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어떤 수행자 - 법정 스님

수선님 2023. 12. 31. 13:03

어떤 수행자

법정 스님

불교 교단에서 초기 출가 수행자의 생활은 한 마디로 말해서 두타행이었다. 두타는 범어 두타(dhuta)를 음역한 것인데, 털어버린다는 뜻이다. 번뇌의 때를 털어버리고 의식주에 탐착하지 않고 오로지 불교의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그때의 출가 수행자는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죽을 때까지 지키려고 했다.

①출가 수행자는 걸식해야 하고, ②분소의(糞掃衣, 누덕누덕 기운 옷)를 입어야 하고, ③나무 밑에서 앉거나 자야하고, ④병이 났을 때는 진기약(陳棄藥)을 써야 한다. 이것이 출가자가 지켜야 할 네 가지 의지처이다.

인도의 수행자들은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걸식에 의해 살아왔다. 그것도 한 끼만을 먹었다. 비구란 걸사(乞士)를 가리킨 말이다. 옷은 세상 사람들이 버린 천 조각을 모아 그것을 꿰매어 입었다. 가사는 거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것이 분소의인데, 세 벌 이상은 지닐 수 없었다. 또 초기의 출가자는 지붕 밑에서 살지 않고 나무 아래서 좌선을 하고 잠을 잤다. 이를 수하좌(樹下座)라 한다. 병이 나면 짐승의 대소변으로 만든 약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것을 진기약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극히 간소한 최저한의 의식주 생활이었다. 최저한의 생활을 통해 최대한의 진리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두타행은 출가자의 생활을 그대로 해탈의 종교적 최고 경지에 이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타행자의 생활은 외형적으로 볼 때 고행주의적인 색채를 띠어서는 안 되는 것이 불타 석가모니가 취한 두타행의 정신이었다.

두타행을 말할 때 선뜻 떠오르는 이름은 마하가섭이다. 그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두타제일이었다. <<장로게(長老偈)>> 40게집에 보면 그가 어떤 두타행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머물던 거처를 떠나

걸식하려고 마을에 들어갔다

식사 중인 한 나병 환자에게

공손히 다가섰다.

그는 병들어 썩은 손으로

내게 한 덩이 밥을 내밀었다.

내 바리때에 밥을 던지자

그의 손가락이 하나 따라 떨어졌다.

울타리 아래로 가지고 가

나는 밥을 먹었다

그 밥을 먹으면서도, 다 먹고 나서도

내게는 더럽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문전 걸식으로 요기를 하고

쇠오줌 약으로, 나무 밑에 앉고 누우며

누더누덕 기운 옷을 입는 사람

그야말로 자유로운 사방인(四方人 승가)이다.

나병 환자가 먹다가 준 밥을 먹으면서 조금도 언짢은 생각 없이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은, 마하가섭의 일상적인 두타행의 정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소식이다. 공(空)이 어떻고 불구부정(不垢不淨)이 어떻고 말로는 곧잘 하면서, 막상 현실에 당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는 사이비 수행자이다. 종교는, 불교는 그 요체가 말에 있지 않고 일상적인 행위에 있음을 우리는 다 같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같은 부처님의 제자이면서도 부처님을 몸소 시중들던 아난다와 마하가섭은 성격적으로나 행동양식이 무척 대조적이었다. 걸식을 통해서 보더라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아난다는 걸식을 해도 부잣집만 골라서 했다. 까닭인즉, 가난한 사람은 자기들 먹을 것도 빠듯하므로 남에게 줄 여유가 없을 것을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마하가섭은 일부러 가난한 집만을 골라서 다녔다. 그 까닭은, 가난한 집은 일찍이 남에게 복과 덕을 심어 놓은 것이 없어 현재 가난하므로 지금부터라도 그 복과 덕을 심어 미래의 가난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두 사람 다 이유가 그럴듯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차별을 두지 말고 차례대로 걸식하라고 가르친다.

마하가섭의 거처는 주로 바위산이었던 것 같다. 그는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바위산에서 사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가섭은 걸식에서 돌아와

바위산에 올라 집착이 없고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치고

아무 번뇌 없이 선정에 든다

푸른 구름이 봉우리 같고

아름다운 누각의 꼭대기 같으며

코끼리 소리 메아리치는

이 바위산은 나를 즐겁게 한다.

이슬비 내려 촉촉한 언덕

선인(수행자)들이 찾아드는 산정

공작새 우는 소리 요란한 곳

이 바위산은 나를 즐겁게 한다.

마치 한산시(寒山詩)를 대하는 듯 한 느낌이다.

가섭의 어머니는 두타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노래로써 전송을 하고 있다.

<<장로게>> 제82게에 나온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걸식하기 쉽고 안전하며

두려움이 없는 곳으로 가거라.

걱정 근심에 시달리지 않도록.

마하가섭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난 얼마 후, 부처님을 모시고 길을 가는데 부처님께서 한 나무 아래서 쉬려고 하였다. 그는 서둘러 자기가 걸쳤던 옷(가사)을 네 겹으로 접어 부처님의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부처님은 기뻐하면서 그가 마련한 자리에 앉으셨다. 앉고 보니 아주 부드러운 자리였다.

“이 가사의 천은 매우 부드럽구나.”

이 말을 들은 가섭은 몹시 송구스러웠다. 출가 수행자가 입는 옷은 조잡한 천을 쓰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가사는 새것인 데다가 아주 부드러운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조심조심 스승께 사뢰었다.

“대덕이시여. 저를 연민히 여기시어 제 옷을 받아 주십시오.”

가섭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대는 내 이 다 해진 거친 옷을 입겠는가?”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의 몸에 대었던 거친 옷을 입겠습니다.”

그는 이때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옷을 평생 벗지 않고 해지면 누덕누덕 기워서 입었다. 이 이야기는 남전(南傳)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16-11 <의경(衣經)>에 나온다. 뒷날 선종(禪宗)에서 가섭이 부처님으로부터 가사를 전해 받았다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우리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늙어서도 신참의 비구처럼 조심조심 처신하면서 한결같이 두타행을 닦아간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밖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였다. 이따금 찾아오는 마하가섭을 보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이여, 그대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몸도 많이 쇠해진 것 같구나. 그처럼 누덕누덕 기워 입는 분소의를 몸에 걸치기는 무거울 것이다. 그대는 이제 그런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공양에 초대받으면 이제부터는 응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내 곁에 있어다오.”

“대덕이시여, 저는 오랫동안 산림과 광야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탁발 걸식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줄곧 분소의를 걸치고 오늘에 이르면서도 그것을 찬탄(讚歎)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떤 이유로 그 같은 행을 좋다고 생각하고 찬탄하려고 하는가?”

“하나는 지금 그것을 행하면서 저는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이런 일을 행하여 뒷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그도 또한 즐거운 일입니다.”

“착하다, 가섭이여. 그대 생각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상응부경전>>16-5 <노경(老經)>에 나온 이야기이다.

마하가섭은 이와 같이 철저한 생활 규범을 가지고 한결같이 출가 수행승의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이런 구도 정신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의 주관 아래 왕사성 밖 베바라 산에 있는 칠엽굴에서 오백 명의 비구를 소집하여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교법과 계율을 결집한다(제1결집).

오늘날 우리들이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것도 그의 은덕임을 생각할 때, 두타행으로 다져진 그의 구도 정신에 귀의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우리들은 무엇인가. 호의호식으로 호사스런 거처에서 일 없이 안일하게 지내는 것을 수행으로 착각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 입을 벌리면 화두가 어떻고 견성이 어떻고 하면서도, 일상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의식주며 호화로운 행동거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두타행이 오늘 우리네의 가후와 풍습 또는 문화적인 여건 아래서 감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두타의 정신만은 그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바뀔 수 없는 출가 수행자의 본질적인 구도 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 불교 출가 승단의 위기는 최대한으로 수용되는 의식주 때문에 마음껏 배워서 펼쳐야 할 법이 최소한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나없이 옛 거울에 오늘의 우리 모습을 비춰보아야 할 것 같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산방한담>>(1982)

-맑고 향기롭게 운동 소식지(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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