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7. 열반의 길 ① 라즈기르·파트나
“아난다여! 나도 늙었다” 육성 들리는 듯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기’위해 시작된 지난한 여로(旅路)중인 2002년 3월22일 금요일 저녁 7시. 네팔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지 11시간만에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에 마침내 도착했다. 세간·출세간의 스승 부처님이 입적한 곳. 늦게 도착한 탓에 열반당은 곧바로 참배하지 못했다. 열반당 맞은 편에 위치한 빠딕호텔에서, 열반당 쪽으로 혹은 쿠시나가라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며, 부처님 열반의 길을 밤새 생각했다.
라자가하 영취산에서 출발
열반의 길, 부처님의 위대한 마지막 길. 그 길은 〈마하파리닛바나 숫탄타〉에 의하면 라자가하(현재의 라즈기르)에서 시작됐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부처님은 라자가하 영취산을 뒤로한 채, 고향 카필라바스투를 향한 ‘마지막 여로’에 올랐다. 80이 된 노구를 이끌고, 아난다 존자를 대동한 채. 귀로(歸路)의 그 길목에서 부처님은 제자들과 재가신자들에게, 때로는 이교도들에게 올바른 ‘인간의 삶’과 ‘어떻게 닦고 깨닫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들려주었다.
라자가하 영취산에서 ‘쇠망이 오지 않는 일곱 가지 가르침’인 칠불퇴법(七佛退法)을 설한 뒤, 부처님은 나란다를 거쳐 파탈리 마을(현재의 파트나)에 도착했다. 마침 이웃나라 밧지족을 막기 위해, 파탈리 마을에 새로운 성을 쌓고 있던 마가다국 대신(大臣) 스니다와 밧사카라에게 가르침을 폈다. 부처님은 이어 파탈리 마을의 앞날을 예언한다.
“아난다여! 이곳이 고귀한 장소이며, 또한 상인들의 교차지점인 한, 파탈리푸트라는 마가다 제1의 도시이고, 물자의 집산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난다여! 파탈리푸트라에는 번영을 해치는 세 가지 장애가 있을 것이다. 불에 의한 것, 물에 의한 것, 그리고 사람들의 불화에 의한 것이 세 가지 장애다.”
그리곤 “강물이 강둑 가득 차 올라 까마귀조차 강물을 먹을 정도”인 갠지즈에 도착, “힘센 사나이가 팔을 폈다 굽힐 정도의 짧은 순간에 홀연 비구들과 함께” 강을 건넜다. 당시 부처님이 갠지즈강을 건너기 위해 나간 문은 ‘고타마 문’, 강을 건넌 곳은 ‘고타마 나루터’로 명명됐다.
지난 3월24일 오후 3시30분. ‘열반의 길’을 따라 파트나에 도착했다. 비하르주의 주도(州都) 파트나의 옛 이름은 파탈리푸트라. 한역 경전엔 화씨성(華氏城)으로 나온다. 도시가 온통 꽃으로 덮여 있었기에 ‘꽃의 성’으로 불렸던 파트나는 마가다 국을 계승한 마우리아 왕조 때 대단한 번영을 누렸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아쇼카 왕의 보호 아래 파트나 불교는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파트나는 전 인도대륙을 통치하는 중심도시로, 자기 위상을 한껏 세상에 드높였다. 불전(佛典)의 제3결집도 파트나에서 거행됐다.
갠지즈강 건너 바이샬리 도착
파트나에 도착한 다음날인 3월25일. 갠지즈강으로 갔다. 부처님이 건너간 ‘고타마 나루터’의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간 강변엔 바이샬리로 통하는 거대한 다리가 놓여있었다. 다리 밑으로 돛단배와 통통배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강변엔 인도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와 목욕을 하고, 다른 곳에선 어린아이들이 물장난을 쳤다. 바로 옆에선 시체를 태우는지 연기가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연기와 물장구 소리, 다리 위로 지나가는 차 소리, 배들이 내뿜는 고동소리 등이 어우러져 갠지즈강은 그야말로 ‘장관 아닌 장관’이었다.
그 틈에 머리칼을 빡빡 깍은, 특이한 모습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안내인에게 물으니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머리카락 몇 올만 남기고 삭발하는데, 빡빡 깍은 사람은 부모가 죽은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과연 머리카락 몇 올이 머리에 붙어있다. 머리카락이 강변 이곳저곳에 흩어져, 바람에 날리는 이유를 그제야 알게됐다. 삭발했지만 슬픈 표정은 아니었다. “부모가 죽어 좋은 곳에 태어나는데,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인도인들은 생각한단다. 갠지즈 강변은 생과 사의 현장이자,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처럼 보였다.
重病 걸린 부처님 정진으로 극복
〈마하파리닛바나 숫탄타〉를 보면 부처님이 갠지즈강을 건널 당시에도 강변엔 사람들이 붐볐다. “강변에는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어떤 이들은 배를 찾고, 어떤 이들은 뗏목을 찾았다. 또 어떤 이들은 대나무 뗏목을 엮고자 했다. 그때 부처님은 마치 힘센 사나이가 팔을 폈다 굽힐 정도의 짧은 순간에 홀연 비구들과 함께 저쪽 언덕으로 건너셨다.”
물론 강을 건너는 모습 자체는 부처님 당시완 많이 다를 것이다. “옛날엔 배타고 건넜겠지만 지금의 파트나 시민들은 대부분 차 타고 강을 건넌다”며 안내인은 머리 위의 긴 다리를 가리켰다. 바이샬리로 통하는 큰 다리가 생긴 후 갠지즈 강변의 종교적 분위기는 많이 상쇄된 듯 했다.
갠지즈 강을 건넌 부처님은 나디카 마을을 거쳐 바이샬리에 도착, 암바팔리 동산에 머물렀다. 암바팔리는 당시 바이샬리를 대표하는 유명한 유녀(遊女). 부처님이 자신의 동산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즉시 수레를 타고 망고동산으로 갔다. “부처님이시여! 내일은 여러 비구들과 함께 부디 저의 공양을 받아 주소서.” 부처님은 청을 침묵으로 수락했다.
암바팔리의 공양 소식을 접한 릿차비족은 ‘공양 양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암바팔리는 “아니옵니다. 어르신! 설령 이 풍요로운 바이샬리 마을을 전부 준다해도 그것만은 양도할 수 없사옵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며 양도를 거절했다. 다음날. 부처님은 비구들과 암바팔리의 정원에 갔다. 공양을 마치자, 암바팔리는 “부처님이시여! 이 정원을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들에게 기진하겠습니다. 부디 수락하여 주소서.” 부처님은 청을 받아들였다.
“자신·진리를 의지처로 삼아라”
파트나에 도착하기 전날인 3월24일. 암바팔리가 살았던 바이샬리에 도착했다. 고대 인도 정치·상업의 중심도시였던 바이샬리. 현재 모습은 전형적인 인도 ‘농촌’ 그것이었다. 상업도시라는 이미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한미한 마을로 변해있었다. 〈유마경〉의 주인공 비말라키르티(유마거사)가 머물며 가르침을 폈던 땅 바이샬리. 사람들이 북적거린 화려한 시절은 지나가고, 지금은 그저 그런 농촌일 뿐이었다.
부처님은 바이샬리 벨루바 마을에서 중병에 걸렸다. 심한 고통이 엄습하여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처님은 고통을 참았다. “내 가까이에서 시봉하는 이들에게 여태껏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구들에게 한번도 깨달음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열반에 들면 안된다. 지금은 정진으로 병을 극복하고, 유수(留壽. 생명 연장)를 확립하여 머물도록 하자.” 병마를 이긴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자신과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라’는 법문을 했다.
“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느냐. 아난다여! 나는 안과 밖이 다르지 않은 가르침을 설하였느니라. 아난다여! 중요한 것은 비밀로 한다는 ‘스승의 권한(師拳)’이라는 것은 여래의 가르침에는 없느니라. …(중략)… 그러므로 아난다여! 너희들 비구도 자신을 의지처로 하고 자신에게 귀의할 것이며 타인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 또 진리를 의지처로 하고 진리에 귀의할 것이며, 다른 것에 귀의하지 말라.”
유적만 남아 ‘과거’ 전해
우리가 찾아간 바이샬리에도 유적은 있지만 ‘살아있는 불교’는 없었다.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원숭이들이 팠다는 선후지, 그 옆에 있는 대림중각강당, 바로 앞에 늠름한 아쇼카석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부처님이 그렇게 강조한 “진리에 귀의하고 자신에게 귀의하는” 수행자나 불교는 없다. 바이샬리 곳곳을 둘러봐도, 불교 흔적은 유적 위를 지나가는 ‘바람’에만 있을 뿐, 지상(地上)에는 없었다. 그것이 한없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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