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ㅇ ― 26>*우루벨라(Uruvela)

수선님 2024. 8. 25. 12:19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ㅇ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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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벨라(Uruvela)---마가다국의 서울 왕사성 부근에 있는 마음 이름이다. 부처님이 우루벨라 마을 네란자라 강변 보리수 밑에서 정각 이루셨다.

다음은 잡아함 39권 1096경 <승삭경(繩索經)>의 내용이다.

“나는 인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인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이제 그대들은 전도를 떠나라. 모든 사람들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고 따로따로 가라. 사람들을 만나거든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설법을 하라. 나도 우루벨라 병장촌으로 가리라.”

이 말은 부처님의 전도의지를 나타낸 ‘전도선언’이다. 오비구에게 초전법륜을 굴리신 사슴동산(녹야원)에서 우루벨라까지는 약 2백㎞가 된다. 부처님은 부처님대로 홀로 이 길을 걸어서 가시다가 30여 명의 젊은이들을 교화하시고, 우루벨라촌으로 가서 당시 왕사성에서 가장 이름 있는 종교가였던 가섭(Kassapa) 세 형제(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마하가섭은 아니다)를 교화해 제자로 삼게 돼, 그 형제들을 따르던 천여 명의 무리 역시 부처님께 교화돼 제자가 되니 마가다 국왕을 비롯한 왕사성 사람들 모두가 크게 놀랐다. 이리하여 국왕은 물론 많은 왕실 권속들과 신하들이 함께 하게 됐다.

*우루벨라 가섭(優樓頻羅迦葉, 빠알리어 uruvelā-kassapa)---부처님 제자인 세 가섭(三迦葉)의 하나. 세 가섭은 우루빈라 가섭(優樓頻羅迦葉) ․ 나제 가섭(那提迦葉) ․ 가야 가섭(伽耶迦葉) 등 삼형제를 말함인데, 우루벨라 가섭은 삼형제 가운데 맏형이다. 마가다국(摩竭陀國)의 우루벨라 마을에서 불(火)을 섬기던 배화교도였으나 부처님 성도 직후,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500명 제자와 함께 그에게 귀의했다. 후에 두 동생인 나제 가섭과 가야 가섭도 각각 300명과 200명 제자와 함께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우루벨라 설법[상두산(象頭山) 설법]---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초전법륜 후 60명의 아라한을 향해 「전도선언」을 하셨다. 그 후 우루벨라 마을에 가셔서 가섭 3형제와 그들의 제자 1천명을 귀의시켰다.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설법을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우루벨라 설법’ 또는 ‘상두산 설법’ 혹은 ‘산상수훈’이라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일체가 불에 타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일체가 불타고 있는가?

수행승들이여! 눈의 시각이 불타고 있다. 형상도 불타고 있다. 시각의식도 불타고 있다.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ㆍ늙음ㆍ죽음ㆍ우울ㆍ슬픔ㆍ고통ㆍ불쾌ㆍ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

이와 같이 해서 청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정신과 사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그리고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봐서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시각도 싫어해 떠나고 형상도 싫어해 떠나고 시각의식도 싫어해 떠나고 시각접촉도 싫어해 떠나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싫어해 떠난다.”

이와 같이 해서 청각과 소리, 후각과 냄새, 미각과 맛, 촉각과 감촉, 정신과 사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그리고 끝으로 “싫어해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그에게 ‘나는 해탈했다’는 앎이 생겨난다. 그는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 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이 모든 불타는 것과 그 원인에 대해 싫어하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일체에 대해 싫어하는 생각을 가질 때,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꽃이 꺼지고, 그때 근심과 슬픔과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된다.”

*우바새(優婆塞, upasaka)---산스크리트어 우파사카(upasaka)의 음역이다. 한역하면, 거사(居士)ㆍ근사(近事)ㆍ근사남(近事男)ㆍ근선남(近善男)ㆍ신사(信士)ㆍ신남(信男)ㆍ청신사(淸信士)라고도 한다. 본뜻은 ‘가까이 있으면서 섬기는 사람’ ‘받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속세에 사는 신자는 출가한 사람 가까이에 가서 법문을 듣고, 또 출가한 사람의 생활필수품을 보시(布施)하면서 부처님을 섬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여자 재가신도인 우바이와 함께 불교 교단의 4부대중과 칠중(七衆)을 이룬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룬 후,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부처님에게 귀의해 제자가 됐고, 그 직후, 야사(Yasa)는 바라나시의 한 장자(長者)의 아들인데 인생을 비관하고 번민하다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출가했다. 뒤 따라 그의 부모와 아내도 부처님에게 귀의함으로써 이들은 불교교단 최초의 재가(在家) 신자가 됐다. 즉, 재가 남자 신도인 우파사카(Upasaka, 優婆塞), 여자 신도인 우파시카(Upasika, 優婆夷)가 된 것이다.---→칠중(七衆), 사부대중(4部大衆) 참조.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를 담은 불경. 빠알리어 삼장에 있는 <선생경(善生經)>을 대승불교에 맞게 고친 경전이다. ‘선생’이라는 명칭은 이 경전이 ‘선생(善生)’이라는 장자(長者)를 위해 설법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북량에서 담무참(曇無讖)이 426년에 한역했는데, 산스크리트어본이나 티베트어본은 전하지 않는다. 모두 7권으로 구성돼 있다. 대승계(大乘戒)를 소개하고 있어서 중국불교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었다.

다음은 <우바새경>의 일부이다.

“또 두 가지 법이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니, 첫째는 다문이고, 둘째는 사유이다. 또 세 가지 법이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니, 첫째는 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고, 둘째는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며, 셋째는 염심(불·법·승·계율·보시·천상-육념을 꾸준히 마음에 새기는 것)을 갖추는 것이다.

또 네 가지 법이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니, 사위의(四威儀-행ㆍ주ㆍ좌ㆍ와-불자로서의 태도를 잘 지님)를 말하는 것이다.”

다문(多聞), 많이 읽는 것에는 많이 듣는 것도 포함이 된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아금견문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보고 듣고 지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 보살도라고 누누이 강조하신다.

부처님 재세 시 상수제자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는 원래 산자야(Sanjaya)라는 분의 제자였다. 그런데 그 사리불(Sāriputta) 존자가 아싸지(Assaji)라는 부처님 제자의 탁발을 하며 의젓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깊이 감화돼 따라갔다고 한다. 탁발이 끝나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기에 걷는 모습 하나하나가 거룩한가요? 그 분은 무엇을 가르치시는지요?”

대답은 바로 부처님의 연기법이었다. 답을 듣는 순간 사리불 존자는 반견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목건련 존자와 함께 부처님께 가 상수제자가 됐다. 사리불 존자가 평생 동안 아싸지 존자가 있는 쪽으로는 발을 두지 않고 항상 존경의 뜻을 보였단다. 덕분에 부처님을 만난데 대한 깊은 감사의 표현이었다.

*우바이(優婆夷, upasika)---여자 재가신자. 한역하면 청신녀(淸信女)ㆍ근사녀(近事女)ㆍ근선녀(近善女)ㆍ근숙녀(近宿女)ㆍ신녀(信女) 등으로 의역되었다. 남자 재가신도인 우바새와 함께 불교 교단의 4부대중과 칠중(七衆)을 이룬다. 산스크리트어 우파시카(upasika)의 음역이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보배로운 비는 허공에 가득하니, 중생은 그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도다. 신라 의상대사 <법성게>에 나오는 말이다.

보배로운 비, 즉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허공에 가득하나 그 이익을 얻는 것은 사람하기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온 세상에 똑같이 온다. 그러나 큰 그릇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은 비를 받고, 작은 그릇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적은 양의 비를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그릇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많이 받기를 바란다. 작은 그릇을 가지고 서 있으면 그릇이 작아 넘칠 뿐 많이 담지 못한다. 오직 그릇 크기만큼만 받을 수 있다. 비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자기 그릇의 크기[근기(根器)]를 키워야 한다.

법회에 참가한 불자들이 똑같은 내용을 같은 시간에 듣지만 어떤 분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어떤 분은 법당을 나가자마자 잊어버린다. 이러고도 모두 복을 받기를 원하고 부처님의 가피를 바란다.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그릇[根器]을 키워야 한다.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작은 이익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

*우비고뇌(憂悲苦惱)---노사(老死), 우비고뇌(憂悲苦惱)라 해서 12연기의 열두 번 째 마지막 단계로서 근심. 슬픔, 고통, 번민을 말한다.

• 우(憂) : 근심

• 비(悲) : 슬픔, 비애

• 고(苦) : 고통, 괴로움(주로 육체적 고통)

• 뇌(惱) : 고통, 괴로움(주로 정신적 고통), 걱정, 근심, 번민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함은 이루어지고 머물다 무너지고 공(空)이 된다는 말이니. 생겼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인 것이고, 생노병사(生老病死)라 함도 역시 생겨나서 늙어가며 병이 들면 죽게 된다는 말이니, 이 또한 생겼다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있다는 모든 것은 생멸법(生滅法)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허망함을 바라보는 마음에는 근심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슬픔이 생기면,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번뇌하게 되니, 이 모든 것이 곧 고통이라는 말이다.

*우 빤디따(U Pa.n.dita Sayadaw, 1921~)---미얀마 위빠사나 수행의 지도자. 1959년 마하시 사야도와 함께 스리랑카로 가서 3년 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함. 1982년 마하시 사야도께서 입적하신 후에 뒤를 이어 마하시 수행센터의 2대 원장이 됨. 1990년 새로이 건립된 빤디따라마 위빠사나 명상센터의 원장이 됨. 미국, 유럽, 호주뿐만 아니라 한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도 수행을 지도했다.

*우아일체(宇我一體)---우아일체(宇我一體), 범아일여(梵我一如), 신일합일(神人合一), 이것들이 다 같은 맥락의 말들이다.

우아일체란 우주와 이 세상 모든 만물과 내가 하나라는 말이다.

범아일여는 우주의 최고 원리인 범(梵, brahman)과 개인의 본질인 아(我, ātman)는 같다는 우파니샤드(upaniṣad)의 중심 내용이다.

신인합일은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신인합일이 돼야만 영생 해탈과 천국 극락의 참 의미를 안다고 한다. 따라서 수행의 목적이 신일합일이다. 신인합일이 된 경지가 붓다의 경지이자, 그리스도의 경지이며, 소위 깨달음의 경지이다. 깨달음이란 말도 알고 보면 보통의 인간 마음, 즉 몸으로의 체험을 통해 자기 본성에 다다름을 뜻하며 이를 달리 신인합일이라 말한다.

*우안거(雨安居, 빠알리어 Vassa)---우안거란 비구들이 우기에는 유행(遊行)을 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는 전통을 말한다. 대충 양력 6월부터 8월까지이다. 우리나라 하안거(夏安居)에 해당한다.

우기에는 초목이 자라고 곤충과 양서류 같은 작은 동물들이 활발히 활동하므로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어느 종교집단에서나 외출과 여행을 하지 않고 일정한 곳에 머무르는 습관이 고대 인도에 있었다.

이 우안거 동안 비구들은 스승이나 선배로부터 설법을 듣고 지도를 받으며 정진한다. 대승불교권인 북방불교에서는 여름철의 안거 이외에 겨울에 동안거(冬安居)가 행해진다.

안거가 끝날 때는 자자(自恣)라는 의식이 거행되는데, 이때 모든 비구들은 지위나 서열에 관계없이 안거 기간 동안의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고백하고 승원 내의 다른 비구에게 기꺼이 훈계를 받는다.---→안거(安居), 자자(自恣, 산스크리트어 Pravarana) 참조.

*우연인설(偶然因說)---붓다 생존 당시의 바라문들이 인간의 길흉화복 원인을 설명함에 있어 올바른 업보설을 채용하지 않고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 주장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다. ①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②숙작인설(宿作因說) ③결합인설(結合因說) ④계급인설(階級因說) ⑤우연인설(偶然因說)

① 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 - 자재화작인설은 신의설(神意說)이라고도 하는데, 정통 바라문의 주장이다. 이 세계나 인간의 운명도 모두 범천(梵天)이나 자재천(自在天) 등의 최고신이 화작창조(化作創造)했다는 주장이다. 모든 것은 신의 의지에 좌우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인정되지 않으며 세상 일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도 무의미하다고 한다.

② 숙작인설(宿作因說) -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받는 행복과 불행의 운명은 모두 우리가 과거세에서 행한 선(善), 악업(惡業)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며,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운명은 전세(前世)의 업의 결과로서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선한 행위를 하고 노력을 기울여도 그것은 내세의 운명을 규정하는 원인을 될 수 있을지언정 현세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하는 것으로 일종의 숙명론이다.

③ 결합인설(結合因說) - 이 세계 인생의 모든 것은 지수화풍 등의 몇 가지 요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고 그 결합 상태의 좋고 나쁨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결합상태는 우리가 태어난 때에 이미 확정돼 그것이 한평생 일정불변하게 존속하기 때문에 금세의 우리 노력에 의해 운명을 변화시킬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합인설도 일종의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④ 계급인설(階級因說) -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흑(黑), 청(靑), 적(赤), 황(黃), 백(白), 순백(純白)의 여섯 가지 계급으로 구별돼 있어,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 지혜, 환경, 가계 등이 결정된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것도 일종의 숙명론으로 후천적인 인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⑤ 우연인설(偶然因說) - 무인무연(無因無緣)설이라고도 하는데, 이 설에 의하면, 사회, 인생의 운명은 인과업보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며 또 신의 은총이나 징벌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길흉화복은 일정한 원인이나 이유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우연한 기회에 의해 일어나는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다.

*우요삼잡(右繞三匝)---부처님이나 탑 등에 경의를 표할 때, 자신의 오른쪽을 그 대상으로 향하게 하고, 왼 쪽으로(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아 나오는 신앙적인 수행정서, 예법을 말한다. 따라서 우요삼잡은 불가(佛家)의 행도(行道), 곧 불도(佛道) 수행하는 방법에 하나이다.

고대 인도에서 귀인(貴人), 혹은 스승에게 존경의 뜻을 표할 때, 오른 쪽 옆구리를 귀인을 향하게 하고, 그 주위를 왼쪽으로(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았다. 탑돌이 할 때, 혹은 보리수(菩提樹) 나무를 향해 예배할 때도 불도들이 같은 의식으로 돈다고 한다.

<법화경> ‘종지용출품’에 이르기를, 지하(地下) 허공에서 솟아나온 모든 본화보살은 허공에 머물러 계신 묘탑 속의 다보불과 허공 가운데 머무르신 석가세존과 시방세계에서 오신 모든 부처님께 머리 숙여 경배하고, 우요삼잡(右繞三匝), 곧 오른쪽으로 ―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돈 다음에 합장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찬탄했다고 한다.

*우전국(于田國, 于蚊國, 于闐國)---현재의 중국 신강 ‧ 위구르 자치구의 타클라마칸사막 남쪽 끝, 타림분지 서남쪽이고, 곤륜산맥의 북쪽과 접해있는 화전(和田, 호탄/허텐) 지역에 해당하며, 옛 지명은 고탄(Khotan)이었다. 옛 실크로드 서역남도의 중심지 오아시스 도시로서 여기에 우전국(于田國)이 있어 불교가 융성했다고 한다.

당나라시대에는 실크로드 서역남도의 가장 큰 도시였고, 중국인이 가장 귀하게 여긴 연옥(軟玉)의 산지로 유명하다. 근대에 들어 우전현(于闐縣)이라 불렸지만 1959년에 화전현(和田縣)으로 개칭된 사막의 오아시스 지역이다. 4세기 무렵에 바로 이곳에서 <화엄경>이 집대성됐다고 한다.

동진(東晋)시대 지법령(支法領)이란 도인이 고탄(Khotan)에서 범본 <60화엄>을 입수해 가져와서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 Buddhabhadra, 359~429)에게 부탁해 418년 양주(楊洲) 도량사(道場寺)에서 한역했다. 그리고 우전국 출신 역경승 실차난타(實叉難陀, 산스크리트 명 시크샤난다/śikṣānanda, 652~710)는 당나라시대 <80권본 화엄경>을 한역했다.

현장(玄奘) 법사가 인도 유학 후 귀국길에 들렸다고 하는 곳이며, 그 기록에 의하면, 7세기 전반에 우전국에는 사찰이 100여 개, 승려가 5000여 명 정도 있었고, 대승불교가 성행했으며, 국왕이 불법을 존숭했다고 한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우전국 왕족이었다는 말이 있다.---→호탄(Hotan, 和闐, 和田)

*우전왕(優塡王, Udayana)의 불상(佛像) 조성---부처님이 도솔천(兜率天)에 계신 생모이신 마야부인摩耶夫人(Mahāmāyā)에게 법문을 하시기 위해 도솔천에 가 계실 때, 당시 구익국(拘翼國)의 우전왕(優塡王)이 부처님을 그리워해서 국내의 여러 솜씨 좋은 장인들에게 명을 내려 전단향(旃檀香) 나무로써 높이 5자[尺] 되는 등신불 여래상(如來像)을 만들도록 했다. 이것이 불상의 시원이 됐다.

*우주의 실재---우주(혹은 세계)의 실재는 어떻게 비롯되고 구성됐을까 하는 물음에 대해, 동서양의 사상과 종교에서의 대답은 각각 다르다.

동양, 특히 중국의 도가(道家) 사상은 "무(無)가 천지의 시작"이라고 하면서, '유생어무(有生於無)'를 말함으로써, 무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또한 노자(老子)에 의하면, 이 무에서 유가 생기는 현상으로서의 도(道)가 일(一)을 낳고, 일이 다시 이(二)를 낳고 이가 다시 삼(三)을 낳고, 삼이 다시 만물(萬物)을 낳는다고 했다.

그리고 주역(周易)에서는 태극(太極)을 기점으로 말하는데, 그 범위가 무한해 후대 사상가는 이를 무극(無極)이라는 말로 압축해 설명했다. 이 무극의 태극에서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나오고 만물이 확대 전개됐다고 말한다.

반면에 인도의 사상체계에서 우주의 실재는, 인도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우파니샤드>는 '마야((māyā)'의 이론을 통해 세계의 실재를 설명하고자 했다. 마야의 산스크리트어의 의미는 '환영(幻影), 속임수, 외관(外觀)'의 뜻이다. 마야는 힌두교와 불교에서 각각 조금씩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대체로 '환영'의 뜻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힌두교적 관점에서 마야는 마음과 물질의 기초를 이루는 우주적 원리이다. 이른바 비-이원론적 베단타(Vedānta) 철학에서는 환영으로 생각 되는 우주 그 자체다. 이러한 마야는 또 '브라만의 힘(shakti)'이기도 하다. 따라서 영원한 브라만과는 불과 열기와 같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이러한 창조적 힘으로 인해 마야와 브라만은 인격신 이쉬바라(Īshvara)라고도 불리면서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할 뿐만 아니라 우주를 해체시키기도 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불교에서의 마야는 환영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계를 뜻한다. 이 때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 현상계를 실재로 착각한다. 그래서 마야의 법칙(dharma)을 이해하는 것이 '깨달음'이며 열반(nirvāna)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불교에서 현상계의 마야는 반드시 부정 되지는 않는다. 현상계 속에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논리가 있기에, 현상과 실재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에서의 창조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적인 행위이며 결과다. 태초에 일련의 창조 행위를 거친 한 번의 창조 행위로 인해 우주는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며 우주적 종말이 오기까지 창조로 인한 피조물의 법칙은 자연과 더불어 그 생명력이 지속된다.

인도사상의 마야 개념과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을 두고 토착적 인도신학의 개척자인 브라마반다브 우파드야야(Brahmabandhav Upadhyaya, 1861~1907)는 몇 가지 점에서 대화가 가능한 상통한 부분이 있음을 흥미롭게 지적했다. 그는 이미 <우파니샤드>에서 '사트(sad, 절대존재)-치트(chit, 절대의식)-아난다(ānanda, 절대환희)'의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개념을 비교한바 있다. 그는 계속해서 아드바이타 베단타 사상의 핵심 개념들을 상대로 토착적 대화를 위해 그리스도교 사상과 비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 비교의 방법으로서 그는 <우파니샤드>의 본문은 물론 그것에 대한 최고의 해설가 가운데 한 사람인 상카라(Śankara, 788-820)의 이론을 동원해 마야 이론을 비교하며 개진하고 있다.

*우타라(Uttarā, 鬱單越)---석가모니 생존 시 신심이 깊은 여신도로서 자비심을 가지고 자기를 헤치려고 한 사람을 용서해준 인물이다. 우타라 쿠루라고도 하며, 한역해 울단월(鬱單越)이라 한다. 마가다(Magadha)왕국의 수도 라자그리하에서 태어나 부모와 함께 수마나(Sumana)라고 하는 장자의 집에 고용돼 생계를 유지했다. 그녀는 가난하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따랐으며, 특히 사리불(舍利佛)을 정성껏 공양한 공덕으로 갑자기 부자가 됐다.

이를 본 수마나가 자기도 공덕을 입고자 우타라를 며느리로 삼았다. 그리하여 수마나의 며느리가 되기는 했으나 그 이후 부처님을 공양할 수도 없고, 가르침을 들을 수도 없었다. 편지를 써서 보내 이 사실을 안 그녀의 어머니는 많을 돈을 보내면서 그 돈으로 그 도시에서 최고의 창녀를 사서 남편을 받들게 하고, 그 사이에 부처님 가르침을 받으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과 의논을 해서 그 권유를 받아들이고, 곧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초대해 공양을 올리려고 그녀는 기쁨에 차서 즐겁게 일을 했으며, 남편도 즐겁게 아내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자 질투심이 생긴 창녀가 뜨거운 기름을 그녀에게 끼얹으려 했다. 이를 알게 된 우타라는 태연히 말했다.

“당신 덕분에 나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법문을 들을 수 있었으니 당신은 나의 은인이다. 만일 내가 당신을 원망한다면 그 기름이 나에게 해를 입힐 것이요.”라고 했다. 이에 창녀가 끓는 기름을 끼얹었으나 그녀는 아무른 상처를 입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하인들이 창녀를 붙잡아 폭행을 하려고 하자, 그녀는 이를 만류하고, 창녀는 그 후 크게 깨달아 출가했다. 부처님은 분노하지 않음으로써 분노를 이겨냈다고 그녀를 칭찬했다고 한다.

*우파니샤드(Upanishad)---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고대 인도의 철학서로 <바가바드기타(Bhagavad Gītā)>, <베다(Veda)>와 함께 힌두교 3대 경전의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문헌이 성립됨으로써 인도의 고전종교가 확립됐다.

<베다>는 내용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삼히타(Samhita-本集), 브라흐마나(Brahmana-祭義書), 아라냐카(Aranyaka-森林書), 우파니샤드(Upanishad-秘義書)가 대표적인 베다 분류법으로서, 베다는 고대로부터 이러한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다.

그리하여 이들에 의해 인도의 고대문명을 ①베다시대, ②브라흐만시대, ③우파니샤드시대라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힌두경전인 <베다(véda)>를 운문과 산문으로 설명한 철학적 문헌이 우파니샤드이다.

우파니샤드(Upanishad)라는 말은 upa(옆에ㆍ가까이)와 nisad(앉는다)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서, 서로 대좌해 스승이 제자에게 비밀스런 가르침을 전수하는 것을 의미해서 <오의서(奧義書)>라고 한역하기도 한다. 우파니샤드도 넓게는 힌두교 경전 <베다(Veda)>에 속하며, 시기적으로 베다의 마지막 부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베단타(베다의 말미)라 불리기도 하고,

우파니샤드는 단일한 책이 아니라 '우파니샤드'라는 명칭이 붙은 200여 종 이상의 성전에 대한 총칭이다. 우파니샤드의 글들은 한 사람의 작가가 일정한 형식을 갖고 서술한 것이 아니라 BC 1000~BC 600년경에 리시(rishi,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성됐다고 하는 것들이 전해지는 내용들이다.

이 가운데 붓다 이전(BC 6세기 이전)에 쓰인 우파니샤드만을 따로 초기 정통 우파니샤드 혹은 베다 전통의 우파니샤드로 분류, 그 권위를 인정한다. 고행ㆍ업ㆍ윤회ㆍ해탈 등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우파니샤드는 석가모니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며, 인도인들의 가정마다 가훈에도 즐겨 인용되는 경전이기도 하다.

전체를 꿰뚫는 근본사상은 객관 세계로서의 대우주의 본체인 브라만(Brahman)과 개인의 내적인 본질인 아트만(Atman)은 하나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우파니샤드(Upanishads, 奧義書)는 베다 문헌 중에 가장 나중에 조성돼 베다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베단타(Vedānta, Veda-end)라고도 한다.

*우파라반나(Uppalavanna; 蓮華色)---신통력이 뛰어난 부처님 제자 비구니이다. 붓다 생존 시 케마(Khemā, 差摩)와 더불어 으뜸 제자 비구니 두 명 가운데 한 분이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이라 불렸다고 한다. ‘웁빨라’는 청련화(靑蓮華)를, ‘완나’는 빛깔을 가리키는 말로서, 어릴 때부터 피부색이 아름다운 연꽃처럼 푸른빛 윤기가 났으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마가다왕국의 수도 라자그리하(왕사성)에서 장자의 딸로 태어났다. 결혼했으나 남편이 어머니와 통정한 것을 알고 딸과 함께 집을 나와 재혼했는데, 남편이 다시 자기의 딸을 첩으로 삼자,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했다. 출가해서 슈라바스티의 남쪽 안다바나 숲에서 수행을 하고 있던 중, 진작부터 그녀를 사랑하던 사촌 오빠가 숲으로 찾아와 그녀를 겁탈했다. 오빠의 완력에 눌려 꼼짝없이 겁탈을 당한 그녀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다른 수행자들에게 고백했다.

이 일 때문에 수행자들 사이에서 번뇌를 제거한 사람도 정욕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붓다는 번뇌를 제거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애욕에 빠지는 일도 없고 정욕에 만족하는 일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녀는 이삼중의 희생을 겪어야 하는 전형적인 성법죄 피해자였다. 또 붓다는 이 일이 있은 후 비구니가 숲속에 머무는 것을 금하고,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에게 청해 왕성 안의 원림(圓林)을 개방해 비구니들이 그곳에 머물며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녀는 비구니 교단과 재가 신자들로부터도 큰 신망을 얻었다.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끝없이 애욕의 희생물이 되었던 웁빨라완나, 그녀는 순탄치 못한 어두운 인생을 살며 처절하게 고통 받은 여자였지만, 붓다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삶은 새로운 빛깔로 되살아났다. 기구한 삶을 살았기에 오히려 인간 고통의 실체를 여실하게 직시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은 웁빨라완나, 그녀에게 있어 삶은 곧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케마(Khemā, 差摩) 참조.

*우팔리(Upali, 優婆離)---붓다 10대 제자 중 한 사람. 불교교단의 규율 및 규칙에 정통했으며, 또 계를 지키는데 있어서 매우 엄격했던 우팔리는 계율에 통달해 ‘지계제일(持戒第一)’로 불렸다. 붓다 입멸 직후 제1차 불전결집에서 ‘계율’ 부분은 대부분 우팔리 존자에 의해 송출(誦出) 됐다. 우팔리는 석가족 궁정 이발사로 최하층인 수드라(sudra)계급 출신의 아라한이었다.

천민출신으로 가난해 교육도 받은바 없는 그가 계율을 만들어 실천하고 중생들의 희로애락을 눈여겨 살핀 총명한 제자였다고 한다. 비구(남승)에게는 150계, 비구니(여승)에게는 348계(戒)의 계율을 가르쳤다고 하니 학교 공부가 다가 아닌 듯도 싶다. 그 많은 계를 가르친 것은 단순히 그들 수행자들만의 계율이 아니라 이 계율을 널리 전파해 부처님 법이 펴지는데 도움을 주고, 나아가서 모든 중생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에 처한 이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생활 지침서이기도 했다.

*우화서(雨華瑞)---‘꽃비가 상스럽게 내리다’는 말이다. 붓다께서 <법화경>을 설하려고 삼매에 드셨는데, 하늘에서 꽃이 비 오듯이 쏟아져 상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그래서 법당에는 꽃 장식이 많다.

*운강석굴(雲岡石窟)---중국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 서쪽 15㎞ 지역인 운강진(雲岡鎭)에 있는 석굴사원. 무주천(武州川) 남서쪽 벼랑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전체 길이 약 1km이며, 대굴 21개 중굴 20개와 무수한 소굴, 불감(佛龕)이 조성돼 있다. 석질은 밝은 색 사암(砂岩)으로 거의 전부가 북위(北魏) 시대에 조성된 것이며, 벽에 직접 조각해 색을 칠했다.

※중국 3대 석굴---운강석굴, 둔황의 막고굴, 낙양의 용문석굴

*운력(運力)---→울력 참조.

*운명의 부정---인간은 자기선택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또 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인생의 양 끝은 다 자유선택과 무관하게 처리된다. 이래서 사람들은 운명을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운명이 나의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운명의 장난으로 살지 않고, 삶을 자유스럽게 영위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운명을 부정하는 극단적 자유행동론자는 동서고금의 철학사에서 중국 전국시대의 묵자(墨子)와 20세기 프랑스의 실존철학자 샤르트르(Chartres)가 대표적이다. 묵자는 철저한 비명론(非命論)을 펼쳤다. 비명은 운명이나 숙명을 부정한다는 의미로서, 운명은 실천적인 노동 분업의 가치를 말살시키고, 팔다리의 힘을 다하고, 생각하는 지혜를 다하는데,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인간 근육의 힘과 생산의지와 그 의식의 생각을 아주 강조했으며, 의식과 의지의 사상가로서 운명을 인간의 삶에서 온전히 배제시켰다. 묵자는 사르트르처럼 철저한 실천의식의 사상가였다.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흔히 운명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행동에 다름 아니라고 그의 저서 <시인 보들레르론(Baudelaire論)>에서 밝혔다. 이런 초기의 자유행동론은 후기의 사회역사철학에서도 적용된다. 그의 행동철학은 철저히 인간주의적인데, 그 말은 자연적 필연의 요소를 완전히 지우려는 사유와 통한다. 그래서 초기의 실존철학에서 그는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을 강조하고, 후기에는 역사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계급투쟁의 의식철학으로서 마르크시즘을 강조했다.

그리고 또 한분 순일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자.

“여기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한 남자는 처와 자식이 있으며 다른 한 남자도 처와 자식이 있다. 그 둘은 전부 가난하다. 즉 현실에서 갖추고 있는 조건이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 둘은 현실에서는 운명이 같고, 둘 다 똑 같이 노동을 한다고 하자.

헌데 전자는 어쩔 수 없이 의무감으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한다. 하고 싶지 않은데 왜 내가 이들 때문에 이렇게 힘든 고생을 해야 하는가 여기며 죽지 못해서 하고 있다. 후자는 처와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자기 한 몸뚱어리 정도는 내다 버려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기에 그는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즐겁게 힘든 일을 한다.

그런데 둘의 주어진 운명은 같다. 허나 둘은 다르다. 하나는 지옥에 살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천국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운명이 같다 할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은 운명을 외부적으로 보이는 현상에 두고 있다. 허나 진실한 운명이란 외부적으로 주어지고 벌어지는 것에 있지 않다.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란 주어지고 벌어지는 것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운명은 현상에 있지 않다. 마음 한자리 바뀌면 바뀐다. 이 말은 운명이란 본래 없다는 뜻이다. 허나 사람들이 운명을 이 삶에서 주어지는 어떠한 조건으로 아는 한, 즉 현상에 집착하는 한 그들에겐 그 운명이 늘 있다. 허나 이러한 것은 가짜 운명이다. 그들이 내면에서 즉, 참나에 앉는다면 이러한 운명이란 허깨비임을 알 것이다.- 순일스님 ---→‘불교와 운명’ 참조.

*운명(運命)과 숙명(宿命)---운명(運命)의 운(運)은 정지하거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인다는 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속성이 운명이다. 따라서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숙명(宿命)은 잘 숙(宿)자에 목숨 명(命)자를 쓴다. 해석하자면 잠든 목숨이니 움직이지도 않는 목숨을 의미한다. 따라서 숙명(宿命)은 어떠한 의지나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이미 결정돼있는 삶을 말한다.

숙명이란 아마존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한국에서 부잣집의 외아들로 태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 좋지 않은 농촌의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숙명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어쩔 수도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 반면에 운명(運命)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라는 환경이 있고, 부모님을 시작으로 일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도 접하게 되는 인간환경도 있다. 아무렇게나 내버려지기도 하고, 좋은 친구와 사귀기도 하며, 훌륭하고 스승을 만나 보람된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세상을 비관하며 사는 일생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아의 형성에 따라 시시각각 자기가 쌓은 업(業)에 따라 나의 운명도 달라지는 것이다.

*운문광록(雲門廣錄)---중국 운문종(雲門宗)의 개조로서, 중국 당(唐) 말~오대(五代)시대에 활약한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의 어록으로, 본명은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 3권. 문언의 언행 및 제자들과의 문답을 문인이었던 수견(守堅)이 집록하고, 종연(宗演)이 감수를 해 송(宋)대인 1076년에 출간했다.

*운문끽구자(雲門喫狗子)---<선문염송(禪門拈頌)>에 나오는 말이다. 석가여래께서 탄생하자마자「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여러 조사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것이 많으나 운문(雲門文偃, 864~949)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당시에 있었다면 몽둥이로 때려잡아서 주린 개에게나 주어 뜯어먹게 했겠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 운문 선사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했구나, 과연 부처님의 제자답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선문염송(禪門拈頌)---고려시대 고승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선사가 1226년(고종 13년)에 편찬 간행한 선문공안집(禪門公案集)이다.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중국 당 말에서 오대를 거쳐 북송 초까지 활약한 선승. 광진 대사(匡眞大師)라고도 한다. 법명은 문언(文偃)이고, 운문종(雲門宗) 창시자이다.

그는 뛰어난 화두로 유명한데, 특히 ‘간시궐(乾屍厥) - 마른 똥 막대기’라는 화두가 유명하다. 이처럼 운문 선사 어록의 특색은 상대방 질문의 포인트를 잡은 간단명료한 어구에 있다. 운문 선사는 어록을 남기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 스님이어서 그의 설법은 흘러가는 구름과 같이 막힘이 없었지만 누가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면 반드시 야단을 쳤다. 헌데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그 옷에 몰래 받아 적었기에 오늘에 전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서는 따로 없고 그의 말을 기록한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이 전한다.---→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참조.

*운문호병(雲門餬餠-운문의 호떡)---어떤 스님이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에게 물었다. “부처의 말도 조사의 말도 하도 들어서 싫은데, 부처와 조사의 말씀을 초월하는 말은 무엇입니까[如何是超佛越祖之談]? 그들을 뛰어넘는 말 한 마디를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운문 선사가 답하기를,

“호떡!”이라 했다.

자기 자신은 너덜너덜 누더기 걸친 남루한 거지꼴인 줄도 모르고 분별심을 일으켜 감히 부처와 조사를 능가하는 말을 해 달라는 그 호언장담하는 건방진 모습, 그 얄팍한 언어에 분별심을 가진 승려, 그 입을 한방에 틀어막아버린 ‘호떡!’ 설법, 이 공안은 지극히 간단한 선문답이지만, 이에 대해 원오 극근(圜悟克勤, 1063~1135) 선사가 평하기를,

“혀가 입천장에 딱 붙었다”라고 착어(着語)했다.

한 입 가득히 호떡을 물고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또 혀가 입천장에 붙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기막힌 공안에 기막힌 평이다. 부처나 조사의 경지를 초월하는 진정한 법문이 말로써 가능할 리도 없다. 언어로도 말할 수 없는(言詮不及)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경지이고, 바로 깨달음의 세계이며, 부처나 조사라는 망념을 초월한 경지이다. 그런데 함부로 언설을 늘어놓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진 옷 틈처럼 벌어진 분별심, 그 구멍[입]에다 호떡으로 틀어막았지만 호떡이 달라붙어있지 않으니 소용이 없다. 이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천하 중들은 떡 붙이기에 정신없구나. 이 말은, 분별심을 호떡으로 틀어막았으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현상에 집착해서 불법의 근본을 체득하지 못한 채 천하의 중들은 미망[착각]만 거듭하고 있구나, 이 말이다. 그래서 원오 선사는 “지금도 천하의 많은 수행자들이 착각하고 있다. 운문이 스님들을 위해 호떡으로 정법의 안목을 바꾼 방편법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헌데 부처와 조사에 분별심을 일으켜 구분 못하는 건방진 태도도 문제지만 부처와 조사에 구애 받는 것 역시 수행자로는 마땅치 않는 모습이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에게 얽매임이 있어서는 결코 그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어떤 전통이나 권위에도 얽매이지 말고,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어야만 읽은 경문이나 들은 법문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야만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살불살조(殺佛殺祖)] 했거늘, 선문답에 ‘호떡’이라 답한 것은 부처나 조사의 이상적인 이미지나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질타하며,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아 자유인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수행자의 길이라는 말이다.

*운수(雲水) 생활---선승들이 물이나 구름이 흘러가듯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정처 없이 행각하는 것, 그러나 아무 뜻 없이 이리저리 방랑하는 생활이 아니라 선지식을 찾거나, 만행(萬行)을 통한 구도의 행각을 뜻한다.

*운수납자(雲水衲子)---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를 묻기 위해 돌아다니는 승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납자(衲子)는 납의(衲衣)를 입은 사람, 즉 승려를 일컫는다.

※납의(衲衣)---세속 사람들이 버린 옷을 기운 옷, 혹은 못 쓰는 헝겊이나 버려진 헝겊으로 누더기처럼 기워서 만들어진 옷이라는 뜻이다.

*운자재(雲自在)---운자래란 구름이 공중에 가득 퍼져 모든 것을 다 덮는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덕(德)을 형용한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마치 구름과 같이 일체를 다 덮어서 모든 것을 부처님의 영향권에 두는 힘, 곧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구원하는 힘이 자재하시다는 뜻이다.

*운판(雲板)---사찰에서 매달고 조석예불 때 치는 청동판에 구름무늬를 아로새긴 것, 허공에 날아다니는 중생[새]들을 제도하고, 허공세계에 사는 중생의 고통을 쉬게 하는 법구이다. 옛날 선방에서는 밥 때를 알리는 신호로도 사용했다.

*운허(耘虛, 1892~1980)---189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사서와 같은 한문 고전을 배우셨고, 1911년 안창호 선생님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를 다녔다. 본명은 이학수(李學洙)로 그 유명한 이광수(李光洙)의 사촌 동생이었다. 운허 스님은 독립운동에 헌신하셨고, 해방 후엔 남양주 봉선사(奉先寺)를 중창해 후학을 향성하셨다.

운허 스님은 경학에 통달하셨으며 평생을 역경사업에 힘 쏟으시고 스님께서는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번역하셨고, 한국 독립운동사를 주도적으로 집필하신 것으로 밝혀졌다. 1964년에는 동국역경원을 설립하셔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주도하셨다. 이때에 성철 스님과의 인연이 시작돼 서로 믿음을 바탕으로 번역 일을 소통하셨다. 성철 스님도 한글대장경 역경에 심혈을 기울이는 운허 스님을 대단히 존경했다. 운허 스님도 성철 스님보다 연세가 많았지만 번역하다 의문이 생기거나 잘 번역되지 않으면, 성철 스님과 더러 의논하곤 했다. 역경에 있어서 직역의 명수는 탄허 스님, 의역의 명수는 운허 스님이란 말이 전한다.

*울력---스님들이 여럿이 어울려 힘을 합쳐 일한다는 순수 우리말이다.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모든 것이 그렇듯이 울력은 노동조차도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큰 뜻이 있다. 백장(百丈懷海, 720~814) 선사의 청규(百丈淸規)에 “사문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울력은 사찰에서 중요한 것이라 환자가 아니면 모두 동참하는 것을 의무로 한다. 따라서 스님들에게는 예불, 참선과 함께 수행의 한 방편으로 갖는다.---→백장청규(百丈淸規) 참조.

*울단월(鬱單越)---―수미산 주위 바다에 4대주가 떠 있으며, 수미산의 북방 큰 바다 가운데에는 4대주의 하나인 북구로주(北俱盧洲)란 곳이 있다. 이곳의 별칭이 울단월(鬱單越)이다. 이곳 인간 수명은 1000세이고 중간에 죽지 않으며, 질병도 없고, 쾌락이 끊임이 없어 4주 중에서 재물이 제일 수승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대륙 사람들은 불교에 귀의해 수행할 수 있으나 이곳은 너무 쾌락하기 때문에 불법에 관심이 없고, 따라서 오직 이곳에는 부처님이 출세하지 않으며, 불교 수행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 태어남을 팔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삼재팔난(三災八難) 참조.

*웃다가 라마풋다(Uddaka Ramaputta)---부처님이 출가한 후 처음 찾아간 스승이 바이살리의 바라문 스승 알라라 칼라마였다. 그는 그 시대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바라문의 요가 수행자로서 대선지식(大善知識)이었다.

부처님은 처음 알라라 칼라마에게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익힌 후 더 나은 수행을 위해 당시 마가국에 있던 바라문의 요가 스승 웃다가 라마풋다를 찾아가서 귀의했다. 그는 알라라 칼라마와 같이 수정주의자였다. 수정주의(修定主義)란 선정(禪定) 수행을 통해 범아일여(梵我一如) 깨달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에 유행했던 종교적 수행으로 수정주의(修定主義)와 고행주의(苦行主義)가 있었다.

수정주의는 괴로움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욕망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 어떠한 의식(意識)이나 사념(思念)도 생기지 않도록 하는 선정(禪定)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웃다가 라마풋다에게서 무색계 선정의 최고 수준인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익혔다. 그러나 곧 그의 경지를 넘어서고 이들의 방법으로는 생노병사와 윤회를 해결할 수 있는 최상의 깨달음을 이룰 수 없을 알고, 고행을 하러 그의 곁을 떠났다. 이미 싯다르타태자께서는 보살십지(菩薩十地) 가운데 마지막 법운지(法雲地) 경계에 도달해 계셨으므로, 두 학자와 결별하고 이번에는 고행을 하기 위해 니련선하 강가로 가셨다.---→‘부처님의 스승’ 참조.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ㅇ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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