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고 삼가며 맑고 조용하다 - 센 리큐(千利休)
온화하고 삼가며 맑고 조용하다. '화경정적(和敬淸寂)'은 중용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화(和)'는 화목함, 온화함 말고도 중도(中道)의 뜻도 갖고 있습니다. <중용>에 보면 "화(和)는 천하의 공통된 도[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개인 플레이만 해서는 사회도 단체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각자 다른 개성을 조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 개성을 살리면서 또다른 제3의 성격을 이룰 때 비로소 화합이 성립합니다. '화합'을 불교 원어는 '상가(samgha)'인데. 이 말을 원음대로 옮겨서 '승가(僧伽)'라고 합니다.
화(和)는 평화와 통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고 있지 않는 상태로서의 평화라는 의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미움, 분노, 원망 등이 순화되어 화평함으로 바뀌어애 비로소 인간의 미음이 평화로워집니다. 분노나 증오를 몰래 키우면서 평화를 외쳐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선 수행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유네스코 헌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각자의 마음이 평화로워지지 않으면 세계의 참된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네스코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진리의 방편으로 화평함을 구현해왔습니다.
'화경청적(和敬淸寂)'은 각각 독립된 용어가 아니라 일관된 하나의 시상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온화함 속에서 화평하면 자연히 삼가는 가운데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고, 서로 삼가는 가운데 화목해집니다. 화목하여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면 누구나 마음이 맑아지고 자기의 주변도 께끗이 정리됩니다. 마음에 걸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남과 잘 조화를 이루되 남에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남에게 부화뇌동하면서도 남과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한다[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고 유교에서는 말하고 있는데, 이 구별이 중요합니다. 개성을 살리면서도 화목하고, 화목하면서도 동화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적(寂)'은 마음의 고요를 말합니다. 번뇌의 불길이 가라앉은 상태입니다. 그것은 마치 짚을 태우는 것과 비슷해서, 처음에는 불길이 맹렬히 타오르지만 다 타고 나면 온기를 남긴 재의 상태가 되는데, '적'이 바로 이런 상태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주 꺼진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온기를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온기가 마음이 싸늘하게 얼어붙은 사람을 녹이는 자비와 지혜의 작용을 합니다.
번뇌가 지혜로 승화되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 바로 선의 마음이요 중용의 마음입니다.
松原泰道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글쓴이 : 느린 걸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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