에게 맞는 일을 주어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실제 행동과 말이 일치하는 것을 ‘바르다’는 뜻에서 ‘단’이라 하고, 실질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비어 있다’는 뜻에서 ‘관’이라 한다. 빈말을 듣지 않으면 간사한 자가 생기지 않고, 어진 이와 불초한 자가 절로 가려지며, 흑백이 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다음 군주가 현명한 자를 기용하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겠는가?
이렇게 하면 큰 도에 부합하게 되고 원기가 두루 충만해져 온 천하를 환하게 비추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청정무위의 경지로 되돌아간다.
인간의 삶은 정신에 의탁하며, 정신은 육신에 의탁한다. 정신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고갈되고, 육신을 너무 혹사하면 병이 난다. 정신과 육체가 일단 분리되면 사람은 죽는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사람 역시 다시 합칠 수 없다. 때문에 성인이 정신과 육체를 모두 중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신은 생명의 근본이요, 육체는 생명의 기초다. 정신과 육체를 편안하게 만들어 놓지도 않고 “내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니 대체 무엇을 믿고 큰소리를 치는 것인가?
노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노자(B.C.604년 출생, 공자는 B.C.551~479년)가 살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알아본다.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가 낙읍(洛邑)으로 동천(東遷)하고 나서 기원전 221년 진(秦)이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여러 제후가 대립하여 항쟁한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 말하고, 그 전반기인 기원전 770~403년을 춘추 시대, 후반기인 기원전 403~221년을 전국시대라 한다.
춘추 시대에 들어 주(周)나라의 봉건제도는 붕괴되기 시작하여, 강국은 인근의 소국을 병합하고 도시국가에서 점차 영토국가로 발전해 갔고, 서주(西周)말에 800개 가까이 되었던 국가는 춘추 시대 중기에는 수십 국으로 감소되었다(국가의 수는 감소하고, 크기는 커지는 경향).
춘추 시대 제후 간 회맹(會盟)을 이끌었던 맹주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제(齊) 환공,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월(越) 구천이 있다. 패자는 회맹(會盟)을 주최하여 이민족의 침입을 막고, 주(周) 왕실을 존중하고 숭배하여 소위 존왕양이(尊王攘夷)의 명목으로 중원을 통제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규구(葵丘)의 회(기원전 651년), 진(晋)나라 문공(文公)의 천토(踐土)의 회(기원전 632년)가 그것이다. 춘추 시대 초기까지 진(晉)이나 초(楚)와 같은 나라는 근처의 도시국가를 정복하면 부하에게 그 토지를 영지로 주지 않고 현(縣)이라 이름 붙여 국왕의 직할지로 만들었다.
이와 같이 봉건적 질서가 파탄된 가운데서도 희미하게나마 주(周)의 종주권으로서의 명목을 지킨 것은 패자(覇者)의 힘이었다.
그러나 남방의 초(楚)는 중원에 진출하여 진(晋)을 격파하고(기원전 597년) 패업을 이룩했지만, 패자의 성격도 달라져서 주나라 왕실은 아주 무시되었다.
춘추 시대는 봉건제로부터 군현제로,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지방분권에서 중앙집권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였다.
춘추 중기에는 철제농기구가 출현하여 심경법(深耕法)을 적용하고 농업 생산력은 증대되어 갔다. 철제농구의 본격적인 보급은 전국 시대에 내려와야 되지만 씨족적인 질서를 분해하고 계급 분화를 촉진했다. 토지 소유는 공동체적 집단 경작으로부터 개별적 경영으로 이행하고, 세제도 영주 직영지라는 노동 지대(地代)의 형태로부터 자작농의 현물지대 수납으로 변화해 갔다. 이와 같은 변화는 춘추 시대, 전국 시대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
춘추 시대의 말기가 되자 북의 진(晉), 남의 초(楚)가 힘을 잃고, 양쯔강(揚子江) 하류의 남쪽에 오(吳)와 월(越)의 두 나라가 등장한다.
진(晋)은 초(楚)의 북진을 견제하기 위해서 오의 군사적인 근대화를 원조하고, 오왕 부차는 노(魯)와 제(齊)를 무찌르고, 기원전 482년에는 황지(黃池)에 제후들을 모아 놓고 그 자리에서 진(晋)과 회맹의 주도권을 다투기도 하였다.
오에 위협을 느낀 초는 오의 남쪽에 있는 월과 동맹을 맺어 오를 공략하게 하여, 오왕 부차(夫差)는 패하여 자살하고, 오는 멸망한다(월왕 구천의 와신상담의 고사).
오를 멸망시킨 월왕 구천(句踐)은 세력을 북방으로 진출시켜 산둥(山東)이나 허난성(河南省) 남동부의 여러 나라를 그 산하(傘下)에 거두어들이고, 한때 도읍을 낭야(琅邪)에 옮기기도 했으나 얼마 안 가서 쇠망해버렸다.
한편, 춘추시대 후반으로 가면 진(晉)의 내부에도 6귀족(범(范), 중행(中行), 지(知), 조(趙), 위(魏), 한(韓))이 나타나 진의 공족 출신 귀족을 누르고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어 진후(晋侯)의 지위는 실제적인 힘이 없어, 직접 지배하는 지역은 6귀족 중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고, 문공(文公) 이래 북부 제후(諸侯)의 중심역할을 하면서도 국내적으로는 분열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기원전 453년에는 한, 위, 조 등 3씨가 가장 강대해진 지씨(知氏)를 공략하여 사실상 진을 3등분하여 독립하였다. 한·위·조 등 3씨는 기원전 403년에 주왕(周王)에 의해 제후로서 인정받게 되고, 춘추 시대를 통하여 유력한 대국으로서 제후를 통제해 온 진이 사실상 멸망한 이 해를 고비로 하여 그 전을 춘추 시대, 그 후를 전국 시대라고 부른다.
이와 같이 귀족이 제후를 억누르고 그 나라의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는 현상은 노(魯)나 제(齊)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춘추 시대 후반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전국 시대는 진(晉)나라의 대부 조(趙), 위(魏), 한(韓) 3가문이 주(周)나라 왕실로부터 정식 제후로 공인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한·위·조가 후(侯)라고 칭해졌다는 주나라 권력 장악의 핵심 제도인 종법제(宗法制: 천자가 형제 친척을 제후로 임명하고, 제후는 다시 자손을 대부로 임명한다.
그 결과 국가의 주요 기관장은 종친들이 되게 하는 혈연중심제도)가 무너진 것으로서, 이후 강력한 제후들은 주나라로부터 정신적 독립을 지향해 스스로 왕(王)을 칭하게 되고, 주왕조의 권위는 떨어지게 된다. 이것은 그 시기까지 중원에서 나름대로의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균형을 유지시켜오던 봉건제도가 붕괴되어 버리는 시발점이 되었다. 얼마 후 제(齊)나라도 기존의 강씨(姜氏)를 대신하여 전씨(田氏)가 지배하게 된다.
춘추 시대 초에 140여 개국이었던 도시국가의 거의 모두는 이때에 와서 7개 강대국 중 어느 한 영토에 편입되어 버렸다. 처음 강력했던 나라는 위나라였다. 문후(文侯)·혜왕(惠王)은 널리 인재를 구하여 대규모 관개사업을 벌이고, 한편으로는 지배한 지역을 군현화(郡縣化)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다음 제(齊)가 패권을 쥐었지만 얼마 안 있어 변경의 진(秦)·연(燕)이 강대해져 세력을 팽창함으로 인해 비로소 중원은 진·초·연·제·한·위·조의 7웅이 할거하는 형세로 바뀌었다.
그 중 진은 효공(孝公) 때 상앙의 변법에 의하여 크게 부국강병(富國強兵)의 성과를 올려 다른 나라를 누를 수 있는 힘을 보여주게 된다.
소위 합종연횡(合從連衡)이 제창된 것도, 또 4군(君)의 활약이 있었던 것도 이 시기였다.
이윽고 6국이 진(秦)에 굴복당하고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전국 시대는 봉건제에 따르는 제후국이 해체되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에 의한 고대 통일국가가 형성되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전국 시대에는 사 계급 출신의 관료가 실제의 정치를 장악하게 되고, 그 최고 지위에 군주를 보좌하여 정치의 전반을 총괄하는 상(相)이 있는데, 종래의 대부 등과는 달라서 세습이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종래 대부가 세습적으로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던 군제(軍制)에도 장군이라는 직위가 신설되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군주에 의해 장군이 임명되기에 이르렀다.
정치·군사가 분리되고 저마다의 책임자가 필요에 따라서 군주에 의해서 임명됨에 따라 군주권이 강화되는 한편, 능력에 따른 관료군이 형성되게 된다. 특히 진에서는 내정개혁을 단행한 상앙, 연횡설(連衡說)을 주장한 장의(張儀), 시황제의 승상이 된 여불위(呂不韋)와 같이 다른 나라의 출신자까지도 적극적으로 관료로 채용했다. 춘추 말기 공자(孔子)는 노(魯)의 고관이 되어 개혁에 실패한 후, 여러 나라의 군주에게 그 정치학설을 설(說)하고 다니면서 그 학설이 실현되도록 운동했다.
전국시대에는 철기(鐵器)의 보급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이것이 상공업의 발달 등, 사회 경제의 여러 양상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하였다. 국경을 초월한 대상인의 활발한 교류로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에 판로를 가진 대상인들은 사치품을 판매하여 큰돈을 벌었다. 서민의 필수품인 철기나 소금 등을 제조·판매하는 상인, 수공업자들의 재산은 때로는 왕후(王侯)와도 필적한다고 일컬어졌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일일이 통관세를 필요로 하는 국경이라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점차적으로 국경이 없는 중원의 통일을 이면에서 추구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는 대상인들이 전국을 유세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에서 보는바와 같이, 분립한 강국들이 서로 대립·항쟁하는 와중에서도 문화, 경제의 면에 있어서는 이미 중원이 하나의 세계로 성립되어 있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춘추 시대의 후반 이래, 죽간(竹簡) 등에 쓰여 있는 문자에는 상당한 통일성이 엿보이는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춘추 전국 시대의 중국사회의 일대 변혁 및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이 시기에 있어서의 철기의 보급과 생산력의 현저한 발달이었다. 이 생산력의 발달 요인은 춘추 시대에 시작된 우경(牛耕)의 보급과 전국시대에 보급된 철제농구의 사용이었다. 철제농구 이전의 농구는 거의가 석제나 목제였으며, 그것은 토질이 부드러운 황토지대에서의 경작에는 그런대로 쓸 수가 있지만 수목을 베어내고 새로 경지(耕地)를 일굴 때는 극히 비능률적인 농구였다. 이 곤란을 타개하며 개간을 용이하게 하고 심경(深耕)에 의한 토지의 생산력을 증대시켜 준 것이 철제농구이며, 그 사용을 계기로 농업은 놀랍게 진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에서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춘추 시대의 전반(기원전 6, 7세기경)이며, 이때 제나라 동종(銅鐘)의 명문(銘文)에 ‘제철 노예 4천명’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관영 제철사업은 꽤 대규모였던 것을 알 수 있고, 괭이, 삽, 가래 같은 농구의 주조는 전국시대에 들어와서 발달하였다.
우경과 철기가 보급되어 생산이 부국강병의 근본으로 장려되자 이제까지 돌보지 않던 황무지까지 개척되며, 농업생산은 한층 더 발달하게 되었다.
춘추 시대에는 나라의 제사를 끊으면 나라의 조상으로부터 저주받는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나라를 점령해도 완전하게 멸해 버리는 일은 그만큼 많지 않고, 또 멸망해도 부흥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국 시대에 들어가면 용서가 없어져, 한번 전쟁에 지면 나라는 바로 멸망하였다.
전국시대에 7개 진(秦), 조(趙), 위(魏), 한(韓), 제(齊), 연(燕), 초(楚) 대국이 부상하는데, 이 나라들을 전국 칠웅(戰國七雄)이라고 부른다.
(위키백과 등 참조)
중국의 상고시대 삼황오제에 의한 통치가 있은 후에, 夏나라는 오제의 손자 중 한 명인 우임금이, 商(殷)나라는 황제(黃帝)의 후손인 탕왕(湯王)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즉, 신계에 속하는 삼황오제의 후손들이 천명을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주나라는, 황제의 후손이 아닌, 농사일 잘하는 후직의 자손이 나라의 왕이 되고, 결국 은을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니(기원전 1046년), 천명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는 것이 되어, 제후국들과 백성들을 설득해서 복종시키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명분을 쌓는 노력을 하게 된다. 주나라는 그 당위성을 덕에서 찾게 된다.
은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의 덕이 없어, 천명이 덕이 있는 주나라로 이전한 것으로 명분을 찾는다. 그리하여 신에 의해 통치되던 나라에서 덕이 있는 인간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로 바뀌게 된다. 즉 인간세계의 덕이 신의 뜻도 바꿀 수 있는 인간중심 사회로 변화되게 된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강화하여, 혈연에 의해 제후국을 통치하는 종법제도를 확고히 하고, 정전제를 도입하여 국가재정을 강화시켜 강력한 주나라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해도 차면 기운다고 했듯이 기원전 782년 즉위한 유왕의 실정으로 주는 서주시대를 마감하고 (기원전 771년) 신후와 제후의 옹립으로 평왕이 즉위하고 도읍을 낙읍으로 옮겨 동주 시대를 열게 된다. 이때부터 춘추 전국시대가 개막된다.
춘추시대에 철기가 발명되고 전국시대에 철제 농기구가 보급되면서 농가의 생산력이 높아짐에 따라 농가소득이 늘고 신흥 부자계급이 탄생하고 신분상승욕구가 증대된다.
이는 계급갈등의 심화를 초래하여, 당시 지배계층이던 천자와 제후간의 균열이 깊어지고, 군자와 소인간의 갈등도 커지게 된다.
하늘의 뜻, 천명이 약화되고, 소인, 제후, 인간만이 남게 되어, 인간은 인간을 초월한 어떤 힘의 명령대로 살지 않고 인간 스스로 살아가야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당시의 현인(철학자)인 공자와 노자는 인간이 스스로 가야할 길을 만들어야 했고 그것을 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도의 출현은 인간의 신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인 것이다. 신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신화의 시대에서 철학의 시대로, 맹목적 믿음의 시대에서 사유(생각)의 시대로 변화해간 것이다.
따라서 천명의 모순을 극복한 도의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천명은 하늘(상제)이 중심이고, 거친 사회이며 주관적이고 일관적이지 않고 감춰진 주관성에서 권위는 일부 선택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비의성 주관성, 임의성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에 도는 이에 대립되는 보편성, 투명성, 객관성의 확보하여, 天命論을 극복하고 도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였고, 이것이 당시 노자, 공자와 같은 철학자의 과제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리된 공자의 생각은 ‘모든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한테 있다’. 仁은 인간일수 밖에 없는 씨앗인데, 인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노자는 仁이라는 합의된 기준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은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된다고 비난하고, 도의 근거를 자연의 질서에서 구해야(天道無親). 보편성, 투명성, 객관성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무위자연의 도를 논한다. (서강대 최진석 교수 강의 참조)
노자는 그의 사상을 도덕경의 첫 장에 정리해 놓았다.
보편적 이념은 기준이 될 수밖에 없으며 합의된 기준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은 권력이 되고 폭력이 되는 것이며, 사회 속에서 구분되고 배재되고 억압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계와 관계를 할 때, 자기 내면의 가치를 최대한 약화 시켜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서 도가 들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자가 채움의 철학이라면, 노자는 비움의 철학이라 할 수 있겠다. 노자의 관계론은 有無(유무)가 공존해서 이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有無의 대립, 긴장 속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므로, 이 유무의 관계로 이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노자의 有無(유무)와, 周易의 陰陽, 데카르트의 정신과 물질 등은 모두 이 세계를 설명하려는 관계론 적 접근이다.
당시 노자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과 사회의 문제였고, 인간과 사회 문제를 조정하는 원칙을 전통이 아니라 자연에서 구했을 따름이다. 전통은 가명可名이고 가도可道이며 바로 인도人道이다. 자연은 상도常道이고 상명常名이며 바로 천도天道이다. 노자의 관심은 우주의 발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떤 형식으로 존재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노자는 『도덕경』 제 l 장에서 『도덕경』 전체 내용을 구성하는 가장 중심이 되는 세 가지 범주 즉 道, 無, 有의 의미와 이 세 범주들 사이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골격을 보여 주고 있다.
[道德經 第1章]
道可道 非常道 道가 말해질 수 있으면(설명될 수 있으면) 진정한 道가 아니다.
- 可道는 언어 친화적이고 구분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道라 할 수 있다.
- 공자는 人道, 可道, 可名의 철학이고, 노자는 天道, 常道, 常名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 道라고 하는 본체(천지의 뿌리, 만물의 어머니, 조화의 근원)에 道라고 하는 말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은 常道(영원불변의 천도)가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사람들이 도의 본체도 모르면서 도의 진리를 우상화하고 도라는 말과 이름에 집착하는 당시의 위선적 경향을 깨기 위하여 만든 글.
名可名 非常名 이름이 정의되거나, 개념화될 수 있으면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 춘추시대 부자가 된 소인과 군자의 역전 현상, 名과 實의 혼란 속에서 명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상황을 고려하여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개념화 된다는 것은 구분 짓는다는 것이다.
無 名天地之始 세계(천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영역인 출발, 시작 등을 無라고 부른다.
- 시작은 다른 것을 가능케 하지만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 無는 有가 그 형을 나타나지 않은 것을 말하고, 有는 無가 그 형을 나타낸 것.
有 名萬物之母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포괄해서 有라고 이름 붙인다.
故常無 欲以觀其妙 고로 언제나 無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하고
- 고로(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므로 인간은) 상무(영원불변한 무)를 가지고는 그 묘한 것(희미한 것, 눈으로 볼 수 없는 형태, 자취, 그 실마리도 없는 것)을 보려하고, 상유(영원불변의 유)를 가지고는 그 구분(경계, 형태, 자취)를 보려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보고 깨닫는 것(공부하는 것, 觀法: 觀無, 觀妙, 觀有, 觀徼)
常有 欲以觀其徼 언제나 有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한다.
- 요: 경계, 실루엣
此兩者同出而異名 양자(有無)는 같이 나왔지만 이름을 달리한다.
- 無는 아무것도 없는 無가 아니고 가운데에 妙有를 포함하고 있다(無非眞無 中含妙有), 有는 실체의 유가 아니고 현묘한 무를 잉태하고 있다(有非實有 中孕玄無), 그러므로 유는 무이고 무는 유이다. 有無는 같이 나왔지만 본래가 둘이 아니다(故 有卽是無 無亦卽有 有無本自不二: 色卽是空 空卽是色)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같이 있다는 게 현묘하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 모든 묘한 것들이 들고나는 문이다.
- 유와 무가 혼재해 있어, 시비와 선악을 분별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그것을 의식하는 것도 없어진다(渾有無 去分別相 泯分別識). 혼재하고 혼재해서 흐리뭉퉁하게 알 수 없는, 천지가 창조되기 전의 세계임(渾之又渾 卽鴻濛未判 天地未生前). 중묘는 有無로부터 나오며, 有無는 道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有無를 道의 門이라 한다. 또한 天地萬物의 門이라 한다.
- (종합) 우주가 형성되기 전, 천지가 나뉘어지기 전, 음양이 갈라지기 전, 만물이 태어나기 전, 모든 형상이 깨어나기 전, 고요하고 움직임이 없는 조짐조차 없는 세계, 특별히 이름 부쳐 말하기를 道니 無니 하고 이름 붙였다. 모든 일체는 道에 의해서 발생하고 道라는 본체는 삼라만물을 발생시킨 것이다.
노자는,
어떤 가치 체계를 상정하고 그것을 추종하고 부단히 학습해야 성숙한 인간 내지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공자에 대해서,
만일 그렇게 하면 바람직한 것으로 합의된 가치를 정점으로 인간군이 차별화 되고, 그 차별화 안에서 극심한 경쟁과 갈등이 야기되며, 그 가치가 결국은 권력으로 작용하여 사회는 혼란해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해치게 된다고 경고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본질주의적 세계관에서 모든 것은 각자의 고유한 본질을 가지고 그 본질 때문에 그것이 된다. 그것은 특성이라고도 불리고 개성이라고도 불린다. 내가 나인 이유, 개가 개인 이유, 물질이 물질인 이유가 각각에게 배타적이면서도 고유하게 갖춰져 있는 것이다.
노자는 이런 세계관과는 다른 방향에 서있다. 즉 무와 유가 서로 상대편의 존재 근거가 되면서 공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쉬움과 어려움, 길고 짧은 것, 높고 낮은 것, 앞과 뒤, 음과 성 등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그 반대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것이 되며, 모든 것은 그 반대편을 향해 항상 열려있다.
여기서 노자의 ‘도’가 분명해진다. 노자는 이 세계를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꼬여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이런 원칙을 ‘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도는 이 세계의 발생 근원도 아니며 실체도 아니다. 도는 대립쌍들의 관계를 개괄하는 범주이기 때문에 그것만큼은 짝이 없다.
[道德經 第2章]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세상 사람물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이는 추하다.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
- 위의 두 구절은 가치 통일 내지는 집중을 강조하는 공자식의 문명관에 반대하는 구절이다.
- 노자가 보기에 모든 가치는 중립적이다.
그런데 전통과 역사는 특정 가치를 저 위에 걸어 놓고, 백성들을 거기에 모두 통합시키려 한다.
통합적 욕구를 발산하는 이런 가치를 진정한 가치로 아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여기서 노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 병의 원인은 ‘知’ 한 글자에 있다(病根 在於知之一字) 知: 本能知, 生活知(學習知, 技能知, 운전, 컴퓨터 등), 總體知(槪念知). 사람은 의견, 주의, 주장을 안다고 한다. 분별과 차별, 편견에 의해서 판단한다.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恒也: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 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뤄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과 성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르니, 이것이 세계의 항상 그러한 모습이다.
-物必有對, 相對性→循環→反成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자연의 이런 원칙을 본받아 성인은 무위하는 일을 하며, 불언의 가르침을 행 한다
- 노자는 앞 구절에서 자연의 존재 형식을 말하고, 시이(是以)로 연결하여 다음 구절에서는 자연의 그런 모습을 근거로 하여 혹은 자연의 그런 모습을 모방하여, 인간이 해야 할 바람직한 행위의 모습에 대해서 말한다.
- 여기서 무위는 노자의 핵심 범주 가운데 하나이다. 무위와 반대되는 행위는 인위(人爲) 즉 유위(有爲)인데, 이것들은 무슨 목적이나 욕망을 가지고 하는 행위로서 인위적인 성격을 강하게 포함하는, 특정한 체계나 기준에 맞추어서 하는 행위이다.
반면, 자연의 질서는 어떤 욕망이나 목적 혹은 체계로 닫혀 있지 않고 아무런 목적이 없이 무심하게 운행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의욕이나 욕망 혹은 목적을 근거로 행위(有爲)하면, 그것은 하나의 초점을 향해 나아가고, 그 초점은 다론 것들을 모두 제치고 행위자를 향해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그것은 자연의 원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의 존재 형식을 모델로 하는 행위는 무위하는 자연을 따라 무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 노자의 교육관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 불언지교(不言之敎)이다. 언(言)은 어떤 존재나 가치를 일정한 의미로 규정하기 때문에 ‘언지교(言之敎)’는 이 세계의 진상에 접근하는 교육이 될 수 없다.
이 세계에는 자신만의 본질을 근거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엇의 본질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엇을 정의 내리는 것도,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본질을 드러내 주는 작업이다.
노자가 보기에 본질적으로 확정된 가치나 기준에 인간을 통일, 집중시키는 교육은 인간과 사회를 그 본질적인 가치와 기준에 가까이 접근했는지 여부에 따라 차등화하고, 이런 차등화가 결국은 사회를 경쟁으로 내몰아 역설적으로 그런 가치와 기준이 손상되는 결과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본질주의적 세계관과 그 세계관을 지탱하는 직접적이고 축적적인 교육은 인간의 사고를 세계의 진상으로부터 차단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노자가 보는 세계의 진상은 어떤 존재나 가치도 불변하고 배타적인 본질을 근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편의 존재와 가치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차라리 세계가 그러하다는 진상을 파악하고 세계의 진상을 운용하는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리 자체가 비본질적이기 때문에 언어나 명제로 개념화하여 그것을 고정시키고, 그 고정된 지식을 축적하고 전승하는 교육 방식은 오히려 인간을 옭아매는 역할만 하게 된다. 상대적 관계로
얽혀서 부단히 변화하는 세계에서 고정하고 축적하는 기능을 하는 언어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그것이 바로 불언지교(不言之敎)의 뜻이다.
萬物作焉而弗始 生而弗有 爲而弗志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弗去: 만물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그것을 자신이 시작하도록 했다고 하지 않고, 잘 살게 해 주고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으며, 무엇을 하되 그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하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 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오로지 그 공 위에 자리 잡지 않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는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혹에 이끌리기 쉬운 존재다.
유가는 윤리적 도덕의 힘으로 막으려 했고, 법가는 법과 형벌과 같은 제도적 장치와 강압에 의해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도가는 아예 욕망의 근원을 없앰으로써 문제 자체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똑똑한 사람을 높이지 말라(不尙賢)”,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라(不貴難得之貨)”, “욕심낼 만한 것을 내보이지 말라(不見可欲)”이 그 근원적 처방에 해당한다. 인간을 욕망으로 이끄는 주범은 마음(心)과 뜻(志)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노자는 이를 비우고 약화시키라고 한다.
반면에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우게 하고 약한 몸을 튼튼하게 하라고 한다.
노자는 소위 똑똑한, 지혜로운 자 들을 받들어 그들이 세상을 멋대로 망치게 하는 것을 경계한다.
따라서 그들을 높이지 말고, 그들이 함부로 날뛰도록 두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혹에 이끌리기 쉬운 존재다. 유가는 윤리적 도덕의 힘으로 막으려 했고, 법가는 법과 형벌과 같은 제도적 장치와 강압에 의해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도가는 아예 욕망의 근원을 없앰으로써 문제 자체를 해소하고자 하였다. “똑똑한 사람을 높이지 말라(不尙賢)”,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라(不貴難得之貨)”, “욕심낼 만한 것을 내보이지 말라(不見可欲)”이 그 근원적 처방에 해당한다. 인간을 욕망으로 이끄는 주범은 마음(心)과 뜻(志)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노자는 이를 비우고 약화시키라고 한다. 반면에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우게 하고 약한 몸을 튼튼하게 하라고 한다.
노자는 소위 똑똑한, 지혜로운 자 들을 받들어 그들이 세상을 멋대로 망치게 하는 것을 경계한다. 따라서 그들을 높이지 말고, 그들이 함부로 날뛰도록 두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道德經 第3章]
不尙賢 使民不爭: 똑똑한 사람을 높이 치지 않아야 백성들이 경쟁에 휘말리거나 다투지 않게 된다
- 단일한 가치나, 일정한 가치 체계로 사회를 통합하고, 상정된 가치 체계를 이상화하며, 그 이상에의 접근 정도에 따라 인재와 비인재를 구별하는데, 이런 사회에서는 경쟁이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갈등은 오히려 용인되는 필요악이다.
어느 단계에서나 그보다 더 위의 단계가 존재하게 되고 모두가 그 윗 단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회는 아무도 행복해 하지 않는 사회이기 쉽다.
위 아래로 나뉘어진 사회가 아니라 옆으로 다양하게 전개되는 사회가 바로 노자가 바라는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는 경쟁보다는 선택이 행복을 보장해 주고, 하나의 영웅이 이상화되기보다는 다양한 영웅이 출현하며, 크고 강한 나라가 아니라 크기가 작은 여러 나라(小國寡民)가 공존할 것이다.
또한 이상(理想)으로 일상(日常)을 말살하지 않는 사회이다.
이상을 상정하고, 거기에 맞는 인간형 즉 현자를 추앙하는 사회의 폐단을 노자는 공격한다.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는다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욕심 낼만한 것들을 보이지 않아야 백성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 않는다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그래서 성인이 하는 정치는 그 마음은 텅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워 주며, 그 의지는 유약하게 해 주고, 그 뼈대를 강하게 한다.
- 현(賢)이라든지 난득지화(難得之貨) 그리고 가욕(可欲)할만한 것들은 원래 구분이 없는 자연 상태로부터 이탈된 인위적 가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자연의 모습에서 이탈된 인위적 가치들을 개량적으로 조정하기보다는 그런 인위적 가치들을 향한 의지를 약화시키려 한다.
여기서 성인이 약화시키려는 것은 마음이나 의지이다. 우리는 주관과 객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그물인, 편견, 이미 학습된 내용들, 관습 그리고 욕망 등이 포함된, 문화 체계나 이데올로기 혹은 이론 체계를 통해서 외부대상들과 관계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 왜곡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노자는 우리에게 주관과 객관 사이의 그물을 최대한 약화시키거나 그 그물의 구멍(언어 체계)을 최대한 크게 하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물을 거친 행위가 바로 유위이고, 그물의 훈도(薰陶:교화하고 훈육하는 것)를 극복한 행위가 바로 무위이다.
이 그물의 훈도를 개의치 않고 외부 대상의 진면목에 바로 접근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부류가 바로 시인이자 연인이며 광인이자 철인(哲人)이다.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항상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 무욕하게 하고,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 욕망이나 의욕도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나가려는 심적 활동이다.
하나의 욕망을 실현하려다 보면 그 욕망에서 비켜나 있는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고, 또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는 하나의 욕망으로, 하나의 지향성으로, 하나의 배타적 체계로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실현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저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사회를 혼란스럽게 히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자신의 뜻을 펼치려는 자들이다. 그 뜻은 무엇인가? 좁다란 한계 속에 갇힌 튼튼한 체계이다. 하나의 체계로 세상을 닫고 그 닫혀 진 세계 안으로 모든 백성을 집중 통일시키려는 허망하고도 광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지혜로운 자들이다.
노자에 따르면, 하나의 체계나 기준 안으로 인간을 끌어들이는 것보다 모든 체계를 넓은 광야에 풀어헤쳐 놓고 열린 광장에서 인간을 뛰어 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한 삶과 질서 잡힌 사회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에게는 중앙 집권보다는 지방 분권, 대국다민(太國多民)보다는 소국과민(小國寡民), 단일성보다는 다양성, 폐쇄성보다는 개방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 노자가 말히는 무지 무욕은 “정보의 적은 소유를 통해 고결한 인성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라, 구분되고 한정된 지식, 구분되고 한정된 어떤 체계에 대한 신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 知行合一(지행합일) 알면 행하게 되는데, 경계를 품은 사람은 과감하지 않고, 확신을 함부로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잘 안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하려고 하지 못하게 한다.
노자에게 도(道)는 어떤 실체나 근원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계가 반대되는 두 계열의 범주로 꼬여 있다는 원칙 내지는 그런 사실을 나타내는 범주이다.
즉 도는 어떤 본질적 내용으로 규정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텅 비어 있다고 묘사한다.
도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을 채울 본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의 의미이다.
노자는 이런 도의 이런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모든 인위적 가치나 제도들의 모델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있다. 노자의 철학체계 안에서, 가장 훌륭한 행위는 도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다.(孔德之容, 惟道是從: 제21장) 허(虛), 무위(無爲), 유약(柔弱), 무욕(無欲), 무명(無名) 둥도 모두 텅 비어 있는[沖] 도의 모습을 본떠서 하는 행위 방식들이다.
도는 천지 자연 만물이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나,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보다도 먼저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道德經 第4章]
道沖而用之或不盈: 도는 텅 비어 있다. 그러나 그 작용은 끝이 없다.
淵兮! 似萬物之宗: 깊기도 하구나! 마치 만물의 근원 같다.
- 연(淵)은 도가 만사만물의 성립과 운행에 작용하는 가장 밑바탕이 되는 원칙이라는 의미에서 채택된 용어 이고
- 도가 마치 ‘만물의 종주’ 같아서 모든 만물이 그 도로부터 연역적으로 발생되어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湛兮! 似或存: 신비롭기도 하구나! 마치 진짜로 있는 것 같다.
- 담(湛)은 도가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드러나는 어떤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 도가 얼핏 보면 진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뜻. 도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서의 기능만 있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나는 그것이 누구의 자식인지 모르겠다. 하느님보다도 먼저 있었던 듯하다.
- 노자는 자신이 살던 당시의 천명관(天命觀)을 과감히 벗어나, 도를 당시까지 가장 높고 위대했던 상제보다 더 근본적인 것으로서 이제는 전혀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자연의 존재 형식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구분을 해소하며
그 빛을 조화시키고 그 세속에 같아진다. 56장과 중복으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노자에게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천지, 자연의 운행 모습과 존재 형식을 모방하는 것인데(孔德之容, 惟道是從: 제21장), 노자가 보기에 인은 이런 자연의 모습보다는 한충 낮은 단계이다.(大道廢有仁義: 제18장) 천지, 자연의 모습은 어떤 것을 특별히 더 사랑하거나 더 미워하는 것이 없이 무차별적이다.(天道無親: 제79장) 不仁은 虛靜이며 無爲이다. 그것은 풀무의 텅 빈 공간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힘없이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전혀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토해 내는 동력이 된다.
각장 원문의 해석은 서강대 최진석 교수의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을 기본으로 하고 일부 다른 참조할만한 해석이 있을 경우 추가한다.
노자에게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천지, 자연의 운행 모습과 존재 형식을 모방하는 것인데(孔德之容, 惟道是從: 제21장), 노자가 보기에 인은 이런 자연의 모습보다는 한충 낮은 단계이다.(大道廢有仁義: 제18장) 천지, 자연의 모습은 어떤 것을 특별히 더 사랑하거나 더 미워하는 것이 없이 무차별적이다.(天道無親: 제79장) 不仁은 虛靜이며 無爲이다. 그것은 풀무의 텅 빈 공간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것은 힘없이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전혀 굴하지 않는 생명력을 토해 내는 동력이 된다.
[道德經 第5章]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는 인하지 않다. 만물을 모두 풀강아지로 여긴다.
- 芻狗는 제사 때 사용하는 풀로 만든 개다.
제사 때만 의례용으로 사용하다가 제사가 끝나면 버리므로 제사 후에는 아무도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제사 후의 추구를 대하듯이 천지, 자연은 그렇게 무심하게 만물을 대한다는 뜻이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은 인하지 않다. 백성을 모두 풀강아지로 여긴다.
- 천지, 자연의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모방하고 있는 성인도 백성을 대할 때, 자신의 의지를 개입시켜 차별적으로 대하는 법이 없이 무심하고도 공평, 무사하게 대한다.
天地之間 其猶槖籥(탁약: 대장간의 풀무)乎: 천지 사이는 풀무와 같구나!
虛而不屈 動而愈出: 텅 비어 있지만 작용은 그치지 않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생명력이 넘친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금방 한계에 봉착한다. 중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
- 말은 본래 무엇을 규정하고 어떤 범위로 한정하며 체계를 세우는 대 쓰인다. 따라서 이런 체계가 물샐틈없이 정밀하거나 번잡하며 확고하면 그것 때문에 숨이 막혀 생명력이나 활기를 잃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이런 언어적 체계나 규제에 의존하기보다는 중(中)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즉 무위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박완식 훈장 강의 발췌]
仁: 노자는 仁의 개념 훨씬 위에 道를 두었다. 道 다음이 德, 그 다음이 仁, 그 다음이 義
따라서 작은 사랑 정도로 생각한다.
爲芻狗: 자유롭게 있도록 버려둔다는 의미.
모계 사회였던 하(夏)나라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노자 철학의 특징이 배어 있는 곡(谷)과 ‘여성성’은 『도덕경』 안에서 중심적인 모티브로 기능하고 있으며, 노자 사상이 계승하고 있는 문화적 원류를 추적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도의 기능이나 작용은 빛을 발하듯이 휘황찬란하게 요란스럽지 않고, 계곡에 숨거나 가려져있는 듯이 은근하여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겨우겨우 명맥이나 유지하면서 이어지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곡신(谷神)과 현빈(玄牝)으로 은유하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이렇게 유약하지만, 그 작용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이런 모습을 천지근(天地根)이라는 표현법을 가지고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모계 사회였던 하(夏)나라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노자 철학의 특징이 배어 있는 곡(谷)과 ‘여성성’은 『도덕경』 안에서 중심적인 모티브로 기능하고 있으며, 노자 사상이 계승하고 있는 문화적 원류를 추적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도의 기능이나 작용은 빛을 발하듯이 휘황찬란하게 요란스럽지 않고, 계곡에 숨거나 가려져있는 듯이 은근하여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겨우겨우 명맥이나 유지하면서 이어지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곡신(谷神)과 현빈(玄牝)으로 은유하고 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이렇게 유약하지만, 그 작용력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이런 모습을 천지근(天地根)이라는 표현법을 가지고 은유적으로 묘사했다.
[道德經 第6章]
谷神不死 是謂玄牝: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룰 일러 미묘한 모성이라 한다.
- 계곡은 텅 비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은은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생명의 기운을 잉태시킬 수 있다.
노자는 이것을 현빈(玄牝)이라 부르고 었다.
-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박완식 훈장 강의 발췌]
玄牝: 천지조화나 만물을 생육하는 근본이며 도의 별칭 卽指造化生育萬物之根本, 道之別稱也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암컷의 갈라진 틈, 이를 일려 천지의 근원이라 한다.
綿綿若存 用之不勤: 면면히 이어져 오면서 겨우 있는 것 같지만, 그 작용은 무궁무진하도다.
제4장부터 7장까지 도가 작용하는 특징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도가 텅 비어 있다는 뜻을,
제5장에서는 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不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6장에서는 도가 여성적인 모습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제7장에서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도의 성질을 설명한다.
이러한 특징이나 성질들은 모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구체화된 것이다.
이장에도 노자의 철학이 천도에서 인도를 연역해 내는 것, 즉 자연의 운행 원리를 모델로 하여 인간 문명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는 체계로 말하고 있다.
제4장부터 7장까지 도가 작용하는 특징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도가 텅 비어 있다는 뜻을,
제5장에서는 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不仁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6장에서는 도가 여성적인 모습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제7장에서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도의 성질을 설명한다.
이러한 특징이나 성질들은 모두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구체화된 것이다.
이장에도 노자의 철학이 천도에서 인도를 연역해 내는 것, 즉 자연의 운행 원리를 모델로 하여 인간 문명을 건설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는 체계로 말하고 있다.
[道德經 第7章]
天長地久
천지, 자연은 장구하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지, 자연이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생할 수 있다.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성인은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앞서게 된다. 그 자신을 도외시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보존된다. 그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능히 그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
- 천지, 자연이 자신의 의지나 욕망에 따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들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도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면 저절로 권위를 회복하여 선두에 서거나, 자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사적인 기준이나 의욕을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능히 그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 가치와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완성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에서 향유되는 완성이다.
노자는 수준 높은 삶을 영위하는 훌륭한 덕을 이야기할 때는 물을 주요 모티브로 한다. 여기서 노자는 ‘천도’로부터 연역된 ‘인도’를 운용하는 훌륭한 태도는 바로 물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에서 도가 물과 같은 성격으로 운용된다는 이해에 근거한다.
성인의 덕은 물의 덕(가장 훌륭한 덕, 7가지 덕으로 상세하게 설명)과 같이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는 것이다.
노자가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할 때, 자주 옛 사람(古之人) 또는 옛날(古)을 말하는 것은, 어떤 고대의 문화를 이상적인 모델로 상정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하(夏)나라의 모계 문화를 계승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夏)나라 문화의 내용과 도덕경이 지향하는 문화적 내용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는데, 그 공통된 내용은 1. 흑색(黑色)을 숭상, 2. 충(忠)과 신(信)을 숭상, 3. 형벌과 세금 및 노역을 약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자애로움(慈愛)을 숭상, 4. 검소(儉素)함을 숭상, 5. 물(水)을 숭상, 6. 우박(愚朴)을 숭상하는 것 등이다.
[道德經 第8章]
上善若水: 가장 훌륭한 덕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물은 만물을 이롭게만 하지 다투지는 않고, 주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 물은 자신 앞에 있는 사물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없이 그저 비켜갈 뿐이다. 사물들은 땅에다 뿌리를 박고 위를 향해 성장한다. 사람들도 똑같다. 그러나 물은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낮고 더러운 곳을 향해 흐른다. 그리고 그 곳에 머물며 다른 사물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고 이롭게 한다. 거기서 생명을 불어넣고 또 새로운 싹을 틔우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바로 도를 체득한 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도가 운행하는 모습과 가장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몸을 낮춰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갈등도 없고, 허물도 있을 수 없다.
居善地 心善淵 予善天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물과 같은 이런 덕을 가진 사람은, 살아가면서 낮은 땅에 처하기를 잘하고, 마음 씀씀이는 깊고도 깊으며, 베풀어 줄 때는 천도처럼 하기를 잘하고, 말 씀씀이는 신실함이 넘친다. 정치를 한다면 질서 있게 잘하고, 일을 할 때는 능력에 잘 맞추며, 거동을 할 때는 때를 잘 살핀다. 오로지 다투지 않으므로 허물이 없구나.
공수신퇴功遂身退,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난다. 박수칠 때 떠난다. 참 좋은 말인데, 실천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말이다. 노자시대에도 이것은 어려운 과제였나 보다.
우주의 존재 형식인 천도는 자신을 채우거나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뒤로 물러나는 모습으로 작용한다. 노자에게 인간사를 처리하는 모델은 자연에 있다.
무엇을 계속 꽉 채우려고만 하거나 자신의 이론 혹은 제도를 빈틈없이 만들어 과시하거나, 부귀를 가졌다고 교만해 하는 태도는 자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것들은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보다 더 심층에 있는, 본질주의적 세계관이 필연적으로 인도할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우리가 영위해 왔던 이런 일상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반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그것을 피하지 못했던 것은 본질주의적 세계관이 우리 일상을 그런 일상이 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道德經 第9章]
持而盈之 不如其已: 계속 채우려 드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더 낫고,
- 持盈은 계속 채우고 키우려고만 하거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모습이다.
揣而銳之 不可長保: 잘 다듬어 예리하게 하면, 오래갈 수 없다.
金玉滿堂 莫之能守: 온갖 금은보화를 집안 가득 채우지만,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富貴而驕 自遺其咎: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는 꼴이다.
功遂身退 天之道也: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노자의 관계론을 알 수 있는 글이다.
노자에게는 모든 행위나 가치 및 제도의 근거가 자연이다.
자연의 특징은 변화와, 반대편으로의 개방성이다.
이런 특징을 가진 자연의 운행은 부드럽고 포용성을 띤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노자는 유약함과 부드러움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유약함과 부드러움을 함축하는 대표적인 표상으로서, 불보다는 물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남성보다는 여성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을 때 자신의 신념이나 체계를 가지고 강하게 외부를 제압하려 하거나 외부 세계를 구성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외부를 껴안고 순응하는 여성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자가 보기에 세계는 어떤 것도 자신의 본질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반대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구분과 규정을 수행하는 지(知)를 가지고 세계를 인식하려고 덤비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의 진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최고의 경지는 바로 무지(無知)의 태도로 하는 것이다.
논어주소 위정편 17장에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不知爲不知 是知也’ 이라고, 플라톤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나는 적어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가장 현명하다’는 말. 모두 같은 맥락의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하고, 무엇을 규정지으려 하고, 남들을 가르치려 한다.
[道德經 第10章]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혼(營=魂)과 백(魄)을 싣고서 하나로 안아 분리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 몸의 움직임에 뜻을 개입시켜 관여하는 것이 혼(營=魂)이고, 가만히 있음으로써 형체를 이루는 것이 백(魄)이다. 혼은 정신이고 백은 육체이다.
專氣致柔 能嬰兒乎? 기를 집중시켜 몸을 부드럽게 하기를 어린애처럼 할 수 있는가?
滌除玄覽 能無疵乎? 우주를 비추는 마음의 거울을 닦기를 아무 흠도 남아 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 이 세계는 언어나 지식 체계로 가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을 쌓기보다는 편견과 고집으로 가득 찬 지식 체계를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우주나 사물을 본래 자연의 모습 그대로 바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한다. 아무 흠이 없는 단계까지 마음의 거울을 닦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우리에게 이미 있는 이름, 이미지, 체계 등이 모두 흠이다. 어떤 본질적 내용을 지키고 키워 나갈 것을 주장하는 맹자의 확충(擴充)이나 집의(集義) 둥과는 다른 것이다.
愛民治國 能無爲乎?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무위자연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가?
天門開闔 能爲雌乎? 감관을 통해 외부와 관계를 맺음에 암컷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 천문(天門)은 인간이 외부와 관계를 가질 때, 가장 근저에서 기능하는 이목구비(耳目口鼻)의 감각 기관을 가리킨다.
- 암컷의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념이나 체계를 가지고 강하게 외부를 제압하려 하거나 외부 세계를 구성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외부를 껴안고 순응하는 여성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明白四達 能無知乎? 사방 세계를 밝게 이해함에 있어 무지의 태도로 할 수 있는가?
-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안다(知)고 할 때, 그 안다(知)는 의미는 알려고 하는 바로 그것을 그것 이외의 다른 것들로부터 분리해서 드러내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데, 그 규정을 완성하는 내용이 바로 본질이며, 그 본질을 드러내는 작업을 정의 내린다(言)고 한다. 따라서 앎(知) 본질, 규정, 구분, 정의, 말(言), 이상, 남성, 불, 아버지, 체계 등은 모두 가까운 친척 관계에 있다.
그러나 노자가 보기에 세계는 어떤 것도 자신의 본질 속에 갇혀 있지 않다. 본질은 없고 반대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세계이다. 따라서 구분과 규정을 수행하는 지(知)를 가지고 세계를 인식하려고 덤비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의 진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최고의 경지는 바로 무지(無知)의 태도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식해도 좋다거나 앎을 줄여야 한다거나 지식을 사용함이 없는 순수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生之畜之 生而弗有 爲而弗恃 長而弗宰 是謂玄德: 낳고 기른다. 무엇을 낳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무엇을 길러 주고도 그것을 주재하려 들지 않는다. 이것을 현덕이라고 한다. 제51장과 착간으로 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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