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음식에 관한 불교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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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우공양의 유래와 전승
인간은 음식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일 정도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밥이 주식인 우리에게 ‘밥’은 ‘끼니’와 동의어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물질이기에, 밥은 그것이 지닌 의미에 비추어 가장 신성한 동시에 가장 무심한 대상이다. 따라서 ‘밥을 먹는 일’에 대한 의미를 새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한 끼를 때우거나, 사교와 식탐이 풍성한 식탁 위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소비한다. 현대인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도 ‘나의 한 끼가 좀 더 풍요롭기를 바라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인간이 지향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식사’와 반대편에 놓인 ‘불편한 식사’가 있다. 그것은 많은 인원이 둘러앉아 대화도 소리도 없이, 일정한 절차와 규칙에 따라 밥을 먹는 ‘발우공양(鉢盂供養)’이다. 발우공양은 불교에서 행하는 출가수행자의 식사법으로 오랜 역사에 걸쳐 전승되어 왔다. 밥 먹는 일을 의식으로 정립해 놓은 것이기에, 하루 중 가장 이완된 현대인의 식사와 대조적이다. 일상의 가장 풀어지기 쉬운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 수행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새기며 출가의 목적을 일깨우는 것이다. 아울러 같은 뜻으로 대중생활을 하는 수행자들이 함께 게송을 외면서 식사에 임하여, 발우공양은 출가의 목적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공양이라 보고 있다. 이처럼 출가수행자의 일상식은 발우공양의 정신과 역사 속에서 이어져 왔다.
발우공양의 법식은 대승불교권의 선농일치(禪農一致) 사상 속에서 정립되었다. 탁발에 의존하는 남방불교와 달리, 자연환경과 문화풍토에 따른 수행 환경의 변화는 중국불교에서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불교로 전환을 가져온 것이다.
당나라의 백장회해(百丈懷海, ?~814) 선사는 율종 사원에서 독립하여 최초의 선종사원을 창건하고 청규를 제정하였다. 그는 지배층에 의존했던 당시 중국불교의 보편적 경향과 달리, 출가자들이 직접 경작함으로써 총림의 생활경제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가 처음 제정한 《백장청규(百丈淸規)》는 전하지 않고, 이를 요약한 양억(楊億)의 《선문규식(禪門規式)》에서 내용을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상하 대중이 평등하게 노동하는 보청법(普請法), 아침 · 점심에 각기 죽과 밥을 먹는 재죽이시(齋粥二時), 밥과 반찬을 만드는 반두(飯頭) · 채두(菜頭) 등 열 가지 소임을 둔 것은 후원문화의 핵심을 이룬다. 이처럼 출가자가 직접 경작하고 후원 소임을 맡은 것은 탁발 걸식으로 수행을 삼은 초기불교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반면 정오 이전에 재죽을 마침으로써 율장의 오후불식을 철저히 따랐다. 백장회해가 ‘대 · 소승의 계율에 국한하지도 그와 다르지도 않으며, 이를 절충해 올바른 규범으로 수행에 힘쓰도록 한 것’임을 밝혔듯이, 율장과 대승불교의 창의적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백장청규》는 제정 후 널리 실천되었지만, 북송에 이르면 많은 변화가 더해져 본래의 모습을 상당 부분 상실해갔다. 이에 1103년에 자각종색(慈覺宗賾)이 백장회해의 뜻을 되살리고자 《중첨족본선원청규(重添足本禪苑淸規)》(이하 ‘선원청규’)를 제정하게 되었다. 이후 《선원청규》는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선림(禪林)에서 생겨난 수많은 청규의 근원을 이루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오늘날 동아시아 발우공양의 전범이 되는 법식도 《선원청규》 〈부죽반(赴粥飯)〉에 상세히 실려 있다. 그런데 백장회해의 청규를 토대로 한 선종의 공양 의식은 그보다 200년 정도 앞선 7세기에 도선(道宣, 596~667) 율사가 만든 《교계신학비구행호율의(敎誡新學比丘行護律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양 전후에 게송을 외우는 것은 물론 오관게 · 출생식 등 발우공양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어, 선종의 공양 법식이 7세기 율종에서 이미 그 기반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수행에 합당한 출가수행자의 공양 규범은 이전부터 있었으나, 본격적인 선종의 노동관과 결합하여 정립된 의식으로 보면서 그 기원을 백장회해에 두는 경향이 많다.
선종의 청규는 중국과 기후 · 문화풍토가 유사한 한국 · 일본 등 대승문화권의 사원 생활에 적합하였다. 열대기후에다 불교 이전부터 수행자들의 탁발이 보편화된 인도와 달리, 동북아시아는 날씨가 춥고 탁발 문화가 거의 없어 사중에 곡식을 저장해두고 부엌을 갖추는 것이 수행 전반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대중생활을 통해 공양을 해결하면서 음식의 종류와 법식에 더욱 엄격해졌고, 발우공양의 전통 또한 이에 따른 결과물이라 하겠다.
한국에 《선원청규》가 수용된 것은 당나라 유학 승려들에 의해 선종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9세기 당나라에서 공부하던 신라 말의 승려들이 선종사원에서 깊이 체득한 것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선언에 담긴 노동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한국에 선종을 유입한 도의(道義, 생몰연대 미상) 국사는 당나라에 머물 때 백장회해로부터 오랫동안 사사하였다. 이에 그의 제자들이 세운 가지산문(迦智山門)을 비롯해, 귀국한 승려들이 전국 각지에 구산선문을 개창하고 선종의 노동관을 직접 실천하면서 청규를 정착시켜 나갔다. 고려 때는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이 한국불교 최초의 청규로 일컬어지는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찬술하였다. 이는 수행자의 생활 규범을 정립한 것으로, 공양이 수행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후원문화의 흐름 속에 15세기 중엽에는 사찰에서 행해온 공양 의식을 기록한 본격적인 자료로 편찬자 미상의 《승가일용시묵언작법(僧家日用時黙言作法)》이 등장했다. 중국의 체계를 기반으로 하되, 한국불교에 적합한 사상을 반영하고 작법을 추가하여 우리만의 독자적인 의례로 확립한 것이었다. 그 내용은 1930년대 《석문의범》에 〈소심경〉으로 실려 있어 현재 한국 사찰에서는 이에 따라 발우공양을 행하고 있다.
이처럼 발우공양은 조선시대를 거쳐 근현대를 지나는 파란의 역사 속에서도, 직접 경작하여 자급자족하는 출가수행자들의 삶과 함께 이어졌다. 단순히 ‘의식화된 공양법’이 아니라 일상에 필요한 의식주를 스스로 감당해 왔던 대중생활 속에서 정립된 의식이다. 오늘날 출가자가 감소하고 승단의 운영 방식도 달라져 직접 농사를 짓거나 음식을 만드는 사찰이 줄어들었으나, 기본 사상과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대중이 많은 사찰의 경우 모든 끼니가 발우공양이었고, 1970~1980년대까지 대부분 사찰에서는 최소한 하루 한 끼의 발우공양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출가자의 감소와 의식의 번거로움 등으로 인해 발우공양을 하는 사찰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강원이나 선원이 있는 사찰에서 하안거 · 동안거에 주로 행하며, 단일사찰에서 발우공양을 일상으로 이어가는 곳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2. 발우공양의 기반과 준비 과정
발우공양은 의식에 따라 편의상 묵언공양 · 법공양 · 식당작법으로 나눌 수 있다. 묵언공양 · 법공양은 일상적으로 행하는 공양이고, 식당작법은 대형 재회에서 작법화하여 치르는 공양이다. ‘묵언공양(默言供養)’은 게송을 외우지 않고 오로지 침묵 속에서 진행하며, 대개 짧은 두루마기인 동방의와 평상복을 입는다. 기본절차와 정신은 동일하며, 묵언일 때도 발우공양의 핵심이 담긴 게송 ‘오관게’를 외우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에 비해 ‘법공양(法供養)’은 발우공양과 비교할 때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주요 절차마다 게송을 염송하는 점, 둘째 의식절차에 생반(生飯)이 따르는 점, 셋째 점심인 오시(午時, 11시∼13시)에 행하는 점, 넷째 장삼과 가사를 갖추어 입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법공양은 주요 절차마다 수행자의 다짐이 담긴 게송을 함께 외우며 그 의미를 새기는 가운데 행한다. 점심에 법공양을 하는 것은, 사시(巳時, 9시∼11시)에 부처님께 마지를 올린 다음 제자들이 공양한다는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가사와 장삼을 갖추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따른 것이다. 오시에 공양하니 불교에서는 점심을 오공(午供)이라 하지만, 부처님께 마지 올리는 사시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겨 사찰에서는 오공을 ‘사시공양’이라고도 부른다. 아울러 생반은 배고픈 중생에게 헌식(獻食)을 하기 위해 밥알을 더는 것으로, 헌식은 본래 마지를 올린 뒤에 행하니 발우공양에서도 오시 법공양 때 생반을 한다.
‘식당작법(食堂作法)’은 영산재 · 수륙재 · 예수재 등 대형 재회에서 대중공양의 의미를 의식화하여 치르는 발우공양이다. 그 절차는 《석문의범》에 편성된 〈식당작법〉을 따른다. 식당작법은 한국불교의 특성이 담긴 공양 의식으로, 의식문을 범패로 염송하고 각종 악기와 작법무가 함께하는 가운데 장엄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부처님께 공양과 예불을 올리는 상단권공을 마친 후에 행하여, 법공양의 구도와 같음을 알 수 있다.
발우공양은 대방(大方)에서 이루어진다. 대방은 대중이 함께 숙식과 수행을 하는 대규모 공간으로, 큰방 · 대중방이라고도 부른다. 대방의 구조는 군더더기 없이 단출하다. 높은 벽에는 대중의 소임별 명단을 적은 용상방(龍象榜)이 걸려 있고, 선반 위 법명이 적힌 자리마다 발우가 정연하게 놓인 모습은 청정한 수행 가풍을 느끼게 하는 대방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와 함께 가사를 거는 횃대, 이불과 소지품 등을 넣어두는 벽장 정도가 있을 따름이다.
대방에서 좌선과 발우공양을 할 때는 좌차(座次)라 하여 앉는 순서를 엄격하게 지킨다. 좌차는 율장과 청규에서 모두 중요하게 다룬 것으로, 구족계를 받은 계납 · 법랍에 따라 순서를 정하게 된다. 사찰에서 가장 어른인 조실(祖室)의 자리는 불단과 마주 보는 어간(御間)이다. 어간은 불상을 봉안한 중앙과 직선상의 거리에 있는 모든 공간을 뜻하여, 일반인이 법당에 들어설 때 존엄한 영역에 해당하는 어간문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간을 기준으로 동쪽을 청산(靑山)이라 하여 주지를 비롯해 상주하는 본채 승려들이 앉고, 서쪽을 백운(白雲)이라 하여 방부를 들인 선객들이 앉는다. 오행으로 동서는 청(靑)과 백(白)으로 구분되니 상주 승려는 청산처럼 자리를 지키고, 선객은 흰 구름처럼 머묾 없이 유행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사찰에서는 대방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탁자 밑’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조실이 앉는 어간을 중심으로 좌차에 따라 사방을 둘러앉다 보면, 불단이 있는 곳은 제일 하판의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원이 많으면 ‘중좌(中佐)를 친다’고 하여 가운데 자리를 더 만들어 서로 등을 마주 대고 앉게 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중요한 소임은 ‘죽비’와 ‘행익’이다. 죽비를 치는 일은 대개 입승(立繩) 또는 부전(副殿)이 맡는다. 모든 절차는 죽비 소리에 따라 진행하므로, 죽비는 대중의 상황을 잘 살펴서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다음 단계를 알려야 한다. 행익(行益)은 청수 · 밥 · 국을 분배하는 일로 하판의 몫이어서 강원이 있는 사찰에서는 학인들이 주로 맡는다. 행익은 기본이 3명이며, 대중이 많으면 가로세로로 구역을 나누어 2개 · 4개의 조가 움직인다. 따라서 많은 대중이 동참하는 큰절의 발우공양에는 대개 12명이 행익을 맡는다.
반찬은 3~5명이 먹을 양을 따로 찬상에 담아 돌리고, 각자 필요한 만큼 덜게 된다. 반찬은 김치 · 간장을 제외하고 세 가지가 기본을 이루어, ‘일식 삼찬’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대개 장아찌류 · 조림류 등과 함께, 제철 나물로 매일 바뀌는 새 반찬을 두는 곳이 많다. 특히 발우공양을 할 때는 마지막에 발우를 깨끗이 닦아 먹기 위한 용도로,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짠무 · 단무지 · 무김치 등을 반드시 올린다. 반찬 또한 쉽게 닦이고 물에 잘 씻기도록 고춧가루를 많이 쓰지 않고 기름 성분이 없는 음식을 위주로 내게 마련이다.
발우는 네 개를 한 벌로 삼는 사합(四合)을 주로 사용한다. 가장 큰 순서대로 밥을 담는 어시발우, 국을 담는 국발우, 물을 담는 청수발우(천수발우), 찬을 담는 찬발우를 포개어 둔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오합발우를 사용한 흔적도 보이며, 근현대에도 오합을 쓰는 사례들이 더러 있었다. 근래의 오합발우 사례를 보면, 사합보다 더 큰 발우를 하나씩 지녔다가 대중공양으로 떡 · 과일 등이 나올 때 그곳에 받아서 차담용으로 썼다. 발우공양과 무관하게 별도로 둔 발우이지만 오합의 전승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에 비해 생반용으로 5합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차담용이 오합 중 가장 큰 크기였다면, 생반용은 몇 개의 밥알을 떼어내는 용도이니 가장 작은 크기로 마련한 것이었다.
특히 발우공양을 할 때는 음식을 준비하고 운반하는 과정이 1분 단위로 정해놓은 시간에 따라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사찰마다 공양간에는 발우공양을 위한 준비 과정을 분 단위로 적어놓은 시간표를 두고 있다. 정해진 공양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종이나 목탁으로 알려야 하니, 이에 맞추어 밥을 안치고 푸는 시간에서부터 청수 · 밥 · 국과 찬상을 내는 시간 등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순천 송광사에서 이루어지는 점심 법공양의 경우, ‘밥종(공양종)’을 치는 시간이 ‘11시 7분’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공양 시간이 가까울 무렵이면 후원에서는 중요한 과정마다 큰소리로 보고하는 가운데 행위가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찬상을 차려서 이중으로 겹칠 때면 “겹상 하겠습니다!”라고 외쳐서, 일하는 대중이 다음 과정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대방에 음식을 들일 때면 행자가 공양간 앞에서 대방을 향해 죽비를 치며 “청수 들어갑니다!” “1조 · 2조 밥 나왔습니다!” 하고 외친다. 이에 행자와 학인들이 대방까지 음식을 나르면 마루에서 대기하던 학인들이 받아서 안으로 들이고, 11시 7분 밥종을 다섯 차례 울려 공양이 시작됨을 알리면 사시 염불을 마친 승려들, 선방 승려 등이 줄을 이어 대방으로 들어와 공양을 시작한다.
3. 발우공양의 절차
우리나라의 발우공양 의식문은 1496년에 간행된 《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이하 ‘승가일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 《승가일용》에는 발우공양 내용을 〈묵언작법〉과 〈식당작법〉으로 구분하여 실었다. 〈묵언작법〉은 일상의 발우공양(법공양)이고, 〈식당작법〉은 대형의식에서 치르는 것이다. 〈묵언작법〉의 게송은 14편이며, 이는 곧 공양 절차를 의미한다. 1935년에 안진호는 《석문의범》에 《승가일용》의 내용을 실었다. 〈식당작법〉 내용을 《석문의범》 송주 편의 《반야심경》에 싣고, 〈묵언작법〉은 《반야심경》의 부록에 〈소심경(小心經)〉이라는 이름으로 실었다. 반야심경이라 칭한 것은 그 뜻을 새기며 공양하도록 강조하기 위함으로, 〈묵언작법〉에는 반야심경이 들어 있지 않아 〈소심경〉이라 하였다. 〈소심경〉은 〈묵언작법〉에 ‘해탈주’를 추가하여 총 15편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래는 〈소심경〉을 축약해 사용하며, 염송하는 게송 수는 사찰마다 다르다.
발우공양은 크게 준비 단계, 분배 단계, 공양 단계, 마무리 단계, 대중공사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단계마다 여러 세부 절차가 따르며, 법공양일 경우 6~9개의 게송을 외우고 생반을 행하므로 묵언공양에 비해 절차가 많다. 모든 절차는 죽비 소리에 따라 진행되며, 묵언공양의 경우 약 7회, 법공양의 경우 9편의 게송을 염송할 때 약 18회의 죽비를 치게 된다. 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 페이지의 〈표〉와 같다.
준비 단계
대중이 각자의 발우를 내려서 자리에 앉는다. 이어 죽비 소리에 따라 발우를 편다. 밥을 담는 어시발우를 왼쪽 무릎 앞에 놓고, 국발우를 오른쪽 옆에 둔다. 청수발우는 국발우 건너편에, 찬발우는 어시발우 건너편에 둔다.
법공양에서는 자리에 앉은 뒤 부처님의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를 외운다. 발우를 펴기 전에, 부처님의 삶을 돌아보며 깨달음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뜻이며, ‘불은상기게(佛恩想起偈)’라고도 한다. 이어 모든 이에게 삼륜(三輪)이 청정하기를 바라는 ‘전발게(展鉢偈)’를 외고 발우를 편다. 삼륜이란 보시하는 이, 보시받는 이, 보시물을 말한다. 다시 여러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며 이에 귀의하는 ‘십염불(十念佛)’을 외운다.
회발게
부처님께서는 카필라성에서 태어나 마갈타국에서 성불하고,
바라나시에서 설법하고 구시라 쌍림에서 열반하셨도다
(佛生迦毘羅 成道摩竭陀 說法婆羅奈 入滅拘尸羅)
전발게
부처님이 내리신 발우를 내 지금 얻어 펴노니
원컨대 모든 중생 다함께 삼륜이 공적하소서
(如來應量器 我今得敷展 願共一切衆 等三輪空寂)
분배 단계
음식을 분배하는 행익 소임자들이 청수 · 밥 · 국의 순으로 상판에서 하판으로 나눈다. 청수와 국은 발우를 두 손으로 든 채로 받고, 밥은 발우를 건네주어 받는다. 반찬은 각자 먹을 만큼 담는다. 행익 후 밥과 국이 적거나 많은 이를 위해 추가하거나 덜어내는 가반 · 감반이 따른다. 이어 밥을 담은 어시발우를 두 손으로 받들어 눈썹 높이에 정대(頂戴)한다. 법공양에서는 이때 위로 석가모니와 아래로 범부 중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에게 공양 올리는 ‘봉반게(奉飯偈)’를 외우며, 이를 ‘봉발게(奉鉢偈)’라고도 부른다.
다음은 발우공양의 핵심이 담긴 ‘오관게(五觀偈)’를 외운다. 오관게는 음식에 담긴 이들의 공덕을 헤아리고, 스스로 공양받을 덕행을 지녔는지 성찰하며, 공양의 목적이 깨달음에 있음을 새기고, 몸이 병들지 않도록 약으로 삼아, 부지런히 정진해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수행자의 다짐을 담고 있다.
법공양의 경우 이어서 생반을 행한다. 각자의 밥알을 3〜7개 떼어내어 헌식기에 담은 뒤, 두 손으로 감로인(甘露印)의 수인(手印)을 취한 가운데 게송을 외운다. 먼저 굶주린 생명을 위한 ‘생반게(生飯偈)’를 외우고, 수행자의 원력으로 생반을 모든 생명이 먹을 수 있도록 변환시키는 진언이 따른다. ‘생반게’는 ‘출생게(出生偈)’라고도 부른다. 다음은 모든 음식을 청정하게 하는 ‘정식게(淨食偈)’와 이를 위한 진언을 외운다.
봉반게
공양을 받을 때는 마땅히 원할지니 모든 중생이
선의 희열을 음식 삼아 법의 기쁨이 충만하길
(若受食時 當願衆生 禪悅爲食 法喜充滿)
오관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헤아려보니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온갖 욕심 버리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이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計功多少量彼來處 忖己德行全缺應供 防心離過貪等爲宗 正思良藥爲療形枯 爲成道業應受此食)
생반게
귀신의 무리여, 내 지금 너희에게 공양을 베푸나니
이 음식이 시방에 두루 하여 모든 생명이 공양받을지어다
(汝等鬼神衆 我今施汝供 此食遍十方 一切鬼神供)
옴 시리시리 사바하(3회)
정식게
한 방울의 물을 살펴보니 8만4천 마리의 생물이 있구나
만약 이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면 중생의 살을 먹는 것과 같도다
(五觀一滴水 八萬四千蟲 若不念此呪 如食衆生肉)
옴 살바 나유타 발다나야 반다반다 사바하(3회)
공양 단계
수행과 다르지 않은 발우공양이기에 음식을 먹을 때 지켜야 할 규범이 많다. 밥은 숟가락으로 먹고 반찬은 젓가락으로 먹으며, 발우를 들어 입을 가리고 먹되 씹을 때는 발우를 내려놓는다. 말소리, 그릇 소리, 먹는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발우를 닦아 먹을 무나 김치 한 조각을 국물에 씻어 남겨둔다. 공양을 마칠 때쯤 숭늉을 돌리면 어시발우에 받아, 발우에 조금씩 부어가며 무로 깨끗이 닦아 마신다. 이 무렵 하판 승려들이 찬상을 내가고, 퇴수통이 들어온다.
마무리 단계
청수발우의 물을 어시발우 · 국발우 · 찬발우에 차례로 부어서 한 점의 찌꺼기도 남지 않도록 손으로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다. 하판에서부터 시작해 상판으로 퇴수통을 돌리면, 각자 발우 씻은 청수를 붓고 마지막을 남겨서 마신다. 청수를 나눌 때는 상판에서 하판으로 내려오지만, 퇴수는 찌꺼기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 하판에서 상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퇴수통은 천장 중앙에 붙여놓은 천수다라니 아래 놓고, 감로인의 수인을 취한 채 굶주린 아귀가 감로수를 마시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절수게(折水偈)’를 외운다. 절수게의 마지막에는 감로수로 변환시키는 진언이 따른다. ‘절수(折水)’란 발우 씻은 물을 반으로 나눈다는 뜻으로, 윗부분은 퇴수통에 붓고 아랫부분은 찌꺼기가 남아있을 수 있어 마신 데서 나온 말이다.
이어 발우 일습을 처음처럼 발우 보자기에 싸고, 발우를 들어 올렸다가 합장 반배하는 것으로 공양을 마친다. 법공양에서는 공양으로 얻은 힘과 공덕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겠다고 다짐하는 ‘수발게(收鉢偈)’를 염송한다. 절차에 따라 공양을 마치고 나면, 소임자는 발우 씻은 물을 퇴수구에 붓고, 생반은 헌식대에 붓는다.
절수게
내가 발우를 씻은 이 물은 천상의 감로수와 같도다
아귀 중생에게 이를 베푸니 모두 배불러지게 하소서
(我此洗鉢水 如天甘露味 施與餓鬼衆 皆令得飽滿 )
옴 마휴라세 사바하(3회)
수발게
공양 마치니 몸의 기운 충만하여 시방삼세에 위엄 떨치는 영웅과 같도다
인과가 생각중에 있지 않으니 모든 중생이 신통을 얻을지어다
(飯食已訖色力充 威振十方三世雄 回因轉果不在念 一切衆生獲神通)
대중공사
발우공양은 모든 대중이 한자리에 모인 시간으로, 공양을 마치면 대중공사(大衆公事)가 따른다. 이 시간에 어른이 격식 없는 소참법문(小參法問)을 하거나, 공지나 의견을 나누거나, 대중 규범을 어긴 이가 있으면 참회하고 경책을 내리는 등의 일이 이루어진다. 마무리 단계로 공양은 마치지만, 사중의 모든 이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 대중공사를 출가자의 대중생활에서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 발우공양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다. 대중공사를 마치면 질서정연하게 열을 이루어, 선반의 각자 자리에 발우를 얹고 대방을 나선다.
4. 발우공양의 현대적 가치
역사적으로 불교 수행공동체에서 규범과 청규를 정할 때면, 공양과 관련된 부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는 ‘먹는 일’이 생명을 이어가는 근간이자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가수행자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함께 모여 살아가는 대중생활에서 ‘공양’이 지닌 함의는 더없이 크다. 따라서 옛 스님들은 ‘출가자 노릇 제대로 하는 데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발우공양’이라 보았다. 함께 둘러앉아 수행자의 자세를 가다듬는 발우공양이 대중생활에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새겨보게 된다.
이러한 출가자의 발우공양이 국내는 물론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극히 불편한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발우공양이 인류의 미래를 밝힐 가치 있는 식사법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2024년 봄에 9명의 출가자 · 재가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오랜 체험을 통해 느낀 발우공양의 내재적 의미와 미덕에 대해 면담한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발우공양이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자유롭고 맛있는 식사라면 이러한 시도가 의미를 지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행위를 구속하는 불편한 식사’이자 ‘제한된 반찬 수’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서, 발우공양이 지닌 의미를 새겨볼 수 있었다. 이에 지금까지 다룬 발우공양의 절차와 내용을 기반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함께 참조하여 발우공양에 담긴 불교적 가치가 현대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몇 가지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과 가까워지는 치유의 공양이라는 점이다. 발우공양은 밥을 먹는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밥 먹는 일’이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이고 귀한 일이며, 감사가 따라야 함을 새기도록 이끈다. 현대인들은 ‘넘쳐 나는 음식 속에서 밥을 먹는 일’이 소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버려지는 음식을 보며 순간적으로나마 불편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한 끼가 절실한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안타까움, 식량 과소비가 가져올 인류 환경의 암담한 미래 등을 생각하며 느끼는 불편함이다.
이에 비해 발우공양은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함께 공존하는 자연의 가치를 담고 있어, 공양하고 나면 자연과 가까워진 자신을 느끼게 된다. 마치 선한 일을 했을 때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 것처럼, ‘밥 먹는 일’로써 수행과 한 걸음 가까워진 치유의 시간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우공양을 처음 접한 이들은 한 톨의 찌꺼기도 남지 않고, 처음 받은 물과 발우를 씻은 물이 별 차이 없이 맑게 나오는 ‘청결 공양’을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꼽는다. 음식을 남기지 않아 물자 절약이 되고, 별도의 설거지가 필요 없으니 환경이 오염되지 않아 더할 나위 없는 친환경적 식사법인 것이다. 세계의 생태환경 운동가들이 한국의 사찰을 방문하고 생명 운동의 대안으로 발우공양을 주목하는 것도 이러한 생태적 공양 방식 때문이다.
이러한 식사법은 음식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기반을 이룬다. 내 앞에 놓인 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수많은 이들의 수고와 공덕을 거쳤다는 관점을 갖게 될 때, 한 톨의 밥과 양념도 귀하게 여길 수 있고 밥을 먹는 자신 또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재가자들 또한 음식을 대하는 이러한 마음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발우공양을 통해 이러한 시간과 가까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아울러 온전히 먹는 일에 집중하며, 밥 한 톨과 김치 한 조각, 물 한 모금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봄으로써 심신으로 체득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식사법이라 보고 있다.
둘째,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상생의 공양이라는 점이다. 발우공양에서는 자신에게 분배된 음식을 나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뭇 중생과 함께하는 밥으로 본다. 성현에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함께 공양을 나누고, 모든 중생이 공덕 받기를 발원한다.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일이 수많은 생명의 희생 위에 있다는 연기적 삶을 새기며, 나의 발우가 모든 생명이 공생하는 발우로 확장되어야 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내용이 담긴 ‘봉반게 · 생반게 · 정식게 · 절수게’ 등을 외움으로써 공양 때마다 그 정신을 새기게 된다. ‘봉반게’를 외울 때는 밥이 담긴 발우를 들고, 부처님부터 일체중생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이 공양을 올림을 밝히며, 함께 깨달음 얻기를 발원한다. 그리고 배고픈 귀신들을 위해 각자의 밥알을 덜어 모은 뒤 ‘생반게’를 외워 모든 생명이 공양하기를 발원하고, 발우에 담긴 청수를 응시하며 ‘정식게’를 외워 한 방울의 물에도 무수한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새긴다. 마지막으로 발우를 씻은 청수를 모아놓고 ‘절수게’를 외워 아귀의 굶주림을 해소하는 감로수로 변하기를 기원한다. 이처럼 발우에 담긴 음식을 보며 모든 중생, 굶주린 귀신, 아귀에 이르기까지 차별 없이 공양을 나누고자 서원하는 것이다. 자신이 공양하는 자리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적 존재들의 공양을 낱낱이 상념하는 자비심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발우공양에는 다른 생명에게 직접 음식을 베푸는 두 차례의 절차가 있다. 이는 굶주린 중생을 위해 밥알을 거두는 ‘생반’과, 아귀를 위해 발우를 씻어서 거두는 ‘청수’이다. 생반은 ‘나는 이 밥을 먹는데 배고픈 이들은 어찌할까’라는 마음으로, 먹고 남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밥을 먹기 전에 미리 3∼7알의 밥알을 떠서 덜어놓게 된다. 이렇게 모은 밥이 몇 숟가락에 불과하지만, 배고픈 모든 중생이 공양받도록 기도하고 진언을 외움으로써 한량없는 중생이 다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발우를 씻고 난 청수는 아귀(餓鬼)에게 주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아귀는 극심한 목마름과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목구멍이 바늘처럼 가늘어서 삼킬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청수뿐이다. 만약 청수에 미세한 찌꺼기라도 있으면 불로 변해 목구멍을 태운다고 본다. 따라서 아귀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발우 씻은 물은 늘 맑고 깨끗해야 하는 것이다. 출가자들이 처음 발우공양을 접했을 때 이러한 원리에 크게 감동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깨끗이 씻어 먹어야 아귀가 고통 없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는 명제는 아귀를 위한 것이자, 한 점의 양념이나 부스러기도 귀한 시주물임을 새기도록 하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의미에 깊이 공감하면서 진심을 다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고통받는 아귀에 대한 자비심’과 ‘환경을 생각하는 생태적 사상’의 아름다운 만남이라 하겠다. 모든 이들이 단합하여 깨끗한 청수를 만들어내는 것, 이는 온전하게 비우는 일이 인간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 일임을 말해준다.
셋째, 평등과 화합을 지향하는 공양이라는 점이다. 발우공양은 독상과 겸상의 미덕을 갖추면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먹는 식사법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독상을 받았고 5첩 · 7첩 등 반찬 수에 따른 반상도 독상을 원칙으로 한 것이다. 이러한 독상은 지위 · 나이 · 성별에 따른 차별을 전제한 것이었기에 서열이 다른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이 남겨 상물림을 한 음식을 먹었다. 독상의 불편함과 배타성으로 인해 겸상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겸상과 공동식의 친화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환경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화두가 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 지점에 독상과 겸상의 미덕을 갖춘 발우공양이 있다.
발우공양에서 내 앞에 차려진 음식은 더없이 간소하지만, 다른 이와 함께 먹는 겸상이 아니라 내가 오로지 관장해야 할 밥상이다. 그러나 혼자 배타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둘러앉아 공양하는 겸상의 미덕을 갖추었다. 따라서 발우공양의 ‘간소한 독상’은, 대중생활을 하는 가운데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출가수행자의 삶을 상징하는 듯 여겨진다. 내 밥상을 내가 관장하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수행의 밥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공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등과 화합이다. 조용한 명상으로 먹지만 서로 배려하고, 혼자서 천천히 먹거나 빨리 먹지 않고, 위로 조실부터 아래로 행자까지 위계에 따른 차별 없이 같은 음식을 먹고, 마지막 배분까지 모두 마쳤을 때 비로소 공양이 시작된다. 그러한 공동체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양이니 화합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발우 밥도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재가 공양주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참 공양주가 들어와서 ‘발우공양이 뭐냐’고 물으면, 구참 공양주들이 ‘따뜻한 밥 식혀 먹는 게 발우공양’이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제일 먼저 푼 큰스님 밥부터 식고, 인원이 많을수록 더 빨리 식는다’고 한다. 갓 지어 따뜻한 밥을 올렸더니, 갖가지 의식을 하며 밥이 다 식을 때쯤 공양하는 실상을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발우공양이 수행자의 공양을 넘어서 인류 보편의 가치로 확산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일 것이다. 음식을 통해 그러한 공동체 정신을 새기는 것이 발우공양이기 때문이다. 재가자의 경우 발우공양을 통해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우선적인 가치는 ‘자신이 먹을 만큼만 취해서 남김없이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식사법을 일상에서 실천하게 된다면, 공양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수행적 삶에도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
구미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박사(불교민속 전공). 주요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사찰 후원의 문화사》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삼화사 수륙재》 《존엄한 죽음의 문화사》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등이 있다. 현재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민속문화재 분과, 무형문화재 분과),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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