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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峰和尙禪要 해설

高峰和尙禪要​海印叢林講院 高峰和尙禪要序고봉화상선요서​參禪은 雖以不立文字하며 不假修證으로 爲宗이나 然이나 旣可叅則참선은 수이불립문자하며 불가수증으로 위종이나 연이나 기가참칙필 有要하니 要者는 何오 如ㅣ 網之有綱하여 衣之有領하야 使人一擧而유요하니 요자는 하오 여ㅣ망지유강하여 의지유령하야 사인일거이徑得其直遂者ㅣ 是也라 萬目이 非不網也나 遣綱擧目이면 網必不張경득기직수자ㅣ 시야라 만목이 비불망야나 견강거목이면 망필부장이요이요 萬縷ㅣ 非不衣也이 捨領擧縷면 衣必不振이니라 永嘉ㅣ 云호대 摘만루ㅣ 비불의야이 사령거루면 의필부진이니라 영가ㅣ 운호대 적葉尋枝는 我不能이라하니 枝與葉은 非要요 根本이라사 固要也어늘 學者엽심지는 아불능이라하니 지여엽은 비요요 근본이라사 고요야어늘 학자ㅣㅣ 復昧其根本이로다 鵝湖ㅣ 云호대 要在當人能..

선요(禪要) 2024.11.03

인과대로 살 뿐 / 혜암 성관스님

인과대로 살 뿐 / 혜암 성관 스님 혜암 성관(慧菴 性觀, 1920~2001)​​오계는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을 하지 말고, 사음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술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산 목심을 죽이게 되면 무슨 죄를 받느냐?다 말할 수 없지만 간략히 말해서 남의 목숨을 죽이면 내 명이 짧아집니다.살생을 많이 한 사람들은 단명보(短命報)를 받아 오래 못 살고 병이 많아서고통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병도 없고 오래 사는 분들은 지난 날 복을 많이 지은 분들이요.이유 없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내 한테 오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그래요.좋은 일도 나쁜 일도 콩 심으면 콩이 나고 밭 심으면 팥이 나는 것같이,그림자가 따르는 것같이, 메아리가 울리는 것처럼,이 세상은 감출 수가 없잖아요.우리가 살아가면서 보..

선지식 2024.11.03

물질불멸(物質不滅)의 원리(原理) / 구산 스님

물질불멸(物質不滅)의 원리(原理) 일체(一切)법의 유무(有無)가 불즉불리(不卽不離)인 이때에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다르지 않고 무명(無明)과 실성(實性)이 다르지 않으니 물질도 영원히 존재한다.그래서 환상(幻相)과 실상(實相)이 불이(不二)임을 실상(實相)심이라 하며미몽(迷夢)이 곧 본성(本性)심이며 산하대지(山河大地) 두두물물(頭頭物物)이우주의 대(大)진리인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전신(全身)이다. 산야(山野)에 있는 고목(枯木)을 물론 죽었다고 말할 것이다. 아생여사 아사여사(我生汝生 我死汝死) 내가 살면 너도 살고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라고 보는 것이 옳게 본 것이다. 고목뿐이 아니라 소라를 잡아서 삶아 알맹이를 까서 먹었다.그 소라는 껍질 만 남아 있는데 성품(性品)..

선지식 2024.10.20

<불교 의식(儀式) 예불문>

​불교 사찰에서는 조석(아침⋅저녁)으로 예불을 올린다. 고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은 에서 ‘예불에 나아가되 모름지기 조석으로 근행해서 스스로 게으름을 꾸짖으며, 대중이 행하는 차례를 알아서 어지럽히지 말라’고 하셨다. 마음을 다잡고 정성 드려 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불교 의례는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면서 무게가 있다. 그 순간 의례에 참여하는 불자들은 누구나 마음으로 나름의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의례의 순서를 보자. 아침예불의 순서를 살펴보면, 도량을 청정히 하는 도량석(道場釋)으로 시작된다. 사찰에서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불교의식을 도량석이라 한다. ​――――도량석(道場釋)――――​도량석이란 말은 도량을 깨운다, 도량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도량은 모든 불보살이 ..

불교 2024.10.20

백장야호 / 철학자 강신주의 무무관과 철학

불교의 중도란 느슨한 인과 관계를 긍정하는 지혜​모든 것이 공하다고 보면대상에 대한 집착 끊어져​항상 존재한다는 생각과없다는 생각 버려야 중도​성인, 인과 어둡지 않을뿐초월해서 존재하지는 않아​백장(百丈) 화상이 설법하려고 할 때, 항상 대중들과 함께 설법을 듣고 있던 노인이 한 명 있었다. 설법이 끝나서 대중들이 모두 물러가면, 노인도 물러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노인은 설법이 끝나도 물러가지 않았다. 마침내 백장 화상이 물었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옛날 가섭(迦葉) 부처가 계실 때 저는 이 산에 주지로 있었습니다. 당시 어느 학인이 제게 물었습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까?’ 저는..

선의 세계 2024.10.20

「산은 산이요(山是山), 물은 물이로다(水是水)」

「산은 산이요(山是山), 물은 물이로다(水是水)」참 평이한 말이다. 초등학생도 말할 수 있는 이 평이한 말이선가(禪家)의 법어로 회자하게 된 것은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이 말이 처음 선가에 나오게 된 유래는 살펴보면중국 송(宋)나라 때 선승인 청원행사(淸原行思)가 한 말로송(宋)대에 발간된 전등서(傳燈書)인「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비롯된다. ​「오등회원(五燈會元)」은 중국 남송대(南宋代)의 선승(禪僧)보제(普濟): 1178∼1253)의 지휘 아래 그의 제자들과기존의 불조(佛祖) 전등록(傳燈錄)들을 정리 재편집하여송나라 보우 원년(寶祐元年: 1253)에 간행된 전등서로그 뒤 원나라 말기인 지정 2년(至正二年: 1364)에 중각된 뒤로도여러 번 증각 되었다. 보제(普濟)의 속성은 장씨(張氏)‚호..

지혜의 공간 2024.10.20

인도불교-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1)

인도 불교-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1)  ​불교 발상지 인도가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G-7 등 서구 세력에 대항하여 앞으로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브릭스 BRICS’ 국가가 영향력이 커지고, 경제력이 향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고. 골드만 삭스의 경제학자 짐 오닐(Jim O'Neil)은 이들 네 나라가 2050년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설을 발표했다.미국 실리콘 벨리의 구글 등 IT 업계의 사장에 특히 인도 공과대학 출신들이 많다는 보도가 많다. 또 인도의 실리콘 벨리인 ‘벵갈루루’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고,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오히려 인재들이 벵갈루루로 몰려든다는 흥미로운 기사도 자주 보인다. 인구..

불교관련 2024.10.20

부처님 울타리 속에서 평생을 살다 / 송석구

나의 삶 나의 불교나의 삶 나의 불교. 나의 삶이란 내가 살아온 역사일 것이요, 나의 불교란 나와 불교는 어떤 관계인가를 말하는 것이다.​내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철학과를 입학할 때부터 나는 불교와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나의 자의적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역사는 동국대학교의 울타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동국대학교 생활이 나의 삶의 역사이다. ​얼마 동안 다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때가 있긴 하였으나, 그때도 동국대 강사와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었으니 동국대학교를 떠난 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불교도 단 한 번도 다른 종교를 넘나든 경험이 없기에 나는 불교 속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불교 속에 살았다는 뜻은 나의 팔십 평생의 역사 속에 ..

불교관련 2024.10.20

어떻게 해야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할 수 있는가?  중국 당나라 때 운문(雲門) 스님이정월 초하루날 원단(元旦)의 상당(上堂)에 올라가셔서대중들한테 하시는 말씀이'내가 그대들에게 과거(過去) 지나간 달의 소식은 묻지 않고닥쳐오는 달의 그 소식을 한마디 말해 보아라'. 지나간 달의 소식은 그대들에게 아무런 해답(解答)을 구(求)하지 않고,앞으로 당래(當來)하는 달의 소식을 한마디 말해보아라,그리했단 말입니다.이 때 대중(大衆)가운데 한마디 말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그래서 운문대사(雲門大師)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으로 대답했습니다.년년시호년(年年是好年)이요, 해마다 바로 좋은 해요.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날마다 바로 좋은 날이라. -중략- 그런데 운문(雲門)스님께서는..

선지식 2024.10.20

蘇東坡(소동파) 시모음

​蘇東坡(소동파) 시모음  蘇 東坡(1036-1101) 宋代의 詩人. 字는 子瞻, 이름은 軾, 東坡는 號다. 仁宗 景祐 3년 (1036, 고려 정종 2년) 사천성 眉山에서 태어났다. 22살 때 아우 蘇 轍과 함께 과거에 급제, 곧 代理評事簽書에 임명되고, 다시 鳳翔判官에 제수되었다. 神宗때 王安石과 의견이 맞지 않아, 지방으로 나가 杭州通判이 되었다가, 이어 密州.徐州.湖州등지를 맡아보았다. 이 무렵 이미 그의 文名이 높아서 소인들의 싫어하는바 되어, 44살 때 마침내 黃州로 좌천되었다. 이 때 그는 동쪽 언덕(東坡)에 집을 짓고 거처하면서 스스로 東坡居士라 일컬었다. 哲宗이 즉위하자 吏部尙書가 되었다가, 곧 潁州지사가 되고 뒤에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兵部尙書, 禮部尙書를 역임, 翰林 侍讀의 양 學士를 ..

기타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