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ㄷ - 5>
---------------------------------------------------------------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차이---대승불교는 BC 1세기경 소승불교에 반대해서 일어난 개혁세력에 의해 성립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불교란 말이고, 승(乘)은 싣고 운반한다는 뜻이다. 소승이란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수레라는 뜻으로 부파불교(아비달마 불교)를 지칭한 말이다. 당시 소승불교는 승려들만의 종교였음에 비해 불교를 널리 민중에까지 보급하기 위해 비교적 진보적 인사라고 할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큰 수레, 대승불교라는 기치를 내걸고 재가자를 포함시켜나갔다.
초기 대승불교 운동가들이 불교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 모든 문제점을 통합해 소승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개인적 성취 득도가 부처님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이 성불하기는 쉽다. 고행하면 바로 도통한다. 그러나 이래서는 인류가 개선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도 당신의 여러 진리 안목 중에서 연기법을 열심히 설법하셨다. 연기법을 깊이 공부하면 개인적 해탈보다 인류전체의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체계 사이의 가장 명확한 차이는, 전자는 아라한으로 이끄는 단계들을 계획했고, 후자는 보살을 붓다 됨으로 이끈다는 점에 놓여 있다.
소승과 대승의 분열은 불교 분열로서 이를 이해하는 것은 대승과 소승에 대해 이해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소승은 주로 승단의 승려들을 중심으로 형성됐고 이론과 실천에 엄격했으며 초인적 수행을 권장했고 부처님 말씀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담마(Dhamma, 법)의 해석에 배타적이었으며 가능한 절대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이러함이 당연히 계율과 수행의 지침에서 교조적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대승은 주로 재가불자를 중심으로 형성됐고 엄격한 초인적 수행과 너무 많은 계율, 그것도 주로 “…하면 안 된다”는 내용에 반발했다. 부처님 말씀을 형식보다는 의미론적으로, 즉 진보적이고 개방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대승은 특히 대중에 포커스를 두고 그들의 소망을 대변하는 입장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대중의 욕망과 인기에 영합하는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부처님을 오히려 절대적 신(神)처럼 형상화 해서 경배하고 찬양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대승불교 초기부터 불상과 석탑이 대거 이루어지게 됐다. 소승은 대승이 부처님과 불교의 경전을 왜곡하고 오염시키며 순수성보다는 자의적 해석을 내세워 자신들의 목적과 수단을 위해 이용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대승은 이를 맞받아쳐서 소승의 승려들이 자기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이기적 작태를 멈추지 않고 배타적 권위와 권력을 굳건히 한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를 인간으로 보고, 고타마 한 사람의 탄생으로 성불은 마지막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의 부처는 절대자로 존중되며, 신(神)의 화신이고, 그는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데, 이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열반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설정된 이념이었다. 따라서 중생도 수행만 열심히 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소승은 자신의 구원을 최고의 이상으로 봤으나, 대승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최고의 이상으로 봤다.
또한 대승에서는 보살(菩薩)의 개념을 확장해 모든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출가자들만의 해탈보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대승은 열반의 경지에 안주하는 소승 성자의 이상(아라한)을 비난하고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상(理想像)을 내세운 점에 특징적인 차이가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수행자는 각자의 정신세계에만 몰입해 사회와는 분리된 채 엄격한 수행을 강조하며,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개인 해탈을 강조했다. 이렇게 해탈의 수행과정을 통해 얻어진 이상적 존재를 아라한(阿羅漢) 또는 나한(羅漢)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소승불교는 자신의 구원을 최고의 이상으로 봤으나, 대승불교에서는 교조를 신화적 존재 내지는 절대자로 신격화하고, 구제대상을 모든 인류로 확장해 중생구제를 최고이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소승으로 해탈을 이룬 성문(聲聞), 연각승(緣覺乘=獨覺乘)은 법신(法身)이라 하지 않고 해탈신(解脫身)이라 한다. 해탈신은 개인 아(我)의 해탈을 이루었기에 중생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방편반야(方便般若)가 없어 영적권능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대승의 여러 법신은 보살수행의 공덕으로 무수한 방편반야가 있어 무량한 지혜와 방편을 행할 수가 있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소승에서 깨침은 석가모니불만 가능하다고 봤기에 소승 출가자는 적멸을 성취해 아라한(阿羅漢)이 돼서 영적능력을 키우는 불경연구에 심취했다. 스스로 성불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이것을 비불교적 사유라고 했다. 대승에서는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깨달은 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수보리가 계속 말한다. “발보리심한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라고.
그래서 소승이 엘리트 집단의 불교라면 대승은 민중불교라 할 수 있다. 소승은 선택받은 이, 승려로서 삶을 유지할만한 지식과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충족되는 이들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에 비해 대승은 범부중생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법화경>의 약초유품을 통해 나타나듯이 모든 이에게는 각자에 맞는 깨달음의 길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대승불교는 후대에 발생한 불교라서 거품이 전혀 없을 수 없고,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점차 초기불교가 더 의미 있게 부각되는 점 또한 사실이다. 위로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제한다는[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인 보살행도 깨달음이 없이는 실천하기 어렵다.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점이 대승불교에 부과된 무거운 과제이다. 중생구제란 노숙자를 먹여주고 재워주며 치료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스스로 깨닫지 못한 사람이 타인을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다. 깨달음 없이는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이끌고 길을 가는 것과도 같다. 불교는 스스로 수행하고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종교이다. 누가 대신할 수 없으며 전해 줄 수도 없다. 따라서 중생구제란 깨닫도록 가르치고 이끄는 행위가 우선이다.
그리고 소승에서는 마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삼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높다. 생각을 일으키면 곧 집착이 생기고, 그로 인해 고통이 생기기 때문이다. 생각을 일으켰다 하면 자기 생각에 치우치는데, 존재의 본능이 있어서 그렇다. 따라서 수행은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없애는 쪽으로 치우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마음을 오히려 이용한다. 자기만을 위해 생각을 일으킨다면 고통이지만 남을 위해, 중생을 위해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자비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대승과 소승의 차이다. 생각이란 게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는가에 따라 고통과 행복으로 나뉜다. 자기를 생각하면 고통이고, 남을 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자비이다. 자비심이나 보리심도 결국 생각이다. 자신에 대한 생각은 자기 하나에 국한되므로, 점점 더 마음이 좁아지지만, 남을 위한 생각은 무궁구진해서 마음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그리고 부처님 입멸 후 500여년이 지난 AD 1세기경부터 편찬되기 시작한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육성이 담긴 경전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 - 초기경전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시대상황에 부응해 사상을 확장한 해설서이다. 따라서 소승불교(초기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 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대승비불설은 지나친 비약이다. 이러하므로 대 ․ 소승 불교의 실질적인 구분 점은 각 불교가 지니고 있는 경전과 수행방법의 차이점에 있을 따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인도에서 부파불교가 사라짐으로써 소승불교도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따라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를 비교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하겠으나 대승불교의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소승불교와 대비할 수밖에 없는데, 남방불교(상좌부불교)가 소승불교(부파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아 이에 기준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분류해 본다.
① 소승불교는 아라한을 이상으로 삼는 성문승이며, 대승은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승이다. 즉, 대승불교는 보살불교이다. 보살행을 추구하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대승불교에선 불보다 보살을 더 위에 둔다.
② 소승불교는 3계 6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업보사상이며, 대승불교는 이타주의의 원행사상(願行思想)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목적은 성불이라기보다는 보살행이다. 그리하여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보살이다.
③ 소승불교는 삼세실유 법체항유의 유(有)의 입장이며, 대승불교는 반야지혜에 의한 일체개공의 입장이다.
④ 소승불교는 지극히 형식적이며 번쇄한 철학과 이론을 위한 이론이 많지만, 초기대승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중시했다.
⑤ 소승불교는 학문과 이론에 중점을 두었으나 그 경지는 저속한 것이었고 출가중심의 불교였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고차원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입장에 서며, 나아가 재가불교를 표방하고 평이한 교설을 설하는 가운데 불교의 근본을 잃지 않음을 추구한다.
⑥ 소승은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의 가르침이다. 이와 같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를 들어낸다. 좀 더 살펴보자.
①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의 구원을 추구하지만 소승불교는 개인의 해탈을 중시한다. 소승불교는 교리해석에만 치중하고 사회와 분리된 출가 수행주의를 강조한다. 대승불교는 크게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는데 교종은 소승불교처럼 경전해석을 통한 교리해석을 중시하고 선종(禪宗)은 그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아함경> 등 초기불교 경전은 전문적인 승려를 대상으로 편찬한 경전이다. 그래서 경전 내용은 모두 “비구여~”로 서술돼 있다. 그런데 대승불교 경전은 모두 대중을 상대로 해서 편찬됐다. 그래서 경전 내용이 모두 “선남자ㆍ선여인이여~”이라든가 “불자야~”로 서술돼 있다.
② 소승불교(남방불교)는 <빠알리어 삼장>이라 해서 경(經)ㆍ율(律)ㆍ논(論) 3장을 갖추고 있지만 대승불교는 출가수행의 우위를 부정했기 때문에 경 및 논만 있을 뿐 율장은 없었다. 그러다가 중국에 불교가 전래될 때는 소승ㆍ대승의 불전이 섞여서 한꺼번에 들어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는 원칙적으로 소승의 구족계(具足戒-250계)를 채용하게 됐다.
③ 소승불교의 <빠알리어 삼장>은 빠알리어로 씌어졌는데, 대승경전은 주로 산스크리트로 씌어졌고, 대개 원본은 소실되고 한문이나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으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④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을 중국의 승려들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이 설법한 것[불설(佛說)]이라고 믿었으며, 그 내용의 차이는 설법 시기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태종(天台宗) 개조인 지의(智顗, 538∼597) 대사가 오시교판(五時敎判)이라 해서 경전의 설법순서를 시간적으로 분류해 ‘5시(五時)’로 나누었다.
⑤ 무신론적인 소승에 대해 대승은 절대자를 신봉해 유신론적이며, 일불사상(一佛思想)에서 다불사상(多佛思想)으로 발전했다. 즉, 과거불사상(過去佛思想)을 발단으로 해서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리라는 미래불사상이 일어났으며, 아울러 서방정토의 아미타불 또는 동방 묘희국(妙喜國)의 아촉불로 상징되는 내세불사상과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萬佛思想)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으로까지 발전했다. 대승불교가 부처님을 신격화한 것이라든지, 관세음보살ㆍ문수보살ㆍ미륵보살 등을 등장시킨 것은 힌두교의 절대신 개념을 첨가한 것이다.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萬佛思想)---이 세상의 사방 어느 곳에나 붓다가 가득 차 있다는 사상, 그 대표적인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붓다는 현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불성사상(佛性思想)을 말한다.
⑥ 소승은 분석적 방법인데 비해 대승에서는 직관적 방법을 중시한다. 불교식 표현으로는 분별(分別)적 방법에서 무분별(無分別)적 방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분별지(分別智)에 대한 무분별지(無分別智 - 般若라고도 함)라는 술어가 생기게 됐다. 부처님이 연기설을 설한 것도 그 방법은 분석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분별의 가르침, 즉 지혜의 도(道)는 범속한 대중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부처님 생존 당시의 제자들이 대부분 교육 받은 귀족 출신의 우수한 지성들이었음을 감안할 때 부처님의 이런 분석적인 방법에 수긍이 간다. 이런 분별적인 엘리트주의의 불교를 직관적 방법에 의해 대중 쪽으로 돌리려고 한 것이 대승이다.
⑦ 대승불교는 붓다를 초세간적(超世間的) 존재로 보며, 역사적 인물로 나타난 붓다는 그 화신(化身)으로 규정한다. 불교도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소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고 하는 깨달은 성인이 되는 것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편협한 이기적 추구라고 보고 깨달음에 이르렀으나 다른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成佛)을 늦추는 보살(菩薩 bodhisattva)이라는 새로운 이상상(理想像)을 만들었다.
⑧ 보살이라는 말은 원시경전에도 나오는데, 원시경전에서는 부처가 되기 전의 석존을 말했다. 이 보살을 대승불교에서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정립했다. 소승에서는 아라한은 될 수 있어도 붓다가 될 수는 없다고 한데 대해 대승에서는 모든 중생은 보살도인 육바라밀을 완전히 닦으면 해탈한다고 했고, 동시에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⑨ 보살의 가장 큰 공덕인 자비(慈悲)가 초기불교에서 강조했던 지혜(智慧, 반야)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보살을 통해 생기는 공덕은 중생들에게 옮겨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러한 관념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의 정토교(淨土敎) 같은 타력적(他力的) 신앙 활동을 이끌었다.
⑩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와 다르게 공사상, 중도사상, 보살의 바라밀 실천사상 등이 존재한다. 소승불교에는 공성(空性, Sunyata)의 개념이 없는데, 대승은 이 세상의 궁극이 공성이라고 한다.
⑪ “초기 불교가 뿌리라면 대승불교는 가지나 꽃인데 근본적인 가르침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을 신격화해서 신격화에 의존하는 가르침이다. 소승불교의 가르침은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다. 그래서 소승불교를 배운 사람은 철학박사학위를 주지만 대승불교를 한 사람은 문학박사학위를 준다.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변질해서 권력과 결탁을 하니까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지배계층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게 <금강경>이다.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아니다. 그런데 당시 그걸 쓴 사람을 밝히면 목숨이 위태로우니까 그걸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 것이다.” - 전재성
⑫ 소승불교에서는 개인적인 해탈 혹은 열반이라는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를 추구하는데 비해, 대승불교에서 보리(菩提, Bodhi)를 획득하고, 중생구제를 추구한다. 즉,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대중을 교화한다(下化衆生)는 출가주의에서 재가주의로 중점이 바뀐다. 이는 소승은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의 가르침임을 말한다.
⑬ 소승불교에서 출가자들을 성문(聲聞, Sravaka)이라 부르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는 아라한과를 얻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열반(涅槃)을 추구하는 것인데 비해, 대승불교 수행자들은 궁극적으로 붓다가 되기 위해 바라밀(도피안)로 알려진 완벽을 추구하고자 시도하기 위해 보리를 구하는 것을 서약한 보살(菩薩)의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
⑭ 소승불교에서 열반이란 무명(無明)으로 인한 세속적인 부정한 것들을 없앰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면, 대승불교에서는 부정한 것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절대불변의 고요함[적정(寂靜)]을 얻어, 조작이 없고 변함이 없는 본성에 도달하고[무위(無爲)], 육바라밀(六波羅密) 등의 수행을 통해 진여(眞如), 불성(佛性)의 경지에 도달함[멸도(滅度)]이다. ⑮ 소승불교신자들은 붓다가 한 겁에 단 한번 나타났다고 믿는 반면,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들 안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한다. ⑯ 대승불교는 <금강경>, <화엄경> 등 대승경전을 공부하고 간화선(看話禪)을 하며, 소승계통인 남방불교는 초기경전과 위빠사나(vipasannā) 명상법을 하고 있다는 차이 정도가 있으나 지금은 남방 수행방법을 대승에서도 받아들이는 추세다. 따라서 소승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 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 하겠다.
⑰ 소승경전(남방상좌부경전)은 석가모니불이 설한 경전으로 함에 비해 대승경전은 법신불이 설한 것으로 돼 있다. 대승경전을 편찬할 때는 이미 석가모니불이 안 계셨기 때문에 법신불이 설한 것으로 한 것이다.
⑱ 초기경전은 이성적인데 비해 대승경전에는 신화적ㆍ설화적 가공(架空)의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의 특징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말은, 대승불교는 소승불교 혹은 남방불교에 비해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교의라는 것이다. 소승불교 혹은 남방 상좌부불교는 좁은 틀에 꽉 맞게, 정확하게 맞게, 그리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규정된 교의인데 비해 대승불교는 끝간데를 알 수 없을 만큼 확 열린 모호한 확장성을 지닌 교의이다. 마치 현대 철학의 한 영역인 카오스의 이론을 연상케 하는 것이 대승불교 교의이다. 따라서 대승 교의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며,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에 대한 숭산(崇山行願, 1927~2004) 스님의 법문이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전통은 모두 우리가 여행하려는 곳의 지도와 차량을 제공하지만 그 방법은 각각 다르다. 소승불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혼자 가는 것과 같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 이에 비해 대승불교 수행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가 아닌 일체중생들과 같이 가는 것이다. 소승불교가 먼저 삶의 고통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 비해 대승불교는 본래 아무것도 없음을 가르친다. 본래 고통도 없고 열반도 없다. 우리가 고통을 만들면 고통이 생긴다. 대승불교적 입장(관점)에서 보면 고통조차 본래 헛되고 공허한 것이다. 육체는 공해 실재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달음으로써 볼 때,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생각할 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괴로움도 없으며, 괴로움의 원인도 없으며, 괴로움에서 빠져 나오려고 할 필요도 없고, 얻어야할 열반도 없다. 모든 것이 이미 진리다. 벽은 하얗다. 그것이 진리다. 하늘은 푸르다 그것 또한 진리다. 바로 지금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이것 역시 진리다. 모든 것이 순간순간 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다른 존재들을 위해 맑게 살아 갈 수가 있다. 우리와 다른 존재들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생들과 함께 행동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들과 함께한다. 자유의 길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마치 버스나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이처럼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는 아주 명확하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 우리의 본성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본성은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무엇이 열반이냐?“ 하고 묻는다면, 당신이 아무리 그것을 깨닫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치 황홀한 꿈을 꾸어 입조차 열 수 없는 벙어리처럼 된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아주 깊고 명확한 것을 이해했지만 말로 표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각 이전이기 때문에 입을 열수가 없는 것이다. 말과 언어 이상의 것을 어떻게 설명 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도 없다. 깨닫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다. ‘탕’ 하고 책상을 치며, 이것은 깨달음과는 또 다른 범주이기 때문이다. 탕! 』
이상과 같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간에는 차이점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같은 불교이므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간에 어느 정도의 합의점은 있다. ① 두 종파 모두 집착, 증오, 망상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② 두 종파 모두 사성제와 8정도를 인정한다. ③ 두 종파 모두 이 현세는 시작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고 믿는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에서는 우선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며 선업을 행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는 수행을 강조했으며, 그 결과로 해탈 열반(아라한)을 성취한다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멸 후 개인의 해탈 열반보다는 보살행을 주장하는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고, 다시 대승불교 입장에 반기를 들고 선불교가 일어나면서 보살행보다 우선 자신의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보아 집착이 사라지면 저절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 ‘나’라는 아상과 집착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已生其心)이 된다. 또한 선불교 수행을 통해 마음의 고정관념, 번뇌를 깨치는 견성(見性)을 이루면 그 또한 집착이 소멸돼 자연스런 자리이타의 보살행이 나온다. 그러므로 초기불교를 계승한 남방 상좌부불교나 대승불교, 혹은 우리나라 선불교 모두가 해탈 열반을 추구하고 있는 점은 같다.
그러나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대승의 입장에서 대승과 소승의 차이점을 논해왔다. 그러다가보니 은근히 소승(부파불교)을 폄하하는 듯한 내용이 지배적이었다. 그러한 폐단에 대해 권오민 교수가 대ㆍ소승의 차이에 관해 정리한 글이다.
①부파불교는 아라한을 이상으로 삼는 성문승이며, 대승은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보살승이다.
②부파불교는 3계 6도를 윤회하는 괴로움을 여의고자 하는 업보사상(업보사상)이며, 대승불교는 원행사상(願行思想)이다.
③부파불교는 자리(自利)의 가르침이며, 대승불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가르침이다.
④부파불교는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의 유(有)의 입장이며, 대승불교는 반야지혜에 의한 일체개공(一切皆空)의 입장이다.
⑤부파불교는 지극히 형식적이며 번쇄한 철학과 이론을 위한 이론이 많지만, 초기대승에서는 신앙과 실천을 중시했다.
⑥소승불교는 학문과 이론에 중점을 두었으나 그 경지는 저속한 것이었고 출가중심의 불교였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고차원의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입장에 서며, 나아가 재가불교를 표방하고 평이한 교설을 설하는 가운데 불교의 근본을 잃지 않음을 추구했다.
이는 대개의 불교학개론서 내지 대승불교개론서에서 한결같이 진술되고 있는 바이며, 우리가 상투적으로 되뇌고 있는 대ㆍ소승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도식적 논의의 이면에는 이미 좋고 나쁘다는 판단이 개입돼 있으며, 따라서 이는 적어도 어떤 한 종파적 이념가의 발언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학자적 발언은 될 수 없다. 그리고 특히 남방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에는 확장성에 차이가 있다. 소승불교는 확장성의 한계를 붓다 가르침의 순수성, 명확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고 적응하지 못하며, 고집만 부리고 유연성이 부족하다. 그러다가 보니 대부분 후진국가의 불교로 정체돼 있다. 대승불교는 광대하다. <화엄경>이나 <법화경>의 세계는 무한계의 확장성을 지닌다. 앞으로도 계속 확장할 것이다. 이것은 불교 발전에 중대한 문제이다.--→소승불교(小乘佛敎), 부파불교(部派佛敎), 대승심(大乘心) 참조.
*대승불교의 불타관(佛陀觀)---무신론적인 소승에 대해 대승은 절대자를 신봉하므로 유신론적이며, 일불사상(一佛思想)에서 다불사상(多佛思想)으로 발전했다. 즉, 과거불사상(過去佛思想)을 발단으로 해서 미래에 미륵불이 출현하리라는 미래불사상이 일어났으며, 아울러 서방정토의 아미타불 또는 동방 묘희국(妙喜國)의 아촉불로 상징되는 내세불사상과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萬佛思想)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녔다는 내재불사상(內在佛思想)으로 발전해 무수제불(無數諸佛) 사상으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그리하여 인즉시불(人卽是佛),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해서 불성을 지닌 모든 중생 역시 부처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방변만불사상(十方遍萬佛思想)이 등장해 이 세상의 사방 어느 곳에나 붓다가 가득 차 있다는 사상, 그 대표적인 것이 비로자나불이다.
*대승비불설(大乘非佛說)---「불교는 결코 단일한 체계가 아니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전개된 온갖 상이한 학적체계가 모여 이루어진 매우 복합적이고도 유기적인 체계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타의 말씀(교법)이 그의 자내증(自內證)을 근거로 한 가설적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권오민
따라서 온갖 해석과 주의주장이 있을 수 있다. 부파의 성립과 대ㆍ소승의 구별, 특히 대승비불설도 그런 맥락의 한 가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래전, 부파불교 당시에도 대승경전을 붓다 교설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이후, 그리고 근래에 들어 본격적으로 대승비불설을 제기한 일부학자들은 역사적으로 대승경전은 붓다 가르침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즉, 초기경전인 <아함부 경전>은 불설이 맞으나 대승불교는 붓다 입멸 후 약 500년 이후에 성립한 새로운 교설로서 붓다가 직접 설한 교설이 아니므로 불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일본인 도미나가 나카모토(富永仲基. 1715~1746)이고, 그의 저술 <출정후어(出定後語)>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부파불교 당시에는 지나치게 교리를 미세하게 다루어 너무 불교교의가 번쇄해졌고, 그러다가 보니 일부부파에서는 붓다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예컨대, 붓다 교설인 무아론에 배치되는 주장, 즉 유부에서는 법체(法體), 독자부(犢子部)와 정량부(正量部)에서는 개아(個我, pudgala) 등을 제시해 윤회의 주체가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보니 부파불교에서는 붓다의 중도사상(中道思想)을 잊어버리고, 순전히 유(有)와 무(無), 곧 양변의 유 ‧ 무사상을 가지고 싸움을 일삼았다. 어떤 부파는 유(有)를 가지고 붓다 근본사상이라고 하고, 어떤 부파는 무(無)를 가지고 붓다 근본사상이라고 주장하니 붓다의 근본사상이 무너지는가 하면, 부파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편집할 때, 자기들 주장대로 경전을 편집함으로써 붓다의 중도사상이 왜곡되기도 했다. 이러함에 반발해서 대두된 대승불교가 ‘근본불교 복구운동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에 앞장섰던 선구자가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였다. 용수는 <중론(中論)>과 <대지도론(大智度論)> 등 많은 저술을 통해 부파불교를 비판하고 대승불교를 확립했다.
용수는 붓다 중도사상을 바로 세우고 널리 펼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대승불교에서 붓다 근본사상을 복구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립한 사상이 지금까지 동아시아 북전불교(北傳佛敎)를 지배해오고 있다. 이러함으로 인해 오늘날에 있어서 대승불교가 근본불교인 붓다 사상을 복구 확장한 것이지 결코 변질시킨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즉, 대승불교는 공(空)사상을 바탕으로 붓다 당시 근본불교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고, 대승경전은 그 근간이 근본교설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므로 붓다 교설이 아니라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북방불교권에서는 대승경전을 붓다 가르침, 내지 그 근본취지를 더욱 선양해 발전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이를 높이 숭앙하고 있다. 즉, 붓다 교설인 초기경전 내용을 확장한 것이 대승불교인데, 오히려 이를 공격하는 이론이 대승비불설이다.
전통적인 불교교육을 받아 대승경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온 사람이라면 아함부의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새삼 대승경전이 연기설의 새로운 전개요 재해석이라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반야부의 공사상(空思想)은 일차적인 연기설의 변신에 해당한다. 이어서 전개되는 대승경전들 역시 연기설의 전개에 다름 아니다. 실로 대승불교는 논(論) 불교였다. 그리하여 발전된 중도(中道) ‧ 진여(眞如) ‧ 연기(緣起) ‧ 법계(法界), 등 그 화려하고 정묘한 교의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공사상만 해도 얼마나 정묘한가. 붓다 교설인 연기설이 이렇게도 확장될 수 있음이 놀랍다.
헌데 붓다께서 저 ‘독화살의 비유’를 통해 형이상학적 모색을 금지하고, 간단명료하게 깨달음을 직시하게끔 가르치셨다. 붓다께서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제기와 답변을 무시하거나 금기시했고, 언제나 깨달음을 향해 직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대승경전은 퍽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많다. 대승불교의 두 축인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학(唯識學)이야말로 언어문자에 의하지 않고는 논의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형이상학 영역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겼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붓다 당시는 일체의 형이상학을 거부하고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왜? 붓다가 생존해 계셨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붓다 입적 후 불교는 여타 종교사상과 교류를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온갖 교리 상 질문이나 비판에 직면해야 했으며, 이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대승경전이나 논서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형이상학적인 상징들이 서로 교류 상승함으로써 더욱 형이상적으로 발전해 초기불교의 모습들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비불설 운운 하지만 이는 불교가 발전하기 위한 하나의 진통에 불과했다.
“붓다께서 일체지자로서 3세의 모든 실상을 밝혔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대상황이 달라 이후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에 해당하는 미처 다하지 못한 말씀이 있었다. 그래서 부파불교시대 그리고 대승불교에서 그런 시대에 맞게 붓다 말씀을 확장할 필요가 있어서 대승경전이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성철(性徹) 큰스님 같은 분도 “대승은 역사적으로는 비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진정한 불설”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붓다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져갈 무렵, 대중들이 불법(佛法)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불법에 대해 붓다와 그 제자들과 다름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굳은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대승경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걸 두고 비불설이라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기준으로 2000년 이전의 일들을 재단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누구나 불교에 관심을 가진다면 한번은 거처가야 할 혼란스러운 과정이 대승비불설이다. 이로 인한 충격도 있지만 이로 말미암아 한발 나아가게 됨도 사실이다. 그것은 개인에게나 불교 전반에 대해서나 마찬가지이다. 진통 없는 성장이 없는 법, 이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써 개인적인 신앙과 정신적 성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대승불교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대승비불설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나 고의적인 회피는 신행이나 교의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가 편협한 일방적 주장이나 악의적인 비판들로 인해 본질이 왜곡될까 염려스러운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오늘 날 대승불교흥기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학자들은 대개 대승불교의 기원을 부파불교의 연장선상에서 대승경전도 편찬됐을 것이라 보고 있다. 즉, 이전의 경전을 수용해 해석하고 새롭게 읽는 과정을 통해 종류와 분량이 확대돼 간 것이지 결코 ‘역사적 붓다’의 권위를 빌려 날조된 것이 아니며, 경전의 증광(增廣) 또한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경전해석의 패턴을 의식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 결코 자유로이 무제한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불법(佛法) 혹은 불교사상의 다양성은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한다. 불교는 결코 교조주의가 아니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며 진실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다. 불교의 다양성은 처음부터 용인됐다. 「불법(불교사상)=불설=친설」이라는 도식은 부처님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후세인들의 강고한 편견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날조된 창작이라는 것은 「불법=불설=친설」이라는 도그마(Dogma)를 전제함에서 비롯된 편견이며,… ‘대승불교는 불설이 아니다’라는 말은 불교의 전통과 역사성을 무시하고 불교의 발전과정을 도식적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권오민
불교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불교는 붓다나 경전 자체에 대해 올바른 믿음을 강조하는 것이지 맹신을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다. 열린 종교인 불교는 맹신적인 자세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지혜(般若)를 닦으라고 한다. 진리는 붓다가 설하든 설하지 않았든, 또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계없이, 우리 앞에 언제나 그 자체로서 떳떳하게 진리여야 한다. 따라서 만일 무엇이 진정한 깨달음이고, 또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스스로의 지혜로써 판별하는 자세로 임한다면, 대하는 경전이 비록 위경(僞經)임이 분명하더라도, 그것은 최종적인 불교의 목적과 실천에 모두 큰 장애를 일으킬 수는 없다.
대승경전들이 근본교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고, 또 그 참뜻을 새롭게 전하고자 한 것임이 분명한 이상, 그것들을 붓다의 교설이 아니라고 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초기불교와 소승불교가 뿌리요 줄기라면 대승불교는 꽃이요 열매라고 할 수 있다. 불교의 참뜻은 붓다의 깨달은 진리에 있고, 그 진리를 열어 보이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념해야 할 것은 비록 초기경전이 대승불교 흥기 4~5백년 전에 성립한 것이라 해도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이 실제로 경전으로서 문자화돼 편찬되기 시작한 것은 「BC 1세기~AD 1세기」 시기로서 거의 동일하다. 때문에 대승경전(특히 초기 대승경전)의 교의적 궤의 뿌리가 초기불교의 경전 그것과 그 궤를 같이 했으면 했지 크게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경전을 편찬한 법사(法師, 다르마바나카)들은 본래 성전 암송가로서 원시경전의 내용을 해박하게 꿰고 있었고, 찬불승[讚佛乘: 佛傳文學]을 발전시켜 오기도 한 이들이기에 자신들의 종교적 체험에 근거해, 내용적으로는 원시경전의 근본사상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구성과 형식, 문체와 체제를 달리하는 새로운 대승경전을 편찬했으므로” - 박경준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은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경전 찬술자들은 비록 부처님에 가탁(假託)해서라도 부처님 법을 확장 발전시켜야겠다는 의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경 ․ 율 ․ 논 삼장에서, 논(論)은 경전의 해석 또는 주석이라고 하지만 사실인즉 형이상학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견해표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 저술한 문헌들을 ‘경전’이라 하지 않고 모두 ‘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면 오늘날 대승불교가 당면하고 있는 대승비불설 등 많은 문제점들이 저절로 해결됐을 것이다. 알고 보면 대승불교는 부파불교 못지않게 논(論)위주의 불교였다.
그리고 대승경전을 편찬함에 있어서 부처님 이름에 가탁(假託)한 것을 지금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부처님 이름에 가탁(假託)하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었을 수도 있고, 외람돼 자기이름으로 못하고 부처님께 의지한 것이 가탁일 수 있다. “불교는 붓다보다도 진리 그 자체를 지향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교의 근본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경전의 권위는 ‘붓다의 직설(直說)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내용이 진리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다.” - 이홍구
그리하여 “대승 불설 부정은 ‘무지’ 탓”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초기불전으로 간주되고 있는 5니까야와 4아함경은 부처님의 직설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직설 그대로 간주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어느 시기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특정 부파에서 편집된 불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최근 아함경이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경전으로 간주하거나 이들 경전을 근거로 초기불교로 돌아가자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오는 가운데 아함경과 니까야도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대승경전을 불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교사상사에 대한 무지와 폐쇄적인 신념에 기초한 것일 뿐 교학적ㆍ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부파불교 전공자인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문학ㆍ사학ㆍ철학(제17호)>에 게재된 “불설(佛說)과 비불설(非佛說)”이란 논문에서 ‘비불설 논쟁’이 대승과 소승 사이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논쟁이 결코 아니라 각 부파 간에 빈번하게 다뤄졌던 일반적인 논쟁이었음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규명했다. 특히 오늘날 붓다의 친설로 여겨지는 한역 아함경과 남방불교의 니까야도 당시 설일체유부 상좌부 등 각 부파의 교학적 견해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때론 불설의 내용까지 바꾸면서까지 새롭게 편찬한 경전들로 대승경전의 편찬방식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 논문에 따르면 부파불교 시대에도 불설의 진위 논쟁은 끊이질 않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경에 포함되고 율에 나타나면 불설이다”라는 <대반열반경>의 정의에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이라는 이론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불타가 설한 것이든 제자가 설한 것이든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로 수지할 수 있다. - 대비바사론“ “불법은 오로지 불타의 입으로 설해진 것만이 아니라 일체 세간의 진실하고 좋은 말은 다 불법이다. - 대지도론, 성실론”라는 견해가 불설을 판정하는 교파 간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정착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 부파의 불설론이 경전 편찬의 이론적 근거가 됐던 까닭에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아함경과 니까야를 곧이곧대로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승경전이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과 니까야 또한 비불설이며 대승경전이 대승론자에 의해 찬술 결집된 것이라면 아함경과 니까야 역시 부파의 논사들에 의해 취사선택되고 찬술 결집된 경전들로 그 당시조차 비불설로 비판 받았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구의 복색을 한 마구니 설’이라고까지 아비달마불교를 비난했던 대승의 찬술자들도 아비달마의 불설론 전통을 ‘계승’해 경전을 편찬하고 당위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소승이나 대승 등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오늘날의 비불설 논쟁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논쟁은 구호나 선전에 근거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것일뿐더러 폐쇄적 신념에 기초한 것으로 ‘맹목의 논쟁’일 따름이다. 불설과 비불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열려 있었으며 진실(법성)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전통이라는 권위에 의지하지 말고 진실에 의지하라는 것이 대소승의 공통된 불설관이었다.”며 “요즘 일각에서 아함경이나 니까야만을 올바른 붓다의 가르침으로 주장하거나 거꾸로 아함경이나 니까야를 초심자를 위한 경전쯤으로 얕잡아 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권 교수는 “오늘 우리가 시비 결택해야 할 것은 종파에 따른 혹은 역사와 전통에 따른 불설ㆍ비불설이 아니라 ‘진실’ 바로 그것”이라며 “대승이 그러했듯 이제 바야흐로 오늘의 진실을 오늘의 언어형식으로 결집하고 그것의 불설과 비불설을 시비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보신문
이러한 문제를 천착함이 중요한 것이지 한 뿌리에서 돋아난 줄기요 꽃인 것을, 잘못 핀 꽃이라고 탓하면 뿌리 채 흔들려 자칫 나무마저 죽어버릴 것이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지금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소승이고 대승이고, 초기불교고 힌두불교고 결국 이천오백년 동안 그 속에 내재된 사회역사적 현실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전에 대한 붓다의 궁극적 진리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경전의 단어 숲 속에 우리 불자들이 서로 파묻히고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경전에 들어있는 거의 모든 천신(天神)들은 인도 전통의 민간신앙이나 풍습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리고 오계(五戒)의 덕목들도 모두다 당시 인도의 전통적인 도덕관이었다. 힌두교이든 누구이든 불살생을 부르짖고, 특히 자이나교도들은 불교도들보다 더 불살생에 철저했다. 해탈도 인도의 전통적인 수행법에서 이미 알려졌던 내용을 불교가 차용한 것이다. 사선정(四禪定) 사무색정(四無色定) 등도 모두 요가수행법에서 체계화 됐던 것을 불교가 차용한 것이다. 윤회(輪迴)사상도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이다.
이러한 많은 인도의 사상들을 불교가 차용하고 도입해서 붓다는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고 불교적으로 재정립했다. 그리고 연기ㆍ무상ㆍ무아ㆍ고 등의 불교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립했기에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세력을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불교에 대한 실망감을 깊이 위로해 준 것이 바로 초기불교이지만, 그 급속한 전파와 성급한 이해로 지금 같은 건설적이지 못한 소모적 논쟁들과 보살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의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하기에 참된 진리는 누가 얘기하든 진리로 바로 볼 수 있는 깊은 불교적 연륜과 이해를 가지신 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실론섬, 길을 걸으며.
전세계의 어느 종교이든지 종교를 창시한 교주는 글을 남기지 않는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 결집해 이를 구전했고, 후에 문자로서 기록을 남긴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부처님의 ‘친설(親說)’이라 하는데, 이와 비교해 부처님 사후 5~600백년이 지난 시점에 성립된 대승불교는 처음부터 ‘글’로써 전승했고, 이를 ‘불설(佛說)’이라 한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한 사람은 누구나 ‘불법(佛法)’을 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글로써 표현한 것도 불설로 보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이름을 사칭한 속임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찬사와 영광을 담아내는 형식으로서 부처님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정(獻呈)’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수많은 경전이 찬술됐고, 이런 전통은 중국에서도 양산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금강삼매경>도 있다. - 진흙속의 연꽃
이와 같이 대승불교에서 새로운 대승경전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에도 대승경전은 찬술될 수 있다. 하지만 천 년 전 만들어진 대장경의 목록에 등재된 경 이외의 경은 아직까지 출현하고 있지 않다. 이런 점 때문일까 미국 UCLA 로버트 버스웰(Robert Buswell) 교수는 강의에서, “대승경전을 2000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오늘날의 대승불교가 시대와 문화, 역사의 변천에 따라 가고 있지 못함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대승경전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뜻과 같다. 그런 대승경전은 보통 ‘불설(佛說)’로 불린다. 위경은 깨달은 자의 입장에서 찬술된 경전이다. 그래서 경의 이름 앞에 불설이 붙는 이유가 될 것이다.---→‘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 혹은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차이’ 참조.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대승사론현의기>는 백제 승려 혜균(慧均)이 쓴 삼론학의 강요서이다. 인도 대승불교의 뿌리인 중관사상의 동아시아적 버전이 삼론사상이다. 용수(龍樹, 나가르주나)가 ‘반야ㆍ공’사상에 입각한 중도사상을 천명한 것이 중관사상이고, 중국의 남북조시대 인도 중관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삼론사상(삼론학)이다. <대승사론현의기>는 삼론사상의 주요 이론들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길장(吉藏)과는 구별되는 방식으로 삼론학의 이론들을 서술하고 있어 삼론학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매우 돋보인다.
이 문헌의 필사본이 일본 교토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734쪽짜리 불교 문헌으로서, 이 문헌의 필사본이 서기 658년에 일본 왕에게 건네진 점으로 미뤄, 그 쓰인 연대가 원효(元曉)의 <대승기신론소>보다 60여 년 앞선 한국 최고(最古)의 문헌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 책 덕분에 한국 고대 삼론학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백제불교를 위시한 삼국시대 불교의 실체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 당시의 불교 풍토, 사상적 깊이를 알 수 있으며, 백제 불교사를 새롭게 쓰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문헌에 나오는 절 이름 '보희사(寶憙寺)'가 2000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에 새겨진 보희사와 일치한다.
*대승선(大乘禪)---모든 현상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이치[아공(我空)과 법공(法空)]를 알고 닦는 수행으로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행 할 수 있는 방법의 선(禪)을 말한다. 용수(龍樹)와 달마(達磨) 대사가 주장한 대승수행의 입장에서 닦는 선인데, 세상 경계를 피해 조용한 곳을 찾아서 닦는 선이 아니라 치열한 현실경계 속에서 닦아가는 선을 말한다.
대승불교는 용수(龍樹)의 공사상(空思想)에 근거해서 성립했다. 그리고 용수가 제창한 대승불교는 ‘대승선(大乘禪)’이라고 하는 수행체계를 바탕으로 해서 세워졌다. 대승선의 핵심이 바로 ‘중관(中觀)’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中道)’에 입각해서 세워진 관법이다. 중(中)이란 근본을 여의지 않으면서도 경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자리를 말한다. 중의 자리는 본래 갖추고 있는 자리가 아니라, 이는 세워서 갖추어야 하는 자리이다. 중관이란 그렇게 갖추어진 중의 자리를 관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세 가지 방법이 공(空) ‧ 가(假) ‧ 중(中) 삼관법이다.→천태삼관 참조.
그리고 달마(達磨) 대사는 그의 스승 반야다라(般若多羅)에게 불법을 배워 크게 대승선(大乘禪)을 제창하고, 양(梁)의 무제(武帝) 때에 중국으로 건너와 왕을 뵈었으나 뜻이 맞지 않아 숭산(嵩山)의 소림사에 들어가서 9년간 면벽(面壁) 참선해 득도했다. 이런 달마 대사가 외친 대승선은 대승수행의 입장에서 닦는 선, 곧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을 말한다. ‘나’뿐만 아니라 일체법의 공성(空性)을 깨닫고 해탈을 추구하기 위해 닦는 선이다. 즉, 자아(自我)와 대상이 모두 공함을 알고, 그런 다음에 드러난 진리에 의거해 수행하는 것인데, ‘나’도 비어있고, 일체만법도 다 비어있다는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슨 이데올로기나 무슨 주의, 또는 어떤 학설, 주장, 이런 것은 모두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이지 본래 이것이 이른바 무가정(無假定)의 원리가 못되는 것이다. 이런 법공 자리를 미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라 하면 사회주의사상을 원리적으로 믿고서 모두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생각한다. 이른바 경직된 교조주의(敎條主義 dogmatism)이다. 불교를 공부하더라도 법공을 철저히 못 증(證)한 사람들은 꼭 자기 식으로, 같은 법문도 자기 견해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한다. 자기주장, 자기가 느끼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법공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에 반해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고서 해탈을 위해 닦는 것이 대승선이다.
내 몸이 내 마음을 구성하는 것도 공(空)이지만, 일체만법(一切萬法), 즉 산이나 들이나 또는 태양이나 별이나 천체나, 남이나 나나 일체 법이 다 비었다는 법공(法空)을 믿는 것이다. 소승들은 내가 비어 있는 것을 느낀다 하더라도 일체만법이 비어있는 줄은 모른다. 그러나 대승은 일체만법이 비었음을 아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아(我)도 공(空)이요, 일체만법도 공(空)이란 것을 말한 법문이고, <금강경(金剛經)> 또한 나도 공이요, 일체만법이 공인 것을 해설한 경전이다. 불교 공부는 내가 원래 비어 있고 우주 전부가 비었다는 것을 모르면 잘 안 되는 것이다. 참선도 역시 화두를 드나 염불을 하나 이와 같이 아공, 법공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망상이 잘 끊어진다.
*대승시교(大乘始敎)---당 대에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 주도한 화엄종 교판(敎判)에서 불교 가르침을 소승교(小乘敎) ․ 대승시교(大乘始敎) ․ 대승종교(大乘終敎) ․ 돈교(頓敎) ․ 원교(圓敎) 등의 5교(五敎)로 분류했다. 그 중 대승시교란 소승으로서 처음 대승에 들어온 대승초문에게 가르치는 얕은 교법, 초보단계란 의미에서 시교라 했다. 여기에 상시교(相始敎)와 공시교(空始敎)의 둘이 있다.
상시교는 유식학과 이에 관련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 <해심밀경> ․ <유식론> 등을 말하고, 공시교는 공(空)사상을 설한 <반야경> ․ <중론> ․ <백론> ․ <십이문론> 등 일체의 모든 것은 공(空)이라는 가르침을 말한다. 즉, 모든 존재현상과 본성을 설한 유식학 계통을 상시교라 하고, 모든 존재에는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공이라고 하는 진리를 단적으로 표현한 중관사상을 공시교라 했다.---→상시교(相始敎), 공시교(空始敎), 법장(賢首法藏) 참조.
*대승심(大乘心)---불교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기구제만 추구하는 사람을 작은 수레에 비유해 ‘소승(小乘)’이라 하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다 함께하면서’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보살심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큰 수레에 비유해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이를 줄여서 말하면, ‘위로는 성불하기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는 마음[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다.
다음은 육조(六祖) 혜능(慧能) 선사의 삼승(三乘)에 대한 말씀이다. 어떤 학인이 육조에게 물었다. “부처님이 삼승법을 설하고, 또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셨는데, 잘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일러주십시오.”라고 했다. 삼승(三乘)은 소승(小乘), 중승(中乘), 대승(大乘)이다. 이에 대해 육조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보고 듣고 읽고 외우고 하는 것은 소승이고, 법을 깨달아서 뜻을 아는 것[오법해의(悟法解義)]은 중승이고, 깨달은 법에 의해 닦고 행하는 것[의법수행(依法修行)]은 대승이다. 그리고 생각 생각이 머무는 데가 없으면[염념무주(念念無住)] 그것이 최상승이다.” 간단하고 쉽고 분명한 말씀이다. 소승은 범부들이 하는 것이고, 중승은 중등근기의 사람이 하는 것이고, 대승은 보살같이 근기가 높은 이들이 하는 것이다. 그 위에 최상승이란 삼승을 훨씬 뛰어넘는 상근기를 말함이다. 견성을 해서 만법에 걸림이 없으니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취하고 그럴 일이 없는 것이 최상승이다.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 참조.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毗達磨雜集論)---불교경전은 크게 경(經), 율(律), 논(論)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비달마는 부처님의 지혜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논(論)부분을 총칭해 이르는 말이다. <대승아비달마잡집론>은 세친(世親)의 형 무착(無着)이 지은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集論)에 대한 주석서로서 세친이 지었다. 이 두권을 하나로 세친의 제자인 안혜(安慧, 475~555)가 편찬했다. 이것을 당나라 현장(玄奘)이 번역한 했는데, 고려 현종 때 만들어진 초조대장경권에 판각됐었고, 현재 그 인쇄본이 전하고 있다(국보 제251호).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으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1㎝, 가로 12.2㎝이다. 이 책은 종이의 질, 새긴 기법, 먹색 등으로 보아 11세기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아비달마집론(大乘阿毗達磨集論) 참조.
*대승열반(大乘涅槃)---인도 대승불교 유식계통의 학승 호법(護法, Dharmapāla, 530~600) 등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저술해 4종열반(四種涅槃)을 세웠다.
① 본래 자성청정열반(自性淸淨涅槃) - 일체 유정(有情)이 본래 갖추어 있는 진여(眞如)가 객진번뇌(客塵煩惱)에 덮여서 나타나지는 않아도 본래 청정한 열반성(涅槃性)은 있다 해서 자성청정열반이라 했다.
②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 진여(眞如)가 번뇌를 벗어났기 때문에 번뇌는 다 없어졌어도 소의신(所依身)은 남아 있는 열반임.
③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 번뇌가 없어져서 진여(眞如)가 생사고(生死苦)를 벗어났고, 소의신(所依身)도 죽어버려서 온갖 고가 다 없어진 열반임.
④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 - 진여(眞如)가 소지장(所智障)을 벗어나서 대비심(大悲心)이 있으므로 열반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대 지혜가 있으므로 생사에도 머물러 있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인연 따라 중생세계에 나와서 생사에 자유자재로 구제활동을 한다고 했으니 대승열반은 적극적이며 활동적이며 자리이타(自利利他) 겸행이다. 이와 같이 무주처열반은 대승보살정신에 입각한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쉽게 말하면, 무주처열반은 지혜에 의해 번뇌를 끊고 청정한 지혜를 얻어, 생사에도 열반에도 집착하지 않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소승열반은 소극적이고 독선적이며 자리(自利)뿐이라는 주장이다.
*대승오구경---대승경전인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유마경>을 대승오구경이라고 한다.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다섯 종류의 경전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화엄경>을 대승 중에 대승이라 한다.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원효(元曉) 대사가 대승의 진실한 참회법에 대해 지은 글 이름이다. 대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만약 법계(法界)에서 소요하려고 하는 자는 네 가지 위의(威儀)를 조금도 황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덕(德)을 생각하고, 항상 실상을 생각하며 업장(業障)을 녹여야 한다. 널리 육도(六道)의 가없는 중생을 위해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께 귀명(歸命)해야 한다. 모든 부처님은 서로 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하나가 곧 모두이며 전체가 곧 하나이다. 비록 머무는 바가 없으나 머무르지 않은 바도 없고, 비록 하는 바가 없을지라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없으니, 낱낱 상호(相好)와 낱낱 모공(毛孔)이 끝없는 세계와 한없는 미래세에 두루 하며, 구애됨도 없고 장애됨도 없으며, 아무런 차별도 없이 쉬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시방삼세의 한 티끌과 한 생각과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며 차별됨도 없고, 대자대비의 반야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어 불공법(不共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연화장(蓮華藏) 세계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이 연화대에 앉아 끝없는 광명을 비치니 한없는 중생이 모여, 굴릴 것도 없는 대승의 수레를 굴리며, 보살대중들도 허공에 가득히 모여 받을 것도 없는 대승의 법락(法樂)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들은 이 한결같고 실다운 삼보의 허물없는 장소에 같이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해, 귀머거리 같고 장님 같으니, 불성(佛性)이 없는 것인가, 어째서 이와 같은가. 무명(無明)의 뒤바뀜으로 망령돼 바깥 경계를 일으키고, <나>와 <나의 것>이라 집착해 가지가지의 업(業)을 지어 스스로 덮고 가리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치 아귀가 물을 불이라고 보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 앞에서 깊이 부끄러워하며 보리심을 발해 정성된 마음으로 참회해야 한다.
※불공법(不共法)---보살이나 중생에게는 없는 부처님께만 있는 32상 팔십종호는 부처님의 신체의 특징인데 반해 불공법은 부처님께만 있는 덕상을 말하는데, 18가지가 있어서 18불공법이라 한다.
~~~~ 중략 ~~~~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무명(無明)이 본래의 마음을 덮어 망령 돼 육도(六道)를 지어, 여덟 가지 고통의 바다에 돌아다니다가 안으로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힘에 훈습되고, 밖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을 의지해 겨우 믿고 이해하게 된다. 나와 중생이 오직 잠들어 긴 꿈을 꾸면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망령되게 실제로 착각해 육진(六塵)과 남녀(男女) 등 상대적 개념[이상(二相)]을 만들어 좋다하고 싫다 하게 된다. 이것은 나의 꿈이지 사실은 아닌데, 무엇을 슬퍼하고,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탐내고, 무엇을 성낼 것인가. 수없이 사유하고 꿈과 같이 관(觀)하면서 점점 닦아 여몽삼매(如夢三昧)를 얻으면, 이 삼매로부터 말미암아 무생인(無生忍)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긴 꿈으로부터 활연히 깨어나면 본래부터 유전(流轉)함이 없으며, 다만 이 일심(一心)이 일여상(一如相)에 누웠음을 알 것이다. 만약 긴 꿈에서 깨어나고자 능히 이와 같이 수없이 사유한다면 비록 육진이 만연해도 실다운 것이 아니니, 번뇌를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게으르지 말라. 이것을 대승육정참회라고 이름 한다.“
※육정(六情)---육근(六根)과 같은 말, 즉 눈, 코, 귀, 혀, 몸, 마음을 말함. 위 글은 중생은 육정(六情)을 통해 만들어지는 온갖 번뇌 때문에 죄를 짓거나 괴로워한다. 그리고 육정 자체가 죄이므로 근본무명(根本無明)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인생이 본래 무생(無生)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일심(一心)으로 돌아가 본각(本覺)과 하나가 되는 것이 참된 참회라고 해, 적극적인 참회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승율장(大乘律藏, Mahayana-Vinaya Piṭaka)---흔히 계(戒)는 주체적이며 자율적인 것이고 율(律)은 타율적인 것으로, 원칙적으로 율을 위반했을 때는 상응하는 벌칙이 가해지지만 계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로 내려올수록 이러한 구분은 모호해져 계율이라고 통칭해서 부르고 있다.
계에는 소승계와 대승계가 있는데 전자를 율의계(律儀戒)라고 부르고 후자를 삼취정계(三聚淨戒)라고 부르며,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돼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돼 있다. 삼취정계란,
첫째 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둘째 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셋째 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원래 소승에서는 출가, 재가 남녀의 구별에 따라 오계, 팔계, 십계, 구족계 등을 들고 있지만, 대승에서는 이러한 것을 성문계(聲聞戒)라 하고 따로 대승보살을 위한 보살계를 말하고 있으므로 이 둘을 합해서 이계(二戒)라고 부르고 있다. 소승불교는 출가자 중심이므로 그 율장도 출가자를 위한 것이 주가 되고 있으나, 대승불교의 율장은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과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보살들을 위한 계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 적용 범위도 더 넓고 또한 사회성도 증강돼 있으며, 적극적인 실천의지를 담고 있다. 대승계율의 2대 근본경전이 <범망경>과 <보살영락본업경>이다.
*대승의장(大乘義章)---<대승의장(大乘義章)>이라는 책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동진(東晋)시대의 승려 여산 혜원(慧遠, 334~416)이 지은 것이고, 하나는 수(隋)나라시대 정영사 혜원(慧遠, 523~592)이 지은 것이다. 공교롭게 두 저자의 이름조차 같아서 혼란을 주고 있다.
• 먼저 동진(東晋)시대의 승려 여산 혜원(慧遠, 334~416)이 지은 <대승의장>부터 보자. 3권 18장으로 돼 있는 이 책은 여산 혜원(慧遠)이 대승의 교의에 대해 의문 나는 것을 당시 강북에서 활약하던 구마라습(鳩摩羅什, 344~413)에게 물었는데, 이에 대해 구마라습이 답해준 것을 정리해 묶은 책이다. 혜원이 저술한 책으로 다른 사람과의 문답을 통해 혜원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나타낸 것으로 일종의 논쟁을 기록한 책이다. 혜원은 여산에 주석하면서 염불수행 등 불교 수행의 실천적인 면에 치중했었다. 두 사람의 대론을 통해 그 당시의 불교가 중국에서 어떻게 이해됐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원래의 이름은 <문대승중심의십팔과(問大乘中深義十八科)>였는데 후대에 이르러 <대승의장>으로 불리게 됐다. - 지안 스님
• 다음은 수나라시대 정영사(淨影寺) 혜원(慧遠, 523~592)이 지은 <대승의장>에 관해 알아보자.
수(隋)나라시대 정영사 혜원(慧遠)이 지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해설서로서 불교교리 중 중요한 것 249과(科)를 5편으로 정리한 책이다. 여러 경전과 논서, 수나라 이전 여러 학파의 주장을 모아 분류한 뒤 대승의 입장에서 평가하고 주석한 일종의 불교백과사전이다. 중국불교에서 대승의 교의를 체계화 해 법수(法數)의 행상(行相)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위ㆍ진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였다. 그리고 수나라시대에 대승불교의 교의를 종합해 놓은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띤 <대승의장(大乘義章)>이 나왔다. 혜원(慧遠)이 대승의 중요한 요의를 뽑아 제목을 삼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여러 경론에서 관련된 내용을 발췌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은 책이다.
모두 20권으로 돼 있는 이 책은 그때까지의 불교연구의 결과를 총결산해 놓은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혜원은 원래 지론학파(地論學派)의 대가였다. 지론학파는 <십지경론(十地經論)>에 의거해 사상적인 이론을 전개시켰기 때문에 지론종이라 불렸다. <십지경론>은 인도의 유식사상가 세친(世親, Vasubandhu)이 <화엄경> ‘십지품’을 주석한 것이다. 이 지론종이 <화엄경> 연구의 선구적 역할을 해 나중에 화엄종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 책은 <섭대승론>의 영향을 받았음도 알 수 있고, 이 책 내용에 <능가경>과 <대승기신론> 사상이 강하게 드러난다.---→기신론소(起信論疏) 참조.
*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유식학을 정립한 무착(無着, 310~390)이 미륵보살에게 들은 법문을 편찬한 저서로서, 인도 유식(唯識)의 중심 논서(論書)의 하나이다. 보살이 수행해야 할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서술해 대승경전의 요점을 드러낸 저술로서 모두 24품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무착은 대승불교가 붓다의 친설임을 역설했다. 부처의 본생(本生) 및 여러 가지 인연, 비유, 설화 따위의 90종이 실려 있다. 7세기 초 당나라시대 인도 출신의 학승 파라파밀다라(波羅頗蜜多羅, 산스크리트어 prabhākaramitra, 565~633)가 한역했다.
<대승장엄경론>에 보면 공을 깨달아 가는 방법에 대한 서술이 있다. 제일 처음에 성문지(聲聞知)를 이루는 것이다. 성문지란 부처님 교법을 듣고 불성이 있음을 믿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사량지(思量知)이다. 그것을 들었으면 깊이깊이 부처님 교법을 생각하고 이해해 보는 것이다. 다음에는 지관지(止觀知)이다. 부처님의 교법에 따라 실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구경도(究竟道)는 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공을 깨달아 가는 방법만 알 뿐만 아니라 공한 이치를 깨달아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치게 하는 것이다.
*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밀교계 경전으로 10세기 초반에 완성돼 10세기 말경에 중국에 전래됐고, 송(宋)나라 때 북인도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 출신 밀교계통 승려 천식재(天息災, 10세기경)가 한역했다. 이 경전은 티베트 등 범어를 중심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지역에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경전이다. 밀교 총지종(摠持宗) 소의경전인데, 그 주제는 관자재보살과 육자진언이다. 이 경전이 「옴 마니 반메 훔」 육자진언을 설하는 유일한 경전이기도 하다.
*대승종교(大乘終敎)---대승종교란 대승 종극(終極)의 가르침으로서 근기가 원숙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란 뜻이다. 법화사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화엄경>을 일승원교(一乘圓敎)라 하고,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해서 <법화경>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꼽아 마지막으로 일승의 관문에 들어가는 것을 법화라고 해서 대승종교를 원교보다 더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당나라시대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이 주도한 화엄종 교판(敎判)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소승교(小乘敎) ․ 대승시교(大乘始敎) ․ 대승종교(大乘終敎) ․ 돈교(頓敎) ․ 원교(圓敎) 등의 5교(五敎)로 분류했는데, 이 속에 대승종교가 있으며,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하고, <화엄경>을 원교라 해서 오히려 원교(圓敎)를 불교의 최고 위치에 두었다. 즉, 화엄종에서는 <법화경>을 대승종교(大乘終敎)라 해서 최후의 교리이긴 하지만 원만원교는 못 된다고 해서 <법화경>의 대승종교를 원교 아래 두고 <화엄경>을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원효(元曉) 대사는 “부처님은 항상 일승만을 설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 전체가 오직 일승만을 설했다. 일승을 사부대중이 못 알아들으니까, 근기에 따라 이것저것 혹은 삼승을 설하신 것이지,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라고 법문이 더 수승할 이유가 없다. 다 똑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불교에서 가장 구경인 최후 원리를 설한 경을 화엄 ․ 법화라 하는데, 화엄 ․ 법화 둘 모두를 총칭해서 일승원교(一乘圓敎)라 해야 한다고 결론을 맺었다.---→일승원교(一乘圓敎) 참조.
*대승찬(大乘讚)---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 양(梁)나라 지공화상(誌公和尙, 418~514)의 선시집. <대승찬(大乘讚)>은 지공 화상이 황제(武帝)에게 지어 바친 글이다. 지공 화상은 당시 고구려ㆍ신라에까지 그 이름이 잘 알려질 정도로 명성이 높은 고승이었다. <대승찬(大乘讚)>은 짧은 시구 속에 불교의 진수를 잘 표현한 선시로서 3조 승찬 대사의 <신심명(信心銘)>과 더불어 가장 널리 읽히는 게송 이다. 고려 말 백운 화상(白雲和尙)이 편찬한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할자본 <직지심체요절>에도 실려 있다. 다음은 <대승찬>의 앞 부분이다. 1.
1. 대도상재목전(大道常在目前) - 대도는 항상 눈앞에 있어,
수재목전난도(雖在目前難覩) - 비록 눈앞에 있지만 보긴 어렵다.
2. 약욕오도진체(若欲悟道眞體) - 도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자 하면,
막제성색언어(莫除聲色言語) - 소리, 색, 언어를 제거하지 말라.
3. 언어즉시대도(言語卽是大道) - 언어가 바로 대도이니,
불가단제번뇌(不假斷除煩惱) - 번뇌를 끊어 제거할 필요가 없다.
4. 번뇌본래공적(煩惱本來空寂) - 번뇌는 본래 텅 비고 고요하지만,
망정체상전요(妄情遞相纏繞) - 망령된 생각이 번갈아 서로 얽힌다.
5. 일체여영여향(一切如影如響) - 모든 것은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으니,
부지하오하호(不知何惡何好) - 뭣을 좋아하고 뭣을 싫어할지 알 수가 없다.
6. 유심취상위실(有心取相爲實) - 마음을 가지고 모양을 취해 진실로 여기면,
정지견성불료(定知見性不了) - 끝내 견성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지공화상(誌公和尙, 418~514) 참조.
*대승체(大乘體)---종체(宗體)는 으뜸 되는 핵심 가치, 으뜸 되는 명제, 으뜸 되는 이념, 그런 뜻이다. 대승체(大乘體)란 대승의 종체라 했다. 대승불교의 핵심이념이란 말이다. 대승은 모든 것의 근본바탕이 된다는 뜻이다. 대승이라는 말은 우선 우리 내면의 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와 대승을 따로 분리해서 이해하면 불교가 자신의 사상으로 와 닿지 않을뿐더러 일상생활에도 불교적 이념을 가지고 생활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근본바탕이 되는 일심(一心)을 대승체로 생각하면 된다. 지극히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의 본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원효(元曉) 대사는 모든 것은 마음이 창조한다고 했다. 인간은 본래 지극히 공정하고 사가 없는 지공무사(至公無私)의 대승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우주만물의 하나하나(頭頭物物)가 대승의 체가 아님이 없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은 모두가 대승의 체에 의해서 생멸을 유지하면서 변모해가는 것이다. 대승체는 그야말로 대승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삼라만상과 우주만법을 대승체로 본다. 대승의 체는 어떠한 말과 글로도 표현하지 못한다. 그만큼 대승의 체는 오묘하고 현묘한 것이다.
대승의 체는 오안(五眼)으로도 볼 수 없으며, 사변(四辯)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우며, 아무리 사용해도 무한한 것이며, 만물이 거기에서 소생하니 대승체는 오묘하지 않을 수 없다. 대승체는 인간 내면과 외면뿐만 아니라 우무만물까지도 다 포함한 개념이다.
*대승현론(大乘玄論)---대승현론은 이제껏 삼론종(三論宗-중관학)의 정수를 간명하게 담고 있는 길장(吉藏)의 후기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돼왔다. 하지만 여러 연구들에 의해 <해승현론>이 길장의 저술이 아니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오늘날 <대승현론>이 전반적으로 다른 여러 문헌들의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장이나 길장의 제자들이 길장의 문헌을 편집해 이 저술을 완성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그동안 <대승현론>을 넓은 범위에서 길장의 저술로 간주하고 인용하는 연구들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 내용에서 기존의 길장의 사상과 모순되거나 불일치하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대승현론>이 길장의 찬술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길장의 제자들의 편집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 참조.
*대신근(大信根)ㆍ대분심(大憤心)ㆍ대의정(大疑情)---참선에 임하는 자세를 말한다. 옛날 중국 원나라 몽산(夢山德異, 1231~1308) 스님께서는, 상근기(上根機)는 7일이면 깨칠 수 있고, 중근기(中根機)는 한 달이면 깨칠 수 있으며, 설사 하근기(下根機)라 할지라도 한 철이면 깨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 위해선 - 즉, 참선함에는 반드시 세 가지가 구족해야 한다.
첫째로, 크고 굳은 믿음 - 대신근(大信根)이 있어야 한다. 이 일은 하나의 수미산을 의지함과 같은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나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으며 나도 성불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기필코 깨닫고 말겠다는 분발하는 마음 - 대분심(大憤心)이 있어야 한다. 마치 부모를 죽인 원수를 만났을 적에 당장 한 칼에 두 동강을 내려는 것과 같은 마음이다. 경허(鏡虛) 스님이 턱 밑에 송곳을 꽂아 놓고 공부한 것도 졸음에 대한 자기분심 때문이었다.
셋째로, 크게 의심하는 마음 -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한다. 마치 어두운 곳에서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곧 드러날 듯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 처한 것과 같다. 이때에는 그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된다. 어머니가 외아들 생각하듯, 고양이가 쥐 잡듯 몰두해야 한다. 의심은 공부의 생명이다. 이상은 도립 법전(道林 法傳, 1925~ ) 스님의 법문이다.
*대안대사(大安大師, 571~644)---원효(元曉, 617~686) 스님의 스승이다. 괴이한 옷차림을 하고서 항상 저자거리에서 구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대안-, 대안-"하고 다닌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금강삼매경>이 처음 신라에 들어올 때 순서가 마구 뒤섞인 채로 들어온 것을 국왕이 이를 정리해 달라고 그를 초청하자, 그는 궁에 들어가지 않고, 그 경을 자신에게 가지고 오게 해서 경의 순서를 바로 잡아 8품으로 정리했다. 또한 이 경은 원효만이 강의할 수 있다고 추천해, 원효가 이 경의 주석서인 <금강삼매경론>을 짓게 했다.
이 때 원효대사는 상주(尙州)에 있었다. 사자(使者)가 경전을 받들고 갔더니 원효는 슬쩍 보고 소의 두 뿔 사이에 벼루를 놓고 붓을 들어 주석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가 소를 타고 서라벌에 이르기 전에 소(疏) 5권을 지었다. 그래서 이것을 각승(角乘)이라고도 부르니 곧 소를 타고 소 뿔 사이에 필연(筆硯)을 놓고 대승경전의 소(疏)를 지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왕은 곧 황룡사(皇龍寺)에 법석(法席)을 베풀고 이것을 강설케 했는데, 원효대사를 시기하는 사람이 있어 밤사이에 이 주석 5권을 훔쳐갔다. 대사가 강경을 하려 하니 책이 없었다. 그래서 대사는 왕에게 연유를 아뢰어 3일간을 연기하고 다시 3권의 소를 지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3권의 소인데, 이것은 조사의 글이 아니고, 보살의 글이라 해서 ‘논(論)’이라고 불러 후대에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이라고 이른다.
경주 남산에 칠불암이 있는데, 신라시대에 창건됐던 암자로 원효(元曉) 대사가 머물면서 대안대사의 가르침을 받았던 도량이라고 한다. 헌데 대안대사는 주로 절이 아닌 토굴에서 기거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나 짐승들을 거두며 살았다고 한다. 뒷날 원효대사의 화작(化作)도 대안대사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다.
*대운경(大雲經)---5세기 경 중국 북량(北涼)에서 담무참(曇無讖)에 의해 한역된 <대방등무상대운경(大方等無想大雲經)>의 약칭. 그러나 위경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경에 정광천녀(淨光天女)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일절이 있다. 당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재위 690~705)는 그의 애인, 설회의(薛懷義)로 하여금 승려 법명(法明) 등과 공동으로 이 경에 부회한 <대운경소(大雲經疏)>를 짓게 했다. 그리하여 “태후(측천무후)는 미륵불의 하생이며, 황제에 올라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 경(經)을 주상(奏上)받은 측천무후는 690년 당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성신황제(聖神皇帝)라 칭하고 국호를 주(周)로 고쳐 이른바 무주혁명(武周革命)을 이룩했다. 그리고 <대운경>을 전국에 분배해 여러 주에 대운사(大雲寺)를 짓게 했다. 각 대운사에서는 지방의 고승, 학승을 불러 강의하게 하고, 불교의 흥륭과 주왕조(周王朝)의 정통성을 인정시키려 했으며, 승려들은 <대운경(大雲經)>을 암송하며 제국의 번영과 안전을 위해 기도해야 했다.
*대웅전(大雄殿)---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당우(堂宇)를 말한다.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위대한 영웅, 즉 ‘대웅(大雄)’이라 일컬은 데서 유래했다. 따라서 대웅전 주존불은 석가모니불이며, 대개 가람 중심이 되는 전당이다. 영웅은 전쟁을 통해 불멸의 업적을 남긴 분이라면 대웅은 내면의 성숙과 이웃사랑을 완성한 분을 일컫는 말이다. 대웅전에 있는 불ㆍ보살상을 살펴보자.
① 석가모니 부처님 중심으로 좌우에 가섭(迦葉)존자와 아난(阿難)존자가 시립(侍立)하고 있는 경우, 불국사 대웅전이 그렇다. 가섭에게서 선(禪), 아난에게서 교(敎)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② 석가모니 부처님 중심으로 제화갈라(提和竭羅)보살과 미륵(彌勒)보살이 협시하는 경우, 범어사 대웅전이 그렇다. 이 같은 불상의 형태를 삼세불(三世佛)이라 한다. 제화갈라보살은 정광여래(錠光如來) 또는 연등불(燃燈佛)이라 해서 과거불이며, 미륵보살은 미래불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현재불, 해서 삼세불이라 한다.
③ 석가모니 부처님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계시는 법당, 우리나라의 사찰의 기본형이다. 따라서 많은 사찰에 이 같은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문수보살의 지혜와 보현보살의 행원(실천)이 있어야 부처님의 지위에 오르게 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④ 대웅보전(大雄寶殿)라 할 경우,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 삼신불(三身佛)이 있다. 법신불은 비로자나불, 보신은 노사나불, 화신은 석가모니불이다. 이럴 경우 대개 비로자나불이 중심에 있다.
*대원경지(大圓鏡智)---<대지도론>에 나오는 사지(四智)의 하나. 사지(四智)란 불성 및 진여에서 나타나는 지혜를 네 가지로 설명하는 것으로,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말한다. 이 중 대원경지란 번뇌에 오염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질적으로 변혁해 얻은 청정한 지혜를 일컫는다.
이 지혜는 마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크고 맑은 거울처럼, 아뢰야식에서 오염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로 진여본성이 발현된 상태를 말한다. 경(鏡)은 거울이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어보는 것이니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성찰해 선을 기르고 악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둥근 거울에 모든 그림자가 나타나듯이 뚜렷이 만상을 깨우쳐 알며, 존재의 실상(實相)을 있는 그대로 여실히 보는 지혜이다. 이는 법안(法眼)이 열리는 지혜로서, 곧 보살의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 이르러 대자대비심이 나오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구제할 수 있는 경지이다.
수행을 해서 전식득지(轉識得智)의 단계에 이르면 제8 아뢰야식이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청정하고 완전한 지혜로 변한다. 즉, 수행을 통해 제8아뢰야식에 저장된 갖가지 망념과 망식들을 정화해서 번뇌가 없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얻는 것이 전식득지이고, 이것이 유식학의 목적이다. 그리고 전식득지를 할 때, 아집(我執)의 때로 물든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사라지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전개된다. 그것이 원만하게 성취된 모습으로서의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세계다. 그리고 구경각(究竟覺)을 성취하면 이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하는데, 그 견성은 대원경지를 내용으로 한다. 구경각을 성취한 자리, 즉 자성을 깨친 그 자리를 대원경지(大圓鏡智)라고 한다.---→사지(四智), 오지(五智), 전식득지(轉識得智) 참조.
*대월지국(大月支國)---인도 쿠샨(Kusan/貴霜)왕조를 지칭하며, 중국으로부터 대월지국, 월지국(月支國), 대월저국(大月氐國), 월저국(月氐國) 등으로도 불렸다. 원래 초원의 유목민족이었으며, 기원 전 3세기경 타림분지에 거주지를 두고 동서무역을 독점해 당시에는 흉노를 압박할 만큼 그 세력이 강헸다. 그러나 BC 2세기경 흉노족에 패배해 서쪽으로 쫓겨났다. 흉노족에 밀려난 월지족은 아프가니스탄 북쪽, 아무르강 남쪽 땅의 대부분의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고, 인도 북부와 서부로 진출해, 파키스탄 서부까지 차지하는 광대한 지역에 BC 1세기경 쿠샨제국(대월지국)을 건설하고, 그 중심지는 인도 간다라지방이었다.
AD 2세기 중엽엔 출현한 카니시카왕(Kaniska, 迦貳志加王)은 유명한 호불군주로서 그에 의해 제4차 불전결집이 이루어졌고, 대 ․ 소승이 아울러 꽃 피었으며, 이 무렵 불교가 중국에 전해졌다.
*대위광보살(大威光菩薩)---<화엄경> 제6품 ‘비로자나품’은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이 탄생하시던 날의 모든 순간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그리고 있다.
먼 옛날, 이 세계가 생겨나던 그 시절, 수 없는 시간을 지나간 곳에 ‘보문정광명(普門淨光明)’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의 중심에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승음(勝音)’이라는 최적의 환경을 지닌 국토가 있었고, 청정광명이라 부르는 향수바다에 만발한 청아한 큰 연꽃 속에서 수미산(須彌山)이 솟아나니 ‘화염보장엄산(華焰普莊嚴山)’이다. 그 산에서 부는 바람은 중생들에게 시원하고 상쾌한 마음을 들게 했다.
이곳의 가장 큰 도시 ‘염광명(焰光明)’에는 세련된 성들이 서로 아름다운 꽃으로 정원을 가꾸며 장엄시켰다. 새들도, 꽃들도 모두 평화롭게 장엄돼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이 넘쳐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이 향기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백 유순이나 되는 큰 연꽃이 피어났다. 1유순이 14.4km이니 백유순이라니, 정말 상상하기도 힘든 큰 연꽃이 피었다. 이 엄청 큰 연꽃에서 광명과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온 세계를 향해 퍼져나갔다. 그리고 비로자나부처님의 스승인 ‘일체공덕산수미승운부처님(一切功德山須彌勝雲佛’이 찬란하게 광명을 펼쳐 온 세계를 두루 비추며 화려하게 출현해 설법했다. 모두 10분의 부처님이 출현하니 온 세계가 광명으로 가득했다. 이때 신심 깊은 대위광태자(大威光太子)가 부처되기를 발원하며 수미승운부처님 미간으로부터 나오는 광명을 보기만 했는데 자연히 열 가지의 가르침을 받고 수행하여 대위광태자가 대위광보살이 되고 드디어 깨침을 성취해 비로자나불이 된 것이다. 따라서 대위광보살은 비로자나불의 전신인 것이다.
그런데 <금강정경>에서는 금강광보살(金剛光菩薩)을 여러 경전에서 ‘금강위덕보살(金剛威德菩薩)’, 혹은 ‘대위광보살(大威光菩薩)’이라 하며 밀호는 ‘위덕금강’이라 칭한다고 했다. <금강정경>에서는 이 보살의 출생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때에 세존은 다시 대위광대보살삼매에서 출생한 보배 가지의 금강삼마지에 들어간다. 이것을 일체여래의 광명삼매라 이름 한다. 곧 일체여래심이다. 일체여래심으로부터 나오자마자 곧 저 덕을 갖춘 지금강은 숱한 태양을 이루고, 출현하고 저 금강일륜[태양]의 형상으로부터 일체세계의 극히 미세한 티끌처럼 많은 여래상을 내어서 일체세계에 널리 시여한다. 저 크고 오묘한 광명의 성품은 금강살타삼마지에서 아주 견고한 까닭에 합하여 한 몸이 돼, 대위광대보살의 몸을 출생한다.”
'불교용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ㅇ ― 26>*우루벨라(Uruvela) (2) | 2024.08.25 |
---|---|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ㅊ ― 8>*초기불교의 깨달음과 대승불교의 깨달음의 차이 (1) | 2024.04.07 |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ㅂ - 15> (0) | 2024.03.10 |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ㄱ - 7> (1) | 2024.01.14 |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ㄴ - 4> (1) | 2023.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