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德山白蓮社第四代眞靜國師湖山錄
만덕산 백련사 제4대 진정국사 호산록
次韻答林秘書桂一
비서(秘書)1) 임계일(林桂一)2)이 보내준 시의 운에 맞춰 답함〉
1) 비서(秘書) : 고려시대 경적(經籍)의 관리를 맡았던 비서성(秘書省)을 총괄하던
관리.
2) 임계일(林桂一) : 당시 좌습유(左拾遺)·비서(秘書) 등의 벼슬을 하였던 관리로,
천인(天因)의 시집에 서문을 쓰는 등 불교계와 깊은 교류를 하였던 인물로 추정
된다.
遊戱曾拋夢幻中 일찍이 꿈과 환상 속의 장난질 그만두고
年來屛跡一庵空 근자에는 텅빈 암자 하나에 자취를 숨기었네.
捲簾依舊天台月 발을 걷으니 변함없이 천태산3)의 달이 보이고
揮塵惟揚鷲嶺風 영취산 바람은 먼지를 불어가네.
不顧殘生多怯弱 겁 많고 나약한 남은 인생 고려하지 않고
唯思妙法廣流通 오직 묘법이 널리 유통되기만을 생각하였네.
願君着力添光彩 원컨대 그대는 힘써 광채를 더할지니
幸是蓮華結社同 다행히도 연화결사에 함께하였네.
3) 천태산(天台山) : 지의(智顗, 538~597) 스님이 천태산에서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次韻答閑禪老 한(閑) 노스님이 보내준 시의 운에 따라 답함
一衲支寒觱發風 누더기 한 벌로 추운 바람 견디는데
齒衰無復昔時容 이빨이 다 상하여 다시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니
已陳祭地慙蒭狗 제사를 끝낸 후의 추구(蒭狗)4)에게 부끄럽고
未起涔雲媿草龍 비구름이 일지 않는 풀 속의 지렁이에게 무안하네.
殘篆碧煙慵不續 푸른 연기같이 힘없는 글씨는 게을러 이어지지 못하고
滿窓紅日睡猶濃 창에 붉은 해가 가득하여도 잠은 여전히 깊도다.
嵓阿寂寞無來徃 깊은 산 속 적막하여 오가는 사람도 없건만
却喜淸詩慰老蒙 기쁘게도 맑은 시가 어리석은 늙은이를 위안해주네.
4) 추구(蒭狗) : 짚으로 만든 개. 중국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것으로, 제사가 끝
나고 나면 버리므로 아무 쓸모가 없게 된 사물을 의미함.
次韻示同伴 도반에게 보임
老色須臾顚抹霜 늙으니 잠깐 사이에 머리가 다 희어지는데
華封微懇祝陶唐 화봉인의 작은 정성은 요임금을 축복했었지.5)
一心冥契三觀妙 한 마음은 삼관(三觀)6)의 묘함과 일치하고
萬行熏修四德香 만 가지 행은 사덕(四德)7)의 향기로움을 머금었네.
晩歲憨癡忘日課 늙은 나이의 어리석음은 일과를 잊었으니
早年聲價愧氷涼 이른 나이의 명성이 다 식어버렸음이 부끄러워라.
風淸月白通千界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이 온 세상으로 통하니
水綠山靑占別鄕 푸른 물 푸른 산은 별천지 같구나.
訪道人人頻扣寂 도를 찾아드는 사람들 적막함을 자주 깨트리고
興悲處處便和光 슬픔 일으키는 곳곳에선 세상사람들과 함께하네.
馳名畢竟成何事 명성을 떨친들 필경 무엇을 이루리오?
濁惡浮生最可傷 탁하고 악한 뜬 인생이 가장 마음 아프네.
5) 화봉인(華封人)이라는 사람이 요(堯)임금을 만났을 때 요임금의 장수와 부와 아
들 많기를 빌어주었다.
6) 삼관(三觀) : 천태학에서 말하는 세 가지 관법.
7) 사덕(四德) : 대승불교에서 대열반이 갖는 상(常)·락(樂)·아(我)·정(靜)의 네
가지 덕.
又寄柳平章并序
평장사8) 유경(柳璥)9)에게 드림 -서문과 함께〉
近來歲月甚促 才餞季冬 依然孟春猶寒 暗催老相 復吹前韻 寄呈一首
貺已. 同我願海 印成蓮經一千部, 更欲成千部 普勸流通也.
근래 세월이 심히 빨라서 겨울을 보내고 곧바로 의연한 봄이 되었지만 추위
는 여전하여 은근히 늙음을 재촉하기에 전에 쓴 시의 운에 따라 지은 시 한
수 드립니다. 제가 바라는 바와 같이 법화경 천 부를 인쇄하고, 다시 천 부를
만들어서 널리 유통시키고자 합니다.
8) 평장사(平章事) : 고려시대 정2품 벼슬.
9) 유경(柳璥) : 1211(희종 7)~1289(충렬왕 15). 1258년에 최의를 죽여 4대에 걸친
무신정권을 종식시켰다. 많은 요직을 거쳤으며, 1262년에 평장사가 되었고, 문
학에도 능하였다.
我昔在纒時 내가 예전에 번뇌에 싸여 있을 때
蓮經偏信受 오직 법화경만 공부하였으니,
意欲居堀眴 토굴에 틀어박혀서
常誦期可久 항상 외면서 가구10)처럼 되기를 기약하였네.
結伴遠尋師 도반들과 함께 멀리 스승을 찾아다니며
紅塵謝械杻 세속의 얽매임을 벗어났었고,
因領自家珍 이로 인해 자기 속의 보배를 깨달아
免向他鄕走 타향으로 내달리지 않게 되었네.
扶立大法幢 큰 진리의 깃발을 세우는데
同勤左右手 왼 손 오른 손 함께 부지런히 하였으니
自此引玄賓 이로부터 진리를 찾는 손님들을 이끌어
雜還成淵藪 수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네.
流通一佛乘 부처님 이룰 진리 유통시키니
字字金毛吼 글자마다 금사자11)의 울부짖음이요,
目前卽寶渚 눈 앞이 곧 보배의 연못12)이니
庶導羣盲蹂 수많은 맹인들을 인도하였네.
幸今同願海 다행히 이제 큰 소원을 함께하니
感歎不容口 감탄을 입에 담을 수 없도다.
努力更加功 더욱 노력을 더할지니
吾衰已皓首 나는 쇠약하여 이미 머리가 허옇네.
須知寂滅相 반드시 적멸의 모습을 알지니
聲色露眞趣 소리와 빛 가운데 참된 의미가 드러나도다.
春事到江南 봄이 강남에 이르니
鴣鴣啼碧柳 자고새가 푸른 버들가지에서 울어댄다.
10) 가구(可久) : 송나라 고승으로, 늘 『법화경』을 외우면서 서방 왕생하고자 하였다.
11) 금사자(金獅子) : 문수보살이 금사자를 타고다녔다고 한다.
12) 보배의 연못 : 서방 극락에 가면 보배 연못이 있다고 한다. 곧 극락을 의미한다.
禪堂偈 선당(禪堂)의 게송〉
半軒猶落日 떨어지는 해는 처마에 걸리었는데
一室自淸風 방 가득히 절로 맑은 바람 불어오네.
坐久境逾寂 좌선을 오래하니 경계가 더욱 고요하거늘
莫言空假中 공·가·중13) 따윈 일컫지도 마소서.
13) 공(空)·가(假)·중(中) : 천태학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개념. 만물은 실재하지 않
으므로 공(空)이며, 실재하지는 않으나 현상으로는 나타나므로 가(假)이며, 공
이면서 가이고 가이면서 공이므로 중(中)이라 한다. ■
[출처] 眞靜國師湖山錄 진정국사 호산록|작성자 실론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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