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25. 산치대탑

수선님 2023. 4. 23. 12:59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25. 산치대탑
불교 살아있는 듯 주변엔 생동감 넘쳐

 

2002년 3월12일 새벽 5시. 현대 인도불교 부흥의 선구자 암베드카 박사가 ‘불교개종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인 나그푸르를 떠나 보팔에 도착했다. 열차(침대 칸)를 타고, 밤새도록 달렸다.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붉은 옷을 입은 짐꾼들이 객실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서로 짐을 들겠다고 난리였다. 짐을 맡긴 후 기차역을 나오니 희뿌옇게 동이 트고 있었다.

 


산치언덕, 평원가운데 우뚝솟아


숙소인 아쇼카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짧은 휴식을 취한 뒤 산치대탑이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드넓은 평원 사이로 난 길을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리니, 저 멀리 언덕이 보였다. 자그마한 나무들이 서있고, 산치대탑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였다. “마침내 산치대탑에 도착했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얼마나 참배하고 싶었던 곳인가.


멀리서 보니 작은 언덕 같았는데 - 주변이 전부 평원이라 그런지 - 막상 도착해 보니 꽤 높았다. 차에서 내려 경외심을 품은 채 30분쯤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1인당 250루피라는 거금의 입장료를 내고 산치대탑 구역 속으로 들어갔다.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쇠바루를 뒤집어 엎어놓은 모습의 산치대탑(1탑)이 먼저 보였다. 화려한 조각을 자랑하는 북문도 보였다. 탑문(토라나) 앞에서 합장했다.

 

<산치 제1탑(대탑)>사진설명: 아쇼카왕이 기원전 3세기경 조성한 대탑.

탑 문을 지나, 난간 안으로 들어가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 요도(길)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탑 안에 들어섰지만, 오히려 ‘고요함’만 주변에 가득했다. 태고적 고요가 대탑을 감싸고 있는 듯, 시간이 흐름을 정지하고 대탑을 쌓기 시작한 기원전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순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거대한 탑을 조성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치 대탑 북문 안쪽에 봉안된 불좌상>

스투파(탑)는 본래 유골을 모신 분묘다. 부처님 ‘열반의 길’을 적어놓은 〈마하파리닛바나 숫탄타〉(대반열반경)에 의하면 부처님 사리를 8등분해 탑을 세웠다. 본래 부처님 유골을 수습해 세웠으나, 나중에는 고승들의 모발·손톱 등도 숭배대상이 됐다. 사실 부처님은 입적하기 전, 탑 숭배는 재가신자가 할 일이며, 비구는 관여하지 말라고 했다. 비구는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억제하고 명상과 수행에 전념하면 되지, 무엇을 숭배하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스투파는 유골 모신 분묘”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들의 생각은 변했으리라. 부처님과 상수제자들이 입적한 뒤, 그들에 대한 추모의 염원은 무엇인가 숭배 대상을 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당시 불상 제작은 금기시 돼있었다. 때문에 자연스레 ‘탑 숭배’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을 것이다. 불탑 앞에 엎드려 자아를 버리는 것도 일종의 마음 수행법에 속하고, 재가자들이 스투파를 건립·기증하면 공덕을 쌓는다는 통속적 종교관념이 상호 작용해 기원 전 3세기 이후 불탑숭배는 불교문화의 커다란 한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결국, 출가자·재가자 구분 없이 불탑을 기증하고, 불탑에 참배했으며, 요도(繞道)를 오른쪽으로 돌면서 예불하게 됐다.


산치 1탑은 과연 거대했다. 직경 36m·높이17m 규모. 참배 객을 압도했다. 고대 인도 스투파의 전형을 보여주는 1탑은 원통형의 기단 위에 반구형의 탑신, 탑신 꼭대기에 산개(傘蓋)·일산(日傘), 평두(平頭)라고 불리는 사각형의 울타리가 산개·일산을 감싼 형태다. 기단 주위나 기단과 탑신이 접하는 중턱부분에 요도가 있는데, 옛부터 사람들은 이 길을 돌며 예배했다. 탑에는 원형의 울타리(난간)가 둘러져 있고, 동서남북 사방에는 탑문(토라나)이 있다.


대탑은 본래 아쇼카왕 당시 건립된 것이라 한다. 당시엔 벽돌로 쌓고,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슝가시대(기원전 2세기)에 현재의 형태로 증축됐는데, 학자들에 따르면 울타리 밖 네 개의 탑문도 순차적으로 만들어졌다. 남쪽 탑문이 가장 먼저 기원 전후시기에 건립됐고, 이어 북문·동문·서문 순으로 세워졌다.


탑문마다 양쪽 기둥을 연결하는 3개의 횡량(橫樑. 가로 대들보)이 있으며, 탑문 기둥과 횡량 표면에는 부처님 전생이야기·새·꽃 등이 여백이 없을 만큼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부처님이 있어야 될 자리엔 보리수나 법륜(法輪) 등이 조각돼있는데, 정교한 조각술은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든다. 탑문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약시(여성)·약샤(남성) 신상(神像)이다. 특히 동문에 조각된 약시여신의 육감적 모습은 인도 조각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기원전 3C 아쇼카王 건립


천천히 요도를 돌며 내려왔다. 대탑 서쪽에 서서 사방을 돌아보았다. 탁 트인 평원이 펼쳐져 있다. 어디를 봐도 걸리는 언덕 하나 없다. 보팔로 가는 길 등 사방으로 뻗은 길도 보였다. 원근의 농촌도 한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평원은 그러나 고요함 속에 폭 묻혀있는 것 같았다. 때마침 산치 역으로 가는 50여 칸의 화물 열차만 없었다면, 산치 주변은 정적(靜的)인 풍경화가 될 뻔했다.


대탑을 한 바퀴 돌았다. 서문 남문 동문 다시 북문. 남문과 동문 사이엔 아쇼카 석주(石柱)가 있었다. 불교유적지마다 있는 석주 아닌가. 찾아간 유적지마다 보았지만 볼 때마다 반갑고, 새로웠다. 부처님 가르침을 전 인도에 전파시킨 사람, 다르마에 의한 통치를 공고히 한 사람 아쇼카 왕. 그를 산치에서 또 다시 생각하게 되다니….

 

<산치 제3탑>사진설명: 이 탑에서 사리풋타(사리불)과 목갈라나(목건련) 존자의 이름이 새겨진 사리용기가 출토됐다.

북문 옆에 있는 산치 제3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름 10m 정도, 대탑에 비하면 소탑이라 할 만하다. 바로 이 탑에서 사리풋타(사리불)와 목갈라나(목건련) 존자의 이름이 새겨진 사리용기가 출토됐다. 부처님의 양대 제자. 부처님이 죽림정사에 있을 때 귀의한 제자들이다. 그들은 교단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그들이 없었다면 인도불교는 훨씬 더딘 발전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부처님 보자 먼저 입적했다. 그들의 입적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매우 비통해 했다고 한다.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대탑, 사리풋타·목갈라나 존자의 사리를 안치한 제3탑은 그래서 가까이 있는가 보다.

 


해탈의 땅에서도 부처님을 모시겠다는 것일까. 대탑과 3탑을 보니, 수 천년 전의 스승·제자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 자리에 앉아 법담(法談)을 나누는 것 같았다. 3탑에는 남문만 남아 있다. 대탑의 탑문처럼 정교한 조각들이 한치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요도를 따라 3탑을 내려왔다. 대탑의 북문과 서문을 지나, 제2탑으로 갔다. 내려가는 길목에 승원 유적들이 보였다. 한때 수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며 수행했던 곳. 장대석과 기둥 돌이 엄청나, 그 옛날 승원 건물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케 했다.


고요에 쌓인 ‘절대성지’


2탑 주변은 특히 조용했다. 탑문도 없고, 상륜부도 없고, 요도도 없다. 난간의 문양은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같은 문양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 형태도 없었다. 원형의 연화문 안엔 사람 얼굴·코끼리·사자 등 각양각색의 식물·동물들이 들어있었다.

 

<산치 제2탑의 난간>사진설명: 난간에 새겨진 문양들이 매우 다양하다.

학자들은 2탑이 기원전 2세기경 만들어졌고, 연대적으로 가장 오래됐다고 주장한다. 탑 본체의 복발(탑신)은 아쇼카 왕 시대 조성됐으나, 슝가왕조(기원전 2세기) 당시 지금 형태로 증축 됐다고 한다.

 


산치 언덕엔 탑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승원 유적들도 즐비하다. 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승원이 건립됐기에, 유적에 붙여진 번호만도 50번이 넘는다. 승원은 대개 6세기 이후 건립됐고, 전형적인 ‘평지 승원 양식’을 보여주는 유적도 많다. 산치 언덕은 사실 인도불교 발전사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3세기의 아쇼카왕 석주 비문, 기원전 2세기∼1세기에 건조된 탑, 12세기경 조성된 승원 등. 1500년에 걸친 인도불교의 흥망성쇠가 이 언덕에 다 있다.


산치 언덕에 올라온 지 5시간 지나자, 태양이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했다. 그림자 길이도 점점 길어졌다. 요도를 따라 대탑에 올라, 일몰의 산치 언덕과 주변을 보았다.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히 평화로웠다. 아잔타·엘로라 석굴에서 느낀 감정과는 또 다른 생동감이 산치 언덕에 가득했다. 산치 언덕엔 불교가 살아있는 것 같고, 산치 언덕에선 사람도 생동하는 것 같았다. 드넓은 평원, 그 평원에 우뚝 솟은 산치 언덕, 언덕 위에 건립된 대탑. 산치 언덕과 대탑이 인도 불교 부흥에 일조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25. 산치대탑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25. 산치대탑 불교 살아있는 듯 주변엔 생동감 넘쳐 산치 제1탑(대탑) 사진설명: 아쇼카왕이 기원전 3세기경 조성한 대탑.2002년 3월12일 새벽 5시. 현대 인도불교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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