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49

성철스님 저서목록

성철스님께서 생전에 몸소 고르고 번역 또는 감수하여 백련선서 간행회에서 발행한 책들 ​ 선림고경총서 ​ * 발간사 ​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배달겨레의 얼과 문화에 이바지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해 온 지 일천육백년이 지났지만, 세월이 오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불교의 바른 뜻은 그릇된 이해와 어지러운 주장 속에 묻혀 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런 반면에 황폐해진 정신문화를 극복하려는 많은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선禪과 불교사상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충족시켜 줄 선서가 참으로 빈곤하고, 많은 불교문헌들이 어려운 한문 속에 갇혀서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하여 일직부터 이러한 문제들을 안타까..

선지식 2023.03.26

어묵/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 성철 스님

성철 스님의 아래와 같은 말씀에 일부 적지 않은 논란이 있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에 관한 주장과 아래와 같이 삼매를 점차로 논함은 구별상이라는 주장 등이 있습니다. 아래 글 '염(sati)'와 함께 읽으시면 도움이 됩니다. 다만 공부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___()___ 어묵/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 성철 스님 1. 공부의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 수행자가, 수행방편(修行方便)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이어감이,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에서, 더욱 나아가면, 말을 할 때[語]에도, 남의 말을 들을 때와 같이, 침묵할 때에도[默]에도, 일을 할 때와 같이, 몸을 움직일 때[動]에도, 사고(思考)할 때와 같이, 고요히 있을 때[靜]에도, 수행이, 한결 같아지는데, 이것..

선지식 2023.02.12

성철 스님을 그리며 - 법정 스님 -

성철 스님을 그리며 성철(性徹, 1912~1993) 큰스님 입적 소식을 듣고 이튿날 해인사 퇴설당에 모셔진 스님의 영전에 분향하고 마주 서니 실로 감회가 무량했다. 2년 전 바로 이 방에서 스님을 친견했던 일이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내게는 또 이 퇴설당이 선문(禪門)에 첫걸음을 내디딘 인연 터이기도 하다. 퇴설당(堆雪堂)은 원래 해인사의 선원(禪院)이었다. 선종의 제2조인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대사를 찾아가 허리께까지 눈이 쌓이도록 물러가지 않고 법을 구해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않았던 구도의 고사에 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래서 정면 벽에 혜가(慧可)의 설중단비도(雪中斷臂圖)가 걸려 있었다. 선원(禪院)이던 퇴설당이 방장실(方丈室)로 개조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성철(性徹) 큰스님을 내가..

법정스님 2022.11.27

“뭐, 우리 집안이 콩가루?”지효스님 벌떡 일어나 성철스님 향해 ‘염주 신공’

《 11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 성철 스님(1912∼1993) 재조명 열기가 뜨겁다. 올해부터 입적 20주년이 되는 2013년까지 스님을 기리는 백일법문(百日法門)과 3000배 법회, 학술대회 등이 잇달아 열린다. 11일 오후 2시 서울 조계사에서는 기념 법회가 열리고, 31일부터 스님이 수행한 사찰을 순례하는 행사도 진행된다. 젊은 시절 성철 스님의 지도를 받았고 현재 당대 최고의 강사로 꼽히는 무비 스님(69)과 성철 스님 말년 20여 년을 시봉한 원택 스님(68)이 7일 부산 범어사에서 만나 생전의 성철 스님과 그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비 스님은 입적 뒤의 성철 스님을 처음으로 ‘국민선사’로 부르기도 했다. 성철 스님의 6번째 상좌인 원택 스님은 은사의 유지를 잇는 백련불교문화재단..

선지식 2022.08.14

깨달으면 업이 있는가 없는가 / 성철스님

증도가 115. 마치면 업장이 본래 공함이요 마치치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빚 갚으리로다. 요즉업장이 본래공이요 미료환수상숙채로다. 了卽業障 本來空 未了還須償宿債 우리가 공부를 다해 마치면 업장이 본래 공하다는 말입니다. 앞에서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린다'고 했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성을 깨칠 것 같으면 깨침과 동시에 모든 업이 본래 공해서 모두가 다 무너져 버리고 업이 거기에 설 수 없어서 영원토록 자유자재한 부사의 해탈경계만이 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는 업이니 뭐니 하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면 자기가 전생에 지어놓은 업에 따라서 자기의 빚을 다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경각을 성취하여 진여본성을 바로 깨칠 것 같으면 자유자재한 해..

인과이야기 2022.06.19

성철(性徹)스님 열반송

성철(性徹)스님 열반송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활함아비한만단 일륜토홍괘벽산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 - 무비(無比)스님 이 글은 성철(性徹,1912-1993)스님의 열반게송이다. 스님께서 이 게송을 남기고 열반에 들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다. 불교인들에게는 항상 접하는 내용이라서 별 관심이 없었으나 비불교인들이나 타 종교인들은 대단히 의아해 하였다. 나아가서 일부 다른 종교인들은 불교를 폄하할만한 꺼리가 생겼다고 하여 이리 저리 글자대로만 해석하여 크게 비방하고 나섰다. 그래도 불교인들은..

선지식 2022.03.27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⑪ 맺는 말 [끝]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의 대의는 우리가 모든 상대적인 양변의 차별견해를 모두 버리면 원융무애한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 또는 진여법계(眞如法界), 무장애법계(無障碍法界)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선종에서는 '마음' 또는 '자성(自性)'이라 합니다. 하지만 '마음', '자성'이라 하는 것도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서 그것도 다 거짓말이며, 깨치면 결국 이런 말이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물을 마셔 보아야 물이 차고 더운지를 스스로 아는 것처럼 진여법계, 둘 아닌 세계, 무장애 법계, 부사의 해탈경계라 하지만, 깨치고 보면 이러한 표현들이 도저히 적용되질 않읍니다. 그러나 이대로가 견성이고 선종의 구경인줄 알면 큰일 납니다. 삼조 승찬..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⑩ 진여법계(眞如法界) 무타무자(無他無自)

6. 진여(眞如)-진실로 그러한 것 眞如法界 無他無自 진여법계 무타무자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여기서부터는 [신심명(信心銘)]의 총결산입니다. 모든 병폐를 털어버리면 진여법계가 현전한다는 것입니다. 진여법계란 일심법계(一心法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그 진여법계의 내용은 남도 없고 나도 없어서 모든 상대, 곧 일체를 초월하여 양변을 완전히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현실이란 상대로 되어 있는데, 그 현상계를 해탈하여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자성을 보게 되면, 남도 없고 나도 없는 절대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상대법이 끊어진 쌍차(雙遮)의 경계이며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것입니다. 要急相應 唯言不二 요급상응 유언불이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둘 아님을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을 많이들 인용하지만 무슨 뜻인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옛부터 깨달음을 얻은 많은 선사들이 이 말을 해 왔는데 고려 때 백운화상의 해석에 가장 가슴에 와 닿아 옮긴 해석을 복사하여 소개합니다. 우선 불교는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과는 달리 긍정 부정 긍정의 세 단계를 거치는 것이 많습니다. 위 선문답도 세단계로 나누어 봅니다. 1. 긍정-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2. 부정-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3. 긍정-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여기에서 1번은 참선에 들기전 즉 참선이 무엇인지 모르는 평범한 속인의 견해로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사과는 단지 사과 일 뿐 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입니다. 산 물 강 사과 돼지 지구 별 등 눈에 보이는 온갖..

선의 세계 2022.01.09

[성철 스님] 신심명(信心銘) 강의 ⑨ 안약불수(眼若不眠) 제몽자제(諸夢自除)

5. 일여(一如)-한결 같음 眼若不眠 諸夢自除 안약불수 제몽자제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누구든지 잠을 자지 아니하면 꿈은 없는 것입니다. 꿈은 누구든지 잠을 자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心若不異 萬法一如 심약불이 만법일여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 같느니라. 마음에 다른 생각인 차별심 분별심을 내지 않으면 만법이 여여(如如)한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만법이 본래 여여한데 우리가 여여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은 바로 마음에 분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여여한 것을 우리가 억지로 여여치 않게 할수도 없는 것이면, 여여치 않은 것을 여여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만법이 본래 한결 같아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한데도 그것을 보지 못함은 중생의 마음속에 분별심이 있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