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 이야기

[스크랩] 공존

수선님 2018. 1. 21. 12:43

 

당신이 만약 시인이라면 당신은 분명 이 한 장의 종이 안에서 구름이 흐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없고, 비가 없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종이가 존재하려면 구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구름이 이곳에 없으면 종이도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과 종이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종이 안을 더욱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햇빛을 보게 됩니다. 햇빛이 그 안에 없다면 숲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햇빛이 종이 안에 있음을 봅니다. 종이와 햇빛은 서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 계속 바라보면 우리는 드 나무를 베어 그것을 제재소로 운반해 간 나무꾼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밀가루를 봅니다. 그 나무꾼이 빵을 매일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빵을 만드는 밀가루를 이 종이 안에서 봅니다.

 

그리고 그 나무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안에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더욱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그 안에 있음을 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우리가 그 종이를 보고 있을 때 그 종이는 우리 지각의 일부인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내 마음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이 종이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곳에 있지 않은 것 하나도 지적할 수가 없습니다.

 

시간, 공간, 지구, 비 그리고 딸 속의 광물질, 햇빛, 구름, 강, 열, 그 모든 것이 이 종이와 공존합니다. 당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모든 다른 것들과 공존해야만 합니다. 모든 다른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종이 한 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이 중 하나를 그 근원으로 돌려보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햇빛을 해에게로 돌려보낸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이 종이가 있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햇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나무꾼을 그 어머니에게로 돌려보낸다면 우리는 종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종이는 종이가 아닌 요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 종이가 아닌 요소를 그 근원으로 돌려보낸다면 종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마음, 나무꾼, 햇빛 등 종이가 아닌 요소들이 없으면 종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얇은 종이 안에 이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 틱낫한(釋一行)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서력 1926~ )스님은 조국이 전쟁에 휩싸이자 평화운동에 헌신했습니다. 평생에 걸친 특유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그분은 1966년 미국에 초창되어 조국이 겪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세계에 알렸으며, 1967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습니다.  

 

평화를 위한 굽히지 않는 의지와 솔직한 표현 때문에 고국인 베트남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당하자, 프랑스로 망명하여 현재 그곳에서 난민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 지도자로 일하고 계십니다. 이 글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분의 글은 아주 부드럽고 설득력이 뛰어납니다.

 

접두어 'inter'와 'to be'를 합치면 'inter-be'라는 새로운 동사가 되는데, 이 동사의 명사 'interbeing(공존)'이라는 단어는 영어시전에 없지만 새로 넣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틱낫한 스님은 공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화엄경>에 '상호구족(相好俱足)'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것은 '상호(相互)'와 '존재(存在)'를 의미하는 복합어입니다. 이 말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라는 '자타불이(自打不二)', '자타일여(自他一如)'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한 장의 종이에서 구름, 숲, 나무꾼 등 여러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듯 내가 당신이고 당신 바로 나입니다. 그것이 'interbeing'의 의미입니다.

 

이 글은 우리가 서로의 안에 있음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설명은 나아가 우리에게 사람과 사람의 공존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람과 환경의 공존 문제도 명쾌하게 이해시키는 명분입니다.

 

이정우 「길을 묻는 그대에게」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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