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육조 혜능

수선님 2024. 5. 5. 13:31

혜능은 일자무식이다. 평생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어느 날 5조 홍인이 1천 명이 넘는 오조사(당시 동산사) 학인들에게 게송을 하나씩 지어보라 했다. 그걸 보고 ‘가사’(袈裟, 승려가 어깨에 걸친 법의)를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제자 중 가장 뛰어났던 신수상좌(606~706)가 게송을 지어 회랑 벽에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요 / 마음은 밝은 거울 같으니 /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 티끌 먼지 안 묻게 하리”(『단경』 32p) 그런데 이틀 뒤, 혜능이 그 게송을 보았다. 그러나 혜능은 글자를 몰랐기 때문에 게송을 직접 읽을 수가 없어 옆에 있던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옆에서 읽어 주는 게송을 듣고 혜능은 곧바로 뜻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즉시 자신의 게송을 한 수 읊고자 했다. 글자를 전혀 모르는 혜능은 역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읊은 게송을 글자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바로 핀잔이 들린다. “자네가 게송을 읊겠다고? 참으로 희한한 일이구나” 하지만 이런 핀잔에도 혜능은 여전히 어눌하지만 확고한 어투로, “미천한 사람에게도 고귀한 지혜가 있을 수 있고, 귀한 사람도 전혀 지혜를 갖지 못할 수 있어요”라면서 “사람을 경시하면 무량의 죄과를 면치 못 한다오”라고 응수한다. 지혜는 글을 아느냐 모르느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글의 상(相)을 넘어서, 글이 지시하는 무상성(無相性)을 깨달아야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러준 게송이 다음 두 편이다.

“보리수도 본래 없으며/밝은 거울 또한 없다/불성이 항상 청정하거늘/어디에 티끌 먼지 있을까”

“마음은 보리수요/몸은 밝은 거울/맑은 거울이 본래 청정하거늘/어디가 티끌 먼지 물들까” (『단경』, 32p)

혜능의 게송은 신수의 게송과는 확연히 다르다. 신수는 깨달음을 점진적인 노력의 결과, 즉 점수(漸修, 단계적으로 깨달음)로 보았지만, 혜능은 깨달음에 들어서는 길이 점진적인 절차가 아님을 보여 준다. 먼지가 애초부터 있지 않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그 먼지가 끼게 되는 거울조차 있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안다면 닦을 먼지가 또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혜능은 이 게송을 신수의 게송 옆에 붙여 두고,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홍인화상은 회랑에 내려와 혜능의 게송을 보고 내심 깨우침이 있는 게송이라고 반긴다. 하지만 자신의 칭찬이 혜능을 해치게 할까 염려하였다. 하여 게송을 떼어내 발로 짓밟아 찢어버리면서 아직 견성에 이르지 못한 게송이라고 거짓 폄하한다. 혜능을 위해서 ‘미견성’(未見性, 깨닫지 못함)의 가면을 씌운 것이다. 그러나 홍인은 그 순간 마음속으로 가사와 법을 혜능에게 전해 제6대 조위를 잇도록 하려는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홍인은 비밀리에 방앗간을 찾아갔다. “쌀을 다 찧었느냐?” “방아는 다 찧었습니다만, 아직 쌀 속에 섞여 있는 뉘를 고르지 못했습니다.” 말인즉슨 견성은 했는데, 아직 스님의 검증을 받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홍인은 뒤돌아서며 방아를 세 번 탁탁 쳤다. 오늘 밤 삼경에 방장실로 오라는 말이다.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은밀한 작전! 혜능이 삼경에 방장실에 찾아가자, 홍인은 가사로 문을 가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고는 『금강경』을 가르쳐준다. 아마 역사상 가장 밀도 있고, 가장 긴장되며, 가장 아름다운 수업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수업에 보답하듯 혜능은 한 번 듣고 즉시 깨쳤다. 홍인은 바로 전승의 증표인 가사를 혜능에게 전해준다. 바로 선종의 제6대 조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홍인과 ‘불성무남북’으로 불꽃 튀기는 선문답을 하고 방아를 찧은 지 8개월이었다. 심지어 그는 삭발 수계식도 하지 않은 행자에 불과했다. 정식 스님도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파격적인 전승이다. 그만큼 홍인이나 혜능은 통념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혜능에게는 고난의 은둔 생활이 시작된다. 홍인이 당부한다. “만약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사람들이 그대를 해칠 수 있으니, 어서 빨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네. 부지런히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법을 펴려 하지 말게.”(『단경』, 39p) 이 말을 들은 혜능은 즉시 길을 떠났다. 그러나 5조의 법통과 가사가 방앗간에서 잡역 하던 행자 따위에게 전해지자, 수백 명의 학인들은 혜능을 추격하여 가사와 발우를 빼앗아오기로 결정한다. 홍인의 염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대추격이 시작되었다. 이 추격 속에 일어난 멋진 장면 하나 더. 추격대의 선봉은 혜명. 혜명은 한 대 이후의 명문가 집안이다. 어려서 불교에 입문하여 23세 때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5조 문하에 있던 중 의발(衣鉢, 스님이 쓰던 가사와 바리때)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뒤쫓아 왔다. 혜명의 추격이 코앞에 오자, 혜능은 의발을 길가 바위 위에다 놓고 숲 속으로 숨었다. 혜명이 그 의발을 거두려 하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제가 일부러 멀리까지 쫒아온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해서이지, 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단경』, 40p)라고 외쳤다. 그러자 숲 속에서 나와 혜명과 대면한 혜능. 그가 말한다. “선도 악도 생각지 마라. 그럴 때 어떠한 것이 그대의 ‘진정한 모습[本來面目]’인가?” 그리고 또 말했다. “내게는 비밀이 없다. 모든 비밀은 바로 너에게 있다!” 그 순간 혜명은 크게 깨달았다.

사실 이 말은 오조사 남쪽 회랑에 써 놓은 혜능 자신의 게송을 풀어 말한 것과도 같았다. 본래면목(본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청정한 불성이다. 그런데 청청하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사실 보리수에 비유될만한 몸도 원래 없고 밝은 거울에 비유될 마음도 원래 없다. 몸도 없고 마음도 없기에 몸과 마음을 닦아 청정하게 한다는 뜻 또한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청정하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청정하다는 뜻조차 품지 않아야 한다. 즉 청정함은 청정함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면목’은 청정하기도 하고 청정하지 않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오로지 인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인연조차 끊임없이 변하므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을 일컬어 ‘청정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무상한 것이다. 그 순간 혜명은 뺏으려는 가사도, 전승도 무상하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음의 비밀은 오로지 내 안의 불성에 있음을 깨닫는다. 혜명은 발길을 돌려 따라오던 추격 대열을 오조사로 되돌렸다.

풍번문답 : 오직 마음이 움직인다

 

혜능은 두 달여 만에 영남(조계)에 도착했다. 그러나 법석을 열고 선법을 펴기까지에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 혜능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냥꾼들과 어울려 살면서 3년을 보낸다. 살생이 금지된 스님과 살생으로 먹고 사는 사냥꾼. 상과 무상이 서로 의지하듯, 살생과 불살생이 묘하게 의지해 있었다. 동료들이 산짐승몰이를 할 때 그에게 그물을 지키라고 하면 그중에 걸려든 동물을 놓아주곤 했다. 사냥꾼과 같이 생활한 기간이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혜능은 불현듯 이러다 늙어버리면 불법을 전파할 시간이 다 달아나겠다는 생각에 산을 내려왔다.

그때 어느 절 앞 당간지주에 걸린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본 두 스님이 쟁론을 벌인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 절의 주석스님인 인종스님도 지켜보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혜능도 끼어들었다.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 이야기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기억된 이미지가 인식 대상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저것은 기억이 만들어낸 ‘생각의 생각’, ‘가상의 가상’이다. 깃발이 나부끼는 저 현상도 ‘기억’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 인식조차 과거의 인식이 반복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음 밖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면, 온통 과거의 인식 속을 헤매는 것이 될 뿐이다. 그래서 혜능은 혜명에게 “모든 비밀은 너에게 있다”고 외쳤던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바람’도 ‘깃발’도, 심지어 ‘움직임’도 과거의 반복으로 인식된 대상이다. 그렇다고 마음이 그대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조차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그것조차 인연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의 무상성이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이 바퀴가 되어 다시 인연을 무상하게 만들어 간다. 무상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 과거의 인식패턴도 동시에 작동하며 마음을 만들어 낸다. 그때 가상으로 솟아나는 것이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는 상(相)이다. 상의 상, 상의 상의 상… 놀랍게도 상은 무상과 함께 끊이지 않고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상(相)이 없으면 무상(無相)조차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무상한 인연은 마음이라는 형상이 없으면 굴러가지 못한다. 또 인연이 굴러가야, 그 인연 따라 마음이 구성된다. 이처럼 인연과 마음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무상은 상이 있기 때문에 무상이고, 상은 무상한 것으로부터 생성되어 상이다. 어쩌면 한 쪽이 없으면 둘 다 없는 것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면 모든 것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 맞물려 있음’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무상한 인연에 의해 마음이 움직일 뿐, 마음이 만들어낸 상(相=이미지)인 바람과 깃발과 움직임은 허상임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그 절에서 『열반경』을 강설하고 있던 인종스님은 혜능이 고수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일찍이 선종의 법통(의발)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은 바 있었다. 인종의 질문에 혜능은 의발을 보여주고 자신이 6조임을 밝혔다. 혜능은 여전히 행자의 신분이었다. 비로소 혜능은 머리를 깎고 비구계를 받게 하는 삭발 수계식을 거행하였다. 드디어 혜능이 정식 출가를 하게 된 것이다. 집을 떠난 지 3년 8개월, 5조 홍인으로부터 의발을 받은 지 3년, 나이는 39세. 하지만 여전히 그는 글을 읽지 못했고, 세상은 여전히 바람과 깃발만 보았다.

 

 

 

 

 

 

 

육조 혜능

혜능은 일자무식이다. 평생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어느 날 5조 홍인이 1천 명이 넘는 오조사(당시 동산사) 학인들에게 게송을 하나씩 지어보라 했다. 그걸 보고 ‘가사’(袈裟, 승려가 어깨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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