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

無衣子詩集 무의자시집

수선님 2023. 6. 11. 13:07

無衣子詩集 무의자시집

爲鎭兵作偈吿衆

적병을 물리치기 위해 게송을 지어 대중에게 알림1)

1) 혜심이 입적하기 3년 전인 1231년부터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거의 말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各曾初發菩提心 각자가 처음에 발하였던 보리심

不爲一身求獨脫 일신만의 해탈을 위해서는 아니되네.

方今干戈日競起 이제 전쟁이 날로 드세어지니

四海人民苦相殺 세상의 인민들이 서로 죽이느라 애쓰네.

藏頭穩坐愛自便 머리를 움츠리고 편안히 앉아 자신을 보존한다면

有智無悲豈菩薩 지혜만 있고 자비는 없는 것이니 어찌 보살이리오.

敢請蕞誠力鎭兵 감히 청하노니 작은 정성으로나마 적병을 물리쳐서

愛君憂國心如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기를 목마른 듯 하소서.

贈仙巖訓長老 선암사(仙巖寺)2)의 훈(訓)장로에게

2) 선암사(仙巖寺) :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阿度) 화상이 비로암이란 이름으

로 처음 창건했으며,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 국사가 선암사라는 이름으

로 다시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고려 선종 9)에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크게

중창하였고, 현재 대각국사 진영이 여기에 남아 있다.

十餘年在比隣住 십여 년 동안이나 이웃으로 있으면서

聞有仙巖未暫尋 선암사 말만 듣고 찾아보질 못했네.

今與杖俱初入洞 이제 지팡이 짚고서 처음으로 골짜기에 들어서보니

境兼人好可開心 땅도 사람도 좋아 마음이 열리네.

天涯列岫排屏簇 하늘 끝에 늘어선 봉우리 촘촘하여 병풍을 이루었고

門外淸溪鼓瑟琴 문 밖에 맑은 시냇물은 거문고를 타는 듯.

靈塔一雙成對偶 신령스런 한 쌍의 탑은 짝을 이루었고

眞僧五百作蕞林 참된 스님 오백 분은 작은 숲을 이루었네.

示栖白上座 서백(栖白) 상좌(上座)3) 에게 보임

3) 상좌(上座) : 절에서 행정을 책임지는 주지나 수행의 덕이 높은 스님이 앉는 상

석의 자리. 곧 지위나 수행이 높은 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眞源一了便心休 참된 근원을 깨치면 마음이 쉬어지나니

不得還依有佛求 부처님에 의지하여 구하지 않아도 되지.

純一始爲無學道 순일한 마음이 곧 더 배울 것 없는 경지이니

亂心麤過莫悠悠 어지러운 마음으로 마구 내달려서는 아니되네.

聞辨禪師訃 변(辨) 선사(禪師)의 부음을 듣고

來時先我來 올 때도 나보다 먼저 오시더니

去時先我去 갈 때도 나보다 먼저 가시네.

珎重辨師兄 소중한 사형이시여,

冥冥獨遐擧 아득히 먼 곳으로 가시었구료.

而我豈久存 난들 어찌 오래 머무리오?

浮生如逆旅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뜬구름같은 인생인데.

返觀去住蹤 머물렀던 자취를 살펴보니

不得絲毫許 털끝만큼도 찾을 수가 없구료.

芭蕉 파초

心抽綠蠟燭無烟 가운데서 솟아나온 푸른 밀랍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葉展藍衫袖欲舞 잎은 푸른 장삼처럼 펼치니 소매는 춤이라도 추려는 듯.

此是詩人醉眼看 이것은 시인의 취한 눈으로 보는 것이니

不如還我芭蕉樹 나에게 파초 그대로를 돌려줌만 못하리.

次錦城慶司祿從一至十韻

금성(錦城)4) 경(慶) 사록(司祿)5)이 지은 시의 운에 맞추어

4) 금성(錦城) : 전라남도 나주의 옛 지명.

5) 사록(司祿) : 관리의 녹봉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직.

人 사람들아

人 사람들아

隨業 업에 따라

受身 몸을 받네.

苦樂果 고통과 즐거움의 결과는

善惡因 선과 악의 원인에 의한 것이니

不循邪妄 사악하고 망녕된 것을 따르지 말고

常行正眞 늘 바르고 참된 것을 행하시오.

粃糠兮富貴 부귀는 쭉정이와 같고

甲胄兮義仁 인의는 갑옷과 같나니

況須參玄得旨 모름지기 깊은 진리 터득하면

自然換骨淸神 저절로 뼈대가 바뀌고 마음이 맑아지리라.

體不是火風地水 몸뚱이란 지수화풍과 같은 물질이 아니요

心亦非緣慮客塵 마음 또한 대상따라 일어나는 번뇌가 아니로다.

沒縫塔中燈燃不夜 다듬은 흔적 없는 사리탑엔 등불 밝혀 밤이 없고

無根樹上花發恒春 뿌리 없는 나무엔 꽃이 피어 항상 봄이리라.

風磨月白兮誰病誰藥 바람이 스치어 희어진 달빛은 누구에게 병을 주고 누구에게 약을 주며

雲合靑山也何舊何新 구름이 청산과 만나니 어느 것이 옛것이고 어느 것이 새것인가?

一道通方爲聖賢之所履 두루 통하는 하나의 길은 성현이 밟았던 길이며

千車共轍故古今而同道 수많은 수레가 함께 다녔던 까닭에 예나 지금이나 같은 길이라.

盆池 조그만 연못

盆池陷在竹邊 조그만 연못이 대숲에 둘러싸여 있어

鏡匣常開目前 작은 거울이 눈 앞에 늘 열려 있네.

倒卓千竿碧玉 천 줄기 푸른 옥이 거꾸로 솟아 있어

圓涵萬里靑天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두루 머금었네.

謝文先輩移竹

문(文) 선배가 대나무를 옮겨준 것에 감사하며

多謝文夫子 문선생께 무척 감사하노니

移來竹數莖 대나무 몇 줄기를 옮겨오셨네.

眼前消暑氣 눈 앞에선 더운 열기 사라지고

窓外助風聲 창 너머론 바람 소리 북돋우네.

薄暮和烟碧 저녁 무렵엔 안개에 젖어 푸르고

淸霄漏月明 맑은 밤엔 달빛 스미어 밝도다.

更憐寒雨裡 더욱 어여쁜 것은 차가운 비 내릴 적에

葉葉泣珠成 잎마다 눈물 같은 구슬이 맺히는 모습.

送僧 스님을 전송하며

出家須自在 출가하면 자유자재해야 하나니

幾個透重關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하셨나.

獨步遊方外 홀로 방외의 세계에 노닐며

高懷慠世間 고결한 생각 세속을 벗어났네.

片雲身快活 조각 구름처럼 몸은 쾌활하고

霽月性淸閑 구름 걷힌 달처럼 성품은 맑고 한가로와라.

一鉢一殘衲 발우 하나에 낡은 누더기 하나

鳥飛千萬山 수많은 산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가누나.

碁詞腦歌 기사뇌가6)

6) 기사뇌가(碁詞腦歌) : ‘사뇌가’는 향가의 원래 명칭, 혹은 10구체 향가를 특별히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인다. 이 제목에서 쓰인 ‘사뇌가’도 이 시가 원래 향가였던

것을 한역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君看憂喜鳥 그대는 우희조7)를 보았는가?

高在碧山嶠 푸른 산 높은 곳에 산다오.

聞世可笑事 세상에 우스운 일 들으면

放聲時一笑 한바탕 크게 웃어버리지.

偶隨貪肉鴟 우연히 고기를 탐하는 솔개를 따라서

聚落遠遊嬉 마을까지 멀리 나들이 왔다가

忽爾入羅網 문득 그물에 걸리어서

出身無可期 빠져나갈 기약이 없게 되었지.

心生須托境 마음이 생기는 것은 경계에 이끌린 탓

窮谷冝捿遲 깊은 계곡에 그냥 편안히 지내는 것이 좋았을 것을.

7) 우희조(憂喜鳥) : ‘근심과 기쁨의 새’라는 뜻으로, 실재하는 새가 아니라 비유적

인 의미로 설정한 새인 듯함.

天照上座因雨請頌

천조(天照) 상좌(上座)가 비소리를 듣고 송을 청하기에

簷頭雨滴滴相續 처마 끝에서는 빗방울소리 계속 이어지고

門外溪聲聲轉急 문 밖에선 시냇물소리 갈수록 빨라지네.

不在多聞苦修習 많이 배우고 힘들게 수행하기보다는

只求一處成休復 오직 한 곳에서 찾아 본래 자기로 돌아감이 나으리.

知足樂 만족을 아는 즐거움

浮雲富貴奈吾何 뜬구름 같은 부귀가 나를 어찌하리오

隨分生涯亦自佳 분수에 따른 생애를 또한 스스로 아름답게 여기네.

但不愁來何必酒 근심이 오지도 않는데 술이 무슨 필요 있을까?

得安心處便爲家 마음을 편히 하는 그곳이 바로 내 집이로세.

更漏子 물시계

秋風急 가을 바람 드세지니

秋霜苦 가을 서리 매섭구나.

歲月看 세월을 살펴보니

看向暮 점차 저물어감이 보이네.

群木落 뭇 나무들은 낙엽지고

四山黃葉 사방의 산은 누런 잎으로 뒤덮혔네.

松筠獨蒼蒼 소나무 대나무는 홀로 푸르건만

人間世能幾歲 인간은 능히 얼마를 살겠는가?

忽忽光陰電逝 홀연히 시간은 번개처럼 흘러가네.

須猛省細思量 모름지기 맹렬히 살피고 자세히 생각해야만

無來一夢場 한 바탕 꿈을 다시는 꾸지 않으리.

息心偈 마음을 쉬는 게송

行年忽忽急如流 가는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기만 한데

老色看看日上頭 늙은 빛은 나날이 머리 위로 올라오네.

只此一身非我有 이 몸도 내 것이 아니거늘

休休身外更何求 그만 두자, 몸 밖에서 또 무엇을 구하리.

池上偶吟 연못 위에서 우연히

微風引松籟 솔잎에 미풍 불어 소리가 나니

肅肅淸且哀 쓸쓸하여 맑으면서 구슬프네.

皎月落心波 밝은 달빛이 마음의 물결에 떨어지니

澄澄淨無埃 맑고 맑아 티끌 하나 없구나.

見聞殊爽快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자못 상쾌하기만 하여

嘯咏獨徘徊 시구 읊으며 홀로 배회하네.

興盡却靜坐 흥취가 다하여 문득 고요히 앉으니

心寒如死灰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해지네.

信宿慈悲寺逸庵

이틀 동안 자비사(慈悲寺) 일암(逸庵)에 자면서

夜樓窓外掛孤輪 밤 누각 창 밖에 외로운 달 걸리니

睡罷欣欣得舊隣 잠에서 깨어 옛 이웃을 만난 듯 반가웁네.

賴有早鷄報聲曉 부지런한 닭이 새벽을 알려주는 소리 덕분에

免敎胡蝶夢酣春 나비되어 봄을 즐기던 꿈에서 깨어났네.8)

竹君飽月冷相對 대나무는 달을 안은 채 차갑게 마주 서 있고

松叟吟風淡以親 소나무는 바람에 소리 내어 친구처럼 맑구나.

只此見聞殊不俗 다만 이처럼 보고 듣는 것이 세속과는 워낙 다르니

凄然爽氣一通身 상쾌한 기운이 싸늘하게 온 몸을 감싸네.

8)『장자』에 꿈 속에 나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깊은 꿈 속에 빠져들어 꿈

을 현실로 착각함을 의미한다

福城道中 복성(福城)9)으로 가는 도중에

9) 복성(福城) : 전라남도 보성지역의 옛 지명.

漫漫客路傍長川 아득한 나그네 길 곁으로는 긴 시냇물

乘興高吟思豁然 흥이 나서 높이 읊조리니 활달한 마음

落葉泛流飄彩舫 물결에 떠내려가는 낙엽은 채색한 배 같고

浮萍點水撒靑錢 물에 닿은 부평초는 푸른 동전을 흩어 놓은 듯.

山沈寒碧倒疊嶂 차고 푸른 물 속으로 겹겹의 산봉우리 잠기었고

鴨戱淺淸窺小鮮 오리는 얕고 맑은 물에 놀며 작은 물고기 엿보네.

忽有蕭蕭微雨過 문득 쓸쓸히 가랑비 스쳐 지나가니

洗新秋色入林泉 숲 속의 샘물에 신선한 가을빛이 어리네.

竹尊者 대나무

我愛竹尊者 나는 대나무를 사랑하노니

不容寒暑侵 추위와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지.

經霜彌勵節 서리가 내려도 더욱 꿋꿋하고

終日自虛心 하루 종일 스스로 마음을 비우지.

月下分淸影 달 아래선 맑은 그림자 드리우고

風前送梵音 바람 앞에선 우주의 소리를 들려주지.

皓然頭載雪 머리에 허연 눈을 뒤집어 쓴 모습

標致生蕞林 빼어난 기품 절간에 생겨나네.

雨後松巒 비 개인 후 소나무 언덕

雨霽冷出浴 비 개이니 목욕을 하고 난 듯 시원하고

嵐凝翠欲滴 산 기운 어리어 푸른 빛은 방울 맺힐 듯.

熟瞪發情吟 한동안 바라보다 기분이 나 시를 읊으니

渾身化寒碧 상쾌하고 푸른 기운이 온 몸에 가득하네.

得度時辭家詩 출가할 때 집을 떠나며 지은 시

志慕空門法 뜻이 불가의 법을 흠모하여

灰心學坐禪 재같이 식은 마음으로 좌선을 익히네.

功名一墮甑 공명이란 하나의 깨어진 시루이고

事業恨忘筌 사람의 일이란 별것이 아니라네.

富貴徒爲爾 부귀는 헛될 따름이요

貧窮亦自然 빈궁함도 또한 자연이라.

吾將捨閭里 내 장차 마을을 버리고 가서

松下寄安眠 소나무 아래에서 편안히 잠자리라.

眞一上人來言曰,“ 某乙賦性散亂 未能調攝. 或於靜處捺伏

則便落昏沈. 惟此二病是患 請得法偈 爲對治方”

진일(眞一) 상인(上人)10)이 와서 하는 말이 “저는 타고난 성품이 산만

하고 어지러워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고요한 곳에 가만

히 있으면 의식이 멍해지고 맙니다. 이 두 가지 병이 근심이니 게송을

지어 다스리는 처방으로 삼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10) 상인(上人) : 지혜와 덕을 겸비한 스님네를 존칭하는 말.

實際本來湛寂 실제의 본래는 맑고 고요한 것이니

神機自爾靈明 정신의 기틀이 절로 신령스럽게 밝도다.

任運忘懷虛浪 운에 맡겨 허랑한 생각들을 다 잊으면

何關沈掉兩楹 멍하거나 들뜨거나 무슨 상관이랴.

惺惺無忘曰眞 마음이 생생하게 깨어있는 것을 ‘참’이라 하고

寂寂不分是一 고요하고 고요하여 분산되지 않는 것을 하나라고 하네.

但能不負汝名 다만 능히 그대의 이름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何用別他術 다른 기술이야 무슨 소용 있으리.

孤憤歌 외로움과 울분의 노래

人生天地間 인생 천지 사이에

百骸九竅都相似 백개의 뼈와 아홉 구멍이 있는 것은 한가지인데

或貧或富或貴賤 가난함과 부유함과 귀천이 서로 다르며

或妍或醜緣何事 누구는 예쁘고 누구는 추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曾聞造物本無私 조물주는 원래 사심이 없다 하거늘

乃今知其虛語耳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이 헛말임을 알겠도다.

虎有爪兮不得翅 호랑이는 억센 발톱이 있지만 날개는 없고

牛有角兮不得齒 소는 뿔이 있지만 날카로운 이빨은 없는데

蚊虻有何功 모기와 등에는 무슨 공로가 있어

旣翅而又觜 날개도 있고 뾰족한 주둥이까지 가졌나?

鶴脛長兮鳧脛短 학의 다리는 길지만 오리 다리는 짧으며

鳥足二兮獸足四 새의 다리는 둘이지만 짐승 다리는 넷이지.

魚巧於水拙於陸 물고기가 물에서는 솜씨가 좋지만 뭍에서는 서툴고

獺能於陸又能水 수달은 뭍에서도 능하고 물에서도 능하지.

龍蛇龜鶴數千年 용과 뱀과 거북과 학은 수천년을 살지만

蜉蝣朝生暮當死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나면 저녁에는 죽어야 하지.

俱生一世中 모두가 한 세상에 태어났건만

胡奈千般萬般異 어찌하여 천 가지 만 가지로 서로 다른가?

不知然而然 왜 그런지 모르면서 그러하니

夫誰使之使 대저 누가 그렇게 시켰단 말인가?

上以問於天 위로는 하늘에 물어보고

下以難於地 아래로는 땅에게 꾸짖어도 보지만

天地默不言 하늘과 땅은 묵묵히 말이 없으니

與誰論此理 누구에게 이 이치를 따져 볼까?

胸中積孤憤 가슴 속에 외로움과 울분이 쌓여

日長月長銷骨髓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골수가 녹아나네.

長夜漫漫何時曉 길고 긴 밤 어느 때나 날이 샐까?

頻向書鍃啼不已 수시로 서창을 향하여 울음 그치지 못하네.

代天地答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답한다

萬別千差事 천차만별로 다른 일은

皆從妄想生 모두가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

若離此分別 만약에 이러한 분별에서 떠난다면

何物不齊平 어떤 사물인들 평등하지 않으리오?

題金山 금산(金山)에서

賴我金山是石山 다행히도 나의 금산(金山)은 돌로 된 산이니

不然何以得空閑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한가한 시간을 얻으리오?

看他遠近膏腴地 저 멀고 가까운 각지의 기름진 땅들을 보면

燒玄耕來無歇間 검게 태워 경작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지 않은가?

題金剛庵招隱臺 금강암(金剛庵) 초은대(招隱臺)에서

松覆岩隈僻更幽 소나무 거꾸로 자라는 바위 낭떠러지의 궁벽한 곳

石床苔座穩藏頭 돌 침상의 이끼 낀 자리에 편안히 숨어 사네.

時人愛走芳菲地 세상 사람들은 화려한 곳으로 내달리건만

能信山中淡閑不 산중의 맑고 한가한 삶을 알아나 줄까?

答田祿事 전(田) 녹사(錄事)11)에게 답함

11) 녹사(錄事) : 고려시대 관직 이름.

君去城市我靑山 그대는 도시로 나는 청산으로 떠났지만

相見無虧頃刻間 잠시라도 틈이 없이 서로를 만나지요.

夜暗日明空色界 밤이면 어두워지고 낮이면 밝아지는 이 세상

誰非居士老僧顏 어느 것이 거사나 노승의 얼굴이 아니리오?

路畔見無面目石人 傍立沒字碑 因感古人之意 有作

길가에 얼굴 없는 돌사람을 보았는데 곁에는 글자 없는 비석12)을 세

워 두었다. 옛사람의 뜻이 느껴져서 지었다.

12) 글자 없는 비석 : 워낙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인물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무런 글

자도 적지 않고 비석을 세웠다.

石人無面目 돌 사람이 얼굴도 눈도 없으니

功德叵思議 공덕을 헤아리기 어려웁구나.

海墨書難盡 바다를 먹물로 하여 써도 다 쓰기 어려워

惟標沒字碑 글자 없는 비석만 세워 두었네.

中秋翫月 한가위에 달을 보며

明珠白璧在人間 밝고 흰 보배가 인간세상에 있었다면

勢奪權爭不放閑 권세로 다투어 내버려 두질 않았겠지.

若使水輪爲世寶 물에 비친 저 달이 인간세상 보배였다면

豈容垂照到窮山 어찌 위에서 비추어 궁벽진 산에까지 이르게 했으리.

妙高臺上作 묘고대(妙高臺) 위에서

嶺雲閑不徹 고개에 걸친 구름은 느긋하여 떠날 생각을 않는데

澗水走何忙 시냇물은 어디로 그리 바쁘게 달리는고?

松下摘松子 소나무 아래서 솔방울 주워

烹茶茶愈香 차를 끓이니 차 더욱 향기롭구나.

春日遊山 봄날 산 나들이

春日正暄妍 봄날이 정말 따스하고 아름다와

出遊心自適 나들이 나서보니 마음 절로 쾌적하네.

陽崖採蕨薇 양지바른 언덕에선 고사리 캐고

陰谷尋泉石 그늘진 계곡에선 샘물 찾노라.

巖溜冷飛淸 바위엔 맑고 시원한 물방울 날아 떨어지고

溪花紅蘸碧 시냇가 꽃은 붉은 빛이 푸른 물에 잠기었네.

高吟快活歌 큰 소리로 즐겁게 노래 부르고

散步愛幽僻 산보하며 깊은 산 속 풍경 즐기네.

冷翠臺 냉취대(冷翠臺)

疎松冝月白 성근 소나무에 달빛이 희고

幽峽足風淸 깊은 협곡엔 바람이 맑구나.

笑傲縱遊戱 마음껏 웃고 즐기노라니

高低隨處平 높고 낮은 곳곳마다 평안한 마음.

瀑㳍 폭포

迅瀑落危層 높다란 절벽 위에서 빨리도 떨어지는 폭포

冷聲聞還壑 차가운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네.

纖纖一點塵 가늘고 가는 한 점 먼지조차

無處可栖泊 깃들거나 머물 곳이 없구나.

淸潭 맑은 연못

寒於未釋氷 녹지 않은 얼음보다 차가웁고

瑩若新磨鏡 새로 간 거울처럼 밝네.

只將一味淸 오로지 맑음 하나만으로도

善應千差影 천 가지 다른 그림자에 잘도 응하네.

遊山 산에 노닐며

臨溪濯我足 계곡으로 가서는 내 발을 씻고

看山淸我目 산을 바라보며 내 눈을 맑히네.

不夢閑榮辱 영욕 따위는 꿈꾸지를 않으니

此外更無求 이 밖에 다시 구할 것이 없구나.

過古鄕 고향을 지나다가

一別家鄕十五年 한번 고향을 떠난 지 십오 년인데

此來懷古一潸然 이렇게 와서 회고하며 눈물 흘리네.

逢人半是不相識 사람을 만나도 반은 알지를 못해

嘿思悠悠嘆逝川 묵묵히 생각하며 흘러가는 시냇물을 한탄하네.

和遊上人苦熱

더위가 힘들다는 유(遊) 상인(上人)의 시에 화답하여

時當六七月 때가 육칠 월이 되니

晝熱夜亦熱 낮에도 덥고 밤에도 역시 덥구나.

與儞淸凉方 그대를 시원하게 할 처방을 드릴 터이니

紅爐一點雪 붉은 화로에 한 점 눈이라.

送亮上人 양(亮) 상인(上人)을 전송하며

經霜知勁草 서리를 겪어봐야 굳센 풀을 알 수 있고

入水見長人 물에 들어가 보아야 키 큰 사람을 알 수 있지.

試汝塵中路 티끌 속의 길에서 그대를 시험하노니

埋頭莫沒塵 드러내지 않고 전념하여 티끌에 묻히지 말기를.

對影 그림자를 보고

池邊獨自坐 연못가에 홀로 앉았더니

池低偶逢僧 연못 아래 있는 스님을 만났네.

嘿嘿笑相視 말 없이 웃으며 서로 바라보는데

知君語不應 말을 걸어도 응하지 않는 그대로다.

小池 작은 연못

無風湛不波 바람이 불지 않아 파도 없이 맑으니

有像森於目 빽빽한 영상들이 눈에 가득 비치네.

何必待多言 많은 말이 무슨 필요 있으리?

相看意已足 서로 바라만 보아도 마음 이미 충족한걸.

誡技能 기능을 경계함

大德無爲絕技能 큰 덕을 가진 이는 기능을 끊어 자연에 내맡기니

不須工巧學多能 좋은 솜씨로 여러 기능을 익힐 필요가 없네.

有能常被無能使 유능하면 무능한 자의 부림을 받으니

須信無能勝有能 무능함이 유능함보다 나음을 믿어야 하리.

留題淸庵寺 청암사(淸庵寺)에 머물며

春遊選勝到精藍 좋은 곳 골라 봄나들이 하다가 깔끔한 가람에 이르니

物外家風得飽參 세속을 벗어난 가풍을 충분히 알겠구나.

境靜人閑無俗界 주변이 조용하고 사람도 한가로와 속됨이 없는 곳

命名眞箇是淸庵 이름 그대로 정말 맑은 암자로다.

隣月臺 인월대(隣月臺)

巖蕞屹屹知幾尋 바위산 우뚝 높아 얼마나 되는지

上有高臺接天際 그 위에 대가 있어 하늘 끝에 닿아 있네.

斗酌星河煮夜茶 북두칠성으로 은하수 길어다가 차를 끓이는 밤

茶煙冷鎻月中桂 차 끓이는 연기가 달 속의 계수나무 싸늘히 둘러 싸네.

避暑臺 피서대(避暑臺)

巖頭月白無時照 바위 곁에 뜬 달은 언제나 밝게 비치고

石眼風淸盡日吹 석간수에 맑은 바람 온 종일 불어오네.

願與世人分爽快 세상 사람들과 상쾌함 나누고 싶으나

此心能有幾人知 이 마음 몇 사람이나 알아줄까?

示信士裴允亮 신도 배윤량(裴允亮)에게 보임

今之視昔如昨夢 어제 일을 오늘 되돌아보면 마치 꿈인 듯하니

後復思今亦應爾 뒷날 다시 오늘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리.

顧此生兮能幾時 생각컨대 이 생이 얼마나 될까?

悲夫逝者如流水 슬프구나, 가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아.

悠悠奚暇渉他緣 유유히 어느 여가에 다른 인연을 따르리?

急急要須明自己 서둘러 자기 밝히는 일이 중요하지.

已事了然明得來 이미 사물을 환히 밝히고 나면야

死生榮辱何憂喜 생사와 영욕이 무슨 근심이리?

晚晴 저녁 무렵 날이 개어

點開山色看無厭 점점이 산빛이 열리어 보아도 싫증 나지 않고

洗出鶯聲聽更新 씻은 듯한 앵무새소리 들을수록 더욱 새로워.

多謝晩霖特一霽 고맙게도 장마가 저녁 무렵 잠시 개이니

着些滋味慰閑人 이런 재미가 한가로운 사람을 위로해 주네.

次黃中使韻 황(黃) 중사(中使)13) 시의 운자에 맞추어

13) 중사(中使) : 임금이 보낸 사신.

使星影落曹溪水 임금의 사신 그림자 조계산의 물14)에 비치어

光芒爍爍照天地 번쩍번쩍 빛이 천지를 비추누나.

威迫寒僧不奈何 그 위엄도 한미한 중을 어찌할 수 없을지니

始知禪者無巴鼻 비로소 알리라 선수행자의 코는 잡을 수가 없음을.

- 宣喚不應故云 - 임금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이 시를 썼다.

14) 조계산 : 작가인 혜심이 주석하던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가 있던 산 이름.

儉園頭求頌 검(儉) 원두(園頭)15)가 게송을 원하기에

15) 원두(圓頭) : 절에서 채소밭을 관리하는 스님.

聞古禪和擊土塊 들었는가, 예전에 선수행자가 흙덩이를 부수어

忽然打破三千界 홀연히 삼천대천세계를 깨부숴버렸다는 말을.

钁頭分付汝提持 괭이 자루 잡아 그대가 지니기를 분부하노니

受用從君得自在 늘 그대 몸에 지닌다면 자유자재함을 얻으리라.

栽松栢 소나무 잣나무를 심으며

栽松種栢示蕞林 소나무와 잣나무를 절간에 심는 것은

非但炎天愛翠陰 더운 날의 푸른 그늘을 좋아해서만이 아니라네.

直待千秋黃落盡 가을이 되어 누런 낙엽 다 지고 났을 때

看渠獨有歲寒心 홀로 추위를 이기는 마음을 보려 함이네.

次膺律師求法韻

응(膺) 율사(律師)가 게송을 청하는 시의 운에 맞추어

廓落無依無相身 텅 비어 의지할 곳 없고 모습도 없는 그 몸을

禪家嗅作本來人 선가에서는 본래의 참사람이라고 하지요.

但能自照虛明地 스스로 텅 비면서도 밝은 그곳을 비출 수 있을 때

何更從他苦問津 다시는 힘들여 남에게 나루터16)를 물을 필요가 없게 되지요.

16) 나루터 : 피안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루터. 진리로 들어가는 길, 올바른 수

행의 방법을 의미한다.

予夢見大悲菩薩, 爲予曰,“ 子能正印否?” 予應應曰,“ 將印

來.” 菩薩擧手作提勢, 通身放光 遍照天地. 遂步虛而徃, 予

亦從之. 及覺乃作賛曰,

내가 꿈에 대비보살을 만났는데, 나를 위해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바르게 도장17) 찍을 수 있는가?” 하시었다. 내가 응답하기를, “도장을

주십시오.” 라 하였다. 그러자, 보살은 손을 들어 건네줄 자세를 취하

는데, 온 몸에서 빛을 발하여 천지를 비추었다. 마침내 허공을 걸어

서 가시었는데, 나도 뒤를 따라 갔다. 이어 잠을 깨어 찬시를 짓는다.

17) 도장 : 도장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稽首觀世音 관세음보살께 머리 조아리노니

大悲老婆心 대자대비하신 마음으로

手提無文印 손수 무늬 없는 도장18)을 주시어

印我鼻孔深 내 콧구멍 깊다고 인가하시었네.

豈唯印無文 어찌 오직 무늬 없는 도장뿐이리오

身亦無處尋 몸 또한 찾을 곳이 없어라.

而常不離此 그러면서도 항상 이곳을 떠나지 않으니

淸風散竹林 맑은 바람이 대숲에 흩어지네.

18) 무늬 없는 도장[無文印] : 도장은 깨달음을 상징하며, 무늬가 없다는 것은 깨달

음이 어떠한 문자나 무늬, 즉 개념이나 형상으로 나타낼 수 없음을 의미한다.

小字『金剛經』賛 并序

작은 글씨로 쓴『금강경』을 기리는 시

道者炅然 於少環中 寫『金剛經』, 心着眼 字字畫如蚊睫 行布巧以螺文,

非唯用筆之工 亦乃設機之妙. 苟非心精智巧 何以臻此哉! 爲之賛曰,

수행자 경연(炅然)이 조그만 고리짝 속에 『금강경』을 베껴 두었는데, 눈에 마

음을 모아 글자마다 획이 모기 속눈썹과 같고 배열하기를 소라 무늬처럼 하

였으니, 붓을 다루는 솜씨만이 아니라 마음을 쓴 것이 절묘하다. 마음이 정밀

하고 지혜가 뛰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을 위하

여 찬시를 짓는다.

實相無相 진실한 모습은 아무런 모습이 없으니

體自圓虛 본체는 절로 원만하면서19) 텅 비도다.

虛不失照 텅 비었어도 비춤을 잃지 않고

照無遺餘 비춤은 조금도 빠트림이 없어라.

隨緣萬別 만 가지 다른 인연을 따르지만

不癈一如 내버림 없이 한결같네.

大悲大智 크게 자비롭고 크게 지혜로와

於焉起予 나를 일깨워주네.

洗足敷坐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으시니

空生覷破 수보리가 보고 깨쳤네.

因而請益 가르침을 더 청하니

乃爾注下 물을 따르듯이 설법하시었네.

雖度四生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하시었다고 하지만

亦本無我 본래는 무아(無我)라네.

今此小輪 지금 이 작은 수레바퀴가

具三般若 세 가지 반야를 갖추었으니

於文字中 이 문자 가운데서

着得箇眠 눈을 틔우소서.

乘筏超流 뗏목을 타고 물결을 넘어가면

便登彼岸 곧 피안의 세계로 갈 수 있으리.

19) 원만하면서 : 원만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두루 포괄한다는 의미이다.

寓居轉物庵 전물암(轉物庵)에 살면서

五峰山前古巖窟 오봉산 앞 움푹 파인 곳

中有一菴名轉物 그 가운데 ‘전물’이란 암자 하나.

我栖此庵作活計 내 여기 깃들어 살아보고자 하니

只可呵呵難吐出 껄껄 웃기만 할 뿐 아무 말 않네.

缺唇垸絕脚鐺 이빨 빠진 발우와 다리 부러진 솥으로

煎粥煎茶聊遣日 죽을 끓이고 차를 끓이며 날을 보내지.

踈慵不掃復不芟 게을러서 쓸지도 않고 풀도 베지 않아

庭草如雲深沒膝 마당에 풀이 구름처럼 깊어 무릎까지 묻히네.

晩起不知平旦寅 몇시나 되었는지도 모른 채 일어나며

早眠不待黃昏戌 황혼을 기다리지도 않고 일찌감치 잠들지.

不剃頭不看經 머리를 깎지도 않고 경전도 보지 않으며

不持律不燒香 계율도 지키지 않고 향도 피우지 않지.

不坐禪不禮祖 좌선도 하지 않고 조사와 부처님께 예를 올리지

不禮佛 도 않네.

人來怪問解何宗 사람들이 와서 이상히 여겨 무슨 종파냐고 묻건만

一二三四五六七 일이삼사오륙칠

莫莫莫密密密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있으면

家醜不得外揚 집안의 추한 모습 밖으로 알려지지 않으리.

摩訶般若波羅密 마하반야바라밀.

五峰山色昏彌翠 오봉산 산빛이 저녁이 되면 더욱 푸르고

一帶溪聲曉更高 일대의 계곡물 소리 새벽이면 더욱 높아라.

暮去朝來聲色裡 저녁이 가고 아침이 오는 소리와 빛깔에서

淸歌誰得似吾曹 누가 우리처럼 맑은 노래 얻을까?

五更山月囱前白 새벽녘 산에 뜬 달은 창 앞에 밝고

數里松聲枕上淸 멀리 소나무 소리는 베개 위에 맑도다.

富貴多勞貧賤苦 부귀는 수고롭고 빈천은 고되지만

隱居滋味與誰評 숨어 사는 이 재미를 누구와 말해볼꼬?

湛靈上人求六箴

담령(湛靈) 상인(上人)이 여섯 가지 잠언을 구하기에

眼 눈

塵中有大經 티끌 가운데 큰 경전이 있는데

如何看不了 어찌하여 다 보지 않나?

速撥律陀眼 속히 아누루타의 눈20)을 뜨고

早開迦葉咲 일찌감치 가섭의 미소21)를 지으라.

鬱鬱渭邊松 울창한 강가의 소나무여!

靑靑原上草 푸르고 푸른 들판 위의 풀이여!

咄咄咄 쯧! 쯧! 쯧!

漏逗也不少 번뇌가 적지 않구나.

20) 아누루타의 눈 : 부처님의 제자로, 부처님 앞에서 자다가 꾸중을 들은 후 잠을

자지 않고 수행을 하다가 눈이 멀었으나, 천안이 트여 천안제일로 인정받는다.

21) 가섭의 웃음 : 부처님이 설법을 하지 않고 말없이 연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그

의미를 알아채고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흔히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 한다.

耳 귀

莫逐五音去 현란한 소리들을 좇지 말지니

五音令汝聾 현란한 소리들은 너를 귀먹게 하리라.

觀世音安在 관세음보살은 어디에 계신지

圓通門不封 원통문22)은 닫혀 있지 않다네.

磬搖明月響 풍경은 밝은 달빛 흔들며 울려 오고

砧隔白雲舂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 흰 구름 너머서 들려오네.

噁噁噁 악! 악! 악!

好與三十棒 몽둥이23) 서른 대를 쳐야겠군!

22) 원통문(圓通門) : ‘두루 통하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소원

을 살피고 들어주는 일을 하는데, 그 능력이 어디든지 다 통한다고 하여 관세음

보살의 능력을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23) 몽둥이 : 선가에서는 수행자의 생각을 틔워 주기 위하여 고함을 지르거나 몽둥

이질을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鼻 코

香處勿妄開 향기로운 곳에 함부로 코를 열지 말고

臭中休强塞 냄새 나는 곳에 억지로 코를 막지 말지니

不作香天佛 향기로운 하늘의 부처도 되지 않거늘

況爲屍注國 하물며 시주국24)이 되리오?

鐺中煎綠茗 솥에는 녹차를 끓이고

爐上燒安息 화로에는 안식향을 태우노니

呵呵呵 껄! 껄! 껄!

其處求知識 그 곳에서 선지식을 구할지라.

24) 시주국(屍注國) : 시체와 똥으로 가득하다고 하는 지옥.

舌 혀

不貪法喜羞 진리의 즐거움이란 안주도 탐하지 않는데

況嗜無明酒 하물며 무명(無明)의 술을 즐기랴?

莫說野狐禪 야호선25)을 말하지 말라

終日虛開口 하루 종일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嘿入獅子窟 침묵할 때에는 사자굴에 들어가듯이 하고

語出獅子吼 말을 할 때에는 사자의 울부짖음처럼 하라.

誰知語嘿外 누가 알랴, 말과 침묵 이외에

更有那一句 다시 한 구절이 있음을.

25) 야호선(野狐禪) : 들여우의 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깨달은 것으로 착각하면

서 진리를 설하는 선.

身 몸

莫咬一粒米 한 톨의 쌀도 씹지를 말고

莫掛一條絲 한 올의 실도 걸치지 마라.

恐失家常飯 늘 먹던 밥 잃을까

須染孃生衣 타고 난 몸 물들일까 두렵도다.

壺中一天地 병 속에 또 하나의 천지26)가 있고

刼外四威儀 겁27) 밖에 사위의28)가 있다네.

汝若不如是 그대 만약 이와같이 못한다면

何名出家兒 어찌 출가한 사람이라 하리오?

26) 병 속에 또 하나의 천지 : 중국 전설에 약을 팔던 어떤 노인이 가지고 있던 병 속

으로 들어가 보니 그 곳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고 한다.

27) 겁(劫) : 연월일로 헤아릴 수 없는 아득히 긴 세월.

28) 사위의(四威儀) : 움직이고 머물고 앉고 눕는 등의 일상 생활 중에 승려가 갖추

어야 할 네 가지 위엄 있는 모습.

意 생각

忘懷墮鬼窟 생각을 잊으면 귀신굴로 떨어지고

着意縱猿情 생각을 하게 되면 원숭이의 마음29)이 된다네.

更擬除二病 이 두 가지 병을 제거하려 한다면

未免野狐情 또한 들여우의 마음을 면치 못하리.

水任方圓器 물은 그릇의 생김새에 내맡기고

鏡隨胡漢形 거울은 못된 놈의 꼴이라도 그대로 따르지.

直饒伊麽去 설사 그렇게 하더라도

猶較患聾盲 귀머거리 봉사 될까 걱정되네.

29) 원숭이 마음 : 경박한 마음을 말한다.

和柳秀才 유수재30)에게

30) 수재(秀才) : 수재는 과거 공부하는 사람, 혹은 공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先儒通地又通天 옛 유학자들은 지리에 통달하고 천문에도 통달하였건만

後學云何却不然 후학은 어찌하여 그러하지 못하는가?

鸚鵡狂才邀妄譽 앵무새같은 경솔한 재주로 엉터리 칭찬을 받고

蜘蛛少巧逞虛傳 거미같은 조그만 솜씨로 헛된 이름 전하려 하네.

形羸可似喪家狗 몰골이 파리하면 집 잃은 개와 같아지지만

心淨須如出水蓮 마음이 맑으면 물 위로 솟은 연꽃과 같아지지.

聞者書紳常佩帶 들은 자는 허리띠에 적어서 늘 차고 있을지니

捨邪歸正勝因緣 삿됨을 버리고 바름으로 돌아오는 것이 최고의 인연이라네.

以詩呈悟處依韻答之

깨달은 바를 시로 써서 보내왔기에 답함

魚龍在水不知水 물고기와 용은 물 속에 있으면서도 물을 알지 못하고

任運隨波逐浪遊 마음대로 물결 따라 노닌다네.

本自不離誰得失 본래부터 떠나 있는 것이 아닌데 누가 얻고 잃겠나

無迷說悟是何由 본래부터 미혹함이 없거늘 깨달음이라 말하니 이 무슨 까닭인가.

惠茶兼呈解答之 차에 감사하고 질문에 답하다

久坐成勞永夜中 긴 밤 좌선하느라 고단한데

煮茶偏感惠無窮 차를 끓이니 감사한 마음 끝이 없네.

一盃卷却昏雲盡 한 잔 차에 어두운 구름 모조리 흩어져서

徹骨淸寒萬慮空 맑고 시원한 기운이 뼈에 사무치고 만 가지 생각도 비워지네.

過生臺有作 과생대(過生臺)에서

飢鳥忽遇飯 배고픈 새가 문득 음식을 만났으나

貪畏兩難收 먹고 싶은 마음 두려운 마음 둘 다 버리지 못하네.

一啄百回顧 한 번 쪼고 백 번을 휘둘러보니

悲成不自由 자유롭지 못한 모습에 마음이 슬퍼지네.

向白雲庵次辭衆

대중과 이별하여 백운암(白雲庵)31)으로 향하면서

31) 백운암(白雲庵) : 고려명종 11년(1181)에 혜심의 스승인 지눌이 창건한 암자로,

전남 백운산에 있다.

暫向雲庵養病身 잠시 백운암으로 가 병든 몸을 요양하려 하니

禪流切勿往來頻 스님들은 일절 자주 왕래 마소서.

曹溪無物不常住 수행하는 공간에는 본래 아무 물건 없으니

莫道堂中無主人 집 안에 주인이 없다 말하지 마소서.

崔㙛求法寫此送之 최부(崔)가 법어를 구하기에 적어 보내다

鏡裡見誰形 거울 속에 보이는 것이 누구의 모습인가

谷中聞自聲 골짜기에 들리는 소리는 자신의 목소리라.

見聞而不惑 보고 듣는 것에 미혹되지 않는다면

何處匪通程 어느 곳인들 길이 통하지 않으리오.

祖月庵聞笛 조월암(祖月庵)32)에서 피리 소리 들으며

32) 조월암(祖月庵) : 전남 백운산에 있는 암자로, 혜심의 스승인 지눌이 창건하였다.

巖屏萬疊雪威重 겹겹의 병풍 같은 바위에 눈까지 엄청난데

村笛一聲春意濃 마을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봄 기운이 물씬하네.

遙想萬家桃李樹 집집마다 복숭아 오얏나무에

幾枝花白幾枝紅 흰 꽃 붉은 꽃 얼마나 피었을지?

求法擧瑞巖主人公話作偈

법어를 구하기에 서암(瑞巖) 스님의 주인공 이야기33)를 들어 게송을

짓다.

33) 중국 당(唐)나라의 서암(瑞巖) 사언(師彦) 선사는 수행할 때 바위처럼 멍청하게

앉아서 자기에게 “주인공아!”라고 부른 다음 스스로 “네!” 하고 대답하고, 다시

스스로에게 말하기를, “정신을 깨어 있게 해서 다른 사람의 속임을 당해서는 안

돼!”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五燈會元』)

主人公諾聽我箴 “주인공이여!” “네!” “나의 잠언을 들으라.”

最好堅除殺盜淫 살생과 도둑질과 음란함을 없앰이 가장 요긴하지.

火聚刀山誰做得 불지옥과 칼지옥은 누가 만들었나?

都緣是汝錯行心 모두가 너의 잘못된 행실과 마음 때문이야.

主人公諾聽我諭 “주인공이여!” “네!” “나의 깨우침을 들으라.”

到處逢人須愼口 어디를 가든 사람을 만나면 입을 조심하라.

口是禍門尤可防 입이란 재앙의 문이어서 더욱이 막아야 하니

維摩默味參取 유마거사가 침묵한 그 의미34)를 잘 새기라.

34) 유마거사에게 문수보살이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대해 물으니 유마거사가 침묵

으로 답했다. (『五燈會元』)

主人公諾聽我辭 “주인공이여!” “네!” “나의 말을 들으라.”

十惡寃家速遠離 십악(十惡)35)으로 원한 맺힌 집을 속히 멀리 떠나라.

惡自心生還自賊 악이란 자기 마음에서 생겨나 스스로를 해치나니

樹繁花菓返傷枝 나무에 꽃이나 열매가 번성하면 도리어 가지를 해치도다.

35) 십악(十惡) : 열 가지 악.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몸으로 짓는

세 가지의 악.

主人公諾聽我語 “주인공이여!” “네!” “나의 얘기를 들으라."

日暮浮生能幾許 날 저물면 뜬 인생이 능히 얼마를 살랴.

昨日虛消今日然 어제도 헛되이 소비하고 오늘도 그러하니

生來死去知何處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나 하겠는가?

主人公諾惺惺着 “주인공이여!” “네!” “정신 차리고 들으라.”

十二時中常自覺 하루 24시간 항상 깨어 있어야 하지.

從來身世太無端 지금까지 받은 몸과 세상 전혀 까닭이 없으니

夢幻空花休把捉 꿈이나 환상같은 것을 잡아서는 안되네.

主人公諾心耶佛 “주인공이여!” “네!” “마음인가 부처인가?”

非佛非心亦非物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또한 아니라네.

畢竟安名喚作誰 그렇다면 끝내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

喚作主人早埋沒 주인공이라 부른다면 일찌감치 틀려먹은 것.

咄 에잇!36)

36) 정신을 차리도록 소리쳐 부르는 소리.

木蓮 목련

見葉初疑柿 잎을 보면 감나무인 듯하다가

看花又是蓮 꽃을 보면 연꽃과 같아라.

可憐無定相 어여쁘구나, 고정된 모습 없이

不落兩頭邊 한 쪽에만 머물지 않도다.

感興 감흥

春秋草色靑黃 봄 가을 풀빛은 푸르다가 누래지고

旦暮雲谷白黑 아침 저녁 구름 낀 계곡은 희다가 검어지네.

誰憐偃蹇寒松 구부정한 차가운 소나무 누가 어여삐 여기리오마는

萬古靑靑色一 만고에 한결같이 청청하도다.

左右銘 좌우명

菩薩子菩薩子 보살이여, 보살이여!

常自摩頭深有以 항상 자기 머리 쓰다듬을지니, 여기에 깊은 이유 있도다.

摩頭因得審思量 머리를 쓰다듬으면 자세히 생각하게 되나니

出處本意圖何事 어떤 일을 할 때 그 본래의 뜻은 무엇인가?

僧其相貌俗其心 모습은 중이면서 마음은 속인이라면

可不慚天而愧地 하늘에도 부끄럽고 땅에도 부끄러워라.

麤行狂言任爲汝 거칠고 미친 언행을 마음대로 한다면

鑊湯爐炭何回避 확탕지옥37) 노탄지옥38) 어찌 피하리.

37) 확탕지옥(鑊湯地獄) : 끓는 물에 삶기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지옥.

38) 노탄지옥(爐炭地獄) : 숯불에 달궈지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지옥.

侍者四人求頌 시자(侍者)39) 4인이 게송을 구하기에

39) 시자(侍者) : 경륜이 깊은 스님 곁에서 보좌하는 승려.

(1) 示希祖 희조(希祖)에게 보임

通心達大道 마음을 알아야 큰 도에 이르나니

凡聖不同纒 범인과 성인을 같이 묶을 수는 없도다.

希則可爲祖 원하면 조사가 될 수는 있겠으나

還如學海川 쉬지 않고 바다를 향하는 시냇물과 같아야만 하리.

(2) 示玄湛 현담(玄湛)에게 보임

迷風動覺海 미혹의 바람이 깨달음의 바다를 요동시키니

覺海生空漚 깨달음의 바다에 물거품이 생겨나네.

空漚着三有 물거품에 삼유40)가 붙어서

三有暫停留 삼유가 잠시 머무네.

風怗浪自靜 바람이 고요하면 파도도 절로 가라앉고

漚滅無從由 물거품도 사라져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네.

湛湛絕涯涘 끝 없이 맑고 맑아

顧之浪悠悠 돌아보면 잔잔한 물결.

40) 삼유(三有) : 생겨나는 찰나와 존재해 있는 동안과 사라져 없어지는 찰나를 합

쳐서 삼유라 한다.

(3) 示了嘿 요묵(了嘿)에게 보임

心常了了口常嘿 마음은 언제나 지혜롭고 입은 항상 침묵하나니

且作伴癡方始得 바보처럼 멍청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네.

師帒藏錐不露尖 주머니 속에 송곳을 감추어도 끝이 드러나지 않아야41)

是名好手眞消息 참된 소식42) 얻어내는 재능이라 할 수 있으리.

41)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으면 절로 그 끝이 드러나듯이 재능이 있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의미이다.

42) 참된 소식 : 깨달음.

(4) 示自閑 자한(自閑)에게 보임

終日靑山在白雲 푸른 산은 하루 종일 흰 구름에 싸여 있고

白雲終日在靑山 흰 구름은 하루 종일 푸른 산을 감싸고 있네.

山不顧雲雲戀山 산은 구름을 돌아보지 않아도 구름이 산을 연모하여

山與白雲俱自閑 산과 흰구름 모두가 절로 한가롭도다.

山中四威儀 산중의 사위의(四威儀)43)

43) 사위의(四威儀)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게 하는 일상생활의 움직이고 머물고 앉

고 눕는 네 가지 행동.

山中行 산 속으로 다니니

無限淸風步步生 무한히 맑은 바람 걸음마다 생기네.

蹋盡千峰萬峰去 천 봉우리 만 봉우리 다 밟으며

一條榔栗任縱橫 한 자루 지팡이로 종횡무진 다녔네.

山中住 산 속에 머물며

只麽騰騰過朝暮 이렇게 느긋하게 아침 저녁 보내네.

瘦鶴翹松類不齊 비쩍 마른 학과 우뚝한 소나무는 종류가 다르지만

洒然自得幽居趣 시원스레 저절로 숨어 사는 멋을 아는구나.

山中坐 산 속에 앉으니

侍側唯餘木上座 곁에서 모시는 것은 오직 나무 상좌들뿐.44)

憨憨終日嘿無言 멍청하게 하루 종일 말 없이 지내니

始悔從前閑說話 비로소 후회하네 종전의 한가로운 이야기들.

44) 곁에 다른 사람은 없고, 오직 나무들만이 상좌들처럼 곁에 서 있다는 말.

山中臥 산 속에 누웠더니

頗覺從來得閑暇 그 동안 한가로왔음을 자못 알겠네.

和衣打睡到天明 옷 입은 채 날 밝도록 잠을 자더라도

無須迷頭狂演若 미친 연야달다처럼 미혹해서는 아니되리.45)

45) 연야달다(演若達多)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모습을 보고 무척 좋아하였으나

정작 자기에게는 머리가 없다고 하며 머리를 찾아 미친듯이 달렸다는 이야기가

『능엄경』에 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으로 착각하여 밖에서 찾

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冬日寄石上庵 겨울날 바위 위의 암자에서 지내며

石頭路嶮足難措 바위 끝으로는 길이 험해 발을 딛기도 어려워

竿木隨身猶躂倒 지팡이를 짚더라도 넘어지기 일쑤라네.

況須天寒氷雪多 하물며 날씨 차고 얼음 눈 많을 적엔

故應石上無人到 바위 위에까지 오는 사람 응당 없으리.

宿聊自寺 요자사(聊自寺)에서 묵으며

無端離古寺 괜스레 오래 있던 절을 떠났다가

枉作遠遊子 엉뚱하게 멀리 나다니는 사람 되어버렸네.

今日指君看 오늘날 남을 가리키며 탓하는 사람들

幾人知所自 그것이 자기 탓임을 몇 사람이나 알까.

臨水 물가에서

偶爾來臨止水淸 우연히 맑게 고인 물가로 갔더니

滿頭霜雪使人驚 머리 가득 눈이 내려 사람을 놀라게 하네.

不憂世事兼身事 세상 일도 나의 일도 근심하지 않았건만

誰得栽培白髮生 누가 흰 머리를 길러서 자라게 했나?

奉和地藏一僧統 지장(地藏) 일(一)승통(僧統)46)에게 드림

46) 승통(僧統) : 고려시대에 교종(敎宗)을 총괄하는 직위.

世間文字與聲名 세간의 문자와 명성이란

任是情通也屬情 세속적인 욕심일 뿐.

解絕見止心顯現 알음알이 버리면 마음이 드러나네,

風靜波息海淸平 바람 고요하면 파도가 그쳐 바다가 맑고 고요하듯이.

鑑師燒了金剛疏 덕산 스님은 금강경을 태워버렸고47)

信老吹消紙燭明 숭신 스님은 촛불을 꺼버렸다지.48)

路遠夜長休把火 길은 멀고 밤이 길더라도 불을 켜지 마소서.

不如吹殺暗中行 불을 끄고 어둠 속에 가는 것만 못하리.

–常看藏經故云 –항상 경전만 보고 있기에 이렇게 썼다.

47) 덕산(德山) 스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 금강경을 불태웠다고 한다.

48) 숭신(崇信) 스님은 덕산스님이 왔을 때 촛불을 주었다가 바로 꺼버림으로써 깨

우치게 하였다 한다.

次前韻示淵深上座 연심(淵深) 상좌(上座) 스님에게

從來無相亦無名 애당초 모습도 없고 이름도 없거늘

何用安排强起情 무엇하러 억지로 맞추려고 애를 쓰리오.

截鶴續鳬非自適 학의 다리 잘라서 오리 다리에 잇는 것은 편안하질 않고

實淵夷岳未眞平 연못을 메우고 산을 깎는 것은 진정으로 평평한 것 아니라.

任長任短甘吾分 길든 짧든 내 분수를 달게 여기고

隨下隨高着眼明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눈을 밝게 보소서.

纔入思惟成剩法 생각을 하는 순간 쓸데 없는 일이 되니

狸奴白牯擇修行 신중히 잘 택하여 수행하소서.

幽居 은거 생활

分得樂山仁 산을 좋아하다 보니

看山眞轉新 산을 볼수록 새롭기만 하네.

眼綠當在淨 눈 가득 푸르니 마음 맑아지고

胸次不生塵 가슴에 아무 번뇌 생기지 않네.

靜咲雲多事 분주한 구름을 보며 조용히 웃음 짓고

閑邀月作隣 이웃이 된 달을 한가로이 맞이하네.

區區利名路 구질구질한 명리의 길을

馳逐彼何人 내달려 가는 저 사람 누구인가?

天幕地爲席 하늘을 휘장으로 땅을 자리로 삼으며

山屏石爲壁 산을 병풍으로 돌을 벽으로 삼네.

事簡身自適 일이 별로 없으니 몸도 쾌적하고

境幽心亦寂 있는 곳이 궁벽하니 마음 또한 고요하네.

髮將雲鬪白 머리칼은 구름과 더불어 흰빛을 다투고

眼共山爭碧 눈동자는 산과 함께 푸르름을 다투네.

憫世 세상을 근심함

服食驕奢德不修 먹고 입는 데 사치하며 덕은 닦지 않으니

農公蠶母見幽囚 농사짓는 남정네와 누에 치는 아낙은 감옥살이라.

從玆擧世受寒餓 이제 온 세상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텐데

爲報時人信也不 사람들에게 알려줘도 믿을지 말지.

田蠶不熟已多年 밭과 누에는 흉년이 든 지 이미 수년이요

飢饉相仍疾疫連 기근과 질병이 해마다 이어지네.

禍本無門人所召 화의 근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사람이 불러들인 것

不知自作怨諸天 스스로 지은 것인 줄 모르고 하늘을 원망하네. ■

 

 

 

 

'시선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白雲和尙語錄 백운화상어록  (0) 2023.07.02
圓鑑國師歌頌 원감국사가송  (0) 2023.06.25
眞靜國師湖山錄 진정국사 호산록  (1) 2023.06.18
大覺國師文集 대각국사문집  (0) 2023.06.04
詩選集 시선집  (5) 20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