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49

성철 스님

열반송은 지옥행 고백록인가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성철 스님이 열반 전에 썼다는 열반송이다. 인터넷상엔 개신교 부흥사들이 지옥에 갈 것을 고백한 ‘성철 스님의 유언’이라고 올린 글들이 수없이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원택 스님은 “반어적인 긍정이 선(禪)적 표현의 묘미인데, 진의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선교의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뿐”이라고 혀를 찼다. 그가 건네준 (장경각 펴냄)라는 책을 펼쳐보니, 1986년 1월 성철 스님의 신년법어가 눈에 뜨인다. “석가와 예수 발을 맞추어/ 뒷동산과 앞뜰에서 태평가를 합창하니/ ..

선지식 2021.12.26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⑧ 법무이법(法無異法) 망자애착(妄自愛着)

4. 좁은 소견 - 2 法無異法 妄自愛着 법무이법 망자애착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법은 다른 법이 없어서 중생이 생각하고 집착할 특별한 법이 없는데, 공연히 스스로 애착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법을 버리고 불교를 해야겠다, 교학을 버리고 참선을 해야겠다. 반대로 참선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교(敎)나하지 하는 것 등이 모두 애착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선이니, 교니, 중생이니, 부처니, 마구니니 하는 분별들은 모두 망견인 변견으로서 애착심입니다, 그러니 그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將心用心 豈非大錯 장심용심 기비대착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쓸데없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고 있으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알..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⑦ 대조체관(大道體寬) 무이무난(無易無難)

4. 좁은 소견 - 1 大道體寬 無易無難 대조체관 무이무난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무상대도는 그 본바탕이 넓기로는 진시방무진허공(盡十方無盡虛空)을 여러 억천만개를 합쳐 놓아도 그 속을 다 채우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무변허공(無邊虛空)이라 해도 실제로는 이 자성에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대도의 본체는 바탕이 넓다'고 한 것으로서 무궁무진하고 무한무변한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대도의 본체는 넓어서 어려움도 없고 쉬움도 없다'한 것은 본래 스스로 원만히 구족되어 있으므로 조금도 어렵다거나 쉽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스스로 원만히 구족되어 있기 때문에 대법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공부해서 성취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돈오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2. 단박에 깨침(頓悟) ◆돈(頓):屯+頁 *屯: 1. 진(陣)을 치다, 수비하다(守備--) 2. 진(陣), 병영(兵營) 3. 언덕, 구릉 a. 어렵다 (준) b. 많다, 무리를 이루다 (준) c. 견고하다(堅固--), 험난하다(險難--) (준) d. 태초(太初) (준) e. 괘(卦)의 이름 (준) *頁:1. 머리 2. 목 3. 목덜미 a. 책 면(페이지) (엽) ◆53계위 십신十信(발심보살發心菩薩), 십주(十住)(발취보살發取菩薩), 십행十行(장양보살長養菩薩), 십회향十廻向(금강보살金剛菩薩), 십지十地(성위보살聖位菩薩), 등각等覺(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묘각(妙覺), 佛 십바라밀 십지 1.보시바라밀- 환희지(歡喜地)혹을 끊고 이치를 얻어 환희하는 단계 2.지계바라밀- 이..

선의 세계 2021.11.28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⑥ 이견부주(二見不住) 신막추심(愼莫追尋)

3. 두 가지 견해 二見不住 愼莫追尋 이견부주 신막추심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좇아가 찾지 말라. 두 가지 견해는 즉 양변의 변견(邊見)을 말합니다. 이 변견만 버리면 모든 견해도 따라서 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변에 머물러 선악(善惡)·시비(是非)·증애(憎愛) 등 무엇이든지 변견을 따르면 진여자성은 영원히 모르게 됩니다. 才有是非 紛然失心 재유시비 분연실심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 잠깐이라도 시비가 생기면 자기 자성을 근본적으로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앞에서는 자기의 진여자성을 구하려고 하지 말고 망령된 견해만 쉬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망령된 견해란 곧 양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양변을 대표하는 시비심(是非心), 즉 옳다 그르다 하는 마음을 들어 망견이라는 ..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⑤ 다언다려(多言多慮) 전불상응(轉不相應)

2. 위순(違順, 거슬림과 따름) - 3 多言多慮 轉不相應 다언다려 전불상응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이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설명하고 거듭 설명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래 대도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 것(言語道斷 心行處滅)'입니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대도(大道)가 이와 같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려하다가는 대도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絶言絶慮 無處不通 절언절려 무처불통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④ 막축유연(莫逐有緣) 물주공인(勿住空忍)

2. 위순(違順, 거슬림과 따름) - 2 莫逐有緣 勿住空忍 막축유연 물주공인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있음의 인연(有緣)'이란 세간법과 같은 말로서 인연으로 이루어진 세상일이라는 뜻입니다. 공의 지혜(空忍)란 곧 출세간법이라는 뜻입니다. 인연이 있는 세상일도 쫓아가지 말고 출세간 법에도 머물지 말라는 것이니 두 가지가 다 병이기 때문입니다. 있음(有)에 머물면 이것도 병이고, 반대로 공(空)함에 머물면 이거도 역시 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있음을 버리고 공함을 취하거나, 공함을 버리고 있음을 취한다면 이것이 취사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세간의 인연도 버리고 출세간법도 버리고, 있음과 없음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一種平懷..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③ 위순상쟁(違順相爭) 시위심병(是爲心病)

2. 위순(違順, 거슬림과 따름) - 1 違順相爭 是爲心病 위순상쟁 시위심병 어긋남과 다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어긋난다, 맞는다 하며 서로 싸운다면, 이것이 갈등이 되고 모순이 되어 마음의 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不識玄旨 徒勞念靜 불식현지 도로염정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참으로 양변을 여읜 중도의 지극한 도를 모르고 애써 마음만 고요히 하고자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대도를 성취하려면 누구든지 가만히 앉아서 고요히 생각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고暉求�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대도(大道) 라는 것은 간택심(揀擇心) 증애심(憎愛心) 순역심(順逆心)을 버리면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마음을 억지로 고요하게 ..

중도철학과 원자론&색즉시공

팔만대장경 전체를 똘똘 뭉치면 ‘心’자 한자위에 서 있어서 이 한 자의 문제만 옳게 해결하면 일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일체 만법을 다 통찰할 수 있다. (성철스님) 중도철학과 원자론 - 찰라생멸하는 무수한 미립자 본성 없어 - - 중도철학은 양극단을 포섭한 空의 세계 - 데모크리토스 이래 서구의 원자론은 물질의 궁극적인 요소를 탐구하고자하는 것이었고,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이 물질의 궁극적인 요소를 원자라고 불렀다. 물질의 구성 요소로서의 원자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는 주기율표가 완성되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접하는 물질은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 보이지만, 이를 구성하는 원자는 1백여 종 밖에 안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 원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분자를 이루고, 무..

불교와 과학 2021.10.03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②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1. 지도(至道, 지극한 도)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합니다. 이 무상 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간법(世間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니며, 마구니(魔軍)를 버리고 불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취하거나 버릴 것 같으면 실제로 무상대도에 계합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불법을 바로 알고, 무상대도를 바로 깨치려면 간택하는 마음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