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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치를 덜어내야 삶에 행복이 온다"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

탐진치를 덜어내야 삶에 행복이 온다수행의 이유·목적 분명해삼독 집착하면 마음 흐려져악업을 행하여 과보 받기도​팔정도 실천이 해결 방편번뇌 떨치면 행복 다가와​▲도문 스님​오늘 배울 부처님의 법문은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하는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불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잡아함경-전타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부처님이 코삼비우 코시타 동산에 계시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부처님을 시봉하는 아난다에게 한 외도가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난다는 한번 들은 설법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아 다문제일이라고도 불리지요.​​이 외도가 다문제일 아난다에게 묻기를,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모와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와 머리를 깎고 이..

선지식 2025.03.02

[나와 붓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 붓다 / 이광수교수

이광수 교수이광수 교수(부산외대 인도학부, 58)는 역사학자다.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 고대사를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을 쉽게 풀어쓰고, 한국 사회 문제를 함께 이야기해서 쓴 책이 2013년에 나온 『슬픈 붓다』다. 그에 따르면 별로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타 종교인은 더욱 아니다. 종교인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닌, 역사학자의 눈으로 붓다를 본다. 때문에 그가 붓다를 바라보는 눈은 마치 사진을 찍듯 ‘고타마 붓다’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를 인터뷰하려는 이유다. 불교인의 시선이 아닌, 종교인의 눈이 아닌, 역사를 다루는 사람은 실존 인물로서의 붓다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2천 7백 년 전 불교를 세상에 보여준 인간, 역사인 붓다의 모..

불교관련 2025.03.02

대승찬[大乘讚] -지공화상[寶誌公和尙]

대승찬[大乘讚] 10首- 지공화상[寶誌公和尙]​​ 1)大道常在目前(대도상재목전) 대도는 항상 앞에 있지만雖在目前難覩(수재목전난도) 눈앞에 있다해도 보긴 어려워若欲悟道眞體(약욕오도진체) 도의 참된 본체 깨달으려면莫除聲色言語(막제성색언어) 소리와 빛과 언어 없애지 말라.言語卽是大道(언어즉시대도) 언어 곧 그대로 대도이거니不假斷除煩惱(불가단제번뇌) 번뇌를 끊어 없앨 필요가 있나.煩惱本來空寂(번뇌본래공적) 번뇌는 본래로 공적하지만妄情遞相纏繞(망정체상전요) 망령된 생각들이 서로 얽히네.一切如影如響(일체여영여향) 일체는 그림자와 메아리 같아不知何惡何好(부지하오하호) 뭐가 좋고 나쁜 줄 알지 못하네.有心取相爲實(유심취상위실) 유심으로 상을 취해 실(實)로 여기면定知見性不了(정지견성불료) 견성하지 못함을 반드시 알라...

지혜의 공간 2025.03.02

십현담(十玄談) / 동안상찰선사

동안상찰선사 십현담同案常察禪師 十玄談 [1] 心印심인 問君心印作何顔 心印誰人敢授傳문군심인작하안 심인수인감수전歷劫坦然無異色 呼爲心印早虛言역겁탄연무이색 호위심인조허언須知本自虛空性 將喩紅爐火裏蓮수지본자허공성 장유홍로화리연莫以無心云是道 無心猶隔一重關막이무심운시도 무심유격일중관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이란 어찌 생겼는가심인을 뉘라서 감히 전할 수 있겠는가긴 세월 한결같이 다른 색깔이 없으니심인이라고 호칭을 붙이면 벌써 잘못이다.본래부터 텅 비고 공한 성품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비유하자면 붉은 화로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그렇다고) 무심을 도라고도 절대로 말하지 말게무심하더라도 오히려 한 관문에 가로 막힌다.​[2] 祖意조의 祖意如空不是空 靈機爭墮有無功조의여공불시공 영기쟁타유무공三贒尙未明斯旨 十聖那能達此宗삼..

지혜의 공간 2025.03.02

준 것은 남고 가진 것은 없어지더라 / 김연호

나의 삶 나의 불교​내 불심의 고향, 사천 다솔사김연호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경남 하동군 진교면 산골이다. 30여 호가 모여 살던 산골 동네인데, 부모님은 평생 다랑논과 밭을 일구며 사셨다. 먹고사는 것이 바쁜 터라 부모님은 절에 다닐 여유조차 없었다. 그 밑에서 자란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불교를 처음 만난 것은 10대 후반이다. 1970년, 나는 심한 위장병으로 수술을 받았다. 요양을 위하여 고향에서 이십여 리 떨어진 다솔사로 들어갔다. 그 무렵 나는 얼굴은 유채꽃처럼 노랗고 몸매는 풀 대궁처럼 가냘픈 병약한 청춘이었다. 그렇지만 청춘의 맥박은 삶에 대한 열정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다솔사는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도량석 목탁과 은은한 범종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는 수월도량이었다. 그 종소리,..

불교관련 2025.03.02

조주 무자화두의 기연 / 원오사 경봉큰스님 법문

진秦나라 예주 방림리曳州 方林里에 두 동자가 함께 발심하여 집을 나와 임야사林野寺에 가서 입산하였다. 한 아이의 이름은 종심從諗이요, 다른 아이의 이름은 달정達淨이라 하였다. 이 두 사람이 태양산太陽山 서봉西峰 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초암草庵을 만들어 함께 수도해서 견성見性하여 많은 중생을 교화하기를 발원하고 고락을 같이 나누며 생명을 걸고 수도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불행히 달정 수좌는 도를 깨닫지 못하고 죽었고, 종심 수좌는 도를 깨닫고 동관원東觀院에 있으면서 달정 수좌가 이 세상에 다시 환생하여 돌아오기를 기대하였더니, 달정이가 과연 다시 환생하여 출가하였는데 이름은 문원文遠이라 하였다. 하루는 문원이가 개를 안고 조주 종심 선사에게 가서 묻기를 “개한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

선지식 2025.02.16

오늘도 상행삼매의 길을 걸으며 / 김희옥

나의 삶 나의 불교불교의 체화(體化)​​나는 1948년 7월 17일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다. 그날은 대한민국 헌법이 처음 제정 · 공포된 제헌절이다. 우리나라 헌법과 같은 날에 태어나서, 나이도 우리 헌법과 꼭 같은 것이다. 76년을 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고 몸에 스며들도록 체화하는 과정에, 불법을 가르치신 스님들께서 주신 법명이 셋이다. 불이(不二), 태허(太虛), 당래(當來)의 셋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아직 그 가르침의 언저리를 걷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돌아보고 또 수행하려고 애쓰는 오늘이다. ​고향 청도는 옛 신라의 서라벌에서 가까운 불교의 흥성지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운문사 · 대비사 · 용천사 등 경내에 들어서기만 하면 저절로 신심이 솟아나는 부처님의 터전에 부모님 손잡고..

불교관련 2025.02.16

설오스님의 티벳불교 체험기

설오스님의 티벳불교 체험기 머릿말  티벳불교를 처음 알게된 것은 대만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였다. 한참 정토신앙에 심취해 있는데 때마침 한 신도분이 티베트 린포체가 오셔서 임종시에 의식을 극락정토로 바로 옮길수 있는 포와수행을 전수하신다며 가보자고 열성을 부렸다. 관심은 없었지만 거절하기도 그렇고 해서 건성으로 그러자고 대답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기를 세 번째 하던날 그 신도분이 사람이 죽은 후 사십구일간의 중음상태에서 일어나게 되는 적정존과 분노존의 모습을 그린 사진을 보여주며 그 티벳린포체께서 중음상태에 대한 상세한 가르침과 함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은 물론 타인의 영혼까지도 바로 극락정토로 보낼 수 있는 구체적인 가르침을 전수하신다는 것이었다. 중음에 대한 이야기와 그와 관련된 사진은 큰 충격으..

티벳 불교 2025.02.16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꿈처럼 덧없이 짧은 인생집착 벗어나 멋있게 살자”‘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은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풀어쓰면 “일체의 있다고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 한해의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지 않음을 우리는 느낀다. 떨어지는 낙엽마저도 쓸쓸히 우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 〈금강경〉의 사구게 중 마지막품에 나오는 이 구절은 보인다는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금강경의 주제처럼 마지막에 한바탕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우리의 인생살이의 벼락같은 말씀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TV 뉴스를 ..

몽테뉴 《수상록》, 발고여락(拔苦與樂)을 탐구한 인생주석서 / 맹난자

불교로 읽는 고전1.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는 르네상스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며 문필가이다. 그는 남프랑스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城)에서 출생하였다. 보르도에서 포도주 장사로 부자가 된 그의 증조부가 성을 매입했다. 몽테뉴의 부친은 이탈리아 전쟁에서 참전하고 돌아와서 이 성을 확장하고 가꾸어 귀족행세를 하며 살았다. 진보주의자였던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치기 위해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독일인 학자를 가정교사로 초빙했다. 그는 이미 여섯 살에 학자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라틴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었다. 보르도 시의 명문 기엔느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그는 철학과 고전에 열중하며 툴루즈 대학에서 법률학을 공부하였다.​1554..

불교관련 202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