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녹취(문수경전)

법화경 대강좌 6강 - 2 (신해품 11~35)

수선님 2023. 4. 30. 13:20

법화경 대강좌 6강 - 2

 

 

11. 自念老朽 多有財物 金銀珍寶 倉庫盈溢 無有子息 一旦終沒 

    자념노후 다유재물 금은진보 창고영일 무유자식 일단종몰

財物散失無所委付 是以慇懃 每憶其子 復作是念 我若得子 委付財物

재물산실무소위부 시이은근 매억기자 부작시념 아약득자 위부재물

坦然快樂 無復憂慮(탄연쾌락 무부우려)

 

  自念老朽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면 老朽. 늙었어요.

多有財物이라. 金 銀 珍寶가 倉庫에 盈溢이라. 無有子息하니 그런데 자식이 하나 없으니 一旦終沒이면, 하루아침에 내가 눈을 감는다면 財物이 散失이라. 어느 사람이 어떻게 가져갈지 자신이 죽었는데 남아있을 까닭이 없지요. 이것이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법화경은 구석구석이 다이아몬드가 콱콱 박혀 있습니다. 이것이 多有財物하야 金銀珍寶가 倉庫盈溢이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우리가 불교를 공부한다면, 말하자면 이 장자 집안에 그렇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자는 곧 부처님이니까요.

 

  불교를 공부하고 불교를 믿는다면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이 속에 있다. 병이든지 부자가 됐던지 뭐가 되든지 일체문제 해결의 열쇠가 이 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그런 뜻입니다. 시간 관계상 이것을 제가 낱낱이 그렇게 맞추어서 말씀을 못 드려서 그렇지, 전부 그런 뜻이 다 포함되어있습니다.

無所委付라. 누구에게 위촉하고 부탁할 길이 없어요. 그래서

是以로 慇懃 每憶其子라. 더욱 더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한 것이지요.

 

  復作是念호대 我若得子하야 만약 내가 아들을 찾아서 委付財物하면 재물을 다 위탁해서 줄 수 있으면 坦然快樂이라. 나는 더 이상 걱정 될 것이 없으리라. 아주 坦然하고 편안하고 즐겁기 그지없을 것이다. 無復憂慮라 더 이상 걱정이 없다. 憂慮는 다시는 더 이상 있을 수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겠습니다는 입니다. 이것이 4 대 성문이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12. 世尊 爾時窮子 傭賃展轉 遇到父舍 住立門側

    세존 이시궁자 용임전전 우도부사 주립문측

세존이시여, 그 때 窮子가 傭賃展轉이라. 품팔이 하려고 展轉.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집에 이르렀어요. 야, 감동적이지요? 이제 우리도 아버지의 집에 왔어요. 그래서 住立門側이라. 대문 옆에 서서, 저~ 만치 대문이 있어요. 100미터 쯤 전방에 대문이 있는데 대문 옆에 와서 고개만 안으로 빠끔히 훔쳐보고 있는 겁니다. 훔쳐보니 너무 근사하고, 아버지가 척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주 왕 같은 사람이 앉아 있는 겁니다.

 

13. 遙見其父 踞 師子床 寶几承足 諸婆羅門 刹利居士 皆 恭敬圍繞

    요견기부 거 사자상 보궤승족 제바라문 찰리거사 개 공경위요

    以眞珠瓔珞 價値千萬 莊嚴其身 吏民僮僕 手執白拂 侍立左右

    이진주영락 가치천만 장엄기신 이민동복 수집백불 시립좌우

    覆以寶帳 垂諸華幡 香水灑地 散 衆名華 羅列寶物 出內取與

    복이보장 수제화번 향수쇄지 산 중명화 나열보물 출납취여

    有 如是等種種嚴飾 威德 特尊(유 여시등종종엄식 위덕 특존)

 

  遙見其父하니, 멀리서 그 아버지를 보니까 踞 師子床. 부처님이 앉아있는 사자좌 같은 데에 턱 걸터앉았는데 寶几承足이라. 아주 휘황찬란한 금은보화로 만든 궤짝으로 발을 척 받치고 있고, 여러 婆羅門과 刹利居士. 이런 이들이 모두 恭敬圍繞하며, 그 주변에, 기침이라도 할까? 무슨 지시라도 있을까? 무슨 명령이라도 떨어질까 하고 전부 그 주위에 에워싸고 있고, 以眞珠瓔珞. 千萬價値가 있는 그런 보물로서 그 몸을 장엄하고, ←이런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부처님이, 婆羅門과 刹利居士가 주위에 에워싸고 있다. 후불탱화를 상상하여 보십시오. 후불탱화에 부처님 한 분만 딸랑 앉아 있나요?

 

 

  거기에 온갖 보살과 10대 제자와 기타 별별 제자들도, 또 탱화를 더 세밀하게 근사하게 잘 그려놓은 데는 부처님제자들이 꽉 차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제자들이 거기에 다 있습니다. 이것이 그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몸을 천만금이 나가는 瓔珞眞珠로서 몸을 장엄했다고 하는 것은, 저 앞에서 여러 번 있었듯이 四無量心. 七覺支. 八正道. 온갖 十力. 四無所畏. 여러 번 소개 됐었지요? 부처님으로서의 능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을 莊嚴이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吏民僮僕이 手執白拂이라. 직원과 하인들이 손에 흰 拂子. 먼지 털이를 들고서 侍立左右. 좌우에 侍立해있어요. 그리고는

 

  覆以寶帳이라. 보배 장막으로서 가리개로 덮고 있고, 垂諸華幡하며, 꽃으로 아름답게 만든 幡을 드리우며, 香水가 灑地라. 향수를 땅에 뿌리고, 향수를 땅에 뿌리는 것이 뭡니까? 부처님의 법의 향기가 곳곳에 풍긴다는 의미들인데 이런 것을 전부 스님들이 스스로 맞춰보세요. 그 동안 불교 공부한 것으로 하나하나 맞춰보면 다 맞아 들어갑니다. 散 衆名華.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으로, 이름 있는 꽃을 뿌리며,

羅列寶物하야, 보물을 나열해서, 보물이라는 것이 온갖 四聖諦. 八正道. 六波羅蜜 등등. 여러 가지 8만4천 수행법이지요. 그래서 出內取與라. 내고들이고 주고받고 받고 주고하며 이와 같은 등의 種種嚴飾하야 威德이 特尊이라. 큰 위엄과 덕이 특별히 뛰어났더라. ←이런 분이 척 앉아 있는 겁니다.

 

14. 窮子見父 有 大力勢 卽懷恐怖 悔來至此 竊作是念 此或是王

    궁자견부 유 대력세 즉회공포 회래지차 절작시념 차혹시왕

    或是王等 非我傭力 得物之處 不如往至貧里 肆力有地

    혹시왕등 비아용력 득물지처 불여왕지빈리 사력유지

    衣食易得 若久住此 或見逼迫 强使我作 作是念已 疾走而去

    의식이득 약구주차 혹견핍박 강사아작 작시념이 질주이거

 

  窮子가 見父 有 大力勢하고, 고개를 빠끔히 들이밀고 멀리 아버지가 있는 곳을 보니까 큰 세력이 있는 사람 같아서, 공포심을 품어요.

悔來至此라. 여기에 온 것을 그만 뉘우치면서 竊作是念이라.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은 혹 왕이거나 아니면 왕하고 똑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非我傭力 得物之處라. 내가 여기에서 품팔이해서 傭力. 옷이나 밥이나 소금이나 그런 것을 얻을 만한 곳이 아니니까 차라리 다른 가난한 동네에 가서 품팔이를 해서 肆力. 다른 지역에서 품팔이를 해서 衣食易得이라. 옷과 음식을 쉽게 얻는 것만 같지 못하다. 잘못하다간 이 부근에 있다가 큰일 나겠다.

 

  若久住此타가, 만약에 오래 동안 여기에서 머뭇머뭇 하다가 或見逼迫이라. 혹 핍박을 당할 꺼야. 강제로 아마 나를 끌어다가 일을 시킬지도 모르리라. 作是念已하고는 이런 생각을 하고서 疾走而去러니 빨리 도망을 간다.

 

  위대한 분을 보면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공연히 떨려서 도망가려고 하잖아요. 저 사람에게 붙들리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착한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제가 옛날에 20대에 제주도 원광사에 가서 좀 사는데, 어쩌다가 스님들과 시내에 영화 보러 나왔었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추풍령”이라는 흑백영화였어요. 스님들과 셋이 영화 보러 시내에 나와서 거리를 걸어가는데 셋인가 넷인가 어떤 술주정꾼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욕을 하면서 오다가 우리를 척 보고는, (그 때는 영화 보러 갔어도 두루막을 입고 갔지요.)

 

  "아이고 스님 잘못했습니다." 하고는 납작 엎드려서 살살 비는 겁니다.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우리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눈도 부릅뜨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겁내야지요. 그런데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아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니까 그렇게 사죄를 하면서 저 좁은 골목으로 슬슬 피하면서 도망가는 그것을 정말 평생 못 잊어요.

 

  부처님한테 우리가 빌려 입은 이 승복. 이 옷의 값이 그런 겁니다.

옷만 입고 있어도, 속이야 그 사람이나 저나 뭐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부처님한테 빌려 입은 이 승복. 이 하나의 위력이 그렇더라니까요. 그런데 실지로 부처님인데 그 앞에서 이 궁자가 떨지 않으려야 떨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이 옷을 빌려 입었는데 그런 겁니다.

이 옷의 위력이 대단한 것이고, 이 옷 덕택에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겁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절 삼배 꼬박꼬박 받고 “스님” “스님”하고요. 부처님한테 늘 감사하고 고맙고 또 사실 황송스럽기도 하지요.

이 사람이 그런 뛰어난 분을 보고는 그렇게 해서 도망을 가려고 하는 겁니다.

 

15. 時富長者 於 師子座 見子便識 心大歡喜 卽作是念 我 財物庫藏

    시부장자 어 사자좌 견자변식 심대환희 즉작시념 아 재물고장

    今有所付 我常思念此子 無由見之 而忽自來 甚適我願 我雖年朽

    금유소부 아상사념차자 무유견지 이홀자래 심적아원 아수년후

    有故貪惜 卽遣傍人 急追將還(유고탐석 즉견방인 급추장환)

 

  그 때에 부자인 장자가 師子座에서 見子便識이라. 아들은 아버지를 몰라봐도 아버지는 아들이 아무리 어릴 때 도망갔어도 그 아들을 알아보는 것이지요. 보자마자 바로 곧 알아요. 저 비렁뱅이. 거지. 그렇지만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자나 깨나 아들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니까 멀리서 봐도 곧 알아보고는 ‘아, 저놈 내 아들이다.’ 하고는 心大歡喜하야 卽作是念이라. 곧 이런 생각을 하되,‘내 재물과 財物창고를 今有所付로다. 지금 줄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我常思念此子호대 내가 항상 이 아들만 생각하였으나 無由見之러니 그런데도 도대체 볼 수가 없었는데, 아들을 잃어버리고는 50년 동안 한 번도 못 봤는데 而忽自來라. 홀연히 저절로 지 발길로 왔다’이겁니다.

 

  甚適我願이로다. 정말 내가 원하는 바가 딱 들어맞았다. 어쩌면 내 소원이 이렇게 이뤄졌는가? 我雖年朽나 내가 비록 나이가 들었으나 有故貪惜이라. 오히려 “탐하고 아낀다.”그러니까 그 좋은 물건과 재산들을 잔뜩 쥐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여겼을 것이라는 입니다. 그래서 卽遣傍人하야 곧 옆에 있는 사람을 보내서 急追將還호리라. '급히 가서 데리고 오게' 하리라. 부처님이 직접 가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을 보냈다고 했잖아요?

傍人 =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설법하는 사람이요 포교사요, 전법사요 부처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입니다.

 

  계속 "使者" "사자" 나오지요. 심부름꾼입니다.

그렇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부처님 옆에 있는 사람 아닙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가야지 부처님이 탁자 밑에 내려와서 못 하잖아요. 부처님 옆에 있는 우리가 가서 사람을 인도 해오는 겁니다. 비유가 아주 참 재미난 비유입니다. 정말 절묘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보내서 데려 오게 하겠다. 중생들을 제도 하겠다는 말이지요. "부처님의 使者" 우리는 전부 부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부처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잘 해야 됩니다. 부처님의 심부름꾼 노릇이란 부처님이 전하는 물건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부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부처님이 전해 주는 물건이 아니고, 다른 물건을 전해 주면 그것은 부처님 심부름꾼이 못 되는 겁니다. 이런 점들도 우리가 여기서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16. 爾時使者 疾走往捉 窮子驚愕 稱怨大喚 我不相犯 何爲見捉

    이시사자 질주왕착 궁자경악 칭원대환 아불상범 하위견착

    使者 執之愈急 强牽將還 于時窮子 自念無罪 而被囚執

    사자 집지유급 강견장환 우시궁자 자념 무죄 이피수집

    此必定死 轉更惶怖 悶絶躄地(차필정사 전갱황포 민절벽지)

 

  그 때에 使者가 疾走往捉이라. 빨리 가서, 부처님의 심부름꾼이니까 얼른 가서 그 사람을 잡으니까 窮子驚愕이예요. 그 못난 아들이 갑자기 그만 놀라는 겁니다. ←이것이 화엄경을 설해주는 것입니다.

窮子驚愕華嚴時 이러잖아요. 궁자가 갑자기 놀라서 稱怨大喚호대

"사람 살리라."고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我不相犯이어늘 나는 아무 잘못한 것이 없거늘 何爲見捉이어뇨. 왜? 나를 이렇게 잡습니까? ←이렇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막 그냥 도망가려고 하고, 使者는 執之愈急이라. 그 사람을 붙드는 겁니다. 어마어마한 재물을 가진 사장님이 부탁한 일이니까 더 강하게 붙드는 겁니다.

 

  執之愈急이라. 더 급하게 붙들고, 더 강하게 끌고 오는 겁니다.

强牽將還이어늘 더 세게 끌고 오거늘 于時에 窮子는 그 때에 그만 못난 자식이 自念無罪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이집에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런데 囚執하고 지금 갇히고 잡히는 것을 당했으니 이것은 반드시 나를 죽이게 할 것이다.‘나를 데려 가서 죽일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까 轉更惶怖하야 더욱 더 다시 두렵고 두려워서 그만 기절할 수밖에 없어요. 기절해서 땅에 넘어져 버렸어요. 悶絶躄地라. 완전히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그래 窮子驚愕華嚴時. 화엄경을 설해주니까 아무도 못 알아듣고, 그래서 “上德聲聞도 頭視聽於하니라.” 훌륭한 법회가 있다는데 하는, 上德聲聞도 법회가 있다는 소리만 들었다. 그렇게 표현해 놨습니다.

덕이 높은 성문들도 훌륭한 법회가 있다는 소리만 들었다. 이렇게까지 표현해 놨습니다.

 

17. 父遙見之 而語使言 不須此人 勿强將來 以 冷水灑面 令得醒悟

    부요견지 이어사언 불수차인 물강장래 이 냉수쇄면 영득성오

    莫復與語(막부여어)

父遙見之하고 정신을 잃어버리고 땅에 넘어져 버리니까, 아버지가 멀리서 그 사실을 보고서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말하기를, 그러니까 우리 불자들도, 우리 포교사나 스님들도 덮어놓고 그냥 선불교가 좋다고 禪을 이야기 하고 그러면은 그런 것은 자기 성에 안 차니까...

 

  좋은지 어쩐지 그것은 너희 일이고, 나는 지금 급한 것이 자식 학교합격 시키는 것이지 성불이고 보살이고 그것은 나하고 알바 없다고 나가는데 그것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니까 아버지가 不須此人이니 이 사람이 필요치 않다고 그랬어요. 심부름꾼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이 필요치 않다.”勿强將來요 구태여 억지로 데려 올 것은 없고, 냉수로서 灑面해라. 냉수를 얼굴에 뿌려서 깨워라. 令得醒悟하고 기절한 사람을 깨우고 莫復與語하라. 더 이상 그 사람한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18. 所以者何 父知其子 志意下劣 自知豪貴 爲子所難 審知是子

    소이자하 부지기자 지의하열 자지호귀 위자소난 심지시자

    而以方便 不語他人 云是我子 使者 語之 我今放汝 隨意所趣

    이이방편 불어타인 운시아자 사자 어지 아금방여 수의소취

    窮子歡喜 得 未曾有 從地而起 往至貧里 以求衣食

    궁자환희 득 미증유 종지이기 왕지빈리 이구의식

 

  까닭이 무엇인가? 아버지는 그 아들이 志意下劣이라 뜻이 下劣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自知豪貴. 자기는 너무 豪貴예요.

아주 부호에다 귀하고, 천지차이거든요. 너무너무 큰 차이가 있어서 爲子所難이로다. 아들이 참말로 어려워하는 바가 되었다. 이것이 근기가 아니다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당신의 깨달음의 차원에서 다운을 시켜가지고 저 유치원생들 가르치는 수준으로 돌아가서 가르쳤다고 하는 것이 아함부 경전부터 설화 이야기. 因果 이야기. ←이런 이야기부터 살살 가르쳐서 근기를 성숙시켜 갔다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까?

窮子驚愕華嚴時. 除糞定價阿含時. 그러지 않습니까? 거름치고 똥치고 청소하는 이야기가 이제 나옵니다.

 

  審知是子. 아들의 이러한 사실임을 알고는 방편으로서 타인에게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使者語之하대 我今放汝하노라. 심부름꾼이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를 놓아준다. 隨意所趣하라. 네 마음대로 가거라.찬물을 끼얹었으니까 깨어나서 궁자가 기뻐서 得 未曾有라. 죽을 뻔 하다가 살았다고 얼마나 기분 좋겠습니까?

從地而起로 땅에서 부터 일어나서 往至貧里라. 저 가난한 동네, 여기는 도저히 내 수준이 아니다 하고서 거지들이 사는, 불가촉천민들이 사는 동네를 찾아가서 以求衣食이러라. 의식을 구하려고 하더라.

 

19. 爾時長者 將欲誘引其子 而說方便 密遣二人 形色 憔悴 無

    이시장자 장욕유인기자 이설방편 밀견이인 형색 초췌 무

    爲德者 汝可詣彼 徐語窮子(위덕자 여가예피 서어궁자)

그 때에 장자가, (아들을 50년 만에 만났는데 그냥 놓치겠습니까? 놓치지 않지요.) 將欲誘引其子하야 그 아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而說方便할새. 방편을 베풀세. 密遣二人이 비밀스럽게 두 사람을 보냅니다.

성문 연각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聲聞 緣覺 小乘들을 보내는데 形色이 憔悴. 그 사람하고 수준이 비슷해야 하니까, 거지하고 수준이 비슷하게, 그리고 아무 爲德이 없는 사람. 汝可詣彼하야 그대가 가히 그 사람한테 가서 徐語窮子호대 그 못난 자식에게 천천히 말하되

 

20. 此有作處 倍與汝直 窮子若許 將來使作 若言 欲何所作 便可語之

    차유작처 배여여치 궁자약허 장래사작 약언 욕하소작 변가어지

    雇汝除糞 我等二人 亦共汝作(고여제분 아등이인 역공여작)

 

  此有作處하니 여기에 일할 곳이 있어,→ 作處. 일거리가 있다.  

倍與汝直야. 네가 그 동안 받던 품삯 보다 배로 준다고 해서 窮子가 만약 그 말을 듣고 따라 오거든 將來使作해서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켜, 그리고는 若言 欲何所作이어든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거든, 便可語之호대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雇汝除糞이라. 除糞定價."거름치고 똥치는 일"이라고 말하라 겁니다. 아들의 수준이 그것뿐이니까요.

 

  我等二人도 우리들 두 사람도. 여기 我等二人 그랬잖아요.

4대 성문이 我等二人 그랬습니다. 우리들 성문. 그러니까 성문 연각 정도에 이르는 우리들 두 사람도 亦共汝作이라. 우리 두 사람도 그대와 같이 일할 것이라는 입니다. 除糞. 똥을 친다는 말은 소승 수행으로도 번뇌를 없애기는 없앤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21. 時 二使人 卽求窮子 旣已得之 具陳上事

    시 이사인 즉구궁자 기이득지 구진상사

그 때에 두 사람이 卽求窮子하야 궁자를 구해서 旣已得之코는 그 사람을 찾아가서 具陳上事라. 앞에 아버지가 이야기한 내용을 그대로 다 이야기를 했습니다.

 

22. 爾時窮子 先取其價 尋與除糞 其父見子 愍而怪之

    이시궁자 선취기가 심여제분 기부견자 민이괴지

그 때에 궁자가 先取其價하고 먼저 그 값을 받는 겁니다. 배로 준다고 했으니 그럼 한 달 품. 100만원이라면 200만원 준다고 했으니 200만원을 먼저 내라고 해서 그 값을 먼저 받고 尋與除糞이라. 똥치는 일을 했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는 愍而怪之라. 어마어마한 장자 갑부의 유일한 無女獨子. 오직 한 아들뿐인데, 도대체 똥이나 치고, 거기서 품값을 받아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이겁니다. 이것 참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자기 자식이, 자기 자식이 자기 집에서 똥을 치면서 품값을 받아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야~, 이것 어떻게 보면 우리 처지입니다. 내 자식이 어찌 이런 일을 당하는가? 愍而怪之라. 어찌 이런 일을 당하는가?

 

23. 又以他日 於 窓牖中 遙見子身 羸瘦憔悴 糞土塵坌 汚穢不淨

    우이타일 어 창유중 요견자신 이수초췌 분토진분 오예부정

    卽脫瓔珞 細軟上服 嚴飾之具 更著麤 弊垢膩之衣 塵土 坌身

    즉탈영락 세연상복 엄식지구 갱착추 폐구이지의 진토 분신

    右手 執持除糞之器 狀有所畏 語諸作人 汝等 勤作 勿得懈息

    우수 집지제분지기 장유소외 어제작인 여등 근작 물득해식

    以方便故 得近其子(이방편고 득근기자)

 

  又以他日에 또 다른 날에 窓牖中으로 문 틈 사이로 가만히 아들이 하는 짓을 보는 겁니다. 遙見子身이 羸瘦憔悴라. 바짝 마르고 여위고 초췌해요. 그리고 糞土塵坌이 汚穢不淨코는 똥을 치니까 온갖 똥. 흙. 먼지. 이런 것들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遙見. 멀리서 보고는, 아들은 보고 싶고 어떻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기 몸에 걸치고 있던 瓔珞구슬. 細軟上服. 아주 고급스런 것들을 다 벗어 버리고 嚴飾之具를 장엄하고 있던 것을 전부 다 벗어버리고는 更著麤 弊垢膩之衣라. 아주 떨어지고 때묻고 허름한, 그 사람 수준하고 비슷한 옷을 입고는 塵土로서 坌身하야 흙. 먼지로서 몸에 잔뜩 바르고는 오른 손에는 똥치는 그릇을 하나 들고,

 

  狀有所畏하야 그 모습은 아주 벌벌 떠는 촌놈이나 아주 저급한 일꾼 모습처럼 후들후들 떠는 모습으로 가서 語諸作人호대 여러 일하는 사람에게 말을 하되 汝等은 勤作하야 너희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勿得懈息하라. 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方便을 썼음으로 得近其子니라.

너희는 나를 다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니까 내가 방편으로 그 아들에게 지금 가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24. 後復告言 咄, 男子 汝常此作 勿復餘去 當加汝價 諸有所須

    후부고언 돌, 남자 여상차작 물부여거 당가여가 제유소수

    盆器米麵 鹽醋之屬 莫自疑難 亦有老弊使人 須者 相給 好自安意

    분기미면 염호지속 막자의난 역유노폐사인 수자 상급 호자안의

    我如汝父 勿復憂慮(아여여부 물부우려)

 

  後復告言하되, 뒤에 다시 말하기를 “아, 가엾고 가엾다. 이 男子야 汝常此作하야 너는 이 일을 항상 해서 勿復餘去하면 다른 데로만 가지 않는다면, 當加汝價라. 너에게 그 품값을 더 줄 것이다. 諸有所須하여 네가 생활에 필요로 하는 모든 盆 器 米 麵 鹽 醋 之屬. 장 소금 밀가루 쌀. 이런 것들을 莫自疑難이라. 절대 걱정하지 말라. 亦有老弊使人하야 또한 나이든 심부름꾼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須者 相給이라. 달라고 하면, 須者. 달라고 하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늘 줄 것이다." 중간에 그런 것을 네한테 제공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네 한테 다 갖다 줄 것이라는 입니다.

好自安意하라. 좋히 스스로 편안하게 가지라. 我如汝父하니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으니 勿復憂慮니라. 더 이상 염려하지 말라.

 

  이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가서 한 것이 아니라, 다 떨어진 옷 때묻고 얼굴에는 먼지가 칠해져 있고, 똥도 묻어져 있고, 그러니까 지 하고 비슷한 사람이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친부라는 이야기를 숨기고 숨겼지만, 그래도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다.”이런 표현을 살짝 이렇게 흘리는 것이지요. 아함부 불교에도 보면요. 불성에 대한 것. 일심에 대한 그 위대성을 이야기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사이사이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발전해서 법화경이나 금강경이나 화엄경 쪽으로 이렇게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소위 경전 성립사적인 입장에서 보면요.

 

  여기도 보면, 완전히 거지 행색을 하고 갔지만,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다.”이런 표현을 했지 않습니까? 이것이 말하자면 결국은 성불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됩니다.

너는 항상 이 일만하고 더 이상 딴데 가지 말라. 勿復餘去. 더 이상 다른 데로만 가지 않는다면, “여기”라고 하는 것이 뭡니까? 여기서 일을 한다는 것은 불교. 죽으나 사나 불교 안에서만 우리가 ‘몸담고 살면’←이런 의미로도 표현이 됩니다.

 

25. 所以者何 我年 老大 而汝少壯 汝常作是 無有欺怠瞋恨怨言

    소이자하 아년 노대 이여소장 여상작시 무유기태진한원언

    都不見汝 有此諸惡 如餘作人(도불견여 유차제악 여여작인)

까닭이 무엇인가? 我年은 老大해서 내 나이는 이미 늙었고 너는 少壯이다.너는 젊다. 汝常作是에 그대가 항상 일을 할 때에 無有欺怠瞋恨怨言이니 속이거나 게으름피우거나 성을 내거나 한을 하거나 원망하는 말이 없어야 할 것이니, 都不見汝. 모두들 너의 有此諸惡을 如餘作人하며 모든 안 좋은 것이 있는 것을 다른 일하는 사람과 같이. 보이면 안 된다는 입니다. 그런 것을 보이지 말 것이며,

 

26. 自今以後 卽時長子 更與作字 更與作字 名之爲兒

    자금이후 여소생자 즉시장자 갱여작자 명지위아

自今以後로 지금부터 이후로서 如 所生子. 내가 낳은 아들과 같다. 벌써 이렇게 표현하네요. 所生子라고 여기라 하고, 그 때에 장자가 更與作字하야 다시 字를 지어 주어서 名之爲兒라. 이름을 해서 자식처럼 여기게 되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우리가 절에 와서도 출가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佛名. 또는 法呼. 이런 것을 필요로 하고, 신도들도 절에 좀 다니면 계를 받고 안 받고 상관없이 그 절의 주지스님이 불명을 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佛名을 지어주고 남자들은 法呼를 지어주고요.

 

  法呼를 불러주고 佛名 지어줘야 됩니다.

기회가 되면 데리고 가서 보살계를 받게 해주고요. 이름을 먼저 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름 가지고 기회가 되면 가서 보살계를 받는 겁니다. 불명하고 계 받는 것 하고는 관계없습니다. 꼭 계 받을 때 법호를 받아야 된다. 불명을 받아야 된다. 그런 것 아니니까 그 이름을 가지고 부르다가 기회가 되면 보살계 설하는데 가서 계를 받게 하는 그런 절차를 하고요. 여기 보세요. 字를 지어 줬잖아요.

更與作字. 다시 字를 지어서 줬다. 그리고 뭐라고 이름을 부른 겁니다. 지어준 이름을 그때부터 부르기 시작 하는 겁니다.

 

  불교에 입문하면 僧俗을 막론하고 그렇게 불명을 지어서 부르는 것이 아주 바람직하고 정상적입니다.

그러면 부처님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다가서는 계기가 됩니다.

불명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전부 법문이니까요.

"관음행"하면 관세음보살처럼 행동 하라는 뜻으로 권고사항으로, 또는 희망사항으로 이름을 짓는 것이지 무슨 관세음보살과 같다고 해서 "관음행"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이 좋습니다. 하나의 희망사항이고 하나의 권고사항이니까요. 그래 여기도 경전에 그런 근거가 다 있습니다.

 

 

27. 爾時窮子 雖欣此遇 猶故自謂 客作賤人 由是之故 於二十年中

    이시궁자 수흔차우 유고자위 객작천인 유시지고 어이십년중

    常令除糞(상령제분)

그 때에 궁자가 雖欣此遇나 비록 이 만남을 기뻐하기는 했으나 猶故自謂. 오히려 짐짓 스스로 생각하기를 客作賤人. 나그네로서 천인이 되었다 해서 由是之故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二十年中에 常令除糞하더니 20년 중에 항상 하여금 똥을 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阿含12. 方等8 이라고 그랬잖아요. 그것이 20년 되는 겁니다. 방등부 까지가 20년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맞출 수가 있습니다.

 

28. 過時以後 心相體信 入出無難 然其所止 猶在本處

    과시이후 심상체신 입출무난 연기소지 유재본처

過時以後에 이런 세월이 지난 뒤에 心相體信해서 마음이 서로, 體信이라고 하는 것은 턱 믿는다는 입니다. 턱 믿어서 入出無難이나 출입에 어려움이 없다 이겁니다. 이것이 出入自在方等時입니다.

然其所止는 머무는 바는 猶在本處라. 출입은 자유롭지만, 머무는 곳은 역시 저 일꾼들 방에, 똥이나 치고 거름이나 치는 일꾼들 방에 그대로 살았다. ←이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출입은 자유롭지만 아직도 그 사람 마음은 소승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29. 世尊 爾時長子有疾 自知將死不久 語 窮子言 我今 多有金銀珍寶

    세존 이시장자유질 자지장사불구 어 궁자언 아금 다유금은진보

    倉庫盈溢 其中多少 所應取與 汝悉知之 我心如是 當體此意

    창고영일 기중다소 소응취여 여실지지 아심여시 당체차의

 

  世尊하 爾時長子有疾하야 그 때 장자가 병이 들어서 自知將死不久하고 오래지 않아서 스스로 죽을 것을 알고, 궁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에 金 銀 珍寶가 많이 있고 倉庫가 盈溢. 창고마다 넘쳐난다.

그 가운데 多少와 所應取與를 응당히 취하고 줄 것을 汝悉知之하라. 네가 다 알아야 된다. 그래 이것이 뭐지요? 令知寶物般若時. 그렇게 되는 겁니다. 보물이 어디 있고, 논밭이 어떻게 되어 있고, 어느 산 어느 땅은 어디가 내 것이고, 또 누구 집에 얼마나 줄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고, 어느 나라에 얼마나 회사가 나가 있고 이런 것들을 汝悉知之. 네가 다 알아야 된다는 입니다←이것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 令知寶物般若時라. 보물이 어디 있는가를 다 알게 하는 것이 반야경을 설할 때라는 말의 근거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지요. 我心如是하니 내 마음은 이와 같으니 當體此意니라. 마땅히 이 뜻을 받들어라. 자는 체 받으라는 말인데 “내 뜻을 받들어라.”

 

30. 所以者何 今我與汝 便爲不異 宜加用心 無令漏失

    소이자하 금아여여 변위불이 의가용심 무령루실

까닭이 무엇인가? 今我與汝로 지금 내가 그대로 더불어 便爲不異니 다르지 않다는 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지금 다르지 않다고 까지 된 겁니다. 宜加用心하여 마땅히 用心을 더해서, 마음을 좀 더 써서 無令漏失하라. 조금도 漏失함이 없도록 하라. 새거나 손실이 없도록 그렇게 하라. 그러니까 우리 집 재산 상황을 네가 다 알고 출입 그런 것들도 일일이 다 기록하고 다 알아야 된다는 말이지요.

이런 敎相判釋에 근거를 해서 보면 600권 반야부 경전은 부처님의 지혜의 내용을 확연히 아는 그런 수준입니다.

令知寶物이니까 보물을 알게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표현을 하지요.

 

31. 爾時 窮子 卽受敎勅 領知衆物 金銀珍寶 及諸庫藏 而無希取

    이시 궁자 즉수교칙 영지중물 금은진보 급제고장 이무희취

    一餐之意 然其所止 故在本處 下劣之心 亦未能捨

    일찬지의 연기소지 고재본처 하열지심 역미능사

 

  그 때에 궁자가 卽受敎勅이라. 곧 교칙을 받들어 가지고서 領知衆物인 여러 가지 사물인 金 銀 珍寶. 그리고 모든 창고. 이런 것을 알긴 알았으나 而無希取 一餐之意하고 ←이것이 또 중요한 말입니다. 한 끼 밥 먹을 정도의 그런 보물이나 돈도 취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내 것으로 할 생각이 없는 겁니다. 아직도 그릇이 그 뿐입니다. 어떻게 하더라도 이 보물을 나도 정당하게 벌든지 해서 '나도 이런 보물을 가져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상의 정각 까지는 이해는 하고 있지만, ‘나도 정각을 이뤄야지, 그래서 나도 부처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然其所止는 아직도 머무는 바는 故在本處라. 아직도 처음에 일꾼들이 사는 저기 문간방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

 

  下劣之心은 하열한 그 마음은 亦未能捨라. 또한 능히 버리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자기 신분이 본래 천인이니까, 천인으로 그 집에 일꾼으로 왔으니까 아무리 아버지가 뭐라고 하고, 그 집에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또 그 집 재산 상황을 환하게 안다고 하더라도 아직도 마음이 터지지 않는 겁니다. 욕심을 안 내는 겁니다. 한 끼 밥 먹을 그런 돈도 욕심을 안 내고 있는 겁니다. 而無希取 一餐之意 라는 말이 그 입니다. 한 끼의 밥 값 정도라도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똥치고 거름치고 막일해서 받는 그 품값. 그것만 받고는 더 이상은 생각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無相과 空과 無作. 그것이면 됐다하고 더 이상 보살의 법. 唯疑神通. 淨佛國土. 成就衆生에 대해서는 도대체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지요.

 

  사람 따라서 불교를 접하고 살더라도 각자 관심사에 따라서, 또 그릇에 따라서 다 다르고 차이가 참 많지요. 그런 것들도 우리가 여기에서 소상하게 알 수 있습니다.

 

32. 復經少時 父知子意 漸已通泰 成就大志 自鄙先心

    부경소시 부지자의 점이통태 성취대지 자비선심

復經少時코는 잠깐 짧은 시간이 지나고는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에

漸已通泰. ←이것이 중요하지요. 아들의 뜻이 점점 조금씩 通泰해진다. 通泰라는 말이 나아진다. 커진다는 입니다. 마음이 조금씩 터져가고 있다는 입니다. 조금씩 간덩이가 부어가는 것이지요.

우리가 자꾸 대승적인 이야기나 아니면 선불교의 이야기를 들으면 부처라고 하는 것이 저만치 손에 잡힐 듯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것이 漸已通泰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이 차츰차츰 커져서 재산에 욕심을 낼만한 그런 때가 되어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고, 成就大志. 大志를 성취하게 될만하게 됐다는 것을 알고는 自鄙先心이라. 스스로 먼저마음. 옛날에 잘못했던 생각을 뉘우친다는 입니다. 잘못 생각했던 것을 뉘우치고,

 

33. 臨欲終時 而命其子 幷會親族 國王大臣 刹利居士 皆悉已集

    임욕종시 이명기자 병회친족 국왕대신 찰리거사 개실이집

    卽自宣言(즉자선언)

臨欲終時하고 죽음에 다다라서 而命其子하야 그 아들에게 명해서 幷會親族. 친족을 다 모이게 하라. 국왕도 데리고 오라. 대신도 다 모이게 하라. 찰제리거사도 다 모이게 하라. 皆悉已集케하고, 전부 그 집에 다 모이게 하고서는 卽自宣言하대 스스로 선언을 하는 겁니다.

 

  이것을 일본에서 법화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그 때도 경제 우선 사회였다. 거부 장자니까 국왕도 왔지 않느냐? 대신도 왔지 않느냐?”

여기에는 刹利居士 라고 했지만, 바라문은 여기에 없네요. 바라문이 제일 높긴 높지만... “그런 사람들도 다 이 부잣집에 왔다.” 이런 걸로 해서 그 당시도 상당히 경제 우선 풍조가 일어나고 있을 무렵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34. 諸君 當知 此是我子 我之所生 於 某城中 捨吾逃走 병명辛苦

    제군 당지 차시아자 아지소생 어 모성중 사오도주 병명신고

    五十餘年 其 本字 某 我名 某甲 昔在本城 懷憂推覓 忽於此間

    오십여년 모 본자 모 아명 모갑 석재본성 회우추멱 홀어차간 遇會得之 此實我子 我實其父 今我所有 一切財物 皆是子有 先所出納 우회득지 차실아자 아실기부 금아소유 일체재물 개시자유 선소출납 是子所知(시자소지)

 

   諸君은 마땅히 아십시오. 此是我子라. 이 사람은 내 자식입니다. 나의 소생입니다. 그리고 어느 어느 성중에서 나를 버리고 도주 했습니다. 그리고서 병명辛苦. 비실비실 하면서 신고의 생활을 50년이나 했습니다.그 본래의 는 무엇이고 내 이름은 무엇입니다. 옛날에 本城에 있다가 懷憂推覓이라. 마음에 찾으려고 너무너무 근심하고 찾으려고 했는데, 홀연히 여기에서 遇會得之라. 우연히 아들이 와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此實我子요 이 사람은 실로 나의 자식이요, 我實其父라. 나는 실로 그 아버지입니다.

 

  今我所有인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一切財物을 皆是子有며 전부 다 자식의 소유입니다. 先所出納이 먼저 출납한 것이 是子所知라. 아들이 벌써 어느 은행에 얼마나 들어가 있고, 누구한테 얼마나 투자를 했고, 어디에 얼마나 빌려줬고 하는 것을 이미 벌써 서류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是子所知라 그랬잖아요. 先所出納. 그러니까 아들이 벌써 다 알고 있으니 때먹으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서류를 낱낱이 다 일러주고 소상하게 어느 회사에 얼마 투자했고, 어느 나라에 얼마 빌려줬고, 누구한테 얼마 빌려줬고, 국가에서 왕도 얼마 빌려갔고 하는 것을 다 아니까 先所出納이 是子所知라. 이 아들이 다 아는 바다. ←이렇게 까지 이야기를 합니다.

 

  참 감동적이지요. 신기하지요. 우리가 이런 지경에 까지 법화경공부는 벌써 이런 경지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 재물을 전부 우리가 물려받는, 부처님의 재물을 물려받는 것이지요. 그러면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바로 우리는 佛 子 니까 부처님의 자식입니다. 부처님의 아들딸이라고요. 그럼 부처님의 아들딸이면 그대로 부처입니다. 王子도 왕하고 비슷해요. 그 자격이 하나도 다를 바 가없다고요.

 

 

35. 世尊 是時窮子 聞父此言 卽大歡喜 得 未曾有 而作是念

    세존 시시궁자 문부차언 즉대환희 득 미증유 이작시념

    我本無心有所希求 今此寶藏 自然以至

    아본무심유소희구 금차보장 자연이지

 

  세존이시여, 이 궁자가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卽大歡喜하야 크게 歡喜해서 未曾有를 얻어서 이런 생각을 하대, 我本無心有所希求나 나는 마음에 이런 재산. 이 거대한 재산을 구하려고 하지 아니했다.

부처가 되려고 아니했다. 그저 우리 집 아이 학교만 좋은데 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조그마한 희망만 충족되면 그것으로 나는 불교에서 건질 것은 다 건졌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부처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아니 했지요. 그런데 今此寶藏이 지금 이 보물창고가 自然以至라 저절로 나에게 굴러 들어왔다. ←이런 뜻입니다.

 

  물론 성불 한다는 그런 원대한 꿈을 가지고 불교에 입문하거나 출가를 하거나 그런 사람이 크게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와서 차츰차츰 불교공부하고 불교에 깊이 젖어들고 하다 보니까 아 이거 뭐 내가 전혀 꿈꿨던 내가 처음에 바랐던 것 보다는 천배 만배 수승한 좋은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지요. 그것이 말하자면 보살의 삶이고, 부처의 삶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구절구절에 함유하고 있는 의미가 그렇게 아주 아기자기 하게 배대를 시켜서 풀어나가면, 사이사이에 조금은 말씀드렸듯이 그와 같이 많습니다. 밑에는 “합비” 라고 해서 비유와 법을 합해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 6강 - 3으로 이어집니다. -

 

 

 

 

 

 

 

 

 

법화경 대강좌 6강 - 2 (신해품 11~35)

법화경 대강좌 6강 - 2 11. 自念老朽 多有財物 金銀珍寶 倉庫盈溢 無有子息 一旦終沒 자념노후 다유재물 금은진보 창고영일 무유자식 일단종몰 財物散失無所委付 是以慇懃 每憶其子 復作是念 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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