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8. 열반의 길 ② 바이샬리 “만들어진 것은 결국 사라지니 정진하라”

수선님 2023. 1. 22. 14:26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8. 열반의 길 ② 바이샬리

“만들어진 것은 결국 사라지니 정진하라”



 

릿차비족의 수도이자, 자이나 교주 니간타 나타풋타(마하비라)의 고향인 바이샬리는 부처님 당시 유명한 상업도시였다. 광암성(光巖城)·광엄성(光嚴城)으로 한역된 바이샬리는 공화제로 통치된, 더할 나위 없는 번영을 누린 곳이었다. 릿차비족에 이어 마가다국 아자타삿투 왕의 지배를 받았으며, 기원 후 건립된 쿠샨(1∼3세기)·굽타(4∼6세기)왕조에 이르기까지 영광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 3월24일 찾아간 바이샬리엔 ‘과거의 영광’은 없었다. 상업도시로 번영을 누린 기억조차 새로울 만큼 ‘한미한 촌’으로 전락해 있었다.


한적한 촌으로 변한 바이샬리

 

<비마세나 카 팔라 유적 >사진설명: 부처님이 바이샬리를 떠나며 천천히 몸을 돌려 "여래가 바이샬리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말했던 곳. 이를 기념해 부처님과 아난다 스투파를 세웠으나 지금은 흙이 쌓인 동산처럼 보인다.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를 지나 바이샬리에 들어서니, 한 마리의 사자를 머리에 인 아쇼카석주가 저 멀리 보였다. 대림중각강당 유적지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입장료 100루피를 내고 들어갔다. 거대한 스투파, 스투파를 둘러싼 작은 스투파들이 보였다. 스투파에 예배하고 돌아가니 부처님께 꿀을 공양한 원숭이들이 팠다는 연못이 있다. 물이 가득 차 있다. 뜨거운 태양에 지친 몸이라 물을 보자, “첨버덩!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사진 찍자 신기한 듯, 주변 풀밭에서 놀던 어린아이들이 졸졸 따라 다녔다. 보자마자 “헤이 볼펜!” “루피! 루피!”라고 외치며 손부터 내밀었다. 무시하고 선후지를 돌았다. 서서히 거대한 스투파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대림(마하바나. 大林)에 있던 중각강당도 바로 이 연못 옆에 있었다고 경전엔 적혀있는데….


〈마하파리닛바나 숫탄타〉에 의하면 부처님은 바이샬리 차팔라 영지(靈地)에서 자신을 25년간 시봉한 아난다에게 입멸을 예고했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알아듣지 못한다. 때문에 아난다 존자는 후일 제1차 결집 당시 가섭존자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는다. “부처님의 입멸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방치했다”는 것이다. 부처님 입적에 아난다의 잘못이 크다는 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닐 것이다.


어찌됐던 그 틈을 이용, 악마가 부처님께 다가가 입멸할 때라고 종용했다. 부처님은 결국 “악마여! 나는 나의 입멸에 대해 더 이상 마음 괴로워하지 않는다.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다.” 부처님이 입멸할 것이라 하자 갑자기 대지진이 일어났다.

 

그제야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 입적’을 눈치채고, 울며 입멸을 그만두라고 간청한다. 부처님은 그러나 “이제 되었다. 아난다여! 여래에게 그러한 것을 간청하지 말아라. 아난다여! 여래에게 그러한 것을 간청할 때가 아니니라.” 그러면서 부처님은 “그것은 이제 그만두고 우리들은 지금부터 마하바나(大林) 2층 건물강당(重閣講堂)으로 가도록 하자”며 말을 돌린다.


“이 몸에도 늙음은 닥쳐오고…”

 

<사진설명> 원숭이 왕의 꿀 공양 : 바이샬리에서 부처님은 원숭이들의 꿀 공양을 받는다. 종각강단 옆 연못도 원숭이들이 팠다고 한다. 인도 알라하바드 박물관 소장.

대림중각강당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이여! 지금이야말로 나는 너희들에게 마음을 기울여 알려야만 하리라. 명심해서 들음이 좋으리라. 비구들이여! 만들어진 것(有爲)은 결국 멸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게으름 피지말고 정진하여 수행을 완성하여라. 여래는 머지않아 열반에 들리라. 여래는 이제부터 3개월 후, 열반에 들 것이니라.”

 

충격적인 법문에 이어 부처님은 게송을 읊었다.


 

이 몸에도 늙음은 닥쳐오고
생명의 불꽃 가냘퍼지니,
자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귀의처로 하여, 끝없이.

비구들이여! 게으름 피우지 말고
바르게 사념(思念)해 선계(善戒)를 지키고
사유를 다스리며
자신이 마음을 지켜라.


내가 설시(設施)한 법(法)과 율(律)을
결코 게을리 말고 정진하면,
세세생생 윤회를 끝내고
괴로움의 끝을 다하리.


깨달음을 얻은 인간 부처님의 진솔한 감정이 게송에 그대로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의 몸도 가죽끈으로 묶어 겨우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말처럼 “이 몸에도 늙음은 닥쳐오고”라는 표현엔 무수한 감정이 담겨있다.


대림중각강당에서의 법문 다음 날 점심 때. 부처님은 바이샬리 마을로 탁발하러 갔다. 바이샬리 마을을 돌면서 공양을 끝내고 마을을 나올 때 마치 코끼리가 사물을 보듯, 몸을 천천히 돌려 바이샬리를 응시했다. “아난다여! 여래가 바이샬리 마을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자 아난다여! 우리들은 이제부터 반다 마을로 가도록 하자.” 인간적인 부처님, 그 부처님이 우리가 찾아간 바이샬리에서 마지막 정진력을 발휘한 것이다.


2002년 3월24일 12시.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바이샬리를 본 곳, ‘비마세나 카 팔라’ 유적지에 갔다. 남쪽 저 멀리에 아쇼카석주가 보였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논 사이로 작은 길이 나 있었다. 군데군데 야자나무가 서있고, 들판엔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부처님과 아난다 존자가 저 길을 걸어 이곳에 와, 마지막으로 바이샬리를 보았을까. 길을 걷고있는 부처님과 아난다 존자의 모습을, 80이 된 노구를 이끌고 걸어가는 부처님 모습을 연상했다. 한 참을 그렇게 들판을 쳐다보았다.


‘소멸된 불교’에 비통함 느껴

 

사진설명: 바이샬리 아쇼카석주 머리부분에 있는 사자상. 동쪽을 보고 있다.

‘비마세나 카 팔라’엔 작은 동산이 두 개 있다.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를 기념해 스투파 2기를 세웠는데, 세월에 무너져 흙더미로 변한 것이다. 발로 흙을 파니 붉은 벽돌이 나왔다. 하나는 부처님을, 하나는 아난다 존자를 기념해 건립한 탑 위에 서서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주변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족히 50명은 넘어 보였다. 꾀죄죄한 얼굴, 먼지가 풀풀 나는 다 떨어진 옷, 측은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졸졸 따라 다닐 뿐 아니라, 옷을 잡고 당기기까지 했다.

 


유적 사진을 찍으려 하면 무더기로 사진기 앞에 서 방해했다. 얼굴이 좀 익었다 생각했는지, 한 아이가 손을 내밀며 “루피! 루피!”하고 말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애들도 “헤이 볼펜!”하고 소리쳤다. 주변에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들었다. 난감했다. 겨우 빠져나와 사진 찍는데 또 몰려왔다. 조용히 앉아 상념에 잠기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보였다. 다시 유적지 위로 올라갔다.


애들을 떼 놓으려 왔다 갔다 했다. 이쪽으로 가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가면 저쪽으로 따라왔다. 애들을 무시하고, 다시 들판을 보았다. 부처님과 아난다 존자가 걸어갔을지도 모르는 들판 쪽으로 보았다. 하늘엔 흰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고 있었고, 땅에는 뜨거운 공기가 솟아올랐다. 유적지 위에 있는 큰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다. 애들도 따라왔다.


제2결집이 열리는 등 한 때 대표적 불교도시였던 바이샬리. 그 바이샬리가 ‘한미한 촌’으로 변했듯, 바이샬리 불교도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되고 말았다. 대림 중각강당에서 바이샬리 사람들을 상대로 설법했던 부처님, 설법을 듣고 기뻐하던 사람들, 부처님께 꿀을 공양하던 원숭이들. 이제는 정말 과거가 되고 말았다. 유적은 남아 있으되,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인도의 다른 불교유적지에서 느끼는 ‘비통함’이 바이샬리에서 또 다시 다가왔다. “인도불교는 살아날 가망이 없을까. 인도불교 소생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스산한 마음만 안고 우리는 부처님 열반의 길을 따라 파바 마을(춘다 마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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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8. 열반의 길 ② 바이샬리 “만들어진 것은 결국 사라지니 정진하라” 릿차비족의 수도이자, 자이나 교주 니간타 나타풋타(마하비라)의 고향인 바이샬리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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