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 (대승찬 풀이글) 48

신심명3/호리유차 천지현격/부부나 친구가 갈라설 때

03.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간택을 싫어하고 증애가 없는 마음에서)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간택함이 없는 마음이나 증애함이 없는 마음 바탕에 털끝만큼이라도 가리고 택하는 차별심이나 미워하고 좋아하는 차별심이 남아 있으면 이 차별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진다고 했다. 이 하늘과 땅의 간격으로 벌어져 있는 상태가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앞 세 구절을 종합해보면, 택하고 버리는 마음이나, 미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은 모두 자기 욕심에서 일어나는 마음이며, 욕심은 구하는 마음이 심해지면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이러한 이유로 (간택을..

신심명2/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도는 화통해져 명백히 드러난다

02.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다만,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도는 화통해져 명백히 드러난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우리 마음의 일반적인 작용이므로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마음을 얻어 도에 이르는 길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지도무난 유혐간택 단막증애 통연명백 가려내는 것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적인 마음이고, 택하는 것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감정적인 마음이다. 이러하니 간택하는 마음의 작용을 꺼려한다는 것은 사물이나 사람을 대할 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가려내거나 택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를 분별심이 없는 마음이라 하여 무분별지라고 하는데, 무분별지에 이르면 지도가 환하게 보인다는 말씀이 단막증애 통연명백이다. 이상의 네 ..

무분별의 지혜

무분별의 지혜 - 삶의 갈림길에서 읽는 신심명 강의 - ​ 김기태 지음, 2015, 판미동 ​ 1부.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다 ​ 1강. 왜 무분별인가 ​ 1. 지극한 도(道)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서 택하지만 말라 (至道無難 唯嫌揀擇) ​ 살다보면 우울할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으며 마음이 참 슬프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순간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좀 우울하고 힘들면 될 것을, 그렇게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 될 것을, 우리는 그것을 못견뎌하며 어떻게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달아나고 극복하려고만 한다. 그 순간에 일어난 외로움이 바로 도(道)요, 우울이 바로 불법(佛法)이며, 한 발 뗄 수조차 없는 마음의 무거움과 힘겨움​이 바로 깨달음인 것을. 그래서 '번뇌 그대로가 바로 보..

신심명1 / 고정된 생각을 버리면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도 매이지 않게 된다

▣ 신심명(信心銘)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 승찬(?-606) 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은 책으로, 문구가 짧음에도 여래의 일대장경의 요체와 1,700 공안의 요지가 모두 함축되었다고 하여 선종에서는 널리 읽혀지고 있다. 신심명의 한자는 믿을 신, 마음 심, 새길 명인데 믿음을 마음속에 새기는 글이란 뜻이다. 책 구성은 1구 사언, 2구 1게송으로 이루어져 전문은 146구 73게송, 584자이다. 01. 지도무난 유혐간택 :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오직 이거다 저거다 하며 나누어 보지만 않으면 가장 지극한 진리로 가는 길이다. 지도라 하면 더 이상 높을 수도 없고, 더 깊을 수도 없으며, 더 넓을 수도 없는 가장 지극한 진리로 가는 길로 이것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고 ..

[신심명 강설] 24. 언어도단(言語道斷) - “일체 삼라만상은 생각의 그림자요 인간이 만든 언어일 뿐” <끝>

[혜국 스님의 신.심.명. 강설] 24. 언어도단(言語道斷) “일체 삼라만상은 생각의 그림자요 인간이 만든 언어일 뿐” “신심불이(信心不二)요 불이신심(不二信心)이니,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라.” 道란 말로 설명하면 할수록 멀어지기 마련…언어의 길이 끊어지니 ‘임제 할’ 나온 것 부처님께서는 진리에 대해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도 그대로 있었고 깨달은 후에도 억만년 후에도 그대로 존재” 두손 모아 합장하고 들어야 할 말입니다. 우선 믿는 마음 즉, 믿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신(神)을 믿는다고 하는 믿음은 나(我)와 신을 둘로 보는 믿음입니다. 믿는 마음을 내는 나(我)가 있고 믿어야하는 신(神)이 따로 있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신이라고 하는 말이 어디서 나..

[신심명 강설] 17. 번뇌망상 - “진흙 있어야 연꽃도 피어나듯 번뇌망상 있기에 수행도 가능”

[혜국 스님의 신.심.명. 강설] 17. 번뇌망상 “진흙 있어야 연꽃도 피어나듯 번뇌망상 있기에 수행도 가능” “지동무동(止動無動)이요 동지무지(動止無止)니,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결코 쉬운 말이 아닙니다. 그침과 움직임, 밝음과 어두움, 옳고 그름, 이러한 일들을 우리는 상대성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심명’에서 말하는 이러한 세계는 양변(兩邊)을 부정하면서 긍정하여 원융무애(圓融無)하게 보고 있습니다. 바로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지요. 성철 큰스님께서 ‘신심명’을 강의하실 때 많이 강조하신 바로 그 내용입니다. 그치면서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면서 그침은 쌍조(雙照)를 보이는 것이고 움직임이 없고 그침이 없다고 하는 것은 쌍차(雙遮)로 막아 ‘없애버림..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⑪ 맺는 말 [끝]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의 대의는 우리가 모든 상대적인 양변의 차별견해를 모두 버리면 원융무애한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 또는 진여법계(眞如法界), 무장애법계(無障碍法界)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선종에서는 '마음' 또는 '자성(自性)'이라 합니다. 하지만 '마음', '자성'이라 하는 것도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서 그것도 다 거짓말이며, 깨치면 결국 이런 말이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물을 마셔 보아야 물이 차고 더운지를 스스로 아는 것처럼 진여법계, 둘 아닌 세계, 무장애 법계, 부사의 해탈경계라 하지만, 깨치고 보면 이러한 표현들이 도저히 적용되질 않읍니다. 그러나 이대로가 견성이고 선종의 구경인줄 알면 큰일 납니다. 삼조 승찬..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⑩ 진여법계(眞如法界) 무타무자(無他無自)

6. 진여(眞如)-진실로 그러한 것 眞如法界 無他無自 진여법계 무타무자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여기서부터는 [신심명(信心銘)]의 총결산입니다. 모든 병폐를 털어버리면 진여법계가 현전한다는 것입니다. 진여법계란 일심법계(一心法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그 진여법계의 내용은 남도 없고 나도 없어서 모든 상대, 곧 일체를 초월하여 양변을 완전히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현실이란 상대로 되어 있는데, 그 현상계를 해탈하여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자성을 보게 되면, 남도 없고 나도 없는 절대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상대법이 끊어진 쌍차(雙遮)의 경계이며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것입니다. 要急相應 唯言不二 요급상응 유언불이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둘 아님을 ..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⑨ 안약불수(眼若不眠) 제몽자제(諸夢自除)

5. 일여(一如)-한결 같음 眼若不眠 諸夢自除 안약불수 제몽자제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누구든지 잠을 자지 아니하면 꿈은 없는 것입니다. 꿈은 누구든지 잠을 자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心若不異 萬法一如 심약불이 만법일여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 같느니라. 마음에 다른 생각인 차별심 분별심을 내지 않으면 만법이 여여(如如)한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만법이 본래 여여한데 우리가 여여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은 바로 마음에 분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여여한 것을 우리가 억지로 여여치 않게 할수도 없는 것이면, 여여치 않은 것을 여여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만법이 본래 한결 같아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한데도 그것을 보지 못함은 중생의 마음속에 분별심이 있기 때..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⑧ 법무이법(法無異法) 망자애착(妄自愛着)

4. 좁은 소견 - 2 法無異法 妄自愛着 법무이법 망자애착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법은 다른 법이 없어서 중생이 생각하고 집착할 특별한 법이 없는데, 공연히 스스로 애착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법을 버리고 불교를 해야겠다, 교학을 버리고 참선을 해야겠다. 반대로 참선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교(敎)나하지 하는 것 등이 모두 애착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선이니, 교니, 중생이니, 부처니, 마구니니 하는 분별들은 모두 망견인 변견으로서 애착심입니다, 그러니 그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將心用心 豈非大錯 장심용심 기비대착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쓸데없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고 있으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