圓鑑國師歌頌 원감국사가송
幽居 은거
棲息紛華外 번잡하고 화려함을 벗어난 곳에 살며
優游紫翠間 자연의 빛 가운데서 즐겁게 노니네.
松廊春更靜 소나무 행랑은 봄이라 더욱 고요하고
竹戶晝猶關 대나무 사립문은 낮인데도 잠겨 있네.
檐短先邀月 처마가 짧다 보니 달을 먼저 맞이하고
牆低不礙山 담장이 낮아 산을 가리지 않네.
雨餘溪水急 비 온 뒤 계곡물은 빠르게 흐르고
風定嶺雲閑 바람이 잔잔해지니 고개 위 구름 한가하구나.
谷密鹿攸伏 골짜기가 빽빽하여 사슴이 깃들고
林稠禽自還 숲이 울창하여 새들이 절로 모여드네.
翛然度晨暝 아침 저녁 금방 지나가는 속에
聊以養疎頑 그저 허술하고 완고한 성품을 기르노라.
至元九年壬申三月初入定惠作偈示同梵
1272년 3월 초 처음 정혜사(定惠寺)1)에 들어가 게송을 지어 스님들에게 보임
1) 정혜사(定惠寺) :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절. 충지의 스승 혜소(慧炤) 국사가 처
음 절을 짓다가 완성하지 못한 것을 제자들이 완성시켰다가 전쟁으로 황폐해진
것을 충지가 다시 복원시켰다.
鷄足峰前古道場 계족봉2) 앞의 옛 도량
今來山翠別生光 이제 오니 산이 푸르러 유난히 빛이 나네.
廣長自有淸溪舌 맑은 시냇물이 절로 수많은 설법을 하고 있는데
何必喃喃更擧揚 다시 새삼 재잘재잘 떠들 필요 있을까?
2) 계족봉(鷄足峰) : 충지스님이 주석하던 정혜사가 있던 산. 지금은 계족산이라 하
며, 전남 순천에 있다.
率衆採蕨廻示同梵
대중을 이끌고 고사리를 캐고 와서 스님들에게 보임
提籃曉出碧崔嵬 바구니 들고 새벽같이 나섰더니 우뚝한 푸른 봉우리
林下閑挑野菜來 숲 아래 한가로이 들나물 캐어 왔네.
欲識箇中無限意 그 속의 무한한 의미 알고 싶은가?
白雲時與暮禽廻 흰구름이 때때로 저녁 새와 함께 돌아오누나.
閑中偶書 한가로운 시간에 우연히 쓰다
寺在千峰裏 절이 천 봉우리 속에 있으니
幽深未易名 그윽하고 깊어 쉽게 이름지을 수 없네.
開窓便山色 창을 열면 바로 산빛이요
閉戶亦溪聲 문을 닫으면 계곡물 소리라.
谷密晴猶暗 골짜기가 깊다 보니 맑은 날씨에도 어둑하고
樓高夜自明 누각이 높으니 밤이라도 절로 밝다.
竹風生几席 자리에는 대숲의 바람이 절로 일고
松露滴檐楹 소나무 이슬은 처마를 적시네.
境靜棲遲穩 주위가 고요하니 살기에 편안하고
身閑擧止輕 몸이 한가로우니 움직이기 가뿐하네.
困來時偃息 고단하면 때때로 누워서 휴식하고
睡足或經行 충분히 자고 나면 거닐기도 해보네.
累盡無欣慼 번뇌가 다하여 기쁨 슬픔 없어지고
賓稀少送迎 손님이 드물어 맞고 보냄 적다네.
飢餘林蔌軟 배고프면 숲속의 산나물이 부드럽고
渴有石泉淸 갈증이 나면 돌가의 샘물이 맑지.
秖是安衰疾 다만 병에 찌든 몸을 안정시킬 뿐
元非養道情 수도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은 아니로다.
箇中何限意 그 중에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지
切忌與人評 사람들과 따지고 싶진 않다네.
閑中遣 심심해서
野性便幽獨 타고난 성품이 모르는 곳에 홀로 있기 좋아하여
棲遲寄翠微 푸른 산빛에 깃들어 느긋하게 살아가네.
光陰雙雪鬢 세월이 흘러 두 귀밑머리엔 눈이 내렸고
活計一霞衣 살아갈 계책은 한 벌 장삼뿐이로다.
帶雨移松栽 비 맞으며 소나무를 옮겨 심고
和雲掩竹扉 구름 따라 대나무 사립문을 닫는다.
山華輕綉幕 산꽃은 가벼워 수놓은 장막과 같고
庭栢當羅幃 뜰 앞의 잣나무는 휘장을 펼친 듯.
靜對爐煙細 가느다랗게 피어오르는 화로의 연기 고요히 대하고
閑看磴蘚肥 돌다리에 도톰하게 자라나는 이끼를 한가로이 보기도 하네.
人來休問我 사람들은 내게 와서 묻지 말게나
早與世相違 일찌감치 나는 세상사람들과 어긋나도다.
山居暮春卽事 산에 살면서 늦은 봄날에
節屬三春暮 석 달 봄이 끝나갈 무렵
風和物色齊 바람도 온화하고 만물도 모두 푸르네.
早鶯初出谷 때 이른 앵무새 처음으로 골짜기에 나오고
新燕已銜泥 새로 온 제비는 이미 진흙을 입에 물었네.
雲羃山屛暗 구름 덮이자 병풍같은 산 어두워지고
煙籠樹幄低 안개 둘러싸니 나무들이 휘장처럼 늘어졌구나.
巖華紅馥馥 바위틈에 핀 붉은 꽃은 향기 더욱 짙고
庭草碧萋萋 마당에 난 푸른 풀은 무성하고 무성하구나.
雨歇鳩呼婦 비 그치자 비둘기는 짝을 부르고
林深鹿養麛 깊은 숲엔 사슴이 새끼를 기르는 모습.
睡餘聊散步 한잠 자고 나서 산보를 하였더니
日在小窓西 해는 벌써 작은 창문 서쪽에 있네.
自戲 스스로를 희롱함
予曾少多病 내 어릴 때부터 병이 많았는데
今又到衰年 이제는 나이까지 많아졌구나.
佛尙慵瞻禮 예불하는 일조차 게으른데
經奚要諷宣 경전을 어찌 외우겠는가?
逢餐輒飽送 음식을 만나면 곧바로 배가 부르도록 먹고
値晩卽橫眠 저녁이 되면 그대로 드러누워 자버리네.
休問祖師意 조사의 뜻을 묻지 말아라
從來不會禪 애당초 선같은 건 알지 못한다네.
法兄默公 聞予門庭單丁枯淡 以書見慰 戲作短歌以答之
법형(法兄) 묵공(默公)이 내가 혼자 궁핍하게 산다는 것을 듣고 편지를
보내 위로하기에 재미로 짧은 노래를 지어 답하노라
鷄峯寂寞兮 계족봉(鷄足峰)이 적막하다는 말
傳者之訛 전한 사람의 잘못이라.
活計現威兮 살아갈 계책이 당당하니
不同小小 소소한 무리와는 같지 않도다.
象骨峯前兮 상아같이 생긴 산봉우리 앞에는
粥飯無虧 죽과 밥이 모자람이 없고
馬駒堂下兮 집 아래엔 망아지 노닐고
鹽醬不少 소금과 장이 적지 않다네.
淸溪兮盤廻 맑은 계곡물이 빙 돌아 흐르고
碧嶂兮繚繞 푸른 봉우리가 빙 둘러 있네.
風欞兮虛涼 바람 부는 난간은 텅 비어 시원하고
水閣兮䆗窱 물가의 누각은 고요하기만 하네.
或坐或臥兮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며
神遊物初 정신은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고
獨唱獨和兮 홀로 노래하고 홀로 화답하며
趣逸天表 흥취가 하늘 너머로까지 내달리네.
湛然無營兮 억지로 애쓰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서
一味自娛 한 맛을 스스로 즐기고
閴爾忘懷兮 고요히 생각을 잊으니
萬緣都了 만 가지 인연이 다 끝나버렸도다.
興亡兮莫我干 흥하고 망함에 나는 관여하지 않나니
榮辱兮莫我擾 영예와 치욕이 나를 흔들지 못하리라.
鳧鶴一貫兮 오리와 학이 한가지이니
孰短孰長 어느 것이 더 길고 어느 것이 더 짧으리?3)
3) 오리의 다리는 짧고 학의 다리는 길지만, 각각의 필요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므
로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길이이다. 따라서 오리의 다리와 학의 다리는 같은 길
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학의 다리가 길다고 더 좋은 것이 아니다.『장자』에 나오
는 이야기이다.
彭殤同壽兮 팽조와 상자가 똑같이 살았으니
誰壽誰夭 누가 오래 살고 누가 일찍 죽었단 말인가?4)
一帔兮閱寒暑 옷 한 벌로 추위 더위 다 겪으며
一鉢兮度昏曉 발우 하나로 아침 저녁 다 지나네.
4) 팽조(彭祖)라는 사람은 장수를 하고 상자(殤子)라는 아이는 요절을 하였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누가 더 오래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만물은 평등하다고
하는 사상으로, 역시『장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憨癡癡兮 어리석고 바보스럽구나!
百醜千拙 백 가지로 추하고 천 가지로 서투네.
予誰之似兮 나는 누구와 비슷한가?
棲芦倦鳥 갈대에 깃든 지친 새로다.
閑中偶書 한가로울 때 우연히 쓰다
寺藏深谷裏 깊은 골짜기 속에 절이 감춰져 있고
樓壓小溪西 누각은 작은 계곡 서쪽에 버티고 있네.
灌木和烟暗 관목들은 안개에 서려 어둑하고
叢篁冒雨低 촘촘하게 난 대나무는 비에 젖어 축 처졌네.
簷頭蛛作網 처마 끝에 거미는 그물을 치고
墻下燕銜泥 담장 아래 제비는 진흙을 물었구나.
晝睡晩初覺 낮에 든 잠 저녁에야 깨어나니
林鵶爭返棲 숲에는 까마귀가 다투어 돌아와 깃드네.
平生嗜幽獨 평생을 외딴 곳에 홀로 있길 좋아하다 보니
窮谷寄衰羸 깊은 골짜기에 쇠약하고 여윈 몸을 맡기었네.
地僻花開晩 땅이 궁벽지니 꽃도 늦게 피고
山高日出遲 산이 높으니 해가 더디게 떠오르네.
蕉心抽不盡 파초 심지는 아직 덜 빠져나왔는데
溪舌吼無時 계곡물은 끝없이 소리를 낸다.
此樂少人會 이 즐거움 아는 이 적으리니
㗳然空自怡 멍하니 나 홀로 즐거워하네.
惜花吟 꽃을 아끼는 노래
臘月念六初入郭 섣달 스무 엿새에 처음 성안으로 들어왔었는데
轉頭春已七十 고개 돌려보니 그 사이에 봄이 73일이나 지났구나.
有三日
去年今年同逝川 지난 해에도 올해도 똑같이 시냇물은 흘러가고
昨日今日甚奔馹 어제도 오늘도 역마(驛馬)는 내달리네.
昨日看花花始開 어제 꽃을 보니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今日看花花衍落 오늘 꽃을 보니 꽃이 주루룩 떨어지네.
花開花落不容惜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걸 아까와 할 것 없는데
春至春歸誰把捉 봄이 오건 봄이 가건 누가 붙잡을 것인가?
世人但見花開落 세상 사람들은 다만 꽃이 피고 지는 것만 볼 뿐
不知身與花相若 자기 자신이 꽃과 비슷하다는 건 알지 못하지.
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朝臨明鏡誇紅顔 아침에 거울 보며 젊은 얼굴 뽐내다가
暮向北邙催紼翣 저녁에는 공동묘지 향하여 상여를 재촉하는 것을.
須信花開花落時 반드시 믿을지니, 꽃이 피고 꽃이 지는 때가
分明說箇無常法 무상(無常)의 법을 분명하게 설하고 있는 것임을.
偶閱晉人郭文傳 愛其能外身世 放情於山水間 因敍鄙懷 成
二十八韻
진(晋)나라 사람 곽문(郭文)5)의 전기를 읽다가 그가 세속을 벗어나
산수 사이에 정을 펼쳤던 것을 사랑하여 나의 감회를 적어본다.
5) 곽문(郭文) : 중국 진(晋)나라 사람으로, 7년간 벼슬을 하다가 자연이 그리워 사
직하고 남은 평생을 산수에 은거하여 자연을 즐기면서 살았다.
吾聞昔郭文 내 듣기를 옛날에 곽문이란 사람은
少小愛山水 어려서부터 산수를 사랑하여
遊歷華山陰 화산(華山) 북쪽 지방으로 다니면서
深入窮谷裏 궁벽진 골짜기로 깊이 들어갔다네.
斬木倚於樹 목재를 잘라 나무에 걸치고
覆苫作居止 거적을 덮어 살 곳을 만들었네.
不虞飢與寒 굶주림과 추위를 걱정하지 않고
但喜山水美 다만 산수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였네.
孑爾處其中 홀로 그 속에 있으면서
坐閱十餘祀 앉아서 십여 년을 지났네.
于時虎入室 당시에는 호랑이가 집으로 들어와
害人頗多矣 사람을 해친 적도 많았다지만
而文樂不徹 그런데도 그는 즐기기를 그만두지 않고
安然傲生死 편안한 마음으로 생사를 업신여겼네.
文也是俗士 그는 세속의 선비인데도
逸想尙如彼 세속을 벗어나려는 생각이 그와 같았거늘
嗟哉浮圖人 아아 불교인들은
宜爾反不爾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도 그러하질 못하네.
圖飽復圖煖 배 부르고 따뜻하길 꾀하여
遊獵意不已 내달리는 생각 그치지 않고
營營度一生 끙끙거리며 일생을 지내면서도
竟不知愧恥 끝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顧予本書生 생각해 보면 나는 본래 글공부 하던 사람으로
稚齒遊闕里 어릴 때부터 유학을 공부했었지.
名題金牓魁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를 하여
迹厠玉堂士 옥당(玉堂)6)의 학사들과 함께했었지.
6) 옥당(玉堂) : 학술적인 일을 맡아보던 기관으로, 홍문관(弘文館)이라 하기도 하
였다.
當時靑紫意 당시에 크게 현달하려던 뜻이
豈止拾芥耳 어찌 지푸라기 줍는 정도에 그쳤겠는가?
一朝慕獨住 하루 아침에 홀로 있는 것을 그리워하여
棄官如弊屣 헌신짝처럼 벼슬을 버렸었지.
便欲山水間 곧 산수 사이에서
翺翔一終始 한결같은 마음으로 높이 날고자 하였지.
爭奈障根深 그러나 장애의 뿌리가 깊음을 어찌하리오?
難逃業力使 업장의 힘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네.
累爲叢席主 거듭 총림의 우두머리가 되어
日與衆人比 날마다 대중들과 함께 하다 보니
聞其不堪聞 차마 듣기 힘든 것을 듣게 되고
視所不欲視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되었네.
低頭長隱忍 고개 숙여 오래토록 드러내지 않고 참다 보니
如聾瞽相似 귀머거리나 소경같이 되어 버렸네.
居然喪初心 끝내는 처음 마음 잃어버렸으니
念此輒顙泚 이를 생각하면 곧 이마에 땀이 나네.
旣往雖難追 이미 지난 일이야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來者猶可企 앞으로 올 일은 노력할 수 있는 것.
近聞好山中 근자에 듣자니 좋은 산 속에
有地平如砥 땅이 숫돌처럼 평평한 곳이 있다고 하였네.
土肥泉又甘 땅은 비옥하고 샘물도 맛있다 하며
窮僻遠塵累 궁벽한 곳이라 세속의 번뇌도 멀리할 수 있다 하네.
逝將結茅茨 가서 장차 띠집을 지어
於焉寄衰齒 이에 늙어 쇠약해진 몸을 맡기고자 하였네.
棲息共林麞 숲 속의 노루와 함께 살고
飮啄同澤雉 못 가의 꿩과 함께 마시고 쪼면서
生兮樂於斯 살아서 이렇게 즐기며
死兮埋於此 죽어서 여기에 묻히리라.
此言如有飾 이 말에 어떤 꾸밈이 있다면
天遙耳卽邇 하늘은 멀어도 그 귀는 가까우리라.
雨中獨坐 비 속에 홀로 앉아
寂寞山堂雨更幽 적막한 산 속 집에 차분히 내리는 비
獨吟誰會我心悠 홀로 시를 읊는 나의 은근하고 깊은 마음 누가 알리오?
林疎未敢容群羽 숲이 성글면 많은 새를 품을 수 없고
海淺那能納衆流 바다가 얕으면 여러 물길을 받아들일 수 없네.
逸翮投籠徒受困 날아다니는 새를 새장에 넣으면 괴로움만 받을 뿐이요
飛蹄繫皂不勝愁 내달리는 말을 마굿간에 묶어두면 슬픔을 이길 수 없지.
何當卜得安身地 어떻게 하면 몸을 편안히 둘 땅을 보아서
一繭茆庵杖屨留 누에고치같은 초가집 마련하여 머물러볼까.
卽事 즉흥시
半晴半雨天陰陰 반쯤 개이고 반쯤 비가 와 날씨는 흐린데
似暖似寒春寂寂 따뜻한 듯 추운 듯 봄날이 고요하기만 하네.
閉門憨臥到黃昏 문을 닫고 게으르게 누워 저녁까지 있었더니
隱隱疎鐘撼窻壁 간간히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가 창과 벽을 흔드네.
作偈示諸德 게송을 지어 여러 스님들께 보임
千峰突兀攙白雲 천 봉우리 뾰족하여 흰 구름을 찌르고
一水潺湲瀉蒼石 한 줄기 물은 푸른 돌 사이로 흐르네.
自然聞見甚分明 자연히 듣고 보는 것이 매우 분명해지니
爲報諸人休外覓 모두들 바깥에서 찾지 마시길.
偶書一絶 우연히 적은 짧은 시 한 편
雨餘庭院靜如掃 비 그친 후 뜨락은 쓸은 듯이 고요하고
風過軒窓涼似秋 바람 지나가는 처마와 창은 가을처럼 서늘하네.
山色溪聲又松籟 산색과 계곡물 소리 그리고 솔바람소리
有何塵事到心頭 무슨 번뇌가 마음에 이르리오?
齋餘偶作戲語一篇 寄示印禪伯〉
공양이 끝나고 우연히 재미로 지은 시 한 편을 인(印) 선백(禪伯)에게 드림
鷄峯一鉢飯 계족봉의 한 그릇 밥
麤細何辨白 무엇 하려 좋고 나쁨을 가려 말하리오?
人以麥爲草 사람들은 보리를 풀이라고 하지만
我以草和麥 나는 풀을 보리에 섞었다 하네.
鷄峰一㿻羹 계족봉의 한 사발 국
滋味休擬議 맛이 어떤지 논하지 마시오.
人以豉和鹽 사람들은 된장을 소금에 넣었다고 하지만
我以鹽爲豉 나는 소금을 된장이라 생각한다네.
何殊神鼎諲 신정(神鼎)7) 선사와 무엇이 다르랴?
十年無醬食 십년 동안 된장 없이 먹었지.
亦如大愚芝 또한 대우(大愚)8) 선사와 같아서
粥飯繼不得 죽이나 밥을 제대로 잇지 못했네.
7) 신정(神鼎) : 중국 송(宋)나라 때의 스님인 홍인(洪諲) 선사의 법호.
8) 대우(大愚) : 중국 송(宋)나라 때의 스님인 수지(守芝) 선사의 법호.
單丁與枯淡 홀로 외롭게 그리고 메마르고 맑게 사니
擧世倫比絶 온 세상에 나같은 사람 없네.
主人處其中 주인이 그 속에 있으면서
怡然樂不徹 흐뭇한 마음으로 그 즐거움 그만두지 않네.
賓來問其然 손님이 와서 그 까닭을 물으나
主人笑不答 주인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으며
賓却笑主人 손님이 주인을 도로 비웃으니
趣尙寡所合 취향과 숭상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야.
蚖哉烏覩龍 도롱뇽이 어찌 용의 경지를 바라보며
燕雀焉知鵠 제비와 참새가 어찌 고니의 뜻을 알리오?
賓乎爾且去 손님이여 그만 가 보시오.
與爾不同欲 그대와 함께 하고 싶지 않나니.
爾愛飫珍羞 그대는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겠지만
我愛蔬與糲 나는 나물과 매조미9)를 좋아하고
爾愛服輕裘 그대는 가벼운 가죽옷을 좋아하겠지만
我愛布與葛 나는 베옷과 갈포를 좋아한다네.
9) 매조미 : 껍질을 대충 벗긴 쌀.
爾喜事紛華 그대는 화려한 일을 기뻐하겠지만
我喜處窮僻 나는 궁벽한 곳에 있는 것을 기뻐하고
爾喜人所趨 그대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을 기뻐하겠지만
我喜人所斥 나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을 기뻐한다네.
水樂遶我軒 물의 음악이 나의 처마를 감싸고
山屛圍我屋 산의 병풍이 나의 집을 둘러싸며
我有萬株松 나에게는 만 그루의 소나무가 있고
我有千竿竹 나에게는 천 그루의 대나무가 있다네.
貴不羡王侯 왕이나 제후같은 귀함도 부러워하지 않고
富不羡金谷 금곡(金谷)10)과 같은 부도 부러워하지 않나니
偃仰適我適 즐거이 내게 맞는 것을 좋아하고
於焉樂幽獨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을 즐기노라.
10) 금곡(金谷) : 중국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일컬어지는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
園)이란 거대한 정원과 저택을 지었다. 이에 따라 금곡은 부의 상징이 되었다.
曾不識張三 일찍이 장삼(張三)도 알지 못하는데
安知有李四 어찌 이사(李四)를 알리오?11)
凡我所自養 내가 스스로 기르는 것을
何以爾所嗜 네가 어찌 좋아하겠는가?
11) 장삼(張三)과 이사(李四)는 세 명의 장씨와 네 명의 이씨라는 말이며, 장씨와 이
씨는 가장 흔한 성으로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을 일컫는다.
賓聞赧而退 손님은 듣고서 얼굴을 붉히고 물러나
索筆書大略 붓을 찾아 대략을 적어서
寄示同心友 마음을 같이하는 벗에게 보여
庶以資一噱 크게 한번 웃을 거리로 삼기를 바라노라.
睡起 자다가 깨어나
秋杪淒涼日色薄 가을의 나뭇가지 처량하고 햇빛도 옅은데
山容索寞霜華淸 산의 자태 삭막하고 서리꽃 맑구나.
閉門坐睡便成夢 문을 닫고 앉아 졸다 꿈까지 꾸게 되었는데
驚起林鴉三兩聲 깜짝 놀라 깨어나니 숲 속의 까마귀 지저귀는 소리.
書情 정을 쓰다
野禽終歲困籠囚 들새가 한 해가 다하도록 새장에 갇혀 고생하니
歸意寧容寸刻留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어찌 잠시라도 더 머물고 싶으리?
奮翼一飛當有日 날개를 떨쳐 한번 날 때가 반드시 있으리니
何山雲月不堪遊 어느 산 구름과 달인들 노닐 수 없으리오?
作野牛頌示同人 들소노래를 지어 동료들에게 보임
野牛天性本難馴 들소의 천성이란 본래 길들이기 어려워
草細平田自在身 풀이 가녀린 들판을 마음대로 다녔네.
何意鼻端終有索 어찌 코 끝에 고삐 묶일 줄 알았겠나?
牽來牽去摠由人 끌려 오고 끌려 감이 모두가 사람에 달렸도다.
臘月十八日微雪中作
섣달 18일 가는 눈이 내릴 때
風勁天陰糝玉塵 바람이 드세고 날씨는 음침한데 옥가루 뒤섞이니
山居寥落似無人 산 속의 삶터가 쓸쓸하여 아무도 없는 듯하네.
地爐幸有柴頭在 화로에 다행히 장작이 남아 있어
煨爇能廻一室春 그것을 태워 방 하나의 봄을 되돌릴 순 있겠군.
偶書 우연히 쓰다
飄然一葉泛風濤 나뭇잎 하나 풍랑 속에 떠다니는데
萬扤千搖浪轉高 천 번 만 번 흔들리고 물결은 갈수록 높아가네.
本自舟中無一物 본래 배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陽侯惱殺也徒勞 파도가 부질없이 애를 쓰누나.
臂短歌 팔 짧은 노래
世人之臂長復長 세상 사람들의 팔은 길고도 길어
東推西推無歇辰 동쪽으로 뻗고 서쪽으로 뻗어 쉬는 때가 없네.
山僧之臂短復短 산승의 팔은 짧고도 짧아
平生不解推向人 평생토록 남을 향해 뻗을 줄 모르지.
大凡世上臂短者 대개 세상의 팔 짧은 자들은
人皆白首長如新 사람들이 흰 머리가 되어도 늘 낯설기만 하지.
而況今昨始相識 하물며 어제 오늘 처음 서로 알게 된데다
肯顧林下窮且貧 숲 속에서 빈궁하게 사는 사람을 돌아보려 하리오?
我臂旣短未推人 내 팔은 이미 짧아 남에게 뻗을 수 없고
人臂推我誠無因 남의 팔은 나에게 뻗을 이유가 없도다.
嗚呼安得吾臂化爲 오호라! 어찌하면 내 팔이 천 척 만 척이 되어서
千尺與萬尺
坐使四海之內皆 앉은 채로 세상 사람들을 다 친한 이로 만들꼬.
吾親
拙語布懷示表兄之禪老
서툰 말로 회포를 적어 표(表)형(兄) 노스님께 보임
歲月如逝水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
刹那不少止 찰나도 멈추지 않네.
若以無常觀 만약 무상(無常)함으로 본다면
朝夕保亦難 아침 저녁조차 보전하기 어려우리라.
縱復免殤夭 비록 요절을 면한다 하더라도
古來七十少 예부터 일흔까지 사는 자 적었지.
況我早衰羸 하물며 나는 일찍부터 쇠약하였으니
七十安可期 일흔을 어찌 기약할 수 있으리.
儻或登七旬 혹시 일흔까지 산다 해도
前去纔十春 앞에 남은 것이 겨우 십 년인데
餘齡能幾時 남은 세월 얼마나 될 수 있으리?
不卜亦自知 점쳐보지 않아도 스스로 알겠도다.
何苦徇時俗 세상 사람 하는 대로 따라하기 얼마나 힘든가?
營營不知足 끙끙거리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네.
默坐細思惟 말 없이 앉아 자세히 생각해보면
掩泣難勝悲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지만 슬픔을 이기기 어려워라.
安得好山谷 어찌하면 좋은 산골짜기를 얻어
深棲伴麋鹿 사슴과 짝하면서 살 수 있을까?
耳畔絶是非 귀에는 시비 따지는 소리 끊어지고
目前無順違 눈 앞에는 잘되고 못되는 일 없으리라.
翛然常獨行 나 홀로 마음대로 하고 지내면서
放曠終吾生 후딱 내 생을 마치리라.
尋常抱此志 평소에 이 뜻을 안고서
窹寐曾不二 자나 깨나 마음 바뀐 적 없네.
天明心下燭 하늘이 내 마음의 촛불을 밝혀주리니
寧不從我欲 어찌 나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리오?
憂來書寸情 걱정이 되어 조그만 생각을 적어
持以示吾兄 우리 형(兄)께 보여드리오.
戲書 장난스레 쓰다
諸君手裏有錢神 그대들은 손 안에 돈의 신이 들어 있어
到處能回滿面春 가는 곳마다 능히 온 얼굴에 봄을 돌려올 수 있지.
自笑山僧與時左 스스로 가소롭구나, 나는 시대와 맞지 않아
唯將冷語屢氷人 오로지 썰렁한 말로 자주 사람들을 얼려버리니.
閒中偶書 한가로운 때 우연히 쓰다
飢來喫飯飯尤美 배 고파서 밥을 먹으면 밥이 더욱 맛있고
睡起啜茶茶更甘 자고 일어나 차를 마시면 차가 더욱 감미로와.
地僻從無人扣戶 땅이 궁벽하여 문 두드리는 사람 없으니
庵空喜有佛同龕 암자가 텅 비어 부처님과 한 방에 있는 것 기뻐라.
曾有擬古之作追而錄之
옛사람의 시를 본받아 지은 시
大湖萬頃餘 큰 호수에 만 이랑의 물결이 일다가
風息波亦息 바람이 잦아드니 파도 역시 쉬는구나.
人心方寸間 사방 한 치의 사람 마음에서
浪起常千尺 천 자의 물결이 항상 일어나네.
山中樂 산중의 즐거움
-初出家住白蓮庵時作 -처음 출가하여 백련암(白蓮庵)에 있을 때 지음
山中樂 산중의 즐거움이여!
適自適兮養天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타고난 온전함을 기르리라.
林深洞密石逕細 숲이 깊고 골짜기는 빽빽하고 돌길은 좁은데
松下溪兮岩下泉 소나무 아래에는 시냇물이요 바위 아래에는 샘물이로다.
春來秋去人跡絶 봄이 오고 가을이 가도 인적이 없으니
紅塵一點無緣 세속의 번뇌와는 조금도 연관이 없네.
飯一㿻蔬一盤 밥 한 그릇 나물 한 접시
飢則食兮困則眠 배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네.
水一缾茶一銚 물 한 병 차 한 통
渴則提來手自煎 목 마르면 가져와서 손수 끓이네.
一竹杖一蒲團 대지팡이 하나 방석 하나
行亦禪兮坐亦禪 다닐 때도 참선 앉아서도 참선이라.
山中此樂眞有味 산중의 이 즐거움 참으로 재미있으니
是非哀樂盡忘筌 옳고 그름과 슬프고 즐거움 모두 다 잊네.
山中此樂諒無價 산중의 이 즐거움 참으로 값이 없으니
不願駕鶴又腰錢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허리에 돈까지 차는 일 원치 않네.12)
適自適無管束 구애됨이 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니
但願一生放曠 일생동안 마음대로 하면서 평생을 마치고 싶을 뿐.
終天年
12)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승천하는 일과 부자가 되어 허리에 돈을 차는 것은 대개
인간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며, 이 둘을 한꺼번에 하는 것은 최고의 바람이다.
禪餘得句 書示同袍 참선하고 나서 얻은 구절을 동료들에게 보임
塵刹都盧在一庵 티끌같이 많은 세계 한 암자 속에 다 들었으니
不離方丈遍詢南 방장실을 떠나지 않고 남쪽을 두루 돌았네.
善財何用勤劬甚 선재동자는 무엇하러 고생하면서
百十城中枉歷參 백 개의 성을 두루 다녔던가.
偶書 우연히 쓰다
世人終日競奔忙 세상사람들 하루 종일 다투어 바삐 달리니
羶蟻灯蛾莫可方 개미와 부나방도 견줄 수가 없다네.
坐穩那知船底漏 편안히 앉아서 배 밑이 새는 줄 어찌 알랴
途長猶愛樹陰凉 갈 길이 먼데도 나무 그늘의 시원함에 빠져 있네.
初春寄悅禪伯 초봄에 열(悅) 선백(禪伯)13)에게 드림
13) 선백(禪伯) : 경륜이 있는 중진 선수행자.
寒喧代謝是尋常 추위 더위 바뀌는 것 항상 있는 일인데
人盡奔波賀歲忙 사람들은 모두 다 새해 축하 바쁘네.
舊去新來何所喜 한 해가 가고 옴이 무엇 그리 기쁜가
鬢邊添得一莖霜 한 줄기 흰 서리만이 살쩍가에 더함을.
偶書 우연히 쓰다
邯鄲枕上事荒唐 베갯머리 꿈속에 한단(邯鄲)의 일14) 황당하니
寵辱眞同夢一場 영욕이 진실로 한바탕 꿈이로다.
盡道吾能窮此理 모두들 말하기를 이 이치를 잘 안다지만
逢些順境却顚忙 별 것 아닌 일에도 곧 허둥대고 마네.
14) 한단(邯鄲)의 일 : 꿈속에서 이상향을 경험했다고 하는 중국 고사.
有一禪德請詩 어떤 선승이 시를 청하여
春日花開桂苑中 봄날 계수나무 동산에 꽃이 피어
暗香不動少林風 소림사(少林寺)의 바람에도 향기 나지 않더니
今朝果熟沾甘露 오늘에야 과일 익어 단 이슬에 젖었으니
無限人天一味同 무한한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맛일랑 보리라.
示人 다른 사람에게 보임
浮生正似隙中駒 부생(浮生)은 참으로 눈 깜빡할 사이라
得喪悲歡何足數 얻음과 잃음, 슬픔과 기쁨, 어찌 다 헤아리리?
君看貴賤與賢愚 보아라 그대여, 귀하거나 천하거나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畢竟同成一丘土 마침내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을.
偶書問諸禪者 우연히 써서 여러 선승들에게 묻다
朝來共喫粥 아침에는 죽을 먹고
粥了洗鉢盂 죽 먹고는 발우 씻네.
且問諸禪客 묻노니 선객들이여
還曾會也無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試新筆次 信手書一偈 贈侍者〉
새 붓을 시험하면서 손 가는 대로 게송을 한 수 써서 시자에게 주다.
擎茶日遣滋吾渴 날마다 차(茶)를 날라 나의 갈증을 풀어주고
過飯時敎療我飢 때마다 밥을 주어 나의 배고픔 덜어주네.
若謂山僧無指示 만약에 내게서 가르침이 없다 하면
知君辜負老婆慈 알겠네, 노파의 자비심 그대 저버렸음을
夜大雪都不覺知 曉起望城中有作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새벽에 일어나 성 안을
바라다보고 짓다
但認更深月照來 깊은 밤 달빛 비치는 것만 보았고
不知庭院雪成堆 뜨락에 눈 쌓이는 건 알지 못했네.
平明起向城中望 새벽녘에 일어나 성 안을 바라보니
萬樹梅花一夜開 밤 사이 만 그루 매화꽃이 피었네.
偶用雪堂韻示印默二禪人
인(印)·묵(默) 두 선인(禪人)에게 보임
曹溪不獨龍象窟 조계산은 스님들 사는 절만이 아니라
春晩園林最奇絶 늦은 봄 뜰과 숲도 참으로 좋다네.
數枝山茶紅似火 몇 가지 야생차는 불길처럼 발갛고
千樹梨花白於雪 천 그루 배꽃은 눈보다도 희구나.
竹外紅桃開最晩 대숲가의 홍도화 뒤늦게 피어서
正似卯酒初上顋 두 볼에 새벽술이 오른 듯만 하더니
朝來山雨洒如飛 아침의 산비가 날리듯이 쏟아지자
但見綠葉相低垂 축 처진 푸른 잎만 남았네.
良辰美景古難得 좋은 때와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함께 얻기 어려우니
我今行樂嗟暮遲 나 지금 놀아보려 하나 아쉽게도 이미 늦구나.
憑君急呼二三子 그대들이 두세 사람 급히 불러서
論詩煮茗供遊嬉 시를 논하고 차를 끓이며 함께 한번 놀아보세나.
暮春卽事 봄날 저녁에 문득
春深日永人事絶 봄 깊어 날은 길고 찾는 이도 없는데
風打梨花滿庭雪 바람이 배꽃 때려 마당 가득 눈 쌓였네.
依檐佳木影加交 처마에 기댄 예쁜 나무들 그림자를 포갰는데
散步行吟自怡悅 산책하고 시 읊으며 스스로 즐거워하네.
閑中自慶 한가한 가운데 절로 좋아서
日日看山看不足 날마다 산을 보아도 다함이 없고
時時聽水聽無厭 언제나 물소리 들어도 싫증 나지 않네.
自然耳目皆淸快 귀와 눈이 절로 맑고 시원해지니
聲色中間好養恬 소리와 빛 가운데서 편안한 마음 기르기 좋네.
雪中作苦寒詩 寄韓平陽謝奇
눈 속에 추위로 고생하는 시
雪厭山堂冷似氷 눈 덮인 암자는 얼음같이 찬데
坐來寒涕輒垂膺 앉아 있자니 갑자기 차가운 눈물이 가슴에 떨어지네.
何時造化廻春暖 언제나 봄 돌아와 따뜻하게 되려나
空歎天工不我矜 하늘이 무심하다고 공연히 탄식하네.
鷄峯苦 계족봉(鷄足峯)의 괴로움
鷄峯之苦今無譬 계족봉(鷄足峯)의 괴로움은 비할 데가 없어라
欲說一二先酸鼻 한두 가지 말하려니 코가 먼저 시큰해지네.
經營歲久屋甚老 산 지가 오래 되어 가옥은 심히 낡고
檐牆壁皆傾地 처마와 담장이 땅에까지 기울었네.
每遇淋漓下雨時 매번 장마가 되어 비가 내릴 때면
屋漏如篩無處庇 집이 체처럼 비가 새서 감쌀 수가 없네.
四時執爨唯數髡 사시사철 부뚜막에 넣을 것은 장작 몇 조각뿐
衣裳繿縷顔色悴 의상은 남루하고 안색은 초췌하네.
齋時蔬藕晨淡粥 낮에는 채소와 연뿌리요 아침에는 묽은 죽이며,
陟嶮搬柴日三四 험준한 곳 오르며 땔나무를 해봐야 하루에 서너짐이라.
何曾揀擇寒與暑 추위와 더위를 가릴 여유도 없으니
雖復雨雪不敢避 비록 비와 눈이 내려도 피하지 못하네.
園頭老僧只一個 늙은 원두15) 스님은 한 사람뿐이어서
薙草倒地折一臂 풀을 베다 넘어져 팔 한 쪽이 부러졌네.
山椒菜圃小如掌 산초나무 채마밭은 작아서 손바닥만하고
草深沒膝無人理 풀이 무성하여 무릎이 빠져도 손보는 사람이 없네.
15) 원두 : 절에서 채마밭을 관리하는 스님.
深村丁力四五戶 궁벽진 마을에 힘쓰는 사람 있는 너댓 집
茅茨不完蓬滿地 초가 지붕 허술하고 땅에는 쑥이 가득.
男出耕耘女踏碓 남자는 나가서 밭을 갈고 여자는 방아질하는 것이건만
長年力役到童稚 어른의 노역이 아이들에게까지 미치네.
十日驅使一日休 열흘 부림을 당하고 하루를 쉬니
奚暇仕家營自利 어느 여가에 자기 집일에 신경을 쓰랴?
秋至蕭然無所穫 가을이 되어도 뭘 거둘 게 없어
但向人田拾遺穗 다만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이나 주울 뿐.
每說明年必不堪 늘상 내년에는 견딜 수 없을 것이라 말하며
遠邇不復見玆寺 멀든 가깝든 다시는 이 절을 보지도 못하는구나.
獨眼院主頻來言 외눈박이 원주는 자주 와서 하는 말이
糧罄將無數月備 양식이 다 떨어져 몇 달 것밖에 없다 하네.
欲令齋鉢不全空 밥그릇을 완전히 비울 수는 없으니
急須將貨糴於肆 급히 물건을 가져가서 시장에서 쌀을 사 와야지.
不然晨夕省其費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석으로 쓰는 것을 줄여야 하니
草加於飯鹽加豉 밥에다 풀을 섞고 된장에는 소금을 집어넣네.
鷄峯之苦苦復苦 계봉의 고통이 괴롭고도 괴로우니
具說豈止唯此事 갖추어 말하자면 어찌 이런 것에 그치리오?
旣不是北洲鬱單越 이미 북주의 울단월16)처럼
衣食隨心而自至 입고 먹는 물품이 생각만 하면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16) 북주의 울단월 : 수비산 북방에 있다고 하는 땅 이름. 이 곳의 사람은 천 년을 살
며, 중간에 일찍 죽는 일이 없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물품이나 시설이 극히 풍
부하다고 한다.
又不能毗耶老居士 또한 비야의 늙은 유마거사처럼
上方取飯而分施 위쪽 세계에서 음식을 가져다가 나눠줄 수도 없는 일.17)
不如將此千般萬 차라리 이런 천 가지 만 가지 고통을 모조리
般苦
都付風軒一場睡 바람 부는 집의 한 바탕 잠에 부치는 것이 나으리.
17) 유마거사는 향적세계(香積世界)라는 곳에서 음식을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나누
어 주었다고 한다.
西原道俗 出城泣送 感而有作
서원(西原)의 스님과 신도들이 성밖까지 나와 눈물로 배웅하기에 느낌이 있어 짓다
大都餞客意難平 큰 고을에서 손님 전송에 마음 편치 못함은
爲有從前繾綣情 예전부터의 곡진한 정다움 때문이네.
底事滿城緇與白 어찌타 온 성의 스님과 신도들이
一時揮涕送吾行 일시에 눈물 뿌리며 날 보내나?
重九日對花有感 중양절18)에 꽃을 보고 느낌이 있어
18) 중양절(重陽節) : 음력 9월 9일. 이때 국화가 한창 피는 철이다.
干戈帀地起 온 땅엔 창과 방패
四海皆煙塵 바다엔 연기와 먼지.
烝民困煎熬 백성이 괴로워하니
觸目吁可哀 보이는 것 다 슬픔.
悒悒度晨暝 아침 저녁 근심걱정
那知佳節來 좋은 계절 오는 줄도 몰랐네.
珍重東籬菊 소중타 동쪽 울 국화
殷勤及時開 때가 되니 꽃 피었네.
金葩競媚嫵 금빛 꽃이 다투어 아리따와
似欲慰我懷 나의 회포를 위안해 주는 듯.
强起到花下 억지로 일어나 꽃 아래에 이르러
遶叢久徘徊 꽃떨기를 둘러싸고 한참 동안 배회하네.
龍山落帽客 국화를 보며 잔치를 벌이던 맹가(孟嘉)19)는
白骨成塵埃 백골이 티끌이 되었을 것이며
彭澤嗜酒翁 국화주를 좋아했던 도연명(陶淵明)20)도
一往不復廻 한번 가고는 돌아오지 않네.
無人肯見賞 보고 즐길 사람 없어
花開亦悠哉 꽃이 피어도 수심이네.
弔古復傷今 예나 지금이나 슬픈 일 연속이니
幽懷難自裁 깊은 걱정 어떻게 하기 어렵구나.
19) 맹가(孟嘉) : 중국 진(晋)나라 때 사람.
20) 도연명(陶淵明) : 중국 진(晋)나라 때 사람. 국화를 사랑하고 국화주를 즐겨 마
셨다.
嶺南艱苦狀二十四韻
고생하는 영남지방의 모습
-庚辰年造東征戰艦時作
-1280년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전함을 만들 때 지었다.
嶺南艱苦狀 영남의 고생하는 모습
欲說涕將先 말하려니 눈물부터 앞서네.
兩道供軍料 두 도(道)에선 군량미를
三山造戰船 세 산(山)에선 전선(戰船) 제조.
征徭曾百倍 부세는 백 배 더하고
力役亘三年 요역은 삼 년이나 계속되네.
星火徵求急 성화같이 급한 세금 징수
雷霆號令傳 벼락같이 호령 내리네.
使臣恒絡繹 사신이 항상 이어지고
京將又聯翩 서울 장군 줄 지었네.
有臂皆遭縛 있는 대로 팔 묶이고
無胰不受鞭 온 등줄기에 채찍질.
尋常迎送慣 늘 맞이하고 보내며
日夜轉輸連 밤낮으로 수송이 이어지네.
牛馬無完脊 소나 말은 온전한 등이 없고
人民鮮息肩 백성 어깨 쉴 새 없어.
凌晨採葛去 이른 새벽 칡을 캐고
踏月刈茅還 달빛 밟으며 띠풀 베네.
水手驅農畝 어부들은 논두렁으로 내몰리고
梢工卷海堧 목수는 바닷가를 뒤덮었네.
抽丁擐甲冑 머슴을 뽑아서 갑옷을 두르게 하고
選壯荷戈鋋 장정을 뽑아서 창을 둘러메게 하였네.
但促尋時去 다만 한시 바삐 가길 재촉만 하니
寧容寸刻延 어찌 촌각인들 지체함을 용납하랴!
妻孥啼躄地 처자는 땅을 치며 울부짖고
父母哭號天 부모는 하늘을 부르짖으며 통곡을 하네.
自分幽明隔 삶과 죽음이 서로 갈라져 있는데
那期性命全 목숨 부지하길 어찌 기약하리.
孑遺唯老幼 남은 자는 늙은이와 어린이뿐
强活尙焦煎 억지로 살려하나 속을 태우네.
邑邑半逃戶 고을마다 반은 도망간 집이요
村村皆廢田 마을마다 모두가 농사 그만두었네.
誰家非索爾 어느 집인들 삭막하지 않으며
何處不騷然 어느 곳인들 썰렁하지 않을까!
官稅竟難免 관청의 세금은 끝내 면하기 어려우니
軍租安可蠲 군대의 부역인들 어찌 덜 수 있으리?
瘡痍唯日甚 상처는 날로 심해져 가는데
疲瘵曷由痊 피로에 지친 몸 어찌 치유되리?
觸事悉堪慟 일마다 통곡 참으니
爲生誠可憐 산다는 것 참 가련타.
雖知勢難保 형세의 어려움이여
爭奈訴無緣 호소할 데도 없구나.
帝德靑天覆 황제의 덕이 하늘을 덮고
皇明白日懸 황제의 지혜가 밝은 해와 같아
愚民姑且待 백성들이 잠시만 기다리면
聖澤必當宣 거룩한 은택이 널리 퍼지리니
行見三韓內 그때는 온 나라 안
家家奠枕眠 베개 높여 자리라.
憫農黑羊四月旦日雨中作
농부들이 가련하여 4월 초하루에 비 속에서 짓다
農事須及時 농사는 때에 맞게 해야 하는데
失時無復爲 때를 잃으면 다시 할 수 없다오.
農時苦無幾 농사 시기는 짧은 것이 힘드니
春夏交爲期 봄 여름이 바뀔 즈음이 때가 된다네.
春盡夏已生 봄이 다하면 여름이 이미 시작되고
農事不可遲 농사는 더 지체할 수 없나니
上天解時節 하늘에서 시절을 알고
膏澤方屢施 비를 자주 내려 주시지.
征東事甚急 일본을 치는 일21)이 급하다 보니
農事誰復思 농사를 누가 다시 생각하랴?
使者恒絡繹 사신이 늘 이어져서
東馳復西馳 동쪽으로 내닫고 서쪽으로 내달리네.
卷民空巷閭 마을을 비울 정도로 백성을 모아
長驅向江湄 늘 강가 쪽으로 내모네.
日夜伐山木 밤낮으로 산의 나무를 베어서
造艦力已疲 전함을 만드느라 힘이 이미 지쳤네.
尺地不墾闢 한 자의 땅도 개간하지 못하는데
民命何以資 백성의 목숨 어떻게 부지하랴?
民戶無宿糧 백성의 집에는 저장한 양식이 없어
太半早啼飢 태반은 일찌감치 배고프다 울어대네.
況復失農業 하물며 농업까지 잃었으니
當觀死無遺 남김 없이 다 죽는 꼴 보겠구나.
嗟予亦何者 아, 나는 또한 무엇하는 사람인가?
有淚空漣洏 부질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네.
哀哉東土民 슬프다 이 땅의 백성
上天能不悲 하늘도 슬퍼하질 못하는구나.
安得長風來 어떻게 하면 긴 바람 불어와
吹我泣血詞 나의 피울음으로 짓는 시를 불어갈꼬?
一吹到天上 하늘까지 한번 불어
披向白玉墀 하늘 궁전 들어가서
詞中所未盡 시 속에서 못다 한 말을
盡使上帝知 하느님께 알게 할꼬?
21) 원(元)나라가 고려를 지배하면서 백성들을 동원하여 전함을 만들어 일본을 정
벌하고자 하였다.
臨終偈 임종게
閱過行年六十七 지나온 인생항로 어언 육십 칠 년
及到今朝萬事畢 오늘 아침에 이르러 만사는 끝나는가 보다.
故鄕歸路坦然平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평탄하니
路頭分明未曾失 길이 분명하여 잃을 염려 없으리라.
手中纔有一枝筇 손에는 때마침 지팡이가 있으니
且喜途中脚不倦 기쁘도다, 길 가는 중에 피로하지 않으리. ■
[출처] 圓鑑國師歌頌 원감국사가송|작성자 실론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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