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생루(生漏)라는 바라문이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서로 문안 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바라문이 세존께 아뢰었다.
"굴속에서 한가하게 사는 것은 매우 괴로울 일이요, 혼자 지내고 혼자 다니면서 마음 쓰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범지여. 네 말과 같다. 굴속에 한가하게 사는 것은 매우 괴로울 것이요, 혼자 지내고 혼자서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 하면, 나도 옛날 아직 부처가 되기 전에 보살행(菩薩行)을 닦을 때에는 항상 '굴속에 한가하게 사는 것은 매우 괴로울 것이요, 혼자 지내고 혼자서 다니면서 마음 쓰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바라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족성자(族姓子)들이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道)를 배운다면 사문 구담(瞿曇)께서는 가장 우두머리가 되어 많은 이익을 주시고, 저 중생들을 위하여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주십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바라문아. 네가 한 말과 같다. 모든 족성자들이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면 나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많은 이익을 주고, 또 저 중생들을 위해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러나 저들이 나를 보고 부끄러운 마음[?愧]을 일으켜 산이나 늪지대나 한적하고 고요한 굴속으로 나갔을 때, 나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저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은 몸으로 짓는 행(行)이 깨끗하지 못하다. 몸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 사람이 없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친근히 하더라도 그것은 부질없이 수고만 더할 뿐이다. 그들은 진실한 행을 가지지 못해서 그 악하고 착하지 못한 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몸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또한 한적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한다. 몸으로 짓는 온갖 행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굴속을 친근히 하는 것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몸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여, 모든 아라한(阿羅漢)들로서 몸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고 굴속에서 한가히 살기를 좋아하는 이들 중에 내가 제일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아, 나는 내 몸의 행이 깨끗한 것을 스스로 관찰하였고, 한적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할 때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그 때 나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저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뜻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지 못하고 생활도 깨끗하지 못하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살기를 친근히 한다. 그들이 아무리 그런 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진정(眞正)한 것이 아니어서 악(惡)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그들은 모두 다 갖추고 있으므로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몸·입·뜻·생활에서 짓는 행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몸·입·뜻·생활이 깨끗하면서 한적하고 청정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나와 관계가 있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몸·입·뜻·생활이 깨끗하다. 몸·입·뜻·생활이 깨끗한 여러 아라한들로서 한적한 곳에 살기를 좋아하는 이들 중에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바라문아, 나는 지금 몸·입·뜻·생활이 깨끗하였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지낼 때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그 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두려워하는 것이 많으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살고 있다. 그 때 그들은 곧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날 두려운 것이 조금도 없으면서 사람이 없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살고 있다.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사는 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두려움이 조금도 없고, 게다가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지내며 스스로 즐겁게 노닐기 때문이다. 온갖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사는 것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괴로움과 근심을 여의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바라문아,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아무 두려움도 없었고, 그 기쁨은 더욱 더 늘어났느니라.
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남을 헐뜯고 자기 자신을 칭찬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 생각이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나 범지야, 나는 남을 헐뜯지도 않고, 또 나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는 모든 사람들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교만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함이 없는 여러 성현(聖賢)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저 모든 사문들은 이양(利養)을 추구하며 스스로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양을 추구하는 일이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에 게으름을 품고 있어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지 않으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친근히 한다. 그것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용맹스러운 마음이 있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맹스러운 마음을 가진 성현(聖賢)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그 기쁨이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그 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온갖 것들을 잘 잊어버리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살고 있다. 비록 이러한 행(行)이 있더라도 그들에게는 오히려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온갖 것에 대하여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
범지야, 잊어버리는 일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잊어버리지 않는 여러 성현들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사는 기쁨이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나는 그 때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마음이 어지러워 안정되지 못하다. 그들은 곧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어서 악한 행을 병행(竝行)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뜻이 끝까지 어지럽지 않고 마음이 늘 한결같다. 그러므로 저 뜻이 어지럽고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항상 마음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만일 마음이 일정(一定)한 성현들이 있다면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비록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살고 있지만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나는 그 때 또 이렇게 생각했다.
'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어리석고 어둡기가 마치 양 떼와 같고, 또 저 사람들에게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있다. 나는 저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항상 지혜롭고 어리석음이 없이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와 같은 행이 있는 이가 있다고 하더라도그들과 나는 아무 관계가 있다. 나는 지금 지혜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성취한 모든 사람 중에서 내가 가장 우두머리가 된다.'
나는 이와 같은 이치를 관찰하고 나서는 비록 한가한 곳에 살고 있지만 그 기쁨은 곱절이나 더 늘어났느니라.
내가 항상 한적하게 지내는 동안에 혹 때로 나무가 부러지고 짐승들이 내달리는 일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곳은 매우 두려운 숲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만일 두려움이 밀려오면 마땅히 방편을 구해 두려움이 밀려오지 않게 하리라.'
내가 거닐 때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은 채 기어코 그 두려운 생각을 없앤 다음에야 비로소 앉았다.
내가 서있을 때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은 채 기어코 두려움을 없앤 다음에야 앉았다.
내가 앉아 있을 때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 않고 기어코 그 두려움을 없앤 다음에야 앉았다.
내가 누웠을 때 두려움이 생기면,
나는 거닐지도 않고 앉지도 않은 채 기어코 그 두려움을 없앤 다음에야 앉았다.
범지야, 꼭 알아야만 한다. 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밤이고 낮이고 도법(道法)을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 저 사람들을 매우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범지야, 나는 밤이나 낮이나 할 것 없이 도법을 안다. 그리고 더욱 용맹스러운 마음을 내어 허망하지 않고 뜻이 어지럽지 않으며, 마음이 늘 한결같으니라. 그렇게 탐욕의 생각 없이 각(覺)과 관(觀)이 있어서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첫 번째 선정에 노닌다. 범지야, 이것을 일러 '내가 첫 번째 마음으로 현세(現世)에서 스스로 즐긴다'고 한다.
만일 각과 관을 없애고 안으로 기쁨과 한결같은 마음은 있으나 각과 관이 없으면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제2선에서 노닐게 된다. 범지야, 이것을 일러 '두 번째 마음으로 현세에서 즐긴다'고 한다.
나는 스스로 마음 속에 생각이 없는 것을 관찰해 알고 몸의 쾌락(快樂)을 깨달아 모든 성현들이 희망(希望)하는 평정한 생각으로 즐거워하는 제3선에서 노닌다. 범지야, 이것을 일러 세 번째 마음이라고 한다.
또 괴로움과 즐거움이 이미 다 제거되고 근심과 기쁨도 없으면,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한 생각이 청정한 제4선에서 노닐게 된다. 범지야, 이것을 일러 '네 번째 보다 더 훌륭한 마음으로서 스스로 깨달아 알고 마음에서 노닌다'라고 한다.
지금 나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지낼 때에 이 네 가지 증상(增上)하는 마음이 있다. 나는 이 삼매(三昧)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또한 번뇌도 없으며, 두려운 것이 없어 전생의 무수한 겁(劫) 동안 있었던 일을 스스로 안다. 그 때 나는 전생의 일인, 1생(生)·2생·3생·4생·5생·10생·20생·30생·40생·50생·백 생·천 생 동안의 일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 등의 일을 모두 다 안다. 즉 나는 과거에 저기에 태어났고 자(字)는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이와 같은 음식을 먹었고 이와 같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다는 것과, 저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나고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난 인연의 본말(本末)을 모두 다 밝게 안다.
범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초저녁에 첫 번째 밝음[初明 : 宿命智證明]을 얻고 무명(無明)을 없애 다시는 어두움이 없고, 마음은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면서 스스로 깨달아 안다. 또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더러운 티가 없어지고 또 번뇌[結使]도 없어지며, 마음과 뜻이 안정되어 두려움이 없게 되고, 다시 중생들로서 태어나는 이와 죽는 이를 다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천안(天眼)으로 중생들로서 태어나는 이와 죽는 이·좋은 몸과 나쁜 몸·좋은 길과 나쁜 길, 혹은 좋고 추(醜)한 것이 다 그 행의 선악(善惡)을 따른다는 것을 모두 다 분별해 안다. 즉 어떤 중생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으로 악을 행하며, 뜻으로 악을 행하여, 성현(聖賢)을 비방(誹謗)하고 항상 삿된 소견을 가져 삿된 소견과 서로 호응하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에 떨어진다.
또 어떤 중생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으로 선행을 닦으며, 뜻으로 선행을 닦아 현성(賢聖)을 비방하지 않고 항상 바른 소견[正見]을 닦아 바른 소견과 서로 호응하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천상(天上)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 나는 다시 깨끗하고 더러움이 없는 천안으로 중생들로서 태어나는 이와 죽는 이·좋은 몸과 나쁜 몸·좋은 길과 나쁜 길, 혹은 좋
고 추한 것은 그 본래의 행을 따른다는 것을 다 아느니라. 범지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처럼 밤중에 두 번째 밝음[第二明 : 生死智證明]을 얻고 다시는 어두움이 없이 스스로 깨달아 알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느니라.
나는 다시 삼매에 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청정하여 더러운 티가 없고 또 번뇌[結使]도 없으며, 마음과 뜻에 안정을 얻어 두려운 것이 없고, 번뇌[漏]가 없어진 마음을 얻어 '이것은 괴로움이다'고 사실 그대로 진실하게 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얻었을 때 욕루(欲漏)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였고 해탈함으로 인해 곧 해탈했다는 지혜를 얻는다. 그리하여 '나고 죽음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다 안다. 범지야, 이것을 일러 '내가 새벽에 세 번째 밝음[第三明 : 漏盡智證明]을 얻어 다시는 어두움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어떠냐? 범지야, 너는 '여래는 탐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다하지 못했으면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사는구나'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범지야, 그렇게 관찰하지 말아라. 왜냐 하면 여래는 지금 모든 번뇌가 아주 없어지고서 항상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해 사람들 속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는 지금 이 두 가지 이치를 보았기 때문에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또 스스로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여 노니는 것과 아울러 중생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제도하는 것이니라."
그 때 생루 범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을 위하고 일체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입니다."
범지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그만 두소서, 이제 그만 두소서. 세존이시여, 충분히 들었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꼽추가 등이 펴지고 헤매는 이가 길을 얻은 것 같으며, 장님이 눈을 얻고 어두운 데에서 등불을 본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사문 구담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저를 위해 설법하셨습니다. 저는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지금부터는 5계(戒)를 받들어가져 다시는 살생하지 않고 우바새(優婆塞)가 되겠습니다."
그 때 생루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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